가을 바다는 정겨웠다. 가을이 바다 위에 내려 앉았다. 파도가 가을을 가슴 속에 품고 있었다.

 

건너 편에는 포항제철 공장이 보이고 있었다. 밤새 불을 밝히고 있다. 청룡회관 3층에서 나는 검은 파도를 듣고 있었다. 청룡회관은 포항시 바닷가에 있는 휴양시설이다. 깨끗한 시설에 주변 경관이 너무 아름답다. 넓은 방도 하룻밤에 3만원에 사용할 수 있다.

 

우리 일행은 방 2개를 잡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모처럼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여러 사람들이 모이다 보면 말재주가 좋은 사람들이 있다. 별것 아닌 소재를 가지고도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말하는 톤, 제스처, 그 내용 등으로 인해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밤 12시가 넘어서 부근에 있는 노래방으로 갔다. 적지 않은 노래방인데 손님들이 많았다. 빈 방은 하나밖에 없다고 한다. 겨우 얻어서 놀았다.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를 부르면 노는 것은 건전하기도 하고 좋은 일이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기도 하다.

 

요새는 노래방기계가 좋아져서 배경음악도 멋있고, 오디오 성능이 좋아 웬만큼만 불러도 잘 부르는 것처럼 보인다. 요새는 내가 별로 노래방이나 노래를 할 수 있는 장소에 별로 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참으로 오랫만에 가게 된 노래방이었다. 안하던 노래를 하려니 맨날 부르던 노래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18번은 '미워하지 않으리', '돌아가는 삼각지', '미워도 다시 한번' 등이다. 다른 사람들이 노래를 흥겹게 잘 하는 것을 보면서 노래방이 꼭 필요한 시설이라는 생각을 했다. 캬바레는 그것 대로, 술집은 그것 대로 다 필요한 것이다. 그 맛을 아는 사람들은 그곳에 전념한다.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그게 취미고 성격이다.

 

산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나는 나무와 바닷물, 바람과 파도를 동시에 마주하고 있었다. 산은 조용히 있다. 침묵하고 있다. 바다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쉴 새 없이 소리를 내고 있다.

 

바다는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래서 움직이고, 소리를 낸다. 파도는 계속 밀여오고 있었다. 끝까지 어딘가에 부딛힐 때까지 다가가고 있었다.

 

산에는 숲이 있다. 수많은 나무들이 있다. 바람이 분다. 바람은 산이 살아있음을 알리는 유일한 징표다. 바람이 없이 정지해 있으면 삶과 죽음을 구별하는 게 불가능하다.

 

나는 파도와 바람을 비교해 보았다. 바다에는 파도가 있음으로써 생명을 인식시킨다. 산에는 바람이 있음으로써 무덤 속의 존재와 무덤을 바라보는 존재를 구별시킨다. 파도는 사나운 힘을 싣고 있지만, 바람은 따뜻한 사랑을 담고 있다. 파도는 어딘가에 부딛혀 부서지지만, 바람은 나무에 닿아 부드러운 촉감을 전해 주고 있다.

 

파도여, 바람이여!

우리에게 다가오라. 끊임 없이 우리를 품어라. 그러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깨닫고 사랑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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