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소송법에는 현행범인으로 체포된 피의자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모든 장치를 규정해 놓았지만, 방수 씨의 입장에서는 위와 같은 절차가 밟아질 때마다 가슴이 철렁거렸다. 혹시 부인이 위 현행범인체포통지서를 보게 되면 얼마나 놀라고 궁금할까? 또 방수 씨 모르게 경찰관에게 전화로 확인해 볼 수도 있는 것이었다. 다행이 방수 씨의 부인은 아무 것도 모르고 지나갔다. 위 통지서는 방수 씨가 우체함에서 먼저 받아 찢어버렸다.
경찰은 방수 씨에 대한 주민조회와 범죄경력자료조회를 해서, 과거에 다른 범죄경력이 있는지 등을 확인했다. 그리고 피의자주거조사서를 작성했다. 방수 씨는 경찰에 의해 불구속입건된 지 한달 만에 관할 검찰청으로 사건이 송치되었다.
검찰청에 사건이 송치되니 담당검사가 정해졌다. 검사는 방수 씨를 불러 범죄사실에 대한 확인을 한 후, 피해자로부터 정식으로 고소장이 제출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를 물었다.
방수 씨는 그때서야 상대방인 의상실 여주인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법을 잘 모르는 방수 씨로서는 50살이 넘은 여자가 젊은 남자로부터 음란한 전화를 받았다고 해서 무슨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이렇다. 상대방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기가 어렵다. 방수 씨는 남자였기 때문에 여자들이 그와 같은 음란전화로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 알지 못했다. 방수 씨의 부인이나 딸이 그런 전화를 계속 받아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방수 씨도 생각이 달라졌을 것이다.
모든 범죄의 피해는 그렇다. 길 가다가 조금 폭행을 당해도 당한 사람의 입장은 매우 충격적이다. 진단 4주의 상해로 팔이 부러지거나 다리가 부러지면 그 고통을 돈으로 계산할 수도 없는 것이다.
기브스를 해야 하고, 모든 일상의 생활이 마비된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놓여 있는 거리는 결코 극복할 수 있는 인간의 본질적인 사고와 느낌의 한계 때문에 영원히 존재한다.
방수 씨는 자신의 정상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피해자와 접촉을 해보았으나 제대로 되지 않았다. 피해자측에서는 상당히 많은 금액을 요구하고 있었다. 피해자는 정신적 고통이 크다고 하면서 최소한 1천만원을 가지고 오라는 것이었다.
과연 피해자가 받은 정신적 고통을 어느 정도이며, 이를 금전으로 보상한다면 얼마나 될까? 물론 구체적인 사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와의 관계, 가해자의 범죄행위의 내용과 정도, 피해자의 연령, 직업, 환경 등을 종합해서 결정될 것이지만, 방수 씨의 입장에서는 피해자가 요구하는 1천만원이 웬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