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사람들을 위한 변론

 

 

 

 

남부법원에 갔다. 오후 2시부터 공판이 있었다. 법원에 도착하니 20분이 남았다. 법원 뒷편에 가니 작은 정원이 있고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도 있었다. 이제는 녹음이 우거져서 어디 가나 그늘이 있다.

 

법원 뒤에 바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었다. 법원이나 검찰청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그 아파트에 살면 출근하는데 5분도 안 걸릴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젊었을 때 직장에 다니게 되면 가까운 데서 사는 것이 상책이다. 공연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면서 출퇴근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물론 여건이 허락해야 가까운 곳에서 살 수 있는 것이지만.

 

재판은 2시에 시작되었다. 판사 세 사람은 법복을 입고 들어왔다. 검사가 자리를 잡고 피고인들 세 사람이 들어왔다. 몇 번에 걸친 재판을 하고 오늘이 마지막 공판이다. 회사에 투자를 했다가 손해를 보았다는 피해자 두 사람이 증인으로 나왔다. 증인신문을 했다.

 

증인들은 피고인들이 어떻게 사기를 했는지 증언했다. 변호사로서 증인들과 설전을 했다. 모든 사정을 다 알고 투자를 했던 경위와 구체적으로 서로 간에 어떤 대화가 오고 갔었는지 피고인들의 행위 분담 등에 관한 싸움이었다. 거래관계가 잘못 되어 고소를 하고 재판까지 가게 되면 서로가 원수가 되는 것이다. 서로가 얼굴을 붉히면서 법정에서 싸움을 하게 된다.

 

오래 전에 있었던 거래관계에 대해서는 녹화를 해놓은 것도 아니고 서로가 기억에 의존해서 각자 주장을 하다 보면 현저한 차이가 나게 된다. 서로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상대방을 아주 나쁘게 몰아부친다. 증인신문이 끝나고 검사의 구형이 있었다. 변호사의 변론이 있고, 끝으로 피고인들의 최후진술이 있었다.

 

그중 한 피고인이 울먹이면서 가족들과 함께 살지 못하고 함께 숨쉬지 못해 너무 안타깝다고 하자 방청객에서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죄는 지었다고 해도 인간은 인간이다.

 

사실 투자사기란 코에 걸면 코거리다. 사기인지 민사사안에 불과한지도 애매하다. 검사가 사기라고 밀어부치면 사기죄로 처벌될 위험성도 있다. 

 

재판이 끝나고 택시를 타고 서초동으로 돌아왔다. 택시비가 6월 1일부터 올랐다. 1만6천원이 나왔다. 적은 돈이 아니다. 기사는 택시비 인상 때문에 승객들이 말이 많다고 한다. 다만, 최근에 워낙 손님이 적었기 때문에 손님이 줄고 늘고는 잘 못느낀다고 했다. 성실하게 운전해서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기사의 노력이 고마웠다.

 

5시부터 환경단체 운영위원회 회의를 했다. 부산에서 올라온 여자 위원 한 분이 아주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사회를 위해 자원봉사하는 고마운 분들이다. 일주일에 한번 씩 모여서 회의를 하는데 아무런 불평 없이 열성을 보여주고들 있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느낀다. 비가 간간이 내려서 그런지 나무 잎들은 더욱 생기를 더해가고 있다.

 

 

*** 6월 2일 / 가을사랑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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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를 맞고 남산을 걸었다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 9명이 모여 점심식사를 했다. 워낙 친한 사람들이라 아무런 격의 없이 편하게 많은 대화를 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며 유머스러운 이야기들을 했다. 그러다 보면 1시간이 짧다.

 

식사시간이 끝나면 각자가 바쁜 사람들이라 사무실로 돌아가야 한다. 식당 주인아주머니도 우리 팀이 가면 아주 친절하게 잘 해준다. 오늘은 색다른 김치를 한포기 가져다가 썰어주었다. 맛이 좋았다. 그 성의도 고마웠고. 서초동에는 수많은 식당이 있지만 내가 가는 식당은 서너군데 밖에 안된다. 다니는 곳만 계속 가게 되는 것이다. 아는 곳이란 그래서 좋은 것이다.

 

사무실에 출근하면 식사시간을 빼고는 하루 종일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정신 없이 일을 하다 보니 밖에는 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퇴근하고 청계산 등산을 조금 하려고 했는데 못하게 되었다. 잠시 시간을 내서 창밖을 바라다 보았다. 이제 봄비라고는 할 수 없다. 초여름에 내리는 비다. 비 내리는 밖을 보면서 나는 또 상념에 빠졌다. 

 

우리 사무실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답답한 사연들이 있다. 분쟁 때문에 골치가 아프고, 심각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나도 하루 종일 심각하거나 진지할 수밖에 없다. 그들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해야 하니까. 세상에는 억울한 일도 많고, 나쁜 사람들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법이라는 것이 그렇게 명백하게 모든 것을 가려줄 수 있는 만능의 도구도 아니다. 그래서 답답하다.

 

일을 마치고 남산에 갔다. 요새는 해가 길어서 꽤나 늦게까지 환하다. 6시경에는 비가 그치고 개기 시작했다. 구름은 많았지만 비는 그쳤다. 운동도 할 겸 남산공원으로 갔다.

 

남산공원 분수대 앞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남산타워까지 올라갔다. 계단을 계속 오르니 땀이 조금 나면서 운동이 많이 되었다. 남산타워는 전면적인 수리공사를 하고 있어 문을 닫아놓고 있었다. 금년 11월말까지 공사를 한다고 써붙여 놓았다.

 

남산타워에서 걸어서 국립극장 있는 곳까지 가서 다시 남산공원분수대 옆 주차장까지 갔다. 중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차있는 곳까지 가려면 비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우산도 없고 택시도 없는 곳이다. 중간에 2킬리미터 정도를 완전히 비를 맞고 걸었다.

 

모처럼 비를 맞았다. 좋은 추억거리가 하나 생긴 것이다. 서쪽에는 해가 벌겋게 남아있는데 남산에는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비를 맞으면 남산 순환도로를 걸은 오늘은 오래 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살면서 자꾸 이런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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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캔에 들은 막걸리

 

 

 

다시 조용한 시간으로 돌아왔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출근하면서부터 바쁜 시간에 수많은 전화통화, 서류검토, 사람들과의 대화, 상담 등등. 그래서 가끔 중요한 일들을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퇴근 후에 동네 테니스코트에 갔다. 동네 테니스회 회원으로 가입한 지 벌써 7년째다. 라켓을 잡고 테니스를 친지는 꽤나 오래되었지만 코트에 나갈 때마다 잘 치는 사람들을 보면 운동신경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정도 치는 것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게임을 해보면 대번 실력이 나타난다. 잘 치는 사람들은 나와 게임을 잘 해주지 않는다. 그 사람들이 나와 게임을 하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수은등 아래서 공을 치고 있노라면 마음은 행복하다. 우리 코트에는 주변에 나무가 많이 우거져 있다. 게임을 하다 진 사람들이 생맥주와 프라이드 치킨을 2만원어치 사왔다. 운동 후에 마시는 생맥주는 시원하고 맛있다.

 

이마트에 갔다. 10시가 넘었는데 사람들이 많다. 수많은 물건들을 쌓아놓고 있다. 캔에 들어있는 막걸리가 있었다. 6캔을 샀다. 이젠 막걸리도 맥주캔처럼 작은 캔에 넣어 나온다. 나는 막걸리를 참 좋아한다. 가끔 김치와 함께 먹으면 정말 그 맛은 일품이다. 양주나 소주보다 막걸리가 나에게는 더 맞는다. 내 고향이 포천인데 고향 막걸리 맛이 아주 좋아서 그런지 모르겠다.

 

동네 부근에 작은 1톤 트럭을 세워놓고 전복과 산낙지를 파는 사람이 있었다. 매주 월요일 밤에 그곳에서 장사를 한다고 한다. 전복 3마리에 만원이다. 산낙지는 다 팔렸다고 한다. 장사가 잘 돼서 기분이 좋은 표정이었다.

 

전복을 만원어치 시켜 내가 가지고 간 캔막걸리와 함께 길에서 먹었다. 상일동 다운 풍경이다. 아주 정성껏 전복을 요리해 준다. 요리래야 물에대 씻어 썰어주고 초장을 주는 것이었지만. 살아있는 전복을 바로 썰어 먹으니 맛이 좋았다. 호텔 일식당에서 주는 전복보다 훨씬 맛이 좋았다. 정겨웠다. 그런 아기자기한 마음들이.

 

밤이 깊었다. 아름다운 사연들을 뒤로 하고 별이 빛나고 있다. 집앞 정원에 핀 빨간 장미는 200송이쯤 된다. 소설책 '흉터와 무늬'를 손에 펴본다. 최영미 씨가 쓴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1994년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을 냈던 시인이다. 맨 첫머리를 '신이여, 이 글을 썼던 손을 용서하소서'라는 글로 장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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