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부활 (4)>

우리는 살면서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금전적 피해를 주거나 정신적 고통을 주게 된다.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함으로써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준다. 특히 네플류도프처럼 진정 책임질 확고한 의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믿음을 주는 것도 큰 죄다. 상대방은 그 말을 믿고 모든 마음을 다 주었는데,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저 건성이었고 아무런 책임의식도 없는 경우다.

남에게 믿음을 주고, 그에 따른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커다란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주는지 깨달아야 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와 같은 방법으로 상처를 주고, 그로 인해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졌을까 하는 점에 대한 깊은 반성과 회개를 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영혼의 부활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런 저런 피해를 입게 된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고통과 피해를 준 사람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더욱 파멸시킬 뿐이다. 결국 용서하는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그래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신의 영혼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분명한 어조로 정언적(定言的) 명령을 하고 있다. ‘잘못한 자를 용서하라’‘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고린도후서 2-7)’‘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다(고린도후서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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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부활 (3)>

그러나 영혼의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면 전혀 다르다. 톨스토이가 쓴 소설, '부활(復活)'에서는 주인공 네플류도프의 영혼이 부활하는 장면이 하이라이트다. 우연히 어느 살인사건의 배심원으로 나가게 된 네플류도프 공작은 법정에서 피고인의 신분으로 서 있는 카추샤를 보게 된다.

카추샤는 사람을 살해하고 물건을 훔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카추샤가 왜 그렇게 타락했는가? 네플류도프는 자신이 청년 시절에 잠시 만나 사랑을 했던 카추샤가 그토록 타락하게 된 것은, 자신이 일시 사랑에 빠졌다가 무책임하게 떠나버려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음을 깊이 깨닫게 된다. 네플류도프는 심한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속해 있는 귀족사회에서의 교만하고 안이한 생활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된다. 네플류도프는 카추샤의 형을 감해주기 위해 계속해서 감옥에 드나들면서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있는 수감자들을 발견하면서 현실사회의 불합리성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마침내 네플류도프는 귀족의 신분을 버리고 창녀인 카추샤를 따라 힘든 시베리야 유형길에 오른다. 네플류도프는 시베리아의 춥고 황량한 벌판에서 영혼의 부활을 맛보게 된다. 네플류도프는 영국인이 기념으로 준 성경을 읽으면서 죄없는 사람은 없고, 따라서 벌을 주거나 바르게 가르칠 수 있는 사람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가 끝없이 용서할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네플류도프는 성경을 읽는 순간 전혀 다른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네플류도프의 영혼은 자신의 육신과 세상의 모든 부귀영활를 버림으로써, 그리고 자신의 죄를 진정 회개함으로써 아무 것도 없는 시베리아 벌판에서 고귀한 영혼을 되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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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부활 (1)>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요한복음 21-14). 장사한 지 사흘만인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셨다(마가복음 16-9).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부활의 장면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톨스토이는 인간에 있어서‘영혼의 부활’로 재구성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죄를 짓고 영혼이 병들어간다. 육체는 건강한 상태에 있으면서도 정신이 타락하고, 그에 따라 영혼까지 좀이 먹어간다. 시간이 가면서 증세는 급격하게 악화되어 마침내 영혼은 사망하고 만다.

육신은 살아서 움직이고 있어도 영혼은 이미 소멸된 상태다. 그때부터는 병든 정신이 육신을 끌고 다니며 온갖 죄를 저지르게 된다. 이런 상황의 인간은 죄인일 뿐 아니라, 이미 악마의 수준에까지 이른 사람도 있다. 악마처럼 변한 사람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수십명을 살해하는 연쇄살인극을 저지르기도 한다.

동기를 설명할 수 없는 무차별적 범죄뿐만 아니라, 평생 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도 많다. 평생 사기를 치는 사람, 평생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 평생 주변 사람들을 귀찮게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따지고 보면, 영혼이 떠나간 상태에서 방황하는 군상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스스로 도덕적으로 깨우침으로써 정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도소에서 교화노력을 아무리 기울여도 바른 사람으로 돌아가는 경우란 그렇게 많지 않다. 자칫 더 비뚤어지거나 심한 콤플렉스가 가중되어 고독한 범죄자로 전락해 더 잔인하거나 지능적인 범죄자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재범과 상습범의 문제는 형사정책적으로 심각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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