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95)

 

강교수는 무서웠다. 지금까지 사우나에서 많은 문신을 보았지만, 이렇게 크게 무시무시하게 악마의 문신을 한 것은 처음 보았다. 뿐만 아니라, 사기꾼은 배꼽 바로 아래에 작은 글씨로 선미경이라고 써놓았다. 그것이 확실한 증거였다. 그러면서 미경이 배에도 내 이름이 있어. 확인해 봐. 이 등신아!” 정말 충격이었다.

강교수는 그런데 미경의 배에 어떤 글자가 있는 것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는데 이상했다. ‘도대체 내가 귀신에 홀린 것일까? 도대체 미경이란 여자는 어떤 여자일까? 이 남자와 짜고 내게서 돈을 뜯어내려는 것이었나?“

강교수는 어쩔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성관계 횟수를 거짓말로 줄여서 계산을 해보니까 500만원이라고 하면서 사기꾼에게 500만원을 주겠다고 다시 각서를 썼다. ”본인은 귀하에게 선미경과 성관계를 한 데 대해 위자료로 500만원을 일주일 이내에 지급할 것을 약속합니다.“

사기꾼은 강교수에게 엄하게 타일렀다. ”앞으로는 절대로 부인 이외의 다른 여자를 만나지 말아요. 교수가 그러면 안 돼요. 교수는 사회에서 지도층 인사이기 때문에 일거수일투족을 모범적으로 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비싼 등록금 내고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겠어요? 학생들은 교수를 하나님처럼 받들고 믿고 배우고 있는 것 아니예요. 한번 더 나쁜 짓을 하면, 내가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차원에서 당신을 매장시킬 거예요. 알았지요?“

사기꾼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적어도 군대에서 소대장 정도는 하지 않았나 싶었다. 강교수는 죽고 싶었다. ’내가 어쩌다 그 수준 낮은 미용실 원장과 연애를 하다가 이렇게 개망신을 당하고, 돈을 뺏긴단 말인가? 정말 사람 한번 잘못 본 죄로 이렇게 되었네. 쯧쯧...‘

사기꾼과 헤어지고 나서 강교수는 그 길로 미경을 만나러 갔다. 미경의 말을 들어보니 그 남자는 철저한 사기꾼이었고, 날강도였다. 그리고 미경의 배는 아주 깨끗했다. 나이가 50인데도 처녀 뱃살 같았다.

강교수는 이 일을 겪고 나서 오히려 미경에게 더 깊은 정이 갔다. 물론 500만원은 미경의 돈으로 강교수가 주고 끝을 냈다. 사기꾼은 500만원의 더러운 돈을 뜯어낸 다음에는 연락이 없었다. 아마 또 다른 사건으로 감방에 갔을 것 같다는 것이 미경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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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94)

 

강교수는 놀랐다. 지금까지 미경의 태도로 보아서 이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 남자는 미경과 연애를 하던 유부남이었다. 천하에 둘도 없는 사기꾼이었다.

 

처음에는 아주 돈이 많은 사업가인 것처럼 속였다. 명품 가방도 사주고, 다이아반지도 사주었다. 물론 나중에 알고 보니 가방도 다이아도 모두 가짜였지만, 그래도 처음에는 미경에게 돈을 펑펑 썼다. 그렇게 믿게 한 다음, 미경에게 중국 사업에 투자하라고 해서, 5천만원을 빌려갔다.

 

그걸 가지고 흥청망청 하다가 끝내 구속되어 징역을 1년 살고 출소한 것이었다. 출소한 다음 미경에게는 염치가 있어 나타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소문을 들어보니, 미경이 대학 교수와 연애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기꾼은 강교수를 찾아가 공갈을 쳐서 돈을 뜯어내려고 한 것이었다.

 

강교수는 이런 것으로 문제가 되면 학교에서 징계를 받을 수도 있으므로, 일단 사기꾼이 요구하는대로 각서를 써주었다. ‘본인은 선미경을 만나 연애를 하였는데, 앞으로는 일체 만나지 않겠습니다.

 

만일 이 약속을 위반하면 민사형사상의 책임을 지겠습니다.’ 사기꾼은 각서를 받은 다음, 앞으로 안 만나는 것은 당연하고, 지금까지 남의 애인을 데리고 놀았으니, 손해배상을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강교수에게 그동안 미경과 성관계한 횟수를 물었다. 1회당 싸게 계산해서 10만원씩 내라는 것이었다.

 

강교수는 기가 막혔다. “도대체 당신이 무슨 권리로 나에게 이렇게 공갈을 치느냐?” “그리고 우리가 사랑했던 것인데, 왜 관계한 것에 대해 돈계산을 당신에게 해야 하느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사기꾼은 배에 크게 새긴 문신을 보여주면서, “그래 내 말이 우습게 들리는 모양인데, 돈을 주기 아까우면, 학교에서 만나자. 총장 앞에서 누가 옳은지 판결을 받으면 되니까. 나는 감방에서 있으면서 법에 대해 많이 공부했어. 왠만한 변호사보다 내가 법을 더 잘 알아. 남의 애인하고 공짜로 했으면, 당연히 돈을 물어내야지. 대학 교수가 그런 법도 모르면서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칠까? 교수 그만 두고 제비족을 하면 될 텐데.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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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93)

 

미경은 강교수에게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좋지 않은 이야기는 모두 빼고, 그냥 평범한 이야기, 열심히 살아온 이야기, 현재 최고경영자과정 다니면서 느끼는 보람 같은 이야기만 했다. 이혼했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강교수를 존경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강교수는 특별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미경의 말을 조용히 들어주었다. 그리고 술이 너무 과한 것 같으니, 그만 집에 가라고 했다. 그리고 대리기사를 불렀다.

 

강교수는 자상하게 대리기사가 운전하는 미경의 차에 같이 타고 미경의 집까지 안전하게 모셔다주었다. 미경이 차 안에서 술 때문에 강교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도 강교수는 가만히 받아주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강교수는 미경에게 가끔 전화를 해서 시간이 되면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 어떤 때는 휴일에 강교수 차로 드라이브도 나갔다. 강교수의 매너는 너무 깨끗했다.

 

미경은 이처럼 지적인 남자는 처음 만나는 것이었으므로 곧 자신의 마음을 주고, 몸을 주었다. 강교수가 미경과 가까워진 이유는 미경에게 매우 독특한 매력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미경과 대화를 해보면, 그녀의 솔직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미경은 지금까지 남자를 전혀 모르고 살아온 여자같이 강교수에게 느껴졌다. 강교수는 지금까지 살면서 많은 여자들과 연애를 해보았지만, 미경처럼 속궁합이 잘 맞는 여자도 드물었다. 그래서 강교수는 더욱 많은 시간을 미경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남자가 강교수를 찾아왔다.

 

당신은 교수로서 어떻게 남의 애인을 빼앗아 가로챘는가? 가만 두지 않겠다. 지금 당장 각서를 써라.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는 각서를. 그렇지 않으면 학교를 찾아가서 개망신을 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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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92)

 

미경은 자신은 고졸학력인데, 어떻게 오빠와 같은 좋은 대학을 다니고 더군다나 나중에 판사가 될 사람인데, 어떻게 나와 결혼할 수 있느냐고 수십번을 물었다. 그랬더니 선우는 늘 똑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남자와 여자는 학벌이 중요한 게 아냐. 사랑이 중요한 거야.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마. 그리고 내가 고시 붙으면 너를 미국에 유학보낼게.’

 

미경은 선우의 말을 듣고 정말 잘 주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선우는 성욕이 매우 강한 남자였다.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지 온몸은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미경을 원했다. 미경은 미용실 일 때문에 무척 힘들고 피곤했지만, 선우가 원하면 죽을 힘을 다해서 그를 위해 몸을 바쳤다.

 

오빠. 그런데, 자꾸 이런 데 힘을 쓰면, 공부를 하는데 지장이 있잖아?”

아냐 그렇지 않아. 남자는 이것을 제대로 못하면 몸 콘디션이 좋지 않아 공부가 되지 않는 거야. 고시 붙은 사람들, 출세한 사람들은 모두 여자를 좋아하고 섹스를 좋아한다고 책에도 쓰여있어.”

 

미경은 선우가 고시준비생이므로 어떤 대학교 책에서 보고 그런 것으로 믿고 아무 불평 없이 계속해서 선우가 하자는대로 따랐다. 선우는 미경이 생리중인데도 그짓을 했다. 미경은 선우의 집안이 어렵다고 하니까, 선우의 자취방에 가서 빨래도 해주고, 생활비도 조금씩 대주었다.

 

선우를 경제적으로 도우려고 하니까 미경은 휴일도 없이 다른 사람보다 두배 일을 더 열심히 했다. 몸도 약한 데 그렇게 과로를 하니 자주 코피가 나왔다.

 

그렇게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몇 년 있으면 판사 부인이 되어 고생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미경에게 어느 날 청천벼락이 떨어졌다. 선우와 연락이 되지 않아, 선우의 자취방 주인을 찾아갔다.

 

아 글쎄, X이 알고 보니 사기꾼이었어. 가짜대학생이었어. 전과자라고 하는데 대학생이라고 속이면서 사기나 친 거야. 내 방세도 떼어먹고 도망간 거야. 경찰관이 잡으러 왔는데, 그걸 낌새채고 밤에 모든 짐을 싸가지고 사라졌어. 학생도 무슨 피해를 봤으면 경찰에 신고해. 원 세상에 나쁜 사기꾼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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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91)

 

강교수와 미경은 분위기 있는 와인바로 가서 와인을 마셨다. 강교수는 술이 센 모양이라 아무리 술을 마셔도 전혀 취하지 않는 것같았다. 미경은 자신이 대학교수와 단둘이서 술을 마시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미경의 입장에서는 대학교수는 그야말로 모든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는 신적 존재였다. 모든 행동도 모범적이고, 아무런 흠이 없는 존재였다. 심지어 잠자리에서도 아주 상대에 대한 모든 배려를 하면서, 분위기 있게 필요한 범위에서만 하고 뒷처리를 다하는 남자로 생각이 되었다.

 

미경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했기 때문에 대학에 대해 그야말로 무조건적인 동경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학생도 아닌 교수님이라니, 그런 하늘 같은 존재인 교수님과 자신이 단둘이 사적으로 만나서 와인을 마시는 영광을 얻었다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다른 여자들과 달리 미경이 이렇게 생각하는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미경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부모님 생각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곧 바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미용학원에 다닌 다음 미용실에 취직했다. 미용실의 일은 힘들었다. 특히 처음에 보조로서 일을 배우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랬다. 미용실원장으로부터 조금만 잘못했어도 눈물이 날 정도로 야단을 맞았다. 손님 머리를 잘못 잘라서 쫓겨날 뻔했던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친구들은 대학에 들어가 멋을 부리고 미팅을 하고 있는데, 자신은 미용실 보조로서 일하고 있으니 창피하기도 했다. 가끔 아는 친구들이 미경이 일하는 미용실에 손님으로 들어오면, 미경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서 그 친구가 갈 때까지 자리를 피하곤 했다.

 

원장은 이런 미경의 태도가 못마땅했지만, 그때에는 이미 미경이 필요한 입장이어서 그런 것을 문제삼아 내보낼 수도 없었다. 특히 미경의 학교 동창이 미용실에 손님으로 왔는데, 같이 온 남자 친구가 대학생으로서 두꺼운 대학교 교재를 몇 권 들고 있는 것을 보면 속이 상해 미칠 정도였다.

 

그렇게 지내고 있는데, 미경은 말하자면 자신이 대학교 3학년 나이가 되었을 때 우연히 남자 대학생을 만나게 되었다. 선우라는 남자 아이는 당시 지역에서 제일 좋다고 하는 대학교 4학년 졸업반이었다. 그는 법대를 다니고 있었다.

 

미경은 그 남자와 6개월 동안 사귀었다. 그러면서 첫경험도 했다. 선우는 미경을 아주 사랑했다. 선우는 고시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미경에게 고시를 붙으면 결혼을 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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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90)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대학의 가을은 풍성하면서도 심오했다. 벤치에 앉아 있어도 깊은 사색에 빠져야했다. 교정에서의 삶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도서관 장서에 꽃혀있는 책들의 무게에 비례해서 삶은 바다 속으로, 심연의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야 했다.

 

미경은 최고경영자과정수업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가다가 오늘 같은 날에는 그냥 집으로 들어가기가 너무 서운했다. 그래서 혼자 벤치에 앉아 빨간 단풍잎과 진누런 은행잎을 보고 있었다. 벤치 아래에도 떨어진 낙엽을 발로 비볐다. 바스락소리가 난다.

 

그건 낙엽이 보내는 작은 속삭임이었다. ‘너는 아직 살아있는 거야. 무언가에 붙어있잖아?’ 이런 낙엽의 음성을 들었다. 하지만 미경에게는 매달려야 할그 무엇이 없었다. 낙엽 때문에 순간적으로 진한 고독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렇다고 외로워하지 마! 어차피 인생은 혼자인 거야.’ 다시 낙엽의 무리가 외쳤다. 미경은 그런 소리를 애써 외면하려했다. 더 진한 외로움, 더 가득한 울분이 안에서 치밀어올랐다.

 

낙엽은 학교 앞으로 걸어가서, 호프집으로 갔다. 젊은 학생들로 호프집은 시끄러웠다. 음악도 빠르고, 무어라고 중얼거리는데, 가수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다.

 

인생 아무 것도 아냐. 오늘이 중요해. 우리에게 내일은 없어. 우리가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해봐. 그리고 그걸 하면 끝나는 거야. 왜 그렇게 심각한 거지. 이 바보야!’

 

힙합과 랩에서 가수는 미경을 향해 이렇게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미경은 중얼거렸다. ‘여기가 한국인 거지? LA가 아닌 거야?’

 

미경은 혼자 맥주를 마셨다. 갑자기 취하고 싶었다. 그런데 맥주로 취하려면 배가 나올 것이 걱정되었다. 소주도 시켜 맥주와 섞었다. 안주는 노가리와 땅콩이었다. 미경은 아직 젊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인생은 상대적인 거라 어린 여대생들 가운데 혼자 앉아 있으니, 미경의 인생은 끝난 것이 아닌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젊은이들의 음성은 밝고 미소도 예뻤다. 미용실에 와서 자녀 자랑이나 하고 있는 중년의 아주머니들과는 전혀 다르다. 미경은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가을이기 때문이리라.

 

한 시간쯤 혼자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있는데, 갑자기 강교수가 호프집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미경은 정신이 확 들었다. 강교수는 미경을 보지 못한 채 호프집 가장 안쪽에 있는 칸막이로 들어갔다. 강교수는 남학생 2명과 여학생 1명과 일행이었다. 그 여학생은 호리호리한 키에 무척 지적인 얼굴이었다. 미경은 강교수를 보자 당황했다.

 

지금 밖으로 나가야 하나? 아니면 나중에 인사라도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했지만, 술에 취해 재빨리 옳은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술을 더 마셨다. 술을 마시면 변별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술에 취하면 많은 사건과 사고가 벌어지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음주운전이다. 평소에는 다른 사람들이 음주운전으로 재판을 받고 징역까지 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절대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지 않겠다고 머릿속으로 정언명령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술이 들어가면, ‘잠깐 운전하는데, 무슨 상관이 있을까? 지금 이 시간 내가 가는 곳까지 단속반이 없을 거야.’ 이렇게 생각한다. 자기콘트롤이 되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미경은 전에 미용실 손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 여자 손님은 어느 날 술에 취해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탈 때는 정신이 들어서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운전하시는 택시를 확인하고 탄 것 같았다.

 

그런데 한참 가다가 잠이 깨어서, “아저씨, 지금 제가 어디 가는 거지요?”라고 큰소리로 물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 기사분은 깜짝 놀라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깜짝이야. 아가씨는 언제 뒤에 탄 거요?” 그 아가씨에 그 할아버지 이야기다.

 

그래서 때로는 남자와 여자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같이 모텔에 가고, 그곳에서 서로가 무엇을 했는지도 불분명한데, 나중에 술에서 깨어난 여자가 분명히 네가 술에 취한 나를 건드렸고 했을 거야!’라고 주장하면, 남자는 억울하지만 준강간죄로 징역을 가기도 한다. 서로 술에 취했기 때문이다. 술에 취한 여자로부터는 성교에 대한 동의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경이 혼자 술에 취해 테이블에서 고개를 숙이고 졸고 있는데, 갑자기 강교수가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강교수는 대학생 일행들과 간단히 이야기를 한 다음 술값을 내주고 집에 가려고 하다가 혼자 있는 미경을 발견했다.

 

그래서 조용히 그 앞에 앉아 미경이 술에 깨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미경이 잠에서 깨자 강교수는 미경을 데리고 부근에 있는 다른 레스토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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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혼한 다음에도 대체로 그런 스타일의 남자를 만났다. 하지만 전생에 무슨 잘못을 많이 했는지, 만나는 남자마다 시간이 지나면 실망스럽고 미경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자해를 했다.

 

그리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때려부셨다. 그런 남자들은 법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지 성질대로 살고, 잘못되면 감방에 가도 좋다는 배짱이었다. 미경은 쉽게 그런 남자들을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었다. 미용실을 크게 하고 있는 공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한번 이혼한 다음에는 더욱 그랬다. 남자 때문에 사회적으로 남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대개 몇 달 사귀다 헤어졌다. 그리고 한 동안은 굳게 결심을 하고 죽을 때까지 남자 친구를 두지 않기로 했다. 몇 번이고 다짐했다. ‘앞으로 한번 더 애인을 두면 내 성을 갈겠다.’

 

미경은 언젠가 사주역학을 잘 보는 사람에게 찾아갔다. 가까운 여자 친구와 둘이서 사주관상을 봐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용하다는 역학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전생에 남의 첩으로 살았어. 그때 자네 때문에 본처가 제명에 못죽었어. 그래서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거야. 지금까지 만났던 남자들이 다 놈팽이고, 건달이었을 거야. 그렇지? 뻔해. 내 눈은 못 속여.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놈들만 나타날 거야. 조심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제명에 못 죽어.”

 

미경은 놀랐다. 지금까지 여러 사람을 만나서 자신의 사주와 관상, 과거와 미래에 대해 물어보았고, 들어보았지만, 지금처럼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정확하게 진단하고 맞추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남자를 만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냥 평생을 혼자 살아야 해요?”

 

역학자는 잠시 눈을 감고 무엇을 따져보는 듯 했다. 그러더니 미경의 일행을 밖에 나가 있으라고 했다. 30분 정도 역학자는 방안에서 혼자서 큰소리로 기도를 하는 것같았다. 딸랑거리는 소리도 나고, 무언가 부르짖는 소리도 들렸다. 그런 다음 다시 미경을 들어오라고 했다.

 

금년 가을에 괜찮은 사람이 나타날 수 있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 자네하고 잘 맞아. 그 사람을 놓치면 안 돼. 잘 잡아. 그 사람은 키가 작을 거야.”

 

미경은 이 말이 뇌리속에 박혔다. ‘금년 가을. 키 작은 남자!’ 무언가 운명의 기적소리가 들리고, 백마 탄 왕자가 몸을 단정하게 한 공주를 찾아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것을 감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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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밖에서 싸움을 하면 대부분 말리는 사람이 있게 되고, 더 싸움이 계속되면 누군가 경찰에 112신고를 하게 된다. 그래서 싸움은 끝이 나고, 더 이상 피해는 진행되지 않는다.

 

그런데 부부싸움은 다르다. 말리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만일 한쪽이 수그러들지 않고 죽기 살기로 대들면 싸움은 계속되고, 자칫 잘못하면 대형사고가 날 위험이 있다.

 

가끔 신문을 보면, 부부싸움을 하다가 남편이 아내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홧김에 집에 불을 지르기도 한다. 아내를 상습적으로 폭행하는 남편이 아내를 실컷 두들겨팬 다음 술을 마시고 잠을 자다가 아내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도 있다. 그래서 부부싸움은 위험한 것이다.

 

결국 미경은 결혼생활 10년 만에 마침내 이혼을 하고 말았다. 그것도 건달이 쉽게 협의이혼을 해주지 않는 바람에 변호사를 선임해서 10개월만에 겨우 이혼판결을 받았다. 이혼하면서 그때까지 번 돈 절반도 빼앗기고 말았다.

 

미경 입장에서는 너무 억울했다. 그리고 도대체 법도 법이 아니었다.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남자를 잘못 만나서 10년간 고생을 했는데, 무엇 때문에 재산을 분할 당하고, 이혼녀로 낙인이 찍힌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혼소송을 하면서 느낀 것은 판사들은 남의 아픈 마음을 전혀 헤아릴 의사가 없는 것같았다. 매우 기계적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여자가 고생해서 번 돈과 남자가 번 돈을 아주 똑 같은 잣대로 생각한다는 사실이었다.

 

미경은 이혼을 한 다음, 한 동안은 남자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미용실에 단골로 오는 남자손님들도 이상하게 싫었다. 마지못해 남자 손님의 미용을 해주어도 속으로는 남자라는 동물에 대해 본능적으로 거부반응이 일었다.

 

그러다가 또 1년 정도 지나자 미경은 옛날 생각은 다 잊어버리고 남자를 만났다. 이상하게 남자답게 거친 스타일에 쉽게 빠졌다. 미경이 넘어가는 남자들은 대개 이랬다. 별로 돈도 없고, 사회적 능력은 부족해 보이는데, 겉으로 매우 의리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남자에게 호감이 갔다.

 

그리고 여자를 위해 목숨이라도 바칠 것 같은 태도를 보이는 남자를 좋아했다. 머릿속은 비어 있는데, 술을 마시면 눈물을 흘릴줄 아는 남자, 여자가 속상해 하면 끝까지 옆에 있어주고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걱정해 주는 남자, 그리고 운동을 좋아해서 근육이 튼튼한 남자, 골프에 미친 남자를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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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87)

 

강교수는 어렸을 때,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인생의 목표가 오직 돈과 출세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거기에 여자도 추가되었다. ‘돈과 출세, 여자이 세가지를 누릴 수 있는데까지 누려야겠다는 야망을 가졌다. 그러면 인생에서 성공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강교수는 자신이 좋지 못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았기 때문에 당연히 그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전임강사에서 교수가 된 다음부터는 학교에서 강의를 열심히 하거나 연구를 더 한다기 보다는 외부로 나아가 일반 기업체의 자문역할이나, 사회적 활동을 많이 했다.

 

그리고 방송에서 적극적으로 나가 얼굴을 많이 알렸다. 그런 까닭에 오직 교수로써 외골길을 걷는 다른 교수들에 비해서 유명해졌고, 능력이 있는 것으로 과대포장되었으며, 경제적 수입도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여자들이 따르게 되었고,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괜찮은 여자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강교수는 자신이 근무하는 대학교에서 개설한 최고경영자과정에서 주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과정은 6개월 코스인데, 지역 사회에서 돈이 있고, 괜찮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남자와 여자가 섞여있는데, 여자들 역시 비즈니스를 하거나 사회적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최고경영자과정은 학문적으로 연구를 하거나 공부를 한다기 보다는 사교모임 비슷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그 과정에 들어온 선미경사장이 있었다. 당시 강교수가 45살이었고, 선사장은 50살이었다. 선사장은 미용실을 경영하는 원장이었다.

 

나이는 5살 위 연상이었지만, 선사장은 미용사로서 성공한 사람이었다. 외모나 몸매는 거의 연예인 수준이었다. 외제차를 타고 다니면서, 골프도 잘 쳤다. 이혼하고 혼자 산다는 소문도 있었다. 강교수가 먼저 선사장에게 집적거렸다. 선사장은 가방끈이 짦아서 그랬는지, 대학 교수라고 하니까 무조건 존경하고 좋아했다.

 

그때까지 선사장은 이혼한 전남편도 건달이었고, 그 후 만난 몇 명의 남자들도 모두 건달들이었던 모양이었다. 여자가 미용사로서 돈을 벌고 있으니까, 처음 남편도 부인에게 기대는 마음 때문에 그랬는지, 골프나 치러다니고, 하는 사업마다 손해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잘 나가는 부인을 두고 있는 처지에서 느는 것은 폭력과 의처증이었다.

 

전 남편은 술이나 마시고, 와이프의 뒷조사나 하러 다녔다. 의처증은 참 무서운 질병이다. 남편은 심한 콤플렉스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미경을 의심했다. 새 옷을 사가지고 들어오면, 어떤 놈이 사준 것이냐고 밤새도록 들볶았다. 미경이 자신의 신용카드로 긁은 것이라고 영수증을 보여줘도 소용없었다.

 

그거야 당연하지, X이 지 카드로 사줬겠어? 당연히 당신 카드로 긁게하고, 현금으로 당신 주었겠지.’ 그러면서 핸드폰의 통화기록을 확인하였다. ‘분명히 여러 차례 통화를 했겠지? 그리고 카톡을 했을 거야. 그런데 내가 볼까봐 집에 들어오기 전에 다 지웠을 거야? 누군가 말해! X이 돈이 많은 X이야?’

 

이러면서 수사관처럼 밤새도록 신문을 하면, 미경은 그 다음 날 피곤해서 일도 제대로 못했다. 그리고 맞기도 많이 맞았다. 의처증이 심해지면,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프로세스다.

 

그런데 부부 사이의 폭력은 폐쇄된 공간에서 시간의 제한 없이 이루어지는 무한게임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보통 싸움은 밖에서 이루어지고,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싸움이 벌어지면, 자연히 싸움을 구경하는 구경꾼이 모이게 된다. 남들이 싸우는 것을 보는 것처럼 재미 있는 일은 없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묘한 심리를 가지고 있다. 싸움을 구경하는 것, 불구경을 하는 것, 교통사고가 나서 부서진 자동차를 보는 것, 다른 사람이 사업하다 망했다는 소식을 듣는 것, 정치인이 잘난 척하다가 감방에 들어가는 장면을 보는 것을 즐겨한다.

 

사회 저명인사가 위선을 떨다가 가면이 벗거지고 추락하는 것을 보는 것, 바람둥이가 암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아주 좋아하고, 쾌감을 느끼고 즐긴다. 자신의 작은 행복보다 더 큰 위안을 주고, 기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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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86)

강교수는, ‘사람들의 수준은 이렇게 현저한 차이가 나는구나! 결국 끼리끼리 사는 것이 편한데, 수준 차이가 나는 사람과 맞추어 산다는 것은 물과 기름이 섞이는 것처럼 불가능하구나!’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에 반해 민희는, ‘사람이 배워봤자, 거기서 거기지, 무슨 차이가 난다고 저렇게 교만하고 건방질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런 강교수의 태도에 점점 정이 떨어져나갔다.

강교수는 이처럼 이지적이고, 합리적인 성격이었지만, 반면에 여자의 심리를 파악하는 능력은 외계인의 수준이었다. 그냥 자신이 남자로서 열심히 일을 하고, 학교에서 인정을 받으면, 자연히 부인도 다른 사람들처럼 강교수를 남자로서 인정해줄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강교수가 학교에서 자리를 잡고, 더 이상 처갓집의 경제적 도움이 필요하지 않게 되자, 강교수는 처갓집에서 그동안 도와준 은혜도 모두 망각했고, 뻔뻔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장인이 돈을 번 과정이 정당치 않다고 비난하거나, 죽을 때까지 돈만 벌다가 죽으면 무엇하느냐는 어려운 종교적 질문도 서슴치 않았다.

그러면서 강교수는 부인과 각방을 쓰면서, 가급적 늦게 귀가했다. 주로 학교 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밖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처음 결혼할 때에는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아이를 갖자고 약속했으나, 그 후에는 민희와 같이 공부에 친하지 않은 여자와 아이를 낳으면, ‘백치 아다다’의 소설 속 주인공이 호적에 올라갈 것을 염려해서 의도적으로 피임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민희의 옛 남자친구 때문에 며칠 동안 전쟁을 치른 다음, 뜻한 바 있어 혼자 비뇨기과에 가서 정관수술을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런 사실도 민희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정관수술을 한 후에도 강교수는 민희와 잠자리를 할 때 가임기간인지 확인하는 제스처를 보임으로써 수술한 사실에 대해 조금이라도 눈치를 채지 못하게 하는 완벽함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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