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25)

 

나는 비록 감방에 갔다 왔지만, 지금은 정말 바르게 살고 있어. 하기야 내가 감방에 간 것도 사실은 아무런 죄도 없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거였어. 나를 고소한 사람이 검사와 짜고 나를 집어넣은 거였어. 하지만 나는 그런 검사나 고소인을 원망하지 않아. 모든 게 내 탓이고, 내 잘못이었다고 생각해. 객관적으로 오해 살 일을 했던 건 결국 나였으니까. 이제는 정의의 사자로 변했어. 낵 볼 때 경우가 나쁘거나 사악한 인간에 대해서는 절대로 참지 않아. 알았짐?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빨리 들어. 명훈네로부터 돈은 내가 받아줄 게. 1억 원은 받아줄 거야. 그 이상 더 욕심 부리면 큰일 나. 지금 TV를 봐. 돈 많은 재벌들도 더 욕심 부리다 감방 가잖아. 평새 부귀영화를 누리던 사람들이 늙어서 경로당 가서 장기나 두고 있으면 편하게 여생을 보낼텐데 장관이나 비서실장인가 뭔가 하다가 또 감방 가 있잖아. 다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을 부리다가 패가망신하는 거야. 그러다가 감방 가서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어. 얼마나 어리석을까? 그러니까 은영씨는 그러지 마. 내가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이라 아끼고 싶어서 이런 충고를 하는 거야. 나와 아무런 관계 없으면 나같이 바쁜 사람이 미쳤다고 이렇게 만나서 시간 낭비하고 듣기 싫은 소리를 하겠어. 입에 쓴 약이 몸에 좋은 거야. 알았지. 3일의 여유를 줄테니까 나에게 연락해 줘.”

 

은영은 정말 기가 막혔다. 감방까지 갔다왔다는 전과자가 무슨 주제에 저렇게 근사한 말을 늘어놓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은영과 명훈 사이의 사랑 문제이고, 배 안에 들어있는 아이의 문제인데, 박기사가 마치 정의로운 검사처럼 공갈을 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은영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웠다. 그리고 박기사가 명훈 아빠의 기사로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했다가는 은영의 과거를 폭로하고, 결국 명훈과의 관계를 파탄시킬 핵폭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은영은 일단 며칠 간 생각한 다음 박기사에게 알려주겠다고 말하고 헤어졌다.

 

한편 명훈 아빠는 계속해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번에는 시청 건축과장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혐의에 대해 추궁을 받았다. 명훈 아빠가 최 과장과 자주 만나고 식사를 한 사실과 명훈 아빠가 객관적으로 허가를 받기 어려운 장례식장 건축허가를 받은 사실에 대해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제보를 한 것이었다.

 

검찰에서 명훈 아빠 회사를 특별수사 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주변 사람들은 이때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추가로 제보를 하는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남이 잘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남이 망하는 것을 은근히 속으로 좋아한다.

 

그래서 아는 사람이 장관이 되거나 국회의원이 되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러나 아는 장관이나 국회의원이 구속되어 구치소로 향하는 뉴스가 나오면, ‘저렇게 잘난 척하더니 잘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명훈 아빠와 건축과장을 둘러싼 많은 의혹에 관한 제보는 받았지만, 막상 검사가 당사자들을 조사해보니 두 사람 모두 완강하게 범죄사실을 부인하고 있었다. 하지만 검사 입장에서는 제보 내용이 너무 구체적이고 확실해서 강한 심증을 형성하게 되었고, 그런 상태에서 물러설 수 없었다.

 

검사는 두 사람의 핸드폰 통화내역과 은행계좌 거래내역, 건축허가 관련 서류 등을 모두 압수하여 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더 나아가서 최 과장이 처리한 건축허가건을 모두 의심을 가지고 들여다 보았다.

 

특히 민원이 많은 장례식장에 대해 왜 건축허가를 내주었는지에 대해 허가과정을 뜯어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서류상 명백하게 드러난 잘못에 대해서는 허위공문서작성죄 등을 걸어서 형사입건해 놓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건축과장이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상당히 많은 뇌물을 받았을 것이라는 혐의를 두고 강도 놓은 수사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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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4)

 

명훈 엄마는 어떤 판단도 할 수 없었다. 명훈이 한 행위에 대한 대가치고는 3천은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도대체 그 여자가 피해를 본 것은 무엇일까? 상식적으로 강간죄란 여자의 정조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에서 처벌하는 것일텐데, 그 여자의 정조를 보호할 가치가 있을까? 그리고 정조를 보호한다고 해도, 명훈이가 하지도 않았다는데, 무슨 정조가 침해된 것일까? 설사 정조가 침해되었다고 해도 돈으로 환산하면 몇십만 원이면 되지 무슨 천만 원 단위로 부른단 말인가? 정숙한 여자 같으면 클럽에 가고, 모텔에 갔다가 남자에게 당할 뻔 했으면 창피해서 말도 꺼내지 않을 텐데, 이건 완전히 사기고 공갈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일단 상대방이 고소를 하면 문제가 커질 것 같아 다시 조바심이 났다. 피해자의 친구라는 여자에게 전화를 계속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문자를 보냈다. ‘5백만 원을 드릴게요. 합의해주세요. 명훈 엄마

 

그리고 너무나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쓰려 수면제를 먹고 잠에 들었다. 고통을 잊기 위해서는 수면제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약사라 약에 대해서는 박사였고, 자기 관리는 철저하게 할 수 있었다.

 

한편 명훈 아빠 운전기사가 명훈 엄마에게 물었다. 지난 번 호텔에서 강남역까지 태워다 준 여자가 바로 은영이라는 사실을 알고 궁금해 하던 중에, 다시 명훈 엄마를 태우고 그 호텔로 가게 되는 일이 있자, 이때다 싶어서 물었다.

 

사모님. 지난 번 호텔에서 제가 강남역까지 모셔다 드린 여자 손님 두 사람 있잖아요? 그 중 한 사람은 제가 옛날에 만난 적이 있는 여자예요. 근데 무슨 일이세요? 사모님이 잘 아는 사람들이예요?”

 

명훈 엄마는 갑자기 귀가 번적 띄었다.

아니. 누구를 알아요? 어떤 여자를 아는 거예요?”

그때 비싼 옷 입은 여자 말이예요.”

그럼 박기사가 한번 그 여자를 만나 볼래요? 한번 만나서 잘 설득시켜봐요. 내가 수고비는 톡톡히 줄테니까.”

연락처는 모르는데요? 아주 오래 전에 만난 사람이라.”

연락처는 내가 알고 있으니까 박기사가 연락해서 만나서 나쁜 생각하지 말고 좋게 해결하자고 부탁해봐요.”

. 사모님. 걱정 마세요. 제 말은 듣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박기사는 은영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자신이 명훈 아빠 기사로 일하고 있다고 하면서 명훈 엄마 부탁으로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은영은 놀랐다. 하지만 그런 제의를 거절할 수 없었다.

 

은영씨. 오랜 만이예요. 잘 지내셨지요? 이야기 들으니까 제가 모시는 사장님 아드님 아이를 가졌다면서요? 축하해요. 부잣집 며느리가 돼서 팔자 고치신 거예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근데 할 말이 뭐예요?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어요. 사모님이 뭐라고 해요?”

그게 아니라, 내가 사모님에게 먼저 말했어요. 은영씨를 내가 잘 아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은영씨는 깨끗이 잊어버리고 아이를 수술해요. 내가 돈을 받아줄테니. 얼마를 원해요? 까놓고 이야기해요. 우리끼리니까. 1억 원 받아줄까요?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무슨 말이예요? 나는 돈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예요. 명훈씨를 사랑하고 있어요. 명훈씨 역시 나를 사랑하고, 우리는 아이 때문에 헤어질 수 없는 거예요.”

그럼 나와 성관계한 거 말하면 모든 것이 끝날텐데. 괜찮아요? 그리고 그때 나와 육체관계하고 사랑하다가 나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에게 간 것도 사과하지 않는 은영씨 태도 용서할 수 없어요. 나는 모든 사실을 폭로하고 나도 그 직장 그만두면 돼요.”

 

아니, 언제 내가 당신과 성관계했어요? 그리고 무슨 사랑을 하고 누가 배신했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해요? 당신 정말 나쁜 사람이고, 무서운 사람이네요. 나를 언제 봤다고 공갈을 쳐요?”

은영씨, 내가 은영씨 이름도 알고, 그때 은영씨 친구인 제인과 같이 연애했던 것 은영씨도 잘 알잖아요? 자꾸 그러면 내가 제인을 만나서 삼자대질을 할게요. 그렇게 딱 잡아뗀다고 될 줄 알아요? 명훈 엄마는 돈이 많아 심부름센터를 시키면 모두 다 찾아낼 수 있어요.”

 

은영은 소름이 끼쳤다. 그때 자신을 강압적으로 처녀성을 빼앗고, 상처를 준 악마였다. 더군다나 제인이라는 경자의 애인으로서 애인의 친구를 겁탈한 X이다.

그때는 어리고 세상 물정을 몰라서 당했고, 당한 다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울고만 있었다. 그런데 그런 악한이 지금 또 악연이 되어 명훈네 기사로 있다니,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게다가 은영이 때문에 박기사가 정자를 찾아내서 공갈 치면 부잣집에 시집가서 잘 살고 있는 정자의 가정이 파탄날 위험성이 있었다. 은영은 정말 법만 없으면 박기사를 죽이고 싶었다. 세상에 이렇게 나쁜 인간이 같은 서울에서 살고 있다니 끔찍했다.

정말 당신은 나쁜 사람이네요. 좋아요. 서로 마음대로 해요. 다 이야기해요. 나도 끝까지 씨울테니까.”

 

은영씨는 나를 잘 몰라서 그래. 그때 은영씨나 제인씨를 만날 때는 나도 대학에 다니고 행복했어. 그런데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님이 사업에 실패하고 자살하셨어. 어머니는 얼마 있다가 정신병원에 들어갔다가 돌아가시고. 나는 혼자서 고생을 하고 살았어. 그러다가 마약조직에 끌려들어가 감방을 갔다 왔어. 나는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어. 지금 겨우 맘잡고 기사로 일하고 있어. 그런데 은영씨 문제를 알게 되었어. 사모님은 은영씨 문제를 해결하면 나에게 천만 원을 준다고 약속했어. 근데 지금 은영씨가 나를 도와주지 않으면 내가 가만 있을 수 없다는 걸 이해해줘. 그리고 내가 객관적으로 볼 때 은영씨가 어린 남자 아이를 갖고 돈을 뜯어내는 건 옳지 않아.“

 

은영은 말없이 듣고 있었다. 박기사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자신이 잘못한 것은 다 빼버리고, 세상 모든 일을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정당화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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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3)

 

한 동안 명훈 엄마는 큰 걱정 없이 편안하게 지내고 있었다. 남편은 사업을 잘 하고 있었다. 명훈 역시 큰 일은 저지르지 않고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명훈 엄마 역시 약국을 경영하면서 돈도 벌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밖에 나가 대우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명훈이 어떤 이상한 여자를 건드려 임신을 시켰다고 해서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 자체는 명훈 엄마에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돈을 주어 해결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아들 가진 입장에서는 여자 아이가 낙태수술을 해서 몸이 망가지든 말든 상관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또 명훈이 사고를 쳤다. 클럽에 놀러갔다가 만난 어떤 유부녀를 모텔에서 강간했다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요새 사회 분위기가 예전과 확 달라져서 잘못했다가는 아들이 징역도 갈 수 있는 위기다. 그래서 이 문제를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할까 하고 고민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른 하늘에서 벼락이 쳐서 길을 가던 사람이 벼락을 맞아 죽는 것처럼, 명훈 아빠 회사가 압수수색을 당하고 검찰의 특별수사를 받게 되었다. 도대체 금년에 무슨 삼재수가 붙은 것인지 몰라도, 이래 저래 죽을 맛이었다.

 

이토록 극심한 절망의 늪에 빠져 있는데, 이번에는 어떤 사람이 명훈 엄마가 운영하는 약국에 와서 약사 아닌 사람이 약을 판매했다는 내용으로 보건소에 신고를 했다. 그 사람은 약을 사러 온 것처럼 가장해서 몰래카메라를 옷에 부착하고 약국에서 약사 아닌 보조자가 단독으로 약을 파는 것을 몰래 사진을 찍고, 비밀녹음을 해서 보건소에 신고를 한 것이었다.

 

보건소에서 조사를 시작하였고, 나중에는 벌금까지 받게 되었다. 약사인 명훈 엄마에 대해서는 약사면허정지처분까지 떨어졌다. 아마 부근에 있는 경쟁관계에 있는 약국에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여 그 부근 약국들에 대해 비약사의 약판매행위를 계속해서 감시하고 증거를 잡아서 고발하는 것같았다.

 

정말 무서운 세상이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병원에서 가지고 온 처방전의 경우에는 절대로 약사 아닌 사람이 조제하지는 않는다. 처방전 없이 사러 온 일반 약의 경우 약사가 바쁘면 비약사인 총무 같은 사람이 간단하게 판매하기도 하는데 이것을 약점 잡아 고발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약점이 있으면 언제 누가 어떤 방법으로 그 약점을 잡아서 고발을 할지 모르는 세상이다. 이제는 모든 것을 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하고, 정해진 규정대로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세상이다. 명훈 엄마는 그 교훈을 알면서도 세상이 정말 무섭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이런 저런 일로 실의에 빠져 입맛도 없는 상태에서 전화가 왔다.

 

명훈 엄마 되시죠? 지난 번 뵈었던 강간사건 피해자 친구입니다. 제 친구가 병원에서 상해진단서를 떼어서 경찰서에 고소를 한다고 해요. 어떻게 좋게 해결할 의사는 없으신 거지요? 제가 중간에서 좋게 해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말씀드리는 거예요. 제 친구는 그 일로 병원에도 다니고 있고, 또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어요. 그런데 경찰에 고소를 하게 되면 혹시 남편이 알게 될까봐 망설이고 있는데 피해가 너무 큰 것 같아요.”

 

친구분은 얼마를 요구하는 거지요?”

친구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데, 제가 볼 때 한 3천 정도는 줘야되지 않을까 싶어요.”

뭐라고요! 3천이라고 했어요? 지금. 3백이 아니라 3천만 원을 달라는 겁니까?”

 

아니 제 친구가 강간을 당해서 가정도 파탄나게 생겼고, 아파서 병원도 다니고 있잖아요? 그리고 요새 강간범이 얼마나 무섭게 처벌되는지 모르세요? 애엄마를 강간해서 정신과 치료까지 받게 만들었는데, 3천이 많다는 말이예요? 그럼 그만 두세요. 내일 고소할 테니까. 친구는 이미 변호사를 선임해서 고소 준비를 다해 놓았어요. 끊을 게요.”

 

상대 여자는 사정 없이, 아주 냉정하게 사무적으로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명훈 엄마는 정신이 빠짝 나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 여자는 다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명훈 엄마는 급히 고등학교 친구로서 법대 교수생활을 하고 있는 여자를 만나자고 했다.

 

아니 세상에 이런 꽃뱀들 봤나! 정말 너무한 것 아니니? 이게 강간이 되는 거야?‘

글세 명훈이 말이 증명이 되면 강간이 아닐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 나야 학교에서 강의만 하니까 실제 수사나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몰라. 하지만 고소를 당하면 골치 아플텐데 어쩌지?”

 

글쎄 명훈이 한 짓이 기껏해 봤자 미수에 그친 것인데 그걸 가지고 얼마나 처벌하겠어? 그 여자들은 완전히 날강도야. 유부녀가 애도 있는데 40이나 돼서 어린 아이들 노는 클럽에 와서 술을 마시고 모텔까지 따라가서 강간 당했다고 돈이나 뜯어내는데 이렇게 억울한 일이 있을 수 있나? 정 안되면 그 여자 남편을 찾아가서 마누라 단속 잘 하라고 말을 해야겠어.”

아무튼 강간죄 미수범도 인정되면 처벌이 무거울 것 같으니 가급적 합의를 하는게 좋지 않을까? 합의를 하지 않으면 전과자 되고, 또 변호사 비용도 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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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2)]

 

심사장은 TV를 끄고 조용히 있었다.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진다. 자꾸 악마가 머릿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악마를 물리치기 위해 테이블에 있는 성경을 펼쳐보았다.

 

심사장은 요새는 바빠서 교회에는 거의 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부인은 꼭 주일에는 교회에 다니고, 비교적 열심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집에는 성경책이 있었다.

 

심사장은 사업이 잘 되고, 인생의 좋은 시절을 보낼 때는 성경을 보지 않았다. 성경을 봐야 늘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였다. 선지자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돌판에 받아왔다는 십계명도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첫 번째부터 네 번째 계명은 하나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우상에게 절하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며,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명훈 아빠는 십계명에 이런 네 가지 사항이 있는 것을 아직까지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

 

다섯 번째 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인데, 심사장은 이미 어렸을 때 부모에게 불효를 많이 했고, 지금은 두 분 다 돌아가셨으니 이 계명도 해당사항이 없어 보였다.

 

여섯째, 살인하지 말라는 자기 성격에 싸움을 하거나 음주운전은 했어도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중한 죄는 지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성경에 왜 살인금지명령이 들어가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덟 번째는 도둑질하지 말라. 아홉 번째는 위증죄를 범하지 말라. 열 번째는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이런 계명도 자신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추상적인 것이었다.

 

다만, 7번째 계명, ‘간음하지 말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가슴이 뜨끔했다. 지금까지 결혼하기 전부터 결혼한 이후까지 명훈 아빠가 관계를 했던 여자의 수는 현재의 부인을 포함해서 모두 30명은 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명훈 아빠는 이러한 계명은 몇천년 전에 있었던 과거의 역사적인 유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성이 개방되고, 프리 섹스가 대세인데, 어떻게 간음하지 않고 결혼했다고 부인 이외의 다른 여자를 ‘눈으로나, 마음으로도’ 간음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아마 성직자도 지키지 않는 계명 같았다. 아무리 따지고 봐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명훈 아빠는 십계명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다.

 

명훈 아빠는 우연히 성경을 들춰보니, 이런 구절이 눈에 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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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1)

 

명훈 아빠가 TV 채널을 돌리니 개그 프로를 하고 있었다. 전에는 제일 많이 본 프로가 개그였다. 개그 프로를 보면 정말 재미 있고, 그들의 순간적인 재치와 은유가 너무 좋았다. 그러면서 어떻게 저렇게 재미있는 개그를 만들 수 있을까 감탄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도대체 저런 것을 보고 무엇이 재미 있다고 웃고 있는 것일까? 너무 유치하다.’ 개그를 하는 사람들은 너무 비현실적이었고, 상식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개그를 보려고 일부러 추운 날씨에 먼곳까지 가서 개그 프로의 방청객으로 앉아 수시로 재미 있어 못견디겠다는 표정으로 계속 웃고 있는 사람들까지 이상해 보였다.

 

‘세상이 얼마나 살기 어려운데, 저런 말장난이나 하고들 있을까? 그걸 보러 녹화현장까지 앉아 있을까?’

 

명훈 아빠는 화까지 날 정도였다. 다른 채널을 돌리니 프로 골프 시합을 중계방송하고 있었다. 속이 상했다. 지금 이런 사건만 아니었으면, 나도 경치 좋은 곳에 가서 ‘Nice Shot!'을 날리고, 끝나면 사우나를 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젊은 파트너들과 술을 마시고 노래방까지 갈 수 있을 텐데, 너무 억울했다.

 

명훈 아빠는 남다른 운동신경이 있어서 그런지 골프 렛슨을 많이 받지 않았어도 오래 전부터 싱글이었다. 그래서 필드에 나가면 눈에 띄는 황태자였다. 게다가 돈을 잘 쓰고 인심이 좋고, 팁을 잘 주니까 캐디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명훈 아빠를 맡으려고 애썼다. 골프장 매너도 좋아 규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신사였다.

 

골프채는 매년 바꿨다. 골프채가 좋아야 핸디를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골프고 나발이고, 모든 것이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채널을 돌리니, 격투기를 하고 있었다. 흑인과 백인이 서로 경기를 하는데, 백인이 흑인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흑인은 백인을 넘겨뜨리고, 그 위에 올라탄 채 계속해서 백인의 얼굴을 주먹으로 내리꽃고, 팔꿈치로 내리찍었다.

 

백인은 곧 죽을 것처럼 보였다. 얼굴에서 피도 나고,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코뼈가 부러지지 않고, 이빨이 부러지지 않고, 뇌진탕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관중들은 열광하고 있었다.

 

백인이 그 체급의 참피온인데, 도전자에게 신나게 얻어터지니까 모두들 흥분해 있었다. 명훈 아빠도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의 사건은 그렇고, 일단 지금 저렇게 힘이 있는 사람이 무자비하게 때리고 폭행을 가하고, 상해를 가하고 있으니까 스트레스가 확 풀렸다.

 

명훈 아빠는 옛날 로마시대에 원형경기장에서 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창과 칼로 서로 싸우고 죽어가는 모습을 떠올렸다. 검투사들은 노예 출신이거나 죄수 신분이었다. 그들은 검투사로 자원한 것은 아니었다.

 

강제명령에 의해 동원된 투사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일정한 게임의 법칙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상대를 죽여야 자신이 사는 전투였다. ‘살기 위해서 죽여야 하는’ 비극적 상황이었다.

 

현대판 격투기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살기 위해, 상대를 때려눕혀야 하는’ 현실은 로마시대의 검투와 똑 같다. 상대를 KO시켜야, 참피언이 된다. 그래야 자신이 사는 것이다.

 

물론 KO를 당한 선수는 사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살인죄에 해당되지 않는다. 형법상 정당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위법성이 조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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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0)

 

한편 명훈 아빠인 심영성은 검찰의 2회 조사를 마친 다음, 검찰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초조하고 미칠 것 같았다. 그 때 심 사장은 검찰의 수사를 받고 나서 밖에 나와 건물에서 투신자살했다는 보도를 보고 깊은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어떤 현역 국회의원이 검찰 수사를 앞두고 아파트에서 투신해서 사망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명훈 아빠는 우리 사회에서 왜 저런 비극적인 자살사건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경찰이나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연탄불을 피워놓고 자살하거나, 한강에서 투신하거나, 높은 건물에서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대기업 회장도 자살하고, 도지사도 자살하고, 공무원도 자살하고, 경찰관도 자살했다.

 

그런 보도를 접할 때마다 명훈 아빠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단순히 ‘수사를 받으니까 힘이 들테고, 징역 갈까봐 자살한 것이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냥 징역을 살면 되지, 자살하면 남은 가족은 어떻게 하고, 운영하던 회사는 어떻게 하나? 무책임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오죽 했으면 죽고 싶었을까? 검찰 수사가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리고 사건 관계인들에 대한 배신감, 증오심 때문에 견딜 수 없었을 거야?'

 

수사 대상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황상태에 빠진다.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다. 세상이 모두 까많게 보이고, 세상 사람들이 너무 무섭게 보인다. 자신은 한없이 작은 존재로 전락하고, 더 이상 세상을 살아갈 자신도 없고 용기도 없어진다.

 

주변에서 아무리 힘을 내라고 응원을 해도 소용없다. 그것은 바다에 빠져 떠내려가고 있는 사람에게 멀리서 뭍에 서서 ‘힘을 내요. 빨리 이곳으로 와요. 당신은 절대로 죽지 않으니까 염려 말아요.“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과 똑 같다.

 

피의자는 자신의 사건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부정적으로만 생각한다. 빠져나갈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징역을 몇 년 살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우선 나이 들어 징역을 살 건강도 없고 용기도 없다. 젊었을 때는 멋도 모르고 군대도 갔다왔고, 고생도 했다. 하지만 나이 들어 오랫동안 고생을 전혀 하지 않고 편하게 살다가 뒤늦게 감방에 가서 징역을 산다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지옥이었다.

 

이런 깊은 절망과 두려움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한다. 그러다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술이나 담배를 계속하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아주 병약한 상태가 된다. 이때 악령이 영혼에 침투한다. 그러면 그 악령이 영혼에 속삭인다.

 

‘앞으로 희망은 없어. 고통만 가중될 거야. 너는 아무런 해결 방법도 없잖아. 그렇게 고통을 받을 바에야 차라리 스스로 평안함, 영원한 안식을 찾는 게 나을 거야. 내 말을 들어. 지금 스스로 모든 것을 차단해버려.’

 

이런 악령의 명령, 유혹을 거역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간단한 유서 한 장을 남긴 채, 그는 그토록 한 많은 이승을 떠난다. ‘그동안 제대로 못해줘서 미안해요. 모든 것은 내 잘못이예요. 아이들하고 잘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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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9)

 

권시장이나 그 부인은 뇌물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극구 부인하였지만, 뇌물을 주었다는 공여자측에서 충분한 신빙성 있는 진술을 하였고, 검찰에서는 이에 부합하는 상당한 양의 정황증거를 확보했다. 법원에서는 구속영장을 발부하였고, 권시장은 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선거로 뽑는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의 경우는 뇌물죄로 구속되어도 국회의원직이나 시장 군수직은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대법원까지 가서 판결이 확정되어야 그때 비로소 공직이 박탈된다.

 

그러니까 권시장은 구속되었어도 교도소 안에서 그냥 시장으로서 결재를 하는 것이다. 시청 직원들은 교도소까지 면회를 와서 시장에게 보고를 하고 결재를 받아가는 것이다.

 

참 이상한 풍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달랐다. 변사또가 갖은 악행을 저지르고 춘향에게 숙청을 들라고 강요하다가 이몽룡이 암행어사로 출현해서 감방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사또에게 행정결재를 받으러 다닌다면, 이몽룡이 가만 두지 않았을 것 아닌가?

 

그런데 자유민주사회에서는 뇌물죄로 재판받는 시장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감방에 들어가 비참하게 된 시장에게 시청의 국장들이 결재를 받으러 가야 한다.

 

면회 가서도 깍듯이 시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빨리 무죄를 받고 나오세요. 모든 시민들이 시장님의 억울함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오늘 결재는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시민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이런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려고 합니다.” 이런 대화가 오고 가는 것이 21세기의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그런데 시장과 같은 고위공직자가 수사 대상이 되면 순식간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진다.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시장으로 예우하거나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 속으로 경멸하며 막 대한다.

 

사건 취재를 하는 태도도 매우 다르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오직 형사소송법에서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원칙이 된다. 포토라인에 서면 세상 사람들은 이미 그 공직자는 끝났다라는 선입관을 가지게 된다.

 

그토록 사회적으로 저명인사였고, 겉으로 존경받을 만한 인물들이었지만, 일단 검찰 수사대상이 되고 구속이 되면 그의 인생은 끝나는 것이 된다. 깊은 심연의 계곡 아래로 추락한다. 많은 공직자들이 포토라인에 서서 검사실로 들어가기 전에는 큰소리를 친다.

 

검찰 수사에 성실하게 임하겠습니다.” “저는 일원 한푼도 받지 않았습니다. 만일 받았다면 할복을 하겠습니다.” “모든 진실은 검찰수사로 명확하게 밝혀질 것입니다.”

 

하지만 열시간이 넘는 검찰조사를 마치고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구치소로 수감되는 검은 색 검찰승용차를 타게 되는 순간의 표정은 그야말로 초라하며 비참하다. 그리고 묵비권을 행사한다.

 

고위공직자는 그동안 세상이 얼마나 무섭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오히려 공직자 자신이 일반인에게 무서움을 주는 가해자의 조직 속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반대 입장에서 무서움을 당하는 피해자 내지 약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세상의 무서움을 전혀 느낄 수 있는 환경 내지 상황에 처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무섭다는 것은 예를 들면 군대에 사병으로 입소해보면 대번 느낀다. 어느 날 갑자기 군대 훈련복으로 갈아입고, 가슴에 번호만 달고 내무반 침상에 일렬로 누워있으면, 세상이 얼마나 무섭고, 개인은 얼마나 초라하고 무기력한 존재인지 실감하게 된다.

 

권시장도 마찬가지다. 건설회사 사장으로 있을 때, 시장 선거운동을 하러 다닐 때, 그리고 시장으로서 폼을 잡고 있을 때에는 세상은 별 거 아니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젊은이여 꿈을 가져라, 야망을 가져라.“ ”용기를 가지고 자신감을 가져라.“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라.“ 이런 식의 생각을 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늘 떠들고 다녔다.  


인간세계는 무섭다. 약육강식의 세상이고, 한번 추락하면 동물 취급을 받는다. 고위공직자는 그래도 한 동안은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수갑을 차고 구치소에 들어가 신체검사를 받고 수감번호를 부여받고 죄수복을 입고 감방에 들어가도 자신이 아직도 시장이기 때문에, 특별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착각한다.

 

교도관 조차도 현직 시장에게 신경을 써서 예우를 갖추어야 한다고 잘못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 인심을 그렇지 않다. 더 무시하고 더 경멸한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던지는 돌은 그만큰 더 아프다.

 

그 돌은 몸에 맞을 뿐 아니라, 심장속까지 던져진다. 동물로 전락하면서 추악한 존재에게 던져지는 세속적인 인간의 차가운 냉소의 시선과 조롱의 언사는 그야말로 대상자에게 인격적 살인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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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8)

 

팀장으로부터 고종과 숙정의 정사사진을 넘겨받은 고종의 가족은 이것을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하면서 고종에 대한 보석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에서는 이와 같은 결정적인 증거자료가 제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종에 대한 보석을 해주지 않고 계속 불구속상태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재판이 있나요? 이 사진을 보면, 제가 숙정이라는 여자와 서로 합의해서 관계를 한 것이고, 그 후 모텔에 같이 간 것도 당연히 합의정사에 해당하는 것이 분명한데, 아직도 제 말을 진실이라고 믿지 않고 있는 거예요.”

 

맹사장이 보기에도 고종은 참 억울해 보였다. 맹사장이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에도 긴 겨울이 물러가고 있었다. 그토록 맹추위를 자랑하던 동장군도 계절이 바뀌면서 완전히 꼬리를 내렸다. 남쪽 지방에서는 벌써 매화가 만발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밖에서는 3.1100주년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100년 전인 1919년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제히 대한 독립 만세!!!’ 함성이 울려퍼졌다. 그리고 나서 곧 바로 수많은 애국지사가 투옥되었다.

 

그들은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감방 생활을 했을 것이다. 지독한 추위와 타는 듯한 무더위를 견뎌야 했고, 악랄한 고문을 받았고, 영양실조에 걸릴 수밖에 없는 콩밥을 먹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조국을 위해, 민족을 위해 결연하게 독립운동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맹사장은 지금 사기죄로 감방에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애국지사와 비교해 볼 때, 자신은 너무 초라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방안은 또 술렁였다.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베트남 하노이에서 회담을 했는데, 아무런 합의도 도출하지 못하고 끝냈다는 것이었다.

 

감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치 경제 사회가 돌아가는 것에 대해 시시각각으로 팔로잉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답답할 때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선 자기 자신의 코가 석자이기 때문에 뉴스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못한다. 그 무렵 맹사장 교도소에 어느 중소도시의 시장이 수감되어 들어왔다. 사람들은 시장이 구속되어 들어오자 매우 흥미롭게 사건 진행상황에 관심을 보였다.

 

사건의 내용은 이랬다. 권시장은 재선에 성공한 시장이었다. 그 지역에서 건설회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번 사람이었는데, 주변에서 시장에 출마하면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고 부추겨서 출마했는데 예상을 뒤엎고 당선되었다.

 

나름대로 지역의 경제발전에 기여를 많이 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권시장은 두 번째 시장 선거에 출마해서 아주 근소한 차이로 겨우 당선되었다.

 

그런데 낙선된 상대 부호측에서 조직적으로 권시장의 비리를 찾아내서 제보를 하였고, 지역 검찰청에서는 권시장에 대한 특별수사를 했다.

 

그 결과 권시장이 자신의 부인을 시켜서 관급공사를 수주하게 해주는 대가로 거액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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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7)

 

“아니, 숙정씨, 우리가 처음에는 노래방에서 관계를 했고, 또 한번은 소백산 등산을 갔다가 일행 몰래 숲속에서 짧게 숏타임을 했잖아요. 그리고 모텔에서 같이 샤워를 하고, 한참 하다가 어디선가 전화를 받고 그만두고 갔던 거잖아요? 내가 언제 강제로 관계를 했어요?”

 

경찰관이 숙정에게 물었다. “이 사람 말이 맞나요?”

“아닙니다. 저는 노래방에 간 적은 있어도 그때 노래만 부르고 술만 마시고 그냥 나왔어요. 어떻게 노래방에서 그짓을 해요. 그런 적 없어요. 등산가서 산에서 했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예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등산로에서 그것도 대낮에 어떻게 해요? 더군다가 우리 등산회 일행이 35명이나 같이 있었는데요? 그리고 산에서 등산하다가 그걸 하면 남자는 기운이 빠져 산에 올라갈 수 없는 것 아닌가요?”

 

고종은 기가 막혔다. ‘세상에 이런 나쁜 여자가 있나? 분명히 그렇게 노래방에서, 등산로에서 100미터쯤 들어간 숲 속에서 했는데, 그걸 거짓말 할 수 있나? 불과 두 달도 지나지 않은 일인데...“

 

하지만 여자가 그렇게 전면 부인하자 고종은 답답하기만 했다. 경찰관은 따져 물었다. “아니 여자분이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피의자는 두 곳에서 성관계를 했다는 증거가 있나요? 예를 들면, 녹음을 해놓았다든가, 노래방의 CCTV라든가, 아니면 증인이라든가, 있으면 제출하세요.”

 

“숲속에서 갑자기 아랫도리만 벗고 잠깐 하는데 그걸 어떻게 녹음을 한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노래방에서 방안 실내에는 CCTV가 있을 수 없잖아요. 그리고 은밀하게 잠깐 하는데 다른 사람이 그걸 볼 수는 없잖아요. 이 여자 말이 모두 거짓말입니다. 거짓말탐지기 측정을 해주세요. 저는 너무 억울합니다.”

 

“그럼 모텔에서 한 것은 어떻게 된 겁니까? 여자가 동의한 사실은 없었지요?”

“그때 둘이 같이 술을 마시고 오히려 숙정씨가 먼저 원해서 모텔에 간 겁니다. 모텔에 가서 숙정씨가 먼저 샤워를 했고, 제가 그 뒤에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오랫동안 참았는지 숙정씨가 매우 적극적이었어요.”

 

“그럼 숙정씨 목 부위와 팔뚝 주변에 상처는 무엇이지요?”

“저는 상처를 본 적도 없어요. 만일 상처가 있다면, 그날 낮에 등산을하면서 반팔을 입었기 때문에 숲속을 헤치고 다니다가 가볍게 긁힌 거겠지요?”

 

숙정은 조사를 받으면서 고종의 얼굴은 양심의 가책 때문인지 절대로 쳐다보지 않고, 그냥 울먹이고 있었다.

“저는 남편이 무서워서 지금까지 한번도 외간 남자와 관계를 한 적이 없어요. 이번에 술에 취해 모텔까지 따라갔다가 갑자기 당한 거예요.”

 

이렇게 해서 고종은 재판까지 넘어온 것이었다. 그런데 1회 공판이 끝난 다음, 고종의 가족이 나서서 등산회 회원들을 만나 사건의 진상에 대해 파악하기 시작했다.

 

매우 늦은 감은 있었지만, 뒤늦게나마 회원들이 사건 내용을 들은 다음 몇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발을 벗고 나서서 협조를 해주었다. 회원들은 숙정과 고종이 그동안 등산회에서 어떻게 친하게 지냈는지 여부, 두 사람이 애인처럼 보였다는 사실을 사실확인서로 써주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우연히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 회원은 등산회 창립멤버였다. 그런데 문제의 당일 소백산 등산을 갔다가 자신이 리더격이었기 때문에 전체 회원 동향을 살피면서 등산을 하고 있었는데, 후미에 처진 숙정과 고종 두 사람이 뒤떨어져 보이지 않아 팁장이 혼자서 두 사람을 찾았다.

 

그러면서 두 사람 모두 핸드폰을 받지 않고 있어 혹시 무슨 사고가 났나 싶어서 등산로 주변 샛길을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팀장은 숲속에서 두 사람이 그짓을 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처음 멀리서 볼때는 여자가 밑에 깔려있고, 남자가 등산복 차림으로 위에 올라타고 있어 살인이 벌어지고 있나 싶어 크게 놀랐다.

 

그런데 조금 더 가서 숨을 죽이고 보니까 두 사람은 황홀경에 빠져 주변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팀장은 몰래 사진을 찍어놓았다. 그리고 재빨리 현장에서 떠나 등산대열로 돌아왔다. 30분쯤 후에 숙정이 팀장에게 전화를 했다.

 

“아 팀장님이 전화를 주셨네요. 진동으로 해놓아서 못들었어요. 길을 잘못 들어 헤매다가 이제 제대로 찾아가고 있어요.” 그러면서 나타난 두 사람은 몸을 풀어서 그런지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산에서 내려올 때에도 굉장히 기분이 좋아보였다.

 

팀장은, ‘내가 10년 동안 등산을 다녔지만, 이렇게 등산 도중에 회원들이 몰래 숏타임하는 건 처음 봤다.’고 혀를 찼다. 이 팀장은 나중에 고종의 가족 이야기를 듣고 그 사진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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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6)

 

숙정의 남편이 숙정을 죽일 듯이 다구치니까 결국 나중에 숙정은 모텔에서 최고종과 있었던 사실을 시인하고, 숙정의 속옷에서 나온 남자의 그것은 최고종의 것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자신은 간통한 것이 아니라, 술을 마시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모텔까지 끌려간 것이며, 모텔에 들어가서 잠시 쉬었다가 나오려고 했는데, 갑자기 고종이 강제로 했던 것이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남편이 이 말을 믿지 않으면서 그러면 고종을 상대로 강간죄로 형사고소를 하라고 하니까, 숙정은 일단 위기에서 모면하기 위하여 남편이 시키는 대로 고소장을 경찰서에 제출했던 것이다.

 

고종은 경찰조사를 받으면서 정말 황당했다. 같은 등산회 멤버로서 친하게 지낸 것은 맞다. 그리고 그 여자가 혼자 사는 여자인 줄 알고 세 번 관계를 했다. 그런데 자신이 강간을 했다고 중범죄자로 고소를 해서 징역을 보내려고 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인간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간통죄가 폐지되어 비록 유부녀가 다른 남자와 정을 통했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민사문제지, 형사문제가 될 수 없는데, 어떻게 허위사실을 신고하여 이렇게 크게 문제를 삼을 수가 있는가?

 

고종은 모텔에서 관계를 하다가 숙정이 갑자기 어떤 사람과 통화를 한 다음 허겁지겁 놀라서 황급히 모텔에서 나갔기 때문에, 그때 대충 눈치를 챘다.

 

‘아! 이 여자가 유부녀구나. 그런 사실에 대해 전혀 말을 하지 않고 마치 혼자 사는 싱글인 것처럼 행세를 했구나. 이제는 그만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 날, 고종은 궁금해서 숙정에게 전화를 시도했으나 숙정은 고종의 전화를 차단해 놓은 것같았다. 그 후 아무리 전화를 해도 숙정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일체 연락이 없었다. 몹시 궁금한 상태에서 일주일 쯤 지나서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OO 경찰서인데요. 최고종씨지요? 숙정씨를 강간한 혐의로 고소장이 접수되었으니 출석해주셔야겠습니다.” 그리고 곧 바로 문자메시지가 왔다. 보이스 피싱으로 오해할까봐 취하는 조치다. 전화를 받는 순간 고종은 뇌출혈로 쓰러질 뻔했다.

 

갑자기 심장이 멎는 것같았다. 경찰서라고 하는 말과 강간죄로 고소를 당했다는 말, 그리고 경찰서로 나오라는 말을 듣자, 머릿속은 그야말로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저는 강간하지 않았는데요. 그건 잘못된 고소입니다. 그래도 제가 나가야 합니까?”

“예. 일단 나와서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꼭 나오세요.”

 

고종은 숨이 막힐 것같았다. 숙정에게 전화를 했으나 응답하지 않았다. 고종은 변호사를 선임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변호사는 큰 도움을 주는 것 같지는 않았다.

 

고종이 경찰에 출석해서 강간사실을 부인하자. 경찰에서는 고종과 숙정을 같이 불러 대질조사를 했다. 숙정은 고종의 시선을 피하면서 고개를 숙인 채 자기 주장만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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