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55)

 

은영은 박 기사를 만났다. 박 기사는 많이 맞은 것 같았다. 아직도 몸에 멍이 들어 있었고, 진단서도 4주나 끊어서 가지고 있었다.

 

박 기사는 명훈 아빠가 현재 검찰 조사를 받고 있으며 곧 구속되고 회사는 부도날 것이라는 이야기도 소상하게 해주었다.

 

명훈은 지금 강간죄로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으며, 곧 구속될 것이라고 했다. 박 기사가 명훈 엄마를 설득시켜 1억 원을 받고, 그 중 2천만 원은 박기사가 수고비로 가지며, 나머지 8천만 원을 은영이 받고 아이를 낙태시키자는 제안이었다. 그러면 박 기사 자신이 당한 청부폭행사건도 고소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은영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어보니, 명훈이도 나쁜 아이고, 집안도 좋지 않은 것 같았다. 특히 정자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박 기사가 가운데서 은영을 위해 합의를 보아주려고 하다가 심하게 맞은 것도 미안했다.

 

일단 박 기사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박 기사는 고맙다고 하면서 둘이 가서 저녁을 먹자고 했다. 은영은 따라갔다. 박 기사는 술에 취하자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이야기했다.

 

박 기사 아버지가 사기를 크게 당해 집안이 망했기 때문에 박 기사는 젊었을 때 많은 고생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방황하다가 감방에도 갔다 왔다. 많은 여자들이 애인으로 있었지만 지금은 다 떨어져나갔다. 박 기사가 그렇게 순수하게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자 은영도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불쌍한 생각도 들고, 옛날 자신의 첫경험의 상대로서 처녀를 가진 남자라는 생각이 들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비록 강간이었지만, 은영의 처녀성을 빼앗은 남자였다. 그때도 박 기사는 은영이 너무 좋아 어쩔 수 없었다는 고백이었다.

 

그래서 그냥 강간이라도 해서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싶었다는 고백이었다. 그러면서 은영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은영도 따라서 눈물이 나왔다. 박 기사는 지금 경제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했다.

 

방 한칸 월세로 얻어 생활하고 있고, 혼자 지내다 보니 건강도 좋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친한 치구에게 돈을 빌려주었다가 다 떼어먹혔다고 했다. 그런데 그 친구를 사기죄로 고소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그 친구가 다른 채권자들로부터 고소를 당해서 감방에 가게 되었을 때 박 기사는 그 친구를 위해 변호사비용으로 3백만원이나 빌려주었다고 했다.

 

박 기사는 은영에게 자신을 도와주는 방법은 명훈 엄마로부터 합의금을 받아서 자신에게 2천만 원만 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특히 눈물을 많이 흘렸다.

 

은영은 이상하게 무슨 마력에 이끌리는 듯 박 기사의 감정이 그대로 이입되고 있었다. 박 기사는 계속 술을 마셨다. 은영은 처음에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지만, 나중에 박 기사의 솔직한 대화를 들으면서 조금씩 맥주를 마셨다. 그러다가 은영은 잠이 들었다. 박 기사가 은영이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에 맥주잔에다 수면제를 타서 잠이 들게 만들었던 것이다.

 

박 기사는 은영이 수면제를 마시고 잠이 들자, 부근에 있는 모텔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잠이 들어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은영의 옷을 벗겼다. 은영의 배가 불러있었다. 그 상태에서 박 기사는 오래 동안 은영의 몸을 애무하고 나중에는 위에 올라가 관계를 했다. 박 기사는 과격한 행위를 함으로써 은영이 자연적으로 유산되도록 하려고도 했다.

 

몇 시간이 지나서 은영이 눈을 떠보니 모텔 방 침대 위에 자신이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고 누워있는 것을 알았다. 박 기사는 보이지 않았다. 은영은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잠에 빠졌던 것을 기억해 내고,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박 기사가 자신의 속에다 그것을 하고 간 것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이런 나쁜 인간! 이건 사람도 아니다. 짐승만도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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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54)

 

은영은 몹시 울적했다. 가슴은 답답하고, 명훈을 생각하면 미칠 것 같았다. 요새는 아이 때문에 일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밤낮으로 아이 생각만 하고 있으니 더욱 그랬다. 모든 것이 너무 불확실했다.

 

자신의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이 때문에 술도 마시지 못하고 있으니 술집에서 김치찌개를 끓여놓고 소주병을 열병씩 쌓아놓고, 큰소리로 떠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속이 다 뒤집혔다.

 

‘정말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 그러니까 피는 물보다 진하고, 모성애는 죽음보다도 강인한 것이어서, 아이를 구하려고 강물에 뛰어들고, 불더미 속에 뛰어드는구나!“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아무튼 은영의 운명은 오직 명훈에게 달려 있는 것이었다.

 

은영은 바람을 쐬러 명동으로 갔다. 연말이라 그런지 거리는 화려했다. 네온사인이 형형색색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명동은 서울의 중심이고 문화의 중심이었다. 오랫동안 명동에는 서울의 멋쟁이들이 아지트 삼아 놀던 곳이다. 다방이 처음 들어온 곳도 명동이었을 것이고, 음악다방이 자리를 잡던 곳도 명동이었을 것이다.

 

명동에는 일본의 관광객들이 한동안 붐볐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많다. 명동을 배경으로 한, ‘진고개 신사’도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오래 된 추억의 편린이다.

 

명동에는 특히 젊은 여성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물건들이 많았다. 먹고 마시는 가게도 많았다. 은영은 술을 마시고 싶었지만 아이 때문에 참았다. 술은 태아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시켰다. 커피 맛이 좋다.

 

혼자 조용히 커피를 즐기고 있는데, 박 기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은영은 한 동안 망설였다. 박 기사의 전화를 받아야 할지, 받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난 번 정자의 친구, 성균이 박 기사를 만나서 손을 봐주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겁도 났다. 마치 은영이 성균을 시켜서 박 기사를 때렸다고 오해는 하지 않았나 걱정이 되었다. 은영은 하는 수 없이 박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은영 씨, 만나서 조용히 할 말이 있어요. 꼭 만나야 해요.”

“만나고 싶지 않아요. 전화로 말씀해 보세요. 무슨 말인지?”

 

“더 이상 시간을 끌면 모든 것이 끝나요? 그러니까 이쯤 해서 내가 양보해서 8천만 원을 은영 씨에게 줄테니, 합의하도록 해요. 그렇지 않으면 그 돈도 못 받고 아이를 낳아봤자. 명훈 아빠가 부도나고 감방 가면 아무 것도 아니게 돼요. 나도 이달 말에 회사를 그만 둘 거예요.”

 

“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절대로 낙태 안 해요. 돈도 필요 없어요. 그냥 아이를 낳아서 내 힘으로 키울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이 문제에서 손을 떼요.”

 

“정 그렇다면 할 수 없지만, 좋지 않은 결과가 올 거예요. 당신이 깡패를 시켜서 나를 청부폭행한 것을 경찰서에 고소할 거예요. 그리고 당신의 과거에 대해서도 모두 폭로할 거고요.”

 

은영은 겁이 났다.

‘정말 이 사람이 내 과거를 모두 폭로하고, 폭행 당한 것을 경찰서에 고소를 하면 골치 아프게 될 텐데...’

“일단 만나서 이야기해요. 지금 바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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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53)

 

고소를 했고, 여기에서도 형사처벌의 의사표시를 분명하게 한 것이다. 예전에는 강간죄가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이른바 친고죄(親告罪)였다.

 

그러나 지금은 강간죄는 친고죄가 아니다. 피해자로부터 고소가 없어도 수사기관은 인지(認知)해서 수사할 수 있고, 처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고소가 취소되어도 처벌할 수 있다.

 

피해자는 명훈에 대해 처벌해 달라고 명확하게 의사표시를 한 것이다. 수사관은 명훈에게 물었다. “피해자와 합의할 의사는 없는가요?”

합의하려고 했는데, 3천만 원이나 달라고 해서 합의를 못했습니다. 저 여자는 공갈범입니다.”

 

피의자신문이 끝났다. 수사관은 명훈과 옥임에게 피의자신문조서 중 자신의 진술 부분에 대해 잘 읽어보고 서명날인을 하라고 했다. 명훈이 읽어보니 특별히 진술과 다르게 조서가 작성된 부분은 없는 것 같았다.

 

이어서 명훈의 변호사도 피의자신문조서를 읽어보고 서명했다. 조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명훈은 피해자를 복도에서 만났다. 화가 치밀었다.

아니 왜 새빨간 거짓말을 해요. 내가 언제 강간했어요?”

옆에서 여자 변호사가 말렸다. 피해자는 명훈을 째려보고 그냥 재빠른 걸음으로 앞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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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52)

 

수사관은 어디로 연락하더니 곧 얼마 있지 않아서 피해자 이옥임이 나타났다. 그리고 여자 변호사 옆에 앉으라고 했다. 대질조사가 시작되었다. 피해자는 당시 있었던 상황을 아주 영화보듯이 생생하게 설명했다. 너무 리얼해서 명훈은 그 여자가 IQ가 아인슈타인보다 더 좋은 것으로 보였다.

 

바로 한 시간 전에 있었던 일처럼 아주 또렷하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치마가 어떻게 걷어올려졌는지, 팬티는 어떤 색깔인데 어느 정도 내려졌는지, 그리고 성기는 어떻게 삽입이 되었는지, 몇분간이나 성교를 하고, 사정은 어떻게 했는지, 일이 끝난 후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그리고 어떻게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같이 맥주집으로 가서 범행을 시인받았는지, 각서는 어떻게 작성하게 되었는지 등등을 설명하는데 마치 법과대학 교수처럼 보였다.

 

아주 논리적인 여자였다. 요새 국회의원이나 정치인들 중에 법률가 출신이 많다고 들었는데, 이 여자는 왜 정치를 하지 않고, 경찰서에 와서 피해자로 앉아 있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논리정연하게 따지고 들면, 그 여자 남편도 참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섭게 느껴졌다.

 

수사관은 명훈과 옥임이 각자 자신의 주장을 하고 진술을 하는 것을 별로 따지지 않고, 그냥 담담하게 조서에 타이핑하고 있었다.

 

수사관은 옥임은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하고 있는데, 명훈은 강간범으로서의 처벌이 무서워서 거짓말로 빠져나가려고 한다는 식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명훈이 거짓말을 해봤자. 네가 써준 각서도 있고, 피해자가 살아서 이렇게 명확하게 진술하고 있는데 너의 범행부인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식의 매우 냉소적인 표정이었다. 말투나 음성도 속으로 명훈을 경멸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명훈은 기가 막혔다. 물론 자신이 상당 부분을 거짓말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 여자의 말도 엄청난 거짓말이었다.

 

나이가 39살이고, 애도 낳았다는 여자가 술이나 마시고 다니면서 무슨 강간을 당했다고 그러냐? 그리고 내가 분명히 삽입도 안 하고, 사정은 더욱이 안했는데 그렇게 거짓말을 하냐? 돈을 뜯어먹으려고 하는 짓이다.’

 

끝으로 수사관이 여자에게 물었다. “피의자에 대한 처벌을 원합니까?”

. 저 사람은 아주 나쁜 사람입니다. 분명히 저를 강간해놓고, 거짓말로 부인하고 있습니다. 당시 저는 순진한 남자로 보고 술에 취했기에 모텔까지 데려다 주려고 했던 것인데, 들어가자 마자 강제로 저를 강간했습니다. 그때 저항을 못하고 강제로 침대에 눕혀지고, 센 힘으로 저를 누르고 강간을 해서 무척 아프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병원에 가서 치료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렇게 거짓말하고 뻔뻔하게 나오니 이제는 합의를 절대로 보지 않겠습니다. 징역을 많이 살게 해주세요. 처벌을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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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51)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 일반인들은 법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이런 수사절차에서 자신에게 어떠한 권리가 있고, 어떤 방식에 따라 자신을 방어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매우 추상적으로 그런 용어가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

 

명훈이 경우는 더욱 그렇다. 대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공부는 거의 하지 않고, 클럽에나 다니고, 게임이나 하고, 술이나 마시고, 연애나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시간이 나면 정치적인 이슈나 사회적 이목을 끄는 쇼킹한 사건에 대해 인터넷에 악풀이나 달고 있었다.

 

그래서 형사사건에 관해서 구속영장이라든가 신병 확보, 체포, 영장실질심사 같은 용어에 대해서는 다소 익숙해진 편이다.

 

명훈은 경찰서에 들어갈 때부터, 긴장도 하고 심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럴 것 같으면 들어오기 전에 변호사를 만나서 좀 더 법을 공부하고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관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남자 경찰관은 음성도 부드러워 마치 아나운서가 인터뷰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피의자 성명훈은 피해자 이옥임(, 가명, 39)을 강간한 사실이 있지요?”

아닙니다. 저는 강간하지 않았습니다. 클럽에서 같이 술을 마시고 서로 취한 상태에서 모텔에 같이 갔는데, 저는 침대에 누워있고, 피해자가 의자에 앉아 있다가 나가겠다고 해서 조금 더 있다 같이 나가자고 팔을 잡았더니 갑자기 저를 때리고 난리를 쳤던 것입니다. 저는 너무 억울합니다.”

 

피해자 주장에 의하면, 모텔방에서 피의자가 갑자기 피해자를 강제로 침대에 눕히고 치마를 올리고 팬티를 내린 다음 성교를 하였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여자가 거짓말로 저를 강간범으로 몰고 있는 것입니다. 억울합니다. 저는 침대에 눕힌 사실도 없고, 치마를 올리거나 내린 사실도 없고, 성교를 한 사실도 없습니다. 증거를 대라고 해주십시오. 증거를! 아 참! 당시 그 여자는 치마를 입은 것이 아니고, 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 자체가 거짓말입니다. 바지가 기억이 나는 건 아주 타이트하게 입고 있어, 제가 속으로 날씬하지도 않은 주제에 뚱뚱한 살이 비집고 나올 정도로 바지를 꽉 끼게 입는 여자가 참 센스도 없다고 비웃었기 때문입니다. 저와 모텔에 같이 간 여자는 바지를 입고 있었고, 나중에 그 여자 친구가 나타났는데, 그 여자는 몸매가 날씬했고, 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짧은 바지였습니다.”

 

피의자는 강간을 한 다음, 피해자가 전화로 오라고 부른 친구와 같이 맥주집으로 가서 각서를 써준 사실이 있지요?”

 

수사관은 명훈에게 각서사본을 보여주었다. 명훈은 자세히 각서를 들여다 보았다. 분명 그때 자신이 쓴 각서가 틀림없었다. 내용을 읽어보니 정말 너무 자세하게 노골적으로 강간죄를 인정하는 내용으로 쓰여있었다. 기가 막혔다.

 

이 각서는 그 여자들이 나를 붙잡아놓고 때리고 겁을 주어서 본의 아니게 허위의 사실을 인정하는 것처럼 쓴 것입니다. 절대로 사실이 아닙니다.”

 

아니 그렇다면 강간도 하지 않았는데, 여자들이 조금 때린다고 이처럼 모든 사실을 인정하는 각서를 써주었다는 말인가요?”

 

. 맞습니다. 당시 그 여자들이 하자는 대로 하지 않으면 저를 죽일 것처럼 보였고, 곧 바로 경찰서로 끌고 갈 태세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게 좋다고 그 여자들이 하자는대로 하고 빨리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여자와 대질조사를 해주세요. 너무 억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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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50)

 

경찰의 출석요구에 하는 수 없이 명훈은 여자 변호사를 대동하고 조사를 받으러 나갔다. 사람들은 경찰을 무서워한다. 평소에 경찰의 순찰차만 보아도 긴장한다. 특히 자가운전을 하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100% 교통법규를 지키면서 운전하는 사람도 혹시 순찰차가 차를 세울까봐 신경을 쓴다.

 

한 번이라도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살면서 경찰서는 절대로 갈 것이 아니라고 자신을 세뇌시킨다. 일반 행정기관과는 분위기가 전혀 딴판이다.

 

우선 경찰서에 들어서면서부터 경비가 다르다. 신분증을 확인하는 태도부터 딱딱하다. 민원인들이 출입하는 주민센터나 구청과는 전혀 다르다. 우선 법을 위반해서 조사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라는 선입관이 있어서 그런지 모른다.

 

하기야 경찰에는 체포되거나 구속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구속영장이 청구되어 신병대기중인 사람도 있다. 그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유치장도 있고, 대기실도 있기 때문에 경찰관은 곤봉도 차고, 가스총도 차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실탄이 장전된 권총도 지급된다. 인질범과 대치할 때다.

 

경찰에 가서 제일 기분 나쁠 때는 지문조회를 하기 위해서 지문을 찍는 경우다. 그것은 곧 바로 입건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처벌될 문턱에 와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명훈은 경찰관의 단순한 출석요구에 응한 것이다. 이것은 형사소송법상 강제수사가 아니라 임의수사의 방삭에 의한 것이다. 경찰관이 강제로 신병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피의자 임의로 출석하도록 요구하고, 피의자가 알아서 출석하면 그때 피의자신문을 하는 것이다.

 

명훈은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갔다. 조사실로 갔다. 담당수사관 앞에 앉았다. 같이 간 여자 변호사는 명훈 옆에 의자를 놓고 나란히 앉았다. 조사를 시작하기 전에 수사관은 명훈에게 형사소송법상 보장되어 있는 피의자의 권리를 설명해준다.

 

피의자는 진술을 거부할 수 있고,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피의자신문조서에 그와 같은 권리를 고지해준 사실과 진술을 거부하지 않고 진술을 하겠다는 취지의 동의 의사표시를 기재하도록 한다. 또한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고지받았다는 기재도 하게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조사받으면서 진술을 거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만일 진술을 거부하면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의심을 받고 불리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피의자들은 적극적으로 범죄사실을 부인하거나 다툰다. 소극적으로 진술을 거부하지 않는다.

 

피의자에게는 이와 같이,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묵비권, 부인할 수 있는 권리, 자백을 강요 당하지 않을 권리 변호인의 참여를 받을 권리 등이 부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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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49)

 

인경이 충격을 받고 지방으로 내려가, 공국의 전화를 받지 않자, 공국은 돌아버릴 지경이 되었다. 그렇다고 인경의 소재를 확인할 마땅한 방법도 없었다. 정식 혼인관계가 아닌 내연관계였기 때문에, 인경의 주변 사람들과 특별히 연락을 하고 지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공국은 속이 상해, 집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가끔 인경의 집에서 잠을 자기도 했지만, 지금은 인경의 집에 들어갈 수도 없게 되었다. 공국은 미칠 것 같았다. 그러면서 인경에게 미안했다. 자신이 가운데서 제대로 일처리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인경이 큰 상처를 받고 어디론가 숨는 것 같았다.

 

공국은 그렇다고 치킨집을 닫을 수도 없었다. 손님들이 계속해서 오고 있고, 만일 문들 닫았다가는 먹고 살 일이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인경의 핸드폰은 전원이 아예 꺼져있었다.

 

공국이 일주일 넘게 집에 들어가지 않자, 맹순이 치킨집으로 찾아왔다.

인경 씨가 당신과 헤어진다고 했어요. 이제 모든 걸 정리하고 집으로 들어와요.”

 

공국은 갑자기 흥분했다. 그동안 가슴을 짓누르던 분노가 폭발했다. 맥주병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빨리 나가! 당신하고는 안 살아.”

그러자 맹순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내가 무얼 잘못했다고 큰소리야. 당신이 바람 피다가 그 여자가 도망간 것을 왜 나에게 화를 내.”

 

맹순이 쏘아보는 눈초리가 무서웠다. 공국은 술을 마신 상태에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맹순을 때렸다. 뺨을 몇 대 때렸다. 맹순의 코가 터져 피가 흘렀다. 그리고 귀를 잘못 때려 고막이 파열되었다. 맹순도 죽기 살기로 달라들었다. 치킨집 옆가게에서 사람들이 들어와서 두 사람을 떼어말렸다.

 

맹순은 즉시 112 신고를 했다. 경찰이 치킨집으로 왔고, 공국은 가정폭력범죄로 입건되었다.

 

한 달 있다가 인경은 집으로 돌아왔다. 인경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아주 냉정해진 상태였다. 공국을 만났다.

 

그동안 미안했어요. 내 모든 것을 바쳐 사랑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게 끝났어요. 내가 어리석었어요. 이제는 유부남은 절대 안 만나요.”

내가 곧 이혼할테니 조금만 기다려요.”

아니, 필요없어요. 지금까지 받은 상처가 너무 커요.”

헤어진다는 건 불가능해. 나는 절대로 당신을 놓지 않아. 만일 헤어진다고 하면 내가 가만 두지 않을 거야.”

마음대로 해요. 죽이든지, 살리든지, 내가 무엇 때문에 당신 부인한테 더러운 꼴 당하고 살아야 해요.”

 

몇 달 지난 다음 인경은 그 지역에서 사별하고 혼자 사는 돈 많은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공국은 인경을 설득시키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한번 돌아선 인경의 마음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인경의 사랑을 잃은 공국은 매일 술만 마셨다. 치킨집 영업이 끝나면 소주를 2병씩 마셨다. 안주래야 치킨 몇 조각뿐이었다. 맹순과도 이혼했다. 합의이혼을 했다. 그리고 아주 비참하게 되었다.

 

인경은 새로 만난 남자와 유럽여행을 떠났다. 파리 에펠탑에서 세느강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보였다. 그들은 현실을 초월한 순수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커플로 유람선을 타고 행복해 하는 그들의 모습은, 적어도 유부남과 유부녀의 부적절한 사랑은 아니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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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48)

 

예전에 그런 사건이 있었다. 어떤 여자 둘이서 술집에서 크게 싸웠다. 같은 술집에서 일을 하는 종업원들인데, 어떤 돈 많은 단골손님을 놓고 사랑싸움 같은 것을 했다. 한 종업원이 먼저 그 돈 많은 사장과 잠을 자고, 팁을 두둑히 받았다.


몇 번을 그렇게 해서 재미를 보고 있는데, 새로 들어온 더 나이 어린 여자 종업원이 자세한 내막도 모르고, 그 사장이 또 새 여자에게 눈독을 들여 꼬시니까, 신참 여종업원이 술시중을 들다가 이어서 잠자리시중까지 들었다.

 

그날 마침 관계를 가지고 있던 종업원이 몸이 아파 며칠 동안 출근을 못할 때였기 때문에 사장은 그런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고, 새로 온 여종업원을 돈으로 매수해서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술집 주인도 이런 상황을 보고 있었지만, 워낙 돈 많은 단골손님이 원하는 것이라 반대하기도 곤란했다.

 

그리고 새로 온 여종업원도 미모가 뒷받침되고 있어 놓치기도 곤란해서 돈을 벌게 해주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만일 돈 많은 단골은 강패 기질이 있고, 감방에도 몇 차례 갔다온 건달이어서 술집 사장이 괜히 성질을 건드렸다가는 술집을 완전히 뒤집어놓을 위험도 있었다.

 

그렇게 재미를 본 단골 사장은 그 후에는 술집에 오면 처음 재미를 본 종업원을 멀리 하고, 새로 온 나이 어린 종업원을 끼고 놀았다. 단골 사장은 그전에는 그렇게 하지 않고, 밖에 2차로 데리고 나가면 그에 상응하는 돈만 주었는데, 새로 온 종업원에게는 돈도 더 많이 주고, 가방도 사주고, 신발도 사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침내 두 종업원끼리 싸움이 일어났다. 술집 문을 닫을 시간에 두 사람만이 남아서 술집을 정리하고 나가려고 하다가 싸움이 시작되었다.

“왜 내 손님을 네가 가로챘느냐?”

 

“나는 언니 손님인 줄 모르고 있었어요.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술집에서 무슨 주인이 따로 있어요? 그냥 하루 밤 자는 건데.”

 

언니 뻘 되는 여자는 술김에 확 돌아서 동생 뻘 되는 여자의 머리채를 잡았다. 그러자 본능적으로 동생 뻘 여자도 언니 뻘 여자의 머리카락을 잡았다. 주변에 말리는 사람이 없어, 싸움은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싸움이 끝나고 헤어졌는데 알고 보니, 언니는 동생의 머리카락을 잡고 뽑고 있다가 작전을 바꾸어서 동생의 얼굴을 긴 손톱으로 모두 파버렸다. 얼굴이 여러 군데 살점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파졌다. 반면에 동생은 순진하게 언니의 머리카락만 붙잡고 잡아당기고, 흔들고, 발로 언니의 배나 다리, 무릎만을 차고 있었다.

 

나중에 병원에 가서 두 사람은 모두 전치 2주의 상해진단서만을 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 피해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두 사람은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각각 벌금만 선고받고 말았다. 법은 이렇게 엉터리로 끝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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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47)

 

홍 검사는 공국을 만나서 서로 나눈 이야기를 맹순에게 그대로 전해주었다.

“아저씨는 이혼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그리고 그 여자와 두집 살림 한다는 것도 아니래요. 단지 그 여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어쩌지 못한다고 해요. 아주머니 생활비도 잘 줄 거라고 하고요. 그러니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면서 나중에 이혼을 하든 어떻게 하든 결정을 보류하는 게 어떨까요?”

 

맹순은 갑자기 울음을 떠뜨렸다.

“아니, 내가 그 인간이 그럴 줄 알았어. 내가 그 O을 만나서 박살을 낼 거야.”

 

며칠 후 맹순은 인경을 만났다. 인경은 백화점에서 산 것처럼 보이는 명품 옷을 입고 나왔다. 맹순은 그것도 공국이 사준 것으로 확신했다. 핸드백도 명품이었다. 맹순의 속은 또 뒤집어졌다.

 

“인경 씨. 이제는 헤어져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두 사람을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왜 유부남과 붙어서 그래요? 혼자 사는 싱글이 천지에 널려있는데.”

 

“맹순 씨. 왜 나한테 그래요. 모든 건 공국 씨가 결정할 문제예요. 공국 씨가 가정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면, 나도 돌려보낼 게요. 그런데 공국 씨는 지금 맹순 씨와 더 이상 부부로 살 수는 없다고 해요. 그러니까 차라리 공국 씨를 놓아주세요. 그게 인간적이잖아요. 싫다는 사람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나도 이혼을 했어요. 나도 더러운 인간 아무 미련 없이 깨끗이 포기하고 보냈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 때 더 빨리 이혼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워요.”

 

맹순은 이 뻔뻔스러운 인경의 말에 화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옆에 놓아두었던 핸드백을 인경의 얼굴에 던졌다. 인경은 핸드백에 얼굴을 맞고 일어서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맹순이 인경에게 달라들어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인경도 가만 있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 머리채를 잡고 싸웠다. 그러자 커피숍에 있는 젊은 남자들이 두 사람을 떼어말렸다. 맹순은 인경의 머리카락을 한 웅쿰 뽑아냈다. 작은 전투에서 얻은 큰 성과였다. 인경의 얼굴에 작은 손톱자국도 내놓았다.

 

그에 비해 인경은 맹순의 머리채를 잡고 빠져나오려만 했지, 큰 데미지는 가하지 못했다. 인간적인 양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인경은 사랑의 가해자고, 맹순은 사랑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사실 폭행이나 상해와 같은 범죄행위에 있어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백하게 구별된다. 때린 사람이 가해자고, 맞은 사람이 피해자다. 하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어떨까? 사실 사랑이라는 것은 매우 추상적인 개념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사랑은 공국과 인경 사이에 존재한다. 반면에 공국과 맹순 사이에는 다른 의미의 사랑은 남아 있지만, 남녀 사이의 애정으로서의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랑의 가해와 피해는 그 개념이 애매모해진다.

 

더군다나 사랑에 있어서 가해자와 피해자로 구별 짓는 기준과 지표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맹순을 사랑의 피해자로 보고, 인경과 공국을 사랑의 가해자로 보는 것이 아닐까?

 

인경은 맹순과 헤어지고 난 다음 집으로 돌아와 한없이 울었다.

“도대체 내 인생이 왜 이럴까? 유부남을 사랑한 것도 잘못이고, 더군다가 그 마누라가 저렇게 독한 줄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물러섰을 것인데, 왜 공국 씨는 그런 사실을 내게 숨겼을까? 그런데 지금 와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도 들었고, 지금은 공국 씨에 대해 의지하는 마음이 크게 생겨 혼자 사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그렇다고 이런 더러운 꼴을 계속해서 감수하는 것도 할 일이 아니다.”

 

그래서 당분간 공국의 전화를 차단해 놓고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맹순에게 뜯겨진 머리카락이 푹 빠져있고, 얼굴에도 크지는 안않지만, 긁힌 자국이 몇 군데 있어 창피해서 밖에 돌아다닐 수도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일단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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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46)

 

친척인 맹순을 만나 골치 아픈 가정사를 이야기 들은 홍 검사는 불쌍한 맹순에게 알아서 하라고 맡겨놓고 있기는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조금이라도 도와주는 것이 인간적인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맹순과 상의해서 일단 공국을 만나보기로 했다. 홍 검사가 공국에게 연락해서 한 번 만나 식사라도 하자고 하니 공국도 선뜻 응했다.

 

설마 맹순이 어리석게도 친척인 홍 검사를 만나서 자신들의 가정 문제를 이야기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그래도 현직 검사로 있는 친척이니까 먼저 만나자는 데 거절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공국은 늘 마음 속으로 친척이 검사로 있으니까 든든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무슨 조그만 일이라도 생기면 제일 먼저 홍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어드바이스를 받고 지내던 터였다.

 

맨날 바쁜 검사님께서 어떻게 이런 시간을 내주셨나? 반가워요.”

생각보다 검사 일은 바쁘고 힘이 드네요. 어떤 때는 일에 대한 회의도 들고요. 물론 세상에는 나쁜 사람도 많고,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잡아넣어야 하는데, 구속되는 사람들은 망하는 거니까, 잡아 넣는 검사를 얼마나 원망하겠어요. 그런 업보가 계속 쌓이면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게 될 거예요. 하지만 검사가 된 이상 그런 거 두려워하지 말고, 나쁜 사람은 철저하게 수사해서 징역을 보내야 해요. 그게 정의니까요.”

 

그래도 억울한 사람 생기지 않도록 해요. 말 들어보면 감방에 가 있는 사람들 절반은 억울하고, 돈이 없어 징역 산다고 해요. 그 놈의 유전무죄는 일제 강점기부터 생긴 것이 지금까지 없어지지 않고 아직도 판을 치고 있다고 하니까 홍 검사는 절대로 그러지 말아요.”

. 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홍 검사는 공국의 이런 말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여전히 사회는 유전무죄라는 아주 잘못된 법조 풍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돈 있는 사람이 법망을 빠져나가는 것은 일제 시대 때부터가 아니라 조선시대까지 소급해 올라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아주머니께서 아저씨 여자 문제로 이혼하겠다고 그러는데 좋게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요? 걱정이 되어서 제가 좀 뵙자고 했어요.”

공국은 홍 검사가 이 말을 꺼내자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며 무척 당황했다. 마시고 있던 소주를 세 잔 연거푸 들이켰다.

 

글세, 물론 내가 잘못했어. 그리고 지금 상황은 이혼까지 할 정도는 아니야. 식구가 너무 과민반응을 보여서 그렇지. 시간이 가면 잘 해결될 거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아니예요. 그렇지 않아요. 아주머니는 좋게 해결이 되지 않으면 이혼소송을 한 대요. 그러면 아이가 불쌍하잖아요. 법에서는 이런 문제를 아주 간단히, 단순하게 처리해 버리니까 가정만 깨지는 거예요.”

 

솔직히 말해서 나도 잘못이지만, 집사람과는 아무런 애정이 없어. 그건 집사람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그냥 동거인으로 살아왔어. 그런데 이런 관계를 계속 유지하면서, 집사람이 나를 원수처럼 생각하고, 자꾸 싸움만 걸어오면 정말 이런 생활을 계속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그래도 아이를 낳고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잘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른 여자를 만나 가정에 소홀하게 되면, 이혼하자고 하는 건 당연하잖아요? 그 여자를 끊을 수는 없나요?”

 

홍 검사. 그건 안 돼. 그 여자도 사람이야. 비록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지만, 내가 좋아했고, 그래서 정이 들었어. 그리고 지금은 그 여자도 나만 믿고 나를 좋아하면서 남은 인생을 살려고 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지금 집에서 난리 친다고 나 혼자 잘 살겠다고 그 여자 버리고 와이프에게만 충실한다고 하면, 그 여자는 어떻게 돼? 아주 비참하게 될 거야. 잘못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어.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 그 여자가 홍 검사 누나라고 생각하면, 홍 검사는 그 여자의 애인에게 가정을 생각해서 그 여자 끊고 집으로 돌아가 집에만 전념을 다하고, 부인만 사랑하라고 말 할 수 있겠어? 그렇게 되면 그건 너무 극단적인 이기주의며, 다른 사람을 짓밟고 죽이는 거야? 이왕 이렇게 되었으면 세 사람이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지, 어떻게 한 사람은 죽이고, 집사람만 잘 살려고 하는 거야. 내가 가정을 버리겠다는 것도 아니고, 생활비를 주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 여자와 두 집 살림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야.”

 

홍 검사는 공국이 흥분해서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을 들으니, 그 말도 맞는 말 같았다. ‘세 사람이 같이 잘 사는 방법이 무엇일까?

 

아저씨 말대로 두 여자가 공존할 수 있을까요? 아저씨가 큰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두 여자를 다 만족시켜 줄 수 있어요? 그리고 아주머니가 받는 정신적 고통, 마음의 상처, 질투심과 박탈감은 어떻게 보상할 수 있어요? 양쪽 다 똑 같이 잘 해줄수는 없을 거 아니예요? 옛날 왕들이야 수십명의 후궁을 두어도 유지관리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다르잖아요. 요새는 재벌들도 내놓고 첩을 두는 사람은 아주 드물지 않아요. 70년대까지만 해도 돈 있는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첩을 두고, 자식들도 여러 배에서 많이 낳기도 했지요. 그래도 다 재벌 2, 34세로 잘 살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했다가는 언론에서 가만 있지 않을 거예요. 아저씨가 치킨집을 해서 돈을 얼마나 번다고 두집 살림을 하시겠다는 거예요? 그리고 아주머니와는 각방을 쓴다면서요?”

 

글세, 내가 두집 살림한다는 것도 아니고, 집사람과는 각방 쓴지 오래되었지만, 그것도 내 탓이 아니야. 집사람이 나이 들고 원래 그걸 싫어해서 그렇게 된 거야. 지금 여자 문제도 그런 이유가 아니고, 집사람은 내가 다른 여자를 만나는 걸 그 자체로 싫어하고 참지 못하는 거야.”

 

두 사람은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접점을 찾을 수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홍 검사의 머릿속만 복잡해졌다. 홍 검사는 그래도 두 분이 잘 상의해서 가정이 깨지지 않도록 하라고 부탁을 하면서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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