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83)

 

박 상무는 승무원생활하면서 겪었던 이야기 중에 비행기 안의 화장실 이야기가 나왔다. 박 상무는 퍼스트 클래스는 승객이 몇 명 되지 않고, 화장실도 넉넉해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퍼스트 승객들은 좀처럼 화장실도 가지 않는다. 살찐 사람도 많지 않고, 기본적으로 비행기 안에서는 음식도 많이 안 먹는 것 같았다. 그리고 추가로 더 달라고 하는 승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코노미에 가면 비행기 타기 전에 잔뜩 먹고 탄 것 같은데(그건 몸에서 이미 음식 냄새가 나기 시작하기 때문에 즉시 알 수 있다), 타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나오는 식사를 하나도 남김 없이 먹어치우고, 물도 여러 컵 얻어마시고, 캔맥주나 와인도 얻어 마시고, 화장실을 자주 간다.

 

그리고 승객은 많은데, 동시에 화장실 몇 개 없는데 한꺼번에 몰리니, 화장실 앞에서 젊잖게 양복을 차려입은 신사들이 참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그 더러운 배설행위를 하려고 서있는 것을 보면 역시 인간은 먹고 싸야 하는 동물과 다를 게 없구나!’하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박 상무는 획일적인 배식을 하면 주는 대로 먹고 말지, 인천공항 출발한 지 몇 시간이나 지났다고 일회용 고추장을 더 달라고 하는 사람 앞에서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군대에 갓 입소한 신참이 식당에서 배식하는 고참병에게 고추장 더 달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고참은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열달 넘게 죽을 고생해서 상병이 되었는데, 이런 훈련병에게서 고추장을 더 달라는 치욕적인 명예훼손을 당하다니 조상에게 면목이 없게 되었다. 배식하던 국자를 집어 던지고 할복자살하고 싶을 정도다.

 

고참의 조상은 신라시대 왕을 지냈다는 경주 김씨다. 그토록 천년 전에 화려했던 서라벌의 왕조 후손이 이렇게 새파랗게 어린 훈련병으로부터 고추장 모욕을 당한다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건 1910년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넘긴 경술년 국치보다 더 심한 치욕이었다. 고참은 스스로 살기를 포기하고 훈련병에게 고추장을 큰 스푼으로 떠서 다섯 번이나 담아준다.

 

훈련병은 눈물을 흘리면서 고추장을 모두 입에 처넣는다. 그리고 그날 훈련병은 복통 때문에 의무실에 가서 이승과 저승 사이를 다섯 번이나 왔다 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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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82)

 

박 상무는 다시 자신이 승무원으로서 한참 날릴 때 이야기를 이어갔다. 옛날 화려했던 이야기를 할 때에는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모아서 가볍게 잡는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매우 궁금하게 생각했는데, 언젠가 박 상무는 술자리에서 그런 질문에, ‘,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에 스튜디어스들이 객석 앞으로 나와 서서 비상시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잖아요. 먼저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나서, 비상 탈출하는 비상구 위치를 안내하고, 구명조끼 위치를 알려주고, 산소마스크를 착용하고 부는 법을 설명하는 것이 오랫동안 습관이 되어서 그런 거예요.’라고 알려주었다.

 

사람들은 그래서 . 역시 직업이란 무섭구나! 스튜디어스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잠을 자면서도 두 손을 모으고 목례를 한 다음 산소마스크 쓰는 법을 알려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혹시 그런 것이 습관이 되어, 스튜디어스가 자는 남자의 얼굴에 산소마스크를 씌어주려고 하다가 꿈에서 정말 그 사람 코를 막고 질식사 시키면 어떻게 하나?’하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그 이야기를 들은 박 상무 주변 남자들은, ‘앞으로 스튜디어스 출신 여자와는 잠자리를 할 때 혹시 산소마스크를 씌울지 모르니 긴장하고 자야겠다.’라는 다짐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권투선수나 레슬링선수와 잠을 자는 여자들은 언제 라이트 훅, 레프트 훅이 날라올지 모르고, 목조르기나 팔꺾기 기술이 들어올지 모르니까 성관계가 끝나면 멀리 떨어져 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을 들어야 될 것 같았다.

 

특히 손으로 계속해서 수신호를 하고 있는 교통경찰관의 부인은 자칫 잘못하면 애써 성형수술 해놓은 코가 망가질 위험성이 다분히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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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81)

 

그랬는데, 그 후 미국 죄인에게는 매일 통닭 한 마리와 우유 1,000cc 짜리 큰 팩 하나가 넣어졌다. 독방에 수감되어 있는 그 사람은 처음에는 신이 나서 먹었는데, 3일째부터는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

 

그것도 교도소의 편의상 저녁 시간에 교도소 앞에 있는 통닭집에서 새로 구운 따뜻한 통닭 한 마리를 큰 우유 한 팩과 같이 넣어주면 미국 죄인은 세끼에 걸쳐서 나누어 먹어야 한다.

 

그러면 그 다음 날 아침 식사는 식은 통닭이라 기름끼가 가득 끼고 식어서 냄새가 나고 방안 전체가 통닭 냄새라 메퀘하고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우유도 두껑을 따놓았고, 냉장고도 없었기 때문에 상한 건지, 뎁혀진 건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교도관은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이어갔다. 그랬더니 그 미국 시민권자는 마침내 굻어죽지 않기 위해 비장한 결심을 했다. 자신의 출신 주의 상원의원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제가 지금 한국 어느 교도소에 수감중인데, 매일 식은 통닭 한 마리와 우유 한 팩만 넣어주고 있습니다. 벌써 두달 째인데 저는 곧 영양실조에 걸려 죽을 것 같습니다. 존경하는 상원의원님, 저를 살려주십시오. 이 은혜는 잊지 않고 있다가 출소하면 나가서 죽을 때까지 갚겠습니다. 아멘!‘

 

이 불쌍한 죄수가 어둡고 추운 감방 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써서 보낸 편지를 받아본 미국 상원의원은 커다를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이런 일이! 세상에 이런 법이! 세상에 이런 인권침해가!’ 하마터면 상원의원은 뇌출혈을 일으켜 쓰러질 뻔했다. 그는 즉시 난리를 쳤다.

 

미국 국무부를 통해 한국에 있는 주한미국대사관으로 연락을 해서 시정조치를 하도록 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한국 정부에서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에 대해서는 박 상무가 듣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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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80)

 

아주 오래 전에 한국에서도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박 상무에게 이야기 해준 사실이 있다. 박 상무는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인간 사회는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어떤 미국 시민권자가 한국에 와서 미군 부대에서 근무를 하다가 한국법을 위반하여 한국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지방에 있는 교도소에 수감되었는데, 오랜 전 일이라 영어를 제대로 하는 교도관이 없었던 모양이다.

 

처음 들어와서 교도소에서 한국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관식을 주었더니 통 먹지를 못했다. 배가 고파도 아예 밥그릇을 쳐다도 보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교도관이 물었다. “What do ypu want to eat?‘ 물롤 그 교도관은 그렇게 정확하게 문법적으로 말을 한 것은 아니다. 발음도 native speaker 가 아니고 혼자 배운 것이라 엉터리로 했다.

 

”What eat you?“ 미국 죄인은 떠듬떠듬 하는 교도관의 말에 교도관이 자신을 먹어치우겠다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후 교도관이 자기 입에 숟가락을 대고 무언가 의사표시를 하려고 하는 것을 보고, ’Ah, That guy is trying to ask me what I want to eat instead of rice.‘라고 이해했다.

 

그래서 어차피 길게 말해봤자 그 교도관은 영어를 못알아 들을 것 같아서, 그냥, ’Chicken and milk.‘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교도관은 신이 났다. 완벽하게 의사소통이 되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오케이, 치킨, 밀크.‘를 세 번이나 반복했다.

 

그리고 ’Thank you very much.‘를 강하게 발음했다. ’땡큐, 빼리 망치.‘ 미국 죄인은 자신이 부탁을 하고 있는데, 왜 교도관이 고맙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 한국은 역시 소문대로 미국과는 다른 나라구나! 미국에서는 죄인이 교도관에게 꼼짝 못하는데, 한국에서는 동방예의지국이라 교도관이 죄인에게 고맙다는 말을 먼저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교도소에 영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궁금한 점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물어볼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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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79)

 

그래서 박 상무도 승무원 생활할 때는 그랬다. 퍼스트 클래스에서 일을 하다가 이코노미 근무를 하는 경우에는 들어가는 순간부터 짜증이 났다.

 

그 좁은 공간에 빽빽하게 들어박혀서 아우성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아프리카 노예선에서 노예들이 짐짝처럼 실려있는 것 같았다. 퍼스트는 조용한데, 이코노미는 시끄러웠다.

 

식사시간에는 갑자기 기분 나쁜 음식 냄새가 진동을 해서 마스크를 해야 하는데, 근무시간에는 승무원이 마스크를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어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견디기 어려워서 나중에는 꾀를 냈다.

 

식사 시간이 되면, 귀에 넣는 작은 귀막이를 콧구멍에 넣었다. 양쪽 코를 그 코막이로 막아놓으면 식사 시간에도 덜 괴로웠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음식 냄새 때문에 나중에는 직업병에 걸려 산재청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박 상무는 미국 교포로부터 미국 교도소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린 일이 있었다. 한국 교포가 법을 위반하거나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쓰고 미국에서 교도소에 가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국 사람이 서울구치소에 가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한달 동안이라도 미국에 여행을 가면 구경을 하고 놀아서 좋은 점도 많지만, 일상의 생활은 보통 불편한 것이 아니다.

 

먹는 것, 자는 것, 기타 생활의 편의시설 등에서 한국에서 익숙했던 것에서 떠나 있는다는 것은 정말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가장 힘든 것은 한국 사람이 미국 교도소에 들어가면 언어도 문제지만, 음식이다. 한국 사람은 기본적으로 밥에 김치가 있어야 하는데, 미국 교도소에서는 모두 양식이다. 햄버거나 미국식 음식뿐이다. 그리고 우유를 준다.

 

이런 음식 냄새로 찌들은 교도소 구내식당이나 감방 안에서 24시간 생활한다는 것은 지옥이다. 처음에는 배가 고파서 그런대로 먹게 되지만, 보름만 지나면 정말 지겨워서 그런 음식은 쳐다볼 수도 없다.

 

그렇다고 죄인 주제에 한국식으로 김치와 고추장을 달라고 했다가는 그날로 독방에 감치된다. 아니면 같은 방에 있는 고참을 시켜 다리를 부러뜨리거나, 이빨을 세 개 부러뜨린다. 세 개를 부러뜨리는 이유는, 하루 세끼를 먹어야 하는 교도소 규칙 때문에 그렇다.

 

감방 안에서 정말 목숨을 걸고 독하게 대들면,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죄수들은 신참의 눈을 멀게 해버린다. 한쪽 눈만 멀게 해버리면, 그런 사실이 교도소에서 순식간에 소문이 퍼져서 신참들은 고참들을 하늘처럼 우러러 들게 된다. 그러면 교도관은 가만히 있어도 교도소 규율이 저절로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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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78)

 

하늘천주식회사의 박천순 상무는 55살이었다. 젊었을 때 어느 항공사의 스튜디어스를 지냈다고 하는데, 외모로 봐서는 분명히 그랬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제복을 입고 찍은 사진은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녀가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수많은 사진들은 모두 동남아 여행갈 때 비행기 앞이나 공항에서 찍은 것인데, 캐주얼한 복장이었다.

 

사람들이 옛날 화려했던 시절, 멋있는 승무원복장 사진을 보여달라고 하면, 가지고 있던 사진을 보관하던 앨범을 도둑이 집에 침입해서 모두 훔쳐갔다고 말을 돌렸다.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도둑놈이 위험을 무릅쓰고 물건을 훔치러 들어왔으면 현금이나 패물 등 값나가는 물건을 가져가기도 바쁠텐데, 남의 사진 앨범을 무겁게 들고 가나?’ “아마 도둑놈이 시간이 남아서 한가롭게 앨범을 구경하다가 너무 미인이라 모셔간 것이 아닐까?‘ ”요새는 세상이 하도 이상해서 그런 정신 나간 미친 도둑놈도 있다고 하네요.’라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약간의 의문은 남지만, 그래도 박 상무가 자신의 무용담을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승무원을 잠시 동안이라도 했던 것만은 확실한 것 같았다.

 

박 상무는 자신의 빼어난 미모 때문에 주로 First Class를 담당했고, 그것도 뉴욕이나 파리 등과 같은 노선 좋은 곳만을 맡았다고 했다. 그래서 동남아 노선이나 국내선에 대해서는 한번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박 상무를 만날 때마다 항공사 이야기와 자신이 모셨던 유명 인사 이야기, 그리고 스튜디어스들의 애환을 들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비행기를 타고 수없이 외국을 드나든 것처럼 착각에 빠졌다. 박 상무의 말을 요약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최상급의 손님들은 모두 우아하고 품위가 있다. 이코노미 클래스의 4배 가까이 되니까 보통 사람들은 평생 가야 한번도 탈 수 없다. 비즈니스석은 이코노미 승객이 탈 때 지나가면서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할 기회가 있다.

 

그러나 퍼스트 클래스석은 차단되어 있어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들어가고 나가는 입구와 출구 자체가 구별되어 있다.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으면, 자연히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을 구별하게 되고, 없는 사람을 무시하고 우습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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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77)

 

남편이 죽고 혼자 남은 채명숙은 시간이 갈수록 외로웠다. 우선 남편이 남겨놓은 재산을 관리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부동산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 재산세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리고 일부 부동산을 임대하는데, 그것도 세입자가 항상 속을 썩였다. 불황이 심화되자 세입자가 나가고 다시 들어올 사람이 없어 공실로 비워두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술집으로 세를 주면 깡패 건달 같은 사람들이 들어와 월세도 잘 안주고, 나가라고 하면 문신을 한 사람들이 몇 명 나타나서 인상을 쓰고 앉아있다. ‘돈 많은 할머님께서 양보를 해야지, 우리 같은 서민들이 먹고 살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실제로 명숙은 52살이었는데, 깡패들이 할머님이라고 하니 모욕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왜 할머니라고 부르느냐고 호칭 가지고 싸울 수도 없었다. 깡패들은 가방끈이 짧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한 호칭을 제대로 구별할 능력이 부족한 것은 공지의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싸움만 하고 돌아다녀서, 이종과 고종을 구별하지 못한다. 이종사촌과 고종사촌을 헷갈려서 조선 시대 왕이었던 고종의 사촌을 말하는가 되묻는다. 더군다나 고종까지는 알겠는데, 이종은 고려시대 왕이냐고 호기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묻는다.

 

그런 사소한 문제로 째려보고 인상을 썼다가는 그 깡패들의 가슴에 새긴 용이 눈에서 화염을 내뿜고 번개처럼 날아오면 명숙은 실명할 위험성이 있었다.

 

그래서 늘 세입자와 소송을 하는 것은 일상의 다반사였다. 그러던 중 미국에서 돌아온 석양의 무법자’ ‘연애계의 황태자우리의 이호연이 나타난 것이다. 이호연은 우연히 하얏트 호텔 로비라운지에서 만났는데, 자신은 미국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미국 LA에서 로펌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미국에 6개월 가있고, 한국에 6개월 머문다고 했다. 말끔하게 신사복을 빼입고, 명품 넥타이에 카티에 손목시계를 찼다. 프랑스 향수를 뿌렸는지 3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향긋한 향기가 진동을 했다. 손에는 작은 손가방이 들려있었다. 스마트폰도 미국제품이었는데, 멋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가 필요해서 만났다. 서로 비즈니스를 상의하고, 외로울 때 합방을 했다. 맨날 바람만 피고 밖에 나가서 정력을 자랑했지, 집에 들어와서는 부인이 힘들까봐 에너지를 아끼고 있었던 죽은 남편 때문에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자신의 여성이 다 끝난 줄 알고 걱정이 태산같았는데, 호연의 테크닉에 의해 명숙은 곧 바로 옛날의 청춘으로 돌아왔다.

 

그 때문에 명숙은 호연에 의해 움직이는 기계나 로봇으로 변신했다. 그러면서 노예의 작은 행복감을 만끽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호연이 클럽을 인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명숙에게도 일부 자금을 투자하면 떼돈을 번다고 허풍을 떨었다. 실제 사회생활을 직접 해보지 않고 있었던 명숙은 호연의 국제적 비즈니스 감각을 믿고, 미국 변호사가 오죽 잘 알아서 하려니 하고 돈을 일부 투자했다. 호연은 명숙 뿐 아니라, 강남의 돈 있는 남자와 여자들로부터 돈을 모아 데스 밸리클럽을 인수했다.

 

그러나 클럽을 인수한 지 6개월도 되지 않아서 동업자끼리 분쟁이 생겼고, 결국 호연을 비롯한 운영자들은 하늘천 고태망 사장에게 클럽의 경영권을 넘겼다. 이 과정에서도 호연은 얼마나 재주가 좋은지 자신이 투자한 돈과 명숙투자한 돈은 모두 건졌고, 다른 투자자들만 골탕을 먹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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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76)

 

그 돈많은 부동산 준재벌께서 돌아가셨는데,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 대부분이 무슨 일 때문에 바빴는지, 장례식은 아주 조촐하게 가족 중심으로 치러졌다.

 

그리고 생전에 유언장은 써놓지 않았지만, 남자는 자신이 죽으면 화장을 해서 땅값이 많이 오른 곳에 수목장으로 할 것이라고 수없이 되풀이했으므로 부인은 하는 수 없이 그린벨트가 해제되어 땅값이 폭등한 곳에서 수목장을 지냈다. 한줌 재가 되어 부려졌다.

 

그런데 남자가 그렇게 돈을 떼어먹히고 억울하게 비명횡사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워낙 술을 좋아하고, 여자를 좋아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는 ‘그 사장은 오입하다 복상사를 했다’거나, ‘술에 만취해서 싸우다 뇌진탕으로 죽었다.’거나, ‘조폭의 부인을 건드리다가 칼을 맞았다’는 등의 해괴망칙한 소문이 퍼졌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보다는 ‘잘 돌아가셨다’, ‘원없이 살았으니까 무슨 여한이 있을까?’, ‘남의 땅을 싸게 샀으니 판 사람의 원한 때문에 그렇게 된 것 아닐까?’라는 말도 되지 않는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허망하게 한 남자의 인생이 막을 내리자, 과부가 된 여자는 졸지에 거액의 상속세를 내야 했고, 그 때문에 세무사 사무장과 붙어 다니다가 그 사무장에게 몸까지 주는 불상사가 생겼다.

 

상속세를 내고 나서도 그 여자에게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거액의 재산을 손에 거머지게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바람이나 피고 잔소리나 하던 남자가 떠나니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되었고, 세상이 완전히 달리 보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자가 혼자 되어 재물이 있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주변에서 이런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남자고 여자고 달라붙어 조금이라도 돈을 뜯어먹으려고 했다.

 

갖은 감언이설로 속이고, 매일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훌륭하다는 인격적 평가를 했다. 어떤 사기꾼은 여성 대통령도 나오는 세상이니, 최소한 국회의원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부추겼다.

 

사회 봉사를 하자고 하고, 교회에 가자고 하고, 절에 다니자고 하고, 사교춤을 배우러 가자고 하고, 골프회원권을 사자고 하는 사람 등등, 이 세상에는 돈 있는 여자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쓰려고 애쓰는 골빈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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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75)

 

이호연은 그렇게 한국으로 망명하다시피 돌아와서 몇 년을 건달로 보내다가 아주 우연한 기회에 돈 많은 과부를 한 사람 알게 되었다. 그 과부의 남편은 부동산투기를 해서 200억원을 벌었다.

 

피나는 노력을 해서 수도권 지역에서 개발되는 곳을 찾아다니며 싼 땅을 사서 10배 내지 20배 정도의 시세차익을 남기고 팔았다. 한참 부동산경기가 좋을 때 부동산투기를 해서 눈덩이처럼 돈이 모여지자, 그 남자는 사채놀이를 했다.

 

깡패를 끼고 고리대금업을 하니까 별로 돈도 떼어먹히지 않고 돈은 더욱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처음 시작할 때는 10억도 안되었는데, 불과 10년만에 20배가 되었다.

 

그것도 10년 동안 돈을 펑펑 쓰고 남은 것이 그 정도니 주변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 남자 생각만 하면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갑자기 졸부가 되고,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지자, 당연한 자신의 권리 내지 특권으로 생각하고, 젊은 여자들을 돌아가면서 애인으로 두고 거느렸다.

 

여자들은 황금 앞에서는 모두 머리를 숙이고, 노예처럼 몸을 맡겼다. 뙤약볕에서 하는 밭농사는 힘이 들지만, 달빛 아래에서 치루는 밤농사는 육체적인 노동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같이 즐기면서 육체의 향연을 치루면 그 대가로 황금이 쏟아지는 이상한 현대 사회의 게임이었다.

 

남자는 신바람이 나서 새로운 여자, 젊은 여자를 탐닉하려면 왕성한 정력과 지치지 않는 체력이 필요한 것을 일찍이 깨닫고 뱀탕전문가에게 부탁해서 일년에 한 달 정도는 집중해서 뱀을 달여먹었다.

 

살이있는 뱀을 물에 넣고 끊이면 뱀은 꼿꼿이 머리를 위로 내밀고 죽어서 굳어있다. 남자는 그 장면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다음에야 비로서 탕을 먹었다. 뱀탕집 주인이 가짜로 끊여서 주는지 진위 여부를 검사처럼 철저하게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남자는 일주일에 세 번 이상 그짓을 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보다 더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다.

 

그리고 술집에는 거의 매일 가서 살았다. 술집 마담 때문에 자주 가기도 했지만, 부동산 고급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공무원이나 부동산 전문가들과 수시로 술을 먹으면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는 대학교 부설 부동산과정에도 등록해서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남자 및 여자들과 친교 차원에서 외국 단체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런데 막대한 경비를 들여 해외여행을 하고 난 성과는 필리핀이나 태국에서 고급 맛사지를 한 것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막판에는 최소한 20억원은 벌 수 있는 물권을 싸게 사서 전매하려고 하다가 천하의 고등사기꾼을 만나 10억원을 하루 아침에 날리고 손해를 보았다.

 

잔금을 받기로 한 날 사기꾼이 중국으로 도망갔다는 사실을 전화로 알게 된 남자는 그 자리에서 강도 7.0 이상의 지진이나 쓰나미를 당한 것처럼 심한 충격을 받고 어~ 어~ 하면서 쓰러졌다.

 

그 때 마침 등산을 갔다가 내려오는 도중이었는데, 응급조치를 빠른 시간에 하지 못해 남자는 억울하게, 안타깝게 존엄한 생애를 길에서 등산복 차림으로 마감했다. 그런 부자가 막상 돌아가시자, 문상객은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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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74) 

 

하늘천주식회사에는 여자 상무가 있었다. 박천순 상무는 사장이 투자한 ‘데스 밸리(Death Valley)’라는 클럽을 관리하고 있었다. 데스 밸리는 서울 시내에 있는 Top 10 안에 들어가는 명문 클럽이었다. 돈 많은 젊은 사람들이 주된 고객이었다.

 

하늘천의 맹을성 사장이 이 클럽을 인수하게 된 것은, 어린 여자들을 꼬셔서 성관계를 하기 위해 몇 번 다니다가 역시 나이 든 남자가 어린 여자들을 만나려면 물좋은 클럽에 가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처음 이 클럽에 다닐 때만 해도 전 사장은 가급적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 영업을 하다보니 적자 투성이였다. 주류회사에서 외상으로 들여놓은 술값도 제대로 갚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전에 클럽을 경영하던 이호연 사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 바로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가서 공부는 하지 않고 집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놀러만 다녔다. 여자를 꼬시는 능력은 부모 피를 물려받아 탁월했다. 무슨 까닭인지 유학생 이호연 주변에는 여자들이 24시간 꼬였다.

 

시간이 가면서 영어도 서툴렀지만 여자를 꼬실 정도는 되자 이호연은 백인 대학생, 흑인 가수, 이탈리안 식당 종업원, 멕시코계 맥도날드 아르바이트생 등등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서 다양한 여자들을 애인으로 거느렸다.

 

로스앤젤레스에 새롭게 나타난 한국인으로서 ‘연애의 황태자’로 등국했다. 사람들은 그렇게 최단기간에 다양한 미모의 젊은 여자들을 동시에 애인으로 만들어 잘 관리하고 있는 사람은 이호연이 처음이라면서, 방탄소년이 미국의 음악계에서 명성을 떨친 것과 거의 비슷한 업적이라고 칭송하기 시작했다.

 

이호연의 비결은 꾸준히 여자들을 꼬시기 위한 노력을 한 것에 있었다. 이호연은 어떻게 하면 여자들을 자기 손아귀에 넣을 수 있을지만 생각하고 연구했다.

 

그리고 데이트에 들어가는 비용은 각종 거짓말을 해서 서울에 있는 부모로부터 송금을 받았다. 그리고 한국에서 준재벌이라고 떠벌렸다.

 

창덕궁의 후원에 있는 작은 건물을 연못을 배경으로 해서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그 건물과 정원, 연못이 자기 아버지가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별장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호연이 잠옷바람으로 나무에 걸터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것을 찍었으니, 외국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찍은 자동차 사진도 벤츠 600의 다양한 칼라로 6대나 찍어놓았다. 모두 아버지 차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좋은 시절을 보내던 이호연도 마침내 한국에서 건너간 단기 유학생 여자에게 걸려 신세를 조지게 되었다.

 

그 여학생도 처음에는 이호연을 좋아해서 몸 주고 마음 주고, 돈도 주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호연이 사기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책임지라고 달라붙었다. 그 여자는 집념이 강하고 한 번 마음 먹으면 반드시 하는 성격이었다.

 

호연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하루에도 300회 이상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마치 자살할 때를 대비해서 이미 유서도 써놓은 여자처럼 보였다.

 

그 여학생은 호연에게 ‘I will not meet anyone and have a sex with anyone except you.'라고 써달라고 요구했다.

 

호연은 별 생각없이 일시적인 곤경을 면하기 위해 써주었다. 그랬더니 그 여자는 곧 이어, ’If I break my promise, you may kill me.'라고 쓰라고 했다.

 

호연은 아차 싶었다.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구나. 나는 이제 미국에서 죽게 되었고, 한국에는 화장해서 뼈만 보내지게 되었다.’고 겁을 먹었다.

 

하지만 나중에 갈 때 가더라도 호연을 그 여자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래서 벌벌 떨리는 손으로 그 맹세를 썼는데, 다 쓰고 나서 보니까 처음 약속은 잘 써졌는데, 나중 약속은 마치 술에 취한 지렁이가 제멋대로 기어다니는 것 같아서 영어로 쓴 것인지, 히브리어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3개월 후 호연을 하는 수 없이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그녀에게 아무 연락도 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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