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73)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영미는 현식에게 냉정한 태도로 나왔고, 현식과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 현식은 영미가 사장과의 만남에 기울어져가고 있고, 그 이유가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직장에서 계속 붙어있고, 사장으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으려는 기대심리도 있는 것을 알고 분개했다.

 

영미의 인간성이 아주 나쁘다고 단정했고, 늙은 사장은 돈으로 여자를 꼬시고, 그 때문에 현식과 같은 순수한 남자의 사랑을 짓밟아 뭉개는 악마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 동안 영미가 자신의 애정을 받아줬기 때문에, 다분히 일방적이기는 했지만, 사나이 순정이 싹텄고, 그 때문에 한 달 동안 행복했는데 그것 마저 송두리째 무너졌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래서 어느 날 비장한 결심을 하고 영미를 만났다.

 

영미 씨! 나는 영미 씨를 사랑합니다. 이제 제게는 영미 씨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사장님과 만나지 말고, 다른 직장으로 옮겨요. 영미 씨는 내가 책임질 게요.”

 

영미는 말이 없었다. 영미는 현식을 사랑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제는 사장이 싫지도 않고, 회사를 그만 둘 마음은 추호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현식이 세상 물정을 모르고, 여자 마음을 전혀 모르면서, 혼자 착각에 빠져 다른 여자를 마음대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런 의미에서 현식은 너무 어리석은 남자였다.

 

현식 씨. 저도 어린 애가 아니예요. 그리고 예전에 이미 남자를 사랑했던 적도 있었어요. 배신도 당해보기도 했고요. 사랑 별 거 아니예요. 사랑이란 시간이 가면 모든 사랑은 시들해지고, 아무 것도 아닌 거예요. 잠시 타오르는 불꽃이지요. 그리고 사랑이 밥 먹여주는 것 아니예요. 현실이 중요해요. 냉정하고 비정한 현실 앞에서 추상적이고 무능력한 사랑은 곧 시들어버리고 소멸하게 돼요. 그 때 남는 것은 왜 현실보다 사랑을 우위에 두고 어리석게 몸을 뜨겁게 만들어 에너지만 소비했고, 단기적인 이익을 포기했는지 하는 후회만 남아요. 제가 살아가는 방식을 욕하지 말아요. 지금 사장은 저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고, 돈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예요. 저를 좋게 보고, 귀여워하고 있어요. 그런 사장의 호의를 차는 것은 저로서는 손해예요. 그러니 이해해 주세요.”

 

현식은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부었다. 그리고 단숨에 들이켰다. 안주는 김치 몇 젓가락이었다. 술이 썼기 때문에 매운 김치로 속을 달래야했다. 쓴맛과 매운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세 잔을 갑자기 마시자, 머릿속이 맑아졌다.

 

술에 취해 혀는 꼬부라졌지만, 이성과 판단력은 더러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현식은 갑자기 영미 옆으로 자리를 옮겨 어깨에 팔을 올려놓았다. 영미도 술을 상당히 마신 상태라 현식의 그런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영미 씨이! 그래. 잘 사아라요. 늙은 놈 처이비 되어서 부귀영화 누려요. 내가 포기할 게요.”

 

이 일이 있은 후 현식의 태도는 크게 달라졌다. 영미를 더러운 벌레처럼 보고, 사장은 더러운 뱀처럼 보았다. 하지만 자신의 일은 종전보다 두배 열심히 했다.

 

그러면서 회사의 비리를 집중적으로 들이파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았다. 비리나 잘못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때 그때 파일을 복사하고 장부는 복사해서 집으로 옮겼다. 아주 용의주도하게 사장에 대한 복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사장을 위해 충성을 다하며, 영미에 대한 구애도 포기하고, 남들이 벌이는 로맨스가 더럽든 깨끗하든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현식의 내심도 모르고, 영미는 본격적으로 사장과 밀애를 즐겼다. 사장은 영미를 정식의 애인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핸드백이니 구두니, 옷이니 각종 명품을 사주었고, 외제차까지 사주었다.

 

영미는 하루 아침에 신데렐라로 팔자를 고치는 것처럼 보였다. 사장은 아예 영미 이름으로 오피스텔까지 얻어놓고 그곳에서 밀애를 즐기는 것이었다.

 

하기야 돈 많고 사회적 체면 있는 주제에 영미와 호텔이나 모텔을 전전한다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늙은 사장이 차를 직접 운전하고 한적한 곳으로 나가 차안에서 정사를 벌이다가는 젊은 사람들에게 들켜서 봉변을 당할 위험이 높다.

 

가끔 고급 승용차를 가지고 카섹스를 하고 있으면, 못된 사람들이 멀리서 돌을 던져 차를 파손하고 도망간다. 그러면 발가벗고 있다가 재물손괴범을 따라가서 잡기는 불가능하다.

 

비싼 차 수리비만 많이 들어가고 돌에 맞는 순간 극도의 불안심리가 작용해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도 있다.

 

래서 약은 사장은 오피스텔을 얻어놓은 것이다. 회사에서 경리를 담당하고 있는 현식은 갑자기 사장이 회사 자금으로 오피스텔을 전세로 얻는 것을 알고, 그 오피스텔까지 몇 차례 가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곳 주차장에는 사장이 사준 영미의 작은 벤츠가 버젓이 주차되어 있었다.

 

현식은 참고로 하려고 그 벤츠 사진까지 찍어놓았다. 그리고 그런 것 때문에 극도로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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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72)

 

김현식은 무엇 때문에 검찰청에 직접 와서 회사에 대한 범죄정보를 주려는 것일까? 그는 정현에게는 그냥 사회 불의를 보고 참을 수 없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말했지만, 속사정은 따로 있었다.

 

현식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몇 군데 직장을 거쳐서 이 회사로 와서 경리업무를 맡았다. 42살까지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성격이 상당히 내성적이고, 여자에 대해 무뚝뚝하고 자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동안 몇 명의 여자를 만나 데이트도 했지만, 모두 여자쪽에서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고 결별을 선언했다.

 

그때마다 현식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견실한 직장에서 월급도 많이 받고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이다. 인물도 보통이고, 체격도 보통이다. 성적 능력도 보통의 남자들보다는 낫다.

 

그리고 여자를 만나면 돈도 쓸만큼 쓴다. 그런데도 한 두달 지나면 여자들은 현식을 싫어한다. 만나면 아무 재미도 없어 지루해하고, 빨리 집에 가려고 한다. 그 이유를 현식은 아무리 생각해도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그러다가 3개월 전에 같은 회사에서 비서실에 근무하는 정영미를 좋아하게 되었다. 영미는 35살이었다. 사장 비서로서 오래 근무한 베테랑이었다.

 

어느 날 회사 직원들이 회식을 하고 2차로 술을 마시러갔다. 그날 현식은 술을 많이 마시고 취했다. 술에 취해 회식장소에서 혼자 밖으로 나와 비틀거리면서 걸아가고 있었다. 현식은 큰 건물 앞에 앉아 술에 취해 토를 하고 있었다.

 

그때 영미가 지나가다 현식을 발견했다. 영미는 아직 일행이 술집에 있었는데, 오래 있기기 그래서 먼저 몰래 빠져나와 집으로 가고 있던 중이었다. 영미는 나이 들어 결혼도 하지 못하고 회사 일만 열심히 하고 있는 현식이 불쌍해 보였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현식을 택시에 태우고 같이 현식의 집까지 갔다. 그 다음 날 그런 사실을 알고 현식은 영미에게 고맙다는 인사로 백화점 상품권 50만원 어치를 사서 주었다.

 

물론 영미는 받지 않았다. 그 대신 현식에게 저녁을 한 번 사라고 했다. 그 때문에 몇 번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해서 같이 식사도 하고 술도 마셨다. 영미는 단지 인간적으로 불쌍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현식을 좋게 생각했던 것이었지만, 현식은 그런 영미를 오해하고 영미도 현식을 좋아하는 것으로 착각했다. 한번 좋은 감정이 생기자, 현식은 회사에 출근하면 모든 신경이 영미에게 가 있었다. 그리고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몇 번은 영미의 얼굴을 보아야했고, 말을 걸어 목소리를 들어야했다.

 

그런데 사장이 갑자기 영미에게 눈독을 들였는지, 추근덕 거린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사장이 아무 이유도 없이 영미를 데리고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 일이 많아졌고, 영미는 현식이 식사를 하자고 해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거절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퇴근시간에 현식은 영미를 따라가서 만났다. 싫다는 영미를 거의 강요하다시피 해서 식사를 하러 갔다. 그 자리에서 영미는 평소와 달리 취하고 싶었는지 술을 많이 마셨다. 그러면서 사장이 자꾸 귀찮게 해서 회사를 그만두어야겠다는 말을 했다. 현식은 흥분했다.

 

아니, 늙은 사장이 왜 그래요?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두면 어떻게 해요?”

사장님이 망령이 들었나 봐요. 자꾸 추근덕 거려요.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따라가면, 자신이 사업에서는 성공했지만, 사랑에는 실패한 패배자라고 되풀이하면서 제가 자꾸 좋다는 말을 노골적으로 해요. 그래서 제가 저는 결혼할 사람이 있다고 했더니, 그때부터 냉냉한 태도로 나와요. 그러다가 며칠 지나면 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저에게 프로포즈를 하는 거예요.”

 

그거, 직장 내 성희롱 아니예요? 몸에도 손을 대고 그러던가요?”

몸에 직접 신체접촉을 하지는 않아요. 다만 사장실에 들어가면 제 가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나올 때는 제 히프만 보는 거예요. 눈빛이 아주 음탕하고, 음성도 게슴츠레하고, 아주 징그러워요.”

 

왜 더 단호하게 의사표시를 하지 그래요?”

글쎄요. 이론상을 그래야겠지만, 만일 그랬다가는 이 회사에서 더 이상 근무를 못하게 되잖아요? 이 나이에 지금처럼 편한 직장을 다시 구할 수도 없을 테고, 직장 상사와 이런 문제를 일으키고 퇴사하면 다른 회사에서도 채용하지 않을 것도 걱정이예요. 그래서 더 참고 사장이 제 정신으로 돌아올 것을 기다려보는 중이예요.”

 

영미 씨는 왜 결혼하지 않고 있어요? 물어봐도 될까요?”

그건 비밀이예요. 미안해요.”

아니 괜찮아요. 쓸데 없는 질문해서 미안해요.”

 

현식은 이런 대화를 통해 더욱 영미에게 일방적인 애정을 느꼈다. 그렇다고 섣불리 사랑을 고백할 상황도 아니었다. 잘못 말을 꺼냈다가는 미친 사람이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식의 영미에 대한 사랑은 저 혼자 타들어갔다. 아주 뜨겁게, 뜨겁게 저 혼자 불꽃을 피우는 불나무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현식은 영미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그러자 영미도 특별한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두 사람은 본격적인 데이트에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은 영미를 데리고 저녁 식사를 갔다가 노골적으로 애정 표현을 했다. 영미는 흔들렸다. 나이 들고 무능력한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는 입장에 직장을 쫓겨나서는 곤란할 것 같았고, 사장의 요구를 들어주면 일단 경제적 혜택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영미는 현식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 소문대로 현식은 성격이 남자답지 못하고 너무 내성적이면서 여자에 대한 배려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영미는 사장이 원하는 대로 같이 식사도 하고 술도 마셔주는 역할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아직 육체적 관계까지는 허용하지 않았다.

 

나이 차가 무려 30살이나 나는 늙은 사장, 아버지와 나이가 비슷한 남자와 몸을 섞는다는 건 아무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고, 자칫 잘못하면 자신이 사장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도구 또는 비계덩어리로 전락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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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71)

 

퇴근시간이 다 되어 김현식이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미리 전화로 사전 연락을 했던 사람이다. 중요한 사건 제보자이기 때문에 정현으로서는 아주 친절하게 대했다. 김현식은 자신이 다니던 회사 내부의 비리에 관한 제보를 하려고 왔다.

 

“어떤 내용을 알고 있습니까?”

“예, 제가 이 회사의 경리책임자로서 5년 동안 근무를 했습니다. 그래서 회사의 회계상의 문제와 비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에 관한 일부 자료도 가지고 왔고요. 그런데 이 회사 사장이 너무 나쁘고 악질입니다. 그래서 도저히 가만 둘 수가 없습니다. 이런 악덕기업인은 반드시 우리 사회에서 추방되어야 합니다.”

 

정현은 단 둘이서 장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우선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자료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김현식이 제보하는 내용은, 주로 회사에서의 리베이트 수수로 인한 비자금조성, 업무상 횡령, 탈세, 공무원에 대한 뇌물공여 등이었다.

 

뿐만 아니라 사장은 클럽을 운영하면서 마약, 성매매 등의 범죄에도 관여하고 있고, 서울 근교에 별장을 만들어 공무원이나 사회 유력인사를 초대해서 성접대까지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장이 여비서를 성폭행하기도 하고, 어떤 여직원은 아예 첩으로 두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그리고 외국에 많은 돈을 빼돌려놓았다는 것이다.

 

제보자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면 정말 이런 악덕 기업인은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사회의 공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정현은 제보자에게 연락처를 남겨 놓고 일단 돌아가 있으라고 했다. 자료 검토를 한 다음 며칠 있다가 다시 만나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제보자와의 면담 때문에 정현은 유미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은 급한 일이 생겨서 약속을 취소한다는 내용이었다.

 

유미는 정현의 문자에 대해 아무런 답장이 없었다. 화간 난 것같았다. 하지만 정현은 어쩔 수 없었다. 김현식이 돌아간 다음 즉시 유미에게 전화를 했으나, 유미는 전원을 꺼놓고 있었다.

 

정현은 김현식이 제보한 사건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를 하기로 했다. 우선 부장검사에게 제보내용을 정리하고 수사계획서를 만들어 보고했다. 부장은 회사 이름을 듣더니 갑자기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리고 정현이 수사를 하겠다는 말에, ‘규모가 큰 회사에 대한 수사는 신중해야 하고, 만일 나중에 법원에 가서 무죄가 나면 큰 일이니, 잘 생각하라.’는 취지로 주의를 주었다.

 

정현은 약간 이상했다. 그전에는 정현이 어떤 제보를 받아 특별수사를 하겠다고 하면 부장은 무조건 잘 한다고 칭찬을 하고 격려를 해주었다.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정현의 수사활동을 지원해주었다. 상급자로부터나 외부로부터의 수사에 관한 압력이나 청탁도 부장은 중간에서 잘 막아주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 관해서는 처음부터 무언가 못마땅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정현은, ‘혹시 이 회사 사장이나 임원 중 부장이 아는 사람이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정현은 그 다음 날부터 이 사건에 매달렸다. 우선 김현식을 다시 만나 며칠 동안 상세한 진술을 청취했다. 그리고 회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어떻게 할 것인지, 중요한 서류를 회사에서 어디에 보관하고 있는지, 은행거래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등에 관한 상세한 검토를 하였다.

 

하늘천주식회사에서는 공식적인 회계장부 이외에 실제 매출과 비용 등을 제대로 기재한 비밀장부를 따로 만들어 관리하고 있었다. 회사 비자금을 별도 통장으로 거래하고 있었고, 상당 부분은 현금으로 만들어 금고에 보관하고 있었다. 사장의 비밀 금고는 사장 집 지하실에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김현식은 회사 내부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 누가 경리를 담당하고 있는지, 어떻게 비자금을 조성하는지, 그 비자금을 사장이 어떻게 보관하고 사용하는지, 관계 있는 공무원들은 누구인지 등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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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70)

 

검사에게 직접 찾아와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소장이나 진정서를 내면 되지만, 그렇게 공개적으로 사건화 시키는 것을 꺼리고 검사에게 중요한 범죄정보를 직접 제공하려는 것이다.

 

고소장이나 고발장을 내게 되면 일반적인 사건처리절차에 따라 처리되기 때문에 제보자의 신분이 즉시 노출된다.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고 타인의 비리를 폭로하기 위한 수단으로 직접 수사기관을 찾아가 범죄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익명이나 가명으로 제보를 하기도 한다. 탈세사건의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요새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익명의 제보는 별로 효용성이 없다. 수사기관이나 사정기관에서 특별한 취급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익명의 제보라 해도, 그에 어떠한 구체적인 증거자료가 첨부되어 있고, 객관적인 신벙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수사기관에서는 이를 근거로 별도의 내사활동을 벌인다. 또는 수사관의 범죄첩보보고, 범죄정보보고라는 방식으로 상급자에게 보고서를 제출하고, 그에 따라 내사사건으로 분류하여 내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탈세의 경우 등에는 신고자에게 포상금이 지급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범죄행위나 불법행위 또는 위법행위를 일부러 찾아다니면서 증거를 확보하여 신고를 하고 포상금을 받는 것을 아예 직업으로 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약간 이상해 보이지만, 나름대로는 법과 정의를 지키는데 일조를 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또는 언론기관에 제보함으로써 기사화한 다음, 언론보도내용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특히 상대가 정치인이나 공무원, 또는 연예인 등 사회저명인사의 경우에는 일단 언론에 보도가 되면, 나중에 무죄를 받는 경우에도 공직에서 물러나야 하고, 사회적으로 심한 타격을 받게 된다.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언론사를 찾아가 제보를 하거나 하소연을 하는 것이다.

 

어떤 비리나 범죄에 대한 언론사의 보도는 매우 무서운 힘을 가진다. 즉시 여론이 불같이 일어나 범죄인, 가해자에 대한 수사가 착수되고, 처벌이 이루어진다.

 

어떤 여자 검사가 남자 검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한 방송사에 공개적으로 인터뷰를 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그 후 어떤 현직 도지사에 대한 성범죄가 언론 인터뷰로 공개되었다. 이런 언론보도를 계기로 me too 운동이 한참 진행되었다.

 

그 도지사는 사표를 내고 피의자로 조사를 받고 구속영장까지 청구되었다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나중에 1심재판에서 도지사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여성집회에서는 무죄판결을 선고한 재판부까지 비판하면서 ‘왜 명백한 성범죄인데, 편파적으로 재판하여 무죄로 만들었느냐?’는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 후 도지사에 대한 무죄판결에 대해 검찰에서 항소를 하였고, 항소심에서는 1심 판결을 뒤집고, 피고인에 대해 실형 선고를 하였다. 실형이 선고되면서 도지사는 법정에서 곧 바로 구속되고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대법원에 상고를 하였지만, 결국 언론에 폭로한 최초 수사단서 때문에 현직 도지사의 운명이 이렇게 한 순간에 뒤바뀌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를 하는 것이나, 청와대 국민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것도 결국 중요한 경우에는 수사의 단서로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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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69)

 

한 여름의 폭염 때문에 무척 고생을 했는데, 폭염이 끝나자마자 곧 무서운 태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태풍 솔릭이 한반도에 들이닥친 것이다. 강풍이 이어지면서 도심지에서는 신호등과 담벼락이 무너지고,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졌다.

 

제주도 공항에서는 항공편 결항이 속출했다. 제주도에 볼 일이 있어서 갔다가 서울로 와야 할 사람들은 갑자기 발이 묶여 난리가 났다. 그렇다고 배를 타고 올 수도 없다. 배편은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바닷가에서 일을 하다가 파도에 휩쓸려 실종된 사람도 생겼다. 태풍이 무서운지는 알고 있었지만, 역시 자연재해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정현이 근무하는 사무실도 창밖이 어두컴컴했다. 태풍이 심하게 불어치는 것을 보면서 심란할 수밖에 없었다. 퇴근 시간이 되면서 정현은 퇴근을 걱정했다. 이럴 때에는 자동차보다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고 안전할 것 같았다.

 

오늘 저녁 퇴근하면 정현은 유미를 만나서 같이 식사를 하기로 했다. 며칠 전에 약속을 해놓았는데, 날씨가 갑자기 이렇게 나빠서 취소를 해야 하나, 어쩌나 고민도 되었다. 하지만 유미와 이미 정한 약속을 날씨 때문에 연기하거나 취소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사무실에서 울리는 업무용 전화의 벨소리는 언제나 긴장을 하게 만든다.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휴대전화의 벨소리나 진동소리와는 전혀 다르다.

 

“검사님! 어떤 사람이 검사님을 바꿔 달라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누구지요?”

“어떤 사건에 관한 제보를 하겠다고 하면서, 저에게 말해도 된다고 했더니 굳이 검사님을 바꿔달라고 해요. 꼭 검사님과 직접 통화를 하고 싶다고 하는데요?”

“예. 바꿔주세요.”

계장은 전화를 바꿔주었다.

“여보세요. 박 검삽니다.”

“아. 검사님이세요. 저는 검사님께 중요한 제보를 드리려고 합니다. 꼭 만나서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어떤 내용인지 간단히 전화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전화로는 제대로 설명드리기 곤란한 사건입니다. 어떤 회사의 비리에 관한 큰 사건입니다. 꼭 만나 뵙고 싶습니다.”

“그래요? 그럼 제 사무실로 오세요."

 

정현은 중요한 범죄정보를 제보하겠다는 사람에게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원래 검찰청사는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고소인 또는 피고소인, 피의자, 변호사 등 사건관계인만이 검사실에 들어갈 수 있다.

 

검사실에 들어가 검사를 만나기 위해서는 사전에 검찰청으로부터 출석요구통지서를 받거나, 검사실과 미리 연락을 해서 들어오라는 승낙을 받아야 가능하다. 그리고 들어갈 때에도 신분증을 맡겨 놓고, 보안검색을 받아야 한다.

 

혹시 칼이나 도끼 같은 것을 가지고 검사실에 들어가 사건처리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검사나 직원에게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검사실에 손도끼를 들고 들어가서 검사와 직원을 감금하고 협박하다가 검거된 사건도 있었다. 검찰청에 들어가서 소지한 농약을 마시고 음독자살한 사례도 있었다. 판사를 상대로 흉기로 상해를 가한 사건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상대방을 변론하고 있는 변호사를 찾아가 칼로 상해를 가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대법원장이 출근하는 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승용차에 화염병을 던지기도 했다.

 

법원이나 검찰청은 사건 때문에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 테러나 공격대상이 될 위험성이 있다. 한국이나 외국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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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작은 운명이야기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소설, ‘작은 운명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랜 검사생활과 변호사생활을 통해서 수많은 죄와 벌에 관해 보고 듣고, 고민하고 느껴왔습니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법 없이도 살고, 죄와 벌에 관해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겪은 수많은 사건의 당사자, 이해관계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법 때문에 고통을 받고, 죄와 벌 때문에 인생이 망가지기도 합니다.

 

특히 어린 자녀들의 경우는 더욱 위험합니다. 법을 몰라서, 세상을 몰라서, 사건에 휘말려 들어가고, 피해를 보고, 인생을 망치기도 합니다.

 

제 소설은 실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우리 자녀들이 알고 있으면 좋겠다 하는 것들을 추출해서 보여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168회분을 연재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쓸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페친 여러분들께서는 제 소설을 읽으시고 좋은 의견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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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68)

 

아무래도 돈 많은 정자가 아는 사람도 있을 것 같고 해서 두 사람은 정자의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정자는 은영의 설명을 다 듣더니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아주 좋은 기회야. 무조건 아이를 낳는다고 통보하고 더 이상 연락을 하지 마. 나는 전에 이런 비슷한 케이스를 봤어. 어떤 돈 있는 집안에서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을 했어. 그 아들이 술집에 나가는 여자와 연애를 했는데 임신을 한 거야. 남자는 전혀 몰랐어. 그런 사실을. 여자는 임신한 사실을 숨기고 계속 만났어. 병원에서 임신한 사실을 확인하고, 그 남자의 아이라는 확신이 들자, 남자에게 말했어. 아이를 낳아서 혼자 키우고, DNA검사를 해서 가정법원에 친부확인소송을 걸어서 판결을 받은 다음, 남자의 가족관계증명부에 자식으로 올려놓고, 양육비를 19세 될 때까지 법으로 받아내고, 그 남자가 나중에 죽으면 자식으로서 재산상속을 받는 거야. 그리고 그 남자가 결혼한다고 하면 결혼식장에 가서 신부측에 이야기를 하는 거야. 왜 우리 애아빠하고 결혼하느냐고 젊잖게 물어본다는 거지. 법에 저촉되지 않게. 그랬더니 남자 부모가 큰일 났거든. 좋은 집에 장가가기도 어려울 수 있고, 양육비를 매달 70만원만 잡아도 19년 동안 물어줘야지, 죽으면 상속권도 있다고 하지, 총각이 호적에 자식이 올라가지. 인생 조지는 거잖아? 그래서 남자 집에서 3억원을 주고 합의를 했대. 그러자 여자는 아이를 낙태하고 그 돈 가지고 치킨집을 차려서 열심히 살고 있대. 그러니까 은영이 너도 좋은 기회니까 한 3억원 받고 합의해줘. 즉시 합의할 거야. 말로 하지 고 내용증명으로 보내. 놀래서 즉시 합의할 거야. 돈 많이 받으면 우리 셋이서 술 같이 먹자. 옷도 한 벌씩 사줘. 알았지!”

 

글세 그게 통할까? 너무 많은 돈을 요구한다고 공갈죄로 고소하지 않을까? 아니면 집 앞에 가서 일인시위를 할까? 아빠 사무실에 찾아가서 피켓 들고 서 있을가? 엄마 약국에 가서 드러누울까?”

아냐 일단 기다려 봐. 곧 무슨 연락이 올 거야. 그 남자 집안이 막 사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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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67)

 

은영은 친구 정자를 불러냈다. 정자는 이런 문제에 대해 경험이 많기 때문이었다. 주변에 있는 변호사들과 많은 상담을 해서 웬만한 문제는 변호사 이상으로 많은 지식이 있었다. 정자는 은영 친구의 이야기를 듣자 갑자기 본인이 흥분하면서 소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정말 요즘 세상은 말세야. 남자들이 등신이 다 되어서 그래. 일단 합의하지 말고 기다려. 배짱으로 나가면 돼. 먼저 그 여자가 찾아오면 맞고소를 해. 행패를 부리거나 폭행 또는 협박을 하면 형사고소를 해. 그리고 아파트를 밀고 들어오면 주거침입죄가 되는 거야. 그리고 위자료 청구가 들어오면 그 남자도 같이 피고가 되든가, 아니면 증인으로 나오게 되니까 그때 강하게 따지면 돼. 그리고 남자가 강압적으로 섹스를 했다고 주장하고, 남자가 부인과 이미 파탄이 난 상태라 이혼을 하려고 준비중에 있는 상황에서 엄마를 좋아했다고 하면 돼.”

 

은영 친구는 은영과 정자로부터 많은 어드바이스를 들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간통죄는 없어졌지만, 법은 이렇다. 우리나라 법은 일단 혼인신고가 되어 부부로 되어 있으면 남편과 아내는 성적 성실의무가 있다. 이것을 위반하면 위반한 쪽은 상대방에게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함께 바람을 핀 다른 사람도 상대의 배우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그런데 나이가 65세인 혼자 사는 여자가 68세된 유부남과 연애를 했다고 해서 그 마누라에게 왜 3천만 원이나 되는 큰 돈을 물어주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 나이든 남자의 아내는 이 문제로 얼마만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까? 그리고 그 고통을 금전으로 배상할 때 과연 어느 정도의 금액이 적정한 것일까? 매우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은영과 그 친구, 그리고 정자는 모두 여자의 입장에서도 그 남편 되는 남자의 행태가 정말 추하고 더러워보였다. 그래서 세 사람은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하지만 은영은 뱃속에 있는 아이 때문에 술을 입에 대지도 않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개인이 다른 사람의 뒷조사를 하거나 어떤 정보나 자료를 얻기 위해서는 여전히 많이 이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름이 지난 다음 흥신소에서는 은영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아왔다.

 

은영이 1년 전에 몇 개월 동안 술집에서 일하는 남자와 동거를 했다는 사실과 그 동안 낙태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다는 사실, 혼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월세로 방을 얻어 아주 어렵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왔다.

 

어떻게 알아왔는지는 말해주지 않았으나 매우 정확한 정보 같았다. 명훈 엄마는 이러한 자료를 가지고 아빠와 상의했다.

 

명훈아빠는 명훈엄마의 말을 듣고 깊이 생각했다. 여자 아이가 보통이 아닌 것 같은데, 잘못 핸들링 했다가는 일을 그르칠 수 있다. 그러니까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아빠는 이럴 때는 차라리 명훈이 다시 은영을 만나서 잘 지낼 것처럼 제스처를 보이고 설득시켜 낙태를 시키는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런데 아직 명훈이 22살밖에 되지 않아 잘 해낼 지 걱정이었다. 명훈엄마는 반대였다. 그러다가 더 확실하게 굳어지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명훈부모는 오직 명훈에 대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은영은 아무 상관없는 남이기 때문이다.

 

은영은 성당에 가서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했다. “신부님. 제가 결혼도 하기 전에 아이를 가졌어요. 저는 아이 아빠를 죽도록 사랑해요. 그런데 남자는 저를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해요. 아직 어려서요. 그 부모는 결사반대해요. 저보고 낙태하라고 해요. 신부님. 어쩌면 좋아요. 낙태는 살인이잖아요?”

 

신부님은 고민했다. 이런 경우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이 어린 양은 지금 인생의 중대한 위기에 처해있다. ‘낙태를 하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아이를 낳으라고 해야 할까?’

 

로마 교황청에서는 아직까지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다. 낙태는 그 자체로 죄악이라고 본다.

 

자매님! 가급적 아이 아빠와 결혼하도록 해요. 아이를 낙태한다는 것은 죄악이예요. 생명을 죽이는 거예요. 아이까지 가졌는데, 왜 결혼을 못해요. 그 남자를 잘 설득시켜서 기다렸다가 결혼하는 것으로 해요.”

 

하기야 신부님이 달리 할 말씀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은 은영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공허한 메아리로 들렸다. ‘이런 질문을 신부님께 한 게 바보지. 신부님이 어떻게 알겠어. 내가 내 인생 결정해야 하는 거지.’

 

낙태에 대해서는 명훈 엄마 역시 약사로서 반대하는 강한 개인적인 소신을 가지고 있다. 명훈 엄마도 어렸을 때부터 모태신앙으로 성당에 다니고 있다.

특히 약학을 공부했고 약사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한 번도 원치 않는 임신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낙태도 하지 않았다. 결혼할 때도 명훈 아빠와 첫경험을 했다. 그때까지 순결을 지킨 여자였다. 그래서 피임을 기술적으로 했고, 낙태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 일을 당하자 갑자기 낙태는 허용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고, 낙태죄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자신의 아들 문제가 되자, 원치 않는 임신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생각하게 되었고, 만일 낙태를 하지 않고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 아이 때문에 겪을 고통과 불행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명훈 아빠야 바람을 피면서 다른 여자들로 하여금 낙태를 하도록 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낙태를 하든 말든 자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자기 아들의 정자가 못된 여자의 난자와 만나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냥 지저분하고 용납 못할 저급한 인간의 행동이라고 생각되었다.

 

인간은 이처럼 자신의 일과 남의 일을 엄청나게 다른 잣대로 판단하고 평가한다. 인식하고 생각한다. 하늘과 땅 차이다. 모든 인간의 불행은 바로 이런 이중잣대로부터 비롯된다.

 

은영은 명자와 이런 저런 상의를 했다. 명훈 엄마 태도를 봐서 절대로 결혼은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 명훈 역시 은영을 싫어하고, 애만 뗄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좋을까? 두 사람 머리로서는 도저히 좋은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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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66)

 

한편 은영은 박 기사로부터 1천만 원은 받았지만 낙태수술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낙태를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은영은 아무래도 명훈을 잊고 살 자신이 없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명훈처럼 좋아해 본 남자는 없었다. 명훈이 바람둥이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알지만, 은영에게는 지금 명훈의 아이가 뱃속에 있고, 아이먄 낳으면 명훈의 마음도 돌아올 것 같은 생각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명훈을 닮은 아이를 낳으면 더 이상 행복이 있을 수 없었다. 잘 생기고, 남자답고, 또 은영이 자신처럼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가 태어나서 은영과 평생 같이 간다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은영은 마음을 굳혔다. 박 기사에게 전화를 했다.

 

아무래도 아이를 낳아야 할 것 같아요. 미안해요. 돈은 돌려드릴 게요. 정말 미안해요. 제 입장을 이해해 주세요.”

아니! 정말 나쁜 O이네. 그렇게 좋게 이야기했으면 알아들어야지. 너 이젠 끝이야. 네 과거 다 알리고, 너를 사기와 공갈로 잡아넣겠어. 기다려. 이 나쁜 인간아!”

 

박 기사는 흥분해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은영은 무서워서 전화를 끊었다. 세상이 너무 무서웠다. 연약한 여자로 살아가기에는 주변에 너무 많은 맹수와 독사가 우글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아무 잘못도 없는데, 내가 사랑하는 남자 아이를 낳겠다는데 왜 나를 이렇게 나쁘게 생각하는 걸까?’

눈물이 흘렀다. 그러면서 배를 어루만졌다. 뱃속에서는 아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힘을 내야 해. 아이 때문에. 내가 져서는 안 돼.’ 그리고 이를 악물었다.

 

박 기사는 흥분한 상태로 명훈 엄마를 만났다. “아니 이 나쁜 인간이 결국 사기를 쳤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사람을 잘못 봤어요. 이렇게 합의서까지 써놓고 돈만 떼먹고 수술을 안 하겠대요. 어떻게 하지요?”

일단 돈은 돌려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사실은 그 여자가 모텔방에서 나체로 있는 사진을 찍은 것을 제가 입수했어요. 이걸 가지고 사모님이 한번 만나 보시면 어떨까요? 정말 난잡하고 아주 더러운 여자라는 증거를 가지고 만나서 혼을 내주면 떨어질 지 몰라요.”

아니 이건 어디서 구했어요? 정말 지저분한 애네요. 우리 명훈이가 정말 재수 없어 이런 여자를 만난 거예요. 알았어요. 내가 그 여자를 만나볼 게요.”

명훈 엄마는 즉시 은영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은영은 더 이상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은영은 명훈 엄마로부터 계속해서 전화가 오자 속이 상하고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전화를 받아야 할 말도 없고, 그렇다고 아이를 낙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받은 돈 천만 원을 돌려줄 이유도 없다. 명훈네가 돈이 많은 사람들일뿐더러, 명훈의 아이를 낳아야 할 입장이기 때문에 천만 원 정도는 당연히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혼자서 어떻게 할까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데, 친한 친구인 경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속상한 일이 있어 같이 상의 좀 하자는 이야기였다. 은영은 경자가 정해준 장소로 나갔다. 초저녁인데 경자는 벌써 술에 취해 있었다.

 

은영아!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니? 우리 엄마가 아빠 돌아가시고 5년 째 혼자 살고 계신데, 전부터 같은 동네에서 사는 어떤 아저씨가 집요하게 엄마에게 달라QNX어서 하는 수 없이 연애를 했대. 그런데 그 아저씨 부인이 이런 사실을 알고 엄마에게 위자료를 3천만 원 내놓으라고 한 대.”

 

아니 그게 말이 돼? 둘이 같이 재미 보고 왜 엄마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한 대? 나쁜 사람들 아냐?”

그 아저씨는 그 아줌마와 이혼할 생각도 없대. 그런데도 아줌마는 우리 엄마에게 갖은 욕설을 다 하고, 화냥 O이라고 하면서 난리를 치고 있어.”

그런 경우에는 그 남자가 다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거 아냐? 그리고 지금 간통죄도 없어졌는데 왜 그렇게 겁을 먹고 그러니? 너희 엄마는? 아빠 돌아가시고 혼자 산다면서?”

 

문제는 우리 엄마는 자기 명의로 아파트가 있어. 그 아저씨는 돈도 없고, 몸도 아프대. 그리고 그 아저씨 부인이 펄펄 뛰고 난리를 치고 있는 거야. 아저씨는 지금 엄마 전화도 받지 못하고,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라고 딱 끊어버리고 있어.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니?”

 

근데 그 쪽에서도 이혼도 하지 않고 너희 엄마만 상대로 소송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서로 정을 통하지 않았다고 잡아떼면 되지 않니? 증거가 없을 거 아냐? 그리고 엄마는 뭐라고 해? 육체관계를 했다고 해?”

 

. 그 아저씨 핸드폰을 그 여자가 봤대. 둘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도 있고, 둘이 같이 찍은 사진도 있대. 그리고 그 여자가 난리를 쳐서 엄마도 다 인정하고, 잘못했다고 빌었대. 다만, 엄마는 위자료를 깍아달라고 하는 거야.”

 

무엇을 잘못했다고 빌어? 아니! 혼자 사는 여자가 유부남이 따뜻하게 대해주면서 사랑한다고 하면 같이 사랑할 수도 있는 거지, 도대체 그 마누라는 어떤 피해를 보았다고 떠드는 거야? 지가 남편 잠자리 못해주면 미안하게 생각하고, 저 대신 다른 여자가 잠자리 서비스 해주었으면 고맙게 생각해야지 무슨 위자료를 청구하고 있는 거야?”

 

그 남자는 연락도 안 받고, 모든 걸 마누라에게 맡기고 있다고 해. 그리고 곧 동네에 소문을 퍼뜨리겠다고 공갈 치고 있어. 그리고 빨리 합의하지 않으면 엄마 집에 와서 망신을 주고 창피를 주겠다는 거야.”

 

엄마 집에 와서 난리를 치면 곧 바로 경찰서에 신고를 해! 그리고 위자료 3천만 원은 말도 되지 않는 거야. 절대로 합의하지 마. 그리고 그 여자도 소송하는 건 쉽지 않아 못할 거야.”

 

그 여자 아들이 법대생이래. 그래서 인터넷 다 찾아봤는데, 유부남인줄 알고 연애했으면 최소한 위자료 3천만 원 이상 나온대. 그리고 엄마 재산을 먼저 차압하겠대.”

 

이런 경우 참으로 답답하다. 다 큰 자녀가 있는데, 엄마가 사별하고 혼자 살다가 남자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남자가 너무 잘 대해주고, 사랑한다고 하니까, 혼자 살면서 외로워서 넘어간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남편도 없으니까 특별히 조심을 하지 않았는데, 그 남자는 유부남으로서 마누라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감시하고 있으면 조심할 노릇이지, 핸드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들통이 났다.

 

그리고 들통이 났으면 그래도 남자가 알아서 해결할 것이지, 저는 비겁하게 쏙 빠지고, 마누라와 애인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손을 빼고 있다. 보통은 남자의 돈으로 마누라에게 애인이 물어주어야 할 돈을 대신 갚아주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번 남자는 자신의 앞으로는 재산도 없고, 돈도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건강도 좋지 않아 집에서 마누라나 자식들에게 천덕꾸러기로 지내고 있는 입장이다. 이혼도 할 생각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영의 친구 엄마 전화도 받지 않는지, 못받는지 연락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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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65)

 

검찰청에서 명훈에게 전화가 왔다. 명훈은 만 19세가 넘은 성년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보호자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명훈 독자적으로 법적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 것이다.

 

정명훈 씨지요? 이번 주 금요일 오전 10시까지 검사실로 와 주세요.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가야 합니다. 반드시 출석해야 합니다.”

 

전화를 받는 순간 명훈은 심한 충격을 받았다. 이미 영장을 칠 거라는 말은 변호사로부터 들었지만, 정말 자신이 감방에 갈 거라는 사실에 직면하자 공황장애상태에 빠졌다.

 

공황장애란 뚜렷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는 불안장애를 말한다. 이런 증상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머리 속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당하는 사람은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정도의 심한 고통을 겪기 때문이다. 극심한 불안과 공포심리, 그로 인해 가슴이 뛰고, 호흡곤란의 상태가 온다. 가슴은 답답하고, 어지러우며, 곧 죽을 것처럼 생각이 든다. 심한 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생기기도 한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조사를 받다가 어느 시점부터 그 사건으로 인해 구속될 수 있다는 위험성에 처하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무섭고 두렵다. 당장 감방에 들어가면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은 극에 달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잠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1년을 살지 5년을 살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감방 안에서 폐인이 되고, 건강을 잃고, 그러다가 몇 년 있다가 나오면 그때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느끼고 고통을 겪는다. 그래서 일단은 도망갈 방법을 한번쯤 생각해 본다. 너무 무서우니까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심리다.

 

사실 명훈의 실력으로는 구속영장실질심사의 정확한 뜻이나 의미, 절차나 효과도 모르고 있었다. 명훈뿐 아니라 일반인들은 대개 마찬가지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10년 넘게 한 사람도 막상 형사소송절차에 대해서 물어보면 아무 것도 모른다. 마치 중학교 1학년 수준이다.

 

그게 정상일 것이다. 우리가 어떤 암에 걸렸다고 할 때, 암에 대해 아무리 많은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연구를 하고, 공부를 한다고 해도 전문의사 입장에서 볼 때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다.

 

그래도 질병은 너무 많이 보고 들어서 어느 정도 상식을 가질 수 있지만, 형사사건은 보통 사람들은 평생 한 번도 경험하지 않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래서 구체적인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군다나 명훈이처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놀러나 다니고, 여자아이나 꼬시고 다니는 대학생은 형사절차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구속되고 감방이나 가는 것이다.

 

명훈은 구속은 알 수 있었다. 영장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실질심사의 뜻은 잘 모르겠다. 왜 심사라고 하는지, 그리고 왜 형식심사가 아니라 실질심사라고 하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 우리나라 법은 너무 어려운 한자말로 거의 대부분이 되어 있다. 요새는 더군다나 한글을 전용하고 있어 한자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특히 젊은 사람들은 한자를 모른다. 나이 든 사람들도 한자를 몇십년 제대로 쓰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읽을 줄은 알아도 한자로 쓰라고 하면 잘 쓰지 못한다.

 

아직도 일본에 가면 한자를 많이 쓰고 있다. 중국에 가도 한자를 사용한다. 중국 한자는 또 대부분 다르게 새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배운 한문 실력으로는 거의 읽지 못하게 되어 있다.

 

구속영장이라고 하는 것은 수사기관에서 어떤 범죄인의 신병을 확보하여 유치장에 넣어놓고 도망가지 못하고, 증거를 없애지 못하도록 할 목적으로, 말하자면 가두어놓기 위해 법원으로부터 받는 피의자를 가둘 수 있도록 법원의 허가를 받는 서류를 말한다.

 

구속영장이라는 서류는 법원의 판사가 서명하는 문서다. 이 문서에는 정명훈을 강간치상죄로 구속해도 좋다는 허가사항이 들어있다.

 

구속영장은 검사가 정명훈을 구속하기 위하여 판사에게 청구하고, 판사가 이를 허가하는 내용으로 발부해주면 검사는 이러한 구속영장을 가지고 정명훈을 구치소에 집어 넣은 것이다. 이처럼 구속영장은 매우 무서운 효력을 가지고 있는 문서다.

 

보통은 두장으로 되어 있다. 앞장은 표지이고, 뒷장은 범죄사실이 기재되어 있다. 복잡한 사건의 경우에는 10쪽 이상으로 길게 되어 있을 수 있다.

 

범죄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증거자료는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사건 기록에 편철되어 있다. 이와 같은 구속영장이 발부되느냐, 기각되느냐는 피의자에 대해 결정적인 운명의 갈림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판사가 구속영장을 발부하기 전에 피의자를 한번 불러서 억울한 사정이 있는지, 과연 구속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 구속의 요건과 필요성 등에 대해 들어보는 절차가 바로 구속영장 실질심사다. 명훈은 자신의 사건을 맡고 있는 변호사에게 전화를 했다.

 

변호사님! 큰 일 났어요. 이번 주 금요일 10시까지 검사실로 와서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으라고 해요. 저는 구속되는 거예요? 금요일 곧 바로 감방에 들어가는 거예요?”

글쎄요. 꼭 구속되는 건 아니지만, 일단 검사가 구속영장을 청구하게 되면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할 가능성이 높아요. 그러면 그날 구치소로 넘어가게 돼요. 준비를 많이 해야 해요.”

 

저는 정말 강간을 하지 않았는데, 왜 구속영장이 발부될 것 같아요? 변호사님이 꼭 막아주세요. 부탁이예요.”

이 사건은 판사가 피해자의 말을 믿느냐, 명훈 씨 말을 믿느냐 하는 데 달려 있어요. 특별한 물적 증거는 없는 상태니까요. 그러나 구속영장이 발부될 지 여부는 아무도 몰라요. 판사 판단에 달려있으니까요.”

 

맞는 말이다. 명훈이 구속되느냐는 판사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이지, 변호사나 검사의 의지에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판사가 무섭다. 판사 한 사람이 그토록 무서운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전직 대법관을 지낸 두 사람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을 때도, 오직 판사 한 사람이 영장실질심사를 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난 다음 판사는 전직 대법관 두 사람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두 사람은 천당과 지옥을 오가면서 몇 달 동안 마음 고생을 했다. 구속되어 구치소로 가느냐, 아니면 불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으면서 억울함을 밝히느냐 하는 기로에서 정신은 공황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구속될지, 불구속될지, 불확실하면 저는 일단 피해 있고 싶어요. 피해 있으면서 피해자와 합의한 다음 들어가면 안 될까요?”

그건 곤란해요. 실질심사에 불출석하면, 판사는 그냥 피의자에 대한 심문을 하지 않고 영장을 발부할 거예요. 그러면 나중에 붙잡혀서 구속되는 거예요.”

 

더 이상 변호사와 말을 해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상황이었다. 전화를 끊고 명훈은 엄마에게 갔다. 명훈 엄마는 그 말을 듣자 난리가 났다. 당장 변호사 사무실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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