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64)
명훈에 대한 강간치상사건에 관하여 구속영장실질심사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명훈은 요새 너무 불안하고 고통스러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운명을 잘못 타고난 것이었다.
자기 자신은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다른 친구들은 자기보다 더 심하게 재미를 보고 놀러다녀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하필 자신만 꼭 만나도 이상하고 재수 없는 여자만 걸려서 골치 아픈 일을 만드록 있는지 명훈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명훈도 그동안 숱한 여자와 연애를 하고 관계를 가졌어도 아무 문제 없이 그냥 쿨하게, 서로 엔조이한 것으로 넘어갔다. 그런 면에서는 자기가 운이 좋거나 재수가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여자들이 다 그렇게 남자와 똑 같이 사랑을 즐기고, 성을 즐기고, 똑똑하고 지혜롭게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그
런데 이번에 걸린 은영과 아직 이름도 잘 모르는 늙은 가정주부는 정말 재수 없고, 악마 같은 존재였다. 잘못하면 구속되고 감방도 갈 수 있다는 변호사 말에 지금은 법이 무엇인지 조금 알게 되었다.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이 있다. 세상 일은 잘 모를 때는 겁이 없다.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법을 모르고, 강간죄가 무엇인지 모를 때는 겁이 없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강제추행, 강간죄 등으로 문제가 되어 경찰 조사를 받아본 사람은 법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게 된다.
지금 명훈은, ‘법 없이’ 산 것이 아니라, ‘법을 모르고’ 살다가, 갑자기 ‘법을 조금 알고’, ‘법과 같이’ 살아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두렵고 무서웠다. 여자들을 만나는 것도 두려워서 최근에는 여자를 만나지 않았다. 남자 친구들도 잘 만나지 않았다.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이 유일한 삶의 방편이었다.
그전에는 여자와 노는 것에 비중이 있었지, 술 자체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술을 무식하게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 미친 사람 같았다. 전문 술집도 아닌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네 사람이 소주를 20병이나 쌓아놓고 멀쩡하게 대화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들은 도대체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신기해서 그 사람들이 제발로 걸어서 나가는지 호기심이 발동해서 다 나갈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중에 두사람은 걸어서 어디론가 가는데, 아마 2차로 다른 술집을 찾아나서는 것처럼 보였다. 한 사람은 택시를 타고 갔다.
나머지 한사람은 대리기사를 부르다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지,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소나타에 올라탔다. 명훈은 너무 신기했다. 저렇게 술에 만취되어 설마 운전을 하랴!
그냥 자기 차니까 대리기사를 다시 불러 가든가, 아니면 차에서 음악을 듣고 술에 깨면 택시를 타고 가겠지 했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일이!
차에 타고 있던 여자는 밖으로 나와 힘겹게 토해내더니 다시 차를 타고 운전을 하고 가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능숙하게 매우 빠른 속도로 모범택시 기사 이상의 베스트 드라이버였다. 명훈은 깜짝 놀랐다. 아니 저렇게 술에 취해 운잔을 하고 가다 사고가 나면 어쩌나? 사고가 나지 않아도 음주운전에 걸리면 큰일 날텐데...
그렇지 않아도 명훈은 식당에서부터 그 여자를 눈여겨보았다.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쁘고, 몸매가 장난이 아니었다. 빨간 원피스를 입었는데, 최근에 어떤 영화에서 본 여주인공 같았다. 가서 혹시 탤런트나 배우 아닌가 물어보고 사인이라도 받으려고 했었는데, 같은 일행의 팔에 무서운 문신이 새겨져있어 감히 말을 붙이지 못했다.
잘못했다가는 문신 속의 용에 물려죽을 위험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빨간 원피스 여자 바로 옆의 남자가 지니고 있는 문신은 아주 특이했다. 비록 작게 그렸지만, 너무 뚜렸했다. 용이 뱀을 삼키는 그림이었다.
명훈은 언젠가 제프 쿤스라는 생존 작가의 장난기 넘치는 토끼 조각품이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1082억원에 낙찰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놀랐다. 사진을 보니 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저런 가격에, 불과 91㎝ 밖에 안 되는 스테인리스 철강을 사고 팔다니 상상이 가지 않았다. 1,082만원인데, ‘만’자 대신에 기자가 ‘억’자 를 잘못 썼나 싶어 몇 번이고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명훈이 지금 보고 있는 저 남자의 팔에 그려진 그림은 나중에 세월이 흘러 미국 크리스티 경매시장에 나가면 아마 토끼만큼은 받지 못해도 아마, 최소한 108억원은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었다.
더군다나 이 작품은 살아있는 생물에 심어져있어, 생물이 움직이고 감정을 느낄 때마다 같이 살아서 뛰고 있기 때문에 죽은 토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용과 뱀은 가끔 살아있는 여자의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는 특혜를 보유하고 있기도 하니까 더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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