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64)

 

명훈에 대한 강간치상사건에 관하여 구속영장실질심사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명훈은 요새 너무 불안하고 고통스러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운명을 잘못 타고난 것이었다.

 

자기 자신은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다른 친구들은 자기보다 더 심하게 재미를 보고 놀러다녀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하필 자신만 꼭 만나도 이상하고 재수 없는 여자만 걸려서 골치 아픈 일을 만드록 있는지 명훈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명훈도 그동안 숱한 여자와 연애를 하고 관계를 가졌어도 아무 문제 없이 그냥 쿨하게, 서로 엔조이한 것으로 넘어갔다. 그런 면에서는 자기가 운이 좋거나 재수가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여자들이 다 그렇게 남자와 똑 같이 사랑을 즐기고, 성을 즐기고, 똑똑하고 지혜롭게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런데 이번에 걸린 은영과 아직 이름도 잘 모르는 늙은 가정주부는 정말 재수 없고, 악마 같은 존재였다. 잘못하면 구속되고 감방도 갈 수 있다는 변호사 말에 지금은 법이 무엇인지 조금 알게 되었다.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이 있다. 세상 일은 잘 모를 때는 겁이 없다.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법을 모르고, 강간죄가 무엇인지 모를 때는 겁이 없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강제추행, 강간죄 등으로 문제가 되어 경찰 조사를 받아본 사람은 법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게 된다.

 

지금 명훈은, ‘법 없이산 것이 아니라, ‘법을 모르고살다가, 갑자기 법을 조금 알고’, ‘법과 같이살아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두렵고 무서웠다. 여자들을 만나는 것도 두려워서 최근에는 여자를 만나지 않았다. 남자 친구들도 잘 만나지 않았다.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이 유일한 삶의 방편이었다.

 

그전에는 여자와 노는 것에 비중이 있었지, 술 자체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술을 무식하게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 미친 사람 같았다. 전문 술집도 아닌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네 사람이 소주를 20병이나 쌓아놓고 멀쩡하게 대화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들은 도대체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신기해서 그 사람들이 제발로 걸어서 나가는지 호기심이 발동해서 다 나갈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중에 두사람은 걸어서 어디론가 가는데, 아마 2차로 다른 술집을 찾아나서는 것처럼 보였다. 한 사람은 택시를 타고 갔다.

 

나머지 한사람은 대리기사를 부르다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지,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소나타에 올라탔다. 명훈은 너무 신기했다. 저렇게 술에 만취되어 설마 운전을 하랴!

 

그냥 자기 차니까 대리기사를 다시 불러 가든가, 아니면 차에서 음악을 듣고 술에 깨면 택시를 타고 가겠지 했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일이!

 

차에 타고 있던 여자는 밖으로 나와 힘겹게 토해내더니 다시 차를 타고 운전을 하고 가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능숙하게 매우 빠른 속도로 모범택시 기사 이상의 베스트 드라이버였다. 명훈은 깜짝 놀랐다. 아니 저렇게 술에 취해 운잔을 하고 가다 사고가 나면 어쩌나? 사고가 나지 않아도 음주운전에 걸리면 큰일 날텐데...

 

그렇지 않아도 명훈은 식당에서부터 그 여자를 눈여겨보았다.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쁘고, 몸매가 장난이 아니었다. 빨간 원피스를 입었는데, 최근에 어떤 영화에서 본 여주인공 같았다. 가서 혹시 탤런트나 배우 아닌가 물어보고 사인이라도 받으려고 했었는데, 같은 일행의 팔에 무서운 문신이 새겨져있어 감히 말을 붙이지 못했다.

 

잘못했다가는 문신 속의 용에 물려죽을 위험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빨간 원피스 여자 바로 옆의 남자가 지니고 있는 문신은 아주 특이했다. 비록 작게 그렸지만, 너무 뚜렸했다. 용이 뱀을 삼키는 그림이었다.

 

명훈은 언젠가 제프 쿤스라는 생존 작가의 장난기 넘치는 토끼 조각품이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1082억원에 낙찰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놀랐다. 사진을 보니 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저런 가격에, 불과 91밖에 안 되는 스테인리스 철강을 사고 팔다니 상상이 가지 않았다. 1,082만원인데, ‘자 대신에 기자가 자 를 잘못 썼나 싶어 몇 번이고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명훈이 지금 보고 있는 저 남자의 팔에 그려진 그림은 나중에 세월이 흘러 미국 크리스티 경매시장에 나가면 아마 토끼만큼은 받지 못해도 아마, 최소한 108억원은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었다.

 

더군다나 이 작품은 살아있는 생물에 심어져있어, 생물이 움직이고 감정을 느낄 때마다 같이 살아서 뛰고 있기 때문에 죽은 토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용과 뱀은 가끔 살아있는 여자의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는 특혜를 보유하고 있기도 하니까 더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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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63)

 

명훈 엄마는 박 기사의 말을 듣고, 지금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데드라인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박기사에게 1억원의 선에서 합의를 하라고 했다.

 

합의의 조건은 1억월을 은영에게 지급하고, 은영은 아이를 낙태수술하며, 그후에는 일체 명훈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명훈과의 관계에서 일체의 민사 형사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단서를 붙이는 것이었다. 명훈 엄마는 박 기사에게 이 사건을 잘 해결해주면 수고비로 1천만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박 기사는 은영에게 연락해서 합의를 하지고 했다. 두 사람은 만났다. 은영은 대체로 박기사가 제시하는 조건에 동의했다. 그런데 문제는 박 기사는 은영에게 먼저 낙태수술을 해야 돈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은영은 먼저 돈부터 주어야 수술을 하겠다고 했다.

 

아니 그런 경우가 어디 있어요?”

그런데 은영 씨. 만일 명훈네가 돈부터 주었는데 은영 씨가 수술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요? 그러니까 당연히 먼저 수술부터 해야 돈을 줄 수 있는 것 아니예요?”

 

그건 똑 같은 말이예요. 내가 수술을 먼저 받았는데 돈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요? 이런 문제 가지고 소송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나는 소송을 할 돈도 없어요. 변호사를 살 능력도 없어요.”

 

그러면 이렇게 하면 어때요? 먼저 계약금조로 10%에 해당하는 천만 원만 주고 수술을 한 다음 나머지를 주면 어떨까요?”

그래요.”

 

두 사람은 합의서를 작성했다. 다음 날 박 기사는 은영을 만나 현금으로 천만 원을 건네주었다. 은영은 일주일 이내로 낙태수술을 하기로 약속했다. 박 기사는 명훈 엄마를 만나서 진행상황을 설명했다. 명훈 엄마는 박기사에게 고생 많이 했다고 보너스로 백만 원을 주었다.

 

명훈 아빠 사건을 담당했던 홍 검사는 마침내 사표를 했다. 홍 검사실에서 담당하고 있던 모든 사건은 재배당되었는데, 명훈 아빠 사건은 최 검사에게 인계되었다.

 

최 검사는 홍 검사가 수사하고 있던 명훈 아빠 사건 기록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김 검사가 열의를 가지고 수사를 한 것은 인정되지만, 특별한 증거도 없이 너무 무리하게 명훈 아빠를 엵어넣으려고 한 것처럼 보였다.

 

특히 뇌물사건은 아무런 물적 증거가 없는 상태였다. 명훈 아빠가 회사에서 비자금을 조성해서 개인적으로 사용했다는 혐의사실도 뚜렷한 증거가 없었다.

 

회사 자금을 빼내어서 애인의 오피스탤을 얻어준 부분도 대표이사 가수금 처리를 했다가 수사가 착수되자 다시 가수금을 회사에 변제한 것처럼 장부를 맞추어 놓았다. 그래서 횡령죄의 범의를 인정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특히 뇌물사건에 대해서는 최근에 대법원에서 고위직 공무원과 거물 정치인에 대해 무죄판결이 확정되었기 때문에 자연히 수사검사 입장으로서는 뇌물죄에 대한 증거판단을 신중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최 검사는 부장검사에게 명훈 아빠에 대한 중간수사결과를 보고했다.

 

뇌물을 시청 공무원들에게 주었다는 혐의사실은 사실 심증만 있지, 물증이 전혀 없습니다. 비자금조성은 계속 수사하면 처벌도 가능할 것 같은데, 나머지 회사 자금을 횡령했다는 부분은 다시 회사에 변제를 했기 때문에 입증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맞아요. 민 검사! 얼마 전에 어느 정당 대표에 대한 정치자금법위반사건과 전직 총리에 대한 뇌물사건에서 무죄가 확정되었잖아요? 1심에서는 두 사건 모두 유죄판결이 났는데, 항소심부터 무죄로 뒤집어진 거예요. 아무튼 뇌물사건은 명확한 물적 증거가 없으면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해요.”

 

최 검사는 명훈 아빠 사건에 대해 리베이트를 받은 사건만 불구속으로 재판에 회부하기로 하고, 뇌물공여사건과 업무상 횡령사건은 내사종결하였다.

 

이로써 명훈 아빠는 긴 지옥의 터널에서 벗어났다. 주임검사가 사고를 쳐서 사표를 내고 나가는 바람에 사건은 흐지부지되었고, 구속되어 징역 가고 회사가 부도나는 최악의 위기상황에서 해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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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62)

 

명훈 엄마는 박 기사로부터, ‘은영이 반드시 낳겠다고 한다. 자신이 겨우 설득시켜 돈을 주고 해결하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 명훈 엄마는 이제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명훈이 강간사건으로 구속될 위기에 처했는데, 사생아까지 생기면 인생이 끝날 것 같았다.

 

집안의 가업을 이어받아야 할 외아들이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명훈의 잘못이 아니라, 자녀 교육에는 신경 쓰지 않고 바람이나 피고 돌아다닌 아빠 책임이었다. 명훈이는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 없는 희생물이었다.

 

그리고 두 사건 모두 충분히 이해가 갔다. 어린 남자가 연애를 했는데, 갑자가 상대 여자가 달라붙어서 임신을 해서 공갈을 치고 있는 것이다.

 

남자로서는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전혀 예측불가능한 사고다. 은영은 백만명 중 한 명 있을까 말까한 이상한 여자다. 정말 나쁜 사람이다. 여자의 몸, 그 안의 태아를 인질로 돈을 뜯어내고, 사랑을 강요하는 비정상이다. 명훈은 나이도 어리고, 재벌 4세도 아니다.

 

명훈 엄마는 언젠가 약사들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재벌 아들이 이혼을 했다. 바람을 펴서 사생아를 낳았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많은 돈많은 남자들이 혼외정사를 해서 아이를 낳았다. 그것은 서로 좋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여자가 돈만 보고 달라붙어서 임신을 하고 책임지라는 경우가 많다.

 

여자는 아이를 미끼로 아이뿐 아니라 평생 책임지라고 한다. 그것이 불륜이든 아니든 상관 없다. 그런 경우 대부분은 진정한 사랑은 아니다.

 

돈 때문에 얽히고 설킨 복잡하고 지저분한 남녀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다가 만일 그 재벌이 부도가 나면, 사랑도 당연히 소멸한다.

 

자본주의, 물질만능사회에서 사업체의 부도는 경제적 파탄을 의미하지만, 자연스럽게 혼인관계에서 일탈한 불륜의 종식을 뜻하기도 한다. 애당초 돈보고 시작된 사랑은 돈이 없어지면, 불나방이 불이 꺼지면 곧 바로 멀리 떠나가듯이 돈과 사랑의 부재는 언제나 동시에 온다. 돈이 사랑의 조건이었고, 사랑은 돈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돈과 결합된 사랑은 이렇게 많은 모순과 비상식, 비이성을 내포한다.

 

돈 많고 잘 생긴 재벌 이세는 수많은 경쟁자 가운데 엄선해서 발탁한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부인을 두고, 똑똑한 자녀도 있고, 사업도 잘 되어서 사회적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재벌가의 여자가 되려면 미스유니버스 선발대회 참가자 이상으로 많은 후보 가운데, 100가지 이상의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서 가장 우수한 여자를 뽑게 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왜 부인보다 휠씬 못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더 나아가 아이까지 낳고, 이혼하고,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것일까? 새로운 여자의 매력은 무엇이고, 성적 능력은 도대체 얼마나 되기에 그런 굴종의 사랑을 하는 것일까?

 

수만명이나 되는 직원들은 회장과 그 아들을 하늘처럼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데, 왜 그렇게 성적으로 더럽게 추락하고 마는 것일까?

 

가끔 종교단체 교주도 성적으로 타락하는 경우가 있다. 숨겨놓은 자식이나 내연의 처가 문제된다. 젊은 여성을 성폭행까지 한다. 수많은 신도와 혼음을 한다.

 

이런 경우 신도들로서는 당연히 존경심이 사라져야 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신앙과 성적 문란은 아주 철저하게 구분한다. 그것은 교주의 무소불위한 권능 중의 하나다. 그러면서 교주를 끝까지 맹종한다.

 

교주는 그 대가로 구원을 내려준다. 교주는 강단에서는 위엄 있는 신적 존재이지만, 어두운 밤의 침대에서는 벌거벗은 몸으로 여자의 육체를 탐하는 악마로 변신하다. 그것은 신의 저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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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61)

 

한편 홍 검사로부터 특별수사를 받고 있다가 일본으로 도망간 명훈 아빠는 변호사로부터 홍 검사가 성추행을 해서 입건되었고, 징계에 회부될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뛸 듯이 기뻐했다.

 

아니. 정말 잘 되었네요. 그렇게 악랄하게 나를 죽이려고 하더니, 천벌을 받은 거예요. 그건 그렇고, 제 사건은 이제 다 끝난 건가요? 서울로 들어가도 되는 거지요?”

 

글쎄요. 수사를 하던 담당검사가 문제가 되어도 일단 지금까지 수사하던 자료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후임검사가 계속해서 수사를 할 수도 있고, 흐지부지 끝이 날 수도 있고, 아무튼 좀 더 지켜봐야 해요. 경우에 따라서는 홍 검사 사건이 별 것 아닌 것으로 종결될 수도 있어요. 성 사장님은 곧 바로 들어오지 말고, 당분간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어떨까 싶네요.”

 

명훈 아빠는 좋다가 말았다. 그러나 변호사가 말로는 그렇게 해도, 이제 홍 검사는 검사로서의 생명이 끝난 것이고, 명훈 아빠 사건은 자연히 끝이 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악의 경우 다른 검사가 홍 검사로부터 수사자료를 인수인계 받아서 마무리 수사를 하더라도 예전보다는 훨씬 수사강도가 떨어질 것임은 틀림없어 보였다.

 

검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수사업무를 수행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적으로 만든다. 수사를 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을 구속하고 징역을 보낸다. 이럴 때 구속 당하고 징역을 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검사를 나쁘게 생각한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검사를 원망하고 무의식적으로 검사를 저주한다. 그런 많은 사람들의 원망과 저주는 때로 검사에게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올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검사라는 직업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죄를 지은 사람을 처벌해야 하고, 범죄로 인한 피해자를 보호해주어야 하고, 누군가는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하지만, 일단 검사가 그 원망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악의 업을 쌓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죄 없는 사람들을 수사해서 사형을 구형하고 판결을 받아 사형집행을 했는데, 나중에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선고되는 경우 이러한 사건에 관여한 검사는 도대체 어떤 인간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가?

 

꼭 사형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죄 없는 사람을 억울한 옥살이를 시키거나, 무리한 수사를 해서 회사를 부도나게 하거나, 지나친 강압수사를 계속함으로써 조사 받던 피의자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경우, 모든 업보는 결국 그 검사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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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61)

 

한편 홍 검사로부터 특별수사를 받고 있다가 일본으로 도망간 명훈 아빠는 변호사로부터 홍 검사가 성추행을 해서 입건되었고, 징계에 회부될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뛸 듯이 기뻐했다

 

아니. 정말 잘 되었네요. 그렇게 악랄하게 나를 죽이려고 하더니, 천벌을 받는 거예요. 그건 그렇고, 제 사건은 이제 다 끝난 건가요? 서울로 들어가도 되는 거지요?”

 

글쎄요. 수사를 하던 담당검사가 문제가 되어도 일단 지금까지 수사하던 자료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후임검사가 계속해서 수사를 할 수도 있고, 아니면 흐지부지 끝이 날 수도 있고, 아무튼 좀 더 지켜봐야 해요. 경우에 따라서는 홍 검사 사건이 별 것 아닌 것으로 종결될 수도 있어요. 성 사장님은 곧 바로 들어오지 말고, 당분간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어떨까 싶네요.”

 

명훈 아빠는 좋다가 말았다. 그러나 변호사가 말로는 그렇게 해도, 이제 홍 검사는 검사로서의 생명이 끝난 것이고, 명훈 아빠 사건은 자연히 끝이 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다른 검사가 홍 검사로부터 수사자료를 인수인계 받아서 마무리 수사를 하더라도 예전보다는 훨씬 수사강도가 떨어질 것임은 틀림없어 보였다.

 

명훈 아빠는 좋다가 말았다. 그러나 아무튼 주임검사가 열심히 특별수사를 하다가 사표를 냈으니 아무래도 후임으로 다른 검사가 사건을 인수받아 처리한다고 해도 예전보다는 훨씬 수사강도가 떨어질 것은 틀림없었다.

 

검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수사업무를 수행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적으로 만든다. 수사를 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을 구속하고 징역을 보낸다. 이럴 때 구속 당하고 징역을 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검사를 나쁘게 생각한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검사를 원망하고 무의식적으로 검사를 저주한다. 그런 많은 사람들의 원망과 저주는 때로 검사에게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올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검사라는 직업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죄를 지은 사람을 처벌해야 하고, 범죄로 인한 피해자를 보호해주어야 하고, 누군가는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하지만, 일단 검사가 그 원망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악의 업을 쌓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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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은 운명 (160)

 

명훈 아빠 사건을 담당하고 있던 홍 검사는 언론에서 계속해서 보도를 하면서, ‘왜 검찰에서 제 식구라고 감싸고 드느냐?’라는 식으로 연일 공격을 해오자 매우 난감한 입장이 되었다. 경찰에서는 홍 검사를 강제추행죄로 형사입건해서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홍 검사는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지방검찰청에서 피의자 신분이 된 것이다. 검사가 다른 검사로부터 조사를 받아야 하고, 기소 불기소 여부가 결정되어야 하는 창피를 당하게 된 것이다.

 

한편 대검찰청에서는 본격적인 감찰조사를 벌였다. 피해자나 그 주변 인물들을 조사할 수는 없었지만, 홍 검사를 상대로 집중적인 감찰조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검찰수사가 끝날 때까지는 징계처분은 보류하기로 했다.

 

경찰에서는 홍 검사가 명백하게 강제추행을 해놓고, 범행을 부인하고 있으며, 특히 사건 직후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에게 자신이 현직 검사라고 하면서 경찰서에 가지 않겠다고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식으로 사건 내용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피해자가 너무 큰 피해를 보았고 가해자가 현직 검사가 미온적인 수사를 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언론에 인터뷰를 하고 있어 홍 검사가 아주 나쁘고 부도덕하며, 현직 검사라고 법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도가 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현직 검사의 강제추행사건으로 부각되자, 언론에서는 과거에 있었던 현직 검사나 현직 판사, 국회의원, 고위직 공무원, 군 장군 등의 강제추행사건, 공연음란사건, 강간사건, 성희롱 사건 등을 모두 모아서 집중 보도하고 있었다.

 

아울러 me too 운동과 관련하여 고위 공직자나 사회 저명인사들이 성범죄로 인해 말썽이 된 사례들을 모두 종합하여 보도를 하고 있었다.

 

공직자나 유명 인사는 그 분야에서 좋은 일을 하고 있을 때, 명예가 있고, 체면이 있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존경도 받고 사람들이 인정을 해준다. 그러나 막상 그런 사람들이 법을 위반했거나 물의를 일으키게 되면, 일반인에 비해서 훨씬 가혹한 처우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들에게 변명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만일 변명을 하려고 하면, 그 자체가 거짓말이고, 인간성이 나쁘다는 이중 삼중의 가혹한 제재를 받게 된다.

 

홍 검사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일단 사표를 냈다. 하지만 그 사표도 곧 바로 수리되지 않았다.

 

홍 검사의 가족들도 난리가 났다. 남편이 모범적으로 열심히 검사 생활을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성추행법으로 둔갑을 한 것이다. 아무리 변명을 해도 부인은 이를 믿을 수 없었다. 아무리 술을 마셨어도 그 동안 홍 검사가 술에 취해 사고를 친 일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부인은 최근 몇 달 동안 홍 검사가 집에서 잠자리를 하지 않고 있는 점도 수상하게 생각했다. 부인에게는 싫증을 느끼고 잠자리를 하지 않고 있다가 술집에 가서 젊은 여자를 보니까 갑자기 충동을 느끼고 술에 취한 척하면서 엉덩이를 만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홍 검사 부모와 형제, 처갓집 사람들 모두 놀라서 나가자빠졌다. 도대체 검사라는 자리가 얼마나 높고 존경을 받는 자린데, 할 일이 없어서 술집에서 여자 엉덩이나 만지다가 수사를 받고 개망신을 당하고, 사표를 내고 검사를 못하게 되었다니, 도대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가족 중에 검사가 있다고 해서 폼을 잡고 살았는데, 이제는 아예 검사 말도 꺼낼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인터넷에 댓글을 단 것을 보니, ‘검사는 아예 거세를 해야 한다’, ‘성추행범이 왜 검사 신분을 가지고 공갈을 쳤느냐’ ‘저런 검사들한테 어떻게 조사를 받을 수 있냐’ 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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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59)

 

명훈의 강간피의사건에서 사건관계인은 세 사람이다. 고소를 한 이옥임이라는 피해자, 고소를 당한 피의자 성명훈, 그리고 사건 직후 이옥임과 같이 명훈을 만나서 각서를 받았던 이옥임의 친구 김숙경이었다.

 

경찰에서는 이옥임과 성명훈 두 사람만 불러서 조사를 했다. 그런데 검찰에서는 김숙경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서 진술조서를 받았다.

 

검사는 이옥임과 성명훈 두 사람에 대해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받도록 했고, 그 검사결과에서는 성명훈은 진실반응, 이옥임에게서는 허위반응이 나왔다.

 

이런 결과가 나오자 담당 검사는 고민에 빠졌다. 이 사건을 도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증거에 의해서 인정되면 구속도 될 수 있고, 나중에 법원에 가서는 실형도 살 수 있는 만큼 중요한 범죄다.

 

그런데 뚜렷한 물적 증거가 없고, 피해자의 말밖에 없는 사건이라 잘못했다가는 무죄가 선고될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수사검사는 부장검사실로 기록을 들고 갔다.

“부장님! 수사를 해보니까 분명히 피해자의 말이 맞는 것 같은데, 거짓말탐지기 결과가 거꾸로 나왔습니다. 제 의견으로는 거짓말탐지기는 법원에서도 100% 신뢰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과 피해자 친구의 진술, 그리고 성명훈이 작성해 준 각서의 내용 등에 비추어 범죄사실이 인정되므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나이 많은 여자가 클럽에서 만나 모텔까지 같이 갔다는 것도 그렇고, 사건 직후 곧 바로 피해자가 친구를 불러서 각서를 받았다는 것도 이상하고, 특히 거짓말탐지기 결과가 피해자의 진술이 허위라는 판정이 나왔다면 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것 같아요. 기소를 하더라도 신병은 불구속으로 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

 

“예. 더 조사를 해서 다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검사는 부장의 말을 듣고 좀 더 확실하게 보완조사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다시 세 사람을 동시에 불러서 3자 대질조사를 벌었다. 무려 6시간이나 조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 명훈은 진술에 있어서 약간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옥임과 그 친구는 거품을 품으며, 명훈이가 분명히 반항하는 이옥임을 힘으로 제압하고 침대 위에서 치마를 걷어올리고 팬티를 내린 다음 그것을 했다는 사실을 일관성 있게 주장했다.

 

이옥임의 친구는 클럽에서 헤어진 다음 부근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가 이옥임의 전화를 받고 급히 달려가서 명훈으로부터 강간사실을 깨끗하게 시인받고 각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아주 명료하게 진술했다.

 

여검사 입장에서는 더욱 더 이 사건에 관해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명훈의 비굴한 태도가 더욱 가증스럽게 보였고, 이런 인간은 법에 의해 엄중한 처벌을 받지 않으면, 앞으로 나이 들어 성관계를 할 수 없을 때까지 몇 십년 동안 계속해서 여자들을 괴롭히고 강제로 성관계를 할 위험성이 농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사회 방위차원에서도 이런 성범죄자는 구속해서 징역을 보내는 것이 마땅하고 검사로서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조사를 마친 검사는 그래서 명훈을 꾸짖었다.

 

“피해자가 이렇게 명확하게 진술하고 있고, 당시 피해자 친구가 피의자를 직접 만나서 강간한 사실을 시인받고 각서까지 받았다는데, 피의자는 왜 범행을 부인하고 있나요? 피해를 주었으면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고 피해배상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피의자는 전혀 반성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이지요?”

 

이때 옆에서 조사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명훈의 여자 변호사가 말했다.

“아니, 검사님! 피의자는 지금 일관성 있게 자신의 강간피의사실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짓말탐지기 결과도 피의자에게 유리하게 진실반응이 나왔고, 오히려 피해자 이옥임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검사님께서는 피의자를 유죄로 단정하고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그러자 검사는 머쓱하게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조사를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모두들 돌아가라고 했다.

 

며칠 후에 담당검사는 다시 부장실로 갔다.

“제가 보완수사를 했습니다. 3자 대질신문을 했는데, 역시 피의자는 자신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피해자나 그 친구는 아주 명확하게 피해사실과 범행 후 정황에 대해 신빙성 있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 합의도 되지 않았고, 피의자가 범행을 부인하면서 반성을 하지 않고 있고, 사안이 중한 만큼 피의자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도록 하겠습니다.”

부장은 담당검사의 의견에 동조는 하지 않았지만, 수사검사가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의견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면 알아서 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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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58)

 

명훈의 강간사건은 검찰청으로 송치되었다. 송치(送致)라는 용어는 어려운 한자말이다. 경찰서에서 형사사건을 수사한 다음 검찰청으로 사건을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경찰에서는 사건을 수사하면서 수사기록을 작성한다.

 

수사가 마무리되면 경찰관은 사건에 대한 의견서를 작성한 다음, 수사기록 앞에 붙인다. 이러한 사건기록과 압수한 증거물 및 증거서류 등을 모두 검찰청으로 보내는 것이 바로 사건송치다.

 

만일 피의자가 구속되어 있으면, 피의자의 신병까지 함께 검찰청으로 보낸다. 이때는 수갑을 채워 검찰청으로 피의자를 보낸다. 명훈에 대한 사건은 경찰에서 기소의견으로 불구속송치되었다. 신병을 구속하지는 않고, 조사한 결과 강간죄가 성립된다는 수사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검찰청으로 사건을 보낸 것이다.

 

경찰은 명훈에 대해 강간치상죄를 적용했다. 적용법조는 형법 제301조다. 강간치상죄는 강간의 죄를 범한 자가 사람을 상해하거나 상해에 이르게 한 때에 성립하는 범죄다. 강간치상죄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성범죄는 이처럼 아주 무겁게 처벌된다.

 

정부에서는 성범죄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일반 형법 이외에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명훈에게 단순강간죄가 아닌 강간치상죄가 적용된 것은 피해자 이옥임이 전치 2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상해진단서를 제출하였기 때문이다. 강간 당할 때 명훈이 강제로 어깨를 누르고, 반항하는 피해자의 머리를 3세 때리고 팔을 짓눌렀기 때문에 두부염좌상 및 견부타박상 등의 상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옥임은 사건 당일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상처를 보여주고 치료를 받고 진단서를 끊어놓았다. 명훈 엄마가 합의금을 줄 태도를 보이지 않자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동시에 상해진단서까지 끊어서 제출했다.

 

원래 이 정도 사안이면 경찰에서는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이지만, 사건 자체가 명훈이 술에 취해서 피해자와 함께 모텔에 갔던 것이고, 명훈이 완강하게 범행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신병을 불구속처리한 상태에서 사건을 검찰청으로 송치했던 것이다.

 

명훈에 대한 강간치상사건은 검찰청 여자 검사에게 배당되었다. 검사는 피해자를 다시 불러서 상세하게 재조사를 했다. 이옥임의 친구로서 사건 당시 명훈을 만나서 각서를 받았던 여자도 참고인으로 불러서 조사했다.

 

그런 다음 명훈을 피의자로 불러서 피의자신문조서를 받았다. 이옥임의 여자 친구가 명훈으로부터 각서를 받을 당시 명훈의 머리카락을 강제로 뽑아서 가지고 있다가 증거로 제출했다.

 

명훈이 이옥임을 강간했다는 취지로 시인하는 내용으로 작성하고 사인하고 지장을 찍은 각서도 증거로 제출되었다. 그러나 모텔에서 있었던 일은 CCTV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사진을 찍거나 녹음을 해놓은 것도 없었다. 오직 명훈의 진술과 이옥임의 진술만 가지고 사건을 판단해야 할 입장이었다. 검사는 난감했다.

 

피해자의 말을 들어보면 정말 명훈이 강제로 여자를 침대에 눕히고, 치마를 걷어올린 다음 팬티를 내리고 삽입하고 사정까지 한 것 같고, 피의자 명훈의 말을 들어보면 삽입도 못하고 사정도 못한 것 같았다.

 

단지 강제로 침대에 눕힌 사실까지는 인정될 것 같은데, 그 다음에는 피해자가 곧 바로 일어나 밖으로 나간 것 같은 의심이 들었다.

 

명훈이가 자필로 쓴 각서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여자 두 명이 강압적으로 때리면서 경찰서에 끌고 가겠다고 하니까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써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검사는 다시 명훈과 이옥임 및 옥임의 여자 친구 세 사람을 동시에 불러서 심도 있게 대질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물론 명훈의 변호사도 피의자조사에 참여했다.

 

검사는 더 나아가 명훈과 이옥임에 대해 거짓말탐지기 측정을 하겠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동의했다. 그리고 이옥임의 몸에 났다고 주장하는 상처와 진단서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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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57)

 

더군다나 요새 같은 세상에서는 현직 검사라고 해도 물의를 일으키면 갑의 입장이 아니라 을의 입장이 된다. 홍 검사는 정말 너무 억울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되자 아무도 홍 검사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것이었다.

 

부장검사나 차장검사, 검사장까지도 그랬다. 홍 검사가 억울하다고 해도, 일을 저질러 놓고 무슨 변명이냐는 식이었다. 상급자들은 요새가 어떤 세상인데, 검사가 술집에 가서 물의를 일으켰느냐 하는 질책이었다. 검사가 몸을 제대고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셨느냐? 다른 검사들은 이런 물의 자체를 일으키지 않는데, 왜 홍 검사만 유독 문제를 만드느냐는 식이었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검찰청 출입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홍 검사가 수사를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고 있던 때에는 수시로 홍 검사실을 찾아와 기사를 받으려고 하고, 홍 검사가 정말 수사를 잘 하는 능력 있고 소신 있는 검사라고 추겨세우던 기자들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여러 차례 식사도 하고 호프도 마시던 사이였다. 그러나 막상 문제가 터지자 기자들도 아주 냉정하게 돌아섰다.

 

‘너는 이제 검사로서는 끝이다. 사표를 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여자를 건드렸으니까 경찰 조사를 받았지, 아무렴 성추행을 하지도 않았는데 일반인이 현직 검사와 같은 높은 분을 허위고소를 했겠느냐?’는 식이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김 검사가 그동안 열심히 수사를 하고, 고급 술집에도 다니지 않고, 서민적으로 생활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기자들은 ‘ 홍 검사가 아주 위선자고 가식적인 저급한 인간’이라고 매도하게 되었다.

 

홍 검사는 대검찰청 감찰조사도 받았다. 그곳에서도 똑 같은 주장을 하고 진술을 했지만, 감찰 담당자 역시 김 검사의 말을 믿지 않고 있었다. 김 검사가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단정하고 있었다. 대검찰청에서는 여론의 추이를 보면서 김 검사의 사표를 받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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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56)

 

홍 검사가 사무실에 출근하자 난리가 났다. 검찰청에 출입하는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스무명이 넘는 기자들이 사진을 찍어대며, 홍 검사를 둘러싸고 움직이지도 못하게 막았다. 사진을 찍는 소리가 아주 요란했다. 포토라인에 선 것도 아닌데, 마치 중대한 범죄 때문에 검찰 수사를 받으러 나온 공직자처럼 만들었다.

 

“검사님! 어제 술집에서 성추행을 했다면서요? 어떻게 된 겁니까?”

“전혀 그런 일이 없습니다. 술을 마시고 화장실에 가다가 여자 손님과 좁은 통로에서 비켜가던 중 약간의 신체접촉이 있었는데, 여자가 오해를 하여 일어난 해프닝입니다.”

“경찰 말로는 검사님이 여자 엉덩이를 만지고, 술에 취한 척하면서 강제추행을 하였다고 하던대요? 누구 말이 사실입니까?”

“정식으로 강제추행죄로 형사입건은 된 겁니까?”

 

경찰에서는 이미 기자들에게 홍 검사 사건을 알린 것이었다. 기사 내용은, ‘OO지방검찰청 A 검사가 술집에서 여자 손님의 몸을 만져서 강제추행을 한 사실로 경찰서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라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대검찰청에서는 A 검사에 대해 감찰조사를 벌이기로 했다.’는 기사도 덧붙여졌다.

 

홍 검사는 기가 막혔다. 정말 자신은 성추행한 사실이 없다. 비좁은 통로에서 화장실을 가려다가 술기운에 균형을 잡지 못하고 여자 엉덩이쪽으로 손이 닿았을 뿐이었다.

 

여자는 치마를 입고 있었고, 순간적으로 손을 뗐기 때문에 여자가 크게 문제 삼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엉덩이를 만져서 추행했다고 주장했고, 그 때문에 억울하게 뒤집어 쓰게 된 것이었다.

 

여자의 일방적인 진술과 주장에 의해 피의자로 입건되었는데, 이 상황에서 더 이상 진실을 밝히기 위한 조사를 하지도 않고, 경찰에서는 기자들에게 이런 사실을 공표하고, 명예를 훼손한 것이었다. 홍 검사 입장에서는 분하고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홍 검사는 생각했다. 경찰이나 검찰에서 사회적으로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에 대한 수사를 하는 경우, 재판에 넘기기도 전에 언론에 상세하게 알림으로써 조사대상자를 사실상 범인으로 낙인찍어버린다.

 

그렇게 명예가 추락한 피의자는 나중에 형사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일단 언론에 죄인으로 낙인이 찍힌 다음에는 그 추락한 명예를 회복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당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막상 홍 검사 자신의 일이 되고 보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홍 검사는 경찰관의 이런 행위가 어떤 죄에 해당되는지 생각해 보았다.

 

형법에는 피의사실공표죄라는 죄가 있다. 형법 제126조에 규정되어 있다.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상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소제기 전에 공표하는 경우 처벌하는 것이다. 피의사실공표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또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수 있다. 무죄추정의 법칙이 있고, 아직 재판에 회부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직 검사가 성추행을 했다는 식으로 언론보도를 하면 이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러한 보도가 피의사실공표죄나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처벌된 예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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