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45)

 

홍 검사! 이 사람들 정말 나쁜 인간들 아니야?”

글쎄요. 도덕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지만, 사랑 앞에서야 어떻게 하겠어요. 요새는 간통죄도 없어

졌잖아요? 세상이 다 그래요.“

그래도 남의 가정을 깨면서 사랑하는 여자는 나쁜 거야. 왜 굳이 유부남을 꼬여서 가정을 깨뜨리고, 그 가족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느냐 말야?“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그냥 이혼하지 않고 살면 안 돼요? 남편이 생활비를 벌어다 주고, 그냥 양쪽에 왔다갔다 하면서 지내면 어때요? 아이가 더 큰 상처받지 않고, 결혼할 때까지 그렇게 살면 안 될까요? 물론 나는 아직 결혼을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수많은 사건을 통해서 보면, 사람들은 처음에는 감정적으로 사태를 보고 참지 못하고 이혼을 하지만, 대부분 나중에 이혼한 것을 후회하더라고요. 그리고 나이 들면 남자건 여자건 혼자 사는 것이 외롭고 힘이 들어 또 다른 이성을 찾게 되는데, 한번 깨져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두 번째 만난 사람과도 오래 못가는 것 같아요.“

 

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 그게 가능한 일인가? 그래, 나는 이 결혼생활에서 아무런 잘못이 없어. 그런데 저 인간은 무엇이 잘났다고, 엄연히 가정을 두고, 또 다른 여자를 애인으로 두고 그쪽에만 신경을 쓰고, 돈도 벌어서 그쪽을 주고, 우리에게는 마지 못해 겨우 먹고 살 것만 주는 거야. 그리고 잠자리도 그쪽하고만 해. 그럼 나는 뭐야? 체면 때문에 가정을 지키는 파수꾼인 거야? 그 인간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아이 뒷바라지 혼자 하고, 이건 아무 의미 없는 형해화된 가정의 노예일 뿐이야. 그리고 시간이 가도 나아질 것은 아무 것도 없어. 잘못하면 그 여자와 아이도 생길 수 있어. 아무리 돈을 벌어도 그 여자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일 거고.“

 

그럼 합의이혼을 하려고 그래요?“

합의이혼은 쉽지 않을 거야. 그 인간이 돈이 없으니까 내가 살 수 있는 재산을 줄 능력이 없어. 지금 말하는 게, 내게는 현재 살고 있는 전세금 1억원을 주고, 양육비로 매달 70만원만 주겠대. 그것도 딸 아이가 19세가 될 때까지만 준다는 거야. 그럼 나는 무얼 가지고 먹고 살아. 아이도 있는데.“

그럼 위자료 청구를 하면 되잖아요? 남편과 상간녀를 상대로 5천만원을 청구하는 거예요.“

. 그래야겠구나. 그러면 소송을 해야잖아?“

 

물론이지요. 합의이혼이 불가능하면, 이혼소송을 해야 해요. 그때 재산분할청구도 하면 돼요.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모두 합치고, 빚도 모두 합쳐서 5050으로 나누는 거예요. 그리고 위자료는 별도로 청구하면 돼요. 미성년자녀에 대해서는 친권과 양육권을 누가 가질 것인지 결정하고, 성년이 될 때까지 매달 얼마씩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결정하는 거예요.“

 

홍 검사는 이렇게 법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혼자 생맥주집에 들어가서 술을 마셨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 남자와 여자 사이의 결혼은 저렇게 허망하게 끝이 나는구나. 사이가 나빠지니까 남보다 못한 것이 부부구나. 그런데 왜 인경이라는 여자는 연애만 하면 되었지, 남의 가정을 완전히 파괴하려는 것일까? 그리고 남자는 왜 가정을 지키지 않고 처와 딸을 버리려고 하는 것일까? 지금은 다른 여자가 좋아도 시간이 지나면 똑 같은 여자일 테고, 싫증이 나면 또 버릴 것 아닌가? 그 남자는 아주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인간이고, 인경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남이야 죽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는 지독한 이기주의자다. 그리고 맹순은 경제적으로 무능력해서 인격이 짓밟히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불쌍한 여자다.’

 

이런 생각을 하니 홍 검사는 결혼에 대한 환멸이 느껴졌다. 그래서 당분간 결혼은 생각하지 않고 지내기로 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홍 검사와 똑 같은 생각을 피력했다. ”혼인하지 않은 사람은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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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44)

 

맹순은 공국과 인경 문제로 싸움을 많이 했다.

“아니 지금 와서 그깟 여자 때문에 치킨집도 제대로 하지 않고, 가정을 팽개치면 아이들은 어떻게 할 거예요?”

 

“내가 언제 치킨집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했어? 더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건 내가 먹고 살아야 하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당신이 걱정하지 않아도 내가 죽기 살기로 할 거야. 그리고 가정을 왜 팽개쳐. 돈 벌어다 주고, 아이들 뒷바라지 잘 하고 있는데.”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예요? 인경이를 첩으로 데리고 있겠다는 거예요?”

 

“첩은 무슨 첩이야? 다만, 내가 먼저 시작했고, 여기까지 왔으니까 완전히 헤어질 수는 없고 그냥 이런 식으로 가겠다는 거지.”

“그럼 나는 어떤 존재가 되는 거예요. 당신 밥이나 해주고 빨래 해주는 사람인가요? 잠자리는 그 여자하고 하는 거고? 그리고 그 여자에게 생활비는 대주려고 하는 거예요?”

 

“그 여자와 잠자리도 하지 않아. 그리고 생활비를 대주지도 않고. 단지 그 여자가 혼자 사니까 서로 위로해주고 가끔 만나는 것일 뿐이야.”

 

시간이 가면서 맹순은 이런 공국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내놓고 공국이 인경을 만나고 아예 내놓고 치킨집에 와서 동업자처럼 일을 하고 있으니 견딜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젊었을 때와는달랐다. 공국이 인경과 육체관계를 하는 것 때문에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문제는 이미 관심이 없었다. 단지 공국이 내놓고 인경과 연애를 하는 것 때문에 맹순은 자신의 자존심이 뭉개지고, 인격이 짓밟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공국을 보면 볼수록 사람이 동물적으로 보이고, 더럽고 야비한 인간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이혼을 하려고 하니 경제적인 문제가 뒤따르게 되었다. 딸 아이를 공국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 맹순은 딸을 결혼할 때까지는 자신이 키우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생활할 집도 문제였다. 공국에게 이야기를 하니,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당신이 살고, 내가 밖으로 나갈 게. 그리고 딸은 당신이 이 집에서 키우고 있어. 양육비는 내가 매달 70만원씩 줄게.”

 

맹순은 기가 막혔다. 그동안 돈을 벌어본 일이 없었다. 오직 집에서 살림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교회만 열심히 다녔다. 그런데 갑자기 혼자 벌어서 먹고 살라고 하니 앞이 캄캄했다.

아니 내 생활비는 어떻게 해요? 나는 돈 벌 능력이 전혀 없는데.”

“이혼하는 마당에 당신 생활비까지 내가 줄 수는 없는 거야. 그건 알아서 해야지. 살고 있는 집만 주는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해. 나는 밖에서 살 곳을 마련해야 할 입장이잖아.”

 

맹순이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자가 소유가 아니라 전세로 살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이라 더러웠지만 선뜻 이혼결정을 하지 못하고, 그냥 지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답답해서 친척인 홍 검사를 만나 법률상담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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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43)

 

인경은 그 다음부터는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 어떤 남자를 봐도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여자를 이용해 먹으려는 교활한 늑대 같았다. 아니면 욕망을 추스르지 못하는 발정기의 숫사슴처럼 보였다.

 

다른 커피숍에서 커피 바리스터로 열심히 일을 해서 어느 정도 돈도 모았다. 그러다가 이혼한 비슷한 나이의 남자를 만나 둘이 동업으로 커피숍을 차렸다. 물론 대부분의 자금은 남자가 냈고, 인경은 2천만원만 냈다.

 

몇 달 동안 합심해서 커피숍이 자리를 잡자, 남자는 인경에게 결혼하자고 했고, 인경도 그동안 혼자 고생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그 남자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였다.

 

그 남자는 혼자 살던 집이 있었기 때문에 인경은 살림살이를 가지고 들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결혼식도 하지 않고 동거에 들어갔고, 동거를 시작한 지 한 달만에 혼인신고까지 마쳤다.

 

그 남자의 말로는 전처가 바람을 피워서 하는 수 없이 협의이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전처와의 사이에 자녀도 없다고 했다. 인경은 그동안 여러 차례 남자에게 속고 배신을 당했으면서도 또 그 남자의 말을 무조건 믿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지막 남자라고 생각하고, ’내 사전에 이혼은 없다. 이 남자 이외의 다른 남자는 없다.‘라고 확신하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인경은 약간의 돈도 모으고, 행복했다. 앞으로 자신의 인생에 불행은 없으리라고 믿었다.

 

그런데 2년이 지나면서 남자는 갑자기 인경과 잠자리를 하지 않고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애정이 식은 모습이 확연하게 보였다.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어린 여자를 꼬셔서 애인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인경은 그런 사실을 알게 되자, 모든 것을 포기하고 협의이혼을 하고 나왔다. 물론 투자한 돈은 남자로부터 받고 나왔다.

 

이혼한 다음 인경은 1년 정도 쉬다가 다시 작은 커피숍을 오픈했다. 그러면서 완전히 남자는 멀리하고 열심히 일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혼한 지 3년쯤 지나서 배드민턴을 치러 다니다가 공국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때는 커피숍도 접고 집에서 쉬고 있던 때였다. 공국은 매우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인경을 만나서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고 상의했다. 그리고 치킨집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공국의 이런 모습에 인경은 끌렸다.

 

그러면서 정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국의 부인인 맹순이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의심하고 끊어놓으려고 나선 것이었다. 인경도 이제는 물러서지 않으려고 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자신은 항상 남자에게 당하고, 남자의 부인에게 당했다. 그런 것이 너무 억울했다. 그래서 이제는 당당하게 공국의 부인과 싸우려고 마음먹었다.

 

그래, 내가 당신 남편을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당신 남편도 당신과는 정이 없고, 오히려 나를 더 좋아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당신이 물러서야지, 왜 내가 물러서야 하느냐?”

 

이런 식이었다. 다만 인경의 입장에서는 공국의 부인인 맹순에게는 하나도 미안하지 않았지만, 공국의 자녀들에게는 미안했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아무런 죄가 없기 때문이다.

 

자녀들은 공국과 맹순 사이에서 본인의 의사와는 아무 관계없이 태어났다. 공국과 맹순이 남자와 여자로서 사랑하고 성관계를 했기 때문에 아주 우연히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아빠와 엄마가 서로 잘 살고 능력이 있으면 자녀들은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아빠와 엄마가 제3자의 개입으로 혼인생활이 파탄나고, 매일 싸움이나 하고 있으면 자녀들은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보게 된다.

 

그 점에서는 인경이 할 말이 없었고, 미안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문제 때문에 자신이 어렵게 얻은 사랑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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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42)

 

인경이 그 일로 인해 회사를 그만 두자, 사장은 퇴직위로금조로 인경에게 더 천만원을 주었다. 인경은 아무 말없이 그 돈을 받았다. 일단은 인경의 형편에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미 당한 일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잊기로 했다. 하지만 그 일은 두고 두고 극심한 트라우마로 남았다.

 

인경의 어머니는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해 사고를 당한 지 4개월이 지나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그런지 아버지도 몇 달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인경은 22살의 나이에 완전히 고아가 되었다. 세상이 너무 두렵고 무서웠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부모님 친척도 인경을 도와주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인경은 이런 저런 역경을 겪으면서 단단해졌다. 그러면서 세상 사람을 누구도 믿지 못하는 병이 생겼다. 그래서 혼자 열심히 직장에 다니면서 일을 하고 조용히 살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남자들이 끊임없이 인경에게 달라붙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자는 진실성이 없었다. 장난 비슷하게 연애나 하자는 남자들이 대부분이었고, 인경이 싫어하는 육체관계만 원하는 것이었다.

 

인경은 커피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서 카페에 취직을 했다. 커피를 열심히 공부해서 상당한 수준이 되었다. 장사가 잘 되지 않는 카페에 취직을 해서 열심히 일을 한 결과 그 카페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카페 주인 아들이 인경을 유혹했다.

 

너무 집요하게 매일 카페에 나와서 일을 도와주는 척 하면서 잘 대해주니까 인경이 마음이 움직였다. 그래서 마음을 열고 그 주인 아들과 연애를 했다. 그 남자는 미국에서 오래 공부를 하고 돌아온 건달이었다. 그런데 인경 앞에서는 아주 진실한 남자인 것처럼 위선과 가식으로 일관해서 인경은 괜찮은 사람으로 믿었다.

 

결혼까지는 약속하지 않았지만, 인경 역시 카페를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면서, 그 아들을 사랑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는데, 어느 날 그 아들의 부인이 나타나서 인경의 머리채를 잡았다. 왜 유부남을 꼬여서 가정을 깨뜨리려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인경은 억울했다. 그 남자는 워낙 동안으로 어려보였고, 결혼한 유부남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남자는 늘, “나는 결혼할 생각은 아직 없어요. 커피 전문가가 되는 것이 꿈이예요.” 이렇게 말하면서 밖에서 자고 들어가는 것이 다반사였다. 물론 인경과 외박을 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지만, 친구들과 클럽을 다니면서 외박하는 것은 일주일에 한번 꼴이었다.

 

인경은 그렇게 사기를 당하고 배신을 당한 것이었다. 그 남자는 자신의 비행이 탄로나자, 부인에게 각서를 써주었다. “본인은 가만 있었는데, 인경이라는 여자가 먼저 나를 유혹해서 하는 수 없이 넘어갔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본인은 인경과 딱 세 번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인경이라는 사람을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한번 더 만나면 이혼을 당해도 좋습니다.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영은 기가 막혔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인경도 그 남자의 부인에게 각서를 써주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이를 거절했다가는 즉시 부정행위에 대한 위자료조로 인경이 지금 살고 있는 원룸의 보증금이 가압류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남자의 부인은 이미 그 남자로부터 인경의 주민등록번호와 주민등록지, 원룸의 보증금까지 소상하게 개인정보를 파악해 놓고 있었다. 인경은 하는 수 없이 각서를 써주었다. 각서의 내용은 그 부인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썼다.

 

본인은 가만히 있는 남편 OOO씨를 유혹해서 성관계를 가졌습니다. 이에 대한 책임으로 본인은 카페에서 사직하겠습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OOO씨를 만나지 않겠습니다. 만일 앞으로 전화를 하거나 이메일을 보내거나 문자를 보내거나 직접 만나게 되면 1회당 100만원의 손해배상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서명을 한 다음 지장을 찍어주었다. 그 부인은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닌 것 같았다. 여러 번 이런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인경은 정말 억울했다. 사람을 잘못 본 죄가 이렇게 큰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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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41)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홍 검사는 맹순의 남편인 공국이 인경과 연애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의심을 하기 시작한 다음에 맹순이 확실한 증거를 잡기까지 무엇을 했는지 궁금했다.

 

나도 한 때 배드민턴을 치러 남편하고 같이 다녔기 때문에, 인경이라는 여자도 알고, 같은 배드민턴 회원들을 잘 알고 있었어. 그래서 나와 친한 여자 회원 한 사람에게 부탁을 했어. 가끔 치킨집에 가서 동향을 살펴달라고.”

 

공국과 인경은 배드민턴을 칠 때에도 거의 함께 쳤다. 공국은 부인인 맹순과는 몇 년 전부터 각방을 쓰면서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 그것은 맹순이 나이를 들면서 잠자리를 하기 싫어졌고, 공국도 자연히 시간이 지나면서 더 이상 맹순과 잠자리를 하고 싶지 않아졌기 때문이었다. 육체관계는 남자나 여자나 나이를 먹고, 특히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생활에 시달리다 보면 자연히 욕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점점 덜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여자는 그런 경향이 있다. 남자와 달라서 성관계에 대한 욕구가 적은 여자도 있다.

 

그러면서 두 사람 사이는 더 이상 남녀로서, 부부로서 정이 없어졌고, 그냥 단순히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그냥 사는 것이었고,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혼할 생각을 할 겨를 없이 살고 있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공국은 나이가 들면서 인생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고, 건설회사에 다닐 때는 일이 바쁘고, 돈을 버는 일에 매진했기 때문에 삶에 권태를 느낄 겨를도 없었다. 그리고 술을 좋아해서 친구들과 또는 거래업자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노래방이나 다니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가끔 노래방에 가서 술을 마시고 도우미와 성관계를 가지기도 했지만, 고정적으로 애인을 두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건설회사를 그만 두고, 나이가 50살이 넘게 되니,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과연 제대로 살아온 것인지 회의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맹순과 결혼할 때에는 정말 맹순을 사랑해서 죽기살기로 목숨을 걸고 구애를 해서 결혼도 했지만, 막상 결혼해서 몇 년이 지나니까 애정도 식고 담담해졌다.

 

그러나 먹고 사는 것이 바쁘고 힘이 들어서 다른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자녀 교육에 신경 쓰다보니 더욱 그랬다. 하지만 아이들도 공국의 뜻대로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았고, 크게 비뚤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어서 그 때문에도 부부 사이는 더욱 냉냉하게 되는 것을 느꼈다.

 

특히 딸 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학교 다니는 남자 친구와 성관계를 가진 일을 알게 된 공국은 그것을 전적으로 부인 탓으로 돌렸다. ‘맹순의 피가 흘러서 여자 아이가 끼가 있어 그렇게 된 것이다. 맹순이 처녀 때도 이미 남자와 성관계를 하고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내가 끼어들어 또 나와 성관계를 한 것이다. 그런 엄마에게서 나온 딸이니까 저렇게 몸관리를 못하는 것이다.’라는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 그것은 말도 되지 않는 생각이었다. 끼가 있어도 공국이 맹순보다는 백배 더 있었다. 그러나 남자의 논리를 여자의 논리를 초월하는 무식한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공국은 치킨집을 시작하면서 인생관이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배드민턴을 치러 다니면서 여자들과 같이 운동을 하니까 이상하게 성관계를 하고 싶은 욕정이 생겼다. 그렇다고 집에서 맹순과는 오래 동안 관계를 하지 않고 지내서 새삼스럽게 하기도 싫었다.

 

배드민턴장에서 여자회원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운동을 하는 것을 보면, 공국은 자연스럽게 관계를 하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그러다가 인경과 관계를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운동만 열심히 하고, 가끔 회식을 하거나 노래방을 같이 가도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런데 아주 예외적으로 이상한 관계를 맺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어떤 조직이나 단체, 모임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한편 인경은 남편과 이혼하고 3년이 지난 때에 공국을 만나게 되었다. 인경은 35살에 결혼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회사에 다녔다. 부모님이 사업을 하다 사기를 당해 부도가 났다.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공부를 잘 했는데,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부모님 부양을 해야 할 입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외동딸로 귀엽게 크다가 갑자기 아버지가 사업에 망하고, 중풍마저 당해 일을 못하게 되자, 인경은 돈을 벌면서 부모님과 살았다. 그래서 회사에 취직해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사장이 술을 먹인 후 호텔에 끌고가서 간음을 했다. 그때 인경은 너무 억울해서 자살을 하려고까지 마음 먹었다.

 

인경이 늙은 사장에게 당한 경위는 이랬다. 인경이 회사에 취직해서 6개월쯤 지난 때였다. 갑자기 회사 사업이 잘 돼서 직원을 몇 사람 더 뽑았다. 모두 대졸 출신이었고, 여직원들도 외모가 다 괜찮았다. 그 때문에 인경은 상대적으로 콤플렉스를 느꼈다. 공연히 다른 직원들이 인경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끼기도 했다. 외모 때문에 콤플렉스도 느끼고 있어서, 강남에서 성형수술을 하려고 알아보니 천만원 이상의 견적이 나왔다. 성형수술은 불가능했다.

 

그러고 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뺑소니차에 치어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인경은 너무 절망했다. 왜 자신에게는 이런 상상도 못할 불행이 닥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늘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성당에도 열심히 다니는데, 왜 아버지 사업도 부도나고, 어머니까지 교통사고를 당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밤에 뺑소니차에 치어서 범인을 잡을 수도 없었다.

 

어머니 때문에 3일간 출근을 못하고 있다가 회사에 출근하니 더욱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러다가는 이 회사도 잘못하면 못다닐 것 같았다. 그러고 있는데, 퇴근 시간에 사장실로 오라는 호출이 왔다. 인경은 가슴이 철렁 가라앉았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사장실로 들어갔다.

 

사장은 인경에게 아주 부드럽게 말했다. “어머니가 뺑소니차에 치었다면서? 얼마나 놀랬어? 아직 범인은 못잡았고? 이것은 약소하지만 어머니 병원비로 써요.” 그러면서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인경은 처음에는 사양했으나, 사장이 별로 큰 돈이 아니라고 하면서 받으라고 강권하기에 그냥 들고나왔다. 100만원짜리 자기앞수표가 세장 들어있었다. 인경은 놀랐다. 하지만 다시 사장실에 들어가서 돌려준다고 할 용기도 없었다. 그냥 고맙게 생각하고 받기로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다음, 사장은 퇴근 시간에 인경에서 외국에서 손님이 왔다고 하면서 같이 가서 비서역할을 해달라고 했다. 인경은 아무 의심 없이 사장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일주일 전에 어머니 병원비로 거액을 주었기 때문에 더욱 의심하지 않고, 고맙게 생각하고 사장을 도우려고 따라갔다.

 

강남에 있는 호탤로 가서 로비라운지에서 외국 손님 한 사람을 만나서 30분 정도 일을 보았다. 인경이 볼 때 특별히 비즈니스를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간단히 일을 마친 다음 사장은 인경에게 저녁을 먹고 가자고 했다. 인경은 여기서도 거절하기 곤란했다.

 

호텔 일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다. 인경으로서는 이런 고급 호텔 일식당에서 좋은 사시미를 먹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정말 맛이 있었다. 사장은 인경에게 술을 권했다. 사장 자신도 많이 마시면서 인경에게 계속 권했다. 인경은 술이 약한 상태에서 사장이 주는 술을 받아마시다 보니 취했다.

 

인경이 눈을 떠보니 그 호텔 룸에 자신이 침대에서 발가벗은 채 누워있었다. 깜짝 놀랐다. 사장은 침대에 메모를 남기고 밖으로 나가있었다. ‘일어나면 전화해 줘요.’ 사장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인경은 사장이 술에 취한 자신에게 나쁜 짓을 한 것을 확인했다. 침대 시트에 붉은 흔적도 맺혀져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안에도 남자의 그것이 남겨져 있었다. “이런 악마! 이런 나쁜 인간!” 인경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인경은 혼자 울다가 옷을 입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아버지는 늦은 인경에게, “회사 일이 바빴던 모양이구나? 피곤해서 어떻게 하니? 아이 불쌍하다. 인경아!‘ 하면서 팔로 껴안았다. 순간 인경은 쓰러질 뻔했다. 하지만 인경은 이를 악물었다. ”아니 내가 쓰러지면 안 돼. 불쌍한 아빠와 엄마를 돌봐야 하잖아.“

 

인경은 악마같은 사장을 경찰에 신고를 하려고 했으나, 부모님이 그런 사실을 알게 되면 충격을 받고 돌아가실까봐 신고할 수 없었다. 사장은 워낙 나쁜 사람이어서 모든 것이 계획적이었다. 만일 인경이 문제 삼으면 돈을 300만원 주고 동의를 받아서 한 것이라고 미리 돈을 주었던 것이었다. 그때 인경은 나이가 21살이었는데, 사장은 61살이나 된 사람이었다. 인경과 무려 40살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악마였다.

 

인경의 몸을 빼앗고 사장은, “인경은 내가 평생 책임질 테니, 내 곁에서 있어라. 그러면 고생하지 않게 해주고, 부모님도 편하게 살 수 있잖니?”라고 징그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그 사장은, “인경이 내게 처녀를 바쳤으니, 내가 특별히 사랑하면서 챙겨줄게.”라고 했다.

 

인경은 그때 늙고 악마와 같은 사장에게 처녀를 빼앗긴 것을 너무 억울해했다. 인경은 어렷을 때부터 자신의 처녀는 오직 사랑하는 남자만을 위해 간직하겠다고 굳게 마음 먹었던 여자였다. 특히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성당에 다니기 시작해서 남다른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처녀성에 대해 특별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인경은 어린 나이에 사장이 돈은 있는 사람이고, 부도나고 병든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 사장 애인으로 지내는 것도 어떨까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며칠 후 회사 동료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듣고 모든 것을 단념해버렸다. “우리 사장은 여자를 너무 좋아해서, 지금까지 건드린 여자가 20명이나 된데. 정력이 너무 좋아서 많은 여자가 필요한 사람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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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40)

 

공국은 건설회사를 다니면서 월급을 받고 생활할 때는 세상이 그렇게 살기 힘든 줄 몰랐다. 하지만 막상 자신이 주인이 되어 치킨집을 차려놓고 보니 세상은 정말 무섭고 살아남기 어려운 곳이었다. 겉으로 봐서는 다들 별 걱정 없이 사는 것 같은데, 막상 속을 파헤쳐보면 다들 힘들게 살고 있는 것이었다.

 

공국은 가끔 서울의 길거리를 걸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저 많은 식당과 커피숍, 치킨집, 빵집, 이런 저런 가게를 보면 다들 잘 안되는 것 같았다. 대부분 장사를 해본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탁상공론을 하고 가게를 차렸을 것이다. 처음에는 막연히 계산을 한 것이었을 것이다.

 

장사를 하다가 잘 되지 않으니까 가게를 내놓았을 것인데, 처음 하는 사람들은 그런 이면을 모르고 전에 장사를 하던 사람들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가게를 인수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동산중개인도 한몫 하기도 했을 것이다. “장사는 잘 되는데, 갑자기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 때문에 가게를 내놓은 것이다. 장사가 너무 잘 된다.” 이런 식으로 장사가 잘 되는 것처럼 허위 또는 과장을 한다.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들은 권리금까지 주고 가게를 얻는다. 부동산중개수수료도 주고, 인테리어업자를 만나 바가지를 쓴다. 영업허가증도 받아야 하고, 이런 저런 비품도 사야 한다. 돈을 받는 포스기계도 사야하고, 인터넷도 설치해야 한다. 모든 게 돈이다. 그렇게 장사를 시작하면 손님은 거의 없다. 파리를 날린다.

 

가게를 차려놓고 종업원까지 두었는데, 손님이 없으면 정말 고통스럽다. 특히 옆 가게에는 손님이 밀려드는데, 자신의 가게에는 손님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종업원 보기에도 미안하다. 가끔 들어오는 손님도 나갈 때 표정이 별로다. 음식이나 가게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으면 주인은 더 절망에 빠진다.

 

월세나 관리비, 종업원 월급 날짜는 왜 그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모른다. 더군다가 은행에서 빚을 얻어서 장사를 시작하는 경우는 매달 피 같은 돈을 은행 이자로 내야 한다. 이런 주인은 하루 하루가 고통이다.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우울증에 빠진다. 그렇게 되면 부부 사이도 나빠진다. 서로 탓을 한다.

 

공국은 이런 상황에서 정말 다행스럽게 살아남게 된 것이었다. 공국은 처음 한 달은 무조건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했다. 치킨도 넉넉하게 주고, 생맥주도 세 잔째에는 한 잔을 공짜로 주었다. 단체손님의 경우에는 계산할 때 10%씩 할인해주었다.

 

그리고 지역에서 배드민턴 동호회에 가입하고, 이런 저런 모임에 적극적으로 나가 활동을 했다. 그러다 보니, 지역에서 공국을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다.

 

그리고 동네에서는 공국이 재산도 많이 있는데, 놀기 싫어서 소일 삼아 치킨집을 하고 있다는 사실과 다른 소문도 났다. 공국은 실제로는 돈이 없는데, 주변에서 잘못 알고 그런 소문을 내니까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런 소문이 장사하는데 나쁜 것은 아니었다.

 

치킨집이 자리를 잡자, 공국은 삶에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배드민턴 동호회에서 인경(45, 가명)을 만나게 되었다. 동호회에는 물론 여자 회원도 많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인경이 공국의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공국이 인경에게 접근을 했다.

 

인경도 공국이 싫지 않았는지 자연스럽게 공국과 사귀게 되었다. 인경은 가끔 공국의 치킨집에 와서 일을 거들어주었다. 처음에는 배드민턴 동호회 회원들이 자주 치킨집에 가게 되고, 그래서 바쁠 때 같은 동호회원이니까 일을 거들어준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 것이 점차 횟수가 많아지고, 인경은 시간만 되면, 치킨집에 가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두 사람은 깊은 관계가 되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속담이 있다. 어느 날 공국의 부인이 맹순이 밤 12시가 지난 시간에 밖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도중에 치킨집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보통 11시면 문을 닫는데, 그 시간에도 불이 켜져있었다.

 

맹순은 택시에서 내려서 치킨집으로 갔다. 이상하게 문이 잠겨있었고, 공국과 인경 두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니, 인경 씨, 어쩐 일이예요? 이 늦은 시간에!” “. 인경 씨가 설거지를 도와주고 가려는 것을 내가 미안해서 술 한잔 하자고 했던 거야. 당신도 와서 한 잔 하지 그래?”

 

이때는 그냥 그렇게 넘어갔다. 하지만 여자의 촉은 남자보다는 예민하다. 그때부터 맹순은 남편과 같은 배드민턴 회원인 인경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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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39)

 

이 남자의 사건을 담당했던 홍 검사는 그 당시만 해도 피고인인 남자는 틀림 없이 성추행을 한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고등학생인 피해자가 당하지도 않은 성추행을 현장에서 범인을 붙잡아 신고를 하고, 계속해서 자신이 당한 피해사실을 진술할 리는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란 다 그렇게 성추행을 해놓고도 명백한 물적 증거가 없으면, 범행을 부인하는 습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홍 검사가 법을 공부하거나 판례를 보고서 얻은 것은 아니었다. 검사로서 많은 성추행, 강간 등과 같은 성범죄를 수사하고, 재판에 관여하다 보니 얻게 된 경험칙이었다. 하지만 실제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것을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법이 불완전하고 위험한 것은 대부분 사람들의 진술에 의존해서 재판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기억은 불완전하다. 그리고 그런 기억에 기초한 진술은 부정확할뿐더러, 때로는 구체적인 사건에게 이해관계에 따라 허위 또는 과장된다. 허위고소, 허위증언이 현실적으로 많이 일어나고 있다.

 

검사나 판사가 어떤 형사사건에서 피의자에 대한 유죄심증을 가지는 것은 그야말로 제한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법을 집행하는 사람의 선입관이나 경험에 기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홍 검사가 이번에 본의 아니게, 술집에서 성추행범으로 몰려서 조사를 받게 되니, 성추행사건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던 그 남자가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홍 검사는 요새 자신의 문제로 골치를 썩이고 있는데, 먼 친척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법률상담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홍 검사는 하는 수 없이 그 여자를 만났다. “남편이 바람이 나서 이혼을 하자고 하는데, 어떻게 하지?”

아니, 잘 사시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이혼을 하자고 해요?”

남편이 동네에서 배드민턴을 치러 다니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여자와 붙어서 도저히 헤어질 수 없다고 하면서, 나와는 이혼을 하지고 그래.”

 

맹순은 홍 검사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하소연했다. 맹순의 남편은 56살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건설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30살에 맹순과 결혼해서 아이를 둘 낳았다. 결혼할 때 맹순은 27살이었는데, 지금 남편 친구와 연애를 하고 있었다.

 

그런 맹순을 지금의 남편인 공국이 삼각관계를 맺고 들어와서 빼앗았다. 그 때문에 공국과 맹순의 애인은 심한 몸싸움까지 했다. 자신의 애인을 빼앗긴 맹순의 애인은 분노심에 불타서 공국을 맥주병을 깨서 팔을 찔렀고, 그로 인해 구속까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공국은 끝내 맹순을 놓치지 않았다.

 

결국 맹순의 애인은 맹순을 포기하고 말았다. 맹순이 물론 전 애인과 육체관계가 있었던 사실도 다 알고 있었지만, 공국은 자신의 눈에 딱 맞는 이상형이라면서 맹순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고 아꼈다.

 

공국은 결혼하고 건설회사에 다니면서 한 눈을 팔지 않고, 일만 열심히 하면서 자녀들을 키웠다. 맹순 역시 결혼한 다음에는 오직 가정에만 헌신했다. 공국은 55세가 되던 해에 오래 다니던 건설회사에서 그만 두었다.

 

다니던 건설회사가 부도가 났고, 사장은 회사 비자금을 횡령하고 탈세를 한 혐의로 조사를 받다가 자살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공국은 퇴직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실업자가 되었다. 그러면서 매일 술이나 마시고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동네에서 작은 치킨집을 하나 차렸다.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담보대출 받은 자금으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치킨집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이 6개월이 지나자 치킨집은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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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38)

 

그 남자는 법원에 가서도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다. 그래서 법원에서는 다시 피해자를 증인으로 불렀다. 피고인의 변호사는 피해자가 증인으로 나오자 상세하게 따져물었다. 피해자는 나이가 어린 상태에서 증인으로 나와 질문을 받자 당황했다.

 

“증인은 당시 피고인이 어떤 방식으로 증인의 신체를 만졌다는 것인가요?”

“예. 제가 친구와 팔장을 끼고 길을 가고 있는데, 앞에서 오던 피고인이 제 오른쪽으로 지나가면서 제 엉덩이를 손으로 만졌습니다.”

 

“피고인이 엉덩이를 세게 만졌나요? 아니면, 손바닥으로 살짝 대고 지나간 것인가요?”

“손바닥으로 치마를 위로 치켜드는 것처럼 쓸어올린 것입니다.”피고인은 당시 치마를 입고 있었나요? 짧은 치마였나요?“

“예. 약간 짧은 치마였습니다. 얇은 천이었습니다.”

 

“피고인은 경찰에서는 엉덩이를 꼬집듯 세게 만졌다고 진술했고, 검찰에서는 그냥 만졌다고 진술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손바닥으로 치마를 위로 치켜드는 것처럼 쓸어올렸다고 진술하고 있는데, 어떤 진술이 사실인가요? 그리고 진술이 자꾸 바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경찰에서도 지금처럼 진술했어요. 검찰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지금 진술하고 있는 것처럼 저 사람이 제 치마를 손바닥으로 쓸어올렸어요. 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그 당시 저 사람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약간 오래 만지고 있었기 때문에 치마 밑으로 징그러운 남자 손의 촉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말하고 남자의 사진을 찍고 붙잡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엉덩이를 꼬집듯 세게 만지는 것과 치마를 위로 치켜드는 것처럼 쓸어올리는 것은 전혀 다르지 않나요?”

“저는 분명히 저 사람이 치마를 위로 치켜드는 것처럼 쓸어올렸다고 생각합니다.”

 

피고인은 무죄판결을 선고받았다.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선고한 이유는 CCTV 상에 피고인의 손이 피해자의 신체에 직접 접촉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고, 근소한 거리를 두고 스쳐 지나가는 장면만 나오며, 피해자의 진술이 경찰과 검찰, 그리고 1심 법정에서 다르게 바뀌고 있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검찰에서는 이러한 무죄판결이 부당하다고 또 항소를 했다. 피고인은 생각했다. “아! 세상이 이렇게 무섭구나. 내가 성추행을 하지도 않았는데, 피해자라고 하는 사람의 말만 믿도 재판에 넘기고, 법원에서 무죄판결이 선고되었는데도 또 검찰에서는 항소를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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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37)

 

홍 검사는 3년 전에 이런 사건을 담당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특별한 생각 없이 일반사건으로 보고 기계적으로 처리했다. 만일 오늘과 같은 일을 경험했더라면, 전혀 다른 각도에서 사건을 보다 진지하게 보고 신중하게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 것이 어쩌면 인간의 한계일지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고, 법률가는 법이라는 대단히 형식적이고 획일적이며 기계적인 잣대를 가지고, 몇 달 전, 또는 몇 년 전의 사건을 소급해서 사실판단을 하고 법률적용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건의 수사나 재판은 원초적으로 불완전성, 불공평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남자가 서울 도심지에서 대로변을 가다가 여학생 두과 교차하면서 지나쳤다. 여학생 두 명은 팔장을 끼고 걸어가고 있었다. 시간은 해가 져서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인도에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여학생 일행을 교차하는 순간, 한 여학생이 친구들에게 말했다. “! 저 남자가 내 히프를 만졌어.”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가다가 여학생과 몸이 닿은 사실은 있었지만, 여학생의 신체를 의도적으로 만진 사실은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가던대로 길을 가고 있었다. 여학생 일행은 가던 길을 돌아서 그 남자를 스마트폰으로 여러 장 찍었다. 그리고 그 남자를 따라가서 세웠다. “아니, 왜 우리 친구 히프를 만지고 가요? 가면 안 돼요. 경찰에 신고했어요.”

 

그러자 그 남자는 당황했다. 길거리에서 창피를 당할 것같은 생각이 들어서 도망치려고 했다.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창피하고 만일 경찰이 오면 조사를 받고 시시비비를 가려야하기 때문이었다. 그 남자는 전에 폭행죄 등으로 세 차례 조사를 받고 벌금을 낸 사실이 있었다.

 

그래서 일단 경찰에 가서 조사를 받게 되면 자신의 결백과 무혐의를 받기가 얼마나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무의미하며 비생산적인 게임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남자는 뛰어서 현장을 이탈하려고 했으나 경찰이 오기 전에 젊고 정의로운’ ‘귀신도 때려잡는 해병대출신의 한 남성에 의해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우리 형사소송법상 현행범은 경찰관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현장에서 체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래서 예를 들면, 오토바이가 사람을 치고 달아나는 것을 택시 기사가 끝까지 쫓아가서 붙잡는 것이라든지, 공원에서 야간에 여자를 성폭행하고 달아다는 범인을 체포하는 행위는 정당한 행위이며, 체포감금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체포를 하기 위해 다소 폭행을 해도 위법성이 조각된다. 그 남자는 해병대 출신의 남성에 의해 체포된 직후 출동한 경찰관에게 인계되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여학생은 이 남자가 제 옆을 지나치면서 갑자기 오른 속으로 제 왼쪽 히프를 세게 만지고 도망갔습니다. 정말 나쁜 사람이예요. 너무 세게 히프를 웅켜쥐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히프가 아파요. 무겁게 처벌해주세요.”

 

경찰서로 인계된 남자는 펄펄 뛰었다. “저는 전혀 그런 일이 없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길을 가다가 그 여학생과 몸이 조금 닿아 스쳤던 적은 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있는 대로변 인도에서 어떻게 여학생의 히프를 세게 웅켜진다는 말입니까? 너무 억울합니다.”

 

그럼, 이 여학생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입니까? 당신을 성범죄자로 몰아서 돈을 뜯어내려고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까? 그리고 고의로 만지지 않았으면 그 자리에서 해명을 할 노릇이지, 왜 도망을 쳤습니까?” “그 여학생은 아마 저와 스쳐지나가면서 제 손이 약간 닿았기 때문에 오해를 한 것 같고, 제가 도망간 것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성추행범으로 오해를 받으면 창피하고 귀찮을 것 같아서 도망가려고 한 것입니다.”

 

사건 당시 도로에는 CCTV가 있어 경찰에서는 이를 확보하여 동영상을 분석했다. 하지만 CCTV가 한곳에서만 촬영되어 있어, 여학생 일행과 그 남자가 아주 근접하게 교차한 장면은 나오지만, 남자가 여학생의 히프를 만지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에서는 어린 여학생의 진술의 신빙성에 더 무게를 두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폭행이나 상해 등으로 벌금을 세 번이나 낸 전력이 있고, 아주 근접한 거리를 두고 여학생과 교차한 사실 및 현장에서 성추행범으로 몰리자 도망치려고 했던 정황 등을 근거로 남자를 강제추행죄로 입건하여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 사건을 맡은 홍 검사는 피의자신문조서를 받고, 이어서 피해자와 대질조사도 했다. 남자는 홍 검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

 

검사님! 저는 정말로 억울합니다. 이 사건은 여학생이 오해를 했거나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전과가 있지만, 저는 3년 전에 세상이 싫어서 절에 가서 수도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특히 절로 들어간 이유가 한 여자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깊은 상처를 입어서 세상이 싫어졌기 때문에, 사회에서 돈을 잘 버는 가게도 넘겨버리고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자라고 하면 정말 정이 떨어지고 징그럽게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제가 길에서 여자의 엉덩이를 만지다니요? 정말 저를 아는 사람들이 알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펄펄 뛸 겁니다. 제가 수도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곧 바로 증거로 증명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홍 검사는 그 남자의 이런 말을 듣지 않았다. 모두 거짓말로 생각했다. 이상하게 절에서 수도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람이 얼굴에서 풍겨나오는 이미지가 욕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지저분한 동물처럼 느껴지고, 음성도 느끼했다. 그리고 절에 있다면서 머리도 길었다. 혹시 가발을 쓴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검사가 그런 질문까지 하는 것은 월권이었다.

 

하지만 CCTV로 봐서는 강제추행죄를 인정하기가 어려워서 다소 고민은 되었다. 그러나 홍 검사는 일단 피해자인 여학생의 명확한 진술이 있었기 때문에 별 걱정을 하지 않고 법원에 넘겼다. 정식재판을 통해 그 남자에게는 벌금 500만원이 구형되었다. 남자는 결국 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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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36)

 

이때 경찰관이 피해자 일행에게 조용히 말했다.

저 사람은 현직 검사예요. 조용히 해결하면 어때요?” 이 말에 일행은 흥분했다. “뭐라고! O이 검사라고? 그럼 검사는 여자 엉덩이 만져도 되고, 검사 아니면 여자 엉덩이 만지면 감방간다는 말이야? 저런 성범죄자가 무슨 검사야?”

 

식당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이 기이한 장면을 구경하면서 재미있어 했다.

저 사람이 현직 검사래!’

별로 검사답게 생기지 않았는데! 날라리로 보이는데!’

검사가 저러겠어? 검사 사칭하는 거겠지?’ ‘아냐 현직 판사도 지하철에서 성추행범으로 체포되었다고 뉴스에 나왔어.’ ‘판사나 검사가 더 여자를 밝히고 응큼하대.’

 

상황이 어렇게 되자, 경찰관은 어쩔 수 없었다. 경찰관이 홍 검사의 팔장을 끼고 순찰차에 태웠다. 여자 피해자 일행은 따로 택시를 타고 경찰서로 왔다.

순찰차 안에서 경찰관은 홍 검사에게 말했다.

검사님! 죄송합니다. 하지만 112신과 들어왔고, 피해자가 저렇게 난리 치니 저희는 어쩔 수 없습니다. 경찰서에 가셔서 잘 해명하시기 바랍니다.”

 

홍 검사는 말하자면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경찰서로 넘어간 것이다. 담당 수사관은 피해자에 대한 진술조서를 받았다. 그리고 홍 검사에 대해서는 피의자신문조서를 받았다. .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내가 어떻게 경찰서에 끌려와서 조사를 받게 되었을까?’

그러면서 경찰관에게 양해를 구하고, 홍 검사실에서 근무하는 최 계장에게 연락을 했다. 최 계장은 홍 검사에게 수사관을 바꿔달라고 했다.

 

최 계장은 수사관에게 현재 경찰서에 성추행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있는 피의자가 자신이 검찰청에서 모시고 있는 현직 검사가 맞으니 선처해 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했다. 하지만 경찰로서는 이렇게 된 상황에서 조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찰관은 피해자 본인과 피해자 일행 두 사람의 진술조서도 받았다. “제가 화장실 갔다가 테이블로 돌아오는데, 이 남자가 손으로 제 히프를 만졌습니다. 제가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이 사람의 손이 밑에서 위로 훝었습니다.” 피해자의 주장이었다. 여자는 지나치게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고, 스타킹도 신지 않아 맨살이었다.

 

그리고 피해자의 일행인 남자 한 사람과 여자 한 사람도 이 사건에 관해 참고인으로 진술을 했다. “제가 테이블에 앉아 피해자와 가해자가 교차하는 장면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런데 가해자의 손이 피해자의 히프를 만지고 있어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피해자가 소리를 질러 제가 곧 바로 테이블에서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서 남자에게 왜 성추행을 했느냐고 따졌습니다.” 이런 취지의 진술이었다. 피해자와 일행의 진술에 의하면 홍 검사의 성추행혐의는 충분히 증명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홍 검사는 자신의 혐의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저는 절대로 피해자의 히프를 만진 사실이 없습니다. 제가 술에 취해서 화장실을 가다가 피해자와 좁은 통로에서 비껴가려고 했는데, 중심을 잡지 못해 여자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잠깐 제 손이 히프에 닿은 것뿐입니다.”

 

홍 검사는 자신에 대한 혐의사실인 강제추행부분에 대해서만 상세하게 해명 차원에서 진술하였을 뿐, 자신을 폭행한 피해자 일행의 폭행이나 상해부분에 대해서는 진술하지 않았다. 공연히 사건을 크게 만들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사를 받는 도중에도 이곳 저곳이 쑤시고 아팠다. 지문도 찍고, 피의자신문조서를 마친 다음 경찰에서 풀려나왔다.

 

데리고 있는 최 계장은 택시를 타고 와서 경찰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최 계장은 홍 검사를 집에 모셔다 드렸다. 홍 검사는 너무 창피했다. 그리고 억울하게 당한 점을 분하게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현직 검사가 물의를 일으켜서 큰일 났다는 생각 때문에 공황상태가 되었다.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는 것이다. 사람의 일은 한치 앞을 볼 수 없고, 알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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