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35)

 

명훈 아빠에 대한 수사를 담당하고 있던 홍 검사는 늦게까지 수사를 하다가 함께 일을 하던 직원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신 다음 직원들과 헤어진 홍 검사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혼자 또 다른 술집으로 갔다.

 

최근에 너무 격무에 시달리고 세상 돌아가는 것이 너무 뒤숭숭해서 술을 더 마시고 싶었다. TV에서는 어떤 군인 장교가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고 보도가 되고 있었다.

 

홍 검사는 그런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젊잖은 사람들이 지하철과 같은 공공의 장소에서 여자의 신체를 의도적으로 접촉하고 그러다가 망신을 당하는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 검사는 마른 안주를 시켜놓고 생맥주를 마셨다. 술이 취한 상태에서 시원한 생맥주는 참 맛이 좋았다. 500씨씨를 세 잔이나 마셨다. 일차에서는 소주를 마셨다. 술을 마시면서 술집에 있는 TV를 계속 보고 있었다. 어떤 고위직 공무원이 성접대를 받았다는 사건 때문에 난리가 나고 있었다.

 

홍 검사는 아직 젋은 나이지만, 그런 고위직 공무원의 행태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혼해서 부인도 있는 나이 든 공무원이 무슨 성접대를 받을까?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그런 조선시대에서나 있을 법한 성접대를 받는다는 말인가?

 

너무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문제로 망신을 당하고, 잘못하면 수사를 받고 감방에도 갈 수 있는 위험한 일인데, 왜 그런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홍 검사가 술을 마시고 있는 술집은 비좁은 통로에서 사람들이 겨우 비껴다니고 있었다. 홍 검사는 술을 마시다가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나 이동을 했다. 그런데 비좁은 통로에서 어떤 젊은 여자 손님과 비껴 지나가다가 균형을 잃고 여자쪽으로 넘어지려고 했다. 그러다가 여자의 치마쪽으로 손이 미끄러져갔다.

 

여자는 치마를 입고 있었다. 여자도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몸을 비틀거리고 가다가 홍 검사가 넘어지면서 여자의 히프 부위를 손으로 잡자 깜짝 놀랐다. 여자는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아니, 왜 몸을 만져요?”

 

여자는 홍 검사가 자신의 히프를 고의적으로 만진 것으로 생각했다. 홍 검사는 비좁은 곳에서 비켜지나 가다가 오른손이 여자의 엉덩이 부근을 지나쳤지만, 고의적으로 만진 것은 아니었다. 술에 취해 약간 비틀거렸고, 중심을 잡지 못해 술김에 여자의 엉덩이에 손바닥을 대고 지나가려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절대로 성추행을 할 의사는 없었다.

 

그러나 일단 여자가 오해를 하고, 여자가 소리를 지르자 상황은 예상 외로 커졌다. 여자의 일행 중 한 사람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홍 검사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곧 바로 주먹으로 홍 검사의 얼굴을 쳤다. 홍 검사의 코피가 터졌다. 남자는 계속해서 오른쪽 무릎을 걷어 올리면서 홍 검사의 복부를 세게 찼다. 홍 검사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안경도 떨어져 깨졌다.

 

주변 사람들이 달라들어 홍 검사를 붙잡아 앉혔다. 얼마 지나지 않자, 경찰관 2명이 출동했다. 경찰관은 홍 검사를 강제추행죄의 현행범으로 체포한다고 했다. 경찰관은 홍 검사에게 말했다.

귀하를 강제추행죄의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귀하는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지구대로 가자고 했다. 홍 검사는 어이가 없었다. 자신은 절대로 강제추행을 한 사실이 없다. 술에 취해 비틀거렸을 뿐, 여자의 신체를 고의로 만지지 않았다. 그것은 좁은 공간에서 여자가 오해를 한 것이다. 순간 술에서 깨어 정신이 빤짝 들었다.

 

이 상황에서 경찰서에 끌려가면 큰 망신이다. 어떻게 하지?’ 그래서 홍 검사는 경찰관에게 잠깐 옆으로 가서 조용하게 말을 하자고 했다. 홍 검사는 경찰관에게 말했다.

사실 나는 검사요. 저 여자가 오해한 거요. 그러니까 조용히 해결합시다.”

 

그러자 경찰관은 홍 검사에게 신분증을 보자고 했다. 홍 검사는 검사신분증을 소지하고 있지 않았다. 사무실에 놓고 온 것이었다.

일단 경찰서로 가시죠. 다른 사람들 이목도 있고. 그리고 정식으로 112신고가 들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서에 가서 잘 해명하시죠.” 홍 검사는 화가 났다.

 

아니, 내가 검산데, 내가 술을 마셨지만, 여자를 추행이나 할 사람으로 보입니까? 이게 정당한 법집행입니까? 내가 무슨 현행범이라는 말이요? 내일 내가 경찰서에 연락하겠소.”“안 됩니다. 검사님! 경찰서로 가셔야 합니다.”

 

실강이가 벌어지고 시간이 지체되자, 피해자인 여자와 그 일행이 난리를 쳤다.

빨리 경찰서로 가요. 저런 나쁜 O은 구속해야 해요. 어떻게 남자 친구가 있는데 감히 여자의 엉덩이를 주무릅니까? 그리고 반성도 하지 않고 있는 O이예요. 아마 상습범인 것 같아요. 콩밥을 먹여야 해요. 피해자는 대학 강사예요. 술에 취하지도 않았고요. 대학 강사가 당하지도 않는 성추행을 당했다고 거짓말로 경찰에 신고했다는 말이예요? 빨리 끌고 갑시다. 우리도 갈 게요.”

 

홍 검사는 화가 치밀었다.

이런 나쁜 OO들 봤나? 내가 성추행을 하지도 않았는데 왜 뒤집어씌우고 나를 때려? 너희들 깡패야? 가만두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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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34)

 

성균은 박 기사를 실컷 두들켜 팬 다음 이틀 후에 정자를 만났다. 정자는 은영도 데리고 나왔다. 은영의 배는 이제는 표가 날 정도로 나와 있었다. 성균은 박 기사를 만나서 앞으로는 은영의 문제에 끼지 말라고 겁을 주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정자는 고맙다고 하면서, 성균에게 돈을 30만원 주었다.

 

성균은 정자로부터 그 돈을 받은 다음, 이 돈으로 같이 가서 식사나 하자고 했다. 세 사람은 저녁을 먹으러 돼지갈비집으로 갔다. 군자동 먹자골먹에는 사람들이 많이 붐비고 있었다.

 

정자는 그 자리에서 은영이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며, 명훈을 만나 사랑하게 된 이야기, 그리고 명훈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명훈의 아이를 꼭 낳고 싶다는 이야기, 명훈이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세상을 잘 몰라서 저러고 있고, 실제로는 은영과 결혼하고 싶어한다는 이야기, 박 기사가 가운데서 돈을 뜯어먹으려고 장난을 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소상하게 했다. 그러는 동안 은영은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성균은 감동했다. ‘아 저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고생하고 살면서 한 남자를 사랑하고 아이를 가지고 있으니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여자의 마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정자는 그 자리에서 혼자 흥분하여 술을 많이 마셨다. 그러면서 성균에게도 술을 권했다. 성균은 차를 가지고 왔다면서 사양했다. 한 두 번은 사양했지만, 여자들이 너무 센치한 분위기를 만들고, 나중에는 은영까지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 성균도 소주를 받아마셨다. 소주를 한 병 가까이 마셨다.

 

세 사람은 술을 마시면서 또 다시 세상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고 이구동성으로 한탄을 했다. 그러면서 세 사람은 힘을 합해서 은영을 도와주기로 했다. 은영이 명훈과 결혼하는 그 날까지 세 사람은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식당에서 성균은 카카오로 대리기사를 불렀다. 현재 혼자 살고 있는 오피스텔로 주소를 찍었다. 그 오피스텔은 이사간 지 보름밖에 되지 않았다. 대리요금을 결제하고, 성균은 혼자서 대리기사가 운전하는 자신의 소나타 차량을 타고 갔다. 그런데 대리기사가 목적지라고 내려준 곳은 성균의 오피스텔이 아니었다.

 

그 오피스텔을 분양할 때 주소지로 등록되어 있던 오피스텔 모델하우스가 있던 지점이었다. 성균이 지금 입주해 있는 오피스텔과는 많이 떨어진 곳이었다. 성균이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아니라고 하면서 오피스텔의 주소지를 다시 알려주자, 대리기사는 카카오대리운전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차에서 내려 그냥 가버렸다.

 

성균은 술을 마신 상태에서 대리기사와 시비를 하기가 싫어서 다시 카카오 아닌 일반 대리운전 회사로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대로에서 들어와 있는 상태여서 찾아오기가 어렵다는 취지였다. 그래서 성균은 큰 길로 나가서 대리기사를 부르려고 큰 길까지 직접 운전하고 나갔다. 큰 길로 나가서 대로변에 차를 세워놓으려고 했는데, 마침 그 곳에서 음주단속을 하고 있었다.

 

순간 성균은 가슴이 철석 가라앉았다. 최근에 윤창호법 때문에 음주단속이 심하고, 음주운전을 하다 걸리면 무겁게 처벌된다는 사실을 TV에서 자주 보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성균은 5년 전과 3년 전에도 두 차례에 걸려 단순음주운전으로 입건되어 벌금을 낸 사실이 있었다. 말하자면 음주운전 전과가 두 번 있는 셈이었다. 이번이 세 번째가 되므로 법에서 말하는 이른바 ‘삼진아웃’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경찰관은 성균에게 불라고 했다. 성균은 세게 불지 않고 약하게 불었다. 그랬더니 경찰관은 성균에게 차를 옆으로 빼서 대고 내리라고 했다. 순찰차도 있었기 때문에 그냥 도망칠 수도 없었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도주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도망갔다가는 붙잡히게 되고, 더 큰 처벌을 받게 된다. 성균은 도망갈 생각을 포기하고 차에서 내려 순순히 음주측정에 응했다. 0.095가 나왔다. 이 정도면 면허정지에 해당하는 수치지만, 성균의 경우는 3진아웃에 걸려 면허취소사유가 된다.

 

성균은 가까운 지구대로 가서 단속에 대한 확인서를 작성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출석해서 조사를 받으라는 취지였다. 성균은 겁이 나서 하는 수 없이 변호사를 선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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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33)

 

박 기사는 내 애인이었는데, 내 친구 은영을 강간한 나쁜 남자야. 그 때문에 나와 헤어졌어. 그리고 그후 연락이 전혀 없었어. 그런데 최근에 은영이 명훈이라는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는데, 알고 보니 박 기사가 명훈 아빠 회사에서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는 거야. 박 기사는 은영이 명훈의 아이를 낳으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명훈 아빠 편을 들면서 은영에게 임신한 아이를 수술해버리라고 공갈을 치고 있어. 박 기사는 은영에게 만일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과거에 박 기사가 은영과 육체관계를 했다는 사실을 명훈네 집에 폭로하겠다고 공갈을 치고 있다는 거야. 그러면서 박 기사는 나와의 과거까지 내 남편에게 이야기하겠다고 공갈을 치는 거야.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협박하고 공갈치는 무서운 사람이야 이걸 어쩌면 좋지?”

 

성균은 정자가 하는 이야기를 아주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가끔 마치 자신이 피해자인 것처럼 성균은 주먹을 쥐기도 했다. 얼굴에 심줄이 돋기도 했다. 정자를 쏘아보는 눈빛이 너무 무서워서 오히려 정자가 더 겁을 먹기도 했다.

 

. 알았어. 정자야. 걱정하지 마. 내가 처리해 줄게. 남자들끼리 이야기하면 다 풀리게 되어 있어.”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서 성균은 박기사를 만났다. 그러면서 자신은 은영의 친척이라고 소개했다.

내가 은영을 보호해야 하니까. 당신은 은영과 명훈의 문제에서 빠져. 알았지!”

 

뭐라고! 내가 누군지 알고 당신이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야? 당신이 경찰관이나 검사라도 되는 줄 알아? 그리고 이 문제는 어디까지나 은영이라는 여자가 나쁜 거야. 어린 대학생을 꼬셔서 임신해놓고, 그걸 가지고 돈을 뜯어내려고 하는 거 아냐!”

 

그러면 당신이 은영을 강간한 것을 내가 고소하도록 할 거야. 그리고 당신 사장을 만나서 내가 당신 비행을 알릴 거고.”

마음대로 해. 나는 이미 감방도 갔다 왔고, 아무 것도 잃을 게 없는 사람이야. 당신도 나를 협박한 부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거고.”

나도 감방 갔다 왔어. 감방 갔다 온 게 무슨 훈장 받은 거냐? 좋은 말로 할 때 들어. 신상에 좋을 거야.”

 

성균은 더 이상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 같아 커피숍에서 나오려고 하는데 갑자기 박 기사가 성균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먼저 공격을 당하자 성균의 본성이 드러났다. 곧 평소 익힌 무술로 박기사를 요리했다. 박기사는 싸움에는 약했다. 성균을 당할 수 없었다. 엄청나게 두들겨 맞고, 박기사는 무릅을 꿇었다.

 

제가 잘못했어요. 형님! 살려주세요. 안 그럴게요. 은영씨 사건에서 손을 뗄게요.”

너 같은 O은 죽어야 해. 인간쓰레기야. 왜 사냐? 그만 살 수 없어. 이 나쁜 OO! 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 몰라서 그래. 옛날 같으면 사시미칼로 회를 쳤을 거야. 지금은 내가 마음 잡고 조용히 살고 있어 봐주는 거야. 근데 아무리 나쁜 인간이라도 왜 하필 돈 없고, 불쌍한 여자 아이들만 상대로 돈을 뜯어내려고 그러냐? 돈 있는 인간들한테 뜯어내지 않고, 은영은 정말 불쌍한 아이야. 이 나쁜 OO!”

 

성균은 무릅을 끓고 아파서 신음하는 박 기사를 훈계하다가 갑자기 또 정의감이 솟구쳐오르자 구둣발로 무릅을 짓밟았다. 그리고 주먹으로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 워낙 무술로 다져진 성균의 주먹은 붉은 벽돌도 두 동강 내는 정도라 박 기사의 눈에서는 불이 번쩍거렸다. 아마 뇌세포가 1억개는 사라진 것 같았다.

 

박 기사의 눈에는 성균이 로마 시대의 검투사 대장 같이 보였다. 인간 세상에서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정의의 전사처럼 느껴졌다. 박 기사는 성균의 탁월한 무술에 놀라서 경의를 표하고 있는데, 성균은 또 오른쪽 손날을 세워 목을 내리쳤다. 목이 휘청거렸다. 박기사는 땅에 머리를 바고 엎드렸다. 오늘이 제삿날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임자를 만난 것이다. 이러다가는 목이 부러지든지, 내장이 파열되든지, 두개골이 박살나든지 인생이 끝날 것 같았다.

 

너 마음대로 해. 지금 가서 경찰에 신고를 하든가, 아니면 은영을 만나 사과를 하든가. 알았지? 그리고 이건 은영이 내게 시킨 것이 아냐. 나는 서울에서 일어나는 일을 마음만 먹으면 손바닥처럼 다 알 수 있어. 너에 대해서는 사실 한달 전부터 내가 뒷조사를 하고 있었어. 알았지! 이 쓰레기야.”

 

성균은 분이 풀리지 않아서 박 기사 얼굴에 침을 몇 번 뱉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박 기사는 무척 아팠다. 하지만 경찰에 신고할 입장은 아니었다.

박 기사는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보름 동안 출근을 하지 못했다. 회사에는 핑계를 댔다. 술을 많이 마시고 가다가 깡패들을 만나 봉변을 당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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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32)

 

낙태는 살인이다. 내가 돈을 받고 낙태를 하면 살인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을 죽여서는 안 된다.’ 은영은 친구들에게 말했다. “절대로 낙태는 없어. 아이를 낳아서 잘 기를 거야. 명훈씨가 결혼을 하지 않아도 좋아.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하니까.”

 

은영과 헤어지고 나서 정자는 곧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던 성균을 만났다. 성균은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싸움을 잘해 깡패생활을 했다. 깡패생활이란 사실 특별한 것도 아니다. 공부는 하지 않고 건달처럼 돌아다니다가 싸움이나 하고, 남에게 힘으로써 과시하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생활을 말한다. 겉으로 봐서는 근육직의 몸매도 좋고, 얼굴도 괜찮고, 성격상 화끈해서 의리도 있는 것 같지만, 남자 사회에서는 머리로 사는 거지, 근육으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별로 대우를 받지 못한다.

 

성균이 그렇다고 아주 큰 폭력조직에 속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성균은 운동도 잘 하고 체격이 크고 인상이 험상궂게 생겼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감방에도 한 번 갔다 왔다. 성균이 감방에 갔던 이유는, 어떤 건달이 성균의 애인을 건드렸기 때문에 참지 못하고, 그 건달의 다리를 부러뜨렸기 때문이었다.

 

성균은 무술을 배웠다. 검도도 하고, 태권도도 했다. 심지어 복싱도 1년간 했다. 그래서 성균은 자신의 애인을 건드린 건달을 크게 때리지는 않고, 단지 왼쪽 다리만 부러뜨리는 정도의 가벼운 상해를 가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리가 부러진 상대는 결코 가벼운 상처가 아니었다.

 

그 건달은 결혼날짜까지 잡아놓고, 예식장도 예약해 놓았는데, 결혼식 일주일 전에 성균에 의해 다리가 부러져서 하는 수 없이 결혼식을 연기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상해진단은 겨우 4주밖에 나지 않았고, 흉기나 위험한 물건으로 상해를 가한 것도 아닌데, 어떤 젊은 검사가 성균에 대해 직접 구속영장을 청구해서 구속되었다가 무려 3개월 동안 감방에 가있었던 것이다.

 

그 검사는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성균에게 말했다. “아무리 기분 나빠도, 결혼식도 못하게 남의 다리를 부러뜨린다는 건 죄질이 나쁜 거야!”

 

그래서 성균은 그 검사에게 대답했다. “검사님! 그 친구는 제 애인을 저 몰래 건드렸습니다. 그런 나쁜 사람을 가만둘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검사는 화를 냈다. “피의자 애인이 먼저 수작을 걸어서 하는 수 없이 그 친구가 건드렸다고 하지 않아요?”

 

아닙니다. 제 애인이 먼저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친구가 제 애인에게 술을 먹이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참지 못하고 혼을 내준다고 했던 것이 그만 그 친구 다리가 워낙 약해서 골절이 된 겁니다. 그 친구는 맨날 술만 먹고 운동을 싫어하고 계집질이나 하고 돌아다니니까 다리가 부러졌지, 저는 가볍게 한번 찬 것밖에 없습니다. 정말 억울합니다.”

 

그러나 검사는 성균의 변명을 귀담아듣지 않으려했다. 그건 보나마나 성균의 운동으로 다져진 체격과 딱벌어진 어깨, 그리고 얼굴에서 풍겨나오는 고약한 이미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성균은 감방에 있는 동안, 배신한 애인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잠을 못잔 날이 꽤많았다. 하지만 감방에서 나올 때쯤에는 이상하게 애인이 얼굴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 후 성균은 다행이 돈 많은 이혼녀를 애인으로 만들었고, 그 여자의 돈으로 노래방을 차려서 지금은 제법 살만해졌다. 정자와 한때 연애를 했었는데, 정자가 마음 잡고 결혼하자, 진정으로 정자가 잘 살기를 바랬다.

 

정자가 결혼생활에서도 속상한 일이 있으면 만나서 술을 사주면서 위로해주고, 참고 살라고 도닥거려주었다. 정자는 성균에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박기사의 문제에 대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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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31)

 

맞아요. 정말 저는 안 했어요. 그 여자 위에 올라가기는 했어도, 삽입 자체를 하지 않았어요.”

명훈은 흥분해서 이런 식으로 말을 했지만, 막상 상대가 여자변호사이고, 게다가 젊게 보여 순간적으로 아차 싶었다. 너무 당시의 상황이나 행위에 대한 설명을 너무 적나라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명훈씨 그런 식으로 답변하면 불리해요. 아예 처음부터 모두 부인을 하든가 해야지, 피해자를 강간하려고 했다고 하면, 그 자체로 기수나 미수 모두 비슷하게 무겁게 처벌을 받는 거예요. 조사를 받는 피의자가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예요. 피의자에게는 묵비권, 진술거부권, 자백을 강요 당하지 않을 권리, 그리고 더 나아가 부인할 권리가 헌법이나 형사소송법에 보장되거 있는 거예요.“

 

여자 변호사는 법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었지만,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고 연애나 하고 클럽이나 다니고 자가용 운전만 열심히 했던 명훈에게는 무슨 말인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묵비권은 무엇이고, 진술거부권은 무엇일까? 부인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자백을 강요 받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권리인지 알 수 없었다.

 

혹시 경찰관이 거짓말탐지기 측정을 하자고 하면 동의하지 말아요. 부정확할 뿐더러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거니까요.”

명훈 엄마는 변호사 사무실을 나오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린 아들이 여자 좋아해서 그런 것은 이해하는데, 해도 너무한 것 같았다. 애인도 있고, 원하면 관계를 할 여자도 있는데, 왜 나이 먹은 주부를 강간하려고 했을까?

 

명훈 엄마 친정에는 이런 성폭력범은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왜 성씨 집안은 이 모양일까? 자신이 약사인데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아들에게 성교육을 시킬 것을... 그리고 이번 사건도 피해자와 진작 합의를 할 것을... 일을 그르친 것 같아 속이 상했다. 더군다나 명훈 아빠도 지금 회사 문제로 억울하게 조사를 받다가 끝내 일본으로 도피해 있는 중이다. 명훈이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데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것인지 걱정이 태산 같았다.

 

한편 은영은 고민이 많아졌다. 일단 현재의 모든 상황을 명자와 정자를 만나 솔직하게 다 털어놓기로 했다. 정자에게도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어 박기사와의 관계를 이야기했다.

하는 수 없어. 박기사를 상대하지 말고, 직접 명훈 아빠 회사를 찾아가서 난리를 피도록 해. 아니면 명훈 엄마 약국에 가서 난리를 펴. 결혼시켜 달라고 하든지, 아니면 낙태할 테니까 3억 원을 달라고 해. 빨리 결판을 져야 해. 이제 6개월이 다 되니까.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어. 그런데 내 생각으로는 결혼은 절대로 할 사람들이 아니니까 그냥 돈을 받고 수술하는 게 좋겠어.”

 

아니 그 박기사가 그렇게 나쁜 인간이 되었어! 그냥 둘 수가 없네. 나한테까지 해코지를 하려고 한다는 거지. 좋았어. 내가 손을 볼테니까 연락처를 줘. 은영아!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이를 낳아.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 돼. 명훈네 돈이 많다면서. 이런 기회를 놓쳐서는 안 돼. 그리고 남자란 일단 아이를 낳으면 완전히 달라져.”

 

은영은 두 친구와 이야기를 해도 아무런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다. 머리 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식당에서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식사를 하는 젊은 부부가 아주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이는 인형처럼 귀여웠다.

 

은영은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우리 아이도 저 애처럼 예쁘고 사랑스럽고 귀여울 거야.’ 그러면서 아이를 낳아야지, 도저히 낙태를 해서 죽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에서 켜놓은 TV에서는 마침 낙태죄폐지를 두고 논란을 벌이고 있었다.

 

천주교에서는 낙태죄 폐지 반대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낙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에 대한 끔찍한 폭력이자 일종의 살인행위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런 TV 방송 내용을 보면서 은영은 정말 낙태를 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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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30)

 

명훈 아빠는 또 다시 검찰청에 출석했다. 이번에도 역시 변호사를 대동하고 갔다. 돈도 있었지만, 역시 검찰에서 특별수사를 할 때는 반드시 변호사를 데리고 가서 참여시키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원래 수사기관에서 피의자로 조사를 받게 되면, 수사관은 제일 먼저 피의자에게 귀하는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고지해준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이러한 고지내용을 빠른 속도로 듣고, 지나가는 말로 간단하게 생각하고 넘어간다.

 

진술거부권과 변호인 조력권은 결코 간단한 권리가 아니다. 피의자나 피고인, 범죄혐의자는 묵비권과 진술거부권을 가진다. 또한 자백을 강요 당하지 않을 권리도 가진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범죄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것도 형사소송법상 권리에 해당한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라는 것도 그렇다. 간단한 사건이라면 몰라도, 처음 검찰 조사를 받는 사람은 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변호사를 참여시키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 일반인은 경찰이나 검찰청에 가서 피의자의 신분으로 앉아 있으면, 처음부터 기가 죽게 되고,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다.

 

검사는 사전에 고소인이나 참고인, 또는 제보자들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조사를 해놓고, 그런 다음 피의자를 소환하는 것이기 때문에 검사가 갑자기 이런 저런 질문을 하면, 피의자는 당황하게 횡설수설하게 된다.

 

변호인 참여의 의미는 이렇다. 변호사가 피의자신문과정에 참여한다고 해도, 민사소송과 달라서 형사사건에서는 변호사가 피의자를 대신하여 조사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진술이나 답변은 피의자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 그리고 변호사는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을 뿐, 그때 그때 피의자가 답변해야 할 사항을 코치하거나 어드바이스하지 못한다.

 

다만, 피의자가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으면, 잠시 휴식시간을 요청하여 그 때 피의자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조사가 끝난 다음, 피의자신문조서를 읽어보고 제대로 기재가 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해 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피의자는 시청 공무원에게 돈을 준 정황이 많이 드러나고 있어요. 공무원에게 돈을 준 것을 사실대로 이야기해요. 그렇지 않으면 이 수사가 언제까지 갈 지 모르고, 회사는 부도날 위험이 있잖아요. 자꾸 공무원을 감싸고 들다가 본인에게 큰 피해가 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저는 정말 시청 공무원에게 돈을 주지 않았어요. 그리고 제가 왜 돈을 줍니까? 적법하게 건축허가를 받았고, 설계사무소를 통해 허가를 받은 거예요. 저는 부정한 청탁을 한 사실도 없고, 뇌물을 준 사실은 절대 없어요.”

 

검사는 공무원과의 만난 사실에 대해 꽤 상세하게 파고 들었다. 일부 공무원들은 명훈 아빠 아닌 다른 업자들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적은 금액이나마 밝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검사는 명훈 아빠가 회사 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업무상 횡령 부분에 대해 계속해서 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피스텔을 사서 살게 해준 애인인 술집 마담까지 소환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단순한 참고인이기 때문에 강제수사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어 변호사가 출석하지 않겠다는 사유서를 써서 내고 나가지 않았다.

 

검찰 수사가 계속되자, 명훈 아빠는 변호사에게 말했다. “도저히 안 되겠어요. 일단 일본으로 나가 있다가 수사검사가 인사이동으로 다른 곳으로 전근가면 그때 들어와 조사를 받겠습니다.”

변호사는 난감했다. “글쎄요. 해외로 나가있으면, 그 동안은 공소시효가 정지됩니다. 그리고 도주한 것으로 보아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도 있어요.”

 

그래도 지금처럼 검사가 강하게 수사를 계속하면 저는 구속되고 회사는 부도나게 돼요. 제가 밖에서 수습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명훈 아빠는 검사에게 출석하기로 약속한 날 전날, 간단한 짐을 싸가지고 일단 일본으로 출국했다. 다행이 검찰에서 명훈 아빠에 대한 출국금지조치는 해놓지 않고 있었다. 검사는 명훈 아빠가 그동안 순순히 조사에 응하는 것으로 보아 해외로 도피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출국금지를 신청하지 않았던 것이다.

 

명훈 아빠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출국금지조치가 되어 있는 지 여부를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직접 가서 확인해보았다. 신분증만 가지고 본인이 가면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출국금지가 되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 준다. 그 자리에서 출국금지조치가 되어 있다고 해서 경찰이나 검찰에 통보를 하지는 않는다.

 

명훈 아빠는 출국한 다음, 변호사를 통해서 급한 용무가 있어서 일본에 출장갔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조만간 귀국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일본 동경에 간 명훈 아빠는 식당을 하고 있는 전 사장을 만났다. 그리고 당분간 일본에 머무르면서 사업할 것을 알아보려고 왔다고 했다.

 

한편 명훈 엄마는 명훈 아빠가 일본으로 떠난 다음, 혼자서 회사 일도 챙겨야 했고, 명훈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명훈 엄마는 명훈의 강간사건을 상의하기 위해 명훈을 데리고 변호사 사무실에 갔다. 젊은 여자 변호사였다. 강 변호사는 매우 지적으로 보였다. 서른 살이 갓 넘은 것처럼 보였다.

 

경찰 조사 받을 때 이렇게 하세요. 일단 모두 부인하세요. 강간한 사실 자체를 부인해요. 그리고 술에 취했지만, 완전히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다고 하면 안 돼요. 정신은 있었다고 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 여자 말은 다 증거로 인정되고, 명훈 씨 말은 아무런 증거가 되지 못하고 다 그 여자 말대로 뒤집어쓰게 돼요.”

그럼 어떻게 했다고 말하면 좋을까요?”

 

술을 같이 마시고, 명훈씨는 모텔에 가서 쉬겠다고 했더니 그 여자가 데려다 주었고, 잠깐 같이 방에 있다가 그 여자가 가겠다고 해서 조금 더 있다 가면 좋겠다고 손을 잡았더니, 화를 내면서 뿌리치고 나갔다고 하세요. 그리고 곧 있다가 그 여자가 친구를 데리고 와서 맥주집으로 끌고 가서 난리를 치면서 부르는 대로 쓰라고 하고 사인을 했다고 해요. 아무런 증거가 없잖아요. 서로의 주장이 다르고 의심스러울 때는 피해자의 이익이 아니라, 피고인의 이익으로 재판하는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근데 사실은 제가 침대에 눕히고, 치마를 걷어 올리고 팬티까지 내렸어요. 그리고 하려다가 말았는데요. 새빨갛게 거짓말해도 괜찮을까요?”

그거 본 사람은 없잖아요? 방에 CCTV도 없었잖아요? 그 여자가 휴대폰으로 녹음한 것도 아닐것이고, 각서는 어디까지나 두 여자가 강압적으로 협박하고 겁을 주어서 사인한 거라고 하면 돼요. 증거재판주의잖아요? 증거재판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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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9)


명훈 엄마는 급히 아는 변호사에게 연락했다. 일단 변호사는 선임계를 내고 명훈이 경찰서에 출석할 때 같이 가서 변호인참여를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명훈을 만나 수사에 대비하겠다고 했다.

피의자가 경찰서에 출석할 때 혼자 가는 것은 위험하다. 변호사가 같이 동행하면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 변호사가 참여하는 것이다. 물론 피의자가 조사를 받는 것이기 때문에 변호사가 변호인으로 조사과정에 참여한다고 해서 대신 조사를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변호사는 피의자가 조사를 받을 때 옆에 앉아서 조사과정을 지켜본다. 혹시 강압수사가 있는지, 유도신문을 하는지, 자백을 강요하는지, 피의자신문조서가 진술한 대로 기재가 되어 있는지를 확인한다. 그리고 중간에 만일 피의자가 횡설수설하고 있으면, 잠깐 휴식시간을 갖자고 하여 피의자를 진정시킨 다음 제대로 진술하도록 코치를 해준다.

은영은 명자를 만났다. 명자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상황을 모두 이야기했다. 은영은 자신을 강간했던 장본인인 악마가 명훈 아빠의 기사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기사가 은영에게 자신이 돈을 1억원 받아줄테니 빨리 합의하고 아이를 낙태시키라고 공갈을 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과 성관계를 했다는 사실을 약점으로 잡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박 기사가 명훈이 집안에서 돈을 받아서 은영에게 주겠다는 말까지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명자는 깜짝 놀랐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지? 그 사람이 너의 과거를 다 이야기하면, 명훈씨도 마음이 달라질 것이고, 그 집안에서도 난리날 거 아냐?”

“일단 나는 그 사람을 모른다고 했어. 그 사람이 나를 강간했다는 사실도 딱 잡아뗐어. 오래 된 일이고, 아무런 증거가 없으니까? 그 사람을 나쁜 사람, 미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해. 설사 명훈 엄마나 명훈이가 물어도 나는 딱 잡아뗄거야. 다만, 제인을 만나 그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제인도 시집가서 잘 살고 있는데 피해가 갈 수 있고, 나를 원망할 지 몰라서 걱정이야.”

“그럼 정자에게 말해줘야 하는 거 아냐? 혹시 모르잖아. 흥신소 시켜서 정자 전화번호나 사는 곳을 알아낼 수도 있잖아? 큰일이다. 일이 너무 복잡해지는 것 같아.”
“아냐, 정자에게는 말하면 안 돼. 놀라서 자빠질 거야. 내가 알아서 처리할 게. 더 이상 명훈네와 연락하지 않고 나 혼자 아이를 낳은 다음 연락하면 어떨까? 그때는 이미 아이를 낳았으니 어쩌지 못할 거 아냐?”

며칠 후 박기사로부터 은영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은영씨, 내가 명훈 엄마에게 말했어. 1억 원을 주고 해결하겠다고. 그러니까 1억 원을 받으면 반반씩 나누어가져. 은영씨는 5천만 원이면 충분하잖아. 내가 돈을 어렵게 받아주는 거니까. 아이는 빨리 수술하고 명훈과는 헤어져. 요새 명훈 아빠가 검찰 수사를 바고 있어 곧 구속되고 회사는 부도날 것 같아. 그러면 아이를 낳아봤자 은영씨는 양육비도 못받고, 거지 아빠와 결혼하게 돼. 명훈이는 능력도 없고, 부모덕에 살다가 거지가 되는 거야. 은영씨는 5천 가지고 작은 커피집이나 하나 차려. 그리고 능력 있는 남자 만나면 돼. 알았지, 빨리 결정해야 돼. 명훈 아빠 구속되면 이 돈도 못 받아.”

“걱정 마세요. 제가 직접 명훈씨를 만나서 해결할 게요.”
“그건 안 돼. 명훈이는 은영씨를 안 만날 거야. 내가 못만나게 했으니까. 그리고 만일 은영씨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은영씨의 과거에 대해 모든 걸 내가 폭로할 거야. 그러면 모든 게 끝이야.”

은영은 더 이상 박기사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전화를 끊고 더 이상 받지 않았다. 그리고 명훈에게 전화를 했다. 명훈이 전화는 전원이 꺼져 있었다. 명훈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명훈 엄마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은영은 메시지를 남겼다. 전화를 해달라는 취지였다. 그래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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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8)

 

명훈은 학교를 다니고는 있어도 정신이 없었다. 강간사건도 해결되지 않았고, 은영이 아이도 수술하지 않고 있었다. 집에서는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아빠가 검찰청에 왔다갔다 하면서 조사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명훈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은영이 문제는 엄마가 쉽게 해결해 줄 것으로 믿었는데, 아직 아무런 진전이 없다. 은영 문제에 대해서는 명훈은 아무런 죄의식이나 책임의식이 없었다.

 

요새가 어떤 세상인데, 몇 번 연애를 한 것 가지고, 여자가 비겁하게 남자 모르게 아이를 임신하고, 아이를 가지고 공갈을 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은영은 정말 나쁜 여자다. 그냥 아이를 낳아서 키우든가, 낙태를 하든가 알아서 할 일이다.’

 

이렇게 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 저절로 해결될 문제로 생각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은영이 나쁜 것이고, 자신은 억울한 피해자였다. 정말 재수가 더럽게 없어 이런 거지 같은 여자애를 만난 것이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때 가임기라 은영이 임신을 한 것은 백만불의 일의 확률로서 명훈에게는 맑은 하늘에 벼락을 맞고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불행한 사건이었다.

 

강간사건도 정말 술에 취해서 실수한 것인데, 하필이면 나이 많은 가정 주부가 어린 애들 노는 클럽에 와서 어린 애들 행세를 하다가 나한테 걸려서 강간을 당했다고 하니 이것은 더 미칠 노릇이었다.

 

명훈이 그동안 만났던 여자들은 지금 생각해 보니 모두 천사였다. 세상 모든 여자들이 그런 줄 알았다. 서로 즐기고 놀고, 쿨하게 헤어질 줄 아는 서구문화를 제대로 받아들인 여자들인 줄 알았는데, 세상에는 일부 못난 여자들이 돌연변이 염색체를 가지고 태어나 세상을 어지럽히고, 착하고 순진한 명훈이 같은 남자들을 괴롭히고, 이용해 먹고 돈을 뜯으려는 것 같아 몹시 기분이 나빠졌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정명훈씨지요? 경찰선데요. 귀하는 강간죄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경찰서로 와서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3일 후에 경찰서로 신분증을 가지고 출석해주시기 바랍니다.”

! 무슨 말씀이세요. 요새 보이스피싱이 많아 경찰서라고 사칭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던대요. 저는 강간한 사실이 없어요. 전화 끊어요.”

 

명훈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자신이 모텔에 가서 나이 많은 여자와 성관계를 하려고 했던 사실은 있으나, 그것은 분명 강간죄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경찰관이 전화를 걸어 분명히 명훈이 이름을 이야기하면서 강간죄로 고소를 당했다고 하니 이것은 분명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보이스피싱 수법으로서 어떤 나쁜 사기꾼이 돈을 뜯어내려는 수법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명훈은 단호하게 자신은 강간을 한 사실이 없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은 것이다. 그런데 전화를 끊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관에게서 출석을 요구하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엄마, 경찰서에서 이런 문자메시지가 왔어요. 보이스피싱 같아요.”

명훈 엄마는 크게 놀랐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올 것이 왔구나! 큰일 났네.’

명훈 엄마는 문자메시지에 적혀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거기 OO 경찰서지요? OOO 수사관님 계세요? 저는 정명훈의 보호잔데요.”

, 정명훈씨가 강간죄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3일 후에 OO경찰서로 출석하도록 해주세요. 보호자도 같이 와도 좋습니다. 틀림없이 출석해야 합니다. 만일 출석을 거부하면 체포장이 발부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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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7)

 

명훈 아빠는 심지어 일본으로 출국해버릴까 생각도 했다. 마침 일본 동경에서 아는 여자가 식당을 하고 있었다. 명훈 아빠가 젊었을 때 자주 다니던 룸살롱의 마담이었는데, 서울에서 돈을 많이 벌었다. 특히 그 여자는 어떤 나이 많은 사장의 애인이 되어 1년을 지냈는데, 그 사장이 갑자기 암에 걸려 죽으면서 자신에게 최선을 다했던 마담에게 10억원을 주었다.

 

그 사장은 나이도 많았지만, 말년에 자식들이 열심히 살지는 않고, 형제간에 아버지 재산만 서로 탐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 마담이 사장이 아플 때, 병문안을 자주 오고, 많은 위로를 해주었다. 마담이 돈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인간적으로 그 사장을 진심으로 아껴주는 것을 느낀 사장은 어차피 자식들에게 돌아갈 돈, 자신은 쓰지도 못하고 죽을 돈을 모두 자식에게 주는 것은 너무 아깝고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죽기 한 달 전, 사장은 마담에게 10억원이 들어있는 자신의 통장을 주면서 수표로 인출해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마담이 은행에 가서 수표로 10억원을 찾아다 사장에게 건네주자, 사장은 수표에 배서를 한 다음 마담에게 말했다.

 

이 돈은 내가 자네를 위해 주는 것이니, 아무 부담 느끼지 말고 가지고 있어. 그동안 고생 많이 한 거 내가 알아.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도 알아. 이제 술집에는 나가지 말고 이 돈으로 장사나 하면서 살아. 그동안 나를 위해 열심히 병원도 와주고, 간호해준 거 잊지 않을게. 고마워. 정말.”

 

그런 다음 한 달이 지나서 사장은 세상을 떠났다. 마담은 문상을 가서 많이 울었다. 사장의 가족들은 젊은 여자가 문상 와서 슬프게 울고 있으니 이상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마담은 그런 것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사장의 가족보다 오히려 자신이 정말로 슬픈 사람이라는 사실에 아 내가 정말 사장님을 인간적으로 좋아했구나. 정이란 바로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마담은 더 슬프게 울면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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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6)

 

검찰에서는 명훈 아빠가 대표이사로 되어 있는 회사의 자금의 흐름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명훈 아빠의 컴퓨터와 핸드폰이 모두 압수됨으로써 그 안에 들어있는 자료가 모두 검사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명훈 아빠가 여러 여자들과 주고받은 내용이 들어있어 수사관들이 읽어보면 여자관계가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야한 동영상과 여자 나체사진, 성관계장면을 다운받아 놓은 것도 있었다. 개인의 사생활이 속속들이 까발려지는 것이 수사과정이다.

 

이렇게 계속된 조사를 받다보니 명훈 아빠는 결국 지치고 말았다. 더 이상 모든 혐의사실을 부인하고 검사와 싸울 힘이 없어졌다. 검사는 일단 수사를 시작했으니 끝장을 보려고 마음 먹은 것같았다. 수사가 계속되니 회사는 엉망이 되었다.

 

직원들도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일부 직원은 자신도 문제가 될까 걱정이 되어서 그런지 사표를 내고 출근도 하지 않았다. 어떤 직원은 전화도 받지 않고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세상은 이렇게 비정한 것이었다. 명훈 아빠는 절망했다. TV를 켜니 승객과 승무원 157명을 태우고 에티오피아를 떠나 케냐 나이로비로 향하던 에티오피아항공 소속 여객기가 이륙한 지 6분만에 추락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는 6.25 전쟁 때 한국에 파병을 했던 참전국이다. 명훈 아빠는 생각했다.

 

! 사람의 운명은 저렇게 한 순간에 끝날 수 있구나. 그 비행기에 탔던 사람들은 아무도 그런 사고가 자신이 탄 비행기에서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라면 중산증 이상의 사람들일텐데, 얼마나 억울할까? 그리고 남은 가족들은 그 슬픔과 아픔을 어떻게 견뎌내며, 또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명훈 아빠는 또 채널을 돌렸다. CCTV에서 어떤 남자가 오른 손으로 붉은 벽돌을 격파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대리석도 격파했다. 그의 손을 보여주는데 손도 크고 아주 딱딱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나무에 대못을 박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나무에 대못을 조금 박아놓고, 오른 손 바닥으로 대못을 끝까지 박았다.

 

그 다음에는 오른 손 등으로 대못을 박는데, 망치로 자신의 오른 손 등을 쳐서 대못을 끝까지 박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떤 여자는 9살 때 시작해서 18년 동안 훈련을 했는데, 네모난 유리 상자를 바닥에 놓고 뒤로 머리부터 박스 안에 들어가 온 몸을 구부려서 집어 넣었다가 다시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사람의 능력은 무한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는 장면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명훈 아빠는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무엇인가? 아무 것도 아닌 존재였다. 오직 수사대상에 불과한 껍데기 존재였다.

 

명훈 아빠는 담당 변호사을 만나 진지하게 상의했다.

변호사님. 일부 혐의사실을 자백하고 수사를 끝내달라고 하면 어떨까요?”

글쎄요.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예요. 검찰의 특별수사가 아무런 제한이 없기 때문에 검사가 독하게 마음 먹고 계속 들이파면 골치 아픈 거예요.”

 

그런데 제가 만일 일부 범죄사실을 시인하면 검사가 구속영장을 치지 않을까요? 구속되면 안 돼잖아요? 차라리 지금 단계에서 제가 어디 가서 숨어있으면 어떨까요? 지금 제 사건을 맡고 있는 박검사가 검사 정기인사 때 다른 곳으로 가면, 그때 나타나서 자수를 하면 어떨까요?”

 

글쎄요. 다음 정기인사 때 분명히 주임검사는 다른 곳으로 갈 것은 같아요. 그러나 도망가면 지명수배가 되고 기소중지가 될 거예요. 그러면 회사는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회사야 구속되나 도망가 있으나 힘들어 지는 건 마찬가지예요.”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나누었지만, 현실에 있어 수사를 받다가 도망간다는 것도 어렵고, 구속되는 것은 더 어렵기 때문에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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