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67)

 

명훈이 피해자의 여자 친구가 불러주는대로 사실확인서를 다썼더니, 이름 위에 손도장을 찍으라고 했다. 인주는 부근에 있는 편의점에서 아주 작은 것을 사왔다. 명훈은 그런 인주통은 처음 봤다. 너무 작고 예뻤다. 지장을 찍기 전에 망설였다. 겁이 났다.

 

삽입은 하지 않았고, 사정도 하지 않았는데요? 고쳐주세요.”

이 미친 X이 어디 대고 주둥이를 놀려? 내 친구가 당했다고 말하는 거 다 들었잖아? 귀가 처먹었나? 거짓말을 아주 밥먹듯이 하는구나. 그럼 경찰에 가서 정식으로 조사를 받아볼까? 조용히 합의하는 것이 좋지 않아? 안 그래 이 나쁜 XX!”

 

여자 친구는 정말 경찰 출신이거나 남편이 현직 경찰관인 것이 틀림없었다. 여자 친구는 증거로 필요하니 명훈의 머리카락을 조금 잘라서 달라고 했다. 그러더니 명훈의 승낙이나 동의도 받기 전에 그냥 명훈의 머리를 잡고 한줌 뽑았다. 명훈은 눈물이 났다. 무지하게 아팠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냥 맞아는 봤지만, 머리카락을 강제로 뽑혀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세상에 남자 머리도 뽑는 사람이 있구나!’

 

여자 친구는 그것을 비닐봉지에 조심스럽게 담았다. 명훈은 TV에서 강간범의 수사에 있어 DNA검사를 한다고 하면서 남자의 정액이나 침 같은 체액, 또는 머리카락, 음모 등을 채취한다는 것을 들어는 보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이 아줌마가 무슨 권한으로 갑자기 강제수사를 하는지 전혀 영문을 몰랐다.

 

그래도 만일 명훈이 그 여자의 횡포에 이의를 달면 당장 파출소로 가자고 할 판이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당하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명훈은 아직도 술이 완전히 깬 상태는 아니었다.

 

마치 꿈 속에서 어떤 여자들과 대화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희미한 의식 속에서 명훈의 옆에는 순한 양도 몇 마리 뛰어놀고 있었다. 그런데 낯선 뱀 두 마리가 슬슬 기어오고 있었다. 뱀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명훈의 아래 물건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었다. 명훈은 소스라쳤다. 다시 눈을 떠보니 그 여자 두 사람이 명훈을 불쌍하다는 듯이 비웃고 있었다.

 

명훈은 지루하고 지겨웠다. 다 끝난 줄 알고 일어나려고 했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명훈에 대한 상세한 인적 사항, 개인정보를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백지에 적고 있었다. 녹음까지 하고 있었다.

 

생년월일, 주소, 부모 성명, 나이, 직업, 재산 정도, 성병 유무, 자동차 종류, 연식, 여자 친구 관계, 학교 이름, 과 명칭 전화 번호 등등 수없이 많은 사항을 물었다.

 

명훈이 대답을 하지 않거나 엉터리로 답변을 하면 여자 친구는 곧 바로 112신고를 할 태세였다. 명훈은 완전히 겁을 먹고 강제수사(?)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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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66)

 

여자는 명훈을 믿고 모텔방 의자에 앉았다. 10분쯤 지나 여자가 나가겠다고 하자. 명훈은 갑자기 여자를 붙잡고 침대에 눕혔다. 여자는 안 된다면서 뿌리쳤다. 명훈은 술에 많이 취한 상태에서 흥분했기 때문에 그냥 여자의 치마를 걷어올리고 그 위로 올라갔다. 여자는 싫다면서 강하게 저항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성병에 대한 노이로제가 있다고 했다여자는 에이즈라고 소리치면서 울었다.

 

명훈은 피임기구를 쓰면 된다고 하면서도 술에 취해 이성을 잃고 그냥 여자에게 시도했다. 여자가 강하게 저항하자 술에 만취된 명훈은 더 이상 진행을 하지 못하고 사태는 여기에서 끝났다.

 

여자는 명훈에게 욕을 하면서 명훈의 핸드폰을 손에 들고 일어섰다. 명훈은 아직도 술이 덜 깨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술에 취해서 그랬으니 용서해줘요.”

안 돼, 용서 못해. 신고할 거야.”

 

여자는 자신의 일행이었던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빨리 오라고 했다. 삼십분 후에 여자 친구가 왔다. 그 친구는 명훈 일행과 헤어지고 나서 그 친구의 파트너와 둘이서 클럽 부근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래서 위급한 상황이라는 전화를 받고, 곧 바로 달려온 것이었다. 그때까지 명훈은 술에 취해 누워있었다.

 

아니 이 미친 X 봤나? 너 유부녀를 강간하면 얼마나 징역을 살려고 그랬어? 너 몇 살이나 먹었니? 이 아줌마는 43살이야. 이마에 피도 마르지 않은 새파란 X애가 자식이 둘이나 있는 엄마뻘 되는 아줌마를 강간했어? 너는 콩밥을 많이 먹고 그 안에서 썩어야 해. 자 빨리 경찰서로 가자. 요 앞에 오면서 보니까 파출소가 있더라.”

 

명훈은 그때서야 사태의 중대성, 심각성을 인식했다. 옷을 주워입고 물을 마셨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아주머니, 잘못했어요. 죽을 죄를 졌어요. 하지만 안 했잖아요? 하려다가 못한 거예요. 제발 용서해주세요.”

 

세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피해자의 친구는 매우 노련했다. 어느 맥주집으로 데리고 가더니 백지를 얻어다가 사실확인서를 쓰도록 했다.

 

그리고 핸폰으로 대화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마치 여자 변호사거나 경찰관 같았다. 최소한 법대를 다니고 고시공부를 몇 년은 한 것처럼 법을 많이 알고 있었고, 매우 논리적이었다. 명훈은 평소 자신의 엄마가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살았지만, 지금 이 여자에 비하면 십분의 일에도 못미치는 것이었다. 역시 세상은 넓고 잘난 사람은 많고, 똑똑한 사람도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자 이렇게 써. 내가 부르는 대로. 알았지. 이 강간범아!”

. 쓸게요. 근데 저는 강간범은 아니잖아요? 정말 하지 않았다니까요? 그냥 하려고 하다가 술에 취해 못한 거예요. 아줌마,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들어가지 않은 건 맞잖아요? 아줌마가 그거 끼고 하라고 해서 그거 찾다가 그만둔 거잖아요? 그게 어떻게 강간범이예요?”

 

그러자 여자 친구가 갑자기 명훈의 뺨을 후려쳤다. 그리고 일어나서 멱살을 잡고 파출소로 가자고 했다. 피해자인 여자는 옆에서 술만 마시고 있었다. 명훈을 노려보는 눈이 꼭 피를 찾는 이리나 늑대 같았다. 무서웠다. 사나운 독사눈이었다.

 

명훈은 지금까지 살면서 수많은 여자를 만나서 성관계도 하고 데이트도 하고, 술도 마셔봤지만 이렇게 무서운 눈빛에 쏘여본 적은 없었다. 그 눈빛에 오래 쏘이면 심한 화상을 입을 것 같았다.

 

명훈의 경험에 의하면, 남자와 여자가 만났을 때 여자의 눈빛은 대체로 부드러웠다. 아무리 화가 나도 이렇게 살의(殺意)를 느끼지는 못했다. 몇 대 맞고 나서 파출소 가자는 말에 놀란 명훈은 그 여자가 하자는 대로 쓰기 시작했다.   

 

사실확인서, 본인은 몇 년 몇 월 몇 일 몇 시에 어디 소재 모텔 몇 호실에서 피해자 OOO을 강제로 억압하여 침대에 눕히고, 피해자의 치마를 걷어 올린 상태에서 팬티를 내린 다음 본인의 OO를 피해자의 OO에 삽입하여 강제로 성교를 하였고, 사정까지 하였습니다. 본인은 본인의 범죄행위로 인한 모든 민사 형사책임을 달게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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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65)

 

세 사람은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현과 명자는 불편한 자리였지만, 워낙 고급스러운 일식당에서 최고급 사시미와 정종을 먹고 좋은 대접을 받으니 기분은 좋았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이런 고급 사시미를 먹어볼까? 그리고 지현은 잘 먹어야 명훈씨 2세를 튼튼하게 낳을 것이라고 믿었다.

 

“차 안 가지고 왔지요? 내 차로 모시도록 할 게요. 나는 다른 약속이 있어서 여기 좀 더 있다가 갈 게요.”

“아니예요. 저희들끼리 가겠습니다.”

“아니, 타세요. 나는 어차피 여기 더 있어야 하니까. 우리 기사가 모셔다 드리도록 할 게요.”

 

곧 벤츠 차량이 왔고, 은영과 명자는 거의 강제로 떠밀리다시피 차에 올라탔다. 벤츠 600이었다. 길거리에서도 잘 못보던 차였다. 사실 벤츠 600은 비싸서 웬만한 사람은 사지 못한다.

 

너무 강하게 권하니까 얼떨결에 떠밀려 들아가다시피 타게 되었다. 그리고 차는 출발했고, 명훈 엄마는 손을 흔들고 다시 일식당으로 들어갔다. 누구를 만나기로 한 것인지 궁금했지만, 어쨌든 오늘 만나서 지현의 입장을 명확하게 표시했으니, 알아서 할 거라고 믿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양복을 깔끔하게 입은 기사가 물었다.

“봉천동으로 가주세요. 고맙습니다.”

 

기사는 친절하게 뒤를 돌아다보며 가벼운 미소를 띠었다. 순간 지현은 기절할 뻔했다. 그 기사는 바로 그 남자였다. 친구 정숙의 애인이었던 순철이었다. 지현을 강간하고 끝내 거짓말로 화간이라고 우기던 사람, 그 인간성 나쁜 인간이었다. 그런데 오래 된 일이라 그런지 순철은 지현을 정확하게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지현은 그 남자를 대번 알아보았다. 그는 체격이 좋고 얼굴도 잘 생겼다. 하지만 지현을 강간하고 무책임하게 거짓말하고 달아난 악마였다. 순간적으로 지현은 얼굴이 흥분해서 빨갛게 되었다. 옆에 있는 명자는 영문도 모르고, 술기운이 올라와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현은 생각했다. ‘‘이걸 어떻게 하지? 아냐 저 X이 나를 알아보면 큰일인데, 오래 돼서 나를 못알아보는 것 같으니 다행이다. 나도 모른 척하고 내려야겠다.’ 지현은 명자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 이름을 부르면 안 돼. 내가 아는 사람이야. 조용히 있다가 빨리 내리자.”

 

봉천동에서 내리면서 지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둘러 내렸다. 기사와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애썼다. 지현은 내려서 커피를 마시면서도, 명자에게도 더 이상 그 기사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한편 명훈은 요새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 이렇게 재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까? 못 생겨서 밥맛인 지현과 당시 이상한 상황에서 몇 번 데리고 놀았다는 이유로, 이렇게 개망신을 당하게 되었다. 스타일을 완전히 구겨버렸다.’

 

그리고 새로 만나 마음에 드는 돈 많은 집 아이인 제니도 이번에 지현이가 난리를 치는 바람에 요새는 전화도 받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고 있는데, 명훈이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예전처럼 가까운 친구들과 이태원 클럽에 가서 놀고, 자유분방한 여자들과 노는 것밖에 할 일이라곤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까운 남자 친구 형석과 강남에 있는 클럽에 갔다. 웨이터의 소개로 두 여자를 합석해서 꼬셨다. 그 중 한 여자가 마음에 드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술을 마시고 일행 네 사람은 밖으로 나와 2차로 술을 마셨다.

 

모두 다 술을 많이 마셔서 취한 상태가 되면서 헤어져야 하는데, 명훈은 파트너에게 자신은 술에 취해 도저히 움직이지 못하겠으니, 클럽에 붙어있는 호텔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수고비로 10만원을 주었다.

 

여자 입장에서는 테이블에서 워낙 명훈과 남자 친구가 돈이 많고 능력 있다고 허풍을 떨었기 때문에 잘 대해주는 게 좋다는 생각에서 호텔까지 데려다 주려고 따라갔다. 호텔 방에 들어가자 명훈은 조금만 이야기하다가 가라고 애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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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64)

 

아무튼 자리가 사람을 빛나게 한다고 지금의 정숙은 왕년에 놀던 정숙이 아니었다. 180도 달라졌다. 엉망으로 살던 사람이 갑자기 국회의원 뱃지를 달고 나타나면 완전히 달라지는 것과 똑 같았다.

 

지현은 이번에 명훈 엄마를 만나러 갈 때에는 혼자 가지 않고, 친구 명자를 데리고 갔다. 약속 장소는 강남에서 돈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고급 일식당이었다.

 

찾느라고 고생하지 않았어요?”

. 괜찮았어요.”

이 친구는 제가 데리고 왔어요. 제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요.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하요. 같이 이야기하면 돼요.”

 

명훈 엄마는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며, 지금까지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는지, 그리고 자신의 가정이 얼마나 모범적인지 설명하려고 애썼다.

 

그러면서 일본 정종, 사케를 시켜 같이 마시자고 했다. 지현은 아이 때문에 못마신다고 했다. 명자는 평소 술을 좋아하니까 명훈 엄마와 대작을 해주려고 같이 많이 마셨다.

 

명훈 엄마도 술을 많이 마셨다. 지현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왜 술을 저렇게 마실까? 아마 맨 정신으로는 하기 곤란하니까 술의 힘을 빌어서 말을 하려는 것이겠지.’

 

아가씨. 내가 알아봤더니 전에 다른 남자와 동거생활을 했고, 낙태수술도 한 적이 있다면서요?”

아니예요. 그런 적 없어요. 잘못 아신 거예요. 예전에 남자 친구가 있었지만, 육체관계는 전혀 없었어요. 저는 명훈씨가 처음이었어요.”

 

아니 내가 다 알아봤고, 증거도 가지고 있는데 왜 아니라고 해요?”

무슨 증거가 있는지 보여주실래요? 제 친구는 그런 아이가 아니예요. 지금까지 일만 열심히 하고 남자는 전혀 모르고 살았어요. 제가 잘 알아요. 다른 여자 애들하고 달라요. 믿어주세요.”

 

그렇게 잡아떼봤자 소용 없어요. 내가 다 알아봤으니까. 어쨌든 우리 명훈이와는 어울리지 않고, 결혼은 절대 못하는데 아이는 빨리 떼야지, 어떻게 하려고 해요? 도대체 원하는 게 뭔지 말해봐요.”

 

어머님. 저는 지금 명훈씨 아이를 가진 상태이고, 오직 명훈씨만 생각하면서 살고 있어요. 지난 과거는 잘못한 것도 없지만, 과거는 따져봤자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러니까 제가 아이를 낳고, 명훈씨는 대학 마치고 자리 잡으면 결혼하게 해주세요. 제가 열심히 할 게요. 어머님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 거예요.”

 

글세. 우리 집에서는 이미 결론이 났어요. 명훈이가 한때 어린 나이에 실수한 거고. 아가씨는 나이 먹고, 그동안 이 남자 저 남자와 마음대로 연애하고 지내다가 순진하고 세상 전혀 모르는 명훈을 붙잡고 늘어지려는 거, 절대 용납 못해요. 다만, 우리 명훈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돈으로 보상할 게요. 천만 원을 줄테니 빨리 수술하도록 해요. 그리고 서로 맞는 좋은 남자 새로 만나도록 해요. 자꾸 말도 되지 않는 상황 만들어놓고 공갈치고, 명훈이를 괴롭히면 우리도 하는 수 없이 법으로 할 거예요.”

 

옆에서 술만 마시고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듣고 있던 명자가 끼어들었다.

아니 아주머니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무슨 증거가 있다고 그래요? 증거를 대세요. 흥신소를 시켜서 뒷조사를 한 거면 내가 고발할 거니까. 왜 없는 일을 만들어 가지고 생사람을 잡아요?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인가요? 명훈이가 뭘 어려요? 지금 6개월짼데 어떻게 수술을 해요? 그리고 왜 과거 얘기를 해요. 요새 처녀로 시집 가는 여자 있는 거 봤어요? 명훈씨는 총각으로 지현이 만난 건가요? 돈이 그렇게 많으면 100억 원을 주세요.”

 

명훈 엄마는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돈으로 해결될 일도 아니고, 은영이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보통 문제가 이닌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다른 방법을 써야겠다.’

알았어요. 내가 명훈이와 상의해서 알려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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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63)

 

정숙은 얼굴이 예쁘고 남자에게 매우 적극적으로 대쉬를 하는 성격이어서 그 후 많은 남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남자 친구가 많았다. 지현에게도 정숙은 늘 남자 친구가 너무 많아 모두 관리하기가 힘들다면서 자랑 겸 불평을 했다.

 

어떤 날은 두 남자와 데이트가 겹쳐서 낮에 한 남자 친구와 모텔에 가서 성관계를 하고, 또 밤에 다른 남자 친구와 다른 모텔에 가서 성관계를 하기도 했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때만 해도 은영은 그런 정숙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여자가 하루에 두 남자와 성관계를 할 수 있을까? 아프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성관계가 될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더 나이를 먹어서 들어보니, 성매매하는 여성들은 하루에 7~8명씩 다른 남자들과 성관계를 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숙이 하루에 두 남자와 성관계를 하는 것은 가능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은 이렇게 요지경 속이다. 남자와 여자가 은밀하게 하는 성행위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것은 사랑과 섹스의 은밀성, 비밀성, 폐쇄성, 비공개성 때문이다. 이런 속성 때문에 늘 사랑에는 진실과 거짓, 위선과 가식이 혼재한다. 동시에 존재한다.

 

그럼으로써 모순과 갈등을 초래한다. 속이는 자와 속는 자! 이용하는 자와 이용 당하는 자,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길을 걷는다. 지현은 정숙을 만나서 많은 남자 이야기를 들었고, 사랑 이야기를 들었다.

 

정숙은 완전히 사랑의 달인, 사랑학의 박사가 되어 있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놀기를 좋아해서 글로 표현할 능력은 없었지만, 말로 설명하거나 전해주는 것은 아마의 경지를 넘어 프로의 세계에 진입해 있었다.

 

그렇게 다양한 사랑을 경험하고, 즐기고 놀고 지냈던 정숙은 1년 전에 아주 괜찮은 순진한 남자, 능력 있는 남자의 총애를 받았다. 그리고 그 남자는 부모의 재산을 많이 물려받은 상속인이었다.

 

외동 아들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뒤에 또 어머니까지 돌아가셔서 100억 원이 넘는 재산을 상속받았다. 그 사람의 부모님은 공부를 많이 해서 그런지 돌아가시기 전에 상속세나 증여세를 잘 해결해 놓았다.

 

그래서 세금도 많이 내지 않았던 모양이다. 지금은 정숙이 그 많은 재산관리를 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정숙은 그래서 회계학원에도 다니고, 재산관리하는 것도 공부했다.

 

지금은 돈 많은 부잣집 와이프가 되어 엄청 몸조심을 하고 있다. 일체 다른 남자를 만나지 않는다. 원래 한참 놀 때 정숙는 자신의 본명을 쓰지 않았다. 멋있게 보이려고 영어 이름을 썼다. 코니라는 애칭을 썼다.

 

물론 영어는 잘 못했다. 아는 것은 팝송의 가사였다. 가사 공부는 많이 해서 팝송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면 마치 미국 뉴욕에서 10년 살다 온 사람 같이 보였다. 집도 응봉동이라고 거짓말로 속였다. 나이도 속였다. 25살이었다.

 

결혼한 후에는 비로소 정숙이라는 본명이 자주 등장했다. 그래서 그런지 조실하게 사는 지금, 옛날 만났던 남자들에게서 연락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성형수술도 해서 언뜻 보아서는 잘 못 알아보게 되기도 했다.

 

늘 자가용을 타고 다니고, 고급 호텔이나 레스토랑에만 다니기 때문에 수준 낮은 옛 남자 친구들은 만날 기회도 없었다. 이 모든 것이 다 돈의 효용이고 위력이었다. 정숙의 남편은 이 세상에서 여자는 정숙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남편은 정숙이 처녀로 시집온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정숙이 첫날 밤 남편 모르게 작은 병에 준비해두었던 피를 시트에 묻혀 놓았기 때문이었다. 사전에 그 연습을 최소한 20번 이상 했다는 말을 지현은 듣고 놀랐다.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정숙은 달랐다. ‘돈 많은 외동 아들과 결혼하고, 자신이 대접받고 잘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인데, 왜 그런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도 하지 않고, 노력도 하지 않는 여자는 남자에게서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게 정숙의 소신이고 철학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현은 바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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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62)

 

낙태에 대해서는 명훈 엄마 역시 약사로서 반대하는 강한 개인적인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명훈 엄마도 어렸을 때부터 모태신앙으로 성당에 다니고 있었다. 특히 약학을 공부했고 약사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한번도 원치 않는 임신을 하지 않았다. 워낙 피임을 잘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낙태도 하지 않았다.

 

명훈 엄마도 결혼 전에 현재의 남편 이외의 다른 남자들과 관계를 가진 사실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약대생으로서 누구보다도 피임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기 때문에, 절대로 임신의 위험성 있는 성관계는 하지 않았다. 결혼한 후에도 명훈을 낳고 더 이상 임신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다음에도 아주 철저하게 피임을 했다. 그래서 한번도 실패를 하지 않는 성공률 100%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일을 당하자 갑자기 낙태는 허용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고, 낙태죄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게 되었다. 도대체 여자가 어리슥한 남자와 몇 번 잠자리를 하고, 아이를 임신해서 평생 팔자를 고치겠다는 나쁜 의도에서 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지금까지 낙태를 허용하자는 사람들은 인간의 어리석은 임신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구원자의 목소리였다. 반면에 낙태를 허용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현실을 너무 모르고, 자기 일이 아니라고 하는 무책임하고 공허한 메아리였다.

 

명훈 엄마는 자신의 아들 문제가 되자, 원치 않는 임신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생각하게 되었고, 만일 낙태를 하지 않고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 아이 때문에 겪을 고통과 불행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명훈 아빠가 바람을 피면서 다른 여자들로 하여금 낙태를 하도록 한 경험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명훈 엄마는 모르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것은 다른 여자의 문제이지, 자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자기 아들의 정자가 못된 여자의 난자와 만나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냥 지저분하고 용납 못할 저급한 인간의 행동이라고 생각하였다. 인간은 이처럼 자신의 일과 남의 일을 엄청나게 다른 잣대로 판단하고 평가한다. 그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모든 인간의 불행은 바로 이런 이중잣대로부터 비롯된다.

 

며칠 후 명훈 엄마는 다시 지현을 만나기로 했다. 이번에는 고급 일식당으로 약속 장소를 정했다. 지현은 친구 정숙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명품 옷과 명품 백, 귀걸이 등을 빌렸다. 정숙은 지현의 고등학교 친구로서 부잣집으로 시집가서 잘 살고 있었다. 지현과 정숙은 고등학교 때부터 둘도 없는 친한 사이였다. 서로의 모든 속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지현이 처음 남자를 알게 된 것도 정숙의 애인에게 당한 것이었다. 정숙은 자신의 남자 친구로부터 지현이 강간 당한 사실을 알고, 자신의 애인인 남자를 지현과 같이 만나서 소주병으로 머리를 쳐서 상해를 입히기도 한 의리파였다.

 

지현이 정숙의 애인으로부터 강간을 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숙은 지현을 의심했다. 그것은 정숙의 남자 친구가 지현을 강간해놓고, 정숙에게는 지현이 자신을 유혹해서 하는 수 없이 넘어간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숙이 지현으로부터 상세한 사건 경위를 들어보니, 사실은 그 남자가 지현을 강압적으로 강간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세 사람이 만나 정숙으로부터 소주병으로 머리를 세게 맞아 피까지 흘리면서도 그 남자 친구는 지현을 강강한 사실을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가 만일 강간을 했으면, 왜 지현에게 상처가 없었느냐? 그리고 여자가 끝까지 반항하면 어떻게 남자가 삽입을 할 수 있느냐? 지현이 동의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 것이다. 나를 믿어달라. 나는 정숙이만 사랑한다.’고 강변했다.

 

정숙은 그 남자가 아무리 그렇게 말을 해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정숙은 그 남자와 관계를 끊었다. 지현과 정숙은 그러한 일이 있고 나서 더 친해졌다. 두 여자가 한 남자와 비록 따로 따로 있었던 일이고, 서로의 의사연락이나 인식은 없었지만, 동일한 남자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상호관련성을 가지게 하고, 무엇인가 동질성을 공유하는 것처럼 느끼게 했는지 모른다.

 

지현에 대한 것은, 그것이 강간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 모른다. 아무튼 정숙은 자신이 남자 친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지현의 처녀성을 상실시킨 데 대해 그때는 무척 미안해했다.

 

언젠가는 정숙은 지현에게 이렇게 묻기도 했다. “그 남자가 여자를 잘 다루고 테크닉도 좋았는데, 너는 어땠어? 좋았어?” “무슨 미친 소리야? 나는 강제로 당했던 거고, 그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무엇이 무엇이었는지도 전혀 기억 못해. 그 남자는 동물 같은 X이야.”

 

그 일 이후 물론 정숙은 그 남자 친구와 헤어졌고, 다른 남자 친구를 만날 때는 절대로 지현을 비롯해서 자신의 여자 친구를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여자가 애인을 만날 때, 친한 여자 친구를 데리고 가는 것은 잘못하면 자신의 애인을 여자 친구에게 빼앗길 위험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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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61)

 

명훈 아빠는 엄마의 말을 듣고 깊이 생각했다. 여자 아이가 보통이 아닌 것 같은데, 잘못 핸들링 했다가는 일을 그르칠 수 있다. 그러니까 조심해야 한다.

 

이럴 때는 차라리 명훈이 다시 지현을 만나서 잘 지낼 것처럼 제스처를 보이고 설득시켜 낙태를 시키는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런데 명훈이 나이가 어려서 그런 일을 제대로 해낼 지 걱정이었다. 명훈 엄마는 반대였다. 그러다가 더 확실하게 굳어지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명훈 부모는 오직 명훈에 대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지현은 아무 상관 없는 남이기 때문이다.

 

지현은 어렸을 때 어머니를 따라 동네 교회에 다녔다. 그런데 어머니가 교회 청년부 담당 대학생과 자주 만나 돌아다닌다는 소문을 들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무자비하게 때린 다음, 절대로 교회를 가지 못하게 했다.

 

그 때문에 지현은 교회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그리고 교회에서 주는 점심을 얻어먹기 위해 정말 교회에 가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잘못으로 교회를 더 이상 다니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명자가 지현을 강력하게 설득을 시켰다.

 

“인생을 살면서 어려운 시련을 당하거나, 고통을 당하면 하는 수 없어.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거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모든 걸 맡겨야 해. 내가 다니는 성당이 있어. 한번 나가보자. 그리고 그곳에서 네 문제도 신부님께 상의해 봐. 어떻게 하라고 좋은 말씀을 해주실 거야.”

 

그래서 지현은 명자를 따라 성당에 몇 번 나갔다. 어느 날 지현은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했다. “신부님. 제가 결혼도 하기 전에 아이를 가졌어요. 저는 아이 아빠를 죽도록 사랑해요. 그런데 남자는 저를 사랑한다고 말을 안 해요. 아직 어려서요. 그리고 그 부모는 결사반대해요. 저보고 낙태를 하라고 해요. 신부님. 어쩌면 좋아요.”

 

신부님은 고민했다. 이런 경우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이 어린 양은 지금 인생의 중대한 위기에 처해있다. ‘낙태를 하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아이를 낳으라고 해야 할까?’

 

낙태죄에 대해서는 이를 폐지해야 하느냐 하는 논의가 뜨겁다. 생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다. 생명에 대한 권리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태아가 비록 그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모(母. mother)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그 자체로 모와 별개의 생명체이다. 따라서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인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낙태행위를 금지하고 형사처벌하는 것이다. 형법 제270조 제1항 자기낙태죄의 조항이 임신 초기의 낙태나 사회적 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고 있지 아니한 것이 임부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자기낙태죄 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

 

2012년 8월 23일 헌법재판소에서 내린 결정이다. 이에 대해서는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전면적 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처벌하고 있는 자기낙태죄 조항은 침해의 최소성원칙에 위배된다는 반대의견도 있었다.

 

로마 교황청에서는 아직까지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다. 낙태는 그 자체로 죄악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형법은 여전히 자기낙태죄를 형사처벌하고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거의 처벌하지 않고 있어 사문화된 조항이라고 할 수 있다.

 

“자매님! 가급적 아이 아빠와 결혼하도록 해요. 아이를 낙태한다는 것은 죄악이예요. 생명을 죽이는 거예요. 아이까지 가졌는데, 왜 결혼을 못해요. 그 남자를 잘 설득시켜서 기다렸다가 결혼하는 것으로 해요.”

 

하기야 신부님이 달리 할 말씀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은 지현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공허한 메아리로 들렸다. ‘이런 질문을 신부님께 한 내가 바보지. 신부님이 어떻게 알겠어. 내가 내 인생 결정해야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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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60)

 

명훈 엄마는 자신의 친한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 이 문제를 상의했다. 그 친구는 명동에서 사채를 오래 해서 사회 경험이 많고, 주변에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친구는 명훈 엄마에게 자신이 아는 흥신소가 있으니, 같이 가서 만나보자고 했다. 흥신소 사람들은 마치 형사같았다. 의뢰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해서 상대에 대한 정보를 알아낼 것인지, 프로답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 여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핸드폰 번호밖에 없나요?”

글쎄요. 우리 아들이 그 여자가 살고 있는 원룸이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곳을 알지 몰라요.”

 

그 여자의 무엇을 알고 싶은 건가요?”

지금 저희가 그 여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어요. 그 여자가 애를 가졌다는데, 정말 우리 아들 아이인지도 확인하고 싶고, 다른 남자관계도 알고 싶어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그 여자 아이를 떼도록 중간에서 협조해주는 거예요.”

. 알았습니다. 사모님!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전문이니까. 보름 이내에 모든 문제를 해결해 드릴게요.”

 

명훈 엄마는 이런 일을 처음 해보는 것이니까,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흥신소라고 해도 어떻게 저렇게 큰소리를 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말하는 투로 보아서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같이 간 친구가 전부터 거래를 해본 사이라고 하니까 무조건 믿고 맡길 수밖에 없었다.

 

명훈 엄마는 그 전에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흥신소라는 곳은 대개 건달이나 깡패 또는 주먹들이 불법으로 다른 사람들의 뒷조사를 해주는 곳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그런 곳을 찾아가거나, 흥신소에 어떤 일을 맡기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와 상의하다 보니, 흥신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곳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니 의뢰한 일을 잘 처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갔다. 흥신소 사장은 명훈 엄마로부터 착수금을 받으면서, 어떠한 경우라도 나중에 문제가 되면, 흥신소에서 자료를 받은 것이라고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세 번이나 했다.

 

요새는 과거와 달리 경찰에서 흥신소에 대한 단속이 심하고, 만약 흥신소 일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 구속되어 실형까지 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의뢰한 사람도 벌금형에 처해진다고 했다.

 

명훈 엄마가 흥신소에 지현의 뒷조사를 맡기고 나서, 정말 약속한 대로 15일이 지나자 연락이 왔다. 그리고 그동안 지현에 대해 조사한 자료를 가지고 왔다.

 

지현은 자신보다 열 살이나 더 많은 어떤 유부남과 3개월 동거를 했다는 사실, 그 남자의 아이를 이미 낙태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 정신적으로 공황장애증세가 있어 정신건강과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 현재 살고 있는 원룸은 보증금 천만원에 월세 30만원이라는 사실에 관한 자료를 보내왔다.

 

자료에 의하면 모든 것은 사실이었다. 지현이 동거생활을 했다는 남자는 도박꾼이어서 현재 기소중지되어 도피중이라는 사실까지 알아냈다. 그 도박꾼의 부인도 지현의 존재를 알고 있고, 그래서 그 부인이 지현을 만나 폭행까지 가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그건 사모님께서 알아서 하셔야지요. 저희가 낙태까지 해드리기는 너무 위험부담이 클 것 같아요. 세월이 예전 같지 안잖아요? 하지만 정 원하시면 저희가 해볼 수는 있어요. 다만, 그렇게 되면 큰돈이 필요해요.”

. 일단 이 정도의 자료를 알아냈으니, 저희가 먼저 해보고, 안 되면 다시 상의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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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59)

 

지현은 자신의 처지가 한없이 슬펐다. 그리고 몹시 분개했다. 명훈 엄마가 보여준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경위야 어찌되었든, 현재 자신은 명훈 엄마의 손자나 손녀를 잉태한 사람이다.

 

명훈이 2대 독자인데, 나중에 이 아이가 명훈 집안을 이어받을 것인데, 어떻게 만나자마자 상세하게 전후 스토리를 들어보려고 하지도 않고, 무조건 네가 잘못했으니, 빨리 없애버려라. 그리고 결혼은 절대로 안 된다.’고 선언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돈봉투를 던져놓고 가버리는 것일까?

 

이것은 인간적으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명훈 엄마를 가만두지 않더라도 명훈씨만큼은 사랑하고, 아이의 아빠니까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지현의 심정이었다.

 

지현은 명자를 만났다. 명자는 지현으로부터 명훈 엄마를 만나서 있었던 말을 듣고 몹시 흥분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곧 바로 명훈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당장 나오라고 했다. 그러나 명훈은 부모와 상의한 다음 연락을 주겠다면서 전화를 끊고 더 이상 명자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명자와 지현은 명훈 아버지 회사에 가서 플랭카드를 걸어놓고 시위를 하는 방법, 명훈이 다니는 대학교 총장에게 진정서를 내는 방법, 명훈을 만나서 폭행하는 방법 등을 상의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효과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지현은 어떤 결정도 할 수 없었다. 아이는 자꾸 안에서 자라고 있고, 정말 아이를 낳을 것인지도 시간이 가면서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명자는 옆에서 보면서 지현이 너무 불쌍해보였다. 그냥 아이를 지워버리고 다른 남자를 만나지, 저런 나쁜 인간들과 하나의 생명인 태아를 가지고 흥정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지현에게 참고 잊으라고 하기에는 지현이 너무 깊이 빠져들어가 있었고, 도저히 명자의 말을 들을 것 같지 않았다

 

지현을 만나서 지현의 생김생김과 말하는 수준, 아이를 절대로 수술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파악한 명훈 엄마는 비로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자칫 잘못 대처했다가는 아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게 뻔했다.

 

그렇다고 수준이 안 맞는 천한 지현을 며느리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차라리 전쟁이 나서 죽을지언정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해서 서울에서도 내놓을만한 집안을 일구어놓은 입장에서는 집안의 수치라고 생각되었다.  

 

명훈 엄마 생각으로는 빨리 지현을 정리하고 지금 명훈이 만나고 있는 돈많고 인물 좋고, 집안이 좋은 제니를 며느리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지난 번, 제니를 한번 만나 본 다음, 정말 자기 아들이었지만 명훈이 공부만 빼고는 남자로서 모든 것을 갖춘 아이구나 하는 믿음이 갔다.

 

그래서 몇 년 동안만 여자를 만나지 않고 지내고 있으면, 자신이 명훈에게 정말 좋은, 모든 조건을 갖춘 여자 아이를 구해주려고 했는데, 지금 문제가 생겼으니, 차제에 제니와 붙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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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58)

 

더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했다. 명훈 엄마는 난감했다. 지금까지 단골로 다니는 신라호텔에서 망신을 당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약속 때문에 가봐야겠다고 했다. 지현은 먼저 가시라고 했다.

 

명훈 엄마가 간 다음, 지현은 울음을 멈추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지금까지 명훈과 만나면서는 그렇게 심한 격차를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명훈 엄마를 만나보니 지현과 그들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의지로 어떻게 해도,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과 건널 수 없는 깊은 강이 가로 놓여 있었다. 그 산과 강은 자신의 목을 짓누르고, 가슴에 통증을 주는 보이지 않는 멍에로 생각되었다.

 

명훈 엄마는 지현을 만나보고 나서, 그녀를 어린 명훈을 꼬셔서 성관계를 하고 아들 모르게 임신한 다음 돈을 뜯어내려는 꽃뱀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명훈 아빠는 고등학교 동창으로서 판사생활을 하다가 변호사를 잘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 명훈 문제를 상의했다.

여자 아이가 결혼시켜 달라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면서 아이를 낳아서 혼자 키우겠다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최 변호사는 눈을 껌벅이면서 난감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거 보통 문제가 아니네. 결혼을 시킬 수는 없는 거고. 만일 돈으로 해결이 되지 않아서 그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자네 아들은 그 아이의 부(, father)가 되는 거야.”

 

아니 무슨 근거로 우리 명훈이가 그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거지?”

법으로는 그 아이가 명훈을 상대로 친생자확인소송을 걸어서 DNA검사를 해서 승소판결을 받으면 그 아이는 명훈이 가족관계증명부에 친생자(親生子)로 등재가 되는 거야.”

그렇게 되면 명훈이 낳은 자식이라고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게 되는 거네?”

 

당연하지. 그리고 명훈이는 그 아이에 대한 부양료를 19세까지 아이 엄마에게 지급해야 해. 뿐만 아니라 나중에 자네 아들이 사망하면 그 아이는 명훈이의 상속인이 되는 거야.”

뭐라고! 그럼 내 재산을 우리 아들이 다 물려받게 될 텐데, 그 재산을 그 아이가 나중에 또 다 물려받게 된다는 거야?”

 

그게 우리나라 상속법이야. 그리고 자네 아들 공부상에 아이를 낳은 아빠로 표시가 되는데 결혼하는데도 애로사항이 생기지.”

정말 큰일이네. 명훈이 인생이 망가졌네.”

그러니까 빨리 돈을 주고 해결해. 낙태수술 하는 방법밖에 다른 도리가 없어. 실제 우리 사회에는 이런 사건이 드물게 있어. 여자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남자는 골탕을 먹게 되어 있어. 자네 아들이 잘못 걸린 거야. 나쁜 여자한테.”

 

변호사는 법을 공부한 지성인인데 꼭 이런 식으로밖에 답변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여자야 죽든 말든 자신의 친구인 명훈 아빠를 위해 매우 일방적인 방법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지현이 그 변호사의 딸이거나, 명훈 아빠의 딸이었다면 이런 식으로밖에 해결할 수 없다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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