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48)

 

지현은 혼자 생각에 이렇게 헌신적으로 사랑할 각오를 가진 자신과 결혼하면 명훈도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지현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여자보다도 명훈에게 잘 하고, 명훈을 행복하게 만들고, 내조를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물론 지현이 명훈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하고, 나이도 명훈보다 5살이나 많았지만 그런 것들은 아무런 장애가 될 것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도대체 요새가 어떤 세상인데, 연상 여자와 결혼하는 커플이 얼마나 많은가?

 

더군다가 여자는 이혼해서 아이까지 있는데, 남자는 초혼이다. 이혼한 여자가 연상임에도 불구하고 잘 생기고 능력있는 미혼의 남자와 결혼해서 아주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다.

 

그런데 지현이 명훈보다 5살 많은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여자가 남자보다 나이가 많으면, 집안일도 잘 하고, 세상사는 지혜가 있어 남자를 더 잘 보살펴 줄 수 있다고 믿었다.

 

지현은 남녀 사이에서는 사랑만 있으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요새는 국경을 넘는 사랑도 숱하게 있지 않은가? 한국 남자들이 베트남 여자와 결혼하고, 필리핀 여자와 결혼하고, 심지어 아프리카에서도 한국인과 결혼해서 많은 언어의 장애, 신체상의 차이를 극복하고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 아닌가?

 

지현은 때로 고민도 했다. 명훈은 대학교를 다니고 있고, 집안도 돈이 많다. 말하자만 서울에서 상류층에 속한다. 명훈은 금수저다. 그런데 지현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매우 초라한 서민이다. 집안도 내세울 게 전혀 없다.

 

그렇다고 지현이 탤런트처럼 미모를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학을 졸업한 것도 아니다.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장래가 유망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운전면허증 빼고는 특별한 자격증도 없다. 그런데 과연 이런 처지에서 명훈과 결혼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도 보면 재벌 회장집 자녀들이 아주 빈곤한 가정에서 사위와 며느리를 데려다가 행복하게 살고 있다. 학력이 낮은 탤런트도 고학력의 교수나 판검사와 결혼하는 세상이다. 교통사고를 낸 재벌 아들이 사고를 당한 피해자를 동정하다가 결혼까지 하는 사례도 있다.

 

사랑과 결혼에 있어서 학력이 무슨 문제인가? 결혼해서 애 낳고 남편 뒷바라지 하는 데는 영어나 수학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 배운 ‘가정’과목만으로 충분하다. 사실 너무 많이 배운 여자들은 잘난 체나 하고, 남편에게 잘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소문도 들었다.

 

요리는 앞으로 학원에 다니면 된다. 바느질은 이제 할 세상이 아니다. 자녀를 교육시키는 것은 유치원부터 학원에 열심히 데리고 다니면 선생님들의 몫이다.

 

지현은 지금 아이를 뱃속에 가지고 있다. 태아의 움직임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이가 유산될까봐 매우 조심하고 있다. 그렇지만 카페 아르바이트 일은 계속하지 않으면 당장 월세를 내기 어려워서 어쩔 수 없다.

 

명훈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받고 싶지만,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다. 그러면서 지현은 매일 명훈에게 편지를 써서 핸폰으로 보냈다. 사랑한다고, 그리고 아이를 잘 케어하고 있다고, 평생 잘 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지현은 지현대로 일방적으로 명훈만 짝사랑하고, 뱃속의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그리고 명훈과의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면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아르바이트 일도 했다. 오직 명훈만을 생각하면서 다른 남자들은 일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불행했던 과거는 모두 깨끗이 잊기로 했다. 새사람이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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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47)

 

지현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명훈은 어느 부잣집 딸을 만나서 사귀게 되었다. 이태원에 있는 클럽에 놀러갔다가 제니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를 만났다. 제니는 뛰어난 미모에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음대생이었다.

 

제니 아버지는 부동산 투기를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 수도권에서 원주민으로 살면서 개발붐을 타고 싼 농지와 임야를 사서 그린벨트지역에서 해제되면 엄청나게 높은 가격으로 팔았다.

 

그래서 재산을 300억원 정도 모았다. 이른바 부동산으로 때돈을 번 졸부였다. 집에 외제차가 세대나 되었다. 돈을 많이 벌자 서울의 고급빌라로 이사를 왔다. 영숙은 무남독녀 외동딸이었다. 그래서 비싼 렛슨비를 들여서 바이올린을 시켰다.

 

제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착실하게 생활하고 남자를 전혀 모르고 지냈다. 그런데 대학교에 들어와서 친구들과 클럽을 다니면서 달라졌다. 서울에는 젊은 사람들이 가서 노는 클럽이 있다.

 

주로 20대와 30대 초반의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다. 클럽에서는 소개팅이 이루어지고, 자연스럽게 둘이 만나 모텔로 간다. 아무 조건 없이 섹스를 하고 헤어진다. 마음에 들면 또 만날 약속을 한다.

 

아주 쿨하게, 아무 조건 없이 처음 만나 섹스를 하고,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닌 관계가 된다. 돈이 있는 아이들도 많지만, 돈이 없는 아이들도 많이 온다.

 

술값이 비싸지만 대체로 소개팅으로 만나 합석한 남자가 전체 술값을 내기 때문에 여자들은 외모만 받쳐주면 공짜로 즐길 수 있다. 가끔은 거꾸로 남자들이 여자들 테이블에 와서 합석을 하고 돈을 낼 것처럼 하다가 그냥 나가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때 여자들은 공짜로 술을 마시고 놀려고 하다가 날벼락을 맞는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적으로 문란한 젊은 남녀가 성교를 하기 때문에 이상한 성병에 감염되기도 하고, 제비족이나 꽃뱀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명훈은 첫날에는 제니와 단지 술만 마시고 헤어졌다. 그러면서 명훈은 제니에게 자신이 돈이 많은 집 아들이고, 고급 외제차와 원룸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했다. 제니도 이런 명훈의 태도가 싫지 않았다. 그리고 매너를 깨끗하게 보여주자 다음에 또 만나기로 약속했다. 이렇게 두 사람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한편 지현은 시간이 가면서 명훈을 사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명훈의 아이를 갖게 되고, 명훈이 잘 생겼고, 부잣집 아들이며, 여자에게 따뜻한 매너와 좋은 성격으 가지고 있는 것을 알면서 완전히 빠져들었다.

 

이제 지현은 명훈 이외의 다른 남자는 절대로 사랑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전적으로 일방적인 사랑이었고, 외눈박이 사랑이었다.

 

그리고 명훈과 결혼하게 되면 평생 고생하지 않고 편하게 살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명훈 아버지가 능력이 있고, 돈을 잘 벌고 있을 뿐 아니라, 명훈에게는 돈을 아끼지 않고 쓸 정도로 명훈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극진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지현이 이처럼 명훈에 대해, 그리고 부모 및 가정환경에 대해 잘 알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명훈 자신이 은영을 만나면서 꼬시기 위해 소상하게 말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지현은 이제 절대로 명훈을 놓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아이까지 낳고, 명훈에게 결혼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할 생각이었다. 만일 명훈이 거부하면 자살을 해서라도 목적을 관철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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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46)

 

이런 상황에서 지현은 명훈을 만나 몇 차례 사랑을 나누었고, 명훈이 꼬시기 위해 현에게 돈도 잘 쓰고, 외제차에 고급 원룸까지 있으니까 명훈에게 푹 빠져버린 상태였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명훈은 지현을 수준 낮은 또라이로 우습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만나주지 않으면, 지가 어떻게 하겠어? 그냥 낙태수술하겠지.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더니, 나 같은 프로도 실수할 때가 있는 거야. 정말 재수가 없네. 잘 나가던 이 명훈이 고생 좀 하겠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명훈은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할 때 피임에 더욱 신경을 썼다. 반드시 임신주기인지 물어보고 위험하다 싶으면 콘돔을 사용했다. 그 전에는 여자들이 알아서 하려니 했다. 그리고 몇 여자들은 임신이 되자 곧 바로 낙태를 했다. 그때마다 명훈은 고생한다면서 병원비 이외에 수고비로 200만원씩 주었다.

 

여자 아이들은 낙태를 하고도 명훈이 돈까지 주면서 격려해주자 고마워했다. 명훈은 산부인과까지 따라가서 아이 아빠로 사인도 했다. 명훈은 낙태수술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여자들과 또 섹스를 했고, 그 여자들도 응해주었다.

 

이 여자들은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낙태가 무엇인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낙태수술을 하면 여자의 몸이 얼마나 망가지는 것인지, 전혀 개념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여자는 친구들과 같이 낙태수술을 하러 갔다가 나와서 저녁에는 술을 마시러 가기도 했다.

 

여자 부모가 이런 사실을 알면, 자신의 딸을 임신시키고, 낙태를 시키고, 책임도지지 않으려는 명훈을 정말 정말 나쁜 인간이라고 욕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명훈을 만나 따지고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 딸을 정말 어리석고 바보 같다고 속상해 했을 것이다.

 

세상은 이렇게 요지경으로 미쳐서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TV에서는 가끔 낙태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아직은 낙태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서 토론을 벌이고, 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도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명훈은 이런 것을 보면서도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곧 채널을 돌렸다. 다른 프로에서는 어떤 연예인이 어떤 재벌집 손자와 결혼하려고 한다는 시선을 끄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그 연예인은 행복에 겨워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명훈은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아마 저 여자도 한 두 번은 낙태를 했겠지? 그걸 숨기고 결혼하려는 걸거야.’ 하지만 남의 사생활은 어디까지나 사생활이다. 명훈이 참견하거나 알려고 해도 알 수도 없는 개인정보다.

 

많은 사람들은 오직 자신의 입장과 이익만을 생각한다. 남이야 죽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다. 냉정하기 짝이 없다. 자신의 아들이 강간을 하면 아들만 생각한다. 피해자인 여자가 잘못했기 때문에 강간을 당한 것이고, 그게 무슨 강간이냐, 지가 좋아서 했지라는 주장을 한다. 아들 편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강간 당한 딸 부모 입장에서는 남자를 절대로 용서하지 못한다. 딸의 인생이 망가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동안 세상에서 커다란 이슈가 되었던 Me Too운동도 마찬가지다. 피해를 당한 여자 입장에서는 가해자인 남자는 정말 나쁜 사람이다. 게다가 문제가 터지면, 꼭 거짓말로 넘어가려고 한다.

 

‘나는 절대로 성추행을 하지 않았다. 성관계를 한 것도 어디까지나 상대의 자유의사에 의한 동의하에 한 것이다. 여자가 저짓말을 하는 것이다. 나는 억울한 사람이다.’라고 강변을 한다.

 

가해자인 남자의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모여서 한목소리를 낸다. ‘여자가 동의를 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그런 성관계가 가능하겠느냐? 그리고 지금까지 왜 가만 있다가 갑자기 당했다고 고소를 하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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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45)

 

“오빠. 나 임신했어. 어떻게 하지?”

“그게 무슨 말야? 언제 임신했어? 그때 피임했잖아?”

“글세 나도 모르겠어. 아무튼 임신했어. 걱정이야.”

“뭘 걱정해. 병원에 가야지. 돈은 내가 낼게 걱정하지 마.”

“뭐라고! 애를 지우라고! 그걸 말이라고 해! 오빠는 내가 성당에 다니는 거 알잖아. 낙태는 죄악이야. 태아도 생명이라고!‘

“지현아! 너 미쳤니? 그럼 애를 낳겠다는 거야?”

“응. 낳고 싶어. 오빠와 결혼하지 못해도 나 혼자 낳아서 키울테니까 걱정하지 마.”

“너 정말 미쳤구나. 그러지 말고 빨리 병원에 가자. 더 늦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수술해야 해.”

 

이 말을 듣고 나서 명훈은 크게 놀랐다. 지현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상한 여자로 보였다. 무슨 의도인지 몰랐다. 아마 일시적으로 명훈이 잘 대해주니까 무슨 착각을 한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지현을 만나 일부러 술을 많이 먹이고, 관계를 할 때 과격하게 함으로써 자연적으로 유산시키려고 했다. 술에 취해 있을 때 수면제도 먹이기도 하고, 지현의 배를 세게 누르기도 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현은 유산된 것 같지 않았다.

 

결혼을 약속한 것도 아니고, 그냥 서로 만나 즐기고 엔조이하려고 했던 것인데, 갑자기 지현이 임신했다고 갑자기 아이를 낳겠다니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꼭 자기 애라는 증거도 없었다.

 

지현도 처음 만나는 날 곧 바로 섹스를 했던 여자였기 때문에 무척 자유분방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지현은 처음부터 섹스를 아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본인 말로도 자신은 섹스를 좋아한다고 늘 이야기했다.

 

지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카페에서 알바를 하면서 지내는 입장이었다. 인물도 평범했고, 몸매도 별 거였다.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대화를 해보면 답답했다.

 

지현이 아버지는 지현이 고등학교 졸업하던 해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재혼해서 다른 남자와 사는데, 그 남자도 건달이라 별 능력도 없으면서 어머니를 때리면서 살고있는 처지라, 지현은 어머니와 잘 만나지도 않는다고 했다.

 

언젠가 술에 취한 지현이 명훈에게 털어놓았다. 지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 자신보다 열 살 더 많은 남자를 사귀었다. 그 남자가 원룸도 얻어주고, 지현을 너무 사랑해서 지현도 푹 빠졌다. 6개월쯤 동거생활을 했는데, 어느 날 경찰에서 원룸에 찾아와서 그 남자를 수갑 채워서 끌고 갔다.

 

그 남자는 사기도박단의 멤버였다. 그래서 그 길로 감방에 가서 징역을 살게 되었다. 처음 몇 달 동안 지현은 열심히 그 남자의 면회를 다녔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 면회를 다니다 보니, 그 남자의 사기도박단 다른 조직원이 지현을 도와준다고 나타나서 몸을 빼앗고, 도망가버렸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면회 가서 이야기했더니, 동거하던 남자는 지현이 꼬리를 쳐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흥분했다. 그리고 교도소에서 나가면 지현을 죽여버릴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래서 그 길로 더 이상 면회도 가지 않고, 원룸을 팽개치고 나와버렸다.

 

그런데 그 후 감방 갔던 남자는 출소했을 것인데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남자가 감방에 가기 전에 지현을 죽을 때까지 사랑할 것이라고 맹세를 하면서, 지현의 은밀한 곳에 그 남자의 이름과 러브마크를 문신으로 새겨놓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 사람의 상징을 문신으로 가지고 있었다. 명훈은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어차피 결혼할 것도 아니고, 제대로 사랑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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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44)

 

기을비가 내리고 있다. 비에 젖은 단풍잎이 파르르 떨고 있다. 곧 떨어질 운명 앞에서 작은 기도를 한다. ‘연약한 잎이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아름다운 색으로 치장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울의 가을은 정말 아름답다. 노란 은행잎으로 길게 뻗은 도로,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물들은 주변 산. 도심의 공원에는 현란할 정도로 가을색이 눈을 부시게 한다.

 

이런 가을을 맞아 명훈도 대학생활의 낭만을 한참 즐기고 있었다. 아버지가 능력이 있어 평생 먹고 살 것을 마련해 놓았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공부를 열심히 안 해도 되었고, 해외 연수도 1년 다녀와서 영어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유능한 사업가였다. 얼굴도 탤런트처럼 생겼고, 골프도 프로 수준이었다. 어머니도 약사로 개업을 해서 돈을 잘 벌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워낙 여자들에게 인기가 좋아서 늘 이쁘고 젊은 여자들을 데리고 다녔다. 그래서 어머니와 여자 문제 때문에 많이 싸우고 살았다.

 

예전에는 간통죄가 있어서 그대로 조심하는 편이었는데, 요새는 간통죄가 폐지되고, 합의에 의한 성인들의 성교는 오직 민사문제는 될 수 있을지언정, 형사문제는 되지 않아서 그런지 명훈이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싫으면 이혼하자. 왜 내가 당신만 쳐다보고 살아야 하느냐?’면서 노골적으로 바람을 피고 있다.

 

이런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서인지 명훈도 여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특히 집에 돈이 많아서 모든 것을 백화점에서 명품으로 사서 치장을 하고, 몸관리를 하니까 여자들이 줄로 서있었다.

 

여자를 꼬시는 법도 자꾸 노력하면 발달한다. 처음에는 시간이 걸렸는데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당일 같이 잠을 자는 일이 쉬워졌다. 아버지가 사준 외제차는 여자와 Car Sex를 하는데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

 

명훈은 차안을 아주 고급스럽게 인테리어를 했다. 그리고 고급 담뇨를 준비하고, 멋있는 음악을 준비했다. 고급 와인과 안주까지 갖추었다. 썬팅은 너무 진하게 해서 운전에 지장을 줄 정도였다.

 

명훈은 더 본격적으로 여자를 꼬시기 위해 연예기획사에서 운영하는 연기학원에 등록을 했다. 연예인이 될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곳에서 연예인으로 성공하려는 여자들을 만날 기회를 가지기 위해서였다.

 

그것도 모르고 기획사와 학원에서는 돈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명훈의 의도에 반해 명훈을 영화에 출연시키려고 나섰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명훈은 날개를 달고 수많은 여자들과 연애를 하고 섹스를 했다.

 

시간이 가면서 명훈은 모든 것이 아버지 돈 때문에 그런 것을 모르고 자신이 한국에서는 최고의 멋있는 남자, 대학생, 인기스타가 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카섹스는 아무래도 불편한 점이 많았다. 우선 카섹스를 할 장소가 문제였다. 서울 시내는 빈땅이 없을 정도로 도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어 차를 세워놓고 섹스를 하기가 어려웠다.

 

잘못하다가는 사람들 눈에 띄어서 즉결심판에 넘어갈 우려도 있다. 아니면 차안에서 한참 흥분해서 있는데 누가 문을 따라고 세게 두드리면 뇌출혈이 일어나서 응급실에 실려갈 위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카섹스는 샤워를 하지 못하고 의식을 치러야하는 불편이 있었다. 특히 여름에는 땀도 나고 싫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모텔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모텔을 이용하다가 언젠가 인터넷을 보니 모텔에 잘못갔다가는 나쁜 사람들이 몰래카메라를 모텔방에 설치해놓고 젊은 남자와 여자의 섹스동영상을 촬영해서 인터넷에 올려 유포시키는 사례가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명훈은 이 기사를 보고, 자신과 같은 멋있고, 연예인 같고, 외제차를 타고 다니고, 파트너 역시 매력 있고 섹시한 여자와 모텔에 들어가면 최우선 표적이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다.

 

만일 자신이 인터넷에 유포되면 아버지는 더 이상 외제차를 운전하지 못하게 할 것이고, 돈도 주지 않을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머리를 굴려서 공부를 열심히 하기 위해서라면서 학교 앞에 원룸을 얻어달라고 했다.

 

돈 많은 아버지는 공부를 한다고 하니까 무조건 얻어주었다. 그것도 월세 비싸고 모든 것이 갖추어진 원룸으로 얻어주었다. 명훈은 이렇게 되자 마음 놓고 여자들을 불러들였다.

 

고급 호텔 스위트룸처럼 꾸면 놓고 고급 와인과 좋은 음악, 고급스러운 조명을 갖추어놓으니 여자들도 무척 행복해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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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43)

 

경희는 식당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오늘 따라 술이 취했다. 취기가 돌자 술을 더 시켰다. 어떤 의미에서는 술에 취하고 싶었다. 술에 취해서 현재의 답답한 상황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새벽 2시가 다 되었다. 사람들은 조금씩 자리를 떠났다. 몇 테이블 밖에 손님이 없었다. 어쨌든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굳이 서둘러 일어날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그곳에서 밤을 새울 수는 없었다. 피곤해서 모텔에 가서 잠을 잘까도 생각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러고도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모텔이라니! 아까 낮에 자신의 운명을 뒤바꾸게 만든 그 악몽은 바로 모텔방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러니 모텔은 생각만 해도 정이 떨어졌다.

 

술을 마시고 멍하니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던 젊은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잠깐 같이 앉아도 되느냐는 것이었다. 경희는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인상이 착해보였다.

 

여자는 자신의 남자 친구가 배신을 해서 슬프다는 말을 꺼냈다. 경희는 무슨 말인지 듣고 싶었다. 여자는 28살이었다. 직장에 다니고 있는데 같은 직장에서 만난 남자와 1년 넘게 연인으로 지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다른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오늘 너무 속이 상해요. 그래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거예요.”

“왜 그렇게 속이 상해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괜찮아요?”

“제 남자 친구가 이제는 노골적으로 헤어지자고 해요.”

“왜요?”

“남자 친구의 새로 생긴 애인이 저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으라고 했대요. 그래서 남자 친구가 저와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거예요.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예요?”

 

경희는 조용히 그 여자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상한 건 그 여자의 말을 들어도 별로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문제가 뭐 그렇게 심각한 것이냐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얼마나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수시로 발생하는지 아는가? 그 정도 일은 아무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어리석게 괴로워하는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자와 여자는 만났다가 헤어지고, 또 다시 만나고, 파트너가 바뀌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싶었다. 아직 결혼한 것도 아닌데,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사회적 구속을 받는 것도 아닌데, 미혼의 남녀가 헤어지는 문제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하고, 고민하는 것이 우습게 생각되었다.

 

잠시 술기운에 잊고 있었던 경희의 처지가 다시 그 여자의 말 때문에 클로즈업되었다. ‘아! 남녀간의 문제는 바로 이런 것이구나!’ ‘나도 처음부터 남편하고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결혼했어도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일단 결혼했으면, 참고 살 것을...’

 

사랑이 괴로운 것은 본질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무조건 행복만 보장되는 사랑은 없다. 진정한 사랑이란 처음에 얻는 과정도 고통스럽고, 일단 얻어진 다음에도 수시로 크고 작은 마찰과 갈등이 반복된다. 더군다나 그 사랑이 시간이 가면서 흔들거리고, 제3자가 개입되면 폭풍에 휩쓸리게 된다.

 

“남자가 끝내 헤어지자고 하면 방법이 없지 않아요?” 경희는 여자를 위로하기 위해 한 마디 했다. 별로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그냥 무심코 나온 말이었다.

 

“근데 너무 억울해요. 그 남자 때문에 아이도 한번 지웠어요. 그래서 몸도 안 좋아졌고, 같은 직장에 있는 다른 여자에게 남자를 빼앗긴 것도 분하고. 그냥 포기하자니 아깝기도 하고 그러네요.”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직장에서 연애를 하고 있는데, 같은 직장의 다른 여자에게 애인을 빼앗기면 분하고 억울할 것이다. 그 말에는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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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42)

 

철수 자신도 결혼하기 전 여러 여자와 연애도 했고, 성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유독 아내인 경희의 혼전 관계만을 문제 삼을 수 없었다. 그러나 결혼한 후 6개월이 지난 다음 경희가 옛애인을 다시 만나 섹스동영상까지 찍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때부터 더 이상 정을 주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리고 그때 경희는 절대로 바람을 피지 않겠다고 각서까지 썼던 여자다.

 

그런데 또 다시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것도 옛애인이 다시 나타나서 협박을 한 것도 아니고, 이번에는 전혀 다른 뉴 페이스가 나타났고, 모텔 현장에서 섹스를 한 직후 나체로 있는 경희를 목격했기 때문에 충격도 다르고, 생각도 달랐다.

 

특히 철수의 입장에서 볼 때 경희가 바람을 핀 이번 남자, 영석은 철수보다 훨씬 체격도 건장해 보였고, 남자답게 보였기 때문에 이런 상대적인 콤플렉스도 무의식적으로 크게 작용한 것 같았다.

 

철수는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경희와 이혼을 해야 할까? 별거를 할까? 아니면 아이 때문에 참고 살아야 할까? 이제는 도저히 예전처럼 한집에서 부부라고 하면서 같이 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일단 너무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텔방에서 경희와 애인인 영식이 함께 섹스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떠올리면 절대로 용납을 할 수 없었다. 물론 철수가 경희에 대해 ‘더럽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매우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평가일 수밖에 없다.

 

경희가 남편 이외의 다른 남자와 연애를 하고, 섹스를 했다고 해서 경희 자신이 '더러워진 것‘은 아니다. 경희는 영식과 바람을 피기 전이나 바람을 핀 후나 아무런 변화가 없다. 육체적인 면에서도 없고, 정신적인 면에서도 없다. 경희가 더러워졌다거나, 더럽게 느껴진다는 것은 오직 배우자인 철수에 국한된 문제가 아닐까?

 

이것이 사랑에 있어 중대한 모순이고 아이로니다. 일반인 입장에서도 비슷하다. 유명한 배우가 결혼하고서도 수많은 염문을 뿌려도 그 연예인을 더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직 그 배우의 배우자만 그 연예인을 인간 같지 않고, 더러운 인간이며, 위선자라고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철수는 경희와의 관계에서 더 이상 사랑은 없는 것으로 확신했다. 오직 증오만이 남아 있었다. 사랑이 식으면 무관심이 된다. 하지만 때로는 그 사랑이 무서운 증오로 변하는 경우가 있다.

 

증오의 단계에까지 이르면 이미 종전의 사랑은 식은 것이 아니라, 완전히 소멸한 것이 된다. 사랑의 사체는 새로운 증오의 기폭제가 되고, 핵폭탄과 같은 무서운 파괴력을 가진다.

 

그래서 사랑이 식는 경우에도 그것이 더 나아가 증오로까지 발전되지는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의 생존을 위해서, 서로의 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그런데 다른 동업관계와 달리 결혼관계는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회적 체면이 있고, 주변에 가족이 있고, 더군다나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원래 두 사람이 함께 활동하는 것을 모임 또는 단체라 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동업이라고 한다. 또는 공동사업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이런 동업관계가 역사가 짧기 때문에 성공하는 확률이 적다. 지금까지 동업해서 재벌 된 사람이 거의 없고, 중소규모의 동업은 대부분 깨지고 서로 소송하기 바쁘다.

 

아무리 작은 사업이라고 해도 혼자 해야지, 두 사람이 함께 하면 잘 되어도 깨지고, 못되어도 깨진다. 적은 규모의 호프집을 동업으로 해보라.

 

처음에는 가족 이상으로 가깝고, 평생 힘을 합쳐 성공하자고 혈서까지 써가면서 다짐을 한다. 하지만 불과 몇 달만 지나보라! 무슨 일이 생기는가?

 

장사가 되지 않고, 적자를 보게 되면 서로를 원망한다. 각자의 기여도가 적다고 불평한다. 먼저 시작하자고 제안한 사람을 탓한다. 반대로 장사가 잘 되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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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41)

 

경희는 카페에 앉아 있었다. 머리는 아프고,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불행하고 비참한 여자 같았다. 경희는 남편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보았다.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는다. 수십번이나 되풀이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연결이 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전화를 상대가 고의적으로 받지 않을 때 심정은 어떠할까? 조급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답답해 미치게 된다. 속이 상하고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는다.

 

지금까지 살면서 경희는 드물게 남편과 싸우게 되면 남편의 전화를 집에서 받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반대의 입장이 되어서 그런지 상대방의 심정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을 때 얼마나 약이 오르고, 화가 나고, 절망에 빠지는지를 미처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경희가 막상 당하고 보니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완전히 상대를 무시하고, 인격을 짓밟는 것이었다.

 

약간 다른 문제지만, 사기꾼들이 사기를 치고 입장이 곤란하면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일주일 후에 틀림없이 꾼 돈 3천만 원을 갚겠다.’고 약속을 해놓고, 막상 일주일이 지난 다음 전화를 하면 연락이 되지 않는다. 전원이 꺼져 있다.

 

이럴 때 피해자는 미친다. 수십번, 수백번 전화를 한다. 밤늦게 아침 일찍 전화를 한다. 그래도 사기꾼의 전화는 전원이 꺼져있다. 이때 피해자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그러다가 나중에 사기꾼의 전원이 켜있어 음성메시지를 수없이 남기면 그때서야 전화를 걸어와 또 거짓말을 한다. 돈을 구하러 다니느라고 전화를 못받았다고 미안하다고 한다.

 

그것은 또 다른 거짓말이다. 그러면서 며칠 후에 틀림없이 돈을 준다고 거짓말을 하고 똑 같은 악행을 되풀이한다. 이런 것이 사기꾼들의 전형적인 수법이고, 피해자는 그 때문에 돈을 잃고 정신까지 우울증에 걸리고 홧병에 걸리는 것이다. 하지만 가해를 하는 사기꾼은 피해자가 그토록 고통을 받는지 알 이유도 없고, 알 지도 못한다. 그게 사기꾼과 피해자의 역학관계다.

 

경희는 남편에게 전화하는 것을 포기했다. 어차피 받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 지금 남편은 어떤 심정일까?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어린 아이는 지금 어떻게 있을까? 너무 많은 것이 궁금했다.

 

한편 경희의 남편, 철수는 어떤 상황에 있을까? 관계가 악화된 부부는 언제나 동일한 대칭점에 있다. 누가 잘못을 했던, 한 사람이 괴로우면 다른 한 사람도 똑 같이 괴롭게 된다. 그것이 부부다. 완전히 헤어지지 전까지는 부부는 똑 같은 상처를 받고, 똑 같은 고통을 받는다.

 

물론 철수는 경희와 결혼하면서, 경희가 분명히 과거 전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존심이 상해할까봐 직접적으로 물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철수는 더욱이 의사였기 때문에 경희와 데이트 하면서 경희의 언행으로부터 느낌으로 확신했다.

 

그러나 철수는 그런 문제에 대해 보편적인 남성 이상으로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결혼하기 이전에 있었던 사생활에 대해서는 별로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경희가 결혼할 때의 나이가 벌써 31살이었다. 그때까지 여자가 남자와 연애도 안 하고, 성관계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도 예외인 듯 싶었다.

 

성에 관해서는 오늘 날 많이 개방되었을 뿐 아니라, 아주 정도가 심하지만 않으면 그것을 문제 삼는 사람이 오히려 시대착오적이고, 이상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만일 어떤 남자가 결혼한 다음 여자의 처녀성을 문제 삼으면, 그는 아무에게도 동정을 받지 못한다. 오히려 도덕적으로 비난 받는다. 법원에 가도 혼전 성관계는 이혼사유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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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40)

 

현재의 상황에서 경희는 바람 피다가 모텔에서 남편에게 들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친정에 알릴 수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알린다고 한들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다. 그리고 만일 이런 상황을 친정에 알리면, 아마 부모님들은 기절해서 쓰러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아이까지 있는 유부녀가 무엇 때문에 다른 남자, 그것도 가정이 있는 유부남을 만나서 연애를 하고, 대낮에 모텔에 가서 그 짓을 했다는 사실을 알면, 나이 든 부모로서는 도저히 경희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쳤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무리 딸이라고 하지만, 그만큼 공부시켜서 시집을 보냈으면, 그만이지 평생 부모가 딸을 책임져야 하느냐고 반문할 것이리라. 그것도 교통사고를 당한 것도 아니고, 사기를 당한 것도 아닌 데, 무엇 때문에 버젓이 가정 있는 여자가 외간 남자와 모텔을 다니느냐고 한심하다고 생각할 것이리라.

 

경희는 가까운 친구들이 여러 명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런 경우 누구에게 연락을 할까? 하지만 친구들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가깝게 지내는 친구라 해도, 경희의 입장에서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을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친구의 불행을 겉으로는 안됐다고 걱정해 주면서도 속으로는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다. 남이 잘 되면 공연히 기분이 좋지 않다. 친구가 남편이 돈을 잘 벌고 가정에 충실하고, 자식들이 공부를 잘 한다고 자랑하면 속으로는 은근히 기분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성인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구가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사업도 잘 안 되고, 자녀들도 공부도 안 하고, 못된 짓이나 하고 다닌다고 하면 속으로는 고소하게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런 말을 하는 친구를 속으로 무시하고 우습게 본다.

 

물론 안 그런 사람도 많다. 하지만 누가 그런지 알 수 없으니 함부로 자신의 약점이나 단점, 비밀을 털어놓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경희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친구들 세계에서는 집안도 괜찮고, 미모도 갖추었고, 남편도 의사를 만나 아이 낳고 아무 걱정 없는 것처럼 보였다. 돈도 쓸만큼 쓰고 골프도 치러 다녔으니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경희가 갑자기 불륜으로 남편에게 적발되고 앞으로 이혼을 당할지 어떨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하면 속으로는 ‘그렇게 잘난 체 하더니 잘 됐다’라고 생각할 사람도 많을 것처럼 생각이 들었다.

 

사회 전반이 극도의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자본주의 하에서 물질만능주의가 사람들의 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물질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겉으로 보이는 피상적인 것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고, 대접하거나 무시한다. 또한 남이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세태다. 그래서 잘 살던 사람이 망하고, 공무원이 감방에 가고, 남들이 병에 걸려 죽어도 자기 일이 아니면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잘난 척 하던 사람이 패가망신하면 신바람이 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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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39)

 

경희는 식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24시간 하는 카페로 갔다. 혼자 앉아 커피를 시켰다. 지금 이 시간, 이 상황에서 누구를 만나 상의를 해야 하나? 친정집에는 연락할 수 없었다. 얼마나 실망할까? 지금까지 친정 부모는 경희가 결혼해서 별 문제 없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였다. .

 

더군다나 친정에서는 결혼할 때에도 의사 사위를 얻기 위해 돈도 많이 들였다. 아파트도 전세를 얻어주었다. 자동차도 사주었다. 그리고 인턴과 레지던트를 하는 동안에는 생활비도 대주었다.

 

결혼식도 돈이 많이 들어가는 호텔에서 했다. 불과 몇 시간 동안 하는 예식비만 7천만원이나 들었다. 물론 축의금도 들어왔지만, 그것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돈도 아깝고 낭비라고 생각했지만, 대외적으로 체면을 살리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했다.

 

친정부모는 사위가 의사라고 늘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철수도 처갓집에 잘 했다. 경희와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 처갓집 식구들에게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철수는 처음 결혼할 무렵에는 경희를 무척 좋아했다. 경희가 얼굴도 예뼜고, 미술을 전공해서 예술적 감각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경희 아버지가 재력이 튼튼한 사업가였기 때문에, 돈도 넉넉하게 대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결혼한 다음, 6개월만에 터졌다. 경희가 결혼하기 전에 오래 사귀던 남자가 계속 연락을 해서 만나자고 했고, 경희도 하는 수 없이 그 친구를 만났다. 그랬더니 그 남자 친구가 왜 자신을 버리고 능력 있는 의사와 결혼했느냐고 가만 두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것이었다.

 

경희는 기가 막혔다. 당시 경희와 그 남자 친구는 1년 정도 사귀었는데, 그 친구가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취직도 못하고 있는 사이에 군대를 가버렸다. 그리고 그 친구가 먼저 연락을 끊었다.

 

경희로서는 더 이상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경희도 그 친구를 포기했다. 그러면서 다른 남자들과 연애를 하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3년 정도 있다가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선을 봐서 만난 사람이 바로 지금의 신랑, 철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결혼 전 남자 친구가 경희가 결혼한 지 6개월만에 불쑥 나타나서 협박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남자 친구는 경희의 과거를 철수에게 말하겠다고 협박했다.

 

어떻게 네가 그렇게 나를 배신하고 다른 놈과 결혼할 수 있어? 네가 낙태까지 했잖아? 그것도 내가 그렇게 반대했는데, 네가 혼자 낙태수술을 결정했던 거야. 지금 생각하니, 너는 나와 결혼할 생각도 전혀 없었는데, 그냥 나를 데리고 놀았던 거야. 그래 나는 지금 이렇게 비참하게 됐는데, 너 혼자 좋은 놈 만나서 행복하게 살면 다야! 그러면 내 인생을 뭐야?”

 

그러면서 그 남자 친구는 경희를 붙잡고 모텔로 끌고가서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 이에 저항하는 경희를 때리기도 했다. 경희는 어쩔 수 없었다.

 

만일 그 남자 친구가 철수를 찾아가 과거를 폭로하고, 난리를 치면 철수와의 관계가 파탄에 이를 것 같았다. 철수는 결혼 전후에도 자신은 의대 공부가 힘이 들고, 인턴과 레지던트를 할 때도 너무 힘이 들어서 연애 한번 제대로 못했다고 늘 강조했다.

 

거짓말이었겠지만, 자신은 결혼하고, 신혼 여행 때, 경희와 처음으로 관계를 한 것이라고 늘 되풀이해서 중점을 두어 말하곤 했다. 그러면서 경희는 처음은 아닌 것 같다고, 의사로서 의학적 견지에서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런 과거는 묻지 않겠다고 하는 말까지 덧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만일 그 정도가 지나쳐서 낙태까지 하고, 결혼까지 약속했던 옛애인이 나타나서 난리를 치는 날에는 철수가 그것까지 용납할 것 같지는 못했다. 그것이 경희가 당시 느낀 상황이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 남자 친구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다.

 

그랬더니 그 남자 친구는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 성관계를 할 것을 요구했고, 경희에게 돈까지 요구했다. 처음 두 달 동안은 경희가 하는 수 없이 끌려다녔다. 그리고 돈도 천만원이나 친정부모에게서 얻어다가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남자 친구는 경희를 불러내서 모텔에서 성관계를 가진 다음, 섹스 동영상을 몰래 찍어놓았다. 그리고 경희가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그 동영상을 경희의 남편인 철수의 핸드폰으로 보내놓았던 것이다.

 

이걸 계기로 그 남자 친구는 경희와의 관계가 끝났지만, 경희는 철수에게 노예와 같은 존재로 추락하고 말았다. 철수는 대외적인 체면과 처갓집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냥 결혼관계는 유지했지만, 더 이상 경희를 믿지 못하고, 형식적인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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