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40)

 

지금은 세태가 많이 달라졌다. 간통죄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형법상 혼인빙자간음죄도 없어졌다. 결혼하자고 꼬여서 음행의 상습 없는 여자의 정조를 빼앗는 행위를 예전에는 범죄로 규정하고 징역을 보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혼인빙자간음죄도 없어졌다.

 

혼인빙자간음죄가 없어졌기 때문에, 예를 들면 가짜 의사 행세를 하면서 여자를 꼬여서 결혼할 것처럼 몇 달 동안 육체관계를 하고 나중에 연락을 하지 않는 경우 처벌할 방법이 없다.

 

설사 검사를 사칭했다고 해도, 검사의 권한을 행사하지 않으면 처벌대상이 아니다. 다만, 그런 거짓말로 여자로부터 정조만 빼앗은 것이 아니라, 돈까지 편취를 했다면, 그것은 정조사기죄가 아니라, 재물사기죄라는 재산범죄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남녀 간의 육체관계가 폭력에 의한 것이 아니고, 성인의 자유의사에 의한 것이면 형법에서 더 이상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이어서, 예전과 달리 현장에서 들킨 간통행위자들도 당당한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간통이 범죄가 아니고, 단지 민사상 위자료만 물어주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통하다 걸리면 기껏해야 1천만원이나 3천만원 정도 물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돈 있는 사람들도 있다. 더군다나 재산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경제적 무자력자의 경우는 더욱 한심하다.

 

그 사람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하기도 어렵지만, 위자료 지급을 명령하는 판결을 받아야 강제집행할 재산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그래서 배째라고 나오면 상간자를 상대로 돈을 받아낼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상간자를 때리면 때린 사람만 상해죄나 폭행죄로 형사처벌을 받고, 그에 대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현장에서 들킨 간통행위자들도 당당한 경우가 많다. ‘내가 당신 아내와 성관계를 한 것이 미안하기는 하지만, 범죄는 아니다. 그러니까 억울하면 나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를 하면 되지, 왜 여기 와서 큰소리냐. 이 바보 같은 사람아. 당신이 그런 식이니까 아내가 바람을 피는 것 아니냐? 이혼하면 되지 이런 식으로 해서 여자 마음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이 어리석은 사람아!’

 

물론 말로 이렇게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상간자는 남편 되는 남자에게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세상이다. 세상이 달라져도 참 많이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영식과 경희는 달랐다. 영식은 크게 맞는 않았지만 심한 공포심을 느끼며 무한한 절망에 빠졌다. 매우 비참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영식의 아내가 경희문제를 가지고 따질 때, 그만 만날 것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그리고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영식은 현장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 경희의 남편이라는 존재를 생각해 보았다. 왜 그렇게 난리를 치는지 이해가 되었다 만일 영식의 아내가 그런 현장에서 발견되었다면 영식도 당연히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아니 영식의 경우는 더 심한 태도를 보였을 것 같았다.

 

영식은 경희의 남편과 그 일행, 그리고 모텔 종업원, 세 남자를 보면서 오직 자신만이 비정상적인, 나락에 추락한 불쌍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자신은 이미 남자의 대열에서 이탈한 초라한 존재가 된 것이었다.

 

왜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까? 왜 이렇게 추잡한 존재로 추락했을까? 섹스라는 것이 매우 더럽게 느껴졌다. 구역질나는 존재였다. ‘순간적인 쾌락을 위해, 내가 왜 이렇게 위험한 일을 했던 것일까?’

 

자신은 인격도 없는 아주 하등동물로서 그냥 세포가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존재로 느껴졌다. 사람의 인격은 배우고, 스스로 절제하고, 바르게 살아야 형성되는 것일 뿐 아니라, 옷을 입고, 나체 상태에서 음부를 노출시킨 상태에서는 인격 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영식은 지금 인격을 상실한, 아니 애당초 인격이 없었던, 비인격자 내지 무개념자로 전락해 버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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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5)

 

윤석과 혜경은 저녁 식사를 하고, 이태원에 있는 술집으로 갔다. 미군 부대가 평택으로 이전하기 전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이태원은 역시 이태원이다. 아직도 일부 부대가 남아있고, 외국인 주거지역이 많이 있기 때문에, 영어로 된 간판이 많고, 외국거리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분위기 있는 술집으로 가서 두 사람은 술을 많이 마셨다. 이상하게 혜경이 먼저 술에 취했다. 혜경은 오늘 따라 말을 많이 했고, 왠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술에 취한 혜경은 윤석에게 자신은 하얏트 호텔에서 자고 갈테니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윤석은 알았다고 하면서 택시를 잡아 하얏트 호텔로 갔다. 그리고 호텔로 가서 다시 혜경을 데리고 지하 1층으로 가서 술을 더 마셨다.

 

그런 다음 호텔 방을 하나 잡아서 혜경 보고 올라가서 쉬라고 했다. 혜경은 알았다고 하면서 술에 많이 취한 상태에서 방으로 들어갔다. 윤석은 로비라운지에서 커피를 시켜 창밖의 야경을 보고 있었다. 술도 좀 깨고, 그렇지 않아도 혼자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고 싶기도 했다.

 

하얏트 호텔 로비라운지에서 보는 한남동의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로비에서는 피아노 연주를 조용히 하고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난 다음, 윤석은 일어나기 전에 혜경에게 전화를 했다. 잘 자라는 말을 하고, 이제 자신은 집으로 들어간다는 인사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혜경은 전화를 받았는데, 울고 있던 목소리였다. 그러면서 알았다고 하면서 윤석에게 조심해 들어가라고 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윤석은 그런 전화를 받고 그냥 집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일단 집으로 전화를 해서 오늘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고 아주 늦을 것이니 먼저 자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혜경의 방으로 올라갔다. 혜경은 그러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냥 돌아가라고만 했다. 윤석은 하는 수 없이 다시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이태원으로 가서 혼자 술을 마셨다. 혜경은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윤석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윤석은 마음이 아팠다. 혜경이 갑자기 왜 그러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혼자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 궁금하기도 했고, 윤석에게는 마음을 열지 않고, 상의도 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윤석은 그냥 혜경의 처분만 기다릴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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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4)

 

호텔 입구에 들어서자, 윤석은 마치 자신이 귀족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유럽 스타일의 제복을 입은 도어맨이 경례를 하면서 윤석을 맞았다. 웅장한 호텔 건물은 웬지 묵직해 보였고, 무게가 있었다. 그래서 윤석은 즐겨 이 호텔을 이용했다. 특히 1층 로비라운지는 천장이 높아서 마치 자신이 유럽 어느 도시에 와 있는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혜경은 미리 와 있었다. 오늘 따라 밝은 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무언가 기분 좋은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늘상 들고 다니는 검은 색의 샤넬백이 유난히 돋보였다.

“무척 피곤해 보여요.”

“괜찮아. 손님이 많아서 하루 종일 바빴어. 잘 있었어?”

“네”

“샵은 괜찮아?”

“불경기라 손님이 많이 줄었어요.”

“하긴 요새 다 그렇다고 그래. 웬만한 곳은 모두 현상유지도 어렵대.”

“힘들어도 참고 열심히 해야지요. 뭘”

 

윤석은 혜경의 밝은 모습이 맘에 들었다. 혜경은 항상 미소를 띄고 세상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강남에 일식당을 오픈할 때부터 주위에서는 걱정을 많이 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잘 하고 있었다. 워낙 열심히 노력을 하고, 타고난 감각이 있어서 그런지 혜경의 식당에는 꾸준히 손님이 있었다.

 

서영은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타입이었다. 한눈을 팔지 않고, 자신의 직업이 세상에서 가장 좋고 보람있는 일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일을 재미있어 했다. 하루 하루 재미 있게 보내다 보니 너무 빨리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난 봄이었다. 혜경은 윤석이 원장으로 있는 줄 모르고, 친구 소개로 윤석의 병원을 찾아왔다. 혜경의 여동생이 성형수술을 받는다고 해서 같이 따라왔던 것인데, 알고 보니 윤석이 원장으로 있었고, 수술을 할 의사였다.

 

윤석이 혜경의 여동생을 만나려고 할 때, 혜경은 정말 놀랐다. 그렇게 해서 오랜만에 다시 윤석과 혜경이 연락이 된 것이었다.

 

윤석은 혜경의 여동생 수술을 최대한 성의를 가지고 열심히 해주었다. 윤석은 자신의 이상형을 만드는 그리스 시대의 조각가처럼 온 정성을 다 바쳤다. 간호사들도 그 수술 후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졌다고 난리였다. 혜경의 여동생도 수술 결과에 아주 만족했고, 윤석에게 매우 고마워했다. 혜경은 윤석에게 고맙다고 하면서 식사대접을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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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38)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경희의 남편 자신에 대한 자학행위였다. 여자의 순결성, 지조가 망가진 데 대한 분노였다. 매우 이상한 형태의 심리작용이었다.

 

경희 남편은 경희에게 상해를 가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냥 뺨만 때렸을 뿐이었다. 기본적으로는 아내에 대한 실망감, 미움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의 혼돈상태였다.

 

그러나 경희 남편은 영식에게는 죽일 것처럼 포악하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몇 대 때리지는 못했다. 같이 갔던 일행과 모텔 종업원이 가운데서 말렸기 때문이었다. 남편에 대한 폭행은 왜 했을까?

 

그것은 아내를 빼앗긴 데 대한 분노였다.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도둑맞은 데에 대한 억울함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모텔 방에서 섹스를 하고 있었던 상황에 대한 수치심, 더러움이었다.

 

한 밤중에 자고 있는데 도둑이 침입하여 금고에 있는 1억원의 현금을 훔쳐갔다고 생각해 보자. 주인은 그런 사실을 알고 심한 충격을 받아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잃어버린 돈 때문에 너무 아깝고 억울해서 오래 동안 잠도 잘 못자고, 괴로워한다.

 

하물며 자신의 부인을 도둑맞은 심정은 어떨까? 돈으로 보상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의 육체, 그리고 정신, 영혼을 모두 한꺼번에 도둑맞은 피해자인 남편은 아주 깊은 절망감에 빠져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간통죄가 형법에 규정되어 있었다. 배우자 있는 사람이 배우자 이외의 다른 사람과 성교를 하면 징역을 보내는 법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에 왜 법에서는 간통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불륜의 사랑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멀쩡한 남자와 여자를 감방에 집어넣었던 것일까?

 

징역형의 목적이 범죄인인에 대한 교정과 교화에 있다고 하면, 간통범죄인은 징역을 살면서 무엇을 회개하고, 어떤 범죄성에 대해 반성하고 참회를 해야 했던 것일까?

 

한 때 날리던 인기연예인들도 많이 간통죄로 구속되고, 그로 인해 연예계를 떠났다. 그들은 유부남과 유부녀를 사랑했던 죄로 자신의 모든 것을 잃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사람들은 그런 현상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시간이 가면서 그런 간통죄가 불합리하고,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더 이상 형법이 남녀 간의 애정관계에 관여하거나 강제해서는 안 된다는 반성적 고려가 지배적이었고, 끝내 국회가 아닌 헌법재판소에서 간통죄는 헌법위반이라는 다수의견에 따라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간통죄가 없어진 지금에도 경희와 같이 유부녀가 다른 남자와 연애를 하거나, 육체관계를 하면, 여전히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형법상 범죄행위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형법 이외의 다른 법률, 즉 민법에 따라 배우자에 대한 부정행위로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된다.

 

간통죄가 존재하던 시절에는 간통현장에서 수많은 불상사가 있었다.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와 나체로 있는 장면을 목격한 남편은 이성을 잃고 공격을 했다. 그리고 남편에 대한 가해자들은 잘못이 있었기에 꼼짝 못하고 당했다.

 

난폭한 남편은 상간자를 야구방망이로 때려 척추를 부러뜨리기도 했다. 칼로 찔러 살인도 했다. 자신의 아내의 음부를 불에 담군 인두로 지진 사건도 있었다.

 

현장에서 들킨 간통행위자들은 당황하여 모텔방에서 뛰어내리다가 척추를 다치기도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내를 빼앗긴 남편이 가해자인 남자로부터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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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37)

영식과 경희의 관계가 계속해서 이어져가면서 중간에 다소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첫 번째는 영식의 부인이 어느 날 영식이 늦게 들어오던 날, 영식의 옷에서 여자 향수 냄새가 나서 의심을 하고 소지품을 뒤져보았다.

그랬더니 회사에서 회식을 하고 늦었다고 하면서, 주머니에서 신용카드 결제한 것이 나왔는데, 어떤 식당과 술집이었다. 그래서 영식에게 물었더니, 계속해서 회사에서 회식하고 들어왔다고 잡아떼는 것이었다.

그 후 영식의 부인은 계속해서 의심의 눈으로 영식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영식이 샤워를 하고 있는 사이에 부인은 영식의 핸드폰에 문자가 와 있는 것을 보았다. 경희와 주고받은 내용이었다. 별 내용은 없었지만, 일단 부인은 경희의 핸드폰 전화번호를 적어놓았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부인은 영식에게 경희의 존재를 물었고, 난리를 쳤다. 그러자 영식은 그냥 몇 번 만나 식사만 한 사이라면서 앞으로는 절대로 만나지 않겠다고 각서를 썼다. 그리고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영식은 이런 집안에서 있었던 상황에 대해 경희에게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그 이후로는 경희와의 관계에 대해 더욱 철저하게 조심하고 또 조심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영식에게 경희가 있게 된 이후부터는 부인과는 절대로 관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전에는 한 달이나 한 달 반 정도에는 한번 정도의 관계를 마지못해 가졌으나, 경희와 관계를 하면서부터는 거의 부인과는 관계를 하지 않고 지냈다.

부인도 특별히 영식에게 관계를 하자고 보채지는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섹스리스 부부가 된 것이었다. 그러자 부인도 점점 영식에게 있어서 경희라는 여자의 존재에 대해 심각한 관계라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한편 경희는 자신의 남편에 대해 영식과의 관계를 철저하게 숨기고, 문제가 생길 상황이면 친구들과 짜고 알리바이를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핸드폰 관리도 아주 첮러하게 했다. 핸드폰에 비밀번호를 설정하고, 남편이 절대로 보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집에 있는 동안은 절대로 영식에게 연락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예전과 똑 같이 가정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희 입장에서는 남편이 눈치채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평일 오후에 경희와 영식은 같이 점심식사를 하고, 서울 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서종으로 드라이브를 갔다. 마침 늦가을이라 곳곳에 단풍이 예쁘게 물들어 있었다. 북한강은 정말 아름답다.

서울 주변에서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꼽히는 곳이다. 그래서 강변을 끼고 러브호텔이 많이 들어서있다. 특히 무인텔도 있고, 익명의 사랑을 원하는 커플에게 있어서, 이런 외딴 곳에 떨어져있는 모텔은 비정상적인 사랑을 나누는 장소로 최적합한 곳이다.

부부가 이런 곳에 와서 머물지는 않는다. 여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미혼의 커플들도 많이 있겠지만, 평일 낮에 모텔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대개 불륜의 관계인 경우가 많다. 특히 나이가 든 사람들은 거의 100%다.

영식과 경희, 두 사람은 자주 다니는 모텔에 들어가 진한 사랑을 나누었다. 옆 방에서도 방음이 되었을텐 데, 정사를 나누는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경희는 다소 민망했다. 영식은 그 소리에 더욱 흥분이 되는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뜨거운 정염을 불태우고 난 다음 잠시 허망한 침묵에 들어갔다.

이 때 방에 구내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종업원이었다. 영식의 자동차를 다른 사람이 살찍 부딪혀서 접촉사고를 냈으니, 주차장으로 와보라는 전화였다. 영식은 옷을 대충 입고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때 방문에는 경희의 남편과 다른 남자가 한 명 서있었다. 그리고 모텔 종업원이 옆에서 호실을 가르키고 있었다. 경희 남편은 곧 바로 영식을 붙잡고 방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종업원은 밖에 있고, 다른 남자도 방안으로 들어왔다. 큰소리가 나면서 곧 방안으로 사람들이 들어닥치자, 경희는 옷을 벗은 상태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남편이 온 것을 알고 혼비백산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때 느꼈던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정말 순간적인 상황의 변화에 심장이 떨어져 나갈 뻔 했다.

그들은 방안에서 스마트폰으로 영식과 경희에 대해 사진을 찍어댔다. 그리고 방안에 있는 크리넥스에 묻은 정액까지 증거로 수집했다. 샤워한 수건까지 증거물로 가방에 넣었다.

경희가 누워있는 침대에서 이불을 걷어붙이고 속까지 샅샅이 뒤졌다. 경희는 그야말로 100% 알몸이었다. 가슴과 음부까지 다 노출되었다. 남편과 일행의 이와 같은 행동은 정말 매우 거칠고 야만적인 것이었지만, 그 야만성은 간통이라는 부도덕성 때문에 순간적으로 정당화되는 것처럼 보였고, 아무도 그에 대해 저항하지 못했다.

남편은 경희의 뺨을 몇 차례 때렸다. 그동안 남편은 아내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경희가 딱히 맞을 일을 하지도 않았지만, 배울 만큼 배운 지성인이었고, 원래 성격이 남과 잘 싸우거나 특히 누구를 때리는 버릇은 없었다.

남편은 경희를 보자 무의식적으로 그냥 손이 올라갔다.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그 심리는 무엇일까? 자신이 한때 사랑했고, 몸을 섞었고, 아이까지 낳은 여자다.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여자, 그것도 자신의 아내이자 자녀의 엄마인 여자가 다른 남자와 모텔방에서 누워있는 것을 보고 폭행을 했다. 더군다나 클리넥스를 보니 사정까지 한 것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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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36)

 

영식은 가정적으로 별 불만은 없었다. 그냥 괜찮은 직장에서 중견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두 자녀도 별 탈없이 착실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부인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주부였다.

 

경희는 남편과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남편은 술을 좋아하고, 놀기를 좋아했다. 일만 하고 집에 들어와서는 아무 말도 없이 잠만 자다 나가는 스타일이었다. 주말이면 골프와 낚시를 다니느라고 얼굴 보기도 어려웠다. 경제적인 여유는 있었지만 도대체 사람 냄새가 나지 않았다.

 

문학을 꿈꾸었던 경희는 아름다운 소재로 대화하는 것을 원했지만, 결혼한 이후 남편은 매우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가치관으로 무장하여 돈이 생기지 않는 시와 소설 같은 것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글을 쓰는 사람들을 글쟁이라고 비아냥거리며 세상 물정을 모르는 한심한 족속으로 치부했다.

 

서로의 가치관이 너무 달라 경희는 절망했다. 그 절망의 벼랑끝에서의 몸부림이 오래 가다 보니 많이 지쳤다. 친구들이 부부동반으로 음악회를 가고 시적인 편지를 주고 받는 것을 보면 너무 부러웠다. 사랑이라는 추상성과 낭만성이 삶에 있어서 얼마나 필요하지를 절감하면서도 그 의미를 남편과 나눌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숨이 막혔다.

 

그런데 영식은 경희 남편과는 달랐다. 여자에 대해 매우 자상하고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그리고 경희를 만나도 자신이 모든 돈을 쓰며, 식당이나 찻집도 싸구려가 아닌 고급으로 골랐다. 분위기 있는 곳에서 만났다. 술을 마셔도 가급적 와인 같은 것을 찾았다. 실당도 돼지갈비집이 아닌 스테이크 하우스 같은 곳을 택했다.

 

그러면서 경치 좋은 곳으로 드라이브를 갔고, 뮤지컬이나 연주회 같은 곳을 데리고 다녔다. 그럴 때면 경희는 마치 처녀 시절도 돌아간 것 같았다. 화장도 제대로 하고, 옷도 제대로 골라 입었다. 여자에게 그런 분위기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남편은 이런 영식에 비하면 너무 비문화적이었다. 분명 대학까지 나온 사람인데, 지성인이라고 하기도 곤란했다. 밖에서 친구들과 돌러 다닐 때는 골프도 치고, 고급 술집에도 다닌다.

 

그런데 집에서 가족들과 무엇을 하려면, 꼭 돈을 아끼자고 하고, 쩨쩨하게 논다. 뮤지컬이나 연극, 영화 같은 것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 그래서 경희는 하는 수 없이 여자 친구들과 같이 아주 드물게 문화생활을 했다. 그런 것이 불만으로 쌓여만 갔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희와 영식은 자연스럽게 자주 만나다 보니, 가까워졌고 어느 날 자동차 안에서 영식이 경희의 손을 잡게 된 것을 계기로 마침내 육체관계까지 하게 된 것이다. 자동차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두 사람이 드라이브를 나가 한적한 곳에서 오랜 시간 머물다 보면, 서로 절제하지 못하고 깊은 관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래서 자동차를 둘이 타고 다니는 것이 위험한 것이다.

 

두 사람은 몸을 섞고 서로의 정신적 교감을 위해 노력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전화를 하고 문자메시지를 수십 차례 주고 받았다. 더 이상 통화를 하지 못하고 집에 들어가야 하는 마지막 순간의 아쉬움은 매일 되풀이되면서도 늘상 비슷했다.

 

남녀 사이의 아쉬움은 지치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리움은 몸을 섞으면서 더해갔다. 무엇에 대한 그리움인지도 잘 몰랐다. 육체에 대한 그리움인지, 같이 있던 그 분위기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처절한 극한상황에서의 탈출에 대한 것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모텔을 전전하기도 했고, 한적한 공원에서 과감한 행위를 시도하기도 했다. 만나면 곧 시도되는 퍼포먼스는 매우 동물적인 것이었지만, 그것을 공유하는 남자와 여자는 사회적 체면을 무시하고 실존의 몸부림을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야만과 원시상황, 동물로서의 변환은 모두 자연스럽게 용납되었다.

 

관계를 하면서도 경희는 아직 나이가 있었기 때문에, 피임에는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가는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결혼 후 외도를 하면서 남편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성적 만족도 얻었다. 그래서 오히려 몸과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면서도 가정을 잘 지키고, 남편과 아이들과의 관계도 예전보다 훨씬 더 원만하게 꾸려나갈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결혼하고 다른 남자와 육체관계를 가진다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다. 아무리 남편과의 관계가 불만스러웠다고 해도, 이미 결혼한 몸이고, 아이들이 있었고,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있었기 때문에 외도는 어디까지나 TV의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예외적인 일, 사랑의 일탈,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그 주인공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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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35)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때 마다 처음과 똑 같은 망설임과 힘겨운 시도를 해야 하고, 그 힘든 노력을 되풀이해야 한다면 불편하고 고통스러워서 더 이상 거기에 탐닉하지 않을 것이다.

 

낯선 이성과의 육체관계는 오로지 분위기 탓이다. 배우자와의 그것과 본질은 동일하지만, 유일하게 다른 점은 행위의 장소와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똑 같은 실체를 놓고, 행위자만 그것을 애써 아주 다른 것으로 인식하고 지각하는 것에 불륜의 특징이 있다.

 

내용이 같은 실체를 행위자가 인식하는 방법의 차이에 불과한 것을 본질이 전혀 다른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 점이 제3자의 입장에서는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고, 우스워 보이기도 한다.

 

최근에 문제되고 있는 사건에서 보는 것처럼, 사회 저명인사가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면서 다른 여자와 성관계를 맺고, 그로 인해 수사나 재판까지 받는 것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거의 매장되는 모습을 보면, 제3자의 입장에서는 정말 어리석어 보인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가족이나 친척, 주변의 가까운 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가? 그러한 연애, 성관계로 인해 그 사람이 얻은 행복감, 만족감, 감성적인 성취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러한 외도 또는 불륜, 의미 없는 사랑은 단순히 동물적인 섹스를 했다는 아렴풋한 기억뿐, 더 이상 아무런 흔적이나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게다가 그러한 불륜으로 문제가 생기고 치명적인 상처를 받게 되면, 그 상대에 대한 증오감, 원한이 쌓이고 쌓여 육체관계 자체에 대한 더러움, 형이하학적인 경멸감까지 증폭될 것이다.

 

가끔 언론에 보도되는 재벌들의 사생활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사랑에 대한 열정 때문에 연애를 하였지만, 막상 상대 여자가 혼외 자식이라도 낳게 되면, 두고 두고 골치 아프게 된다.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 없다. 그 많은 재산의 상속과정 때문에 가정의 행복은 산산조각 나고 만다.

 

동물의 Sex와 달리 인간의 Sex란 반드시 종족보존의 번식을 위한 본능적 욕구와는 다르다. 사실 인간은 Sex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 이 문제는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Sex에 탐닉하여 Sex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 Sex는 마약 이상으로 중요하며, 그 느낌의 다양성과 풍부성을 예찬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대개의 불륜에서 Sex에 대한 편견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나중에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그러한 자신의 견해와 인식이 편견이었음을 깨닫고 후회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 환경에 커다란 변화가 있기 전까지는 결코 진정으로 깨닫지 못한다. 깨달았다고 해도 그 다음부터는 습관성이 가져온 구속력 때문에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벗어나려고 해도 상대방의 이해관계와 감정이 있기 때문에 벗어날 수도 없다. 그게 불륜의 시작과 끝이고, 인과관계의 사슬이다.

 

불륜은 처음부터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 그냥 상상에 그쳐야 한다. 다른 이성과의 관계란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존재 전체가 구속되고, 영향을 받게 되는 전인격적인 문제, 몸과 마음 전체에 연관된 환경의 변화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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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34)

 

얼마나 삭막한 세상인가? 남이 아무리 고통을 받아도 별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혼자 타고 다니는 자가용들이 줄로 늘어서 있어도 바빠서 택시를 못잡고 있는 사람에게 태워주겠다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잘못 호의를 베풀려고 했다가 무안을 당하는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사회는 매우 달라졌다. 외롭고 고독을 느끼게끔 되어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사실 말로만 그렇지 옛날과 같은 인정이 넘치는 사회는 아니다.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자본주의가 도입된 지 오래 되었고, 물질만능주의 사회로 변모하다 보니, 사람들은 오직 자기 자신, 그리고 가정만 생각하고 이웃과도 단절하고 친구도 없고, 의리도 없는 상태로 살아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독하고, 외롭고 소외감을 느끼며,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심지어는 이런 극한상황을 견뎌내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영식과 경희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차를 타자 경희는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영식은 마침 대치동쪽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다. 영식이 사실 대치동쪽으로 가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별로 뚜렷한 방향 없이 서울을 방황하고 있던 중이었다.

 

차안에서는 계속해서 좋은 음악이 흘러나왔고, 낯선 이성끼리 좁은 공간에서 특별한 대화 없이 보내야 하는 시간에 적절한 분위기를 잡아 주었다. 사람 사이에 대화가 중단되면 불편하다. 그렇다고 자꾸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은 성격상 하기 힘든 사람들이 있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습관인데, 그래도 가만히 있자니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식은 대낮에 밖에 있는 이유를 회사일 때문이라고 간단히 말했다. 대치동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내릴 때 경희는 고맙다고 했고, 나중에 차라도 대접하겠다고 지나가는 말로 인사를 했다. 그때 영식은 경희에게 명함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두 사람은 헤어졌다. 서로가 다시 만난다는 것은 별로 염두에 두지 않았다. 차를 한번 태워줬다는 이유로 다시 만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두달 쯤 지나서 경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난 번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차를 한잔 사겠다는 취지였다. 영식은 만사 제쳐놓고 경희를 만났다. 남자들은 집에서는 부인에게 따뜻하거나 자상하게 대하지 않아도 밖에서는 외간여자들에게 아주 친절하고 성의를 다 한다.

 

집에서는 생활이니까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밖에서는 짧은 시간이니까 정성을 기울여 그렇게 해야 다른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가정적인 사람은 그렇지 않지만, 가정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이상하게 거꾸로 한다. 물론 안팎으로 잘 하는 능력 있고 매너 있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

 

말이 경희가 산다는 것이었지, 가장 분위기 있는 장소를 선택한 것도, 돈을 낸 것도 모두 영식이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이상한 인연이 되어 만난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경희는 남편이 있었지만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우울해졌던 경희는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주었고, 차안에서 말없이 운전만 하고 갔던 영식의 생각이 떠올라 그냥 전화를 했던 것이다. 

 

경희는 자신이 현재 처해 있는 환경과 별로 재미가 없다는 사정 등등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 처녀 시절의 아름다운 문학소녀로서의 꿈, 그 꿈을 이루지 못한 현실적인 아쉬움 등등을 문학적 표현을 사용해 가며 이야기를 아주 감칠맛 있게 잘 했다. 경희의 말을 듣고 있으면 영식은 마치 어렸을 때 동화를 듣고 있는 느낌이었다.

 

영식과 경희는 가끔 술도 마시고, 강변고수부지에서 바람도 쑀다. 그러다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 그것은 마약처럼 습관이 되었다. Drug과 Sex, Bribery는 일단 시작을 하면 쉽게 빠지고, 벗어나지 못하는 습관성을 가진다.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그것을 멈추게 하는 제동장치를 스스로는 갖지 못한다.

 

몇 번 하다 보면 그것은 바로 자신의 일부가 되어 버린다. 자신과 결합해서 일체가 되기 때문에 본인은 전혀 의식하지 못한채 조건반사적인 무의식적인 행동과 같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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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33)

 

어느 날 영식은 회사 일을 마치고 시간이 많이 남아 차를 운전하고 시내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아스팔트에 세차게 떨어지는 빗방울이 쌓였던 울적함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것 같았다.

 

차 안에는 ABBA의 경쾌한 노래가 귓전을 때리고 있었다. 언제 들어도 좋은 노래다. 가끔 Pop Song을 들으면 어떻게 저렇게 좋은 노래를 만들고, 가수들이 그렇게 매끄럽게 부르는지 신기하게 생각된다. 외국 가수 중에는 정말 탁원한 사람들이 많다. 그 놀라운 가창력에 감탄한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유명 가수들의 노래는 언제나 우리 곁에 다가온다. 영식도 대학을 다닐 때 한 때 팝송에 빠져 영어로 된 가사를 적어서 외우고, 영어로 팝송을 따라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곧 우리 노래로 노래방을 다니면서 마이크를 잡고 못하는 노래를 원없이 했다.

 

주변 친구들은 클래식 기타도 배우고, 취미로 피아노나 색소폰, 드럼 같은 악기를 다루기도 했지만 영식은 그런 취미도 갖지 못했다. 일단 회사에 취직해서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그런 취미생활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금요일 오후 예정했던 회사 일은 성공적으로 마쳤고, 시간이 남아 빈둥빈둥하다 퇴근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금요일 오후 시간, 마침 비까지 내리니 영식은 묘한 분위기에 빠졌다. 그렇다고 집에 일찍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들어가 봐야 별로 재미 없는 부인과 맛없는 저녁식사나 하고, 혼자서 TV나 보고 있을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잠원동에 있는 뉴코아백화점 부근을 지나가는데 어떤 여자가 택시를 잡으려고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손에는 쇼핑을 해서 물건을 많이 들고 있었다. 우산도 없이 택시를 잡으려고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입고 있는 옷도 비를 그대로 맞으면 안될 옷이었다.

 

영식은 기사도정신을 발휘하여 차를 그 여자 곁에 댔다. 사실 기사도 마인드를 가져서 그런 것은 아니고, 그 여자의 얼굴과 몸매가 이쁘고 멋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인물이 별로고, 나이 먹은 사람이었으면, 귀찮아서 굳이 차를 세우고 태워줄 마음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그럴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영식은 창문을 내리고 물었다.

 

“어디까지 가시죠?”

“대치동요.”

“타세요.”

“고맙습니다.”

 

영희도 밤이었으면 그 차를 타지 않았을 것이다. 밤에 자가용을 얻어 탔다가 봉변을 당했다는 뉴스도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남자들이 자가용에 타는 여자를 강간하고 돈을 빼앗고, 심지어는 살인한 다음 시체를 강에 버리는 사건도 있었다.

 

그러니까 모르는 남자의 호의를 받아들여 차를 얻어타는 것은 사람을 잘못 만나면 큰일을 당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고속도로에서 이런 식으로 히치코킹을 하다가 살해되는 사람들이 많다. 거꾸로 차를 얻어탄 사람이 도중에 권총으로 운전자를 살해하고 차까지 빼앗아 달아나는 사건도 많이 있었다.

 

사실 밤에 낯선 차를 무턱대고 탄다는 것은 매우 무모한 일이다. 일단 차에 탄 이상 마음대로 내릴 수 없다. 목적지로 가지 않고 교외로 끌고 가서 강간을 하거나 강도짓을 하는 나쁜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경희는 대낮에 젊잖게 넥타이를 맨 사람이 자가용을 대고 태워주겠다니 크게 걱정할 일은 없었다. 더군다나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택시를 잡으려는 모습을 보고 호의를 베풀겠다고 하는 것이 확연히 보이니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 마음씨가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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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32)

 

문학이나 예술은 고등학교 때 배운 것이 전부다. 그림도 취미가 없고, 음악도 대중가요를 따라 부르는 정도다. 쇼팽의 피아노소나타나 클래식에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걸핏하면 밖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아무 실속도 없는 모임에 가서 술이나 실컷 퍼마시고 취해서 들어오기 일쑤다.

 

어떤 때는 집에서 부인이 애써 저녁 준비를 해놓았는데, 아무 연락도 없이 늦게 들어온다. 심지어는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다면서 밖에서 잠을 자고 새벽에 들어오기도 한다.

 

술을 마시고 집에 오면 가운도 안 입고, 그냥 런닝 팬티 바람으로 돌아다닌다. 어린 자녀들이 보기에 민망할 정도다. 이것을 따지면, 집에서 편하게 있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강변을 한다. 아무리 부부 사이지만, 이렇게 처신을 해서는 남편으로서의 품위도 없고 무게도 없다. 여자는 점점 실망만 커진다.

 

주말에는 거실 쇼파에 비스듬히 누워 야구중계나 바둑대국을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부인이나 자녀들과는 거의 대화가 없다. 집안의 제사 날짜나 물어보는 정도다. 남편이 부모나 형제에 대한 흉이나 보고 직장 상사의 단점이나 부인에게 털어놓고 산다.

 

주식 투자를 조금 했다가 하종가를 치게 되면 세상이 곧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남에게 무척 인색하고 오직 돈밖에 모르는 성격이다. 남자 친구와의 사이에도 별로 의리도 없어 보이고, 매우 이기적인 것처럼 보인다.

 

적십자비를 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 어떤 곳에서 사회봉사활동을 하거나 기부를 하는 것은 결혼한 이래 본 적이 없다. 결혼 전에는 늘상 불쌍한 사람 걱정을 하고, 심지어 아프리카 사는 딱한 사정 때문에 눈물도 글썽이던 사람이 결혼한 다음에는 너무 다른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다.

 

도대체 여자가 볼 때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부인이 혼자 집에서 TV 드라마를 보면 다른 남자들은 전혀 다르다. 의젓하고 품위 있고, 고상하다. 여자를 진정으로 사랑해서 애정 표현을 끊임 없이 한다. 매사에 진지하고, 여자들이 좋아하게끔 인간적이고 순수하게 말을 하고 행동한다.

 

그런데 그런 탤런트들과 비교해 보면, 자신의 남편은 정말 형편 없는 속물 중의 속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도대체 이런 남자와 어떻게 앞으로 남은 긴 인생을 같이 살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든다.

 

그러나 이런 남자들은 결국 자신의 책임 때문에 집에서는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밖에 나가서 다른 여자를 만나면 신바람이 나서 난리를 치는 것이다. 무척 안타까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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