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⑮

하얏트 호텔은 남산 중턱에 있다. 꽤 오래된 호텔이다. 그런 호텔이 남산에 어떻게 들어섰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서울의 개발초기에 정부에서 환경이나 도심 미관 같은 것은 별로 신경쓰지 않고 허가를 내준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지금도 하얏트호텔처럼 전망이 뛰어난 호텔은 드물다. 특히 서울 시내에서는 그렇다.

 

정현은 택시에서 내려 호텔로 들어가서 1층에 있는 양식당으로 갔다. 윤석은 이미 와서 창가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는 서울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파리나 보스톤 같은 도시보다 훨씬 더 운치가 있고 멋이 있었다.

 

“요새 세상이 너무 시끄럽지 않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통 모르겠어. 북핵문제도 그렇고, 경제가 너무 불황이라 걱정이 돼. 그나저나 잘 지내고 있었나?”

“응. 나는 사무실에서 일만 하고 있으니, 사실 정치나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몰라. 워낙 일이 바쁘니까. 내가 하는 일은 수사나 하고 사건처리를 하는 게 전부야.”

 

두 사람은 최근의 정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어떤 도지사가 여비서를 간음하여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가 기각되었고, 불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1심에서 무죄판결이 선고되었다는 것이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윤석은 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궁금한 게 많았다. 정현이 이것 저것을 설명해주었다.

 

“지난 번 전화로 유미를 다시 만나고 있다면서? 유미는 잘 지내고 있는 거야?”

“아니. 만나는 게 아니고, 지금 유미 상황이 안 좋아. 그래서 걱정이야.”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그래? 네가 책임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잖아?”

“책임을 지라고 그러는 건 아냐. 단지 유미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으니까 걱정을 하는 거고. 내가 무엇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모르니까 답답한 거야.”

“처음부터 힘이 들더라도 너는 유미와 결혼했어야 해.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게 꼬이고 어렵게 된 것이지. 아무튼 잘 해줘. 불쌍하잖아? 그리고 유미처럼 착한 사람도 없지.”

 

유미 이야기가 나오자 정현은 갑자기 마음이 울적해졌다. 마침 비도 오고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래서 술을 많이 마셨다. 취기가 올라오자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었다. 커다란 유리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이 마치 공룡의 눈물 같았다. 갑자기 유미가 보고 싶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아무런 까닭도 없이 유미를 만나 무언가 하소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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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⑬

윤석은 중고등학교 다닐 때 수학을 좋아했다. 다른 과목보다 수학을 제일 좋아하고, 제일 잘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공대에 가서 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 갑자기 아버지가 윤석에게 의사가 되라고 강력하게 권유하셨다.

윤석의 작은 아버지가 술을 좋아해서 간이 나빠졌는데 그 때문에 병원에 다니면서 보니까 집안에 의사는 한 사람 정도는 있어야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결국 윤석의 삼촌은 간경화로 인해 50살 조금 넘어 일찍 돌아가셨지만, 삼촌 때문에 영향을 받은 아버지가 윤석의 진로를 바꿔놓은 것이었다.

처음에 윤석은 대학입시에서 안타깝게 떨어졌다. 고등학교 성적으로는 당연히 의대에 합격할 수 있었는데, 입시 보기 보름 전에 윤석은 감기가 들었다. 열심히 마지막 총정리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 겨울에 공부를 하다가 창문을 열어놓고 몇 시간 낮잠을 잔 것이 화근이 되어 감기가 들었다.

즉시 병원에 가고 약을 먹고 제대로 치료를 했으면 괜찮을 것인데, 병원에도 가지 않고 약도 제대로 먹지 않고 버티다가 감기가 도졌다. 가뜩이나 대학입시를 앞두고 긴장을 하고 있던 터라 감기는 쉽게 낫지 않고 더욱 심해졌다. 막상 서울에 올라와서 시험을 볼 때는 귀도 멍하고 머리도 아플 정도였다. 간신히 시험을 끝까지 보았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시험에 떨어진 기분은 그야말로 참담했다. 더군다나 집안이 어려워서 재수를 한다는 것이 힘이 든 상황이었다. 윤석은 부모님께 미안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걱정말라고 하면서 1년간 서울에 가서 학원을 다니라고 했다.

그래서 윤석은 서울로 혼자 올라왔다. 대입학원에 등록을 하고 1년을 다녔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하숙을 하면서 학원을 다녔다. 학원에 가보니 대부분이 서울 아이들이었다. 학원의 분위기는 지방의 고등학교와는 전혀 달랐다.

모두들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고, 학원의 선생님들도 실력이 매우 좋은 것처럼 보였다. 교재도 매우 수준이 놓았다. 윤석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학원에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그 다음 해에 목표로 한 서울에 있는 의과대학에 합격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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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2

 

‘Come September!' 정현은 가을이 오면 늘 가슴이 설레였다. 왜 그러는 것인지는 몰랐다. 다만, 다른 계절과 달리 가을이 되면 마음이 들떠 가만히 있는 것이 힘들 정도였다. 우선 가을이 되면, 바람이 선선해진다. 한 여름의 폭염도 지나가고, 해수역장의 따가운 햇볕도 수그러든다.

 

사과가 익어가고, 대추가 붉어진다. 딱딱하던 감이 부드러워지고, 수줍음을 타듯이 홍조를 띤다. 금요일 저녁시간이었다. 퇴근을 앞두고 정현은 갑자기 센치해졌다. 윤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 하고 있어?”

“응. 지금 막 수술을 끝내고 나왔어. 퇴근하려고 그러는구나.”

“저녁 때 같이 술이나 할까?”

“좋아. 그 술집에서 만나. 일곱시까지 갈게.”

 

윤석은 정현과 같은 고등학교 친구였다. 학교 다닐 때 같은 동네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고 가까운 사이였다. 윤석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의대를 갔고, 의사가 되었다.

 

문과와 이과로 서로 분야는 달랐지만, 대학에 들어가서도 두 사람은 자주 만나고 가깝게 지냈다. 더군다나 처음에 입학시험에 떨어져 두 사람 모두 같은 대입학원에 1년간 다녔다. 그래서 서로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윤석의 아버지는 지방에서 제재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젊었을 때 목수일을 하고, 광산에서도 일도 하고, 공사현장에서 노동일을 하기도 했다. 너무 많은 고생을 했다. 그러다가 어떻게 돈을 모아 친척들과 동업으로 제재소를 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잘 나갔지만, 시간이 가면서 사업이 어려워지고 동업자간에 분쟁이 생겼다.

 

그리고 제재소에서 사무를 보던 젊은 여자직원과 아버지가 바람을 피웠다. 어머니가 펄펄 뛰자 아버지는 여직원과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그 여직원에게 다방을 하나 차려주었다. 이런 저런 일로 끝내 제재소는 문을 닫게 되었고, 아버지는 60살이 다되어서 실업자가 되었다.

 

윤석은 고등학교 1학년까지는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살았다. 그런데 갑자기 가세가 기울어지고 아버지가 돈을 못벌게 되고, 빚을 지게 되자 고생을 하기 시작했다. 윤석의 다른 형제들은 학교도 중단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윤석은 열심히 공부를 해서 결국 의대에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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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⑪

 

8월말이 다 되었는데, 이상기후라 그런지 갑자기 천둥이 치고 폭우가 쏟아졌다. 바깥은 컴컴해졌다. 정현은 창밖을 바라보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방송에서는 물난리가 난 곳이 있다면서 안전관리에 만전을 기하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오늘 17:00 왕숙천 남양주시(진관교) 홍수경보 발령, 홍수피해 발생에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행정안전부와 한강홍수통제소에서 보내온 안전 안내 문자였다. 이번 홍수 때문에 몇 사람의 사상자도 발생했다고 한다. 자연재해는 항상 그렇게 무섭다.

 

퇴근시간이 다 되어 김현식이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미리 전화로 사전 연락을 했던 사람이다. 중요한 사건 제보자이기 때문에 정현으로서는 아주 친절하게 대했다. 김현식은 자신이 다니던 회사 내부의 비리에 관한 제보를 하려고 왔다.

 

“어떤 내용을 알고 있습니까?”

“예, 제가 이 회사의 경리책임자로서 5년 동안 근무를 했습니다. 그래서 회사의 회계상의 문제와 비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관한 일부 자료도 가지고 왔고요. 그런데 이 회사 사장이 너무 나쁘고 악질입니다. 그래서 도저히 가만 둘 수가 없습니다. 이런 악덕기업인은 반드시 우리 사회에서 추방되어야 합니다.”

 

정현은 단 둘이서 장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우선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자료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김현식이 제보하는 내용은, 주로 회사에서의 리베이트 수수로 인한 비자금조성, 업무상 횡령, 탈세, 공무원에 대한 뇌물공여 등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장이 여비서를 성폭행하기도 하고, 어떤 여직원은 아예 첩므로 두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그리고 외국에 많은 돈을 빼돌려놓았다는 주장도 했다.

 

정현은 현식에게 연락처를 남겨 놓고 일단 돌아가 있으라고 했다. 자료 검토를 한 다음 며칠 있다가 다시 만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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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⑩

 

검사에게 직접 찾아와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소장이나 진정서를 내면 되지만, 그렇게 공개적으로 사건화 시키는 것을 꺼리고 검사에게 중요한 범죄정보를 직접 제공하려는 것이다.

 

고소장이나 고발장을 내게 되면 일반적인 사건처리절차에 따라 처리되기 때문에 제보자의 신분이 즉시 노출된다.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고 타인의 비리를 폭로하기 위한 수단으로 직접 수사기관을 찾아가 범죄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익명이나 가명으로 제보를 하기도 한다. 탈세사건의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요새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익명의 제보는 별로 효용성이 없다. 수사기관이나 사정기관에서 특별한 취급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익명의 제보라 해도, 그에 어떠한 구체적인 증거자료가 첨부되어 있고, 객관적인 신벙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수사기관에서는 이를 근거로 별도의 내사활동을 벌인다. 또는 수사관의 범죄첩보보고, 범죄정보보고라는 방식으로 상급자에게 보고서를 제출하고, 그에 따라 내사사건으로 분류하여 내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요새는 특히 탈세의 경우 등에는 신고자에게 포상금이 지급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범죄행위나 불법행위 또는 위법행위를 일부러 찾아다니면서 증거를 확보하여 신고를 하고 포상금을 받는 것을 아예 직업으로 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약간 이상해 보이지만, 나름대로는 법과 정의를 지키는데 일조를 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또는 언론기관에 제보함으로써 기사화한 다음, 언론보도내용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특히 상대가 정치인이나 공무원, 또는 연예인 등 사회저명인사의 경우에는 일단 언론에 보도가 되면, 나중에 무죄를 받는 경우에도 공직에서 물러나야 하고, 사회적으로 심한 타격을 받게 된다.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언론사를 찾아가 제보를 하거나 하소연을 하는 것이다.

어떤 비리나 범죄에 대한 언론사의 보도는 매우 무서운 힘을 가진다. 즉시 여론이 불같이 일어나 범죄인, 가해자에 대한 수사가 착수되고, 처벌이 이루어진다.

 

어떤 여자 검사가 남자 검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한 방송사에 공개적으로 인터뷰를 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그 후 어떤 현직 도지사에 대한 성범죄가 언론 인터뷰로 공개되었다. 이런 언론보도를 계기로 me too 운동이 한참 진행되었다.

 

그 도지사는 사표를 내고 피의자로 조사를 받고 구속영장까지 청구되었다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나중에 1심재판에서 도지사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여성집회에서는 무죄판결을 선고한 재판부까지 비판하면서 ‘왜 명백한 성범죄인데, 편파적으로 재판하여 무죄로 만들었느냐?’는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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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⑨

 

한 여름의 폭염 때문에 무척 고생을 했는데, 폭염이 끝나자마자 곧 무서운 태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태풍 솔릭이 한반도에 들이닥친 것이다. 강풍이 이어지면서 도심지에서는 신호등과 담벼락이 무너지고,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졌다.

 

제주도 공항에서는 항공편 결항이 속출했다. 해안가 파도에 휩쓸려 실종된 사람도 생겼다. 태풍이 무서운지는 알고 있었지만, 역시 자연재해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정현이 근무하는 사무실도 창밖이 어두컴컴했다. 태풍이 심하게 불어치는 것을 보면서 심란할 수밖에 없었다. 퇴근 시간이 되면서 정현은 퇴근을 걱정했다. 이럴 때에는 자동차보다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고 안전할 것 같았다.

 

폭우가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사무실에서 울리는 업무용 전화의 벨소리는 언제나 긴장을 하게 만든다.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휴대전화의 벨소리나 진동소리와는 전혀 다르다.

 

“검사님! 어떤 사람이 검사님을 바꿔 달라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누구지요?”

“어떤 사건에 관한 제보를 하겠다고 하면서, 저에게 말해도 된다고 했더니 굳이 검사님을 바꿔달라고 해요. 꼭 검사님과 직접 통화를 하고 싶다고 하는데요?”

“예. 바꿔주세요.”

계장은 전화를 바꿔주었다.

“여보세요. 박검삽니다.”

“아. 검사님이세요. 저는 검사님께 중요한 제보를 드리려고 합니다. 꼭 만나서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어떤 내용인지 간단히 전화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전화로는 제대로 설명드리기 곤란한 사건입니다. 어떤 회사의 비리에 관한 큰 사건입니다. 꼭 만나 뵙고 싶습니다.”

“그래요? 그럼 제 사무실로 오세요."

 

정현은 중요한 범죄정보를 제보하겠다는 사람에게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원래 검찰청사는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고소인 또는 피고소인, 피의자, 변호사 등 사건관계인만이 검사실에 들어갈 수 있다.

 

검사실에 들어가 검사를 만나기 위해서는 사전에 검찰청으로부터 출석요구통지서를 받거나, 검사실과 미리 연락을 해서 들어오라는 승낙을 받아야 가능하다. 그리고 들어갈 때에도 신분증을 맡겨 놓고, 보안검색을 받아야 한다.

 

혹시 칼이나 도끼 같은 것을 가지고 검사실에 들어가 사건처리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검사나 직원에게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검사실에 손도끼를 들고 들어가서 검사와 직원을 감금하고 협박하다가 검거된 것이다. 검찰청에 들어가서 소지한 농약을 마시고 음독자살한 사례도 있었다. 판사를 상대로 흉기로 상해를 가한 사건도 있었다. 법원이나 검찰청은 사건 때문에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 테러나 공격대상이 될 위험성이 있다. 한국이나 외국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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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⑧

 

정현은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연주회에 왔던 다른 남학생들의 여유 있는 모습 때문에 현재 자신이 처해있는 환경에 대해 더욱 우울해졌다.

 

유미가 정현의 환경에 대해 신경을 썼던 적은 없었다. 유미는 정현의 조용한 성격, 굳은 의지로 공부하고 있는 자세, 순수함 때문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정현이 좋은 대학에 다니고 있다든가, 생활 환경이 어렵다든가,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는가 등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래서 자세한 내용을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굳이 정현이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는 묻지도 않았다.

 

정현은 편지지에 써내려갔다.

"유미씨에게!

오늘 나는 그대에게서 또 다른 향기를 느낄 수 있었어요. 지금 이 시간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피아노 치는 모습을 떠올리고 있어요. 피아노 선율은 하늘로 올라가 별에 닿아 '별의 노래' 가 되어 내게로 돌아왔어요.

무슨 인연일까요? 우연히 만난 그대와 내가 저 하늘의 별까지 날아가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있음은 분명 무슨 까닭이 있을 거라고 믿어요.

내가 더 노력할 게요. 그리고 그대에서 자신 있는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 거예요.

나를 믿고 기다려 줄 수 없을까요?

또 연락할 게요.

안녕!"

 

편지 맨 끝에 무어라고 써야 좋을지 몰랐다. 사랑한다고 쓸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친구라는 명칭도 적당치 않았다. 그냥 이름을 쓰자니 너무 실체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생략했다. 끝부분을 생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가슴 아팠다.

 

‘유미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혼자 상상을 하면서 이 생각 저 생각에 시간은 벌써 새벽 3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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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⑦

 

9월이 다 지나가는 가을 저녁 정현은 유미의 피아노연주회에 참석했다. 연주회는 유미가 다니고 있는 대학교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정현은 친구와 함께 연주회에 갔다. 연주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은 정현은 며칠 동안 마음이 설렜다.

 

우선은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상상했다.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피아노를 칠까? 너무 아름다울 것 같았다. 마침내 기다리던 날이 왔다.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면서도 정현에게는 교수님의 강의도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빨리 시간이 가기만을 학수고대했다.

 

어떤 옷을 입고 갈까도 고민했다. 평소 옷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지만, 이날만은 좀 차려입고 가고 싶었다. 옷도 입어보던 사람이 입는 것이지 아무나 입는다고 맵시가 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애써 골라 입었다. 구두도 깨끗하게 닦고, 머리도 깔끔하게 빗었다. 난생 처음 사보는 장미꽃을 들고 학교로 갔다.

 

학교 캠퍼스에는 가을의 정취가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학교 잔디밭에는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유미를 잠깐 만날 수 있었다. 공연장 뒤편에서 공연준비에 바쁜 유미는 환한 미소로 정현을 맞아주었다. 다소 쑥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현은 당당한 모습으로 말을 건넸다.

 

몇 달간의 공백이 있었지만,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아주 오래된 사이처럼 느껴졌다. 천생연분이란 게 이런 것일까? 정현은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자신은 유미를 만나지 않고 공부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공부가 잘 된 것도 아니었다.

 

늘 머리 속으로는 유미를 생각하면서도 공부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제대로 데이트를 못할 뿐이었다. 그러던 중 유미의 친구를 통해, 유미가 연주회에 참석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혼자 갈 용기는 나지 않았고, 가야할 지 말아야 할지 고심하다가 끝내 친구에게 부탁해서 함께 갔던 것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유미가 무대에 나타났다. 세련된 의상도 그랬지만, 화장을 해서 그런지 유미는 아주 멋있어 보였다. 유미는 두 곡을 쳤다. 정현은 눈을 감고 그 피아노 연주를 들었다. 연주회가 끝나고 정현과 유미는 따로 맥주를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

 

“너무 연주를 잘 했어요. 정말 훌륭해요.”

“고마워요. 이렇게 올 줄 몰랐어요.”

“많이 보고 싶었어요. 공부한다고 참으려고 했지만 잘 안 되더라고요.”

“어려운 공부하고 있어 저도 참고 있었어요.”

 

약간 술에 취한 상태에서 정현과 유미는 나란히 걸었다. 별이 빛나고 있었다. 아까 들었던 유미의 피아노 소리가 별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정현은 행복했다. 다시 만나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유미가 아직도 자기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확인하고 싶었다.

 

“조금만 기다려줘요.”

“...”

 

유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유미도 답답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건 정현과 유미 모두에게 똑 같이 어려운 문제였다. 정현은 집까지 바래다 주고 밤 12시가 다 되어 돌아왔다. 다시 만날 약속을 하지 못했던 건 자신이 없어서였다. 연주회에서 본 유미의 모습에 심리적으로 눌렸던 탓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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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⑥

 

학기말 시험을 앞두고 정현은 편지를 썼다.

“유미 씨에게!

우리가 만난 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어요.

그동안 만나면서 서로를 많이 알게 되었고, 내 마음이 유미씨에게 많이 끌렸던 것이 사실이예요.

그러나 지금 내 입장은 힘든 공부를 해야 하고 정신집중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당분간 만남을 미뤘다가 다시 연락할 게요.

이해해 주기 바래요.”

정현은 편지를 보낸 후 며칠 동안 무척 괴로워했다. 어두운 혼돈 속에서 뒹굴고 있었다. 편지를 보낸 것 자체를 후회했다. 공부에 대한 강박관념과 유미에 대한 애정이 뒤섞여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다고 유미와의 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하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자신도 없었다. 그건 지방에서 올라와 어려운 공부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 당연한 것이었다.

 

정현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다녔다. 학교 부근에 있는 막걸리집에 자주 다녔다. 안주는 파전에다 김치가 고작이었다. 주전자에 담겨져 나오는 막걸리는 한국적 향수를 지니고 있다. 시골에서 쌀로 담그는 막걸리는 민속주로서 그야말로 한국인의 땀과 애환이 섞여 있다. 막걸리집에 가면 구슬픈 국악가락이 흘러나왔다.

 

정현은 막걸리를 마실 때마다 자신이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고 한국인의 피가 뜨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대학 시절에 막걸리를 많이 마셔서 그런지 정현은 나이가 들은 지금에도 양주 보다는 막걸리를 좋아했다. 막걸리를 마실 때 느껴지는 그 특유한 토속적인 맛과 분위기는 양주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정현은 대학생으로서 갈림길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사실 돌이켜 생각하면 그렇게 심각한 문제도 아닌데 당시로서는 아주 심각한, 마치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것 같이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친구들과 상의할 성질도 아니었다. 친구들에게 그런 문제를 꺼내면 쓸데 없는 일을 가지고 고민한다고 가볍게 웃어넘기거나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진지하지 못한 답변이 나올 것이 뻔했다. 정현은 혼자 고민했다. 보름이 지난 다음, 정현은 유미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뜯었다.

“정현씨에게!

지금은 새벽이예요.

정현씨 못지않게 저도 많은 아픔이 있어요.

그러나 정현씨의 앞날을 위해 참을게요.

그리고 기도할게요.

열심히 공부하세요.”

 

편지는 떨리는 손으로 쓰여져 있었다. 글 속에는 정현을 위한 애정과 정현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이 들어 있었다. 정현은 눈시울을 붉혔다. 창밖으로 둥근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달은 여성을 상징한다. 달이 마음껏 차오를 때는 여성이 에너지가 넘친다. 환한 달빛을 보자 유미의 가슴이 정현의 가슴을 푸근하게 감싸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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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⑤

 

유미를 만나면서 정현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책을 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길을 걸어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유미의 얼굴만 떠오르고, 둘이서 함께 했던 분위기에 젖을 뿐이었다.

 

한참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때였다. 도서관에서 밤낮 없이 법서를 붙잡고 씨름을 해야 할 때였다. 이성이 감성을 억눌러야 했던 시기에 우연히 만난 한 여자 때문에 정현은 이성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왜 그렇게 유미가 좋았는지 모른다. 사실 지금도 잘 모르고 있다. 다만, 그때는 유미가 세상의 전부였다. 물질이나 출세에 대한 욕망도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건 너무 막연한 개념이어서 그랬는지 모른다.

 

유미와의 관계는 지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었고 보석처럼 빛나는 영원이었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날씨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밝으면 밝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정현의 감수성은 예민하게 발휘되었다.

 

그렇게 유미와의 만남은 시작되었고,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유미와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기로 했다. 만나면 식사를 하고 차를 마셨다. 같이 걸었다. 매우 단조로운 만남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의미는 달라졌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좁혀졌다.

 

사람 사이의 간격이란 그런 것이다. 비슷한 공간에 살아도 남남인 관계에서는 거리가 아주 멀다. 지구 끝에 있는 사람보다도 더 멀다. 미국에 살고 있어도 가까운 사람과의 거리는 멀다고 할 수 없다.

 

옆집에 사는 사람도 전혀 인사도 없고 왕래를 하지 않으면 그 거리는 이루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멀다. 아마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보다도 더 멀지 모른다.

 

‘멀게 느껴지는 사람!’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부부도 그런 경우가 있다. 특히 미워하거나 정이 없이 사는 부부는 정말 먼 사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비록 군대에 가 있어도 늘 곁에 있다. ‘가깝게 느껴지는 사람!’ 바로 사랑과 애정, 관심과 배려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아주 밀착시킨다.

 

만남이 계속되면서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급속하게 가까워진다. 허물이 없어지고 벽이 무너져 버린다.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기분이 느껴진다. 헤어지면 또 보고 싶다. 머리속은 달콤함과 야릇함으로 가득 채워진다.

 

자신의 존재가 갑자기 부풀어 진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모두 자신의 체내로 들어온다. 정신적 거리가 가까워지면 육체적 거리도 가까워진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지켜야 할 선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정현은 무한한 애정을 느끼면서도 자신을 절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자신이 목표로 한 사법시험 준비에 소홀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마음을 자꾸 닫게 되었다. 유미 역시 이런 정현의 입장을 이해하려다 보니, 마음이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런 상황을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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