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44)
영식과 경희 부부, 그리고 다른 남자 한 명, 모두 네 사람은 모텔에서 나와 부근에 있는 카페로 갔다. 영식과 경희는 죄인이었다. 사실 실정법상으로는 사랑은 더 이상 죄가 아니다. 범죄가 아니고, 처벌조항도 없다. 단지 배우자인 남편에 대한 부정행위로서 위자료만 물어주면 된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 사회는 간통죄가 없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간통한 것을 중대한 범죄, 잘못이라고 인식하고 상대 배우자에게 꼼짝하지 못한다.
상대 배우자는 마치 자신이 중대한 범죄의 피해자인 것처럼 의기양양하다. 뿐만 아니라 현장을 잡았다는 생각에 자신감도 넘쳐나고, 마치 자신이 경찰이나 검사나 된 것처럼 위세를 떤다.
이런 풍경은 오래 전부터 간통죄를 폐지하고 배우자의 간통행위를 단지 민사문제나 가사문제로 보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아직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라는 속담에서 보듯이, 간통한 남자와 여자는 상대 배우자로부터 맞아죽거나 폭행 또는 상해를 당할 현실적인 위험도 있고, 법을 떠나 사회적으로 망신을 당할 소지도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들키면 꼼짝을 못하게 되는 모양이다.
카페에 앉자 조용하게 틀어놓은 팝송이 나왔다. ‘Power of Love'를 독일 가수 Helene Fischer가 부르고 있었다. 영식이 자주 듣던 노래다. 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면서 경희와도 같이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참 좋게 들렸는데, 지금 이 지옥 같은 상황에서 원수인 경희 남편과 만나 들으니 정말 이상하게 들렸다. ‘사랑의 힘’은 이런 경우 긍정의 힘이 아니라, 부정의 힘이었다. 생명의 힘이 아니라, 사망의 힘이었다.
테이블에 앉자 경희 남편은 일단 두 사람에게 간통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각서를 쓰라고 했다. 어떻게 준비했는지, 경희 남편은 A4 용지를 몇 장 가지고 왔다. 그리고 작은 휴대용 인주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먼저 영식에게 불러주는 대로 쓰라고 했다.‘각 서 / 성명 주소 주민번호 연락처 / 본인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유부녀인 OOO을 만나 간통행위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OOO가 남편이 있는 유부녀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OO모텔 OOO호실에서 OOO과 간통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날짜 및 서명 (무인)’
그리고 마찬가지로 경희에게도 같은 취지의 내용대로 각서를 쓰라고 했다. 영식과 경희는 지금까지 살면서 경찰서에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게 무슨 꼴인가? 죄인이 되어 잘못을 인정하고 자백하는 취지의 각서를 써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두 사람은 한 동안 망설였다.
그러자 경희 남편은 씩씩대면서 가만 두지 않겠다고 난리를 쳤다. 카페에서 큰소리로 욕을 하니 무척 창피했다. 사랑이 아니라, 성기를 잘못 사용한 것 때문에 문제가 되었으니, 일단은 형이하학적인 문제로 창피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성관계는 언제나 은밀성을 생명으로 한다. 그게 인간과 동물의 차이다. 동물은 교미를 공개적으로 한다. 특히 어떤 동물은 다른 수컷들을 제치고 공격적으로 특정한 암컷을 상대로 성관계를 한다. 힘이 약한 다른 수컷은 밀려나고, 힘이 센 수컷이 자신이 좋아하는 암컷을 데리고 교미를 하는 것을 보고 있어야 한다. 얼마나 슬픈 현실인가?
가끔 인간도 그렇게 동물적인 부류의 인간이 있다. 가정집에 침입하여 칼로 가족을 위협하고 남편을 묶어놓은 다음,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부인을 강간한다.
정말 사악한 인간이고, 동물만도 못하다. 동물은 암컷의 짝인 수컷을 묶어놓거나 물어서 죽인 다음 교미를 하지는 않는다. 어떤 경우든 일반적으로 남녀간의 성행위를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 남들이 보거나 듣지 못하도록 한 상태에서 진행된다. 그렇지 않고 공개적으로 성관계를 하거나 애정행위를 하면, 형법상 공연음란죄로 처벌된다.
그런데 지금 공개된 카페에서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경희 남편은 자신의 아내가 간통을 했다고 각서를 쓰라고 하면서, 만일 쓰지 않으면 마치 죽일 것처럼 고함을 지르고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이다.
영식은 하는 수 없이 각서를 부르는대로 썼다. 그리고 지장을 찍었다. 경희도 어쩔 수 없이 각서를 썼다. 그런 다음, 경희 남편은 영식에게 5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영식은 일단 알았다고 하면서 그에 대한 지급각서를 또 써주었다.
경희 남편은 경희에게는 별도로 이혼에 응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재산분할도 한 푼 받지 못하고, 몸만 나가는 조건으로 서약서를 쓸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남편이 키우겠다고 했다.
경희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로 쓸 수 없다고 하면서, 그냥 울고만 있었다. 한 시간 쯤 지난 다음, 경희 남편은 일행과 함께 카페를 나갔다. 카페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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