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57)
명훈 엄마가 지현에게 만나자고 약속한 장소는 신라호텔 로비라운지였다. 지현은 전철역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올라가야했다. 밖에서 볼 때는 별거 아니었는데, 호텔 구내로 들어가니 하나 하나가 세련되어 있었다. 고급 호텔에 들어가면 일반인은 놀라게 된다.
명훈 엄마는 늘상 다니는 곳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장소를 정했지만, 지현 입장에서는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려고 굳이 이런 고급스러운 호텔로 잡았는가 하고 생각했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지현은 30분 전에 먼저 가서 앉아 있었다.
명훈 엄마가 올 때까지 커피는 주문하지 않았다. 메뉴판도 고급스러웠다. 커피값도 엄청나게 비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급 옷을 입고, 매우 세련되어 보였다. 약속 시간이 되자, 명훈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들어오면서 지현을 미리 알아보는 것처럼 가볍게 인사를 했다.
지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뱃속의 아이도 따라서 놀라는 것 같았다. 지현은 속으로 말했다. ‘아가야. 너의 할머니가 오셨어. 인사드려야지.’
명훈 엄마는 자리에 앉아 커피를 시키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지현을 살펴보고 있었다.
“명훈이 아이를 가졌다면서요? 그런데 명훈이 아이인 건 확실해요?”
“예. 확실해요. 저는 명훈씨 이외에는 나쁜 짓을 하지 않았어요. 아이를 낳으면 확실히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를 가지면 어떻게 해요? 명훈이는 아직 어리고, 대학교 졸업도 해야하고, 취직도 해야 하는데, 아이를 어떻게 키우려고 그래요?”
“아이는 제가 혼자 키우면 돼요. 걱정 마세요. 그리고 명훈씨가 졸업하고 자리 잡을 때까지 기다릴 게요.”
“그건 어리석은 일이예요. 명훈이는 아가씨와 결혼할 생각이 없어요. 젊었을 때, 한 때 불장난으로 생각하고 잊어버려요. 그렇지 않으면, 아가씨도 불행해지고, 아이는 아빠 없는 사생아가 되는 거예요.”
“어머님. 그렇지 않아요. 저는 명훈씨를 사랑해요. 그리고 지금 제 뱃속에 몀훈씨 아이가 자라고 있어요. 명훈씨는 저를 사랑했어요. 지금도 사랑하고 있고요. 우리는 결혼해야 해요. 결혼하기로 했기 때문에 임신을 했던 거고요. 제발 결혼시켜 주세요. 제가 잘 할게요. 열심히 살고, 명훈씨 뒷바라지 잘 할게요.”
지현이 당돌하게 어머니라고 하자, 명훈 엄마는 순간 흠칫했다. ‘무척 당돌한 아이야. 무섭기도 하고, 큰일 났네.’
“아니 나이도 5살이나 위라면서요. 우리 명훈이는 아직 학생이고 철부지예요. 요새 남자들 결혼은 서른 살은 넘어야 할 수 있잖아요. 직장도 잡고 철이 들어야 결혼하지 지금 어떻게 결혼을 해요.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요?”
“어머님 저는 죽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요. 혼자 아이를 낳아서 키울 자신도 있어요. 경제적인 도움도 필요 없어요. 오직 명훈씨만 있으면 돼요.”
“원래 여자는 자신의 몸을 자신이 잘 관리해야 해요. 아가씨는 어떻게 결혼이야기도 전혀 없이 남의 아이를 가지고 남자가 싫다는데 결혼하자고 하고, 아이를 낳겠다고 해요. 너무 심한 거 아니예요. 어떻게 아가씨가 명훈이와 결혼 상대가 된다고 생각하느냐고요? 빨리 마음 돌려먹고 문제를 해결해요. 더 늦기 전에, 지금 5개월이면 빨리 수술해야 해요. 더 늦으면 위험해요. 보상은 내가 서운하지 않게 해줄게요. 내가 약사로서 잘 아는 병원이 있으니까 날짜를 잡아줘요.”
“어머님. 그런 게 아니예요. 명훈씨는 저와 결혼한다고 맹세했어요. 그 증거도 다 가지고 있어요. 수술은 절대 하지 않아요. 제발 결혼시켜 주세요.”
지현은 울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명훈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10여분쯤 지나도 지현이 계속 고개를 숙이고 훌쩍이고 있자, 명훈 엄마는 조용히 말했다.
“일단 나는 갈테니, 잘 생각해보고 연락줘요. 그리고 여기 병원비를 놓고 갈테니, 돈이 더 필요하면 얘기해요.”
“안 돼요. 어머님. 그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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