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은행나무 아래서

 

 

은행나무 아래 누워 하늘을 본다. 시원한 바람이 산허리를 감싸고 휘몰아 온다. 바람에 모든 걸 맡긴다. 바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누구를 만나 어떤 모습을 보고 어떤 소식을 전하는 걸까?

 

하늘에는 별이 가득 차 있다. 별이 흐르는 아름다운 흔적은 어디에 남게 될까? 셀 수 없이 수많은 별을 보면서 운명과 인연을 생각해 본다. 우주에 하나의 점을 찍은 내 존재는 어떤 시간과 공간을 통해 확인되는가? 그 존재는 타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는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시키는 고리는 무엇인가?

 

내가 태어난 곳은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금동리 384번지다. 깊은 산골이다. 포천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서쪽으로 고개를 세 개나 넘어간다. 지금은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비포장길을 한참이나 달려야 했다. 여름에 장마가 지고 나면 도로가 울퉁불통 패여 힘이 들었다. 그런 길을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증조부님들은 걸어서 포천읍까지 다니셨다.

 

고개고개 넘어 다니던 그 길에 조상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땀을 흘리며 비바람을 맞고, 추위를 견디던 삶의 흔적이 배어 있다. 나는 그 길을 다니면서 옛날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해 본다. 길은 좁았고 가로등도 없었다. 고개를 넘을 때 캄캄해서 무서웠을 것이다. 산짐승도 많았을 것이다.

 

고향에는 마을 입구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몇백년 되었다는 이 나무는 마을 행사 때 커다란 그늘을 제공해 준다. 매년 8월 15일 동네 사람들이 모여 벌초를 한다. 그리고 나무 아래에서 함께 식사를 한다.

 

한 여름에도 나무가 너무 커서 그 아래 있으면 더위를 견딜 만하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내게 은행나무는 왠지 모르게 정겹다. 내가 은행나무에 끌리는 건지, 은행나무가 나를 끌어당기는 건지 모른다. 가을에 은행잎을 보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게 되고, 한 동안 눈을 떼지 못 한다. 운명적으로 은행나무의 영향을 받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음력으로 1953년 6월 13일 저녁 어두워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첫울음을 터뜨렸다. 아주 힘찬 울음이었는지는 모른다. 꽤나 나이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출생에 관해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부모님께도 자세한 내용을 물어보지 않았다. 그냥 해가 지고 어두컴컴해질 때 태어났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호적에는 내 생일이 1953년 8월 13일로 되어 있다. 호적에는 부 김종렬(金,宗㤠)모 유효매(兪孝妹)로 되어 있다. 청산면 금동리는 1983년 2월 15일 신북면 금동리로 행정구역명칭이 변경되었다. 2003년 10월 19일 포천군이 포천시로 바뀌었다.

 

어머니 젖이 부족해서 젖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랐다. 어머님께서는 모두 11명을 낳으셨는데, 위로 3명을 만주 가셔서 생활하는 동안 홍역으로 잃었다. 8남매만 남았다. 딸 5명 아들 3명이다.

 

김알지를 시조로 하는 경주 김씨는 신라 경순왕 후손으로 34대 김인관 태사공을 중시조로 하는 태사공파가 있다. 42대 자수(自粹) 상촌공(桑村公)이 있다. 그후 좌랑공, 판관공, 우후공 축으로 이어진다. 나는 태사공 29세손이다.

 

아버님은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다가 생활이 어려워지자 만주와 평양으로 가서 여러 가지 일을 하셨다. 학교에 다니지 못했지만, 한문까지 깨우쳤다. 어머니는 무학이었다. 숫자도 모르고, 한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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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리 말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학교를 다니고 사회생활을 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되돌아보면 나의 삶은 언제나 미흡하고 후회스럽고 안타까운 면이 너무 많다. 처음부터 어떤 목표를 설정해놓고 살아온 것도 아니다.


망망대해를 보면서 바닷가에서 출발하는 작은 배 같았다. 시선은 앞을 향하고 있었지만, 작은 노를 젓고 바람을 맞으면서 항해를 해야 했다. 중간 중간 많은 세상을 먼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가끔은 작은 섬에 들러 일시 머물기도 했다.


때로는 사막 같은 황량한 곳에서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기도 했다. 하지만 내 삶에는 언제나 태양이 비추었고, 달빛이 은은하게 감싸주었다. 나는 그것이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시간이 갈수록 나를 중심으로 가정이 형성되었고, 일터가 마련되었고, 많은 사람들과 교차하면서 태양계처럼 소규모의 커뮤니티를 형성해왔다. 그러면서 나는 실존의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소통과 공유를 통해 안전한 공존을 유지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살아온 길에는 수많은 인간관계가 들판에 쌓인 눈처럼 깔려있다. 그 사람들을 하나씩 떠올려본다. 그 사람들 때문에 웃고 울었다. 그리고 행복했고, 불행했다.


그들은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채워주었고, 결국은 그것이 내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나 이기적으로 살아왔든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으로 편협한 사고와 행동을 해왔든가? 왜 다른 사람에 대해 배려를 하지 못했든가? 이런 많은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져보고, 나는 아무런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시작했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뇌세포가 줄어들기 전에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일에 대한 느낌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싶었다. 한번쯤 중간 단계에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평가를 할 필요도 느꼈다. 과연 올바르게 살아온 것인가?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잘된 것인가? 내 삶의 여백은 무엇으로 채색되었든가? 앞으로 무엇을 더 해야 할 것인가?


한 개인의 역사는 한 나라의 역사 못지않게 소중하다. 역사는 진실이 담보되어야 한다. 거짓으로 치장하거나 과장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고해성사와 같은 글을 쓰려고 한다.


너무 부끄러워 공개하고 싶지 않은 부분은 아예 올리지 않을 생각이다. 그런 부분은 내놓을 수 없는 개인적인 비밀일 수밖에 없다. 이 글은 오직 나만을 위한 글이다. 그리고 나만이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2018년 5월 1일

김 주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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