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한양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다
아니 뒤떨어진다. 그건 어리석은 일이다.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는 법이다. 중요치 않은 일은 나중에 하면 된다. 지금 생각해도 아주 어리석은 일이었다고 후회되는 일이다.
가을에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병역문제로 신체검사를 받게 되었다. 병무청에서 신체검사 통지서가 온 것이다. 고향인 포천에 가서 신체검사를 받았다. 나보다 서너살 어린 사람들과 함께 신체검사를 받으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신체검사를 받으러 갈 때 아버님과 함께 갔다.
대학교에서 편하게 공부만 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사병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많은 정신적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고시에 붙으면 장교로 가는데, 떨어지면 사병으로 가야 한다.
그렇다고 고시가 쉬워보이지는 않았다. 시력이 고도근시라서 신체검사결과는 방위병소집대상자로 판정이 났다. 고시에 떨어지면 방위병으로 근무해야 할 입장이었다.
대학원 진학을 생각했다. 고시에 떨어지면 곧 바로 징집되기 때문에 고시공부를 더 하기 위해서는 대학원에 적을 두고 2년간 입대를 연기해야 했다. 어느 대학원에 갈 것인가 고민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12월 초 한양대학교 대학원 모집 공고를 보았다.
시험장에 가보니 서울법대 동기생들이 20명 가깝게 와 있었다. 사법시험 보듯이 시험을 치뤘다. 다들 비슷한 입장이었다. 학비는 전액 면제라고 하니 모두 시험에 붙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불합격할까봐 걱정을 했다. 그러나 다행히 5명을 선발하는 시험에 합격했다.
대학교 졸업시험은 12월 중순 끝났다. 나는 서울대학교 종합캠퍼스가 관악산 현재 위치로 옮겨간 다음 처음으로 다닌 72학번이었다. 4학년 1년간 새 캠퍼스에서 다닐 수 있었다. 서울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다니느라 고생도 했지만, 그래도 새 캠퍼스에서 첫 졸업을 하게 되니 기뻤다.
마지막 졸업시험을 치루고 나니 눈이 하얗게 캠퍼스를 덮고 있었다. 대학교 졸업시험이 끝나자, 한양대학원에 합격한 대학 동기 5명은 팀을 짜서 합천 해인사 길상암으로 내려갔다. 절에 가서 본격적인 고시공부를 하기로 한 것이다. 간단한 옷과 책을 싸가지고 길상암으로 갔다. 처음 하는 산사생활은 모든 것이 어렵기만 했다. 12월말이라 휘몰아쳐 오는 산곡의 강풍은 정말 사나웠다.
캄캄한 새벽에 일어나 졸음이 덜 깬 상태에서 하는 식사, 얼음을 깨서 해야 하는 간단한 세수, 화장실이 산 등성이를 돌아서 있어 밤에는 혼자 다녀야하는 불편함 등이 있었다. 달은 차갑게 떠있었다. 가련한 존재들을 불쌍하게 비추고 있었다. 가끔 산짐승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함께 공부하는 모임은 서로를 격려하면서 힘을 실어 주고 있었다. 18회 사법시험 때 나는 1차 시험까지 보아야 했다. 1차 시험은 대구에서 보았다.
시험을 마친 후 우리 5명은 퇴계원에 있는 한양대 기숙사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한양대 법대 학부생들이 있었다. 낯선 분위기에서 이를 악물고 책과 싸웠다. 고등학교 1년 후배인 신영철 군이 함께 있어 서로 위로하며 지냈다.
퇴계원 들판에 서서 밤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우주 속에 나 혼자만이 존재하는 듯 한 착각을 일으켰고, 그때 느꼈던 고독감은 정말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처절했다.
밤에 기름난로에 끓여 먹던 라면은 그렇게 맛이 있을 수 없었다. 하루 2개씩 먹던 날계란도 고소했다.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마음에는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졸업과 동시에 시험을 끝내야겠다는 집념은 잠도 들지 못했고, 추운 줄도 모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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