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대학입학시험을 보다
행당동에서 2시간 가르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 11시가 넘었다. 학원 공부를 복습과 예습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지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새벽에 일어나면 코피가 났다. 몸이 약한 상태였고, 제대로 영양보충이 되지 않아 그랬다. 아무 생각도 할 여유가 없이 그렇게 12월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도대체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살았는지 모른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매우 초조해졌다. 또 시험에 떨어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어디에 원서를 낼 것인가? 만일 1차 시험에 떨어지면 2차는 사립대학이라 갈 형편이 못 되었다. 그래서 2차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시험이란 어떤 경우에도 많은 운이 작용한다. 그래서 100% 완전하게 보장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다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 지망하기로 했다. 당시로서는 최고 어려운 과였다. 100명을 뽑는다. 판사와 검사를 하려고 마음먹은 엘리트들이 지망하는 과다. 원서를 내고나서 형에게 부탁해서 행당동 중학생들 과외를 대신 해달라고 했다. 형은 바쁜 학교생활에도 불구하고 내 과외까지 맡아 해주었다.
나는 이처럼 과외를 해서 집에서는 돈을 전혀 받지 않아도 혼자 서울 하숙비와 교통비, 용돈을 벌어 쓸 수 있었다. 난생 처음 돈을 벌어 본다는 보람도 느꼈다. 힘이 든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아무 친구도 없었다. 학원에 가도 가깝게 이야기할 상대도 없었다.
모두가 남이었고 삭막한 서울생활이었다. 집에는 전화가 없어 연락도 못하고 내려가지도 못했다. 편지도 제대로 못하고 연락두절 상태로 지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었다. 모든 것은 시험 후로 미뤘다.
제대로 공부도 못하고 치룬 시험이었다. 시험 볼 때 전년도처럼 감기가 들까 노심초사했다. 다행이 감기는 들지 않았다. 시험 전날 잠도 제대로 잤다. 결과 발표 때까지는 정말 초조했다. 이번에 또 떨어지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인생 행로가 어떻게 전개될 지 모른다. 나로서는 최선을 다 했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 너무 적은 시간 공부했다. 그래서 불안했다.
발표가 날 때까지 대전에 내려가 있었다. 학생들도 고등학교 시험을 보았기 때문에 과외도 자연히 끝나게 되었다. 대학시험은 너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떨어지면 더 이상 대학교에 갈 여건이 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장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야만 했다. 무엇을 할 지 아무 생각도 의식도 없었다. 막막하기만 했다.
합격하면 과외를 하면서 대학을 졸업할 자신이 있었다. 이런 엄청난 차이를 가진 두 갈래 길에서 힘들게 기다리고 있었다. 인생에 있어서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가진 시험이 또 있을까? 어떤 의미에서는 나중에 치룰 사법시험 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살다 보면 사람은 이런 중요한 계기를 맞게 된다. 물론 자신의 의지로 도전한 것이지만, 그 성패가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결정적이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그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가?
발표를 기다리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이라는 말을 수없이 써보았다. 사람이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려야 한다는 좌우명이었다. 최선을 다하고 운명을 기다려야했다. 아무도 상의할 사람도 없었다. 무척 외로웠다. 내가 시험에 떨어진다고 크게 슬퍼할 사람은 없었다. 주변에서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오로지 내 문제였고, 내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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