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44)

 

공칠이 서울에 혼자 가서 일년 동안 재수생활을 한 것은 정말 혼돈상태였다. 아버지는 지방에서 정육점과 식당을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있었지만, 공칠에게는 매우 인색했다.

 

공칠 아버지의 인생관이 그랬기 때문이다. 자식이 돈가치를 모르고 제멋대로 쓰면 나중에 나이 들어 반드시 망하고 고생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공칠에게 꼭 필요한 돈만 보내주었다.

 

그 흔한 신용카드도 만들어주지 않았다. 싸구려 고시원에서 생활하도록 했고, 용돈은 아주 적게 주었다. 공칠은 아버지의 생활철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버지가 소를 많이 죽이면서 벌고 있는 돈을 아끼지 않고, 흥청망청 쓴다면 소들이 언젠가는 무자비한 복수를 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상하게 공칠은 꿈에 소를 많이 보았다. 꿈에서 소들은 아주 무서운 형상으로 공칠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떤 소들은 스페인 같은 곳에서 싸움터로 나가기 직전에 몸을 풀고 있다가 공칠을 무섭게 째려보았다.

 

어떤 소는 투우장에서 상대 투사가 공칠로 생각하고 반드시 공칠을 뿔로 쳐서 짓밟아버리겠다고 이를 갈고 있었다. 공칠은 강제로 붙잡혀가서 그 소와 투우장에서 싸워야했다.

 

경기장에서 주는 붉은 천은 그 자체로 두려움이었다. 공칠이 받아서 가지고 나가는 붉은 천은 소를 유인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 천의 빨간 색 때문에 오히려 공칠에 벌벌 떨게 되었다.

 

그리고 경기장에 들고 나가자마자 소와 싸우기도 전에 그 천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천속에서 무슨 피인지 가득 들어있었다.

 

공칠은 벌벌 떨면서 소와 마주섰다. 소의 눈은 공칠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심으로 불타고 있었다. 공칠도 하는 수 없었다. 소를 노려보았다. 왜 자신이 소와 싸워야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공칠은 아버지와 스페인여행을 간 것이었다.

 

그것도 꿈속에서 생전 처음 아버지와 해외여행을 간 것인데, 공칠은 스페인에 간다는 아버지의 말에 자신은 절대로 스페인에 가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스페인에 가서 반드시 투우장에 가서 소와 사람이 싸우는 경기를 구경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래야 아버지가 경영하는 정육점과 정육식당이 불처럼 번창하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꿈속에서 스페인을 가게 된 것인데, 단체관광을 떠나는 사람들이 모두 44명이었는데, 그중 아버지와 공칠을 빼고는 나머지 42명은 모두 여자관광객이었다.

 

아버지와 공칠은 아주 새하얀 옷을 입었는데, 여자관광객 42명은 모두 아주 빨간 옷으로 통일해서 입고 있었다. 핸드백과 하이힐까지 모두 붉은 색이었다. 심지어 여자들이 사용하는 손수건도 붉은 천으로 되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칠은 특별한 생각은 없었다. 스페인에 입국심사를 할 때 공칠은 여자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 여자들은 모두 소띠였다.

 

12살 차이, 24살 차이, 36살 차이가 있었지만, 모두 소띠에 해당하는 것을 알았다. 공칠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공칠이 스페인 남자들에게 붙잡혀서 투우장에 투우사로 나가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호텔에서 자고 있었다. 같이 간 42명의 여자들은 경기장에 같이 갔는데, 경기장에 들어서자 모두 얼굴이 소의 형상으로 변했다. 그리고 공칠과 소가 싸움을 시작했을 때, 그 여자들은 모두 소를 응원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소의 언어로 소를 응원하고 있었다. “으으으매에매, 으음, 음매음매매, 음음!!!‘ 그것은 소들이 몇만년전부터 사용해오던 전세계 공통의 소의 언어였다.

 

그 뜻은, ‘저 놈을 죽여라. 저 나쁜 악마를, 저 놈을 무자비하게 죽여라. 저 나쁜 우리의 적을 없애라.’ 이런 의미였다. 공칠은 경기장에서 누군가 확성기로 소의 언어를 한국말로 통역해주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스페인에서는 경기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투우사와 소가 하는 말, 그리고 투우사를 응원하는 팀과 소를 응원하는 팀의 말을 공평하게 국제통역이 통역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관중석에서 공칠을 응원해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모두 소가 이기고 공칠이 패배하여 죽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공칠은 배수짐을 쳤다.

 

이곳에서 약하게 마음 먹으면 자신은 목숨이 끊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간 마음을 강하게 다잡았다. 고등학교 다닐 때 열심히 배우고 익힌 무술을 떠올렸다. 태권도와 권투였다. 공칠은 5분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 손에 쥐고 있던 칼을 집어던졌다.

 

그 칼을 같이 간 여자관광객들이 앉아 있는 자리를 행해 세게 던졌다. 그 칼은 순간 아주 샛빨간 색으로 변한 다음 창공을 몇 바퀴 세게 돌았다.

 

그리고 그 여자관광객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칼 혼자 여자들은 찌르고 베고 있었다. 여자들은 소의 언어로 난리를 치고 있었다. 공칠은 경기를 하다 말고 칼이 죽음의 광란을 벌이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칼은 다시 창공으로 치솟더니 경기장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여자들이 모두 죽었는 줄 알았는데, 칼이 사라지자 그 여자들은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모두 말짱한 상태로 더욱 흥분하여 공칠을 향해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공칠은 칼을 버린 상태에서 들고 있던 붉은 유인천도 땅에 버리고 맨주먹으로 소와 격투를 벌였다. 태권도 발차기와 주먹치기, 이단점프 발차기, 뒤돌려차기로 소를 괴롭혔다.

 

소는 스페인 소라 그런지 대한민국의 태권도 실력 앞에서 맥을 못추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공칠의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태권도복에 매고 있는 검은 띠 앞에서 소는 심한 현기증을 일으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공칠은 오른 주먹으로 소의 심장을 향해 일격을 가했다. 소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군중들이 공칠을 죽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공칠은 무서워서 경기장을 도망쳐 빠져나왔다.

 

묵고 있던 호텔로 뛰어갔다. 호텔 앞에 이르자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는 공칠과 싸우다가 죽은 소를 싼값에 사왔다고 좋아하면서 그 소를 한국으로 가지고 가서 비싸게 팔려고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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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43)

 

정훈의 친척 중에 최공칠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공칠 아버지는 정육점을 경영하면서 비교적 돈을 많이 벌었다. 아버지는 돈을 벌자 정육식당까지 차렸다.

 

그동안 정육점을 하면서 좋은 소고기를 판매해왔는데, 정육점을 계속 하면서 고깃집까지 같이 하니까 손님들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인근 식당은 타격이 컸다. 아버지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공칠이는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가 믿는 불교에서는 살생을 금지하고 있는데, 왜 정육점을 오래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공칠이 들은 바에 의하면 비록 동물이지만 살아있는 동물의 목숨을 끊는 것은 잔인한 행위이고, 그렇기 때문에 가급적 육식을 하지 말고 채식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매일 날선 칼을 들고 소고기를 정육하는 것을 보고 저렇게 자꾸 소의 살을 칼로 도려내고 있으면 언젠가는 그 피의 보복을 받을 것을 두려워했다.

 

사람들 말에 의하면 낚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특히 먹기 위해 낚시하는 것이 아니고, 취미로 고기를 미끼로 낚아서 죽이는 것은 큰 벌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교통사고를 당한다든지, 갑자기 비명횡사한다는 말을 들었다.

 

사냥도 마찬가지다. 취미로 산에 가서 살아있는 동물을 죽이는 것은 반드시 화를 면치 못한다는 믿음이 생겼다. 공칠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건 종교적 교리고, 우리가 먹고 사는 것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야. 정육점은 생업일 뿐이야. 그리고 내가 직접 도축을 하는 건 아니잖니? 그리고 지금까지 소고기 회사나 돼지고기 회사, 닭고기 회사가 얼마나 돈을 많이 벌고 재벌이 되었는지 알아? 어차피 인간은 육식과 채식을 같이 하는 동물이야. 채식만 하는 소나 말과는 달라. 동시에 하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 된 거야.”

 

아버지 설명을 들으니 그럴듯했지만, 공칠은 여전히 아버지가 정육점을 계속 하는 것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공칠이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힘이 센 건달 친구들로부터 일진회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공칠 아버지가 돈이 많았기 때문에 일진회에서는 공칠이 필요했다.

 

하지만 공칠은 경찰관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일진회에 가입하면 공부도 못하고, 모범생이 되는 것을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랬더니 어느 날, 일진회 멤버 6명이 공칠을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서 집단폭행을 했다. 생전 처음으로 심하게 폭행을 당한 공칠이는 그 다음 날부터 이를 악물고 운동을 했다. 우선 태권도와 권투를 배웠다.

 

공칠이 일진회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한 다음 혼자서 공부보다는 무술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을 본 일진회 간부들은 더 이상 공칠을 괴롭히지 않았다. 오히려 공칠에게 앞으로는 괴롭히지 않을테니 공칠도 일진회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지지 말라고 부탁을 했다.

 

공부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원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머리에 한계가 있어 그랬는지 성적은 늘 하위권에 머물고 있었다. 아버지는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으면 대학은 포기하고 아버지가 하는 정육점과 정육식당을 가업으로 이어받으라고 했다.

 

아버지는 공칠에게 집요할 정도로 가업을 물려받으라고 강요했다. 아버지 말에 의하면, 자식이 부모의 직업을 이어받으면 크게 성공은 하지 못하더라도 절대로 망할 염려는 없다는 것이다.

 

농사짓는 아버지의 아들이 도시로 나가지 않고, 생활하는 곳에서 그대로 아버지의 농사를 이어받으면 점진적으로 생활이 나아진다. 아버지가 식당을 하면 아들이 그곳에서 일을 배워 나중에 식당을 이어받으면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버지는 농사 짓는데 아들은 도시로 나가 공부를 해서 성공하려면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아들 역시 아버지가 농사짓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옆에서 보고 조금이라도 배웠지만, 공부에 관해서는 아버지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거나 들은 바가 없어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해야 되기 때문에 물론 성공할 수도 있지만,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는 식당을 하는데, 아들은 전기공사업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나 공칠은 아버지의 생각이 낡고 보수적이라고 생각하고 아버지 말을 듣지 않았다. 특히 정육점은 살생을 한다는 점에서 종교적 사상적 신념과도 배치되기 때문에 굶어죽으면 죽었지 정육점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서 공칠은 서울로 올라가서 대입학원에 등록을 했다. 그러나 1년 동안 재수를 한 다음, 자신은 공부로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이상하게 다른 친구들은 재수하면 실력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데, 공칠은 이상하게 시간이 갈수록 실력이 더 떨어지고 성적이 더 나쁘게 나오는 것이었다.

 

공칠은 그 원인을 자신의 머리가 나쁘다거나 노력을 적게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아버지가 소를 자꾸 죽이고 있기 때문에 소의 영혼이 피의 복수를 하고 있고, 그 대상이 아버지는 칼을 들고 있어 무서워서 아버지에게는 못하고 만만한 공칠, 즉 비무장상태인 자신에게 복수를 무섭게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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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42)

 

명훈 아빠는 너무 억울했다. 고생해서 이제 잘 살 수 있는 때가 되었는데, 놀지도 못하고 악착같이 일만 했는데 이렇게 구속되고 회사가 부도나게 되니까 너무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는 아무하고도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심지어 부인과도 말하기 싫다. 집에서 부인에게 수사받는 상황과 앞으로의 일을 털어놓고 걱정해봤자.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변호사도 돈을 많이 주고 선임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변호사는 남의 일이기 때문에 명훈 아빠처럼 크게 걱정도 하지 않는다. 먼저 전화를 해오는 일도 없다. 꼭 명훈 아빠가 먼저 전화하고 찾아가야 그제서야 비로소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세상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있었다. 외로웠다. 그렇다고 형제들에게 말을 해봤자, 창피하기만 하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남자의 바깥 생활, 사업, 대외관계는 언제나 이렇다.

 

모든 것이 자신의 짐이다. 자기만의 지게에 올려져있는 무거움이다. 점점 공황상태가 되면서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자신감을 잃는다. 우울증세도 나타나고, 대인기피증세도 나타난다.

 

그러다가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 수사대상이 되면 보통 사람들은 공황상태가 된다.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만 생각된다. 최악의 시나리오만 생각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 되면 희망은 없다. 모든 것이 절망이다. 세상이 무섭게 느껴진다.

 

명훈 아빠는 늦은 시간이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밤이 늦어서 사방은 고요하다. 적막이 견딜 수 없었다. TV를 켰다. 그리고 술을 찾았다. 그동안 집에서는 담배를 피지 않았는데, 하는 수 없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TV에서는 어떤 고위공직자가 사업하는 사람으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고 성접대를 받은 혐의로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명훈 아빠는 생각했다. ‘, 저렇게 높은 위치에 있던 공직자도 구속되니까 저렇게 초라해지고 비참해지는구나. 법원에서는 무죄라는데, 검찰에서는 왜 구속하고 재판에 회부했을까? 억울한 사람도 저렇게 오랫동안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무죄로 겨우 석방되는데, 나는 무죄도 아니고 정말 큰일 났다.’

 

갑자기 죽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지금까지 검찰 수사를 받다가 자살한 사람들은 뉴스에서 많이 보고 들었다. 그런데 막상 명훈 아빠는 자신의 문제가 되자, 너무 무서웠다. 자살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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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41)

 

명훈 아빠는 파김치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공황상태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검찰에 의해서 구속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변호사도 특별한 대책을 세워주지 못하고 있다.

 

검찰에서는 상대방과 말을 맞추지 못하도록 일체 연락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명태주식회사 사장도 전혀 협조를 하지 않고 있고, 뇌물 혐의를 받는 시청 공무원에 대한 조사도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검찰의 특별수사를 받을 때 피의자로서 가장 난감한 것이 공범과 말을 맞추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검찰에서는 나중에 공범 상호간에 말을 맞추려고 했다는 사실 여부를 확인한다. 특히 뇌물사건에 있어서는 그렇다.

 

요새는 사람들이 많이 약아져서 뇌물이나 부정한 돈을 주고 받을 때 은행계좌이체를 하지 않는다. 수표도 주지 않는다. 그것은 나중에 명확한 증거가 잡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세상 물정이 어둡거나 뇌물 받아먹는데 심취해 있어 뇌물사건수사나 재판에 관한 신문기사를 볼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여전히 수표를 받거나 서로 만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하여 은행계좌이체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거액의 상품권을 받아 사용하면서 백화점 고객 장부에 사용내역이 기재된 것 때문에 뇌물죄로 재판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검찰에서 특별수사를 통해 공무원이나 뇌물을 준 업자의 장부나 은행계좌, 전화통화내역 등을 샅샅이 뒤지면 어떤 형태로든 증거가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뇌물사건이나 배임수재사건 등의 수사에 있어서 검찰은 당사자 쌍방 간에 증거를 인멸하거나 말을 맞추어 범죄를 부인하는 상황을 예상하고 이를 추적하는 것이다.

 

회사 비자금을 5억원 만들어 사용했다는 부분도 검찰에서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구속이 무서워서 도망갈 수도 없다.

 

도주하면 곧 바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될 위험이 있다. 증거를 인멸한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아주 외국으로 피해 있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으나 그러면 회사는 부도난다.

 

그리고 아직까지 이 사건 수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아무런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밤에 잠도 못자고, 혼자 이 생각 저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가 된다.

 

자신은 구속되어 징역을 몇 년 살고, 회사는 부도나고, 신문에 나면 명예는 추락한다. 앞으로 관청 일은 더 이상 할 수도 없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것이 너무 허망하게 일순간에 무너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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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79)

 

선희는 직장 상사의 딸을 낳은 다음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면서 혼자 살았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아이를 키우는 맛에 다른 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직장 생활도 하지 않고, 아이 아빠가 주는 생활비와 양육비를 가지고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하면서 지냈다. 처음에는 선희 부모님은 선희가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이 먹은 사장 아이를 낳고 말하자면 첩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속이 상해 난리를 쳤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결국 지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희가 알아서 하라고 하고 손을 뗐다.

 

그러나 선희 고등학교 친구들이 나이 먹어도 결혼하지 못하고 혼자 살고 있는 것을 보든가, 아니면 일찍 좋은 남자 만난 신났다고 하면서 결혼식을 화려하게 하고 내노라 하고 잘 살던 여자 아이들이 아이 낳고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이혼하고 나오는 것을 보면서 많은 위안을 받았다.

 

그 중에는 이혼하면서 남편이 돈이 없어서 돈 한푼 받지 못하고 몸만 쫓겨나오기도 했다.

 

어떤 친구는 건달과 결혼해서 독한 성병만 남편에게서 옮고 남편이 바람핀다고 바가지 긁었다가 가정폭력을 당해 코뼈가 부러지고, 고막이 파열되고, 친정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런 친구들을 생각하면 선희는 천만다행이었다. 아이 아빠는 그래도 재력도 있고 사회적 능력도 있었고, 특히 여자에 대한 책임감과 배려심이 있었다. 비록 기혼자라 결혼은 하지 못해도 선희가 아이와 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다음 선희는 이런 식으로 살아봐야 남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남자를 만나기 시작했다.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결혼정보회사를 통해서 남자들을 만났다. 선희는 결혼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다만, 결혼정보회사를 통해야 남자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돈을 내고 상대를 소개받았다.

 

남자들은 여자를 만날 때 너무 많은 것을 따지고 있었다. 우선 외모를 많이 따졌다. 그 다음 사회적 능력을 따졌다.

 

직업이 있는지, 돈을 있는지를 따졌다. 말로는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오직 인간성만 보고, 성격만 본다고 해놓고 막상 실전에 들어가서는 외모와 능력만을 따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희는 여러 남자들을 만나면서 실망하고 남녀간의 진정한 사랑은 없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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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40)

 

명훈 아빠는 무서웠다. 검찰청의 수사관은 매우 날카로왔다. 검사는 옆에서 수사관이 조사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수사관은 질문을 하면서 명훈 아빠가 답변을 하면 그 내용을 컴퓨터로 치면서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명태주식회사 사장은 피의자로부터 하청을 받고, 하청대금 중 2억원을 리베이트로 주었고, 그에 대한 증거로 은행송금자료를 제출하고 있는데 피의자는 왜 이러한 사실을 부인하는가요?”

 

“부인하는 게 아닙니다. 돈을 받은 사실은 있지만, 그것은 거래업체로서 일시 빌려 쓴 것이고, 나중에 2억원을 모두 돌려주었습니다. 돈은 일부 자기앞수표로 주고, 나머지는 5만원권 현금으로 주었습니다. 지금 증거자료를 찾고 있는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닙니다. 저는 성영성 사장이 하청을 주면서 처음부터 2억원의 리베이트를 하청대금에서 떼어서 돌려달라고 해서 통장으로 보내 준 것입니다. 그 후 성 사장이 저에게 반환한 사실은 전혀 없습니다. 성 사장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 사장은 명태 사장이 리베이트 준 사실을 검찰에 신고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 왜 저런 진술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앞으로도 명태주식회사와 거래를 하려고 하고 있는데, 저렇게 하면 누가 하청을 주겠는가? 리베이트야 업계의 당연한 관행이 아닌가?

 

리베이트라 함은 이 사건에서처럼 어떤 회사에 공사를 맡기고 공사대금을 20억원으로 과다책정한다. 그리고 세금계산서를 발급한다.

 

공사를 맡은 업자는 부풀려진 공사대금 20억원 가운데 실제 자기가 받아야 할 금액인 18억원은 진정한 공사대금으로 받아 쓰고, 처음부터 돌려주기로 약정했던 2억원은 이른바 리베이트 명목으로 공사를 맡긴 회사에 현금으로 돌려준다.

 

그리고 이에 대해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지 않는다. 그러면 공사를 맡긴 회사에서는 2억원을 대표이사 개인 통장으로 받아 개인이 사용한다. 이것은 회사 비자금을 만들기 위한 전형적인 수법이며, 법인에 대한 업무상횡령죄가 되고 탈세가 되는 것이다.

 

성 사장은 명태주식회사로부터 2억원을 개인통장으로 받았던 것인데, 리베이트를 받은 객관적인 증거가 드러났기 때문에 다시 돌려주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검사는 대질조사를 하면서 집요하게 파고 들었지만, 성 사장은 끝내 범죄사실을 부인했다. 시청 공무원과의 대질조사도 이루어졌다. 그리고 법인 자금으로 애인 오피스텔을 얻어 준 부분도 심하게 추궁 받았다. 결국 명훈 아빠는 8시간 동안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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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부동산회사에서는 실제로 많은 돈을 벌기도 한다. 지하철역이 생기는 지역의 땅을 집중적으로 매입하여 상당한 차익을 남기고 되파는 것이다.

 

특히 공단이 들어서거나 대규모 택지개발이 되는 곳을 재빨리 정보를 입수해서 그 지역의 부동산을 집중적으로 매입한다.

 

뿐만 아니라 유치권 등의 복잡한 경매물건을 찾아서 다른 사람들이 선뜻 입찰에 참여하지 못하는 부동산을 권리분석하여 싼값에 낙찰을 받아 다시 매도처분을 한다.

 

진근의 아버지 용구용(남, 60세, 가명)과 기획부동산에서 근무하는 윤선희 실장(여, 50세, 가명)은 죽이 맞아서 부동산투자로 돈을 벌기 위해 자주 만나 서울 근교의 땅을 보러다녔다.

 

구용은 식당일 때문에 바빴기 때문에 주로 평일 오전에 일찍 선희와 같이 땅을 보러다녔다. 그러다나 선희가 머리가 좋고 일을 잘하는 것을 보고 선희에게 낮에는 기획부동산에서 일을 하고, 저녁에 퇴근하면 구용의 식당에 와서 지배인으로 일을 하도록 시켰다.

 

선희의 도움으로 구용의 ‘돼지똥’ 식당은 몇 개의 체인점을 내게 되었다. 그 중 한 개는 아예 선희가 가맹점주가 되어 운영을 맡아서 했다. 선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다가 회사 사장의 아들을 한명 낳았다.

 

사장이 선희를 꼬여서 임신을 시킨 것이었다. 선희가 24살이었을 때 사장은 처음에는 술을 먹이고 술에 취한 선희와 관계를 맺었다.

 

선희는 그때까지 처녀로 있다가 비록 술에 취해 강제로 당한 것이었지만, 관계를 가진 다음 이상하게 그 사장에게 정이 들었다.

 

그래서 임신한 것을 알고 아이를 낳으려고 했더니 사장은 절대로 아이를 낳아서는 안 된다고 난리를 쳤다. 선희는 그럴수록 아이에 더욱 애착을 하게 되었고, 끝내 아이를 낳았다.

 

사장은 하는 수 없이 선희에게 아이에 대한 양육비책임을 지기로 하였고, 아이는 선희 호적에만 올리도록 했다.

 

사장은 선희에게 아파트 24평형 한 채를 사주었고, 양육비와 생활비를 지급할 것을 공증을 해주었다. 다만, 나중에 사장에 대한 상속권은 포기하는 것으로 각서를 받아놓았다.

 

그렇게 낳은 딸이 지금 25살이 되었는데, 딸이 열 다섯살 되던 해에 그 사장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다가 병원에 입원해서 한 달만에 한많은 이 세상을 떠났다.

 

알고 보니 사장은 돈을 많이 벌어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후 여러 군데서 사기를 당해 끝내 사업은 부도나고 남겨놓은 재산은 빚밖에 없었다.

 

뇌출혈로 쓰러진 것도 사장이 사기를 당해 속을 썩였고, 매일 술과 담배를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게다가 사장은 젊었을 때 정력에 좋다는 뱀탕을 많이 먹고, 녹용과 사슴피를 많이 먹었기 때문에 정력을 주체할 수 없어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까지 일주일에 다섯 번은 반드시 여자관계를 했어야 했다.

 

이런 저런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선희는 처음에는 사장이 미웠지만, 그래도 죽었다고 하니까 오직 불쌍하고 딱한 생각만 들었고, 여자를 좋아했다는 사실은 전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한 것은 그 사장의 딸은 아버지 피를 닮지 않아서인지, 아주 착하고 성실하고 신앙심 깊게 성장하고 있었다.

 

선희 자신도 그렇게 착한 것도 아니고 성실하지도 않고 신앙심이 깊지도 않고, 선희는 남자를 좋아하는 편인데 어떻게 해서 사장과 선희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나타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돌연변이라는 말이 이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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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92)

 

진근의 아버지는 어느 날 경기도 외곽으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평소 아버지 식당으로 자주 오는 단골손님과 같이 바람을 쐬러 나갔다. 그 여자는 강남에서 기획부동산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주로 지방땅을 대규모로 사들여서 개발계획을 내세워 쪼개 파는 일을 하는 회사였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수립한 대규모 관광단지에 관한 지역개발계획이 발표되면 이를 근거로 해서 그 지역에 있는 야산을 싼값에 사들인다.

 

그 다음에 지역개발계획을 화려하게 포장해서 대대적인 광고를 한다. 물론 신문에 발표된 관광단지추진계획기사를 곁들인다. 기획부동산회사에서는 아르바이트 홍보요원을 몇십명씩 고용하여 전화로 광고를 한다.

 

그러면 여유자금을 가지고 투자를 해서 돈을 벌고 싶은 사람들이 미끼에 걸린다. 평당 30만원씩 100평을 구입하라고 한다. 그러면 나중에 경치 좋고 관광단지 주변에 전원주택을 지을 수 있다고 한다.

 

중간에 프리미엄을 받고 팔아주겠다고도 한다. 사람을 솔깃하게 만든다. 회사사무실에 가보면 인테리어를 아주 고급스럽게 해놓았다. 사무실이 으리으리하다. 전화를 걸었던 여자직원은 실제로는 부동산개발사업에 대해 잘 모르고 전화만 한 것이다.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나타나서 청산유수로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재테크방법을 설명한다. 그곳 부동산회사를 통해 돈을 번 성공사례를 말해주는데, 몇십억원 내지 몇백억원을 번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때문에 실명을 말해줄 수는 없지만, 어떤 국회의원 또는 장관, 법조인, 언론인 들을 암시해서 거론한다. 그 사람들은 이런 기획부동산을 통해서 서울에 빌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회사를 찾아간 사람은 몇 천만원의 돈밖에 여유자금이 없는 형편이니까, 그에 맞는 투자처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꼭 찝어서 말해 준다.

 

그러면 어리석고 투자경험이 없는 어리숙한 손님은 그 자리에서 가보지도 않고 관련 서류도 꼼꼼히 따져보지 않은 상태에서 지방땅을 공유지분 형태로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 3백만원을 계좌이체로 입금시킨다.

 

그리고 계약서 한 장 들고와서 곧 몇 배의 수익을 볼 것처럼 꿈에 부푼다. 하지만 그 땅은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개발은 되지 않고 땅값은 오히려 떨어진다.

 

개발계획은 원래 수립했다고 해도 경제적 여건이 되어야 개발에 착수하는 것이고, 장기적인 국토이용계획은 꼭 실행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매우 장기적인 계획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투자자는 억울하다면서 찾아가서 싸우기도 하고, 사기죄로 고소도 하지만 법이란 무조건 억울한 사람을 도와주는 완전한 장치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 그 사람은 등기부상 공유지분만 가지고 앞으로 100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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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91)


진근(, 32, 가명)은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다녔다. 고등학교 때부터 글쓰는 것을 좋아했다. 영어나 수학은 취미가 없었지만, 책을 참 좋아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일주일에 한권씩은 빼놓지 않고 읽었다.

 

그러니까 1년에 100권은 최소 읽은 것 같았다. 주로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았다. 매일 책만 읽고 있으니까 학교 성적은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진근은 오히려 책은 읽지 않고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해서 성적이 좋은 친구들을 우습게 보았다. 대화를 해보면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시야도 매우 좁았다. 사고도 아주 제한되어 있어 답답했다.

 

게다가 책도 읽지 않고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고 멋이나 부리는 여자 친구들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여자 친구는 사귈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진근의 아버지는 사업수완이 좋아서 돈을 잘 벌었다. 처음에는 돼지갈비집을 작은 규모로 시작했다. 그런데 어떻게 제주도 흙돼지고기를 잘 아는 사람을 통해서 가져다가 양념을 잘 해서 팔았는데 그게 힛트를 쳤다.

 

식당 이름도 특이하게 제주똥이라고 지었다. 제주도에서 인분을 먹고 자란 돼지라는 의미이었는데, 사람들은 간판을 보고, ‘이라고 쓸 것을 간판업자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실수로 이라고 잘못 써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손님들은 자기들끼리 약속 장소를 정할 때, ‘제주통이라고 이심전심으로 불렀다.

 

그런데 심뽀가 나쁘거나, 어렸을 때 똥오줌을 잘 가리지 못했던 사람들은 에 한이 맺혀서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들으라고 제주또~~이라고 큰 소리로 말하면서 액센트를 ’‘에 두었다.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경찰서에서 진근 아버지 간판에 이라고 쓴 것을 두고 문제삼기도 했다.

 

아버지 식당을 관할하는 경찰서에서는 아버지가 군사독재정권에 평화적인 투쟁방법으로 대통령의 가운데 글자인 대신 이라고 의도적으로 쓴 것이 아닌지 특별조사를 했고, 혹시 상호등록을 했는지 여부도 확인까지 했다.

 

아버지 성향이 의심스럽다면서 조상 중에 6.25 전쟁 중에 부역을 한 사실이 있는지도 확인했다.

 

다행이 아버지는 명함에는 제주통이라고 써놓았다. 경찰관은 아버지에게 이름을 바꾸는게 어떠냐고 종용했지만, 아버지는 이미 이름 때문에 경찰에 불려가서 조사까지 받았기 때문에 그 정도면 벌써 아버지 사회적 체면은 땅에 떨어졌고, 품위 있던 명예는 똥이 되었기 때문에 오기가 발동해서 징역을 가면 갔지 상호는 절대 바꿀 수가 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런 시비가 벌어지고 있을 때 대통령이 마침 시해되는 사건이 발생해서 경찰에서도 더 이상 아버지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지역에서 유명해졌다.

 

독재정권에 맞서서 목숨을 걸고 을 지켜냈다는 칭송이 자자했다. 그 바람에 사람들은 아버지 식당에 와서 매상을 올려주려고 했다. 갑자기 장사가 잘 되자, 아버지는 신바람이 났다.

 

모든 것이 돼지똥 때문이라고 믿은 아버지는 돼지가 똥을 누는 사진이나 그림을 수십장 그려 식당 안에 도배를 했다. 사람이 대변을 보는 것과는 달리 돼지가 똥을 넣는 사진이나 그림은 귀엽고 자연스러웠다.

 

그것을 보고 돼지갈비를 먹는 식욕이 떨어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식욕이 넘쳤다고들 했다. 아주 극소수의 변비환자들만 그 사진을 보고 짜증을 내고 들어왔다가 그냥 가기도 했다.

 

반면에 어떤 40년된 만성 변비환자는 아버지 식당을 단골로 다니다가 변비를 완전히 고치는 기적을 맛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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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39)

 

명훈 아빠는 다시 검사실로 출석했다. 변호사를 대동하고 들어갔다. 검사는 다시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고지했다. 제1회 조사받은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서 설명해 준 다음,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명태주식회사 박국경 사장을 들어오게 해서 대질조사를 시작했다.

 

대질조사(對質調査)라 함은 검사가 피의자와 참고인을 동시에 앉혀놓고 조사하는 것을 말한다. 피의자가 진술한 내용을 참고인에게 ‘피의자가 진술한 이 부분의 진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실은 어떠한가?’를 질문하는 것이다. 그러면 참고인이 그에 대해 진술을 한다.

 

‘피의자가 하는 진술은 사실과 다르다. 실제로는 이렇게 된 것이다. 그에 대한 증거는 이런 것이 있다.’라는 식으로 진술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검사는 피의자와 참고인의 진술을 피의자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상에, 각각 진술자를 표시하고 진술내용을 기재한다.

 

대질조사의 목적은 서로의 주장이 다를 때 두 사람을 동시에 조사함으로써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밝혀내기 위한 것이다. 특히 고소사건에서 고소인과 피고소인을 동시에 조사함으로써 피의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목적에서 하는 것이다. 많은 사건에서 고소인과 피고소인은 대질조사를 하면 100% 상반되는 내용의 진술을 한다.

 

그러면서 서로 상대방이 거짓말한다고 비난한다. 먼저 피고소인이 말한다. “고소인은 입만 떼면 거짓말하는 사람이예요. 악질이예요. 검사님 믿지 마세요. 저는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아요.”

 

이에 대해 고소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뭐라고! 검사님. 저 사람은 숨만 쉬면 거짓말이 저절로 나와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요. 얼마나 거짓말만 하고 사기를 치고 다니는지, 정말 무서운 사람이예요. 내가 사기 당한 피해자인데 왜 거짓말을 해요?”

 

이런 식이다. 뇌물사건에서 대질조사하는 것은 공무원은 돈을 절대로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뇌물을 준 업자는 돈을 주었다고 하니까 두 사람을 동시에 조사해서 진실을 밝히려고 하는 것이다. 서로의 주장이 너무 다르면 검사는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의뢰하기도 한다.

 

두 사람을 동시에 심리테스트를 하면 진실반응과 허위반응이 나오기 때문에 수사에 참고자료로 사용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거짓말탐지기 측정은 반드시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야 가능하다. 당사자가 거짓말탐지기 측정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하면 더 이상 강요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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