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74)
그후 공칠은 자연스럽게 효숙과 가까워졌다. 효숙은 창남의 일로 인해 인생관이 완전히 바뀐 것 같았다. 절대로 남자를 믿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유부남인지 여부를 철저하게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다만, 공칠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공칠은 처음에는 효숙이 너무 불쌍하고 너무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인간적인 동정심에서 같이 만나주고 육체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깊은 정은 들지 않았고, 효숙과의 잠자리가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가면서 만나는 것을 기피하게 되었다. 그러자 효숙은 또 한번 커다란 실망을 하고, 좌절감에 빠지는 것같았다.
효숙은 창남과의 문제 때문에 결국 다니고 있던 회사도 사표를 내고 놀고 있었다. 공칠을 만나서 공칠이 하는 일을 보더니 그 일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공칠은 효숙에게 정식 직원은 아니고, 공칠이 맡아서 하는 일을 프리랜서로 도와주면 약간의 보수를 줄테니 와서 일을 배우라고 권유했다. 효숙도 좋다고 하고, 두 사람은 더 이상의 남녀관계는 쿨하게 끝을 내고, 공칠을 비공식적으로 도와주는 일을 시작했다.
어느 날 민첩은 공칠에게 중요한 일을 맡겼다. 의뢰인이 해외에서 거액을 투자받아 제주도에 호텔을 짓고 클럽도 운영하고 골프장을 인수한다는 것이었다.
그 의뢰인은 제주도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민첩에게 제주도에서 여러 사람의 뒷조사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민첩은 이 임무의 팀장으로 공칠을 시켰다.
워낙 중요한 프로젝트라 민첩의 입장에서도 그동안 일처리를 매우 매끄럽게 잘 하고, 책임감 있어 보이는 공칠에게 일을 맡긴 것이었다.
공칠은 신이 났다. 그래서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일단 효숙만 데리고 제주도로 갔다. 두 사람은 경비를 절약하는 차원에서 모텔룸을 하나 얻어 같은 방에서 생활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효숙이 같은 방에서 잠을 자도 침대를 따로 쓰고, 절대로 몸을 건드리지 못하게했다. 그러면서 선언을 했다. ‘앞으로는 우리는 어디까지나 일을 하는 파트너지, 남녀 관계는 끝난 거예요.’
공칠은 처음에는 효숙의 이 말을 장난으로 들었다. 하지만 효숙의 의지는 매우 강했고, 태도는 아주 단호했다.
만일 섣불리 접근을 했다가는 잠잘 때 성기를 절단해버리거나, 혀를 물어뜯어버리거나, 정 안 되면 경찰에 성폭력사범으로 신고를 할 것 같았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공칠은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을 가지고 효숙이 저절로 풀어지기를 바라고 같이 할 일만 열심히 하기로 했다.
일주일간 열심히 일을 하고, 주말에 피로를 풀기 위해 공칠은 효숙을 데리고 드라이브를 갔다. 처음 간 곳은 에코랜드였다. 에코랜드에서 순환열차를 탔다. 영국에서 운행하던 기차의 모형을 따서 비슷하게 만든 것이었다. 두 사람은 자연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그 다음, 건강과 성 박물관을 구경했다. 홍보물을 보니 세계 최대 규모의 성박물관이라고 되어 있었고, 유일한 성건강/ 성교육/ 성문화의 메카라고 되어 있었다.
공칠의 눈에 가장 띄는 것은 ‘정조대’였다. 정조대(Chastity belt, 貞操帶)는 속옷처럼 입을 수 있는 잠금장치로, 착용자의 성교나 자위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정조대는 강간이나 성적 유혹 행위를 막기 위한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정조대는 십자군 기간 동안 기사들이 아내들을 성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정조대를 채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정조대는 쇠로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설명에 정조대를 오래 차고 있으면 청결에 문제가 있어 곤란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공칠은 정조대의 실물을 보면서 과거에 인간은 얼마나 무지했고 야만스러웠는지 알 수 있었다. 여성의 인권이 얼마나 남성에 의해 짓밟혔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운명 (76) (0) | 2019.12.22 |
---|---|
작은 운명 (75) (0) | 2019.12.20 |
작은 운명 (73) (0) | 2019.12.19 |
작은 운명 (72) (0) | 2019.12.19 |
작은 운명 (71) (0) | 2019.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