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38)

 

병원에서 나와 커피숍으로 갔다. 명훈은 다정스러운 눈빛으로 은영에게 물었다.

“은영아! 지금 나 사랑하는 거야?”

“응, 오빠. 많이 사랑해. 오빠만 사랑하고 있어해. 그러니까 나 버리지 마! 정말 잘 할게. 아이도 잘 자라고 있어. 오빠 닮은 아이 낳아 똑똑하게 잘 키울거야.”

“그런데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듣고, 나를 괴롭히지 말아야 할 거 아냐? 나는 지금 집에서 쫓겨나게 생겼어. 엄마 아빠는 매일 이 문제로 싸우고, 나보고 나가서 죽으라고 해. 그러니까 일단 아이를 떼고, 우리 차분하게 사랑하면 안 될까? 내가 평생 책임질게.”

“오빠. 그런데 오빠를 어떻게 믿어. 그동안 나를 못본 척하고 버렸었잖아? 그럼 아이를 수술할 테니 혼인신고만 해줘. 그러면 내가 믿을 수 있잖아? 제발 부탁이야. 나도 오빠를 괴롭히고 싶지 않아.”

“아니, 지금 내가 학생인데, 어떻게 혼인신고를 해. 그게 무엇 때문에 급해. 사랑은 그냥 믿는 거지. 사람을 못 믿고 의심하면 그건 사랑이 아니야. 어떤 책에서 읽었어. 나는 그 말을 믿어. 원치 않는 아이를 몰래 임신하고 일방적으로 낳겠다고 하는 건 나쁜 거야? 그러니까 우리 수술하고 앞으로 서로 믿고 잘 지내자. 부탁이야.”

“그럼 수술하면, 나를 사랑하고 버리지 않는다는 약속을 내가 믿게끔 해줄 방법을 찾아봐. 나도 생각해 볼게.”

“응 알았어. 좋은 방법을 생각해 볼게.”

“그런데, 그 아이 정말 내 아이는 맞는 거야? 나는 몇 번 안 했잖아? 우리 엄마 얘기로는 자기가 다른 남자와 동거도 하고 낙태수술도 여러 번 했다고 그러던데. 내 애기가 절대 아니라고 그랬어.”

“그건 나를 떼어버리려고 거짓말하는 거야. 믿지 마. 나는 동거도 안했고, 낙태도 안했어. 오빠가 첫사랑이고, 처음 관계를 한 거야. 아이도 처음 생긴 거고. 성당에 다니기 때문에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아. 병원에 가서 같이 확인시켜 줄게. 내가 처녀로서 오빠와 첫 관계를 했다는 사실과 이번이 첫 번째 임신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줄 수 있어.”

“정말 내가 첫 번째 남자고 내 아이가 맞다면 내가 책임질 거야. 그렇지 않다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명훈은 갑자기 은영의 말이 사실로 여겨졌고,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은영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생각이 문득 이상한 정을 느끼게 했다.

“오빠 내 말을 믿어. 그리고 모든 여건을 초월해서 우리 사랑하면서 잘 살면 좋겠어. 내가 잘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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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37)

 

명훈 엄마는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다. 이런 저런 궁리 끝에 우선 은영의 문제는 시간도 끌고, 명훈으로 하여금 은영을 만나도록 해서 낙태를 시킬 작전을 짰다. 그래서 명훈에게 이야기해서 일단 은영을 만나서 당분간 잘 지내면서 시간을 가지고 은영의 마음이 돌아오면 은영을 설득시켜 수술을 하도록 할 생각이었다.

 

명훈은 지금 강간사건도 해결이 되지 않고 있는 비상상황이라 은영의 문제데 대해서는 엄마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엄마가 은영과 데이트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아끼지 말고 써도 좋다는 말에 더욱 용기를 얻었다. 명훈은 은영에게 연락을 해서 만나자고 했다.

 

“은영아! 그동안 미안했어. 생각해보니까 내 애를 가졌는데, 내가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건 너무 잘못이야. 정말 미안해. 아이도 가졌으니까 옷 한 벌 사줄게. 만나자.”

 

은영은 놀랐다. 갑자기 명훈이 이런 태도로 나오니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전혀 그럴 가능성이 없던 명훈이 어떻게 이렇게 따뜻하게 나온다는 말인가? 그것은 분명이 아이 때문이라고 믿었다. 아무리 무뚝뚝하고,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고 해도, 시간이 가면 자신의 아이를 품고 있는 여자에 대해 남자는 다시 돌아오는 것이리라. ‘그러면 그렇지, 오빠가 겉으로만 그런 태도를 보인 거지, 나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는 거야.’ 은영은 울면서 대답했다.

“오빠. 정말. 고마워. 그동안 오빠 마음도 모르고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 줘. 앞으로는 절대 안 그럴게.”

 

명훈은 은영을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옷을 사주고 함께 식사를 했다. 그리고 술을 많이 마셨다. 명훈이 취해서 비틀거리고 쓰러지려고 하자. 은영은 하는 수 없이 원룸으로 부축을 해서 갔다. 오랜만에 온 원룸에는 은영의 자취는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다른 여자의 옷이 몇 벌 있었다. 여자 속옷도 보였다. 순간 소름이 끼쳤지만, 은영은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것은 내가 옆에서 응대를 해주지 못해서 그랬던 거야. 아무래도 젊은 남잔데, 여자 없이 지낼 수는 없는 거 아냐? 내가 아이를 낳은 다음에는 잘 해주면 되는 거야.’

  

은영은 다시 명훈의 원룸까지 들어가게 된 것을 무한 행복해했다. 명훈을 침대에 눕히고, 정성을 다해 다리를 맛사지해주었다. 명훈의 다리는 건장했다. 이처럼 건장한 다리가 지금 내 속에 있는 아이의 아빠 다리라는 사실에 감격했다. ‘분명 아이도 아주 건강하게 태어날 거야!’

 

명훈은 술에 취해 곧 잠이 들었다. 심하게 코를 골았다. 술냄새는 악취에 가까웠다. 은영도 같은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새벽에 은영이 눈을 떠보니 명훈이 자신의 위에 올라가서 행위를 하려고 했다. 은영은 필사적으로 방어했다. 아이 때문이었다. 큰일 난다고 믿었다. 명훈이 계속 누르자, 은영은 명훈의 팔을 물어뜯었다.

 

명훈은 얼굴을 때리고 발로 배를 찼다. 서로가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그런 다음 두 사람은 정신을 차리고 아침에 병원을 여는 시간이 되자, 같이 산부인과로 갔다. 명훈의 상처는 문제가 아니었다. 혹시 아이가 유산되었을까 걱정이었다.

 

은영은 계속 울었다. ‘만일 아이가 잘못되었으면, 오빠는 내 손에 죽을 거야.’라고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다짐했다. 명훈도 걱정이 많이 되었다. 절대로 아이를 유산시키려고 배를 찬 것은 아니었다. 그냥 화가 나서 때리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다. 의사는 현재 상태로서는 유산이 아니라고 하면서, 며칠 관찰해 보자고 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에게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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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74)

 

영순은 너무 아파서 일단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았다. 이렇게 심하게 맞아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공철에게 맞은 것도 맞은 것이지만, 그보다 더 분한 것은 명성에게 당한 것이었다.

 

영순은 억울하고 울화통이 터져 죽고 싶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죽으면 자신만 억울한 일이었다. 그리고 아무 영문도 모르는 자식에게 못할 짓이었다.

 

영순은 친한 친구 경화를 만나 상의했다. 경화의 남편은 전직 경찰관이었다. 경화 남편은 퇴직한 후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경화는 경찰관과 오래 살았기 때문에 법에 대해서도 웬만한 것은 변호사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또한 남편 동료 경찰관들이 아직도 현직에 있어 필요하면 그들의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일단 공철에게 맞은 부분에 대해서는 진단서를 끊어놓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명성이 잘 때 그짓을 한 것에 대해서는 내가 먼저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볼 게.”

 

경화는 먼저 명성을 만났다.

“아니. 어떻게 친구 부인을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그건 영순씨가 오해하는 거예요. 그날 영순씨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제가 부축해서 모텔방에 데려다주었고, 제가 나오려고 하니까 술에 취해 저를 남편으로 착각했는지, 끌어당기면서 자신의 옷을 다 벗고 껴안으려고 해서 제가 뿌리치고 나왔던 거예요. 영순씨는 모텔에 가기 전부터 심하게 토를 했고, 모텔방에 들어가자마자 곧 토를 했어요. 그래서 심하게 악취를 풍겼는데, 저는 그 냄새가 역겨워서 견딜 수 없어 바로 나오려고 했던 거예요. 그런데 영순씨가 나를 남편으로 잘못 알고 자꾸 붙잡고 매달려서 불쌍해 보였지만, 악취 때문에 오래 있을 수 없었어요. 그리고 영순씨는 제가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친구의 부인인데, 제가 그런 짓을 할 입장도 아니예요. 영순씨가 왜 그런 착각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네요.”

 

“아니. 영순이는 명성씨가 안에 한 내용물까지 채취를 해놓았어요. 그것을 DNA검사하면 곧 드러날텐데 왜 거짓말을 해요? 잘못했으면 사과하고 용서를 빌면 되는 것 아니예요?”

 

“제가 했으면 했다고 하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런데 정말 하지 않았어요. 내가 무엇 때문에 친구 부인일뿐더러, 더군다나 나이 든 여자, 그것도 술에 취해 토하고 있는 여자와 할 이유가 있어요? 그건 나를 잘못 본 거예요. 나는 솔직히 말해서 지금 젊은 애인이 있어요. 나보다 스무살이나 어리고 예쁜 애인이 있어요. 그 애인하고 자주 하는데, 왜 늙은 여자하고 하겠어요. 영순씨가 만일 돈을 뜯어낼 목적으로 이렇게 엉터리 주장을 하면 나는 하는 수 없어요. 변호사를 선임해서 무고죄로 고소를 하겠어요. 가서 분명히 말하세요. 이렇게 생사람 잡으면 나도 가만있지 않겠다고.”

 

명성은 이렇게 말한 다음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갔다. 경화는 이상했다. 영순이 거짓말 할 리도 없고, 명성이 저렇게 완강하게 부인하는 것을 보면 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명성 생긴 모습이 젊은 애인 두고 놀아날 사람이지, 나이 든 여자를 넘볼 남자같이 보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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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35)

 

“술에 취해 모텔에 어떻게 갔는지도 모른대요.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고요. 실제 관계도 안했대요. 그런데 여자들이 나중에 강압적으로 요구해서 사실확인서를 써주고 왔대요. 사실확인서는 부르는대로 썼는데 지금 그 여자들이 가지고 가서 우리 아이는 어떤 내용으로 썼는지 잘 기억도 못해요.”

 

“억울하지만, 일단 시인하는 각서를 써주었고, 모텔에서 성교를 시도했다면 성폭력범으로 처벌될 가능성이 높아요. 술 취했다는 변명도 별로 참작이 안 돼요. 강제로 침대에 눕히고 팬티를 내린 다음, 삽입을 시도했다면 강간죄의 기수(旣遂)가 될 가능성이 높아요. 강간죄에 있어서는 삽입이 되어야 기수가 되는 것인데, 여자가 이미 들어왔다고 우기면 무조건 인정하고 말아요. 그것이 안 들어갔다고 CCTV를 찍어놓지는 않았을 거 아니예요? 설사 삽입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인정되어도, 그때는 기수가 아니고 미수범(未遂犯)으로 인정되지만, 우리 형법상 강간죄는 기수범이나 미수범이나 거의 똑 같은 처벌을 하고 있어요.”

 

“정말 이상하네요. 들어가지도 않고 닿기만 해도 강간으로 본다는 게. 그리고 여자에게 무슨 피해가 있는 거예요? 상처가 나지도 않고, 그냥 물로 씻으면 끝나는 건데. 그 여자는 45살이나 먹었고, 애까지 낳았는데, 어린 남자 것이 거기 좀 닿았다고 해서 무슨 피해가 있고, 그걸 처벌할 가치가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네요.”

 

“아무튼 빨리 합의하세요. 합의하지 않으면 징역을 가든 집행유예를 받든 성폭력범죄 전과자가 되고, 보호관찰도 받고 성폭력범죄인으로 신상이 공개될 수도 있어요. 인생 망치게 되요. 취직도 못하고요.”

 

“정말 억울해요. 왜 세상이 이렇게 악하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요. 주부가 미쳤다고 클럽에 가서 술이나 마시고 남자와 모텔을 가요. 옛날 같으면 남편이 알까봐 지가 먼저 쉬쉬할 텐데. 세상이 말세예요.”

 

“세상 사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법은 법이예요? 피해자가 고소하면 문제가 되는 거지요? 여자가 신고 안하고 넘어가면 끝나는 거예요. 일단 그 여자를 만나보세요.”

 

“얼마면 합의가 될까요?”

“글쎄요. 민사와 달라서 형사사건에 대한 합의금은 사실 일정한 기준이 없어요. 그 여자가 어디 다쳤다고 진단서까지 끊으면 강간상해죄, 강간치상죄가 되어 더 큰일 나요. 진단서가 없으면 일단 천만원 선에서 이야기해보세요.”

 

“예? 천만원이나 되요.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뭘 피해 봤다고 그렇게 어마어마한 돈을 줘야 해요. 성매매는 한번에 15만원 내지 20만원이라고 하던데, 텐프로 고급 룸살롱 아가씨도 50만원이면 된다던데, 45살 먹어 늙어빠진 가정주부를 하지도 못하고 천만원이나 물어줘야 해요. 정말 법이 너무한 거 아네요?”

“글쎄요. 아무튼 현실에서 강간사건의 합의금은 그런 거예요.”

 

변호사는 평소 명훈 엄마를 잘 알고 지내고 있지만, 이번에 명훈 엄마가 말하는 것을 보니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는 것 같았다. ‘지금 성범죄가 얼마나 무겁게 처벌되는지 전혀 모르고 있어 답답하다. 자기 아들만 생각하고, 피해를 당한 여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람이야. 빨리 합의하고 신고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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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73)

 

영순이 공철로부터 맞아서 고막이 파열된 지 한달 쯤 지났다. 그동안 공철로부터 당한 정신적 고통에서 겨우 벗어날 정도가 되었다. 영순은 남편의 친구를 만나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남편이 죽기 전부터 그 친구와 남편이 금전거래를 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죽은 다음에도 영순이 남편 대신 돈거래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영순으로부터 돈을 빌려다가 사업을 해서 이자를 꼬박꼬박 주고 있었다.

 

가끔 영순을 만나 혼자 되어 얼마나 외롭고 힘이 드냐면서 위로를 해주고 술도 사주었다. 이날도 영순을 만나 술을 같이 마시며 영순의 남편 살아있을 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영순은 마음이 무척 울적해졌다.

 

남편 친구는 영순이 혼자 된 상태에서 다른 남자는 만나지 않고 아이들과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면서 영순의 남편이 여자를 좋아해서 그렇지 그것만 빼면 그렇게 의리있고, 남자답고 사업 열심히 한 사람 없다는 칭찬을 계속하자 갑자기 눈물이 났다.

 

영순은 공철이 갑자기 더 미워졌다. 영순의 모든 자존심을 짓밟은 것이었다. 영순은 술에 취하고 싶었다. 소주와 맥주를 섞어서 남편 친구와 많이 마셨다. 영순이 술에서 깨어서 눈을 떠보니 술집 부근에 있는 모텔방이었다. 알몸으로 침대 위에 있었다.

 

남편 친구는 방에 없었다. 영순이 술에 취해 의식이 없었을 때, 남편 친구 명성은 영순을 모텔로 부축해가서 그짓을 한 것이었다.

 

영순은 기가 막혔다. 남편이 없다고 친구 조차도 자신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하는가 싶었다. 도저히 명성을 용서할 수 없었다.

 

침대에 앉아서 혼자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명성이 그짓을 했다는 증거를 어떻게 수집해야 하는가? 명성이 사용했을 휴지나 수건을 찾아보니 아무 것도 없었다.

 

자신의 몸속에 명성의 것이 들어있을 것 같아서 화장지로 닦아서 핸드백에 담았다. 하지만 침대 위에 있는 명성의 머리카락이나 체모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명성은 영순을 모텔방에 데리고 와서 곧 바로 그짓을 하고 샤워도 하지 않고 나간 것 같았다. 타월도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남성의 피임기구를 사용해서 그짓을 하고 곧 바로 밖으로 나간 것이었다.

 

영순은 수사관이 아니기 때문에 치밀하게 준강간행위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지 못했던 것이다. 영순은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남편 생각도 나고, 공철 생각도 나고, 명성에 대한 분노도 치밀었다. 한참 동안 울었다. 화장도 제대로 못하고 모텔을 나왔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공철이 혼자 걸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영순은 고개를 숙이고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

 

그런데 공철은 멀리서 영순이 모텔에서 나오는 것을 본 모양이었다. 공철은 모텔에서 영순이 나오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핸드폰으로 영순을 찍었다. 그리고 영순에게 다가왔다. 갑자기 영순의 배를 주먹으로 세게 쳤다. 그리고 발로 몇 차례 찼다. 그리고 영순의 얼굴에 침을 뱉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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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72)

 

영순은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다. 요새 인터넷은 매우 편리한 도구이지만, 그 사회적 폐해도 이루 말할 수 없다. 모든 범죄수법이 상세하게 공개되어 모방범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영순은 남자 친구가 일방적으로 연인관계를 끊고 다른 여자를 만나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때 그 남자를 어떻게 복수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찾아보았다.

 

이런 사건이 눈에 띄었다. 22살 먹은 남자가 10살 연상의 여자와 연애를 했다. 두 사람이 연애를 하고 지내는 동안 여자에게 새로운 남자 친구가 생겼다. 여자가 새로운 남자 친구와 통화를 하고 있는 사실이 남자에게 알려졌고, 그 때문에 두 사람은 자주 말다툼을 벌였다.

 

어느 날 두 사람은 모텔방에서 싸움을 하다가 순간적으로 격분한 남자는 여자의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 그리고 혼자 모텔방에서 고민을 하다가 부근에 있는 지구대를 찾아가 자신의 범행을 자수했다.

 

남자는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임을 주장하였으나 법원에서는 징역 12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영순은 이 사건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잘못하면 저런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질 수 있는구나!’

 

모텔방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싸움을 하다가 남자가 흥분하여 이성을 잃으면 여자는 힘으로 당할 재간이 없다. 갑자기 목을 조르면 여자는 남자의 팔을 풀지 못하고 몇분 있으면 질식사하게 된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 남자와 싸움을 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 일단 피해를 당하면 그 다음 그 남자를 징역 보내고 사형시켜밨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자가 이성을 잃고 폭력을 가하면 여자는 일단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잘못했다고 빌어야 한다. 그리고 남자가 하자는대로 모든 것을 해준 다음 그 위험한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 그 다음 그 남자를 곧 바로 형사고소해서 처벌받도록 하고, 일체 만나지 말아야 한다.

 

죽은 다음 살인범에 대한 수사나 재판은 완전히 일방적인 게임이 된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자는 모든 원인과 범죄의 동기, 살해방법 등에 관해 일방적으로 주장하며,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정당방위나 과잉방위,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 등의 주장을 한다.

 

영순은 계속해서 사건을 검색해나갔다. 거액의 재산을 두고 이혼소송을 벌이던 남자가 교통사고를 위장해 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남자는 부인을 조수석에 태우고 승용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도로 옆 방호벽을 정면으로 들이받아 부인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매우 어려운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에서는 남자를 고의적인 살인죄로 구속했다.

 

물론 살인죄의 고의를 증명하지 못하더라도 업무상과실치사죄로 처벌은 가능하다. 이런 사건을 보면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야 한다. 심성이 악한 사람을 만나면 하나밖에 없는 목숨까지 잃게 된다.

 

그리고 부부 사이가 나빠지고 특히 이혼소송까지 하게 되면 절대로 단 둘이만 만나는 것도 위험하다. 세상에는 별일이 다 있기 때문이다. 영순은 수없이 고민을 해보았으나 공철에게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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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71)

 

공철은 공철대로 영순을 이해하지 못했다. 늙은 여자를 자신처럼 젊고 멋있는 남자가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고, 사랑해주고 육체적인 서비스를 잘 해주면 고맙게 생각하고 남자가 하라는 대로 하고 조용히 살아야지, 공철 이외의 다른 남자를 만나거나 서로 문자를 주고 받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공철은 영순을 생각하면 세상이 정말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영순이 재산이 있다는 것 때문에 잘난 척하고, 남자를 우습게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단정했다. 그래서 영순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공철이 우연히 신문을 보니 이런 사건이 있었다. 서른 살이 넘은 남자가 스무살된 여자 친구가 나이트클럽에서 다른 남자와 술을 마시고 스킨십을 했다는 이유로 그 여자를 무려 4시간 동안이나 폭행을 했다고 한다.

 

남자는 여자 친구를 무자비하게 폭행한 다음, '옷을 벗고 바닥에서 자라'고 말한 뒤 침대에서 혼자 잠을 자고 일어난 다음 여자 친구와 성관계를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여자 친구는 전치 4주의 상해를 입었다. 남자는 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는 기사였다.

 

공철은 그런 기사를 보면서, ‘뭐 이런 사람이 있나? 단순히 나이트클럽에서 여자 친구가 다른 남자와 스킨십을 했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무지막지하게 때리고 가혹행위를 할 이유가 있을까?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했다.

 

정말 여자는 남자를 잘못 만나면 이렇게 된다. 남자의 폭력성은 여자로서는 처음 만나서 연애를 할 때에는 알 수 없다. 그것은 그런 남자일수록 자신의 폭력성을 철저하게 위장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전과사실도 숨긴다.

 

처음에는 보통의 남자보다 더 부드럽게 여자에게 접근한다. 더 따뜻하게 대하고, 소프트한 음성으로 말하고, 여자를 위해 기사도정신을 발휘한다. 단지 성관계를 할 때에만 아주 남성다운 본능을 발휘한다. 여자는 이런 남자의 겉모습에 속아 속마음을 준다. 속정을 준다.

 

그러다가 시간이 가면서 남자의 본성이 나타난다. 아주 야만적인, 동물적인 가해본능, 파괴본능, 사의 본능이 여자의 생명과 신체, 정신에 위해를 가하고 파괴시킨다. 파멸시킨다.

 

공철은 혹시 영순도 공철을 상대로 고막을 파열시킨 것에 대해 고소를 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공철은 영순은 절대로 자신을 형사고소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영순이 돈이 있는 여자이고 사회적 체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뿐만 아니라 신문에 난 사건은 열 살이나 차이가 나는 어린 여자 친구를 상대로 한 사건이었다. 나이가 어린 여자 친구를 둔 남자는 자연히 여자 친구에 대한 의처증이 생긴다.

 

하지만 공철은 자신보다 28살이 늙은 여자를 애인으로 두었었기 때문에 의처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의처증이라기 보다 단순히 남자로서의 자존심의 문제였다.

 

그리고 늙은 여자가 성적으로 너무 밝히니 추하고 더럽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러운 오물이 묻은 짐승처럼 생각하고 순간적으로 영순을 때렸던 것이었다.

 

그러나 영순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영순은 공철을 대할 때 전혀 나이 차이를 의식하지 못했다. 그것은 공철이 워낙 의젓해보였고, 말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성관계를 할 때 언제나 술을 많이 마시고 의식을 치루었다.

 

그리고 영순의 입장에서는 공철에 대해 속정이 들을대로 들었다. 그리고 , 요새는 전화를 제때 받지 않아?’라는 문자는 그냥 오래 전부터 편하게 알고 지내는 남자 사장이었다. 공철을 만날 때 영순은 다른 남자를 만나기는 했어도 성관계만은 공철하고만 했다.

 

그런데 영순의 해명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무조건 폭행을 가하고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어버리고, 더 나아가 다른 젊은 여자와의 성관계 사진을 보내서 복수를 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영순은 공철에 대해 복수를 할 방법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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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70)

 

남편을 복상사로 잃은 영순(63, 가명)은 시간이 가면서 세상이 몹시 허망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인생은 대단히 짧고, 그 짧은 인생 연애도 못하고, 자식 때문에 속이나 썩으면서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음식 잘하는 식당이나 다니고, 분위기 좋은 커피숍이나 다니고 있던 중에 공철을 만나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던 것이다.

 

공철이 영순과 연애를 한 것은 공철이 35살 때였다. 무려 28살이나 차이가 나는 남자와 여자가 연애를 했던 것이다. 공철은 운동을 열심히 해서 체력이 좋았다. 나이 든 여자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두 사람은 그래서 자주 만나 잠자리를 했다. 공철이 영순과 연애를 한 것은 영순의 돈을 보고 한 것은 아니었다. 공철은 영순이 비록 나이는 많았지만, 남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묘한 매력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공철이 잠자리를 하고 골아떨어지면, 영순은 잠을 자지 않고 앉아서 공철의 다리를 주물러주고 있었다. 그런 영순의 자상함과 따뜻함에 공철은 감동을 받았다.

 

진정으로 공철을 위해주고, 걱정하고, 이해해주는 여자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공철은 영순이 나이 든 여자로서 공철과의 성관계에 탐닉하는 것을 보고 영순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더 많은 시간 헬스장에 가서 체력단련을 했다.

 

더 남자답게 보이기 위해 헤어스타일이며, 옷패션에도 신경 쓰고 향수도 프랑스 향수를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영순의 핸드폰에서 어떤 남자가 보낸 이상한 문자를 보게되었다. ‘, 요새는 전화를 제때 받지 않아?’라는 문자였다.

 

공철은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었다. 영순을 만나 사실대로 이야기하라고 다구쳤다. 영순은 갑자기 당황하면서 모르는 사람이 잘못 보낸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공철은 영순을 뺨을 때렸다. 너무 잘못 때려서 영순의 왼쪽 고막이 파열되었다. 몇 대를 더 때렸다. 영순의 코에서 피가 터졌다. 얼굴에 멍도 들고, 영순이 악을 쓰고 달려들자, 공철은 그 자리를 피했다.

 

일주일 동안이나 서로 일체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다. 이런 관계가 되자 영순이 더 견딜 수 없었다. 공철은 영순에게 복수하기 위해 전에 만났던 일식당 종업원으로 같이 일하던 30살 먹은 젊은 여자와 정사를 벌이는 사진을 찍어서 영순의 핸드폰으로 보냈다.

 

영순은 그 사진을 보고 돌아버렸다. ‘~ 이 젊은 놈이 나를 완전히 가지고 놀았구나! 절대로 가만 둘 수 없다.’ 영순은 일단 공철에서 문자를 보냈다. ‘빨리 그 여자를 정리하고, 내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라. 그렇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공철은 공철 나름대로 영순이 다른 남자와 만나는 것으로 오해하고, 이러한 문자를 무시했다. 그러면서 다른 젊은 여자들과 연애를 하러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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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33)

 

명훈 엄마는 요새 아주 죽을 맛이다. 몸무게도 10킬로그램이나 빠졌다. 그동안 살이 쪄서 다이어트를 수없이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살이 저절로 빠졌다. 급성당뇨병에 걸린 사람 같았다. 너무 걱정이 되어서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았지만,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명훈 엄마는 이번에 명훈이 임신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는데, 갑자기 명훈 아빠 회사에 대해 검찰의 특별수사가 시작되었다. 잘못하면 회사가 부도날 위기에 처했다. 그렇다고 명훈 엄마가 운영하는 약국을 소홀히 할 수도 없었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고 방심했다가는 인근 경쟁약국에서 손님을 다빼앗아갈 상황이었다. 약국을 경영하는 약국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손님이 많아 큰 돈을 벌고 아무 걱정이 없는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약국이 잘되는 위치에는 수많은 약국들이 우후죽순식으로 들어서서 경쟁이 심해진다. 그리고 약사를 고용하면 그 월급이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비약사를 고용하면 약사법위반으로 즉시 고발된다.

 

약국에 대한 건물임차를 위해 내는 임대차보증금, 권리금, 월세, 관리비, 인건비 등등을 계산하면 겉으로 남고 뒤로 미찌기도 한다.

 

명훈 엄마는 요새 잠도 잘 못잤다. 원래 불면증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아주 심해서 안정제를 먹지 않고는 잠에 들지 못했다. 너무 약을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때로는 술도 마셨다.

 

원래 술이 약해 조금만 마셔도 취하는 편이었는데, 요새는 독한 술을 많이 마셔도 잘 취하지도 않고 속만 아프다.

 

오늘도 밤 11시경 술을 마시고, 겨우 눈을 붙이려고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혹시 검찰청 아닌가 싶어 떨리는 가슴으로 받았다. 목소리가 매우 날카로운 중년 여성이었다.

 

“여보세요. 명훈 씨 어머님 되시지요. 저는 아드님에게 강간 당한 여자의 친구되는 사람인데요. 며칠 지났는데, 왜 아직까지 합의를 하지 않고 있는 거지요? 명훈 씨가 부모님께 말씀드려 곧 합의한다고 그랬는데요.”

“뭐라고요? 강간이라고요? 우리 아들이 강간을 했다고요? 무슨 말이예요?”

“이상하네요. 아드님이 말 안하든가요? 벌써 보름이나 지났는데요. 빨리 배상하지 않으면 경찰서에 고소장을 낼 겁니다. 아드님과 상의하고 연락주세요. 제 번호는 지금 찍혀있지요?”

 

하마터면 뇌출혈이 일어날 뻔했다. ‘강간이라니! 명훈이가 강간을 했다니? 명훈아! 이 불쌍한 인간아! 너도 사람이냐?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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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32)

 

“피의자는 명태주식회사 대표이사에게 하청을 주고, 나중에 리베이트로 2억원을 돌려받은 사실이 있지요?”

“그런 사실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명태 대표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은 사실이 없습니다.”

“명태주식회사 법인계좌에서 피의자 개인계좌로 2억원이 들어온 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요?”

“그건 제가 일시 자금이 필요해서 빌렸다가 다시 돌려준 것입니다.”

“피의자가 돌려 준 증거는 있는가요?”

“현금으로 돌려주었기 때문에 증거는 없습니다.”

“명태 대표이사는 리베이트로 2억원을 주었고, 다시 돌려받은 사실은 없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저는 돌려준 것이 확실합니다. 그 사람이 왜 거짓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명훈 아빠는 명태주식회사 사장이 이미 다 진술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왜 조사받은 사실을 나에게는 말하지 않았을까? 왜 리베이트를 주었다고 자백을 했을까? 그럴 사람이 아닌데...’

명태 사장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면서 회사 이름이 ‘명태’라 재수가 없어 그렇다고 생각했다. 회사 이름을 왜 하필이면 명태라고 지었을까? 차라리 ‘동태’라고 하지? 아니면, ‘생태’로 하든가? 동태나 생태는 괜찮지만, 명태는 ‘명태눈깔’이라는 표현처럼 죽은 생선 같아서 그런 이름 가지고 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망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면, 명태를 회사 이름으로 하는 사람은 아마 지구상에서 눈을 씻고 찾아봐야 없을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지금 검사실에서 조사 받을 때, 자꾸 명태주식회사라는 이름이 나오는 것을 보고 생각해 보니, 그 명태주식회사 사장은 눈이 꼭 ‘명태눈’처럼 눈을 뜨고 있는 것이 마치 눈을 뜨고 자는 것처럼 생각이 들었다. 그런 명태눈을 가지고 지금까지 사업을 어떻게 했나 싶고, 그런 명태에게 하청을 주고 납품을 받아왔던 명훈 아빠 자신이 부끄러웠고 창피했다. 그리고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그 명태를 냉동실에 넣어 동태로 만들어야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했다.

검사는 그 이외에도 시청 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사실을 추궁했다. 그런 뇌물죄 부분이 종국적인 검사의 목표같았다. 또한 법인 자금 5억원을 개인적으로 착복한 사실에도 혐의를 두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법인 자금 5억원 중 1억원으로 애인이 사용하도록 오피스텔을 얻어준 것에 대한 자료도 수집해 놓은 것이었다. 도대체 사업을 하는 사람을 이런 식으로 먼지 터는 것처럼 파고 들어가 조사를 하면 걸리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검사는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수사권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엄청나게 남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검사가 저렇게 수사권을 남용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니까 사람들이 공수처를 만들자고 하는 것 같았다.

검사는 일단 조사를 마치고 피의자신문조서를 읽어보라고 했다. 정 사장은 10시간에 걸친 조사에 지쳤다. 너무 힘이 들었다. 같은 질문을 되풀이해서 묻고 따지고 추궁하는 검사가 무서웠다. 옆에서 참여하고 있는 변호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기만 했다. 개별적인 신문에 코치는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검사는 조사를 마치고 일단 돌아가 있으라고 했다. 필요하면 또 부를 것이라면서 조사받은 사항을 관련자들에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다. 일종의 공갈이었다. 증거인멸을 하지 말고, 말을 맞추어서 수사를 방해하지 말라는 취지였다.

갑자기 세상이 무서워졌다. 누가 회사 비밀을 검사에게 소상하게 이야기해준 것일까? 누구일까? 회사 내부에 있는 사람의 소행같았다. 조사받느라고 지쳐 집에 도착하니 명훈과 명훈 엄마가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여보. 어떻게 되었어요? 조사 잘 받았어요?”

“글세. 모르겠어. 어떤 〇이 투서를 한 것 같아. 회사 내부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아빠. 왜 무슨 일이 있으세요?”

“명훈이는 가서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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