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적 사랑의 분석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가 쓴 독일인의 사랑이라는 소설을 우리말로 번역한 책이 있다. 양이 적어 두 시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다. 포켓북 형태의 사이즈에 하드카버를 해서 겉보기에도 아주 예쁘다. 선물로도 아주 좋을 것 같다. 이 책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인간은 신으로부터 버림 받았을 때 최초로 공포를 경험했다. 그런데 생명은 공포를 몰아냈다. 인간은 신의 형상을 본따 만들어진 다른 인간들에게서 외로움을 달래는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랑과 위안이 우리를 떠나가면, 신이 인간을 떠났을 때와 같은 두려움이 다시 찾아들게 된다.'

인간은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신과 같이 전지전능하거나 자신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신의 세계에서 추방되어 격리되면서 심한 공포의 감정을 경험하게 되었다. 자신과 신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심한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신으로부터 버림 받고 느꼈던 공포심을 자신과 똑 같은 다른 사람을 인식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물리칠 힘을 얻게 되었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자신과 똑 같은 존재가 존재하고 있고, 그 존재와 연대하여 힘을 합칠 수 있고, 고통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더 이상 고통의 연못에 머물지 않았고, 신을 향해 비상할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았다.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인간은 신에 못지 않게 강해진다. 아니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극한상황에서 초인적인 힘을 보여주게 된다. 전쟁터에서 볼 수 있는 강한 모성애가 그것이다. 사랑은 연약한 인간을 초인적인 존재로 만드는 힘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그 사랑을 상실하게 되면, 다시 처음과 같은 상황으로 되돌아간다. 초인적인 힘을 잃게 되고, 신과 차별화되는 유한적인 존재가 된다. 육체의 힘은 여전히 남아 있어도 적어도 정신적인 차원에서는 그는 죽은 목숨이 된다. 식물인간이 된다.

힘을 상실한 존재는 다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두려움인지 외로움인지 잘 구별되지 않는 애매모호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런 패배적인 감정에 휩싸여 결국 세상을 두렵게 바라보고 외롭게 느끼면서 연약하게 살아간다.

이때 당연한 연약함을 거부하게 되면 비정상적인 폭력이나 세상의 물결을 거스르는 돌발행동을 하게 된다. 실연하거나 이혼한 사람이 때로 총기난사사고를 치는 미국사회의 예에서 보는 경험이다.



<사랑에 대한 인식>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 ~ 1960)가 쓴 소설 페스트를 보면, 페스트가 창궐해서 사람들을 죽음의 공포에 몰아놓은 도시, 폐쇄되어 출구가 없는 오랑시가 나온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페스트라는 무시무시한 질병의 두려움에 떨면서 각자 그러한 상황에 대한 다른 대처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사랑과 이별이라는 무대에 오르면 상황은 비슷해진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을 선택했다. 그 사람과 단 둘이 두려운 상황을 만들고 있다. 그 시간과 공간은 오직 두 사람만을 위해 존재한다. 제3자는 그곳에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다.

두 사람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연극을 시작한다. 그 연극은 4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의 잉태 - 사랑의 열정 - 사랑의 권태/ 쇠퇴 - 사랑의 소멸/ 이별>

연극은 서서히 때로는 아주 빠르게 진행된다. 누가 사전에 대본을 준비해주는 경우도 없다. 오직 두 사람만이 알아서 말을 해야 하고, 행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무대장치도 두 사람의 노력에 달려 있다. 관객은 없다. 그러나 가상적인 관객은 언제나 만들면 되는 상황이다.

사랑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사랑은 아주 자연스럽게 대해야 한다. 그것은 오직 솔직함과 성실함으로 대하면 된다. 사랑을 겁내지 말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사랑은 이루어진다.

‘옷자락 끝에 묻은 먼지를 떼주는 일/ 무심코 웃으면서 어깨에 기대는 일/ 그냥 버릇 일 꺼야 지워보고 바쁘게 하룰 보내봐도/ 눈에 찍힌 사진처럼 또 생각나고 생각나/ 자꾸 잘해주지 마요 더는 잘해주지 마요 또 다시/ 사랑 앞에 무릎 꿇고 아파할 자신 없네요’(김종국, 잘해 주지 마요, 가사 중에서)

알베르 카뮈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아무것도 의미를 가진 것이 없다 하더라도, 그것은 옳을 것이다. 그러나 어딘가에 여전히 의미를 가지는 것은 존재한다.”

우리의 사랑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전혀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의미가 어딘가데 숨어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우리는 그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하여 오늘도 한 잔의 커피를 놓고 진지하게 눈이 쌓인 정원을 바라보아야 한다.


사랑의 배신에 관한 현상학적 고찰 (2)

 

. 사랑의 배신이란 무엇인가?

배신(背信, betrayal)이라 함은 인간이 다른 사람에 대한 믿음을 깨뜨리는 행위를 말한다. 신뢰나 신의를 배반한다는 의미이다. 배신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신뢰를 전제로 한다. 애당초 신뢰가 없었으면 배신이 아니다.

 

배신이란 개인과 개인 사이에 기존에 형성되어 있었던, 아니면 어느 한쪽은 상대를 믿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상대방의 믿음에 반하여 정반대의 방향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배신은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뿐 아니라, 개인과 조직과의 사이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국가를 배반하는 경우가 스파이나 이적행위다. 회사에 대한 배신행위는 배임죄의 형태로 나타난다.

 

사랑의 배신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사랑의 배신은 사랑을 배신하는 것을 말한다. 배신의 대상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사랑이 있다. 고대 그리이스에서는 사랑을 세 가지로 구분했다. 에로스 사랑(eros), 필리아 사랑(filia), 카리스 사랑(charis)

 

에로스사랑은 자기애, 즉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필리아사랑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카리스사랑은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을 말한다.

 

에리히 프롬은 대등한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 이성간의 사랑, 자기사랑, 신에 대한 사랑으로 나누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을 여섯 가지로 나누기도 한다. 로맨틱한 사랑, 소유욕이 강한 사랑, 친구 같은 사랑, 실용적인 사랑, 이타적인 사랑, 게임 같은 사랑 등이다.

 

여기에서 배신의 대상으로서의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을 말한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을 동시에 포함하는 그런 사랑으로 국한시키기로 한다. 두 사람이 서로 아끼고 위해 주고, 성관계를 맺고, 상호 의지하고 같이 살아가려는 그런 관계에서 형성되는 사랑으로 제한하기로 한다.

 

사랑의 배신 현상을 논하려면, 과연 어느 단계에 이르러야 사랑을 배신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가 있다. 사랑은 일반적으로, 사랑의 잉태, 사랑의 성장, 사랑의 완성, 사랑의 쇠퇴, 사랑의 소멸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때 사랑이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사랑을 배신할 수 있다고 볼 것이냐가 중요하다. 처음 만나 몇 번 성관계를 맺은 상태에서 헤어진다고 사랑을 배신했다고 보기는 곤란하다. 두 사람 사이에 어느 정도 정이 들고, 성관계도 계속되고, 객관적으로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볼 수 있어야 배신의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옛날에는 처녀가 첫경험을 하면 순정을 바치는 것으로 생각하고 남자가 더 이상 만나지 않으면 배신한 것으로 추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달라졌다. 배신에 있어서 처녀성의 문제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다. ‘처녀성을 상실했건, ’처녀성을 바쳤건, 그것은 당사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의 문제에 해당한다. 폭행이나 협박에 의한 것이 아니고, 자발적인 동의에 의한 것이면 그 다음에 일어나는 배신의 문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배신의 문제가 일어나려면,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의 약속이 있었어야 하고, 사랑이 어느 정도 지속되었어야 하고, 어느 한쪽에서 그 사랑에 대한 믿음이 상당한 정도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세 가지 요건이 갖추어져야 비로소 사랑의 배신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랑의 배신에 관한 현상학적 고찰 (1)

 

. 글의 첫머리에

 

사랑이 도중에 깨지는 경우가 있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하는 것이므로, 어느 한쪽이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마음이 변하면 사랑은 깨진다. 서로 합의에 의해 사랑을 끝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한 사람은 사랑하고 있는데, 그 사랑에 매달리고 있는데,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사랑을 깨뜨린다.

 

이럴 때 원치 않는 한 사람은 사랑의 파탄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 사랑의 진행 정도, 사랑의 밀도, 사랑의 농도에 따라 상처의 내용은 달라진다. 이런 현상 가운에 특히 객관적으로 어느 한쪽이 사랑을 배신했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 우리는 주목하고자 한다.

 

사랑의 배신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사랑의 배신의 원인은 무엇인가?

사랑의 배신의 유형은 어떠한 것이 있는가?

사랑의 배신으로 인한 상처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가?

그러한 사랑의 상처의 영향과 결과는 어떠한가?

사랑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가?

사랑에서 배신을 당하지 않는 방법은 없는가?

사랑의 배신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러한 문제를 하나씩 살펴 본다.

 

<사랑에 대한 인식의 전환>

 

사랑에 대해 제대로 연구를 하지 않고 막연히 감성에 빠져 사랑을 하게 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잘 모르고 사랑을 하다가 시행착오를 겪는다.

 

행복을 찾기 위해, 행복을 더 손에 쥐기 위해 사랑을 하려고 하면서 그 과정에서 더 많은 고통과 불행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끝내 사랑을 상실하고 만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처음부터 사랑이 무엇인지 공부를 하지 않고, 사랑을 쉽게 생각하고 덤벼들기 때문이다.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랑을 무엇 때문에 하는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제대로 사랑을 하려면 사랑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사랑의 가치와 목적, 실천방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아무리 많은 사랑이 있었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사랑,
지금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사랑이다.

사랑의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지 마라.
오직 현재의 사랑에 충실하라.
지금 – 여기에서 당신 옆에 있는 사람에게만 집중하라.


진실한 사랑은 침묵과 무언으로 말한다.

'사랑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에 대한 인식의 전환>  (0) 2021.01.31
아무리 많은 사랑이 있었다고 해도,  (0) 2021.01.21
사랑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  (0) 2021.01.21
사랑과 삶은 동행을 거부한다  (0) 2021.01.21
사랑에 대한 긍정  (0) 2021.01.21


사랑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

모든 존재는 4단계를 거친다. 특히 사람은 이러한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 Birth - ⓑ Growth - ⓒ Change - ⓓ Death 이러한 과정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변화다. 변화는 존재에 있어서 필수적인 발전요소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의 흐름에 있어서도 분명히 변화가 뒤따르게 된다. 그 변화를 주체가 주도적으로 의도하거나, 소극적으로 변화를 겪게 되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다.

사랑의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랑을 밝고 아름다운 방향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변화를 무서워하고 처음 만난 상태에서 계속해서 안주하려는 사람은 가치 있는 사랑으로 발전시키지 못 한다.

제일 어리석은 사람은 일단 시작한 사랑을 발전시키려고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서 상대가 변할까 봐 두려워서 상대를 의심이나 하고 있는 사람이다.

상대는 승진도 하고, 돈도 많이 벌어오는데, 자신은 상대가 바람 필까봐 의심이나 하고, 뒷조사나 하고 있으면 그 사랑은 깨지고 만다. 그러므로 사랑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랑을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승화시키려고 노력하라.

‘다 똑같은 것 말고 나를 위한 slogan/ 다 비슷한 생각들 말고 나를 위한 logo/ 언제나 눈치 보지 말고 step step swagger/ 나는 달라 하나 하나 원하는 걸 내가 내가 change/ 지금부터 I can change/ 이제부터 you can change/ 모든 걸 다 we can change change change’(현아, Change, 가사 중에서) 



사랑과 삶은 동행을 거부한다
사랑이 삶을 해치거나
삶이 사랑을 해친다 

'사랑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실한 사랑은 침묵과 무언으로 말한다.  (0) 2021.01.21
사랑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  (0) 2021.01.21
사랑에 대한 긍정  (0) 2021.01.21
사랑에 대한 긍정  (0) 2021.01.20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0) 2021.01.15

사랑에 대한 긍정

사랑은 일단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기초로 그 사람의 말을 듣고 따르는 것을 말한다.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없거나, 그 사람의 말이 수긍이 되지 않으면 사랑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긍정이다. 때문에 강한 사랑은 강한 긍정의 힘을 가진다.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태도가 사랑의 기초를 이룬다.

특히 사랑의 초기 단계에는 상대방에 대한 즉각적이고 맹목적인 긍정의 태도 때문에 사랑으로 인한 환희를 느끼고 행복해진다.

롤랑 바르트도 ‘사랑의 단상’에서 사랑의 긍정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랑에는 두 종류의 긍정(Affirmation)이 있다. 우선 사랑하는 사람이 그 사람을 만났을 때 느끼는 즉각적인 긍정, 나는 모든 것에 대해 예라고 말한다.

그 뒤를 잇는 긴 터널. 나의 첫 번째 긍정은 의혹으로 찢겨지고, 사랑의 가치는 끊임없이 평가 절하될 위험에 처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지음, 김희영 옮김, 동문선, 46쪽에서 -

험하고 외로운 세상에서 의지할 곳은 결국 사랑뿐이다. 사랑이 절대적인 힘을 가지는 이유는 외롭기 때문이고,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우리가 숨을 수 있는 나뭇가지다.

‘하아 ~ 힘든 세상/ 어디 하나 기댈 데도 없는 이 세상/ 너 뿐이다, 트로트/ 갈대처럼 휘고 잡초처럼 밟힌 내 인생살이/ 술 한 잔에 울고 노래 가락 속에 웃는 내 인생아/ 나의 트로트’
(에픽하이, 트로트, 가사 중에서)

그러므로 사랑하려면, 일단 긍정하라. 부정하지 마라. 상대를 믿고, 의지하라. 자신이 먼저 상대에게 믿음을 주고, 상대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슴에 품어라. 그래야 진정한 사랑이 굳건하게 뿌리를 내린다. 

'사랑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  (0) 2021.01.21
사랑과 삶은 동행을 거부한다  (0) 2021.01.21
사랑에 대한 긍정  (0) 2021.01.20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0) 2021.01.15
<그 남자는 육체만을 탐했다>  (0) 2021.01.1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