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정조 지켰다고 열녀문(烈女門) 세워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유부녀가 바람 피다가

불행하게 되고,

비참하게 되고,

심지어는 폭행 당해 얼굴 망가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래도 유부녀가 또 연애를 할 것인가?

상대가 어떤 남자인지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소중한 몸을 맡길 것인지?

 

낯선 사랑 앞에서 한번 더 생각하라.

사랑의 이론과 실천에 대해 더 공부하라.

'사랑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냥 조용히 살아라!>  (0) 2020.04.19
<유뷰녀의 목숨>  (0) 2020.04.19
<유뷰녀의 헌법상 의무>  (0) 2020.04.19
낯선 사랑을 경계하라!  (0) 2020.04.19
<사랑의 불장난>  (0) 2020.04.19

낯선 사랑을 경계하라!

 

결혼한 사람이 새로운 사랑에 빠지려고 한다. 매우 위험한 일이다. 물론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이 멋있게 보일 수도 있다. 상대가 자꾸 유혹을 하니까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유부남과 유부녀가 이러한 새로운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생각보다 위험하고, 불안하고, 잠재적 폭발력이 있다.

 

왜 그럴까? 그런 사랑은 낭만적이기 어렵다. 두 사람 모두 복잡한 다른 인간관계에 매여 있기 때문에 사랑만을 추구하기 어렵다. 어느 한 사람이 배우자에 대한 배신을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 사랑하기가 어렵다. 한번 결혼한 사람은 새로운 사랑에서 정신적 사랑보다 성관계만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연인관계에서 돈이나 물질이 얽힐 소지가 있다. 100% 완전히 사랑에만 몰입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상대가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새로운 의심병이 생길 위험성이 잠재한다. 성에 대한 유경험자들은 섹스에 대한 만족감이 비교되는 문제가 있다. 구속력이 부족한 사랑은 쉽게 깨질 가능성도 있다. 상대의 배우자가 무서운 복수를 꿈꿀 수 있다.

 

결론은 간단하다. 결혼한 다음 새로운 사랑을 하고 싶은 사람은 인생에서 많은 것을 포기하거나, 상실하거나, 심지어는 패가망신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평범한 행복인가? 아니면 위험한 쾌락인가? 선택일 수 있다. 낯선 사랑을 하려면 이러한 잠재적 위험성을 알고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선뜻 낯선 새로운 사랑을 기웃거리다가 가정이 깨지고, 음란한 신사 숙녀로 전락하고, 인생의 모든 행복을 새처럼 날려버리고 비참하게 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적지 않다.

 

* 비가 오는 봄날에는 우산을 쓰고 꽃잎이 떨어진 풀밭을 걸어야 한다. 한손에는 커피를 들고, 봄날의 우수를 가슴에 담아야 한다.

 

'사랑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냥 조용히 살아라!>  (0) 2020.04.19
<유뷰녀의 목숨>  (0) 2020.04.19
<유뷰녀의 헌법상 의무>  (0) 2020.04.19
열녀문  (0) 2020.04.19
<사랑의 불장난>  (0) 2020.04.19

<사랑의 불장난>

 

불륜의 경우는 어떠한가? 많은 사람들이 불륜이라는 이름으로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 사랑 때문에 한이 맺혀 있을 것이다. 분명 자신의 몸과 마음을 스쳐 지나갔던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건 슬픈 일이다. 자신의 존재의미를 상실케 하는 비극적인 사건이다.

 

처음부터 그런 위험을 걱정했는지 모른다. 불륜으로 시작된 사랑의 종말을 예감하고 더 안타깝게 붙잡으려고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사라져 버리고 이제 더 이상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비극적인 상황을 예감했던 것은 남달리 강했던 감수성이었을 것이다.

 

영희(34, 가명)는 어느 금융기관의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5년 전, 그러니까 영희가 29세의 나이에 고객으로 자주 다니던 철수(44, 가명)를 만났다. 업무 때문에 공식적으로 몇 차례 만나면서 철수가 적극적인 접근을 해왔고, 영희도 싫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따라주었다.

 

그래서 가까워졌는데, 철수는 이미 결혼해서 아이도 둘이나 있었다. 유부남이었다. 처음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만남이었다. 그 만남의 복잡한, 어지러운 의미를 초기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같이 살 것도 아니고, 어차피 결혼한 남자를 만나면서 뭐 그렇게 따질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적당히 결혼할 상대가 없는 상황에서 영희는 때로 외로웠다. 그 외로움을 여자 친구들과 지냈지만, 같은 여자들끼리 만나서 보내는 시간이 주는 의미는 한계가 있었다. 때로 이성과 함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분위기 있는 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이성과 함께 하는 것이 편하고 더욱 효과적이었다. 음악회를 간다든가 멋있는 곳에서 저녁식사를 한다든가 하는 데에는 괜찮은 남자가 필요했다. 사치품과 같은 것일 수 있다. 감성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친구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던 것도 한몫했다. 그냥 편해서, 그리고 돈도 적당히 쓸 줄 알기 때문에 영희는 대화상대로서 때로는 분위기를 맞춰주는 상대로서 철수를 부담 없이 만났다. 철수는 부드러운 남자였고, 영희의 심정을 잘 헤아려서 편하게 해주었다.

 

 

사랑에는 일정한 단계가 있다. 그 계단의 의미는 사랑의 당사자만이 알고 있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면서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서로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그때마다 다가오는 느낌이 어떠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명확한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의 환경과 수시로 변하는 감정이 뒤섞여 밖으로 표출시키는 현상만 감지될 뿐이다. 처음부터 계산된 감정은 있을 수 없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두 개의 존재가 뒤섞여 뿜어내는 오색찬란한 분수대의 물줄기 같다.

 

영희는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끌려 들어갔다. 아니 자신을 그대로 던져두었다고나 할까? 의식을 잃은 채 강물에 떠내려가는 것 같은 상태였다. 강물은 시간이 가면서 더 깊은 바닥을 밑에 두고 흘러 간다. 사랑에 깊어지면서 존재는 정체성을 상실한 채 떠내려간다.

'사랑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냥 조용히 살아라!>  (0) 2020.04.19
<유뷰녀의 목숨>  (0) 2020.04.19
<유뷰녀의 헌법상 의무>  (0) 2020.04.19
열녀문  (0) 2020.04.19
낯선 사랑을 경계하라!  (0) 2020.04.1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