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회장의 첩이 되었는데, 회장이 죽자 돈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다>

공칠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떤 부부가 재벌 회장 첩이 호강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나은 딸 이름을, <애첩>이라고 호적에 올렸다. 혹시 재벌 회장이 이름을 보고 마음에 들어서 <첩> 그것도 <애첩>으로 삼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딸이 장성할 때까지 매일 새벽에 <정화수>를 떠놓고 신령님께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부모는 딸의 처녀성을 생명처럼 간직하도록 강조했다. 보통 남자와 결혼할 것 같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만일 재벌 회장의 눈에 들어 동침을 했는데, 처녀가 아닌 것이 들통이 나면 회장은 하룻밤 화대만 주고, 더 이상 상대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옛날에 왕과 동침을 하고 나면 여자는 치마를 뒤집어쓰고 나온다고 한다. 만일 처녀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장 궁궐에서 쫓겨났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딸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했다가 얼마 있지 않아 회장 비서실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미모가 뛰어나고 몸매가 좋아서 곧 바로 그 그룹의 회장에게 스카웃되었던 것이다. 그녀의 부모는 눈앞에 닥쳐온 행운을 놓칠까봐 두려웠다.

딸을 데리고 산부인과에 가서 <처녀막> 검사를 했다. 의사는 이미 처녀막이 파열되었다는 확인을 해주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충격을 받아 쓰러졌다. 며칠 후에 의식을 회복한 아버지는 그녀를 감금한 채 처녀막의 상실경위를 캐물었다.

그녀는 억울했다. 전혀 남자와의 성경험이 없었다. 아무리 억울하다고 울면서 결백을 주장해도 아버지는 믿지 않았다. 어머니는 꾀를 내서 처녀막복원수술을 하자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부모의 강요에 의해서 처녀막을 재생시켰다.

 

그녀의 부모는 재벌 회장과 동침하기 전까지는 처녀막을 절대로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고 매일 교육을 시켰다. 자전거를 타는 것도 금지되었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한번에 한계단만 허용되었다. 지하철에 앉아있을 때에도 다리를 너무 벌리는 것도 금지되었다. 무거운 물건을 들어서도 안 되고, 배를 두드려서도 안 되었다.

그렇게 두 달을 고생했는데, 마침내 어느 날 회장은 여비서를 불러서 단 둘이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신 다음 호텔방으로 불러서 간단한 심부름을 시키고 동침을 했다. 여비서는 왕의 은총을 받듯이 회장의 몸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처녀성을 완벽하게 증명했다. 회장은 여비서가 그때까지 처녀를 지켰다는 사실에 대해 크게 감동했다.

회장은 오피스텔을 하나 얻어주고 일주일에 한번씩 들렀다. 그런데 회장은 정력이 너무 센 사람이었다. 여비서의 체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여비서는 부모에게 이런 사실을 하소연했으나, 아버지는 완강했다. 빨리 아이를 가지라고 했다. 회장은 여비서에게서 아이를 가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완벽한 피임을 했다.

여비서의 인생은 그야말로 늙은 회장의 노예로 전락해버렸다. 그녀는 우울증에 빠졌다. 그래도 그녀의 부모들은 기쁨으로 가득찼다. 이름대로 재벌 회장의 애첩(愛妾)이 되었으니 이제는 팔자를 고쳤다고 좋아했다.

재벌 회장은 여비서를 위해 준다고 하면서 10억원짜리 생명보험에 들었다. 보험수익자를 여비서로 했다. 회장이 죽으면 여비서가 생명보험금 10억원을 타는 것이었다. 하지만 요새는 워낙 장수시대라 회장은 100살은 넘겨 살 것처럼 정정했다.

70이 넘었는데, 승마도 하고 스키도 타러다녔다. 다만, 스쿠버다이빙은 하지 못했다. 젊었을 때 스쿠버를 하다가 죽을 뻔 했다고 했다. 여비서 생각에는 아무래도 회장 보다 자신이 먼저 죽을 것 같았다.

 

회장은 여비서의 감시도 철저하게 했다. 핸드폰도 회사 이름으로 바꾸어 아무 때도 통화내역을 떼어볼 수 있게 했다. 오피스텔에도 CCTV를 설치했다. 돈을 특별히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재미 없는 시간을 보내다가 일년이 지났다. 재벌 회장에 대한 검찰수사가 진행되었다. 거액이 비자금을 조성했고,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고 사업상의 특혜를 받았다는 범죄혐의였다. 어느 날 여비서가 회사에서 퇴근하고 자신이 거주하는 오피스텔에 가보니, 회장이 그곳에서 음독자살했다. 아무런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여비서는 놀라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회장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서 여비서를 중요한 참고인으로 조사했다. 거액의 생명보험이 들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여비서를 의심했다. 여비서는 살인 용의자로 집중조사를 받았다.

 

나중에 여비서에 대한 살인죄 혐의는 벗어났지만, 생명보험금은 회장이 자살했기 때문에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여비서는 회장과의 내연관계만 밝혀져 회사도 사직하고 아무런 재산도 받지 못했다.

부모의 잘못된 생각 때문에, 아직 살아야 할 인생이 창창하게 남은, <애첩>은 일순간에 아주 비참한 상황이 되었다. 세상일이 꼭 이름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례였다. 공칠은 이 사건을 보면서, 자신의 이름이 <공칠>이라고 해서 꼭 <공만 치는 것>은 아니라고 믿었다.

 

<첩>으로 사는 여자들이 모두 호강하는 것은 아니다

 

흥신소에서는 비록 공칠이 나이는 어리지만, 태권도와 검도 등 무술을 했기 때문에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고 일을 시켰다. 흥신소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오토바이면허를 타는 것이 급선무였다. 공칠은 열심히 해서 오토바이를 배웠다. 곧 이어서 자동차운전면허도 땄다.

 

하지만 문제는 있었다. 공칠이 오토바이를 타고 야외로 나가면 가끔 커다란 황소가 뛰어나와 공칠을 놀라게 하는 것이었다. 공칠이 급브레이크를 잡고, 정신을 차리면 황소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공칠은 자신이 환상을 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공칠의 정신상태는 정상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황소의 환상을 본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고 믿었다.

 

한번은 깜깜한 시골길을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붉은 천이 눈앞에 나타났다. 핸들을 틀어서 그 붉은 천을 피했다. 그랬더니 200미터 정도 앞에서 하얀 옷을 입은 여자 세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공칠은 급정거를 한 다음 오토바이를 뒤로 돌려 도망쳤다. 너무 무서웠다.

 

집에 와서 아버지에게 그런 사실을 말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네가 아직 군대를 갔다오지 않아서 그래! 담력이 약해서 그런 거야. 옛날에는 귀신들이 있었지만, 요새는 달나라 가는 세상이라 귀신들도 다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고 그래. 너는 빨리 담력을 길러야 해. 담력을 키우려면 화장하는 곳에 가서 죽은 사람 화장하는 현장을 자꾸 봐야 해. 그리고 밤에 공동묘지에 가서 혼자 밤을 새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야. 아니면 공포영화를 100편 정도 보는 것도 좋아.”

 

아버지와는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신도 정육점을 처음 할 때에는 약간 그런 증상이 나타났다고 했다. 아버지도 처음에는, 가끔 꿈에 소가 나타나서 피를 흘리면서, ‘내 살 내놔! 내 피 다시 넣어줘!’라면서 아버지를 죽이려고 달라들었다고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내가 너를 죽인 게 아니잖아? 그건 도축장에 가서 따져!’라고 강하게 응수했다고 한다. 그리고 하는 수 없이 칼을 시퍼렇게 갈아서 머리 맡에 놓아두고 잤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이후에는 소가 무서워서 그랬는지 더 이상 아버지 꿈에 나타나서 아버지를 협박하거나 괴롭히지 않았다고 했다.

 

공칠은 이런 아버지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소가 꿈속에서 아버지 옆에 놓인 칼을 볼 수 있을까?’ 하지만 아버지가 말한 대로 공칠도 머리를 써서 소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사자라고 생각하고, TV 동물의 왕국에서 방영한, <초원의 황제, 사자들> 프로그램을 구해서 밤에 잠을 잘 때 계속 틀어놓았다.

 

방송에서 나오는 사자들의 포효소리에 소가 놀라서 접근을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요새 소는 옛날 소와 달라서 사자들의 포효소리를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 방법도 포기하고 말았다.

 

흥신소 사장인 김민첩은 이름 그대로 머리가 잘 돌아가고 행동이 빨랐다. 어떻게 그 아버지가 아들의 이름을 민첩이라고 지었는지 모른다고 사람들은 혀를 찼다. 원래 사람 이름에 <첩>이라는 글자는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첩>은 정실 부인에 대한 세컨드의 개념이었기 때문에 자식 이름에 <첩>이라는 글자를 넣으면, 마치 그를 낳은 어머니가 첩(妾)인 것으로 오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요새는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첩도 첩 나름이다. 없는 사람 첩노릇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무시하지만, 재벌 회장의 첩이라고 하면 모두 부러워한다. 어린 나이에 재벌 회장과 맞먹게 되고, 수백억원의 재산을 차지하게 된다.

 

평생 돈걱정하지 않고 호강을 하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재벌 회장께서 돌아가시면 그 많은 재산을 보고 달라드는 젊은 남자들과 남은 인생을 알차게 즐기는 것이다.

 

성형수술은 최고 비싼 것으로 자주 하기 때문에 늙어서 죽을 때까지 39살 이하로 보인다. 그래서 90살 되어서 사망신고를 하는 경우에도 호적공무원은 도저히 그 여자가 죽었다고는 믿지 못한다. 39살도 되지 않은 젊은 여자가 아깝게 이 세상을 떠나셨다고 애석해한다.

 

고위공직자 첩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남편의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서 이권을 챙기고, 온갖 위세를 떨고 행세를 한다. 더군다나 첩들은 본부인과 달라서 부인으로서 해야 할 의무는 없고 하지 않는다. 사실상 남편을 위해서 밥을 하거나 빨래도 하지 않는다.

 

오직 밤에 잠자리만 제공하면 끝이다. 모든 것은 고급 호텔이나 레스토랑을 이용한다. 그런데도 아직도 사람들은 자식 이름에 <첩>을 넣지 않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마, <첩첩산중>이라는 용어 때문일 것이라는 것이 공칠의 생각이었다.

 

공칠이 횡단보도 앞에서 달려오는 사나운 황소의 환상을 보고 교통사고를 당하다

 

공칠은 묵고 있던 호텔로 뛰어갔다. 호텔 앞에 이르자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는 공칠과 싸우다가 죽은 소를 싼값에 사왔다고 좋아하면서 그 소를 한국으로 가지고 가서 비싸게 팔려고 하고 있었다.

 

공칠은 비록 꿈속이었지만, 아버지가 너무 한심하게 생각되었다. 공칠과 싸우다가 비참하게 죽어 한이 맺힌 소를 돈을 벌기 위해 이국만리 스페인에서 한국으로 가져가려고 하는 아버지는 그 소가 공칠이 죽인 소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공칠은 아버지에게 그 소를 한국으로 가져가서는 절대 안 된다고 큰 소리로 외치면서 아버지를 만류하였다. 그러자 아버지는 주먹으로 공칠을 때렸다. 그때 죽었던 소가 다시 살아나 뿔로 아버지를 세게 받았다.

 

아버지는 44층 빌딩 옥상 높이까지 치솟았다가 아스팔트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그 순간 공칠은 너무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그때 공칠은 잠에서 깨어났다. 비록 꿈이었지만 현실처럼 아주 생생했다. 공칠의 온몸에 식은 땀이 흐르고 있었다.

 

이 꿈은 공칠이 재수를 한 끝에 다시 대학교 시험을 보러가기 일주일 전에 꾼 것이었다. 공칠은 그 꿈이 무슨 꿈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꿈의 해석을 부탁하지는 않았다. 왠지 불안하고 무서웠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 꿈이 좋은 꿈일 수도 있을 것처럼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그 꿈은 공칠이 목전에 두고 있는 대학입시와 관련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은 들었다. 공칠이 대학교 시험을 보러 가는 당일 아침 공칠은 시험장으로 가기 위해서 고시원을 나와서 버스를 타기 위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승용차가 도로 3차선을 달리다가 공칠이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공칠쪽으로 뛰어들어 공칠을 차로 치었다.

 

운전자가 주행중에 스마트폰을 보다가 도로 우측으로 잘못 진행을 했고, 그 때문에 아무 죄없는 공칠이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라고 있다가 그 차 우측 밤바에 치어 넘어졌고, 공칠은 머리를 다치고 왼쪽 발목 부위가 분쇄골절이 되는 상해를 입었다.

 

공칠은 곧 출동한 경찰차에 의해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고, 그 때문에 대학입시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한 것은 사고 당시의 상황이었다. 공칠은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왼쪽에서 도로 3차선을 따라 커다란 황소 한 마리가 매우 빠른 속력으로 공칠을 향해 질주해오는 것이었다.

 

그 소는 바로 스페인에서 공칠과 투우장에서 혈전을 벌이다가 쓰러졌고, 그 후 공칠의 아버지가 사서 한국으로 가져오려고 했던 바로 그 소였다. 공칠은 환상을 보고 있었다. 그 소는 누런 색깔이었다. 그런데 공칠을 실제로 친 자동차는 빨간 벤츠차였다.

 

공칠에게는 그 빨간 벤츠 자동차가 누런색깔의 황소로 보였던 것이다. 공칠은 자동차를 피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투우장에서처럼 오른쪽으로 약간 비끼면서 손에 들고 있는 가방을 붉은 천으로 생각하고 자동차를 향해 펼쳤다. 그 때문에 자동차는 공칠을 치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런 사고를 당하게 되자 공칠은 더 이상 서울에 있는 것이 무서워졌고, 대학 입시를 치루지 못한 것도 소 때문이고, 교통사고를 당한 것도 소 때문이며, 자신의 인생은 앞으로도 소 때문에 절대로 더 이상 잘 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공칠로서는 이런 소의 콤플렉스를 아버지나 어머니, 기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도 없었고, 그 누구와 상의할 수도 없었다. 그건 잘못했다가는 소들의 더 큰 복수를 받게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공칠은 이 모든 운명은 결국 자신의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업보 때문에 자식인 공칠에게 모두 돌아오는 것이라고 더욱 공고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공칠은 서울로 올가간 지 꼭 1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공칠은 마침내 서울생활을 모두 접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내가 뭐라고 했니? 네 적성에 공부는 맞지 않는 거야. 너는 우리 집안의 가업을 이어받으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어. 정육점 일을 배우고, 식당 경영에도 신경을 쓰자.”

 

그런데 이상하게 저는 소와는 인연이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다른 일을 하게 해주세요. 저는 원래 경찰관이 되려고 했어요. 대학은 포기했지만, 경찰관 시험공부를 하게 해주세요.”

 

경찰관 되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야. 그리고 경찰관은 사회를 위해 좋은 일도 하지만, 남을 잡아넣고 음주단속을 해서 적을 많이 만들기 때문에 별로 좋은 직업이 아냐.”

 

공칠은 아버지의 말에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기운이 솟구쳐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나, 꾹 참았다. ‘소를 죽이고, 소고기를 썰고, 소고기를 요리해서 돈을 버는 것보다는 경찰관이라는 직업이 훨씬 덜 죄를 짓는 거예요.’

 

공칠은 아버지 몰래 경찰관이 되려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는 커피바리스타가 되겠다고 말하고 커피학원을 다니기로 하고, 그 지역에서 제일 활발하게 흥신소를 하고 있는 김민첩 사장을 찾아가서 아르바이트일을 하기로 했다.

<공칠이 꿈속에서 스페인 투우장에서 소와 혈투를 벌이다>

 

공칠은 서울로 올라가서 대입학원에 등록을 했다. 그러나 1년 동안 재수를 한 다음, 자신은 공부로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왔다. 다른 친구들은 재수하면 실력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데, 공칠은 이상하게 시간이 갈수록 실력이 더 떨어지고 성적이 더 나쁘게 나오는 것이었다.

 

공칠은 그 원인을 자신의 머리가 나쁘다거나 노력을 적게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아버지가 소를 자꾸 죽이고 있기 때문에 소의 영혼이 피의 복수를 하고 있고, 그 대상이 아버지는 칼을 들고 있어 무서워서 아버지에게는 못하고 만만한 공칠, 즉 비무장상태인 자신에게 복수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공칠이 서울에 혼자 가서 일년 동안 재수생활을 한 것은 정말 혼돈상태였다. 아버지는 지방에서 정육점과 식당을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있었지만, 공칠에게는 매우 인색했다. 공칠 아버지의 인생관이 그랬기 때문이다. 자식이 돈 가치를 모르고 제멋대로 쓰면 나중에 나이 들어 반드시 망하고 고생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공칠에게 꼭 필요한 돈만 보내주었다. 그 흔한 신용카드도 만들어주지 않았다. 싸구려 고시원에서 생활하도록 했고, 용돈은 아주 적게 주었다. 공칠은 아버지의 생활철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버지가 소를 많이 죽이면서 벌고 있는 돈을 아끼지 않고, 흥청망청 쓴다면 소들이 언젠가는 무자비한 복수를 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상하게 공칠은 꿈에 소를 많이 보았다. 꿈에서 소들은 아주 무서운 형상으로 공칠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떤 소들은 스페인 같은 곳에서 싸움터로 나가기 직전에 몸을 풀고 있다가 공칠을 무섭게 째려보았다. 어떤 소는 투우장에서 상대 투사를 공칠로 생각하고 뿔로 쳐서 짓밟아버리겠다고 이를 갈고 있었다. 공칠은 강제로 붙잡혀가서 그 소와 투우장에서 싸워야했다.

 

경기장에서 주는 붉은 천은 그 자체로 두려움이었다. 공칠이 받아서 가지고 나가는 붉은 천은 소를 유인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 천의 빨간 색 때문에 오히려 공칠에 벌벌 떨게 되었다. 경기장에 들고 나가자마자 소와 싸우기도 전에 그 천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천속에서 무슨 피인지 가득 들어있었다.

 

공칠은 벌벌 떨면서 소와 마주섰다. 소의 눈은 공칠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심으로 불타고 있었다. 공칠도 하는 수 없었다. 소를 노려보았다. 왜 자신이 소와 싸워야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공칠은 아버지와 스페인여행을 간 것이었다. 그것도 꿈속에서 생전 처음 아버지와 해외여행을 간 것인데, 공칠은 스페인에 간다는 아버지의 말에 자신은 절대로 스페인에 가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스페인에 가서 반드시 투우장에 가서 소와 사람이 싸우는 경기를 구경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래야 아버지가 경영하는 정육점과 정육식당이 불처럼 번창하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꿈속에서 스페인을 가게 된 것인데, 단체관광을 떠나는 사람들이 모두 44명이었는데, 그중 아버지와 공칠을 빼고는 나머지 42명은 모두 여자관광객이었다. 아버지와 공칠은 아주 새하얀 옷을 입었는데, 여자관광객 42명은 모두 아주 빨간 옷으로 통일해서 입고 있었다. 핸드백과 하이힐까지 모두 붉은 색이었다. 심지어 여자들이 사용하는 손수건도 붉은 천으로 되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칠은 특별한 생각은 없었다. 스페인에 입국심사를 할 때 공칠은 여자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 여자들은 모두 소띠였다. 12살 차이, 24살 차이, 36살 차이가 있었지만, 모두 소띠에 해당하는 것을 알았다. 공칠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공칠이 스페인 남자들에게 붙잡혀서 투우장에 투우사로 나가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호텔에서 자고 있었다. 같이 간 42명의 여자들은 경기장에 같이 갔는데, 경기장에 들어서자 모두 얼굴이 소의 형상으로 변했다. 그리고 공칠과 소가 싸움을 시작했을 때, 그 여자들은 모두 소를 응원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소의 언어로 소를 응원하고 있었다. “으으으매에매, 으음, 음매음매매, 음음!!!‘ 그것은 소들이 몇만년전부터 사용해오던 전세계 공통의 소의 언어였다.

 

그 뜻은, ‘저 놈을 죽여라. 저 나쁜 악마를, 저 놈을 무자비하게 죽여라. 저 나쁜 우리의 적을 없애라.’ 이런 의미였다. 공칠은 경기장에서 누군가 확성기로 소의 언어를 한국말로 통역해주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스페인에서는 경기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투우사와 소가 하는 말, 그리고 투우사를 응원하는 팀과 소를 응원하는 팀의 말을 공평하게 국제통역이 통역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관중석에서 공칠을 응원해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모두 소가 이기고 공칠이 패배하여 죽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공칠은 배수진을 쳤다.

 

이곳에서 약하게 마음 먹으면 자신은 목숨이 끊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간 마음을 강하게 다잡았다. 고등학교 다닐 때 열심히 배우고 익힌 무술을 떠올렸다. 태권도와 검도였다. 공칠은 5분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 손에 쥐고 있던 칼을 집어던졌다.

 

그 칼을 같이 간 여자관광객들이 앉아 있는 자리를 행해 세게 던졌다. 그 칼은 순간 아주 샛빨간 색으로 변한 다음 창공을 몇 바퀴 세게 돌았다.

 

그리고 그 여자관광객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칼 혼자 여자들은 찌르고 베고 있었다. 여자들은 소의 언어로 난리를 치고 있었다. 공칠은 경기를 하다 말고 칼이 죽음의 광란을 벌이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칼은 다시 창공으로 치솟더니 경기장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여자들이 모두 죽었는 줄 알았는데, 칼이 사라지자 그 여자들은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모두 말짱한 상태로 더욱 흥분하여 공칠을 향해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공칠은 칼을 버린 상태에서 들고 있던 붉은 유인천도 땅에 버리고 맨주먹으로 소와 격투를 벌였다. 태권도 발차기와 주먹치기, 이단점프 발차기, 뒤돌려차기로 소를 괴롭혔다.

 

소는 스페인 소라 그런지 대한민국의 태권도 실력 앞에서 맥을 못추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공칠의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태권도복에 매고 있는 검은 띠 앞에서 소는 심한 현기증을 일으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공칠은 오른 주먹으로 소의 심장을 향해 일격을 가했다. 소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군중들이 공칠을 죽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공칠은 무서워서 경기장을 도망쳐 빠져나왔다.

정육점 사장 아들이 일진회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하고 난 후 태권도를 배우다

 

정훈의 친척 중에 최공칠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공칠 아버지는 정육점을 경영하면서 비교적 돈을 많이 벌었다. 아버지는 돈을 벌자 정육식당까지 차렸다.

 

그동안 정육점을 하면서 좋은 소고기를 판매해왔는데, 정육점을 계속 하면서 고깃집까지 같이 하니까 손님들이 많아졌다. 그 때문에 인근 식당은 타격이 컸다. 아버지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공칠이는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가 믿는 불교에서는 살생을 금지하고 있는데, 왜 정육점을 오래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공칠이 들은 바에 의하면, 비록 동물이지만 살아있는 동물의 목숨을 끊는 것은 잔인한 행위이고, 그렇기 때문에 가급적 육식을 하지 말고 채식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매일 날선 칼을 들고 소고기를 정육하는 것을 보고 저렇게 자꾸 소의 살을 칼로 도려내고 있으면 언젠가는 그 피의 보복을 받을 것을 두려워했다.

 

사람들 말에 의하면 낚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특히 먹기 위해 낚시하는 것이 아니고, 취미로 고기를 미끼로 낚아서 죽이는 것은 큰 벌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교통사고를 당한다든지, 갑자기 비명횡사한다는 말을 들었다.

 

사냥도 마찬가지다. 취미로 산에 가서 살아있는 동물을 죽이는 것은 반드시 화를 면치 못한다는 것이다. 공칠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건 종교적 교리고, 우리가 먹는 것과는 관계 없는 일이야. 정육점은 생업일 뿐이야. 내가 직접 도축을 하는 건 아니잖니? 지금까지 소고기 회사나 돼지고기 회사, 닭고기 회사가 얼마나 돈을 많이 벌고 재벌이 되었는지 알아? 어차피 인간은 육식과 채식을 같이 하는 동물이야. 채식만 하는 소나 말과는 달라. 동시에 하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 된 거야.”

 

아버지 설명을 들으니 그럴듯했지만, 공칠은 여전히 아버지가 정육점을 계속 하는 것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공칠이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힘이 센 건달 친구들로부터 일진회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공칠 아버지가 돈이 많았기 때문에 일진회에서는 공칠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공칠은 경찰관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일진회에 가입하면 공부도 못하고, 모범생이 되는 것을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랬더니 일진회 멤버 5명이 공칠을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서 집단폭행을 했다. 생전 처음으로 심하게 폭행을 당한 공칠이는 그 다음 날부터 이를 악물고 운동을 했다. 우선 태권도와 권투를 배웠다.

 

공칠이 일진회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한 다음 혼자서 공부보다는 무술을 열심히 수련하고 있는 것을 본 일진회 간부들은 더 이상 공칠을 괴롭히지 않았다. 오히려 공칠에게 앞으로는 괴롭히지 않을테니 공칠도 일진회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지지 말라고 부탁을 했다.

 

공부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원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머리에 한계가 있어 그랬는지 성적은 늘 하위권에 머물고 있었다. 아버지는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으면 대학은 포기하고 아버지가 하는 정육점과 정육식당을 가업으로 이어받으라고 했다.

 

아버지는 공칠에게 집요할 정도로 가업을 물려받으라고 강요했다. 아버지 말에 의하면, 자식이 부모의 직업을 이어받으면 크게 성공은 하지 못하더라도 절대로 망할 염려는 없다는 것이다. 농사짓는 아버지의 아들이 도시로 나가지 않고, 생활하는 곳에서 그대로 아버지의 농사를 이어받으면 점진적으로 생활이 나아진다. 아버지가 식당을 하면 아들이 그곳에서 일을 배워 나중에 식당을 이어받으면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버지는 농사 짓는데 아들은 도시로 나가 공부를 해서 성공하려면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아들 역시 아버지가 농사짓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옆에서 보고 조금이라도 배웠지만, 공부에 관해서는 아버지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거나 들은 바가 없어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해야 되기 때문에 물론 성공할 수도 있지만,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는 식당을 하는데, 아들은 전기공사업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나 공칠은 아버지의 생각이 낡고 보수적이라고 생각하고 아버지 말을 듣지 않았다. 특히 정육점은 살생을 한다는 점에서 종교적 사상적 신념과도 배치되기 때문에 굶어죽으면 죽었지 정육점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바람을 핀 여자가 이혼을 결심하고 혼자 살기로 마음 먹다

 

술을 마시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던 젊은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앉아도 되느냐는 것이었다.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인상이 착해보였다. 여자는 남자 친구가 배신해서 슬프다는 말을 꺼냈다. 무슨 말인지 듣고 싶었다. 여자는 28살이었다. 직장에 다니고 있는데 같은 직장에서 만난 남자와 1년 넘게 연인으로 지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다른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너무 속이 상해요. 그래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속이 상해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괜찮아요?”

남자 친구가 헤어지자고 해요.”

왜요?”

새로 생긴 애인이 저와 완전히 끊으라고 했대요. 그래서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거예요.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예요?”

 

경희는 조용히 그 여자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상한 건 그 여자의 말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문제가 뭐 그렇게 심각한 것이냐? 세상에는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수시로 발생하는지 아는가? 그 정도 일은 아무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괴로워하는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자와 여자는 만났다가 헤어지고, 또 다시 만나고, 파트너가 바뀌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싶었다. 아직 결혼한 것도 아닌데,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사회적 구속을 받는 것도 아닌데, 미혼의 남녀가 헤어지는 문제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하고, 고민하는 것이 우습게 생각되었다.

 

잠시 술기운에 잊고 있었던 경희의 처지가 다시 그 여자의 말 때문에 클로즈업되었다. ‘! 남녀간의 문제는 바로 이런 것이구나!’ ‘나도 처음부터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결혼했어도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일단 결혼했으면, 참고 살 것을...’

 

사랑이 괴로운 것은 본질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무조건 행복만 보장되는 사랑은 없다. 진정한 사랑이란 처음에 얻는 과정도 고통스럽고, 일단 얻어진 다음에도 수시로 크고 작은 마찰과 갈등이 반복된다. 더군다나 그 사랑이 시간이 가면서 흔들거리고, 3자가 개입되면 폭풍에 휩쓸리게 된다.

 

남자가 끝내 헤어지자고 하면 방법이 없잖아요?”

여자를 위로하기 위해 한 마디 했다. 별로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그냥 무심코 나온 말이었다.

근데 너무 억울해요. 그 남자 때문에 아이도 한번 지웠어요. 그래서 몸도 안 좋아졌고, 같은 직장에 있는 다른 여자에게 남자를 빼앗긴다는 것도 분하고. 그냥 포기하자니 아깝기도 하고 그러네요.”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직장에서 연애를 하고 있는데, 같은 직장의 다른 여자에게 애인을 빼앗기면 분하고 억울할 것이다. 그 말에는 동의했다.

그래도 잊어버려야지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이미 마음이 떠난 사람을 다시 붙잡을 수 없는 거 아닐까요? 굳이 강압적으로 붙잡아봤자 결혼할 수도 없을 거고. 안 그래요?”

저도 알아요. 지금 와서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걸. 그래도 제 마음을 쉽게 잡을 수 없어요.”

 

그 여자는 남자와 새 애인에 대해 복수를 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복수는 쉽지 않다. 무슨 방법으로 복수를 할 수 있을까? 배신당한 사람들은 복수를 꿈꾼다. 사회적으로 체면 있는 사람 같으면 직장을 찾아가 망신을 주려고 한다.

 

특히 공무원이나 교사, 전문직종에 있는 사람들이 그 대상이다. 아니면 직장에 투서를 한다. 그 사람의 비행에 대해 진정서를 내기도 하고, 사생활이 복잡하다거나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렸다는 내용으로 써서 낸다. 상급자를 찾아가서 호소도 한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모두 옛날 방식으로, 오늘날에는 별로 효과도 없고 통하지도 않는다.

 

경희는 하는 수 없이 모텔로 들어갔다. 새벽 3시가 되었다. 밖에서는 너무 피곤해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사람에게 잠자리가 이렇게 중요한 줄 몰랐다. 갈 곳이 없다는 것! 사람이 머리 둘 곳이 없다는 것! 그것이 이렇게 비참한 줄 몰랐다.

 

카운터 직원부터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본다. 이 늦은 시간에 여자 혼자 말짱한 정신으로 모텔방으로 들어오니 이상해보인 모양이다. 경희는 모텔방에 들어가서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해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

 

옆방에서는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경희에게 그 소리는 징그러운 동물의 소리였다. ‘! 내가 바로 저 소리 때문에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구나.’

 

경희는 깨달았다. 인간에서 섹스란 정말 허망하고 부질없다는 것을 알았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일시적인 사랑이라는 감정도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알았다. 잠시 스쳐지나가는 환각적인 감상일 뿐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 어떤 사랑도 가정이라는 둥지를 깨드릴만한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사실 앞에서 울음을 떠뜨렸다.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어린 아이와 같이 지내던 나만의 둥지가 그렇게 소중했다. 이제는 모든 남자가 싫었다. 경희에게 지금 남자라는 존재는 자신과 다른 형태의 성기를 가진 괴물에 불과했다.

 

경희는 굳게 다짐했다. 내일 날이 밝으면 남편을 만나서 이혼을 요구하기로 했다. 모든 조건을 감수하고 이혼하고, 아이를 데리고 혼자 살기로 했다. 더 이상 구걸하지 않기로 했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모두 자신이 책임지기로 했다.

 

아내의 불륜으로 부부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파탄상태가 되다

 

성에 관해서는 오늘 날 많이 개방되었을 뿐 아니라, 아주 정도가 심하지만 않으면 그것을 문제 삼는 사람이 오히려 시대착오적이고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남자가 결혼한 다음 여자의 처녀성을 문제 삼으면, 그는 아무에게도 동정을 받지 못한다. 오히려 도덕적으로 비난 받는다. 법원에 가도 혼전 성관계는 이혼사유도 되지 않는다.

 

생충은 최근에 경희가 의심스러웠다. 전과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생충의 행동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냥 경희는 생충이 돈을 벌어다주고, 집에서 잠을 자는 남자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래도 이상한 것 같아서 흥신소를 찾아갔다. 돈을 주고 사건을 맡겼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흥신소에선는 경희가 영식을 만나서 모텔을 다니는 사실을 뒷조사해서 알려주었고, 그 때문에 영식은 경희가 있는 모텔을 찾아가서 현장을 붙잡았던 것이다.

 

생충의 입장에서 막상 간통현장을 목격하고 나니 그때까지 머릿속으로만 상상하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 나타났다. 본인이 직접 현장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부인이 과거에 결혼하기 전에 다른 남자와 육체관계를 했을 것이라고 믿고 생각했던 것과 이번에 직접 상대 남자와 모텔에서 그짓을 한 직후 현장을 덮친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생충의 입장에서 볼 때 경희가 바람을 핀 이번 남자, 영식은 생충보다 훨씬 체격도 건장해 보였고, 남자답게 보였기 때문에 이런 상대적인 콤플렉스도 무의식적으로 크게 작용했다.

 

생충은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혼을 해야 할까? 별거를 할까? 아니면 아이 때문에 참고 살아야 할까? 이제는 도저히 예전처럼 한집에서 부부라고 하면서 같이 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너무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텔방에서 경희와 영식이 함께 섹스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떠올리면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생충이 경희에 대해 ‘더럽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매우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평가일 수밖에 없다. 경희가 남편 이외의 다른 남자와 연애를 하고, 섹스를 했다고 해서 경희 자신이 '더러워진 것‘은 아니다. 경희는 영식과 바람을 피기 전이나 바람을 핀 후나 아무런 변화가 없다. 육체적인 면에서도 없고, 정신적인 면에서도 없다. 경희가 더러워졌다거나, 더럽게 느껴진다는 것은 오직 배우자인 생충에 국한된 문제일 것이다.

 

이것이 사랑에 있어 중대한 모순이고 아이로니다. 일반인 입장에서도 비슷하다. 유명한 연예인이 결혼하고 수많은 염문을 뿌려도 더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직 그 연예인의 배우자만 인간 같지 않고, 더러운 인간이며, 위선자라고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생충은 경희와의 관계에서 더 이상 애정은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오직 증오만이 남았다. 사랑이 식으면 무관심이 된다. 때로는 그 사랑이 무서운 증오로 변하는 경우가 있다. 증오의 단계에까지 이르면 종전의 사랑은 식은 것이 아니라, 완전히 소멸한 것이 된다.

 

사랑의 사체는 새로운 증오의 기폭제가 되고, 핵폭탄과 같은 무서운 파괴력을 가진다. 그래서 사랑이 식는 경우에도 그것이 더 나아가 증오로까지 발전되지는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의 생존을 위해서, 서로의 파괴를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다른 동업관계와 달리 결혼관계는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회적 체면이 있고, 주변에 가족이 있고, 더군다나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원래 두 사람이 함께 활동하는 것을 모임 또는 단체라 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동업이다. 또는 공동사업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이런 동업관계가 역사가 짧기 때문에 성공하는 확률이 적다. 지금까지 동업해서 재벌 된 사람이 거의 없고, 중소규모의 동업은 대부분 깨지고 서로 소송하기 바쁘다. 아무리 작은 사업이라고 해도 혼자 해야지, 두 사람이 함께 하면 잘 돼도 깨지고, 못돼도 깨진다.

 

작은 규모의 호프집을 동업으로 해보라. 처음에는 가족 이상으로 가깝고, 평생 힘을 합쳐 성공하자고 혈서까지 써가면서 다짐을 한다. 하지만 불과 몇 달만 지나보라! 무슨 일이 생기는가? 장사가 되지 않고, 적자를 보게 되면 서로를 원망한다.

 

각자의 기여도가 적다고 불평한다. 먼저 시작하자고 제안한 사람을 탓한다. 반대로 장사가 잘 되어 보라! 서로 자기 때문에 돈을 버는데 기여도가 없는 상대에게 이익을 나누어 주는 게 아깝다.

 

경희는 식당에서 혼자 맥주를 마셨다. 술이 취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술에 취하고 싶었다. 술에 취해 답답한 상황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새벽 2시가 다 되었다. 사람들은 조금씩 자리를 떠났다. 몇 테이블 밖에 손님이 없었다.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굳이 서둘러 일어날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그곳에서 밤을 새울 수는 없었다. 피곤해서 모텔에 가서 잠을 잘까도 생각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러고도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모텔이라니! 아까 낮에 자신의 운명을 뒤바꾸게 만든 그 악몽은 바로 모텔방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러니 모텔은 생각만 해도 정이 떨어졌다.

 

태권도 사범이 유부녀를 공갈, 협박하는 남자를 만나서 손을 떼도록 만들다

 

남자 친구는 경희를 붙잡고 모텔로 끌고 가서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 이에 저항하는 경희를 때리기도 했다. 경희는 어쩔 수 없었다. 만일 과거를 폭로하고, 난리를 치면 남편과의 관계가 파탄에 이를 것 같았다.

 

생충은 결혼 전에도 자신은 대학에 다닐 때 학교 공부가 힘이 들고, 회사 다닐 때도 사회생활에 적응하기가 힘이 들어서 연애 한번 제대로 못했다고 늘 강조했다. 거짓말이었겠지만, 자신은 결혼하고, 신혼 여행 때 경희와 처음으로 관계를 한 것이라고 늘 되풀이해서 중점을 두어 말하곤 했다. 그러면서 경희는 처음은 아닌 것 같다고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런 과거는 묻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만일 그 정도가 지나쳐서 낙태까지 하고, 결혼까지 약속했던 옛애인이 나타나서 난리를 치는 날에는 생충이 그것까지는 용납할 것 같지 않았다. 그것이 경희가 당시 느낀 상황이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 남자 친구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다.

 

그랬더니 그 남자 친구는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 성관계를 할 것을 요구했고, 경희에게 돈까지 요구했다. 처음 두 달은 하는 수 없이 끌려 다녔다. 돈도 5백만원이나 친정 부모에게서 얻어다가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남자 친구는 경희를 불러내서 모텔에서 성관계를 가진 다음, 섹스 동영상을 몰래 찍어놓았다. 경희가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그 동영상을 경희의 남편에게 보내겠다고 협박했다.

 

경희는 혼자 고민하다가 가까운 친구와 이 문제를 상의했다. 그 친구는 자기가 잘 알고 있는 최경민(45, 가명)을 소개해주었다.

 

이런 경우에는 하루 빨리 경희씨의 거취를 결정해야 해요. 그 공갈범에게 계속 끌려가면 한도 끝도 없어요. 만일 경희씨가 그 친구에게 끌려다니다보면, 나중에는 경희씨가 스스로 좋아서 옛애인을 다시 만난 것처럼 오해를 받게 돼요. 그러다보면 경희씨 가정은 파탄이 날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경희씨가 지금 그 친구에게 어떤 정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럼요. 그 친구 전화나 문자만 받아도 소름이 끼쳐요.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그 친구, 지금은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어서 그런지 완전히 비뚤어지고 왜곡되었어요. 그 친구의 강요에 의해 성관계를 가질 때에는 정말 죽기보다 더 싫어요. 지금 우울증 때문에 병원에 다니고 있어요. 불면증에 시달리고요.”

 

그러니까 결단을 내려야 해요. 남편이 알게 될 것을 감수하고 경찰에 신고를 해서 처벌받게 하는 거예요. 독하게 마음 먹고 그 친구에게 손을 떼지 않으면 경찰에 고소를 해서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강한 태도를 보이는 거예요. 그래도 그 친구가 계속 협박하면 정말로 고소를 해서 끝장을 내야 해요. 그리고 이런 경우에도 설사 남편이 알게 되어도 요새 젊은 남자들이 결혼 전 과거를 가지고 문제 삼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제 남편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남자 친구가 처음 나타나 협박했을 때, 곧 바로 신고를 했으면 이해하겠지만, 지금까지 몇 달 동안 비록 강요에 의한 것이었지만, 남편 몰래 그 남자와 모텔을 다녔잖아요?”

 

그럼. 제가 한번 그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를 해볼게요. 제 말을 들을 수도 있으니까요.”

 

경희는 하는 수 없이 그 남자, 최경민에게 부탁을 했다. 경희는 남자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둘이서 만나자고 했다. 경희가 남자 친구와 만나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 경민이 술집으로 들어왔다. 남자 친구인 고악범(30, 가명)은 경민을 보자 크게 놀랐다.

 

아니! 사범님,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아니, 자네는 어쩐 일이야?” “. 여자 친구와 술 마시러 왔습니다.” “, 그래! 잠깐 나와 이야기 좀 할까?” “. 사범님!”

 

두 사람은 경희를 남겨놓고 밖으로 나왔다. 부근에 있는 술집으로 갔다.

거두절미하고, 저 여자 놓아줘. 내가 사랑하는 여자야. 내가 상처하고 괴로워할 때, 나를 위로해주고, 내 아이들까지 돌봐주었어. 그러다가 정이 들었어. 지금 남편하고는 나 때문에 졸혼관계에 있어. 요새 나와 소원해져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자네가 나타나서 괴롭힌다고 하더군. 그러니까 나를 생각해서 저 여자에게 연락하지 말아줘. 가능하겠지?”

 

! 사범님. 그런 줄 몰랐습니다. 진작 알았더라면 당연히 제가 안 만났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사범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역시 자네는 예나 지금이나 태도가 분명하군, 자네가 운동할 때 그래서 내가 자네를 제일 좋아했어.”

 

그 남자 친구가 고등학교 다닐 때 다니던 태권도장의 사범이 바로 경민이었다. 경희가 경민의 애인이라는 말에 그 남자 친구는 그 즉시 경희에게서 손을 떼기로 했다. 그리고 자신이 촬영했던 경희의 동영상도 모두 폐기했다.

 

경민을 만나 이렇게 쉽게 악질범의 문제가 해결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 후 경희는 경민을 몇 차례 만났다. 너무 고마웠기 때문에 인사 차 만나서 같이 술을 마셨다. 태권도 사범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몸이 아주 건장하고 매력이 있었다. 경희는 이 때문에 경민에게 안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경민은 경희를 여자로 보지 않고 있었다.

 

<유부녀가 남편 이외의 남자로부터 협박을 당할 때에는 신중하게 대처하여야 한다. 혼자 결정해서는 안 된다. 주변 사람들과 상의하여 가장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정이 파탄나기 때문이다.>

 

결혼 전 애인이었던 남자가 유부녀의 과거를 가지고 협박을 하다

 

경희는 지금 지구상에서 아무 곳에도 갈 수 없는 외로운 별의 신세가 되었다. 그처럼 좁게 느껴졌던 서울이 막상 이렇게 되니 그렇게 넓고 황량한 사막처럼 느껴질 수가 없었다. 경희는 자신의 별을 찾아보았다. 그 어느 곳에도 경희의 별은 존재하지 않았다. 경희의 별은 이미 폭발하여 지상으로 추락하는 아주 작은 별똥이었다.

 

사람의 운명은 알 수 없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순식간에 벌어지고, 그 대가는 가혹하다. 갑자기 이 세상에서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떨어진 것처럼 주변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버린다. 아무와도 전화하기도 싫고, 상의할 사람도 없어진다.

 

그렇다고 혼자 술을 마시거나 차를 마실 마음도 사라진다. 오직 고통스러워 죽고 싶은 마음뿐이다. 순간적으로 깊은 계곡, 그것도 만년설이 쌓인 눈속으로 추락한 작은 존재는, 자신의 운명이 얼마나 작고 초라한 것인가를 깨닫는다. 그 작은 운명을 손에 쥐고 조용히 작은 존재로 살았어야 하는데, 그 영역을 벗어난 것이 문제였다.

 

신이 부여한 작은 영역을 벗어난 대가는 아주 참혹했다. 에덴의 동산에서 모든 실과는 아무리 먹어도 좋았다. 하지만 신이 금지한 선악의 나무에는 가까이 가지 말았어야 했다. 금단의 경계를 무시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 선악과를 땄다.

 

냄새를 맡아보고, 입에 넣었다. 혀로 맛을 느끼고 삼켰다. 순간 황홀했다. 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 형벌이 내려졌다. 에덴의 동산에서 추방됨과 동시에 인간으로서 모든 짐과 멍에를 걸머지게 되었다.

 

경희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에게 부여된 육체를 허용된 영역 밖으로 내던졌다. 그곳에서 금지된 쾌락의 시간을 가졌고, 아주 짧은 쾌감의 맛을 보았다. 그런 정상적인 영역에서 일탈한 쾌락과(快樂果)가 내포하고 있는 형벌의 의미를 전혀 모른 채, 경희는 지금 실과 하나를 따먹은 죄로 지옥의 문턱에 던져진 것이었다.

 

경희는 오늘 아침 집을 나설 때만 해도 그랬다. 특별한 걱정이 없었다. 어제 밤에 잠도 잘 잤다. 몸 컨디션도 좋았다. 남편은 보통 기분으로 출근했다. 아이도 어린이집에 보냈다. 혼자 있다가 화장을 하고 외출해서 영식을 만나 점심 식사를 하고 모텔에 들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모텔에서 뜨거운 정사를 벌였다. 오래 반복된 행위였지만, 아직 나이가 젊어서 그런지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남편이 흥신소를 통해 미행을 했고, 모텔 방에 들이닥쳐 불륜의 현장을 잡은 것이다.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가려고 시도했지만, 남편은 비밀번호 이외에 안에서 단단히 걸어 잠그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희는 식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24시간 오픈하는 카페로 갔다. 혼자 커피를 시켰다. 지금 이 시간, 이 상황에서 누구를 만나 상의를 해야 하나? 친정집에는 연락할 수 없었다. 얼마나 실망할까? 지금까지 친정 부모는 경희가 별 문제 없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였다.

 

겉으로는 생충도 처갓집에 잘 했다. 경희와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 처갓집 식구들에게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생충은 결혼할 무렵에는 경희를 무척 좋아했다. 경희가 얼굴도 예뼜고, 미술을 전공해서 예술적 감각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경희 아버지가 재력이 튼튼한 사업가였기 때문에, 돈도 넉넉하게 대줄 수 있었다.

 

문제는 결혼한 다음, 6개월만에 터졌다. 결혼하기 전에 오래 사귀던 남자가 계속 연락을 해서 만나자고 했고, 경희도 하는 수 없이 그 친구를 만났다. 그랬더니 그 남자 친구는 왜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했느냐고 가만 두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것이었다.

 

경희는 기가 막혔다. 당시 경희와 그 남자 친구는 1년 정도 사귀었다. 그 친구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가버렸다. 그 친구가 먼저 연락을 끊었다. 경희로서는 더 이상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경희도 그 친구를 포기했다. 다른 남자들과 연애를 하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3년 정도 있다가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선을 봐서 만난 사람이 바로 지금의 신랑, 생충이었다. 그런데, 그 결혼 전 남자 친구가 경희가 결혼한 지 6개월만에 불쑥 나타나서 협박을 하는 것이었다. 경희의 과거를 남편에게 폭로하겠다고 했다.

 

어떻게 나를 배신하고 다른 놈과 결혼할 수 있어? 너는 낙태까지 했잖아? 내가 그렇게 반대했는데, 네가 혼자 낙태수술을 했던 거야. 지금 생각하니, 너는 나와 결혼할 생각도 전혀 없이 나를 데리고 놀았던 거야. 그래 지금 나는 이렇게 비참하게 됐는데, 너 혼자 좋은 놈 만나서 행복하게 살면 다야! 그러면 내 인생은 뭐야?”

바람을 핀 유부녀도 불륜의 원인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냉정하다. 겨울 바다는 추워서 물속에 들어가면 그냥 익사하는 것처럼 현실에는 언제나 냉냉한 기운이 상존한다. 그런 차가움 속에서 사랑의 온기를 느끼려는 것은 어리석다. 그런 사랑은 현실이라는 냉탕 속으로 던져지는 순간 질식한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다. 모든 사랑의 요소는 형해화되며 분해되어 흩어진다.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쓰레기를 소각하는 매케한 악취만 남는다.

 

경희는 사랑 때문에 추락했다. 무서운 늪에 빠졌다. 이런 극한상황에 처한 연약한 실존에 다가가 손을 잡아줄 사람은 지구상에 아무도 없었다. 친구도, 친척도, 가족도 없다. 오직 혼자다. 경희만이 겪어야 하고 넘어야 할 벽이었다. 벽은 생각보다 높고 단단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흰색이었다. 중범죄인을 고문하는 하얀 페인트만을 칠한 조사실처럼 눈이 부셨다. 그것은 희망의 빛이 아니었다. 가능성의 색깔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파멸이고, 죽음이며, 불가능의 상징이었다.

 

이 외로움, 불안감, 어두움을 누구에게 의지해 풀어나갈 지 앞이 캄캄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희가 만나서 상의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희는 밤거리에서 혼자 절규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렇게 비참하게 된 것일까? 모든 것은 환경 탓이다. 남편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다. 모든 것은 남편 탓이었다. 남편이 자신을 무시하고 삭막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살아 남기 위해 탈출했던 죄밖에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떤 일이 잘못되면 그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인 환경이나 조건에서 찾는다. 바람을 핀 남자와 여자는 바람 핀 원인과 이유를 배우자에게서 찾는다. ‘너 때문에나는 완전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하고, ‘이탈했다’. 그러니까 나도 잘못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너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항변한다. 그렇게 믿는다. 그렇게 착각하고 억울해 한다. 자신의 운명에 대해 배우자도 절반의 책임이 있다고 확신한다.

 

남편도 바람을 핀 적이 있다. 그때 경희는 눈감아 주었다. 가정을 깨고 싶지 않았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려고 했다. 생충도 평소 여자를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밖에 나가면 외간 여자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노래방에도 많이 다녔다.

 

그래서 노래방에서 도우미 언니들과 여러 차례 연애를 했다. 생충은 그때마다 도우미에게 돈을 주고 성관계를 했다. 그런 일이 여러 차례 경희에게 알려졌다. 하지만 경희는 그런 문제에 대해 아주 심각하게 따지지 않았다. 남자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경희 아버지도 바람을 피면서 살았다. 그런 문제 때문에 싸웠지만, 어머니는 이해하고 넘어갔다. 아버지는 바람을 피웠지만, 밖에서 아이는 낳지 않았고, 내놓고 두집 살림도 하지 않았다. 가정은 가정대로 유지해 가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고, 경희 역시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도 큰 피해는 없다고 여겼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경희 역시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는지, 남편이 외도를 해도 치명적인 상황만 안 만들면 그냥 넘어가곤 했다. 경희는 남편도 혼외정사를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경희에 대해서만 아주 엄격하게 따지고 문도 열어주지 않는 것에 대해 서운한 마음이 솟구쳤다. 경희는 남편이 너무 무서워졌고, 지금까지 헌신적으로 살아왔던 자신의 인생이 비참해졌다. 남편에 대한 만정이 떨어져 버렸다.

 

사람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자신이 잘못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상대의 태도, 특히 남편의 태도에 대해서는 또 다른 시각에서 비판하고 불만을 가진다. 부부는 남남이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관계다. 피가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을 때 좋은 것이지, 관계가 나빠지고 악화되면 남보다 더 무섭고, 더 냉정해지고, 더 가혹하게 공격을 할 소지가 있다.

 

치정범죄의 경우에는 일반 폭력범죄보다 더 가혹하게 아내를 살해하거나 폭행을 가한다. 일반 강도살인범죄는 한 두 번 칼로 찔러서 죽으면 끝을 낸다. 그런 다음 물건을 가지고 도망간다.

 

그러나 아내를 살해하는 남편은 아예 사체를 난도질한다. 그것이 치정범죄의 잔혹성이다. 특히 변심한 애인을 상대로 하는 폭력은 잔인하다. 얼굴에 염산을 뿌리거나, 코를 면도칼로 베어버리거나 성기를 절단하는 등의 잔인한 범죄는 바로 남녀 사이의 원한과 증오심에서 유래하는 잔혹함이다.

<인간은 어떤 경우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일 일이 잘못되면 그것이 전부 자신의 책임이며, 자신에게 그 원인이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린다. 그게 인간의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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