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의 처녀가 61살의 늙은 사장에게 처녀를 바치다

 

인경은 남편과 이혼하고 3년이 지난 때에 공국을 만나게 되었다. 인경은 35살에 결혼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회사에 다녔다. 부모님이 사업을 하다 사기를 당해 부도가 났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공부를 잘 했는데,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부모님 부양을 해야 할 입장이었다.

 

외동딸로 귀엽게 크다가 갑자기 아버지가 사업에 망하고, 중풍마저 당해 일을 못하게 되자, 인경은 돈을 벌면서 부모님과 살았다. 회사에 취직해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사장이 술을 먹인 후 호텔에 끌고가서 간음을 했다. 그때 인경은 너무 억울해서 자살하려고

마음 먹었다.

 

인경이 늙은 사장에게 당한 사연은 이랬다. 취직해서 6개월쯤 지난 때였다. 회사 사업이 잘 돼서 직원을 몇 사람 더 뽑았다. 모두 대졸 출신이었고, 여직원들도 외모가 다 괜찮았다. 그인경은 상대적으로 콤플렉스를 느꼈다. 공연히 다른 직원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끼기도 했다. 외모 때문에 콤플렉스도 느끼고 있어서, 강남에서 성형수술을 하려고 알아보니 천만원 이상의 견적이 나왔다. 성형수술은 불가능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뺑소니차에 치어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인경은 너무 절망했다. 왜 자신에게는 이런 상상도 못할 불행이 닥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늘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성당에도 열심히 다니는데, 왜 아버지 사업도 부도나고, 어머니까지 교통사고를 당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밤에 뺑소니차에 치어서 범인을 잡을 수도 없었다.

 

어머니 때문에 3일간 출근을 못하고 있다가 회사에 출근하니 더욱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러다가는 회사도 못다닐 것 같았다. 퇴근 시간에 사장실로 오라는 호출이 왔다. 인경은 가슴이 철렁 가라앉았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사장실로 들어갔다.

 

사장은 부드럽게 말했다. “어머니가 뺑소니차에 치었다면서? 얼마나 놀랬어? 아직 범인은 못잡았고? 약소하지만 병원비로 써요.” 인경은 처음에는 사양했으나, 사장이 별로 큰 돈이 아니라고 하면서 받으라고 강권하기에 그냥 들고 나왔다. 100만원짜리 자기앞수표가 세장 들어있었다. 인경은 놀랐다. 하지만 다시 사장실에 들어가서 돌려준다고 할 용기도 없었다. 그냥 고맙게 생각하고 받기로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다음, 사장은 외국에서 손님이 왔다고 하면서 비서 역할을 해달라고 했다. 인경은 사장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 전에 어머니 병원비로 거액을 주었기 때문에 더욱 의심하지 않고, 고맙게 생각하고 따라갔다.

 

강남에 있는 호탤로 가서 로비라운지에서 외국 손님 한 사람을 만나서 30분 정도 일을 보았다. 인경이 볼 때 특별히 비즈니스를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간단히 일을 마친 다음 저녁을 먹고 가자고 했다. 인경은 거절하기 곤란했다.

 

호텔 일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다. 인경으로서는 고급 호텔 일식당에서 좋은 사시미를 먹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정말 맛이 있었다. 사장은 술을 권했다. 인경은 술이 약한 상태에서 주는 술을 받아마시다 보니 취했다.

 

인경이 눈을 떠보니 그 호텔 룸 침대에서 발가벗은 채 누워있었다. 깜짝 놀랐다. 사장은 침대에 메모를 남기고 밖으로 나가있었다. ‘일어나면 전화해 줘요.’ 사장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인경은 사장이 술에 취한 자신에게 나쁜 짓을 한 것을 확인했다. 침대 시트에 붉은 흔적도 맺혀져 있었다, 자신의 몸 안에도 남자의 그것이 남겨져 있었다. “이런 악마! 이런 나쁜 인간!” 인경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인경은 혼자 울다가 옷을 입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아버지는 늦은 인경에게, “회사 일이 바빴던 모양이구나? 피곤해서 어떻게 하니? 불쌍하다. 인경아!‘ 하면서 팔로 껴안았다. 순간 인경은 쓰러질 뻔했다. 인경은 이를 악물었다. ”아니 내가 쓰러지면 안 돼. 불쌍한 아빠와 엄마를 돌봐야 하잖아.“

 

인경은 경찰에 신고를 하려고 했으나, 부모님이 그런 사실을 알게 되면 충격을 받고 돌아가실까봐 신고할 수 없었다. 사장은 워낙 나쁜 사람이어서 모든 것이 계획적이었다. 만일 인경이 문제 삼으면 돈을 300만원 주고 동의를 받아서 한 것이라고 미리 돈을 주었던 것이었다. 그때 인경은 나이가 21살이었는데, 사장은 61살이나 된 사람이었다. 인경과 무려 40살이나 나이 차이가 났다.

 

인경의 몸을 빼앗고 사장은, “평생 책임질 테니, 내 곁에서 있어라. 고생하지 않게 해주고, 부모님도 편하게 살 수 있잖니?”라고 징그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내게 처녀를 바쳤으니, 특별히 사랑하면서 챙겨줄게.”라고 했다.

 

인경은 그때 늙은 사장에게 처녀를 빼앗긴 것을 너무 억울해했다. 인경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처녀는 오직 사랑하는 남자만을 위해 간직하겠다고 굳게 마음 먹었다. 특히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성당에 다니기 시작해서 남다른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처녀성에 대해 특별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후 인경은 사장에게 문자를 보내, 너무 억울해서 죽고 싶다는 의사표시를 여러 차례 했다. 그때마다 사장은, <미안하다. 괘념치 말아라, 모두 잊어라>라는 식으로 인경을 달랬다.

 

당시 인경은 어린 나이에 사장이 돈은 있는 사람이고, 부도나고 병든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 사장 애인으로 지내는 것도 어떨까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며칠 후 회사 동료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듣고 모든 것을 단념해버렸다. “우리 사장은 여자를 너무 좋아해서, 지금까지 건드린 여자가 20명이나 된대. 정력이 너무 좋아서 많은 여자가 필요하대.”

 

인경이 그 일로 인해 회사를 그만 두자, 사장은 퇴직위로금조로 천만원을 주었다. 인경은 아무 말없이 그 돈을 받았다. 일단은 돈이 필요했다. 이미 당한 일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잊기로 했다.

 

하지만 그 일은 두고두고 극심한 트라우마로 남았다. 어머니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4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그런지 아버지도 몇 달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인경은 22살에 완전히 고아가 되었다. 세상이 너무 두렵고 무서웠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부모님 친척도 인경을 도와주려는 사람은 없었다. 인경은 이런 저런 역경을 겪으면서 단단해졌다. 세상 사람을 믿지 못하는 병이 생겼다. 혼자 직장에 다니면서 조용히 살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남자들은 끊임없이 달라붙었다.

 

남자들은 진실성이 없었다. 장난 비슷하게 연애나 하려고 했다. 인경이 싫어하는 육체관계만 원하는 것이었다. 인경은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서 카페에 취직을 했다. 커피를 열심히 공부해서 상당한 수준이 되었다. 장사가 잘 되지 않는 카페에 취직해서 열심히 일을 한 결과 그 카페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카페 주인 아들이 인경을 유혹했다.

 

너무 집요하게 매일 카페에 나와서 일을 도와주는 척 하면서 잘 대해주니까 인경도 마음이 움직였다. 그래서 마음을 열고 그 주인 아들과 연애를 했다. 그 남자는 미국에서 오래 공부를 하고 돌아왔다. 인경 앞에서는 아주 진실한 남자인 것처럼 위선과 가식으로 일관했기 때문에 인경은 괜찮은 사람으로 믿었다.

 

결혼까지는 약속하지 않았지만, 인경 역시 카페를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면서, 그 아들을 사랑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는데, 어느 날 그 사람의 부인이 나타나서 인경의 머리채를 잡았다. 왜 유부남을 꼬여서 가정을 깨뜨리려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인경은 억울했다. 그 남자는 워낙 동안으로 어려보였고, 결혼한 유부남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남자는 늘, “결혼할 생각은 아직 없어요. 커피 전문가가 되는 것이 꿈이예요.” 이렇게 말하면서 밖에서 자고 들어가는 것이 다반사였다. 인경과 외박을 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지만, 친구들과 클럽을 다니면서 외박하는 것은 일주일에 최소한 두번이 넘었다.

 

인경은 그렇게 사기를 당하고 배신을 당한 것이었다. 그 남자는 자신의 비행이 탄로나자, 부인에게 각서를 써주었다. “본인은 가만 있는데, 인경이라는 여자가 유혹해서 하는 수 없이 넘어갔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본인은 인경과 딱 세 번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인경이라는 사람을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한번 더 만나면 이혼을 당해도 좋습니다.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영은 기가 막혔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인경도 그 남자의 부인에게 각서를 써주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이를 거절했다가는 즉시 부정행위에 대한 위자료조로 인경이 살고 있는 원룸의 보증금이 가압류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남자의 부인은 이미 남편으로부터 인경의 주민등록번호와 주민등록지, 원룸의 보증금까지 소상하게 개인정보를 파악해 놓고 있었다. 인경은 하는 수 없이 각서를 써주었다. 각서의 내용은 그 부인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썼다.

 

본인은 가만히 있는 남편 〇〇〇씨를 유혹해서 성관계를 가졌습니다. 이에 대한 책임으로 본인은 카페를 그만두겠습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〇〇〇씨를 만나지 않겠습니다. 만일 앞으로 전화를 하거나 이메일을 보내거나 문자를 보내거나 직접 만나게 되면 1회당 100만원의 손해배상을 하겠습니다.”

 

서명을 한 다음 지장을 찍어주었다. 그 부인은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닌 것 같았다. 여러 번 이런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인경은 정말 억울했다. 사람을 잘못 본 죄가 이렇게 큰 줄 몰랐다.

 

인경은 그 다음부터는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 어떤 남자도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여자를 이용해 먹으려는 교활한 늑대 같았다. 욕망을 추스르지 못하는 발정기의 숫사슴이었다.

 

인경은 커피숍에서 바리스터로 열심히 일을 해서 어느 정도 돈을 모았다. 그러다가 비슷한 나이의 이혼한 남자를 만나 동업으로 커피숍을 차렸다. 물론 대부분의 자금은 남자가 냈고, 인경은 2천만원만 냈다.

 

몇 달 동안 합심해서 커피숍이 자리를 잡자, 남자는 결혼하자고 했고, 인경도 그동안 혼자 고생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그 남자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였다. 그 남자는 혼자 살고 있는 집이 있었기 때문에 인경은 살림살이를 가지고 들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결혼식도 하지 않고 동거에 들어갔고, 동거를 시작한 지 한 달만에 혼인신고까지 마쳤다.

 

그 남자의 말로는 전처가 바람을 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협의이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전처와 사이에는 자녀도 없다고 했다. 인경은 그동안 여러 차례 남자에게 속고 배신 당했으면서도 또 그 남자의 말을 무조건 믿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지막 남자라고 생각하고, ’내 사전에 이혼은 없다. 이 남자 이외의 다른 남자는 없다.‘라고 확신하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인경은 약간의 돈도 모으고, 행복했다. 앞으로 자신의 인생에 불행은 없으리라 믿었다.

 

2년이 지나면서 남자는 갑자기 인경과 잠자리를 하지 않고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 애정이 식은 모습이 확연하게 보였다.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어린 여자를 꼬셔서 애인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인경은 그런 사실을 알게 되자, 모든 것을 포기하고 협의이혼을 하고 나왔다. 물론 투자한 돈은 남자로부터 받고 나왔다.

 

배드민턴 동호회에서 만난 남녀의 불륜이야기

 

북성은 요새 자신의 문제로 골치를 썩이고 있는데, 먼 친척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법률상담을 하자는 것이었다. 북성은 하는 수 없이 그 여자를 만났다.

“남편이 바람이 나서 이혼을 하자고 하는데, 어떻게 하지?”

“아니, 잘 사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이혼을 하자고 해요?”

“남편이 배드민턴을 치러 다니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여자와 붙어서 도저히 헤어질 수 없다고 하면서, 이혼을 하지고 그래.”

 

맹순은 홍 검사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하소연했다. 맹순의 남편은 56살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건설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30살에 맹순과 결혼해서 아이를 둘 낳았다. 결혼할 때 맹순은 27살이었는데, 지금 남편인 공국의 친구와 연애를 하고 있었다.

 

그런 맹순을 공국이 삼각관계를 맺고 들어와서 빼앗았다. 그 때문에 공국과 맹순의 애인은 심한 몸싸움까지 했다. 자신의 애인을 빼앗긴 맹순의 애인은 분노심에 불타서 맥주병을 깨서 공국의 팔을 찔렀고, 그로 인해 구속까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공국은 끝내 맹순을 놓치지 않았다.

 

결국 맹순의 애인은 맹순을 포기하고 말았다. 맹순이 물론 전 애인과 육체관계가 있었던 사실도 다 알고 있었지만, 공국은 자신의 눈에 딱 맞는 이상형이라면서 맹순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고 아꼈다. 공국은 결혼하고 건설회사에 다니면서 한 눈을 팔지 않고, 일만 열심히 하면서 자녀들을 키웠다. 맹순 역시 결혼한 다음에는 오직 가정에만 헌신했다. 공국은 55세가 되던 해에 오래 다니던 건설회사에서 그만 두었다.

 

다니던 건설회사가 부도났고, 사장은 회사 비자금을 횡령하고 탈세를 한 혐의로 조사를 받다가 자살해 버리고 말았다. 공국은 퇴직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실업자가 되었다. 매일 술이나 마시고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동네에서 작은 치킨집을 하나 차렸다. 처음에는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이 6개월이 지나자 자리를 잡았다.

 

공국은 건설회사 다니면서 월급 받고 생활할 때는 세상이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 그런데 치킨집을 차려놓고 보니 세상은 정말 무섭고 살아남기 어려운 곳이었다. 겉으로 봐서는 별 걱정 없이 사는 것 같은데, 막상 속을 파헤쳐보면 다들 힘들게 살고 있었다.

 

공국은 가끔 서울의 길거리를 걸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많은 식당과 커피숍, 치킨집, 빵집, 이런 저런 가게를 보면 다들 안 되는 것 같았다. 대부분 장사를 해본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탁상공론을 하고 가게를 차렸을 것이다. 처음에는 막연히 계산을 한 것이었다. 장사를 하다가 잘 되지 않으니까 가게를 내놓았을 것인데, 처음 하는 사람들은 그런 이면을 모르고 전에 장사하던 사람들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가게를 인수한다. 중개인도 한몫 한다.

 

“장사는 잘 되는데, 갑자기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 때문에 가게를 내놓은 것이다. 장사가 너무 잘 된다.”

이런 식으로 장사가 잘 되는 것처럼 허위 또는 과장을 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권리금까지 주고 가게를 얻는다. 중개수수료도 주고, 인테리어업자를 만나 바가지를 쓴다. 영업허가증도 받아야 하고, 이런 저런 비품도 산다.

 

돈을 받는 포스기계도 사야하고, 인터넷도 설치해야 한다. 모든 게 돈이다. 그렇게 장사를 시작하면 손님은 없다. 파리만 날아다닌다. 이럴 때 파리는 평소와 달리 이상하게 커보이고, 나는 소리도 크게 들린다. 파리는 아주 재수 없는 모양을 하고 있고, 마치 장사가 잘 되지 않는 것을 구경하러 온 것처럼 보인다.

 

가게를 차려놓고 종업원까지 두었는데, 손님이 없으면 고통스럽다. 옆 가게에는 손님이 밀려드는데, 자신의 가게에는 손님이 들어오지 않는다. 종업원 보기에도 미안하다. 가끔 들어오는 손님도 나갈 때 표정이 별로다. 음식이나 가게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을 보이면 주인은 더욱 절망에 빠진다.

 

월세나 관리비, 종업원 월급 날짜는 왜 그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모른다. 은행에서 빚을 얻어서 장사를 하는 경우는 매달 피 같은 돈을 은행 이자로 내야 한다. 주인은 하루 하루가 고통이다.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우울증에 빠진다. 그렇게 되면 부부 사이도 나빠진다. 서로 탓을 한다.

 

공국은 이런 상황에서 다행스럽게 살아남은 것이었다. 처음 한 달은 무조건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했다. 치킨도 넉넉하게 주고, 생맥주도 세 잔째에는 한 잔을 공짜로 주었다. 단체손님의 경우에는 계산할 때 10%씩 할인해주었다. 지역에서 배드민턴 동호회에 가입하고, 이런 저런 모임에 적극적으로 나가 활동을 했다.

 

그러다 보니, 지역에서 공국을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다. 동네에서는 공국이 재산도 많이 있는데, 놀기 싫어서 소일 거리로 치킨집을 하고 있다는 소문도 났다. 공국은 실제로는 돈이 없는데, 주변에서 잘못 알고 그런 소문을 내니까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런 소문이 장사하는데 나쁜 것은 아니었다.

 

치킨집이 자리를 잡자, 공국은 삶에 여유를 가지고 싶었다. 그 때 배드민턴 동호회에서 인경(45세, 가명)을 만나게 되었다. 동호회에는 물론 여자 회원도 많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인경이 공국의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공국이 인경에게 접근을 했다. 인경도 공국이 싫지 않았는지 자연스럽게 공국과 사귀게 되었다.

 

인경은 가끔 공국의 치킨집에 와서 일을 거들어주었다. 처음에는 배드민턴 동호회 회원들이 자주 치킨집에 가게 되고, 그래서 바쁠 때 같은 동호회원이니까 일을 거들어준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 것이 점차 횟수가 많아지고, 인경은 시간만 되면, 치킨집에 가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두 사람은 깊은 관계가 되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속담이 있다. 어느 날 맹순이 밤 12시가 지난 시간에 치킨집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보통 11시면 문을 닫는데, 그 시간에도 불이 켜져있었다. 이상하게 문이 잠겨있었고, 공국과 인경 두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니, 인경 씨, 어쩐 일이예요? 이 늦은 시간에!”

“응. 인경 씨가 설거지를 도와주고 가려는 것을 내가 미안해서 술 한잔 하자고 했던 거야. 당신도 와서 한 잔 하지 그래?”

이때는 그냥 그렇게 넘어갔다. 하지만 여자의 촉은 남자보다는 예민하다. 그때부터 맹순은 인경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홍 검사는 맹순의 남편인 공국이 인경과 연애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의심을 하기 시작한 다음에 맹순이 확실한 증거를 잡기까지 무엇을 했는지 궁금했다.

“나도 한 때 배드민턴을 치러 남편하고 같이 다녔기 때문에, 인경이라는 여자도 알고, 같은 배드민턴 회원들을 잘 알고 있었어. 그래서 나와 친한 여자 회원 한 사람에게 부탁을 했어. 가끔 치킨집에 가서 동향을 살펴달라고.”

 

공국과 인경은 배드민턴을 칠 때에도 거의 함께 쳤다. 공국은 부인인 맹순과는 몇 년 전부터 각방을 쓰면서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 그것은 맹순이 나이를 들면서 잠자리를 하기 싫어졌고, 공국도 자연히 시간이 지나면서 더 이상 맹순과 잠자리를 하고 싶지 않아졌기 때문이었다. 육체관계는 남자나 여자나 나이를 먹고, 특히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생활에 시달리다 보면 자연히 욕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점점 덜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여자는 그런 경향이 있다. 남자와 달라서 성관계에 대한 욕구가 적은 여자도 있다.

 

그러면서 두 사람 사이는 더 이상 남녀로서, 부부로서 정이 없어졌고, 그냥 단순히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그냥 사는 것이었고,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혼할 생각을 할 겨를 없이 살고 있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공국은 나이가 들면서 인생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고, 건설회사에 다닐 때는 일이 바쁘고, 돈을 버는 일에 매진했기 때문에 삶에 권태를 느낄 겨를도 없었다. 술을 좋아해서 친구들과 또는 거래업자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노래방이나 다니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가끔 노래방에 가서 술을 마시고 도우미와 성관계를 가지기도 했지만, 고정적으로 애인을 두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건설회사를 그만 두고, 나이가 50살이 넘게 되니,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과연 제대로 살아온 것인지 회의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맹순과 결혼할 때에는 정말 맹순을 사랑해서 죽기살기로 목숨을 걸고 구애를 해서 결혼도 했지만, 막상 결혼해서 몇 년이 지나니까 애정도 식고 담담해졌다.

 

그러나 먹고 사는 것이 바쁘고 힘이 들어서 다른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자녀 교육에 신경 쓰다보니 더욱 그랬다. 하지만 아이들도 공국의 뜻대로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았고, 크게 비뚤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어서 그 때문에도 부부 사이는 더욱 냉냉하게 되는 것을 느꼈다.

 

특히 딸 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학교 다니는 남자 친구와 성관계를 가진 일을 알게 된 공국은 그것을 전적으로 부인 탓으로 돌렸다. ‘맹순의 피가 흘러서 여자 아이가 끼가 있어 그렇게 된 것이다. 맹순이 처녀 때도 이미 남자와 성관계를 하고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내가 끼어들어 또 나와 성관계를 한 것이다. 그런 엄마에게서 나온 딸이니까 저렇게 몸관리를 못하는 것이다.’라는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 그것은 말도 되지 않는 생각이었다. 끼가 있어도 공국이 맹순보다는 백배 더 있었다. 그러나 남자의 논리를 여자의 논리를 초월하는 무식한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공국은 치킨집을 시작하면서 인생관이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배드민턴을 치러 다니면서 여자들과 같이 운동을 하니까 이상하게 성관계를 하고 싶은 욕정이 생겼다. 그렇다고 집에서 맹순과는 오래 동안 관계를 하지 않고 지내서 새삼스럽게 하기도 싫었다.

 

배드민턴장에서 여자회원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운동을 하는 것을 보면, 공국은 자연스럽게 관계를 하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그러다가 인경과 관계를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운동만 열심히 하고, 가끔 회식을 하거나 노래방을 같이 가도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런데 아주 예외적으로 이상한 관계를 맺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어떤 조직이나 단체, 모임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억울하게 성추행범으로 몰린 혼자 사는 남자 이야기

 

홍북성(37, 가명)5년 전에 이런 사건을 담당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특별한 생각 없이 일반적인 수많은 사건 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기계적으로 처리했다. 검사는 수많은 사건을 정해진 시간 내에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늘 바쁘다.

 

검사실에서는 이미 송치되어 수사중인 구속사건도 있다. 구속사건은 경찰로부터 송치 받은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재판에 회부해야 하기 때문에 최고 우선 순위에 놓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게 된다.

 

불구속사건 중에서도 피의자가 100% 범죄사실을 부인하면서 억울하다고 다투고 있는 경우에는 법원에 가서 무죄판결을 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검토하고 보완수사를 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사건을 똑 같은 비중으로 수사할 수는 없다.

 

홍북성 검사는 위 사건을 담당했을 2년 전에도 만일 오늘과 같은 일을 본인이 직접 겪었던 경험이 있었더라면, 전혀 다른 각도에서 강제추행사건을 보다 진지하게 보고 신중하게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 것이 어쩌면 인간의 한계일지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고, 법률가는 법이라는 대단히 형식적이고 획일적이며 기계적인 잣대를 가지고, 몇 달 전, 또는 몇 년 전의 사건을 소급해서 사실판단을 하고 법률적용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건의 수사나 재판은 원초적으로 불완전성, 불공평성을 내포하고 있다.

 

어떤 남자(42, 무직)가 서울 도심지에서 대로변을 가다가 여학생 일행 다섯 명과 교차하면서 지나쳤다. 그 중 여학생 두 명은 팔장을 끼고 걸어가고 있었다. 시간은 해가 져서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인도에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걸어가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 편이었다. 그 남자가 여학생 일행을 교차하는 순간, 한 여학생이 친구들에게 말했다.

! 저 남자가 내 히프를 만졌어.”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가다가 여학생과 몸이 닿은 사실은 있었지만, 여학생의 신체를 의도적으로 만진 사실은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냥 가던대로 길을 가고 있었다. 여학생 일행은 가던 길을 돌아서 남자를 스마트폰으로 여러 장 찍었다. 남자를 따라가서 세웠다.

아니, 왜 우리 친구 히프를 만지고 가요? 가면 안 돼요. 경찰에 신고했어요.”

 

남자는 당황했다. 길거리에서 창피를 당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도망치려고 했다.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창피하고 만일 경찰이 오면 조사를 받고 시시비비를 가려야하기 때문이었다. 그 남자는 전에 폭행죄 등으로 세 차례 조사를 받고 벌금을 낸 사실도 있었다.

 

그래서 일단 경찰에 가서 조사를 받게 되면 자신의 결백과 무혐의를 받기가 얼마나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무의미하며 비생산적인 게임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남자는 뛰어서 현장을 이탈하려고 했으나 경찰이 오기 전에 젊고 정의로운’ ‘귀신도 때려잡는 해병대출신의 한 남자에 의해 현행범(現行犯)으로 체포(逮捕)되었다.

 

우리 형사소송법상 현행범은 경찰관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현장에서 체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예를 들면, 오토바이가 사람을 치고 달아나는 것을 택시 기사가 끝까지 쫓아가서 붙잡는 것이라든지, 공원에서 야간에 여자를 성폭행하고 달아나는 범인을 체포하는 행위는 정당한 행위이며, 체포감금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체포를 하기 위해 다소 폭행을 해도 위법성이 조각된다. 그 남자는 해병대 출신에 의해 체포된 직후 출동한 경찰관에게 인계되었다.

 

여학생은 이 남자가 제 옆을 지나치면서 갑자기 오른 속으로 제 왼쪽 히프를 세게 만지고 도망갔습니다. 정말 나쁜 사람이예요. 너무 세게 히프를 웅켜쥐었기 때문에 지금도 아파요. 처벌해주세요.”

경찰서로 인계된 남자는 펄펄 뛰었다.

 

저는 전혀 그런 일이 없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길을 가다가 그 여학생과 몸이 조금 닿아 스쳤던 적은 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있는 대로변 인도에서 어떻게 여학생의 히프를 세게 움켜쥔다는 말입니까? 너무 억울합니다.”

그럼, 여학생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입니까? 당신을 성범죄자로 몰아서 돈을 뜯어내려고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까? 고의로 만지지 않았으면 그 자리에서 해명할 노릇이지, 왜 도망을 쳤습니까?”

여학생은 스쳐지나가면서 제 손이 약간 닿았기 때문에 오해를 한 것 같고, 제가 도망간 것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성추행범으로 오해를 받으면 창피하고 귀찮을 것 같아서 도망가려고 한 것입니다.”

 

남자는 조사하는 경찰관의 말을 들어보니, 상황이 매우 어렵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아는 변호사는 한 사람도 없었다. 이럴 때 즉시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그리도 변호사를 선임할 돈도 없었다.

 

잘못 생각하고 여학생을 만졌으면, 잘못했다고 시인하고 사건을 풀어나가는 것이 순리예요. 뻔한 사실을 부인한다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당시 현장에 여학생 5명이 같은 반 친구들이예요. 5명 모두 반에서 1등부터 5등까지 공부를 잘 하는 우수한 학생들이라고 해요. 내가 담임선생님과 직접 통화해 보았어요. 그리고 당시 그 여학생 5명은 보습학원에 같이 가고 있었어요. 그런 순진하고 공부만 하는 여학생이 거짓말로 피의자를 성추행범으로 몰아서 돈을 뜯어내려고 하지는 않을 것 아니예요? 그리고 지금 한 여름이라 여학생 치마도 아주 얇은 천으로 되어 있고, 피의자는 여학생들 5명이 뭉쳐서 지나가니까 순간적으로 엉덩이를 한번 만져본 것 같은데, 이 정도로 구속되거나 실형을 살지는 않을 거니까 복잡하게 하지 말고 깨끗하게 시인하고 빨리 끝내는 게 어때요?”

 

경찰관은 조사하면서 그 남자가 불쌍하고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여학생이 다섯 명이나 일치된 진술을 하고, 직접적인 피해를 당한 여학생은 아주 생생하게 그 당시 남자의 손으로 징그럽게 당한 촉감까지 진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는 정말로 억울합니다. 제가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통행하고 있는 길에서 여자 엉덩이를 만집니까? 그 상황에서 제가 한번 만지면 요새 여자들이 어떤 여자들인데, 가만 있겠습니까? 즉시 나를 붙잡고 경찰에 신고할 텐데요? 저는 고의적으로 만진 사실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렸을 때부터 여자를 싫어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고 있습니다. 진실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피해자라고 하는 여학생과 대질조사를 해주세요. 거짓말탐지기도 해주시기요.”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소용 없어요. 요새 이상한 남자들이 많아서,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도 성추행하는 사건이 많아요. 그리고 남자들은 성추행해 놓고도 무조건 안 했다고 우기면 되는 줄 알아요. 그리고 피의자가 여자를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 나는 확인할 방법도 없고, 여자를 싫어하는 것과 여자 엉덩이를 만진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요. 그리고 결혼 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도 피의자의 무혐의에 대한 증거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결혼해서 부인과 잘 지내는 남자들은 굳이 밖에서 다른 여자 만질 이유가 없잖아요. 결혼 못하고 여자 구경 못하니까 다른 여자 추행하는 것 아닐까요?”

 

남자는 억울하고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현장에서 자세히 살펴 본 여학생들의 표정은 정말 착하게 보였다. 꽃뱀이나 굴러먹은 여자들과는 전혀 달랐다. 그 여학생들이 고의로 자신을 괴롭히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남자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정말 이상하다. 내가 순간적으로 귀신이 씌여져서 무의식적으로 그 여학생 엉덩이를 마졌던 것일까? 아니면 그 여학생이 다른 남자가 만지고 간 것을 나로 착각하고 나를 물고 늘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팔장을 끼고 같이 가던 친구 여학생이 장난으로 만진 것을 내가 붙어서 지나가니까 나로 오인한 것일까?’

 

경찰관은 남자가 대질조사를 해달라고 하는 것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거짓말탐지기조사는 필요없다고 했다.

 

성추행범죄는 원칙적으로 대질조사를 하지 않아요. 특히 이 사건처럼 어린 여학생을 강제추행범인과 수사과정이나 법정에서 마주 치게 하는 것은 피해자 보호 차원에서 곤란한 일이예요. 각자 따로 진술을 하고, 두 사람의 진술의 신빙성을 우리가 판단하면 되는 거예요. 그리고 거짓말탐지기는 기계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세분해서 판정할 수는 없는 거예요. 살인사건 같으면 몰라도, 피의자가 아주 짧은 시간, 불과 몇 초밖에 되지 않는 순간에 다른 여자 신체를 만졌는지, 만지지 않았는지를 <진실> 또는 <허위>라고 흑백으로 나누어서 진단한다는 것은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예요. 그리고 범인들은 보통 피해자보다 심장이 두껍고, 낯짝이 뻔뻔하고, 뱃살도 많고, 근육도 단단하고, 심뽀가 나쁘기 때문에, 거짓말탐지기도 무서워한다고 해요. 피해자인 여학생은 심장이 약하기 때문에 거짓말탐지기계도 여학생을 우습게 보고, 여학생은 기계를 무서워하는 거예요. 아무튼 피의자는 자신의 범행을 끝까지 부인하고, 뉘우치지 않고 있으면 검사나 판사가 죄질이 나쁘고 재범의 위험성이 높다고 보아서 무겁게 처벌할 거예요. 나는 경찰 생활 벌써 15년 했으니까 척하면 다 알아요.”

 

사건 당시 도로에는 CCTV가 있어 경찰에서는 이를 확보하여 동영상을 분석했다. 하지만 CCTV가 한곳에서만 촬영되어 있어, 여학생 일행과 그 남자가 아주 근접하게 교차한 장면은 나오지만, 남자가 여학생의 히프를 만지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경찰에서는 어린 여학생의 진술의 신빙성에 더 무게를 두었다. 그 남자가 폭행이나 상해 등으로 벌금을 세 번이나 낸 전력이 있고, 아주 근접한 거리를 두고 여학생과 교차한 사실 및 현장에서 성추행범으로 몰리자 도망치려고 했던 정황 등을 근거로 남자를 강제추행죄로 입건하여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 사건을 맡은 북성은 피의자신문조서를 받고, 이어서 피해자와 대질조사도 했다. 남자는 이런 말을 했다.

 

검사님! 정말로 억울합니다. 여학생이 오해를 했거나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저는 비록 전과는 있지만, 3년 전에 세상이 싫어서 절에 가서 수도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특히 절로 들어간 이유가 여자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깊은 상처를 입어서 세상이 싫어졌기 때문에, 사회에서 돈을 잘 벌던 식당도 넘겨버리고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자라고 하면 정말 정이 떨어지고 징그러운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제가 길에서 여자의 엉덩이를 만지다니요? 저를 아는 사람들이 알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펄펄 뛸 겁니다. 제가 수도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곧 바로 증거로 증명해드리겠습니다.”

 

홍북성 검사는 그 남자의 말을 듣지 않았다. 모두 거짓말로 생각했다. 이상하게 절에서 수도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람이 얼굴에서 풍겨나오는 이미지가 욕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지저분한 동물처럼 느껴지고, 음성도 느끼했다. 절에 있다면서 머리도 길었다. 혹시 가발을 쓴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검사가 그런 질문까지 하는 것은 월권이었다.

 

하지만 CCTV로 봐서는 강제추행죄를 인정하기가 어려워서 다소 고민은 되었다. 그러나 북성은 일단 피해자인 여학생의 명확한 진술이 있었기 때문에 별 걱정을 하지 않고 법원에 넘겼다. 그 남자에게는 벌금 500만원이 구형되었다. 남자는 결국 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남자는 법원에 가서도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다. 그래서 법원에서는 다시 피해자를 증인으로 불렀다. 피고인의 변호사는 피해자가 증인으로 나오자 상세하게 따져물었다. 피해자는 나이가 어린 상태에서 증인으로 나와 질문을 받자 당황했다.

 

피고인이 어떤 방식으로 증인의 신체를 만졌나요?”

친구와 팔짱을 끼고 길을 가고 있는데, 앞에서 오던 피고인이 제 오른쪽으로 지나가면서 제 엉덩이를 손으로 만졌습니다.”

피고인이 엉덩이를 세게 만졌나요? 아니면, 손바닥으로 살짝 대고 지나간 것인가요?”

손바닥으로 치마를 위로 치켜드는 것처럼 쓸어올린 것입니다.”

피고인은 당시 치마를 입고 있었나요? 짧은 치마였나요?”

. 약간 짧은 치마였습니다. 얇은 천이었습니다.”

 

피고인은 경찰에서는 엉덩이를 꼬집듯 세게 만졌다고 진술했고, 검찰에서는 그냥 만졌다고 진술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손바닥으로 치마를 위로 치켜드는 것처럼 쓸어 올렸다고 진술하고 있는데, 어떤 진술이 사실인가요? 진술이 자꾸 바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경찰에서도 지금처럼 진술했어요. 검찰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지금 진술하고 있는 것처럼 저 사람이 제 치마를 손바닥으로 쓸어 올렸어요. 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그 당시 저 사람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약간 오래 만지고 있었기 때문에 치마 밑으로 징그러운 남자 손의 촉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말하고 남자의 사진을 찍고 붙잡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엉덩이를 꼬집듯 세게 만지는 것과 치마를 위로 치켜드는 것처럼 쓸어올리는 것은 전혀 다르지 않나요?”

저 사람이 치마를 위로 치켜드는 것처럼 쓸어 올렸습니니다.”

 

그 남자는 무죄판결을 선고받았다.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선고한 이유는 CCTV 상에 남자의 손이 피해자의 신체에 직접 접촉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고, 근소한 거리를 두고 스쳐 지나가는 장면만 나오며, 피해자의 진술이 경찰과 검찰, 그리고 1심 법정에서 다르게 바뀌고 있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검찰에서는 이러한 무죄판결이 부당하다고 또 항소를 했다. 남자는 생각했다.

 

! 세상이 이렇게 무섭구나. 내가 성추행을 하지도 않았는데, 피해자라고 하는 사람의 말만 믿고 재판에 넘기고, 법원에서 무죄판결이 선고되었는데도 또 검찰에서는 항소를 하다니...”

 

이 남자의 사건을 담당했던 북성은 그 당시만 해도 피고인인 남자는 틀림 없이 성추행을 한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당하지도 않은 고등학생인 피해자가 현장에서 범인을 붙잡아 신고를 하고, 계속해서 피해사실을 진술할 리는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란 다 그렇게 성추행을 해놓고도 명백한 물적 증거가 없으면, 범행을 부인하는 습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믿음은 법을 공부하거나 판례를 읽고서 얻은 것은 아니었다. 검사로서 많은 성범죄를 수사하고, 재판에 관여하다 보니 얻게 된 경험칙이었다.

 

하지만 실제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법이 불완전하고 위험한 것은, 대부분 사람들의 진술에 의존해서 재판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기억은 불완전하다. 그런 기억에 기초한 진술은 부정확할 뿐더러, 때로는 이해관계에 따라 허위 또는 과장된다. 허위고소, 허위증언이 현실적으로 많이 일어나고 있다.

 

검사나 판사가 피의자에 대한 유죄심증을 가지는 것은 그야말로 제한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법을 집행하는 사람의 선입관이나 경험에 기초하는 것이다. 북성이 이번에 성추행범으로 몰려서 조사를 받게 되니, 성추행사건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던 그 남자가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여자의 신체를 만진 혐의로 현행범체포된 젊은 검사

 

한편, 명훈 아빠에 대한 수사를 담당하고 있던 홍북성(37, 가명) 검사는 늦게까지 수사를 하다가 함께 일을 하던 직원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신 다음 직원들과 헤어진 북성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혼자 또 다른 술집으로 갔다. 최근에 격무에 시달리고, 세상 돌아가는 것이 너무 뒤숭숭해서 술을 더 마시고 싶었다.

 

검찰이 너무 정치적인 사건 수사를 많이 하다 보니, 적이 많이 생겼다. 과거 정권 하에서 있었던 적폐청산을 한다고 많은 정치인들, 고위 공직자들, 기업인들을 수사하다 보니, 야당에서는 현 정권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면서 강력한 비난을 했다.

 

청와대에서는 검찰개혁을 강하게 추진했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조정문제도 중요한 현안이 되어 있었다. 이런 가운에 검찰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마무리짓기 위한 카드로 정권의 실세인 맹 장관이 법무부장관으로 지명되었다.

 

검찰에서는 맹 장관 후보에 대한 많은 제보를 바탕으로 내사한 결과 맹 장관에 대한 위법사실이 많다는 결론을 내리고, 형사입건을 한 다음,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그렇게 되자, 청와대와 법무부는 대검찰청을 강력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검찰총장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되자, 검찰이 잘못하고 있다는 쪽과 검찰이 잘하고 있다는 쪽으로 팽팽하게 나뉘어 심각한 갈등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홍 검사도 혼자 술을 마시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던 것이다.

 

홍 검사는 마른 안주를 시켜놓고 생맥주를 마셨다. 술이 취한 상태에서 시원한 생맥주는 참 맛이 좋았다. 500씨씨를 여섯 잔이나 마셨다. 일차에서는 소주를 마셨다. 술을 마시면서 술집에 있는 TV를 보고 있었다. TV에서는 어떤 장교가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북성은 그런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점잖은 사람들이 지하철과 같은 공공의 장소에서 여자의 신체를 의도적으로 접촉하고 그러다가 망신을 당하는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고위직 공무원이 성접대를 받았다는 사건 때문에 난리가 나고 있었다. 북성은 아직 젋어서 그런지, 그런 행태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혼해서 부인도 있는 나이 든 사람이 무엇 때문에 성접대를 받을까?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조선시대에서나 있을 법한 성접대를 받는다는 말인가? 너무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문제로 망신을 당하고, 잘못하면 감방에도 갈 수 있는 위험한 일인데, 왜 그런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북성은 술을 마시다가 화장실을 가려고 했다. 비좁은 통로에서 어떤 젊은 여자 손님과 비껴 지나가다가 균형을 잃고 여자쪽으로 넘어지려고 했다. 그러다가 여자 치마 쪽으로 손이 미끄러졌다. 여자는 치마를 입고 있었다.

 

여자도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몸을 비틀거리고 가다가 북성이 넘어지면서 여자의 히프 부위를 손으로 잡자 깜짝 놀랐다. 여자는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아니, 왜 몸을 만져요?”

 

여자는 고의적으로 히프를 만진 것으로 생각했다. 북성은 비좁은 곳에서 비켜지나 가다가 오른손이 여자의 엉덩이 부근을 지나쳤지만, 고의적으로 만진 것은 아니었다. 술에 취해 약간 비틀거렸고, 중심을 잡지 못해 술김에 여자의 엉덩이에 손바닥을 대고 지나가려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절대로 성추행을 할 의사는 없었다.

 

여자가 오해를 하고 소리를 지르자, 상황은 의외로 커졌다. 여자 일행 중 한 사람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북성의 멱살을 잡았다. 곧 바로 주먹으로 얼굴을 쳤다. 코피가 터졌다. 남자는 계속해서 오른쪽 무릎을 걷어 올리면서 낭심 부위를 세게 찼다.

 

북성은 급소를 맞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안경도 떨어져 깨졌다. 주변 사람들이 달라들어 북성을 붙잡아 앉혔다. 얼마 지나지 않자, 경찰관 2명이 출동했다. 경찰관은 강제추행죄 현행범으로 체포한다고 했다. 경찰관은 말했다.

 

귀하를 강제추행죄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귀하는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지구대로 가자고 했다. 북성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은 절대로 강제추행을 한 사실이 없다. 술에 취해 비틀거렸을 뿐, 고의로 만지지 않았다. 그것은 좁은 공간에서 여자가 오해를 한 것이다. 순간 술에서 깨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상황에서 경찰서에 끌려가면 큰 망신이다. 어떻게 하지?’

경찰관에게 잠깐 옆으로 가서 조용히 말 좀 하자고 했다.

나는 검사요. 저 여자가 오해한 거요. 그러니까 조용히 해결합시다.”

 

경찰관은 신분증을 보자고 했다. 북성은 검사신분증을 소지하고 있지 않았다. 사무실에 놓고 온 것이었다.

일단 지구대로 가시죠. 다른 사람들 이목도 있고. 정식으로 112신고가 들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지구대에 가서 잘 해명하세요.”

북성은 화가 났다.

아니, 내가 검산데, 술을 마셨지만, 여자를 추행이나 할 사람으로 보입니까? 이게 정당한 법집행입니까? 내가 무슨 현행범이라는 말이요? 내일 경찰서로 연락하겠소.”

안 됩니다. 지구대로 가셔야 합니다.”

 

실강이가 벌어지고 시간이 지체되자, 피해자인 여자와 그 일행이 난리를 쳤다.

빨리 경찰서로 가요. 저런 나쁜 인간은 구속해야 해요. 어떻게 남자 친구가 있는데 감히 여자 엉덩이를 주무릅니까? 반성도 하지 않고 있어요. 상습범인 것 같아요. 콩밥을 먹여야 해요. 피해자는 대학 강사예요. 술에 취하지도 않았고요. 대학 강사가 당하지도 않는 성추행을 당했다고 거짓말로 경찰에 신고했다는 말이예요? 빨리 끌고 갑시다. 우리도 갈 게요.”

 

북성은 화가 치밀었다.

이런 나쁜 사람들 봤나? 성추행을 하지도 않았는데 왜 뒤집어씌우고 때려? 너희들 깡패야?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이때 경찰관이 피해자 일행에게 조용히 말했다.

저 사람은 현직 검사예요. 조용히 해결하면 어때요?”

이 말에 일행은 흥분했다.

뭐라고, 검사라고! 검사는 여자 엉덩이 만져도 되고, 검사 아닌 사람은 감방 간다는 말이야? 저런 성범죄자가 무슨 검사야?”

술집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이 기이한 장면을 구경하면서 재미있어 했다.

저 사람이 현직 검사래!”

검사답게 생기지 않았는데! 날라리로 보이는데!”

검사가 저러겠어? 검사 사칭하는 거겠지?”

아냐 현직 판사도 지하철에서 성추행범으로 체포되었다고 뉴스에 나왔어.”

“‘판사나 검사가 더 여자를 밝히고 응큼하대.”

 

상황이 어렇게 되자, 경찰관은 어쩔 수 없었다. 경찰관은 북성의 팔장을 끼고 순찰차에 태웠다. 수갑까지는 채우지 않았다. 여자 피해자 일행은 따로 택시를 타고 경찰서로 왔다. 순찰차 안에서 경찰관은 말했다.

죄송합니다. 112신고가 들어왔고, 피해자가 저렇게 난리 치니 저희는 어쩔 수 없습니다. 경찰서에 가셔서 잘 해명하시기 바랍니다.”

 

북성은 말하자면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경찰서로 넘어간 것이다. 담당 수사관은 피해자에 대한 진술조서를 받았다. 북성에 대해서는 피의자신문조서를 받았다. 지문도 찍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내가 어떻게 경찰서에 끌려와서 조사를 받게 되었을까?’

 

홍 검사는 경찰관에게 양해를 구하고,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최 계장에게 연락을 했다. 최 계장은 수사관과 통화를 했다. 현재 경찰서에 성추행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있는 피의자는 현직 검사가 맞으니 선처해 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했다.

 

화장실 갔다가 돌아오는데, 이 남자가 손으로 히프를 만졌습니다.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이 사람은 손으로 제 히프를 밑에서 위로 훝었습니다.”

피해자의 주장이었다. 여자는 지나치게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고, 스타킹도 신지 않아 맨살이었다. 피해자 일행인 남자 한 사람과 여자 한 사람도 이 사건에 관해 참고인으로 진술을 했다.

 

테이블에 앉아 피해자와 가해자가 교차하는 장면을 직접 보았습니다. 가해자의 손이 피해자의 히프를 만지고 있어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피해자가 소리를 질러 제가 곧 바로 테이블에서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서 남자에게 왜 성추행을 했느냐고 따졌습니다.”

 

피해자와 일행의 진술에 의하면 북성의 성추행혐의는 충분히 증명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북성은 자신의 혐의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나는 절대로 피해자의 둔부를 만진 사실이 없습니다. 내가 술에 취해서 화장실을 가다가 피해자와 좁은 통로에서 비껴가려고 했는데, 중심을 잡지 못해 여자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잠깐 내 손이 히프에 닿은 것뿐입니다.”

 

홍 검사는 자신에 대한 혐의사실인 강제추행부분에 대해서만 상세하게 해명 차원에서 진술하였을 뿐, 자신을 폭행한 피해자 일행의 폭행이나 상해부분에 대해서는 진술하지 않았다. 공연히 사건을 크게 만들 것을 우려했다. 하지만 조사를 받는 도중에도 이곳 저곳이 쑤시고 아팠다.

 

피의자신문조서를 마친 다음 경찰에서 풀려나왔다. 최 계장은 경찰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최 계장은 북성을 집에 모셔다 드렸다. 북성은 너무 창피했다. 그러면서 억울하게 당한 점을 분하게 생각했다. 현직 검사가 물의를 일으켜서 큰일 났다는 생각 때문에 공황상태가 되었다.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다. 사람의 일은 한치 앞을 볼 수 없고, 알 수도 없다.

 

 

대리기사 잘못으로 음주운전에 걸린 재수 없는 남자

 

그 후 성균은 돈 많은 이혼녀를 애인으로 만들었고, 그 여자의 돈으로 인형뽑기방을 차렸다. 10평 규모의 점포를 얻어 인테리어를 간단하게 하고, 기계를 들여놓고 장사를 시작했다. 천원짜리 지폐를 넣고 고급 인형을 뽑아가도록 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장사가 잘 됐다. 특히 직원이 관리하지 않고 무인시스템으로 운영하는 것이어서 장점이 많아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달라들어 가게를 오픈했다.

 

그러나 일년쯤 지나자 갑자기 시들해져서 가게 월세를 낼 형편도 되지 못했다. 그래서 요새 고민이 많아졌다. 그렇다고 남자 체면에 또 애인에게 손을 내밀 입장도 아니었다.

 

성균은 정자와 한때 연애를 했었는데, 정자가 마음 잡고 결혼하자, 진정으로 정자가 잘 살기를 바랬다. 성균은 사랑하던 정자가 능력 있는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하자 무척 괴로웠다. 너무 괴로워서 한때는 죽으려고 생각도 했다. 성균은 이왕 죽을 바에야 혼자 죽지 않고, 정자와 같이 합의정사(合意情死)를 하는 것이 서로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닌가 고민했다.

 

일제강점기 때 현해탄에서 물로 뛰어든 <윤심덕과 김우진>의 러브스토리를 떠올리면서, <이룰 수 없는 사랑> 앞에서는 <두 마음의 영원한 정지><사랑의 완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떤 한국 영화를 보았는데, 무능력한 남자가 여자의 행복을 위해 능력 있는 남자에게 보내는 장면이 너무 아름답게 보였다. 영화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놓아주는 남자는 <작은 예수>처럼 성화되었다. 그 영화를 보고 성균은 정자와 같이 죽으면 안 되겠다고 굳게 마음 먹었다. 그리고 정자를 놓아주었다.

 

정자가 결혼생활에서도 속상한 일이 있으면 만나서 술을 사주면서 위로해주고, 참고 살라고 도닥거려주었다. 그런 인상 좋은 성균이기에 정자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은영의 문제에 대해 상의했던 것이다.

 

박 기사는 내 애인이었는데, 내 친구 은영을 강간한 나쁜 남자야. 그 때문에 나와 헤어졌고, 그 후 전혀 연락이 없었어. 최근에 은영이 명훈이라는 남자 아이를 임신했는데, 알고 보니 박 기사가 명훈 아빠 회사에서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는 거야. 박 기사는 은영이 아이를 낳으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수술해 버리라고 공갈을 치고 있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은영과 육체관계를 했다는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거야. 그러면서 박 기사는 나와의 과거까지 내 남편에게 이야기하겠다는 거야.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협박하고 공갈치는 무서운 사람이야. 이걸 어쩌면 좋지?”

 

성균은 정자가 하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성균은 마치 자신이 피해자인 것처럼 가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얼굴에 심줄이 돋기도 했다. 정자를 쏘아보는 눈빛이 너무 무서워서 오히려 정자가 더 겁을 먹었다.

 

. 알았어. 정자야. 걱정하지 마. 내가 처리해 줄게. 남자들끼리 이야기하면 다 풀리게 되어 있어.”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서 성균은 박 기사를 만났다. 성균은 자신이 은영의 친척이라고 소개했다.

내가 은영을 보호해야 하니까. 은영과 명훈의 문제에서 빠져. 알았지!”

 

뭐라고! 내가 누군지 알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야? 당신이 경찰관이야? 검사야? 은영이라는 여자가 나쁜 거야. 어린 대학생을 꼬셔서 임신해놓고, 그걸 가지고 돈을 뜯어내려는 게 얼마나 나쁜 악질이야!”

당신이 은영을 강간한 것을 고소하도록 할 거야. 당신 사장 만나서 당신 비행을 알릴 거고.”

 

마음 대로 해. 나는 이미 감방도 갔다 왔고, 아무 것도 잃을 게 없어. 당신도 나를 협박한 부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거야.”

나도 감방 갔다 왔어. 감방 갔다 온 게 무슨 훈장 받은 거냐? 좋은 말로 할 때 들어. 신상에 좋을 거야.”

 

성균은 더 이상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 같아 커피숍에서 나오려고 하는데, 갑자기 박 기사가 성균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먼저 공격을 당하자 성균의 본성이 드러났다. 평소 익힌 무술로 요리했다. 박 기사는 싸움에는 약했다. 성균을 당할 수 없었다. 엄청나게 두들겨 맞고, 무릎을 꿇었다.

 

잘못했어요. 형님! 살려주세요. 안 그럴게요. 은영 씨 사건에서 손을 뗄게요.”

너 같은 인간은 죽어야 해. 인간쓰레기야. 왜 사냐? ,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 몰라서 그래. 옛날 같으면 사시미칼로 회를 쳤을 거야. 지금은 내가 마음 잡고 조용히 살고 있어 봐주는 거야. 아무리 나쁜 인간이라도 왜 하필 돈 없고, 불쌍한 여자 아이들만 상대로 돈을 뜯어내려고 그러냐? 돈 있는 인간들한테 뜯어내지 않고. 은영은 정말 불쌍한 아이야. 이 나쁜 〇〇!”

 

성균은 무릎을 끓고 아파서 신음하는 박 기사를 훈계하다가 갑자기 또 정의감이 솟구쳐 오르자 구둣발로 무릎을 짓밟았다. 주먹으로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 무술로 다져진 성균의 주먹은 붉은 벽돌도 두 동강 내는 정도라 박 기사 눈에서는 불이 번쩍거렸다. 아마 뇌세포가 1억개는 사라진 것 같았다. 성균은 로마 시대 검투사로 원형경기장에 나타난 장군 출신 무사같이 보였다. 인간 세상에서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정의의 전사였다.

 

박 기사가 성균의 탁월한 무술에 놀라서 경의를 표하고 있는데, 성균은 또 오른쪽 손날을 세워 목을 내리쳤다. 목이 휘청거렸다. 박 기사는 땅에 머리를 박고 엎드렸다. 오늘이 제삿날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임자를 만난 것이다. 이러다가는 목이 부러지든지, 내장이 파열되든지, 두개골이 박살나든지, 박훈세 이름 앞에 ()’자가 붙을 것 같았다.

 

마음대로 해. 지금 가서 경찰에 신고를 하든가, 은영을 만나 사과를 하든가. 알았지? 은영이 시킨 건 아냐. 나는 서울에서 일어나는 일을 마음만 먹으면 손바닥처럼 다 알 수 있어. 너에 대해서는 사실 한달 전부터 뒷조사를 하고 있었어. 알았지! 이 쓰레기야.”

 

성균은 분이 풀리지 않아서 박 기사 얼굴에 침을 뱉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박 기사는 무척 아팠다. 하지만 경찰에 신고할 입장은 아니었다. 박 기사는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보름 동안 출근을 하지 못했다. 회사에는 핑계를 댔다. 술을 많이 마시고 가다가 깡패들을 만나 봉변을 당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성균은 정자를 만났다. 정자는 은영도 데리고 나왔다. 은영의 배는 이제는 표가 날 정도로 나와 있었다. 성균은 박 기사에게 앞으로는 은영의 문제에 끼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정자는 고맙다고 하면서, 성균에게 30만원을 주었다. 성균은 그 돈으로 같이 가서 식사나 하자고 했다. 세 사람은 저녁을 먹으러 돼지갈비집으로 갔다. 군자동 먹자골목에는 사람들이 많이 붐비고 있었다.

 

정자는 그 자리에서 은영이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며, 명훈을 만나 사랑하게 된 이야기, 명훈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를 꼭 낳고 싶다는 이야기, 명훈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세상을 잘 몰라서 저러고 있지만, 실제로는 은영과 결혼하고 싶어한다는 이야기, 박 기사가 가운데서 돈을 뜯어먹으려고 장난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소상하게 했다. 은영은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성균은 감동했다. ‘! 저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고생하고 살면서 한 남자를 사랑하고 아이를 가지고 있으니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여자의 마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정자는 흥분하여 술을 많이 마셨다. 성균에게도 술을 권했다. 성균은 차를 가지고 왔다면서 사양했다. 한 두 번은 사양했지만, 여자들이 센치한 분위기를 만들고, 나중에는 은영까지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 성균도 소주를 받아마셨다. 소주를 한 병 가까이 마셨다.

 

세 사람은 술을 마시면서, 세상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고 이구동성으로 한탄을 했다. 그러면서 힘을 합해서 은영을 도와주기로 했다. 은영이 명훈과 결혼하는 그 날까지 세 사람은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식당에서 정자 스마트폰으로 카카오 대리기사를 불렀다. 현재 성균이 혼자 살고 있는 오피스텔로 주소를 찍었다. 그 오피스텔은 이사간 지 보름밖에 되지 않았다. 대리요금을 결제하고, 성균은 대리기사가 운전하는 자신의 소나타 차량을 타고 갔다. 그런데 대리기사가 목적지라고 내려준 곳은 성균의 오피스텔이 아니었다. 그 오피스텔을 분양할 때 주소지로 등록되어 있던 오피스텔 모델하우스가 있던 지점이었다. 성균이 지금 입주해 있는 오피스텔과는 많이 떨어진 곳이었다.

 

성균이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아니라고 하면서 오피스텔 주소지를 다시 알려주자, 대리기사는 카카오대리운전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차에서 내린 다음 그냥 가버렸다. 성균은 대리기사와 시비를 하기가 싫어서 다시 카카오 아닌 일반 대리운전 회사로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대로에서 들어와 있는 상태여서 찾아오기가 어렵다는 취지였다. 성균은 큰 길로 나가서 대리기사를 부르려고 큰 길까지 직접 운전하고 나갔다. 큰 길로 나가서 대로변에 차를 세워놓으려고 했는데, 마침 그 곳에서 음주단속을 하고 있었다.

 

성균은 가슴이 철석 가라앉았다. 윤창호법 때문에 음주단속이 심하고, 음주운전을 하다 걸리면 무겁게 처벌된다는 사실을 TV에서 자주 보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성균은 5년 전과 3년 전, 두 차례 단순음주운전으로 입건되어 벌금을 낸 사실이 있었다. 말하자면 음주운전 전과가 두 번 있는 셈이었다. 이번이 세 번째가 되므로 법에서 말하는 이른바 삼진아웃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경찰관은 성균에게 불라고 했다. 성균은 세게 불지 않고 약하게 불었다. 그랬더니 경찰관은 성균에게 차를 옆으로 빼서 대고 내리라고 했다. 순찰차도 있었기 때문에 그냥 도망칠 수도 없었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도주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도망갔다가는 붙잡히게 되고, 더 큰 처벌을 받게 된다.

 

성균은 도망갈 생각을 포기하고 차에서 내려 순순히 음주측정에 응했다. 성균은 가까운 지구대로 가서 단속에 대한 확인서를 작성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출석해서 조사를 받으라는 취지였다.

 

성균은 돈도 없어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어, 혼자 경찰서로 갔다. 경찰관은 무척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성균이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성균의 억울한 사정을 잘 들어주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성균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는 성균이 음주운전을 했고, 측정된 음주수치가 맞는다는 내용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성균에게 임시로 운전할 수 있다는 증명서를 교부했다. 성균은 경찰관에게 물어보았다.

앞으로 제 사건은 어떻게 되나요?”

이번이 삼진아웃이기 때문에 검사님이 벌금으로는 해주지 않고, 정식재판에 회부될 것 같아요.”

조사관님! 저는 대리기사를 불러서 타고 가다가, 그 대리기사가 목적지가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저를 그냥 놓고 가버렸기 때문에, 큰길까지 나가서 다시 대리기사를 부르려고 했던 건데, 꼭 재판에 회부당해야 하나요?”

글쎄요. 그런 딱한 사정은 있지만, 어쨌든 음주운전을 한 것은 맞기 때문에 저로서는 어쩔 수 없어요. 검찰로 송치되면, 검사님에게 잘 설명해보세요.”

 

결국 경찰관은 부드럽게 성균의 딱한 입장을 다 이해하는 것처럼 태도를 보였지만, 법에 의해 자신이 할 것은 다 하고, 성균에게 원망을 듣지 않고, 검사에게 모든 책임을 넘기려는 것 같았다.

남의 여자 건드리고, 50대를 맞은 남자 이야기

 

명훈 엄마는 변호사 사무실을 나오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린 아들이 여자 좋아해서 그런 것은 이해하는데, 해도 너무한 것 같았다. 애인도 있고, 원하면 관계를 할 여자도 있는데, 하필이면 나이 먹은 주부를 강간하려고 했을까? 명훈 엄마 친정에는 성폭력범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성씨 집안은 왜 이 모양일까?

 

자신이 약사인데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성교육을 시킬 것을, 이번 사건도 피해자와 진작 합의를 할 것을, 자신이 엄마로서 모든 일을 그르친 것 같아 속이 상했다. 명훈이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데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것인지 걱정이 태산 같았다.

 

은영은 고민이 많아졌다. 일단 현재의 모든 상황을 정자를 만나 솔직하게 다 털어놓기로 했다. 정자에게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어 박 기사와의 관계를 이야기했다.

 

하는 수 없어. 박 기사를 상대하지 말고, 직접 아빠 회사를 찾아가 봐. 아니면 약국에 가서 엄마를 만나. 결혼시켜 달라고 하든지, 낙태할 테니까 3억원을 달라고 해. 빨리 결판을 져야 해. 이제 6개월이 다 되니까.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어. 그런데 내 생각으로는 결혼은 절대로 시킬 사람들이 아니니까 그냥 돈을 받고 수술하는 게 좋겠어.”

 

박훈세가 그렇게 나쁜 인간이 되었어! 그냥 둘 수가 없네. 나한테까지 해코지를 하려고 한다는 거지. 좋았어. 내가 손을 볼테니까 연락처를 줘. 은영아!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이를 낳아.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 돼. 남자란 일단 아이를 낳으면 완전히 달라져. 명훈네 돈이 많다면서. 이런 기회를 놓쳐서는 안 돼.”

 

정자가 어떤 말을 해도 은영은 아무런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머리 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식당에서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식사를 하는 젊은 부부가 아주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이는 인형처럼 귀여웠다. 은영은 배를 쓰다듬었다. ‘우리 아이도 저 애처럼 예쁘고 사랑스럽고 귀여울 거야.’ 그러면서, ‘아이를 낳아야지, 도저히 낙태를 해서 죽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태는 살인이다. 내가 돈을 받고 낙태를 하면 살인을 하는 것이다. 살아 있는 생명을 죽여서는 안 된다.’

은영은 정자에게 말했다.

내 사전에 절대로 낙태는 없어. 낳아서 잘 기를 거야. 명훈 씨와 결혼하지 않아도 좋아.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하니까.”

 

은영과 헤어지고 나서 정자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성균을 만났다. 성균은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싸움을 잘하던 깡패였다. 깡패란 사실 특별한 것도 아니다. 공부는 하지 않고 건달처럼 돌아다니다가 싸움이나 하고, 남에게 힘을 과시하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말한다. 겉으로 봐서는 근육질의 몸매도 좋고, 얼굴도 괜찮고, 성격상 화끈해서 의리도 있는 것 같지만, 남자 사회에서는 머리로 살지, 근육으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별로 대우는 받지 못한다.

 

성균이 그렇다고 아주 큰 폭력조직에 속한 것은 아니었다. 운동도 잘 하고 체격이 크고 인상이 험상궂게 생겼다. 그래서 사람들이 두려워했다. 감방에도 한 번 갔다 왔다. 어떤 건달이 성균의 애인을 건드렸기 때문에 참지 못하고, 다리를 부러뜨렸다는 이유에서였다.

 

성균은 무술을 배웠다. 검도도 하고, 태권도도 했다. 복싱도 2년간 했다. 성균은 건달을 크게 때리지는 않고, 단지 왼쪽 다리만 부러뜨리는 정도의 가벼운 상해를 가했다. 하지만 다리가 부러진 상대 입장에서는 결코 가벼운 상처가 아니었다. 멀쩡하던 생다리가 골절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건달은 결혼날짜까지 잡고 예식장도 예약해 놓았는데, 결혼식 일주일 전에 다리가 부러져서 하는 수 없이 결혼식을 연기하게 되었다. 기브스를 하고 신랑 입장을 했다가는 영화 대부장면처럼 보일 소지가 있었다.

 

상해진단은 겨우 4주밖에 나지 않았고, 흉기나 위험한 물건으로 상해를 가한 것도 아닌데, 젊은 검사가 흥분해서 구속영장을 청구해서 구속되었다가 무려 3개월 동안 감방에 가있었다. 그 검사는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성균에게 말했다.

 

아무리 기분 나빠도, 결혼식도 못하게 남의 다리를 부러뜨린다는 건 죄질이 나쁜 거야!”

성균은 대답했다.

검사님! 그 친구는 제 애인을 건드렸습니다. 그런 나쁜 사람을 가만둘 수 없지 않습니까?”

검사는 화를 냈다.

자네 애인이 먼저 수작을 부려서 하는 수 없이 그 친구가 건드렸다고 하잖아?”

아닙니다. 제 애인이 먼저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친구가 제 애인에게 술을 먹이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친구 다리가 워낙 약해서 골절이 된 겁니다. 그 친구는 맨날 술만 먹고 운동을 싫어하고 계집질이나 하고 돌아다니니까 다리가 부러졌지, 저는 가볍게 한번 찬 것밖에 없습니다. 정말 억울합니다. 그리고 결혼 날짜를 잡았다는 것을 제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만일 일주일 후에 결혼한다고 말했으면 제가 신혼여행 다녀올 때까지는 참았겠지요? 그런데 남의 애인을 강간해서 떡으로 만들어놓은 짐승 같은 O이 무슨 염치로 결혼한다는 말입니까?”

 

검사는 성균의 변명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건 보나마나 운동으로 다져진 체격과 딱벌어진 어깨, 얼굴에서 풍겨나오는 고약한 이미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감방에 있는 동안, 배신한 애인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잠을 못잔 날이 꽤 많았다. 만나면 즉시 박살을 내고 싶었다. 애인은 술에 취해 당했다고 했지만 검사 말을 들어보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감방에서 나올 때쯤에는 이상하게 애인 얼굴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성균은 같이 복싱을 하던 친구 양수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양수는 27살이었는데, 아직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장식이 양수의 애인과 같이 성관계를 한 사실을 알고 흥분했다. 양수는 25살 된 애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초지종을 들었다. 애인인 공희 말로는 장식이 술에 취한 자신을 공원 벤치로 데리고 가서 한번 했다는 것이었다.

 

애인은 나중에 술에서 깨어난 다음 장식에게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양수는 같은 동네에 사는 장식을 불렀다. 장식의 얼굴을 보자 마자, 양수는 욕을 퍼부었다.

 

, 이리 와봐. 네가 공희를 건드렸지! 이 나쁜 〇〇.”

아니에요. 저는 억울해요. 그 날 같이 술을 마시고 공원으로 가서 풀밭에서 한 번 한 것뿐이에요. 공희 씨도 제가 좋다고 하면서 같이 했어요.”

, 사정까지 했다면서? 이 나쁜 〇〇. 임신했으면 너 죽을 줄 알아!”

아니예요. 사정은 공희 씨가 하지 말라고 해서 밖에다 했어요. 정말이예요.”

 

양수는 장식의 말을 거짓말로 생각했다. 평소 공희가 술은 좋아했지만, 성관계만은 오직 양수하고만 하는 것으로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 아무래도 몇 대 맞아야겠다. 어떻게 할래? 잘못을 인정하면 맞고, 그렇지 않으면 맞지 말고.”

 

장식은 동네에서 양수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는 터라, 깨끗하게 맞고 끝내는 것이 좋겠다고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

, 형님! 맞을 게요. 잘못했어요. 하지만 공희 씨가 형님 애인인 건 전혀 몰랐어요. 술을 마실 때도 공희 씨는 남자 친구가 없다고 했어요. 그러나 어쨌든 제가 형님 애인과 한 건 사실이니까 맞을 게요.”

그럼, 맞을 각목을 가지고 와.”

 

장식은 공사 현장에 있는 각목을 하나 가지고 왔다. 땅에 엎드렸다. 체벌 장소는 장식이 공희 위에 올라갔던 역사적 현장인 그 공원 벤치 옆이었다. 양수는 장식을 때리기에 앞서서 공희를 불렀다.

 

장식이 맞는 장면을 지켜보도록 했다. 공희는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장식이 맞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만일 양수의 말을 거역했다가는 자신이 좋아서 장식과 그짓을 한 것이 들통날 수 있을 뿐더러, 각목이 거꾸로 공희에게 날라올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수는 장식의 엉덩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장난이 아니었으므로 아주 세게 때렸다. 다행이 장식도 운동도 했고, 덩치가 있었을 뿐 아니라 엉덩이에도 살이 많았다. 돼지고기도 엉덩이살이 맛있다. 그래서 장식은 양수가 각목으로 자신의 엉덩이를 세게 때리는 것을 참고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 20대쯤 맞게 되자 장식은 너무 아팠다. 땅에 엎어졌다. 이쯤 해서 그만 두었어야 하는데, 양수는 분이 풀리지 않았다. 더군다나 장식이 땅에 엎드린 자세에서 엉덩이를 들썩거리니까, 장식이 공희의 위에 올라가서 엉덩이를 들었다 내렸다 하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그래서 양수는 장식의 엉덩이가 더욱 더럽게 느껴졌다.

이놈이 내가 사랑하는 여자, 공희의 위에 올라가서 저렇게 살찌고 더러운 엉덩이로 〇〇를 하고 〇〇을 했겠지?’

 

이런 생각을 하니까 더욱 화가 치밀고 용서할 수 없었다. 폭행을 가하는 입장에서는 본인도 이성을 잃고 흥분하게 된다. 이때 옆에서 말리는 사람이 있으면 말려줄텐데, 아무도 없는 으슥한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말릴 사람도 없다.

 

장식이 일어나 같이 대들고 싸우면 일은 커진다. 장식은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맞기로 했으니까, 오로지 가해자인 양수에게 인간적인 호소만 할 뿐이었다. 양수는 무려 50대를 때렸다. 양수는 때리면서 흥분해서 정확하게 몇 대를 때렸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양수는 가해자 입장이라, 몇 대 때린 것 같지 않았지만, 맞고 있는 장식은 그렇지 않았다. 맞으면서 이를 악물고, 정확하게 양수가 때리는 타격횟수를 세고 있었다. 장식은 맞으면서 아픈 통증도 문제였지만, 혹시 엉덩이를 세게 맞아 나중에 생식기능에 장애가 생길까봐 공포에 떨었다. 전에 어떤 남자가 군대에 가서 기합을 너무 세게 받아 야구방망이로 엉덩이를 맞았는데, 그 후유증으로 아이를 낳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장식은 집에 와서 부모에게 들켰다. 난리가 났다. 병원으로 치료를 받으러 가고, 장식의 부모는 양수를 고소했다. 양수는 폭력행위로 재판에 넘겨졌다. 장식은 이 사건을 통해 여자를 만날 때, 여자가 애인이 있거나, 남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즉시 그만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실컷 두둘겨맞고 뒤늦게 깨달은 진리였다.

 

만일 그 여자의 남자친구 또는 남편이 알게 되면 정말 매우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인이 있는 상태, 남편이 있는 상태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는 여자가 첫 번째로 나쁘다. 애인이 알게 되거나, 남편이 알게 되면 어떻게 하려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가? 더군다나 성관계를 맺는가?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치정사건이 많이 일어났다. 그것은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다. 자신의 애인 또는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 연애를 하고,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성을 잃고 흥분하게 된다. 자신의 여자를 빼앗겼다는 생각에 무조건 남자를 원수로 알고 폭행하거나 복수하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것은 여자가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남편이 알아도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거짓말을 한다. 애인이 알아도 이해하거나 아니면 헤어지면 될 것이라고 안심을 시킨다.

 

이런 여자의 말을 들으면 안된다. 모든 책임은 남자에게 있다. 정말 여자의 남편이나 애인이 연애사실 또는 성관계사실을 알아도 감당할 자신이 있거나 용기가 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무조건 관계를 끊어야 한다. 당장 헤어져야 한다. 그것이 세상을 편하게 사는 방법이고 신상에 위험을 없애는 방법인 것을 장식은 가슴 속에 깊이 새겼다.

검찰수사를 피해 해외로 도피하다

 

명훈 아빠는 또 다시 검찰청에 출석했다. 이번에도 역시 변호사를 대동하고 갔다. 검찰에서 특별수사를 할 때는 반드시 변호사를 데리고 가서 참여시키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원래 수사기관에서 조사받게 되면, 수사관은 제일 먼저 피의자에게 귀하는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고지한다.

 

일반 사람들은 이러한 고지내용을 빠른 속도로 듣고, 지나가는 말로 간단하게 생각하고 넘어간다. 진술거부권과 변호인 조력권은 결코 간단한 권리가 아니다. 피의자나 피고인, 범죄혐의자는 묵비권과 진술거부권을 가진다. 또한 자백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도 가진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범죄사실을 부인할 수 있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라는 것도 그렇다. 간단한 사건이라면 몰라도, 처음 검찰 조사를 받는 사람은 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변호사를 참여시키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 일반인은 경찰이나 검찰청에 가서 피의자의 신분으로 앉아 있으면, 처음부터 기가 죽게 되고,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다.

 

검사는 사전에 고소인이나 참고인, 또는 제보자들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조사를 해놓고, 그런 다음 피의자를 소환하는 것이기 때문에 검사가 갑자기 이런 저런 질문을 하면, 피의자는 당황하고 횡설수설하게 된다.

 

변호인 참여의 의미는 이렇다. 변호사가 피의자신문과정에 참여한다고 해도, 민사소송과 달라서 형사사건에서는 변호사가 피의자를 대신하여 조사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진술이나 답변은 피의자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 변호사는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을 뿐, 그때그때 피의자가 답변해야 할 사항을 코치하거나 어드바이스하지 못한다.

 

피의자가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으면, 잠시 휴식시간을 요청하여 그 때 피의자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다. 조사가 끝난 다음, 피의자신문조서를 읽어보고 제대로 기재가 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해준다.

 

지금까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피의자는 시청 공무원에게 돈을 준 정황이 많이 드러나고 있어요. 공무원에게 돈을 준 것을 사실대로 이야기해요. 그렇지 않으면 이 수사가 언제까지 갈 지 모르고, 회사는 부도날 위험이 있어요. 자꾸 공무원을 감싸고 돌다가 본인에게 큰 피해가 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정말 시청 공무원에게 돈을 주지 않았어요. 왜 돈을 줍니까? 적법하게 건축허가를 받았고, 설계사무소를 통해 허가를 받은 거예요. 부정한 청탁을 한 사실도 없고, 뇌물을 준 사실도 없어요.”

 

검사는 공무원과 만난 사실에 대해 상세하게 파고들었다. 검사는 회사 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업무상 횡령 부분에 대해소도 조사를 하고 있었다. 오피스텔을 사서 살게 해준 애인인 술집 마담까지 소환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마담은 단순한 참고인이기 때문에 강제수사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어 변호사가 출석하지 않겠다는 사유서를 써서 내고 나가지 않았다. 검찰 수사가 계속되자, 명훈 아빠는 변호사에게 말했다.

 

도저히 안 되겠어요. 일단 일본으로 나가 있다가 수사검사가 인사이동으로 다른 곳으로 전근가면 그때 들어와 조사를 받겠습니다.”

해외에 나가있으면, 그 동안은 공소시효가 정지됩니다. 그리고 도주한 것으로 보아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도 있어요.”

그래도 지금처럼 검사가 강하게 수사를 계속하면 저는 구속되고 회사는 부도나게 돼요. 제가 밖에서 수습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명훈 아빠는 출국금지조치가 되어 있는 지 여부를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직접 가서 확인해보았다. 신분증만 가지고 본인이 가면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출국금지가 되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 준다. 그 자리에서 출국금지조치가 되어 있다고 해서 경찰이나 검찰에 통보하지는 않는다.

 

명훈 아빠는 검찰청에 출석하기로 약속한 날 전날, 간단한 짐을 싸가지고 일단 일본으로 출국했다. 다행이 검찰에서 명훈 아빠에 대한 출국금지조치는 해놓지 않고 있었다. 검사는 명훈 아빠가 그동안 순순히 조사에 응하는 것으로 보아 해외로 도피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출국금지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명훈 아빠는 출국한 다음, 변호사를 통해서 급한 용무가 있어서 일본에 출장갔다고 알려주었다. 조만간 귀국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일본 동경에 간 명훈 아빠는 식당을 하고 있는 전 사장을 만났다. 당분간 일본에 머무르면서 사업할 것을 알아보려고 왔다고 했다.

 

한편 명훈 엄마는 아빠가 일본으로 떠난 다음, 혼자서 회사 일도 챙겨야 했고, 명훈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명훈을 데리고 변호사 사무실에 갔다. 강 변호사는 매우 지적으로 보였다. 서른 살이 갓 넘은 젊은 변호사였다.

 

TV에도 많이 출연하고 있는 이혼 전문 변호사로 유명하다. 결혼도 한 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그 다음 단계인 이혼에 관한 전문가가 되었는지 일반인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아무튼 이혼 소송에서 승소율이 100%라고 소문이 났다.

 

경찰 조사 받을 때 이렇게 하세요. 일단 모두 부인하세요. 강간한 사실 자체를 부인해요. 술에 취했지만, 완전히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다고 하면 안 돼요. 정신은 있었다고 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 여자 말은 다 증거로 인정되고, 조사받는 사람 말은 아무런 증거가 되지 못하고, 그 여자 말대로 모두 뒤집어쓰게 돼요.”

 

그럼 어떻게 했다고 말하면 좋을까요?”

술을 같이 마시고, 모텔에 가서 쉬겠다고 했더니 그 여자가 데려다 주었고, 잠깐 같이 방에 있다가 그 여자가 가겠다고 해서 조금 더 있다 가면 좋겠다고 손을 잡았더니, 화를 내면서 뿌리치고 나갔다고 하세요. 그리고 조금 있다가 그 여자가 친구를 데리고 와서 맥주집으로 끌고 가서 난리를 치면서 부르는 대로 쓰라고 하고 사인을 했다고 해요. 아무런 증거가 없잖아요. 서로의 주장이 다르고 의심스러울 때는 피해자의 이익이 아니라, 피고인의 이익으로 재판하는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근데 사실은 제가 침대에 눕히고, 바지를 벗기고 팬티까지 내렸어요. 그리고 하려다가 말았는데요. 거짓말해도 괜찮을까요?”

그거 본 사람 없잖아요? 방에 CCTV도 없었고? 그 여자가 휴대폰으로 녹음한 것도 아니고, 각서는 어디까지나 두 여자가 강압적으로 협박하고 겁을 주어서 사인한 거라고 하면 돼요. 증거재판주의잖아요? 증거재판주의!”

 

맞아요. 정말 저는 안 했어요. 그 여자 위에 올라가기는 했어도, 삽입은 않했어요.”

명훈은 흥분해서 이런 식으로 말을 했지만, 막상 상대가 젊은 여자변호사라는 생각이 들자 순간적으로 아차 싶었다. 당시의 상황이나 행위에 대한 설명을 너무 적나라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식으로 답변하면 불리해요. 아예 처음부터 모두 부인을 하든가 해야지, 강간하려고 했다고 하면, 그 자체로 기수나 미수 모두 비슷하게 무겁게 처벌을 받는 거예요. 조사를 받는 피의자가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는 것은 법에서 허용되는 거예요. 피의자에게는 묵비권, 진술거부권, 자백을 강요 당하지 않을 권리가 헌법이나 형사소송법에 보장되고 있는 거예요.”

 

여자 변호사는 법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었지만,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고 연애나 하고 클럽이나 다니던 명훈에게는 무슨 말인지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묵비권은 무엇이고, 진술거부권은 무엇일까? 부인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자백을 강요받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권리인지 알 수 없었다.

 

피의자는 무슨 말이고, 피의자가 혐의를 부인한다는 것은 실제 제가 강간을 했어도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한다는 뜻인가요?”

 

어떤 범죄사건에 있어서 범인이 형사재판을 받게 되는 경우에는, 형사소송법상 법적 신분이 피고인(被告人)이라는 어려운 한자말이 되는 거예요. , 피고인은 형사재판에 넘겨진 사람이라는 의미지요. 이에 반해서 피의자(被疑者)라는 말은 범죄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예요. , 수사대상자를 가르키는 거예요. 피고인에게는 사람 인()자를 쓰는 대신에 피의자에게는 놈 자()를 쓰고 있어요. 그리고 피의자가 범죄혐의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사실을 자신이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도 포함하는 것이예요.”

 

혹시 경찰관이 거짓말탐지기 측정을 하자고 하면 동의하지 말아요. 부정확할 뿐더러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거니까요.”

늙은 회장 병간호를 하고 10억원을 받은 술집 마담

 

명훈 아빠는 일본으로 출국해버릴까 생각도 했다. 마침 동경에서 아는 여자가 식당을 하고 있었다. 명훈 아빠가 젊었을 때 자주 다니던 룸살롱 마담이었는데, 서울에서 돈을 많이 벌었다. 그 여자는 나이 많은 사장 애인이 되어 1년을 지냈는데, 그 사장이 갑자기 암에 걸려 죽으면서 마담에게 10억원을 주었다. 그 사장은 자식들이 열심히 살지는 않고, 아버지 재산만 서로 탐을 내고 있어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마담이 병문안을 자주 오고, 많은 위로를 해주었다. 마담이 돈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아껴주는 것을 느낀 사장은 어차피 자식들에게 돌아갈 돈, 자신은 쓰지도 못하고 죽을 돈을 모두 자식에게 주는 것은 너무 아깝고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죽기 한 달 전, 마담에게 10억원이 들어있는 자신의 통장을 주면서 수표로 인출해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마담이 은행서 수표를 찾아다 건네주자, 사장은 수표에 배서를 한 다음 마담에게 말했다.

 

“이 돈은 자네를 위해 주는 것이니, 아무 부담 느끼지 말고 가지고 있어. 그동안 고생 많이 한 거 알아.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도 알아. 이제 술집 나가지 말고 이 돈으로 장사나 하면서 살아. 그동안 나를 위해 병원도 자주 와주고, 간호해준 거 잊지 않을게. 고마워. 정말.”

 

그런 다음 한 달이 지나서 사장은 세상을 떠났다. 마담은 문상을 가서 많이 울었다. 사장의 가족들은 젊은 여자가 문상 와서 슬프게 울고 있으니 이상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마담은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사장의 가족보다 오히려 자신이 정말로 슬픈 사람이라는 사실에 ‘아! 내가 정말 사장님을 인간적으로 좋아했구나. 정이란 바로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마담은 더 슬프게 울면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이런 미담 겸 행운 스토리를 전해 들은 주변 사람들은 마담을 몹시 부러워했다. 그리고 너무 배가 아팠다. 술집에서 같이 동고동락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현금 10억원을 걸머쥐고 술집 생활을 그만 둔 행운이 어떻게 그 마담에게만 돌아갔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특히 그 마담은 술집 생활할 때 오직 돈 밖에 모르는 여자로 소문났고,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인색한 구두쇠였기 때문이었다. 그 후 술집 아가씨들도 마담 흉내를 내서 단골손님 가운데 돈 많고 늙어서 죽을 날이 멀지 않은 사람들을 눈을 씻고 찾아보았으나 그런 영감은 눈에 띄지 않았다.

 

돈 많은 단골손님들은 대개 55세 전후였는데, 자신보다 30살은 어린 어린 여자를 찾고 적어도 95세를 최소한의 생존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회장급 손님들이 죽으려면 앞으로 40년이 더 필요했다. 그리고 40년 후면, 그때는 술집 아가씨들도 70살이 넘어 회장 병간호를 하기 전에 이미 요양병원에 가있을 것이었다.

 

한편, 명훈은 학교를 다니고는 있어도 정신이 없었다. 강간사건도 해결되지 않고, 은영은 수술하지 않고 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아빠가 검찰청에 왔다 갔다 하면서 조사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명훈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은영이 문제는 엄마가 쉽게 해결해 줄 것으로 믿었는데, 아직 아무런 진전이 없다. 은영에 대해서는 명훈은 처음부터 아무런 죄의식이나 책임의식이 없었다.

 

‘요새가 어떤 세상인데, 몇 번 연애를 한 것 가지고, 남자 모르게 임신하고, 아이를 가지고 공갈친다니 정말 나쁜 여자다. 아이를 낳아서 키우든가, 낙태를 하든가 마음대로 해라.’

 

이렇게 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 저절로 해결될 문제로 생각했다. 전적으로 은영이 나쁘고, 자신은 억울한 피해자였다. 정말 재수가 더럽게 없어 이런 거지같은 여자를 만난 것이었다. 하필이면 그때 가임기라 임신을 한 것은 백만불의 일의 확률로서 맑은 하늘에 벼락을 맞고 죽는 것과 마찬가지인 불행한 사건이었다.

 

강간사건도 술에 취해서 실수한 것인데, 하필이면 나이 많은 가정주부가 클럽에 와서 어린 애들 행세를 하다가 당했다고 하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동안 만났던 여자들은 지금 생각해 보니 모두 천사였다. 세상 모든 여자들이 그런 줄 알았다. 서로 즐기고 놀고, 쿨하게 헤어질 줄 아는 서구문화를 제대로 받아들인 여자들이었다.

 

일부 여자들이 돌연변이 염색체를 가지고 세상을 어지럽히고, 착하고 순진한 명훈이 같은 남자들을 괴롭히고, 이용해 먹고 돈을 뜯으려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정명훈 씨지요? 경찰선데요. 강간죄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경찰서로 신분증을 가지고 출석하시기 바랍니다.”

“예! 무슨 말씀이세요. 요새 보이스피싱이 많아 경찰서라고 사칭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던데요. 저는 강간한 사실이 없어요. 전화 끊어요.”

 

명훈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자신이 모텔에 가서 나이 많은 여자와 성관계를 하려고 했던 사실은 있으나, 그것은 분명 강간죄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경찰관이 전화를 걸어 분명히 명훈이 이름을 이야기하면서 강간죄로 고소를 당했다고 하니 이것은 분명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보이스피싱 수법으로서 어떤 나쁜 사기꾼이 돈을 뜯어내려는 수법이다. 명훈은 단호하게 강간한 사실이 없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전화를 끊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관에게서 출석을 요구하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경찰서에서 이런 문자메시지가 왔어요.”

명훈 엄마는 크게 놀랐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올 것이 왔구나! 큰일 났네.’

명훈 엄마는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거기 경찰서지요? 수사관님 계세요? 정명훈의 보호잔데요.”

“예, 정명훈 씨가 강간죄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출석하도록 해주세요. 출석을 거부하면 체포장이 발부될 수 있습니다.”

 

명훈 엄마는 급히 아는 변호사에게 연락했다. 일단 변호사는 선임계를 내고 경찰서에 같이 가서 변호인참여를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명훈을 만나 수사에 대비하겠다고 했다.

 

한편, 은영은 명자를 만났다. 명자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상황을 모두 이야기했다. 은영은 자신을 강간했던 장본인 박훈세가 명훈 아빠 기사로 일하고 있다는 것, 돈을 1억원 받아 줄테니 낙태시키라고 공갈을 치고 있다는 것, 자신과 성관계를 했다는 사실을 약점으로 잡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명자는 깜짝 놀랐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싶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지? 그 사람이 너의 과거를 다 이야기하면, 명훈 씨도 마음이 달라질 것이고, 그 집안에서도 난리날 거 아냐?”

“일단 나는 그 사람을 모른다고 했어. 그 사람이 나를 강간했다는 사실도 딱 잡아뗐어. 오래 된 일이고, 아무런 증거가 없으니까? 그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해. 설사 명훈 엄마나 명훈이가 물어도 나는 딱 잡아뗄거야. 다만, 제인을 만나 그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제인도 시집가서 잘 살고 있는데 피해가 갈 수 있고, 나를 원망할 지 몰라서 걱정이야.”

 

“그럼 정자에게 말해줘야 하는 거 아냐? 혹시 모르잖아. 흥신소 시켜서 정자 전화번호나 사는 곳을 알아낼 수도 있잖아? 큰일이다. 일이 너무 복잡해지는 것 같아.”

 

“아냐, 정자에게는 말하면 안 돼. 놀라 자빠질 거야. 내가 알아서 처리할 게. 더 이상 명훈네와 연락하지 않고 나 혼자 아이를 낳은 다음 연락하면 어떨까? 그때는 이미 아이를 낳았으니 어쩌지 못할 거 아냐?”

며칠 후 박 기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명훈 엄마에게 말했어. 1억원을 주고 해결하겠다고. 그러니까 1억원을 받으면 반반씩 나누자. 은영이는 5천이면 충분하잖아. 내가 돈을 어렵게 받아주는 거니까. 아이는 빨리 수술하고 명훈과는 헤어져. 요새 명훈 아빠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어 곧 구속되고 부도날 것 같아. 그러면 아이를 낳아봤자 양육비도 못받아. 5천 가지고 커피집이나 하나 차려. 그리고 능력 있는 남자 만나면 돼. 알았지, 빨리 결정해야 돼. 명훈 아빠 구속되면 이 돈도 못 받아.”

 

“걱정 마세요. 제가 직접 명훈 씨를 만나서 해결할 게요.”

“그건 안 돼. 명훈이는 은영이를 안 만날 거야. 내가 못만나게 했으니까.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은영의 과거에 대해 모든 걸 폭로할 거야. 그러면 모든 게 끝이야.”

 

더 이상 박 기사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전화를 끊고 더 이상 받지 않았다. 명훈에게 전화를 했다. 전원이 꺼져 있었다. 명훈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은영은 메시지를 남겼다. 전화를 해달라는 취지였다. 그래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 작은 운명 (227)

구속의 위기에 처한 피의자의 죽을 것 같은 고통

 

명훈 아빠는 계속해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번에는 시청 건축과장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혐의에 대해 추궁을 받았다. 명훈 아빠가 최 과장과 자주 만나고 식사를 한 사실과 명훈 아빠가 객관적으로 허가를 받기 어려운 장례식장 건축허가를 받은 사실에 대해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제보를 한 것이었다.

 

검찰에서 명훈 아빠 회사에 대해 특별수사를 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주변 사람들은 이때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추가로 제보를 하는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남이 잘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남이 망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는 사람이 장관이나 국회의원이 되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아는 사람이 구속되어 구치소로 향하는 뉴스가 나오면, ‘저렇게 잘난 척하더니 잘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검사는 명훈 아빠와 건축과장을 둘러싼 많은 의혹에 관한 제보는 받았지만, 막상 당사자들을 조사해보니 두 사람 모두 완강하게 범죄사실을 부인하고 있었다. 검사는 제보 내용이 너무 구체적이고 확실해서 강한 심증을 형성하게 되었고, 그런 상태에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검사는 두 사람의 핸드폰 통화내역과 은행계좌 거래내역, 건축허가 관련 서류 등을 모두 압수하여 조사를 벌였다. 더 나아가서 최 과장이 처리한 건축허가건을 모두 들여다보았다. 특히 민원이 많은 장례식장에 대해 왜 건축허가를 내주었는지에 대해 허가과정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검찰에서는 회사의 자금의 흐름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었다. 컴퓨터와 핸드폰이 모두 압수됨으로써 그 안에 들어있는 자료가 모두 검사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명훈 아빠가 여러 여자들과 주고받은 내용이 들어있어 수사관들이 읽어보면 여자관계가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야한 동영상과 여자 나체사진, 성관계장면을 다운받아 놓은 것도 있었다. 개인의 사생활이 속속들이 까발려지는 것이 수사과정이다.

 

이렇게 계속된 조사를 받다보니 명훈 아빠는 지치고 말았다. 더 이상 검사와 싸울 힘이 없어졌다. 검사는 끝장을 보려고 마음 먹은 것 같았다. 회사는 엉망이 되었다. 직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일부 직원은 자신도 문제가 될까 걱정이 되어서 그런지 사표를 내고 출근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직원은 아예 전화도 않았다. 세상은 이렇게 비정한 것이다.

 

TV를 켜니, 승객 157명을 태우고 에티오피아를 떠나 케냐 나이로비로 향하던 에티오피아항공 여객기가 이륙한 지 6분만에 추락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에티오피아는 6.25 전쟁 때 한국에 파병을 했던 참전국이다. 명훈 아빠는 생각했다.

 

‘아! 사람의 운명은 저렇게 한 순간에 끝날 수 있구나. 그 비행기에 탔던 사람들은 아무도 그런 사고가 자신이 탄 비행기에서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라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일 텐데, 얼마나 억울할까? 남은 가족들은 그 슬픔과 아픔을 어떻게 견뎌내며, 또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명훈 아빠는 채널을 돌렸다. CCTV에서 어떤 남자가 주먹으로 붉은 벽돌을 격파하고 있었다. 대리석도 격파했다. 그의 손을 보여주는데 크고 아주 딱딱하다. 마지막으로 손으로 나무에 대못을 박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나무에 대못을 조금 박아놓고, 오른 손 바닥으로 대못을 끝까지 박았다. 그 다음에는 오른 손 등으로 대못을 박는데, 망치로 자신의 오른 손 등을 쳐서 대못을 끝까지 박는 것이었다.

 

어떤 여자는 9살 때 시작해서 18년 동안 훈련을 했다는데, 네모난 유리 상자를 바닥에 놓고 뒤로 머리부터 박스 안에 들어가 온 몸을 구부려서 집어넣었다가 다시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사람의 능력은 무한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는 장면들이었다. 그런데 명훈 아빠는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무엇인가? 아무 것도 아닌 존재였다. 오직 수사대상에 불과한 껍데기 존재였다. 명훈 아빠는 담당 변호사를 만났다.

 

“변호사님. 일부 혐의사실을 자백하고 수사를 빨리 끝내달라고 하면 어떨까요?”

“글쎄요.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예요. 검찰 특별수사는 아무런 제한이 없기 때문에 검사가 독하게 마음먹고 계속 들이파면 골치 아픈 거예요.”

 

“범죄사실을 시인하면 검사가 곧 바로 구속영장을 치지 않을까요? 구속되면 안 되잖아요? 차라리 지금 단계에서 어디 가서 숨어있으면 어떨까요? 지금 제 사건을 맡고 있는 박 검사가 정기인사 때 다른 곳으로 가면, 그때 가서 자수를 하면 안될까요?”

 

“글쎄요. 다음 정기인사 때 박 검사가 다른 곳으로 갈 것은 같아요. 그러나 도망가면 지명수배 되고 기소중지될 거예요. 그러면 회사는 어떻게 하려고요?”

“회사는 제가 구속되나 도망가 있으나 힘들어 지는 건 마찬가지예요.”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나누었지만, 도망간다는 것도 어렵고, 구속되는 것은 더 어렵기 때문에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작은 운명 (226)

옛날에 정을 통한 사실을 가지고 공갈을 치는 남자

 

다음 날, 운전기사가 명훈 엄마에게 물었다. 박 기사는 지난 번 호텔에서 강남역까지 태워다 준 여자가 바로 은영이라는 사실을 알고 어떻게 명훈 엄마가 은영을 알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고 있었다.

 

“사모님. 지난 번 모셔다 드린 여자 손님 있잖아요? 그 중 한 사람은 제가 옛날에 만난 적이 있는 여자예요. 사모님이 잘 아는 사람들이예요?”

명훈 엄마는 갑자기 귀가 번적 띄었다.

“아니. 누구를 알아요? 어떤 여자를 아는 거예요?”

“그때 비싼 옷 입은 여자 말고, 아주 싸구려 옷 입고 나온 여자 말이예요.”

“그 여자를 만나 볼래요? 만나서 잘 설득시켜봐요. 내가 수고비는 톡톡히 줄테니까.”

“연락처는 모르는데요? 아주 오래 전에 만났던 사람이라.”

“연락처는 내가 알고 있으니까 만나서, 좋게 해결 해봐요.”

“예. 사모님.”

 

박 기사는 은영에게 전화를 했다. 자신이 명훈 아빠 기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은영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의 제의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은영 씨. 오랜 만이예요. 잘 지냈어요? 이야기 들으니까 제가 모시는 사장님 손주를 가졌다면서요? 축하해요. 부잣집 며느리가 되면, 팔자 고칠 거예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할 말이 뭐예요?”

 

“사모님에게 먼저 말했어요. 은영 씨를 내가 잘 아는 사람이라고.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했어요. 은영 씨는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아이를 수술해요. 내가 돈을 받아줄테니. 얼마를 원해요? 까놓고 이야기해요. 우리끼리니까. 한 1억원 받아줄까 하는데, 그 정도면 충분하지요?.”

 

“무슨 말이예요? 돈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예요. 명훈 씨를 사랑하고 있어요. 명훈 씨 역시 나를 사랑하고, 우리는 아이 때문에 헤어질 수 없어요.”

“나와 성관계한 거 말하면 모든 것이 끝날텐데요? 그때 나와 육체관계하고 사랑하다가 배신하고 다른 남자에게 간 것도, 사과하지 않는 은영 씨 태도도 용서할 수 없어요. 나는 모든 사실을 폭로하고 직장 그만두면 돼요.”

 

“아니, 언제 내가 당신과 성관계 했어요? 무슨 사랑을 하고 누가 배신했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해요? 정말 나쁜 사람이고, 무서운 사람이네요. 나를 언제 봤다고 공갈을 쳐요?”

“내가 은영 씨 친구 제인과 같이 연애했던 것, 은영 씨도 잘 알잖아요? 자꾸 그러면 내가 제인을 만나서 삼자대면을 할게요. 그렇게 딱 잡아뗀다고 될 줄 알아요? 명훈네는 돈이 많아 심부름센터를 시키면 모두 다 알아낼 수 있어요.”

 

은영은 소름이 끼쳤다. 그때 강제로 처녀를 빼앗고, 상처를 준 악마였다. 더군다나 제인이라는 경자의 애인으로서 애인의 친구인 은영을 겁탈한 것이다. 그때는 어리고 세상 물정을 몰라서 당했고, 당한 다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울고만 있었다. 그런데 그런 악한이 지금 또 악연이 되어 명훈네 기사로 있다니,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게다가 박 기사가 정자를 찾아내서 공갈치면 부잣집에 시집 가서 잘 살고 있는 정자의 가정이 파탄 날 위험성이 있었다. 은영은 정말 법만 없으면 박 기사를 죽이고 싶었다. 세상에 이렇게 나쁜 인간이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고 있다니 끔찍했다.

 

“당신은 나쁜 사람이네요. 좋아요. 마음대로 해요. 다 이야기해요. 나도 끝까지 씨울테니까.”

“은영 씨는 나를 잘 몰라서 그래. 그때 은영 씨나 제인 씨를 만날 때는 대학에 다니고 행복했어.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님이 사업에 실패하고 자살하셨어.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들어갔다가 돌아가시고, 나 혼자서 고생하고 살았어. 그러다가 마약조직에 끌려들어가 감방을 갔다 왔어. 그래서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어. 지금 겨우 맘잡고 기사로 일하고 있어. 그런데 은영 씨 문제를 알게 된거야. 사모님은 은영 씨 문제를 해결하면 나에게 천만원을 준다고 약속했어. 지금 은영 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내가 가만있을 수 없다는 걸 이해해줘. 그리고 객관적으로 볼 때도 은영 씨가 어린 남자 아이를 갖고 돈을 뜯어내는 건 옳지 않아.”

 

은영은 말없이 듣고 있었다. 박 기사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자신이 잘못한 것은 다 빼버리고, 세상 모든 일을 자신의 입장에서만 정당화시키고 있었다.

 

“나는 비록 감방에는 갔다 왔지만, 지금은 정말 바르게 살고 있어. 감방에 간 것도 아무런 죄도 없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거였어. 고소한 사람이 검사와 짜고 집어넣었어. 하지만 그런 검사나 고소인을 원망하진 않아. 모든 게 내 탓이고, 내 잘못이었다고 생각해. 객관적으로 오해 살 일을 한 건 나였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정의의 사자로 변했어. 그래서 나쁘거나 사악한 인간에 대해서는 절대로 참지 않아. 알았지?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들어. 돈은 내가 받아줄 게. 1억원은 받아줄 거야. 그 이상 더 욕심 부리면 큰일 나. 지금 TV를 봐. 돈 많은 재벌들도 더 욕심 부리다 감방 가잖아.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던 사람들이 늙어서 경로당 가서 바둑이나 장기나 두고 있으면 편하게 여생을 보낼텐데, 장관인가 비서실장인가 뭔가 하다가 감방 가 있잖아. 다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을 부리다가 패가망신하는 거야. 그러다가 감방 가서 죽으면 무슨 소용 있어?. 얼마나 어리석을까? 은영이는 그러지 마. 내가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이라 아끼고 싶어서 이런 충고를 하는 거야. 아무 관계없으면 나같이 바쁜 사람이 미쳤다고 이렇게 만나서 시간 낭비하고 듣기 싫은 소리를 하겠어. 입에 쓴 약이 몸에 좋은 거야. 알았지. 3일 간 여유를 줄테니까 연락해 줘.”

 

은영은 정말 기가 막혔다. 감방까지 갔다왔다는 전과자 주제에 무슨 근사한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건 은영과 명훈 사이의 문제이고, 배 안에 들어있는 아이 문제인데, 건달이 마치 정의로운 검사나 되는 것처럼 공자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은영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웠다. 박 기사가 명훈 아빠 기사로 일하고 있어 은영의 과거를 폭로함으로써 명훈과의 관계를 파탄시킬 핵폭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은영은 며칠 간 생각한 다음 알려주겠다고 말하고 헤어졌다.

 

작은 운명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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