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여자가 찾아와서 책임지라고 하다

 

민선수(27, 가명)는 이런 일을 겪고 나서 더욱 공포심을 가졌다. 깡패의 이름은 구강패(具剛牌)였다. 아마 부모님이 출산한 직후부터 깡패가 될 것을 예상했던 모양이었다. 구강패(48, 가명)는 그 지역 토박이였다.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일진회 멤버였다. 일진회 중에서도 워낙 강성인 악질이었다. 온몸에 문신을 했다. 고등학교 때 여고생 세명을 강간했음에도 아무도 문제 제기를 못하고 넘어갔다.

 

정상적인 연애를 해서 성관계를 한 여학생은 스물명도 넘었다는 전설을 남긴 인물이었다.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사회에 나와서 깡패짓이나 하고 돌아다녔다.

 

그러면서도 고등학교 일진회 후배들을 계속해서 관리하고 지원했다. 그 때문에 그 지역에서는 소규모 조직폭력배의 중간 보스가 되었다. 강패가 이렇게 비뚤어진 것은 자신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강패의 아버지는 강패 어머니를 상습적으로 폭행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두들겨맞아 온몸에 멍이 들어있었다. 강패 아버지는 동네 미용실 원장과 눈이 맞아 바람을 피면서 어머니를 구박했다.

 

어머니는 견디다 못해 가출하고 말았다. 강패 아버지는 어머니가 가출한 다음, 얼마 있지 않아 그 미용실 원장과도 헤어졌다. 매일 술로 날을 보냈다. 강패는 어머니를 애타게 찾았지만, 끝내 어머니는 찾지 못했다.

 

아버지는 강패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강패를 때렸다. 이런 환경 때문에 강패 성격은 비뚤어졌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나서 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을 나왔다.

 

세상에 의지할 곳이 전혀 없게 된 강패는 열심히 일을 했다. 처음에는 술집 종업원으로 일을 했다. 그러다가 대리기사도 하고, 배달도 했다. 몇 명의 여자들과 동거생활을 했지만, 모두 오래 가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금 부인, 정촌녀(鄭村女, 45, 가명)와 눈이 맞아 결혼했다. 정촌녀가 가지고 온 돈으로 노래방을 차렸다. 강패가 촌녀를 만난 것은, 강패가 40, 촌녀가 37살 때였다.

 

어느 날 강패가 술을 마시고 집으로 가고 있는데, 골목길에서 어떤 건달이 촌녀를 붙잡고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건달은 촌녀를 발로 차고, 촌녀는 길에 쓰러져 울고 있었다. 강패가 가서 말렸다.

 

그러자 그 건달은 왜 참견을 하냐고 하면서, 강패를 폭행했다. 강패는 기가 막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건달과 싸움을 했다. 그 건달로 제법 싸움을 하는 친구였다. 두 사람은 심십분간 치열하게 싸웠다.

 

결과는 강패가 이겼다. 건달은 도망가고, 강패는 촌녀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두 사람은 가까워졌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촌녀는 그 건달이 운영하는 다방에서 일을 했는데, 몸이 아파 그만두겠다고 했더니, 촌녀에게 화풀이를 한 것이었다.

 

촌녀는 강패가 자신을 위기에서 구출해준 것에 감사하면서 몇 번 만나다가 몸을 허락했다. 그런데 예상을 뒤엎고 촌녀는 그때까지 처녀였다. 강패는 감격했다. 그동안 숱한 여자들과 관계를 했지만, 모두 처녀가 아니었다. 여고생들 모두 처녀가 아닌 상태에서 강패와 관계를 했던 것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여자들 모두 처녀가 아닌 것은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 강패는 횡재를 한 것이었다.

 

아니, 다방 생활을 오래 했다면서 어떻게 처녀를 지킬 수 있었어?” “저는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 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요. 그래서 수난을 많이 겪었지만, 다행이 아주 나쁜 남자들은 만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강패는 촌녀와의 성관계 직후 시트에 묻은 처녀흔을 확인하고,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시트도 증거로 들고나왔다. 그래도 확실하게 확인을 하기 위해 그 다음 날, 촌녀와 같이 산부인과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의사로부터 처녀막이 파열되었다는 소견서까지 받아왔다. 강패는 촌녀를 사랑했다. 자신의 목숨을 다 바칠 정도로 사랑했다.

 

그런데 강패가 촌녀와 사랑에 빠져 있을 때, 어떤 여자가 어떤 남자와 같이 강패를 찾아왔다.

 

당신이 내 여동생을 건드려서 임신시켰는데, 책임을 져!” 강패는 그 여자를 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같이 잠을 잔 것인지는 명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누구시더라? 잘 모르겠는데...”

아니, 강패씨, 저를 모른다고요? , 맹순이예요, 맹순이! 강패씨가 제 그곳에 문신까지 새겨주었잖아요?”

무슨 문신을 새겨? 나는 문신, 문 자도 모르는 사람이야. 어떤 문신이가 봐?” “맹순아! 문신을 보여줘.”

 

맹순은 그 은밀한 곳을 부끄럼없이 강패에게 보여주었다. 악취가 풍겼다. 강패는 토할 것 같았다. 워낙 비위가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코를 손수건으로 틀어막고, 그곳을 보았다. 잘 보이지 않아, 스마트폰의 손전등을 겼다.

 

그곳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사랑해>라고 쓰여있었다. 그리고 빨간색으로 러브마크가 새겨져있었다.

 

이게 전부야? 이걸 내가 새겼다는 증거는 뭐야? 이 사기꾼들! 죽고 싶어서 나한테 뒤집어씌우고 돈을 뜯어내려고 하는 거야?”

갑자기 맹순이 강패에게 달려들었다. 심한 욕설을 하면서 죽기살기로 달려들었다.

 

이 나쁜 인간. 너 죽고 나 죽자. 임신시켜놓고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 맹순이 오빠는 갑자기 등산용 칼을 꺼내들었다.

 

강패는 순간적으로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상대를 진정시켰다. “그렇게 흥분하지 말고, 차분하게 대화로 풀어갑시다. 내 애기가 맞다면, 내가 책임질 거니까 칼은 집어넣읍시다.”

 

맹순 오빠도 칼을 집어넣었다. “나와 어디서 만났고, 어떻게 된 것인지 말해보세요. 내가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러니까. 그리고, 이 문신 <사랑해>는 내가 썼다는 증거가 무엇인가요? 나는 이렇게 글씨를 잘 쓰지 못해요. 공부를 워낙 안 해서. 참고로 나는 일진회 핵심 멤버였어요. 일진회라고 들어봤는지 모르겠지만. 정 내 말을 믿지 못하면 이 문신과 내 글씨를 필적 감정해 봅시다.”

 

“6개월 전에, 내가 <복다방>에서 일하고 있을 때, 당신이 모텔방에서 커피를 주문해서, 내가 갔잖아. 모텔방에 가니까 당신하고 다른 남자 2, 그러니까 모두 세명이 고스톱을 치고 있었어. 술에 많이 취한 상태였고, 내가 커피를 가지고 가니까 옆에 앉으라고 했어. 커피는 따라만 놓고 마시지 않고, 10분 있다가 갑자기 당신이 나를 이불 위로 눕혀놓고, 관계를 했잖아? 그래서 내가 저항도 하지 못하고 당하고 나와서, 며칠 후에 당신을 만나서 고소한다고 했더니, 50만원을 주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어. 그래서 나도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 날 또 모텔로 데리고 가서 성관계를 두 번 하고, 일주일 후에 만나서 사랑한다고 하면서 문신을 새겨놓은 거야. 그리고 나에게 고생했다고 하면서, 돈을 100만원 주기에 받았어. 나는 사실 그걸로 모두 끝을 낼려고 했는데, 임신한 사실을 알았어. 그래서 당신을 찾아온 거야. 만일 당신이 인간적으로 나와서 임신한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묻고, 같이 고민할 줄로 믿었어. 그런데, 나를 전혀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니 정말 기가 막힌 거야.”

 

. 그렇게 말을 해주니까 이제 기억이 나네. 그때 내가 다방에 전화한 것은 맞아. 그리고 내가 그날 네가 처음 왔을 때, 모텔방에서 친구 두명은 술에 취해 쓰러져있었고, 내가 너와 같이 관계를 한 번 한 것도 맞아. 그런데, 나는 그걸로 끝이었어.”강패는 이제야 그때 일이 또렷하게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다방으로 전화를 해서 커피를 시킨 것은 맞는데, 내 전화가 아니고 친구 전화기로 한 거야. 그리고 그 날 늦게 내가 있었던 일을 그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그 친구는 나보고 큰 일을 저질렀다고 하면서, 돈으로 수습하자고 했어. 그래서 내가 그 친구에게 전화가 오면, 만나서 해결하라고 돈을 100만원 주었어. 그랬더니 그 후 그 친구가 다방 종업원을 만나서 100만원을 주고 모두 해결했다고 했어. 아마, 그 친구가 나와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네가 나와 착각을 했던 모양이네. 그리고 지금 네 배 속에 있는 아이는 아마 그 친구 아이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 아이일 거야. 내 기억으로는 그때 내가 할 때는 너는 생리중이었어. 그리고 정말 나는 문신할 줄 몰라. 그 친구를 만나 봐. 내가 연락처를 알려줄 게.”

 

강패가 이렇게 논리정연하게 설명을 해주자, 맹순도 진가민가했다. 맹순 오빠는 맹순에게, “이 사람 말 들어보니까 일리가 있네. 집에 가서 다시 생각해 보자. 그럼, 그 친구 번호 좀 알려줘요.”

 

이렇게 사태는 끝났다. 맹순 일행이 돌아간 다음, 강패는 자신의 친구에게 전화로 물어보았다.

 

. 그 여자 걸레야. 온 동네 건달들 아랫도리 다 청소해주고 돌아다는 여자야. 그때 네가 준 돈, 100만원 주었더니, 신이 나서 내가 원치도 않는데, 나에게 서비스해준다고 한달 동안 계속 만나자고 해서, 내가 하는 수 없이, 만나서 5번 해준 적이 있어. 그때 보니까 그 여자 그곳에, <사랑해>라는 문신이 있는 걸 보았어. 하지만, 빨간 색 <러브마크>는 없었어. 지금 <러브마크> 표시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해>라는 글씨를 쓴 다음, 나중에 따로 추가한 것일 거야. 그리고 내 애기는 분명히 아냐. 나는 전에 어떤 고위공직자가 혼외자 때문에 개망신 당한 뉴스를 보고, 밖에서 할 때 100% 콘돔을 사용하고 있었어. 항상 콘돔을 열 개씩 가지고 다녀.”

 

강패가 보니까 그 친구는 정말 편의점에서 산 콘돔 10개를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그건 언제 쓸 건데?”

글쎄 오늘 재수 좋으면 세 개 쓸 수 있을 것 같아. 지금 연락 기다리고 있어.”

아니 오늘 세 여자를 만나는 거야?”

무슨 세 여자를 만나? 한 여자를 만나서 세 번 한다는 거지.”

 

그런데, 웃기는 건, 네가 왜 혼외자 걱정을 하는 거야?”

사람 팔자 모르는 거야. 내가 지금은 이래도 혹시 돈을 벌어서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 당선되면, 혼외자 문제가 불거질 거고, 그러면 내 인생 골로 가는 거잖아? 사람은 그래서 항상 조심하고 살아야 해. 너도 조심해. 절대로 다른 여자 임신시키지 마. 출세에도 지장이 있고, 그건 중대한 죄악이야. 특히 임신시키고 낙태를 시키면, 죽어서 지옥불에 떨어지는 거야. 알았지?”

 

아놀드 토인비 문제로 할복을 시도하다

 

민선수(27세, 가명)는 아버지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워낙 술을 좋아했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술과 담배를 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아버지는 하루도 술을 거르지 않았다.

 

지독한 감기 몸살이 걸렸을 때에도, 가볍게 맥주라도 마셨다. 대부분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아버지가 술을 끊은 것은 간암 판정을 받은 때였다. 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의사가 아버지에게 간암이라고 진단결과를 알려주자, 아버지는 그 다음 날 술에 취한 상태에서 병원을 찾아가 담당 의사에게 행패를 부렸다. “왜 나를 간암이라고 엉터리 판정을 해서 술을 못마시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의사는 너무 기가 막혀서, 그럼 다시 재검사를 하자고 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다가 경찰에 의해 연행되었다가 풀려났다. 그 때문에 그 유명한 병원에는 더 이상 가지 못하고, 작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6개월만에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술 때문에 돌아가셨는데도 민선수는 개의치 않고 술을 많이 마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혼자 남은 어머니는 어렵게 생활했다. 외아들인 민선수는 빨리 대학을 졸업하고, 어머니를 부양해야 할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여자를 좋아하다보니,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깡패로부터 당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누구에게 상의하거나 도움을 청할 곳은 전혀 없었다.

 

민선수는 우선 급한대로 돈을 빌려서 깡패에게 주고, 깡패의 마수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날 민선수의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가 왔다.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월 300만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곳으로 전화를 했다.

 

“집에서 우리 회사 자금 입출금만 관리해주면 한달에 300만원의 월급을 드립니다. 우리 회사는 술을 수입해서 판매하는 회사인데, 세금이 너무 많이 나와서 다른 사람의 명의로 된 통장으로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업무를 도와주시면 매달 월급을 드립니다.”

 

민선수는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으니까, 주류회사에서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서, 매출금액을 줄이기 위해서 다른 사람 명의 통장을 빌려 쓰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민선수는 쉽게 돈을 벌기 위해서 이 회사에 자신의 명의로 된 통장에 관한 자료를 알려주었다. 회사에서는 민선수의 통장으로 입금되는 금액을 민선수가 직접 인출하여 회사에서 지정해주는 다른 통장으로 송금하도록 했다. 그러면 한 달 후에 월급 300만원을 준다는 것이었다.

 

민선수는 자기 통장에 5회에 걸쳐 입금된 돈 합계 2천만원을 은행에 가서 인출하여 곧 바로 그 회사에서 지정하는 계좌로 송금했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에 은행에서 연락이 왔다.

 

민선수 명의의 은행계좌가 사고처리되어 지급정지되었다는 것이었다. 민선수는 놀랐다. 곧 바로 그 회사로 전화를 하니 전원이 꺼져있었다. 모든 것은 사기였다.

 

이른바 보이스피싱사기사건에 연루가 된 것이었다. 민선수 통장에 돈을 입금시킨 사람들은 순수한 보이스피싱사기사건의 피해자로서 사기꾼들의 인적 사항을 가지고는 사기꾼을 잡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민선수를 상대로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된다. 민선수는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된다. 민선수는 이래 저래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깡패의 노래방에는 깡패가 민선수의 사정을 봐주어서 일주일에 세 번만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노래방에서의 하는 일의 강도는 더욱 세졌다. 단골 여자 손님들이 노골적으로 민선수에게 성관계를 요구하였다. 민선수는 처음에는 그것만은 절대로 안 된다고 했지만, 보이스피싱까지 당하고 나니, 이제는 버틸 힘이 없어졌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비교적 믿을만한 단골 손님들의 요구는 들어주었다. 그 여자들은 민선수에게 모텔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혼자 노래방에 와서 놀다가 노래방 쇼파에서 민선수와 성관계를 가졌다.

 

그리고 팁으로 한번에 10만원을 주었다. 민선수는 처음에는 시세를 잘 모르고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너무 저렴하게 몸을 팔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배짱을 부렸다.

 

그래서 일부 여자들로부터는 12만원 내지 15만원을 받았다. 어떤 여자들은 10만원 이상은 절대로 올려줄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그 여자들의 지론은 다른 노래방에서는 모두 10만원에 하는데, 왜 민선수만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어떤 무식한 여자는 민선수에게, “한번 해주는데, 남자에게 들어가는 원가가 얼마가 되는냐? 내 생각으로는 돼지고기 600그램 먹으면 충분하다고 본다.”는 원가비교론까지 들먹였다.

 

어떤 여자는 민선수가 부당한 폭리를 취하기 위해 단골 손님들에게 너무 무성의하고, 짧은 시간에 일을 끝낸다고 깡패에게 소비자로서 청원을 하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깡패는 민선수를 불러서 말했다.

 

“너 죽고 싶으냐? 육체노동자가 곤주를 부려서 소비자를 만족시켜주지 않으면 사장은 망해서 파산할 텐데, 그때 너는 어떤 책임을 지려고 하느냐? 그러니까 곤주를 부리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야. 그리고 체력이 딸리면, 뻔데기와 개구리, 참새 구이를 많이 먹어야 한다. 그리고 틈을 내서 철봉 같은 것을 해야 해. 나는 이제 자네만 믿어. 마누라는 절대로 믿지 않아. 마누라는 집에서 밥만 하고 청소만 담당하고 있어. 너 때문에 내 마무라가 폐인이 됐으니까, 앞으로 네가 나를 먹여살려야 해. 다만, 네가 나와 약속한 천만원을 일시불로 갚으면 너를 해방시켜 줄 수 있어. 그때까지는 너는 나의 노예라고 생각해야 해. 옛날 서양 역사를 보면, 주인의 부인을 꼬셔서 간통한 남자는 죽을 때까지 그 주인의 노예로 살아야 하는 거야. <맥도널드 통큰비>라는 유명한 프랑스의 역사학자가 <새천지의 진리>라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책에서 말한 내용이야. 나는 그 책을 중학교 3학년 때 세 번이나 읽었어. 아마 너도 읽어봤겠지? 만일 네가 정말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하면 말이야. 그런데 네가 대학생이라는 말은 내가 믿지 않아. 너는 분명히 가짜 대학생일 거야. 여자 뒷꽁무니나 졸졸 따라다니다가 한번 공짜로 섹스나 하려는 놈이 틀림 없어. 그렇지 않으면, 나이가 27살밖에 되지 않아,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놈이 내 마누라 같은 절세의 미인인 데다가 섹스의 여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테크닉이 좋은 여자 배위에 올라갈 수 있겠어?”

 

민선수는 기가 막혔다. 아무리 무식해도 깡패는 아놀드 토인비가 쓴,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깡패는 <아놀드 토인비>를 <맥도널드 통큰비>라고 말하고, 영국 역사학자를 프랑스 역사학자로 잘못 알고 있었다.

 

그리고 책 이름이, <역사의연구>인데, 이것을 <새천지의 진리>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아마 깡패는 특정 종교집단에 빠져있다가 그곳에서도 쫓겨나온 것처럼 보였다. 노래방에서도 방마다 성경책과 찬송가책을 비치해놓고 있었다.

 

“사장님, 지금 말씀하신 책은 <새천지의 진리>가 아니고, 저자도 <맥도널드 통큰비>가 아니예요.”

 

그랬더니 깡패는 갑자기 주방에 가서 식칼을 들고 왔다. 그리고 자신의 배를 향해 시퍼런 칼날을 향했다. 그러면서 셔츠를 올리고 곧 할복을 할 것같은 태도를 보였다. 민선수는 아차 싶었다. 쓸데 없이 무서운 깡패의 약점, 지식 부족을 말해서 그의 자존심을 무너뜨린 것이었다. 민선수는 깡패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사장님! 제가 잘못했어요. 사장님이 말씀하신 것이 맞는데, 제가 잘못 알고 말을 한 것이예요.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아냐. 너는 잘못한 거 없어. 나 같은 놈은 죽어야 해.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는 벌레 같은 놈이야. 그렇게 남보다 잠 안 자고, 열심히 공부했는데, 너처럼 기집질이나 하고 다니는 놈보다 실력이 없다니, 살 자격이 없어. 나는 이 세상을 떠나면 곧 천국으로 들어가기로 예정이 되어 있어. 이렇게 더러운 세상 빨리 떠나야 해.”

 

깡패는 곧 일을 저지를 것 같았다. 민선수는 무서워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벌벌 떨고 있었다. 혹시 깡패가 흥분한 상태에서 자신의 배를 가르지 않고, 민선수의 배를 가를까 겁을 먹었다. 5분간의 침묵이 흘렀다. 세상의 모든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깊은 바다속의 고요가 계속되었다.

 

“민선수, 일어나! 내가 죽지 않기로 했어. 만일 내가 맞고, 네가 틀리면 너를 죽여버리기로 했어. 그리고 만일 내가 이런 일로 죽으면, 나를 믿고 따르고, 존경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장에 문상을 와서 얼마나 나늘 무시하겠어. 그리고 문상을 받아야 하는 상주로서도 창피할 것 아냐? 사람들이 문상 와서, ‘그 위대하신 사장님께서는 갑자기 왜 돌아가셨습니까?’라고 물으며, 상주는 거짓말을 할 수 없으니까, ‘<맥도널드 통큰비>가 쓴 <새천지의 진리>를 가지고 토론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데, 이것은 창피한 일이잖아. 그러니까 나는 할복하는 것을 포기했어.”

 

 

많은 여자를 농락하다 깡패에게 제대로 걸리다 

 

채양은 술에 많이 취한 상태에서 시간이 늦어 술집에서 나왔다. 그때 마침 민선수가 어떤 여자와 팔장을 끼고 술집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선수는 채양을 보더니 그 여자를 먼저 술집으로 들어가 있으라고 한 다음, 채양에게 잠깐 이야기 좀 하자고 했다.

 

아니!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셨어? 무슨 속상한 일이 있어?”

채양은 기가 막혔다. 도대체 선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남의 일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 여자는 누구예요?”

. 그냥 아는 사람이야. 아무 관계도 아니야.”

아무 관계도 아닌데, 팔짱을 끼고 다녀요?”

팔짱 낀다고 무슨 문제가 돼?”

알았어요. 내일 저녁에 봐요.”

그래. 내일 저녁에 봐. 조심해서 들어가고.”

 

채양은 이번 기회에 민선수를 완전히 끊고 관계를 정리하려고 마음 먹었다. 도대체 선수는 완전히 바람둥이였다. 이 여자, 저 여자를 섭렵하면서 재미를 보면서, 한 여자에게 집중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사랑도 모르고, 오직 섹스만 아는 남자였다.

 

그 다음 날, 채양은 선수를 만나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이제 더 이상 만나지 말자고 선언했다. 그랬더니 선수는 이렇게 말했다.

 

헤어지자는 것은 말도 안 돼. 나는 자기를 사랑해. 내게는 오직 자기밖에 없어. 정순을 만나도 그건 어디까지나 그냥 만나는 것이고, 사랑은 아냐. 다른 여자를 만나도 나는 그 여자들을 사랑하지 않고 있어. 그러니까 쓸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채양은 선수의 이런 말에 갑자기 화가 풀리고, 마음이 녹았다. 선수는 채양을 데리고 자신의 원룸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채양을 사랑했다. 채양은 이상하게 또 다시 옛날로 돌아갔다.

 

그동안 응어리졌던 모든 감정이 눈이 녹듯이 녹아버렸다. 그 상황에서 채양은 선수에게 정순의 문제는 꺼낼 생각도 나지 않았다.

 

채양은 선수의 원룸에서 밖으로 나와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골목에서 큰 길로 나와서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그때 택시 한 대가 그 골목 입구에 섰다. 채양은 순간적으로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길 건너편에서 서서 택시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정순이 택시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쇼핑백을 하나 들고, 택시에서 내려서 곧 바로 선수의 원룸쪽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채양은 깜짝 놀랐다. 다시 선수의 원룸으로 갔다. 원룸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순이 들어간 지 10분쯤 있다가 불이 꺼졌다. 채양은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보나마나 뻔했다. 선수는 얼마 전까지 채양을 껴안고 있다가, 이번에는 정순을 껴안고 그짓을 하는 것 같았다.

 

채양은 원룸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그럴 용기는 없었다. 계속 부근에서 원룸을 지켜보고 있었다. 두 시간쯤 지나서 원룸에서 정순이 나왔다. 정순은 원룸에서 나오자 마자 걸어가면서 선수와 핸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채양은 이 상황에서는 더 이상 농락을 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채양은 두 번 다시 선수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선수는 계속해서 전화를 하고, 문자메시지, 음성메시지를 남겼지만, 채양을 더 이상 넘어가지 않았다.

 

그 후 소문을 들으니, 선수는 학교 앞에 있는 노래방 사장 부인과 정을 통했는데, 그 노래방 사장이 여러 차례 감방에 갔다온 전과자로서 깡패라고 했다.

 

깡패는 자신이 감방에 가있는 동안 와이프가 젊은 대학생과 눈이 맞아 간통을 했다는 이유로 노래방에 감금해놓고, 민선수를 폭행했다. 그 바람에 선수는 고막이 찢어지고, 코뼈가 골절되는 상해를 입었다.

 

하지만 선수는 그 깡패를 고소할 수 없었다. 잘못했다가는 더 큰 보복을 당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깡패는 민선수에게 위자료를 천만원 지급하겠다는 각서를 쓰도록 하고, 선수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면 월급을 타서 분할해서 갚도록 했다.

 

그리고 취직하기 전까지는 깡패의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월급에서 공제하기로 했다. 깡패가 워낙 무서웠기 때문에, 민선수는 병원에 통원치료를 하면서, 폭행 당한 그 다음 날부터 노래방에 나가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얼굴에 멍이 든 것은 짙은 화장을 해서 표가 나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깡패는 나이 든 여자 손님들이 단체로 오면, 민선수가 방에 들어가서 도우미 역할을 하도록 했다.

 

그 동네 단골 여자 손님들은 주로 다방 주인, 술집 주인들이었다. 노래방에 와서도 노래를 한다기 보다는 술을 마시고, 민선수에게 노래를 하도록 했다. 그리고 민선수의 몸을 만졌다. 깡패는 민선수에게 여자들이 만지기 좋게, 런닝이나 팬티는 입지 말고, 아주 얇은 티셔츠와 반바지만 입도록 근무수칙을 정해주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깡패는 분이 풀리지 않아서, 며칠 있다가, 민선수와 자기 와이프를 불렀다. 노래방에 민선수와 와이프를 세워놓고, 깡패는 검은 라이방을 쓰고, 군대 지시봉 같은 것을 들고, 명령을 했다. 마치 옛날 어떤 군출신 대통령 같은 모습이었다.

 

너희 년놈들은 이 세상에서 살 가치가 없는 것들이야. 버러지만도 못한 거지. 하지만 내가 너희들을 죽이지 않는 것은, 네가 아직 어리고, 반성을 하고 있기 때문이야. 그렇지만 이대로 놔먹여서는 너희들은 정신을 차릴 인간들이 아냐.“

 

선수는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깡패가 또 무슨 짓을 할까 무서웠다. 깡패는 갑자기 부드러운 음성으로 톤을 낮추면서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영업이 끝나면 너희들은 이 방으로 와서 내 앞에서 각자 상대의 뺨을 열대씩 때려. 그리고 나서 무릎을 꿇고 마주 보고, ‘잘못했습니다. 제가 제 성기를 잘못 놀렸습니다. 깊이 반성합니다라고 열 번씩 큰 소리로 상대에게 말을 하도록 해!“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깡패는 갑자기 이를 악물고 큰소리로 악을 썼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콘크리트 벽에 부딪혔다. 벽이 쿵쿵 울렸다. 누가 들으면 심야에 인테리어공사를 하는 것으로 알 것이었다.

 

이 악마같은 놈들! 지금 당장 서로 키스를 해봐.“ ”아니 어떻게 키스를 해요? 당신 앞에서?“ ”아니 그건 했으면서 키스를 못한다는 건 무슨 쓸데없는 소리야? 빨리 해!“

 

두 사람은 벌벌 떨면서 키스를 했다. 선수는 역겨운 냄새를 맡으면서 토할 뻔 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토했다가는 깡패가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올라오는 음식물을 선수의 목구멍으로 다시 집어넣었다.

 

 

 

일방적인 사랑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여자

 

시간이 가면서 채양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자신이 민선수에게 빠져있지만, 민선수는 채양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민선수는 단지 채양의 사랑을 받아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사랑에 국한시켜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반면에 채양은 민선수를 정신적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채양이 졸업할 시기가 되자, 부모님들은 채양에게 적당한 배필을 만나서 같이 외국으로 유학갈 생각을 하라고 했다. 경제적 지원은 충분한 상황이었다.

 

결혼정보회사를 통해서 선을 보라고 강요하기 시작했다. 채양도 마지못해 몇 사람의 선을 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결혼정보회사를 통해서 선을 보러 나오는 남자들은 너무 타산적이었고, 너무 이기적이었고, 도대체 인간적인 면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커피값이나 식사대금도 먼저 선뜻 내려고 하지 않는 동물도 많았다.

 

채양의 부모님은 신랑감으로 판사나 검사, 의사, 국회의원을 구하려고 했다. 그런데 결혼정보회사가 그런 신랑감은 거의 나와 있지 않았다. 드물게 있어도 실제 판매용이 아니라 단순한 디스플레이 해놓은 전시용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판사나 검사, 의사는 결혼정보회사 여러 군데 등록해놓고, 수십번 또는 수백번 선을 본다고 했다. 그들은 vip 신랑감이라고 해서, 등록회비도 내지 않고, 선을 볼 때도 여자측에서 모든 비용을 낸다.

 

선을 볼 때, 여자후보가 기대치에 맞지 않아도, 결혼정보회사의 영업을 위하여, 홍보 차원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선을 보러 나온다. 그래서 어떤 잘 나가는 신랑감은 하루에도 서너명의 여자들을 만나서 아주 간단히 선을 보고 또 다른 장소로 옮겨서 또 다른 여자들과 선을 본다.

 

선을 볼 때 대화내용은 아주 판에 박은 것이다. 취미, 인생관, 결혼하면 어떻게 살 것인지 등 열 가지 이내의 설문지 대로 간단하게 대화를 한다. 그리고 자신은 순수하게, 특별한 욕심 없이 살고 싶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공부하느라고 연애도 못해봤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수백번 성관계를 한 나쁜 인간도 선을 볼 때는 일부러 총각 냄새를 풍긴다. 암캐가 암내를 풍기는 것처럼...

 

그러면서 중매쟁이를 통해서는 여자측에서 강남에 고급 아파트도 사오고, 자가용 열쇠도 가져오고, 남자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생활비도 처갓집에서 충분히 보장할 것을 트럼프와 김정은 비밀협상 때처럼 치밀하게 강조한다.

 

그것이 보장되지 않으면 두 번 다시 만나지 않는다. 약혼까지 하고, 결혼식 날짜까지 잡았어도, 경제적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결혼식장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렇게 더럽게 결혼한 다음에는 여자가 머리 나쁘고, 남자에게 순종하지 않는다고 난리를 피다가 이혼 당하거나 개판이 된다. 채양은 부모님의 강요에 의해 몇 번 조건이 괜찮은 신랑감과 선을 보았다가 환멸을 느꼈다. 그런 사회적 능력이 있는 신랑감들에게 구역질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채양의 부모님도 채양이 괜찮은 신랑감과 몇 차례 선을 본 결과 번번히 남자측에서 조건이 맞지 않는다고 거절하는 것을 보고, 당분간 선을 보는 것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상한 것은 채양에게는 민선수가 겉으로는 몰인정한 사람 같은데도, 속으로 자꾸 정이 들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채양은 민선수가 엄정순과도 똑 같이 육체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참고 견딜 수 없었다.

 

시간이 가면서,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채양은 점점 민선수가 엄정순과 섹스를 한다는 생각이 싫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민선수가 길에서 교미하는 수캐처럼 느껴졌고, 상대인 엄정순은 암캐처럼 생각되었다.

 

그런 수캐가 깨끗한 채양의 속으로 들어온다는 사실도 싫어졌다. 그렇다고 채양은 민선수와의 관계를 끊을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마침내 채양은 엄정순을 만났다.

 

정순씨, 솔직히 말해서, 내가 먼저 알았고, 선수씨와 깊은 관계에 있었잖아요? 정순씨는 아직 어리고, 선수씨도 나와 연애를 하면서 나중에 정순씨를 만나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정순씨가 양보를 하면 안 될까요?”

 

그렇지 않아요. 물론 내가 늦게 만났지만, 지금 선수씨는 저를 더 좋아하고 있어요. 몇 번 제게 말했어요. 채양씨와 관계를 끊고 싶은데, 채양씨가 떨어지지 않아서 골치 아프다고 그랬어요.”

 

정순을 만난 후 채양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채양도 자기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정순을 보니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얼굴이 아주 이지적으로 생겼고, 갸름한 선에 짙은 눈, 까만 눈동자, 연한 미소, 부드러운 음성, 날씬한 체형은 그야말로 군계일학(群鷄一鶴)이었다.

 

나이도 채양보다 세 살이나 어렸다. 채양은 자신이 정순과 게임을 해서는 전혀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순은 학이고, 채양 자신은 닭이었다. 그것도 청순하고 어린 학이고, 늙고 쪼글쪼글해진 암탉이었다.

 

뿐만 아니라, 정순의 말에 의하면, 민선수는 채양을 떼어버리고 싶은데, 채양이 떨어져나가지 않아 귀찮아한다고 했다. 채양은 일방적으로 민선수와의 연락을 끊었다.

 

몇 번 전화를 받지 않았더니, 민선수는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한달이 지난 후에 채양은 캠퍼스에서 선수와 정순이 다정하게 대화를 하면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채양은 학교 앞에 있는 술집으로 갔다.

 

혼자 술을 많이 마셨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었다. 술집은 사람들이 많이 시끄러웠다. 음악소리도 컸다. 채양은 사람들이 싫어졌다. 모두가 위선자처럼 보였다. 모두 동물처럼 느껴졌다.

 

알콜이 들어가니 이상하게 눈물이 흘렀다. 울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냥 눈물이 물처럼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민선수가 보고 싶었다. 선수의 가슴이 그리웠다. 선수를 껴안고, 잠이 들고 싶었다. 둘이서 멀리 떠나고 싶었다.

 

수첩을 꺼내 썼다. <오빠! 보고 싶어. 사랑해! 오빠 없으면 죽을 것 같아.> 글씨 위에는 진한 눈물이 몇 방울 떨어져 번졌다. 머리가 아파 고개를 들어보니, 그때 마침 정순이 어떤 남자와 팔장을 끼고 술집을 나가는 것이었다.

 

정순은 술집이 너무 손님도 많고 어수선해서 구석에 혼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채양을 보지 못한 것이었다. ‘세상에 저런 애가 있나? 선수씨를 사랑한다면서, 저렇게 버젓이 다른 남자와 팔장을 끼고 학교 앞에서 돌아다니나!’

두 여자에게 양다리를 걸치고 줄타기를 하는 남자 

 

엄정순(37, 가명)은 현재범(33, 가명)의 인간성을 높이 평가했다. 비록 고등학교를 중퇴했지만, 대학교 나온 사람들보다 훨씬 더 아는 것도 많았다. 혼자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했기 때문이었다.

 

영어도 잘 했다. 언젠가 정순은 재범과 같이 이태원에 가서 술을 마시다가 미국 군인과 합석한 일이 있었다. 정순은 하나도 못알아 듣는데, 재범은 미군인과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계속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두 재범은 그 덩치 큰 미군인과 팔씨름을 했다. 생맥주 10잔 내기를 했다. 정순은 당연히 재범이 질 것으로 생각했다. 재범이 일부러 팔씨름에서 져주고, 미군인에게 생맥주를 사서 같이 더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씨름은 만만치 않았다. 보통 2~3분이면 끝나는 것이 팔씨름이다. TV에서 씨름선수 출신인 유명 연예인도 팔씨름 하는 것을 보면 5분 안에 끝난다.

 

재범과 그 미군인은 한 시간 넘게 팔씨름을 하고 있었다. 중간에 몇분간은 서로 팔을 붙잡고 잠을 자는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결판이 났다. 재범이 지고, 재범은 생맥주 10잔값을 냈다.

 

세 사람은 끝까지 생맥주를 다 마시고, 2차로 가서 추가로 생맥주 30잔을 시켜 모두 마셨다. 세 사람의 배가 모두 남산처럼 둥그렇게 부풀어올랐다. 나중에 재범에게 물어보았다.

 

재범씨가 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도 왜 술내기를 했어요?”

그 미군인은 자신이 지루증 환자라고 그랬어요.”

 

정순은 커피 바리스터 자격도 따고, 제빵학원에도 다녔다. 일본에 가서 6개월 동안 제빵학원에도 다녔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간청을 해서, 카페를 차렸다. 그러면서 재범에게 카페에 와서 같이 일을 하자고 제안했다.

 

재범은 나채양(40, 가명)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 사장님 따님이 베이커리 카페를 차렸어요. 나보고 그 카페에서 같이 일을 하자고 하는데, 어떨까요?”

 

내가 한번 그 카페를 가보고, 어드바이스할 게요.” 채양은 재범이 일을 하겠다는 <우울한 봄날의 카페>를 찾아갔다. 채양은 혼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사장인 엄정순이 들어왔다.

 

아니, 정순이 아냐! 여기는 어쩐 일이야?”

, 내가 하고 있는 카페야.” 채양은 놀랐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채양이 대학교 4학년 때였다. 소개팅에서 만난 경제학과 4학년 민선수(27, 가명)을 만나 열심히 데이트를 하고 있었을 때였다. 민선수는 공부도 잘 했지만, 사회주의에 심취해있었다.

 

자유민주주의의 폐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민선수는,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와 소수 관리에 반대하고 공동체주의 행복 실현을 최고 가치로 하는 공동 이익 인간관을 가지고 있었다.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며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협동 경제가 이상이었다. 그리고 모든 국민은 근로의 대가로서 정당하고 평등하게 분배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우이웃돕기 한번 하지 않으면서, 몇십억원 하는 강남 아파트에 살고, 자녀 모두 해외유학 보내고, 아들 군대 면제받게 하고, 자녀 부정청탁해서 공기업에 취직시키는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쟁이, 위선자야.”

 

채양은 민선수의 말을 듣고 있으면 기분이 맑아지고 상쾌했다. 다만, 그는 무신론자였다. 그게 문제였다.

 

채양은 교회 다니지 마. 그건 허구야. 하나의 신화에 불과해. 하나님은 있을 수 있지만, 예수는 하나님이 아냐. 하나의 인간에 불과해. 성경에 많이 나오는 수많은 선지자 중 하나라고 생각해야 해.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든가, 오병이어 기적을 베풀었다든가, 십자가에 못박힌 다음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야.”

 

채양은 민선수가 좋으면서도 자신의 신앙심이 흔들릴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채양은 민선수에게 정을 느끼기 시작했고, 어느 날 민선수와 첫경험을 했다. 민선수는 육체적으로 채양을 원했다. 그래서 자주 만나 몸을 섞었다.

 

그렇게 8개월이 지난 상태에서 엄정순이 나타났다. 엄정순은 당시 대학교 2학년이었다. 정순이 고등학교 3학년 때, 민선수가 정순의 과외지도를 했다. 민선수는 정순과도 성관계를 맺고, 채양과 정순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민선수는 왼쪽 다리는 채양에게 걸어놓고, 오른쪽 다리는 정순에게 걸어놓고 있었다. 월요일은 채양과 몸을 섞고, 금요일에는 정순의 가슴을 만지고 있었다.

 

채양과 정순은 이런 사실을 동시에 알게 되었다. 하지만 채양과 정순은 모두 속은 상했지만, 두 사람 모두 민선수를 독점할 자신은 없었다. 그리고 채양과 선수의 관계는 결혼을 전제로 한 것도 아니었고, 특별히 사랑하는 사이도 아니었다.

 

민선수는 한번도 채양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채양은 가끔 선수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했다. 그때마다 선수는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그냥 멍하니 채양을 쳐다보고 있거나, 몸으로 사랑을 표현할 뿐이었다.

 

민선수에게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는 말은 믿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 있어 사랑은 오직 섹스였다. 섹스라는 동물적 행위, 행동을 통해서만 사랑을 실증적으로 확인하는 것 같았다.

 

민선수는 섹스에 있어서도 결과물인 사정을 특별히 중요시했다. 사정을 하지 않으면 섹스를 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여성의 가임기라 피임기구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될 경우에는 절대로 섹스를 하지 않았다.

 

때문에 만일 채양이 정순의 존재 때문에 민선수에게 항의를 하거나 정순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할 권리도 없어보였고, 만일 민선수에게 그런 의사를 표시하면 민선수는 그 즉시 채양과의 관계를 단절할 것이 붙을 보듯 뻔했다.

 

이러한 상황은 민선수와 정순과의 관계에서도 똑 같았다. 아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민선수는 정순을 고등학생일 때와 똑 같이 대했다. 학생과 선생과의 관계였다. 섹스를 할 때에도 민선수는 정순을 지도했다.

 

이상하게 정순은 이런 민선수에 길들여져 있었다. 민선수는 어디에서 배웠는지, 여성의 신체와 생리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산부인과 의사 수준이었다. 민선수는 정순에게는 오르가즘에 오르는 법도 가르쳐주었고, 성관계를 할 때 여자가 취해야 할 마음가짐과 신체적 반응, 심리상태까지 일일이 알려주었다.

 

특히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는 정욕은 죄악이라고 늘 강조했다. 그래서 정순은 채양의 존재를 알게 되었어도 <선생님>인 민선수가 하는 일에 대해 그 어떠한 참견도 할 입장이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의사와 결혼했으나 파경에 이르다> 

 

재범은 운전면허가 취소되었으므로 중소기업 사장의 운전기사 근무를 못하게 되었다. 재범은 고등학교 중퇴 학력밖에 없었으므로 직장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건설현장의 잡부로 일을 시작했다.

 

막노동하는 것이 정말 힘이 들었다. 재범은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났다. 노동복장으로 갈아입고, 현장 소장 사무실로 5시 반까지 갔다. 그곳에는 재범과 같이 일당으로 건설현장에서 일을 할 사람들이 그 시간까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 현장 소장은 그날 일을 할 사람을 뽑는다. 그날 그날 필요한 인원수가 다르기 때문에, 그 전날 대충 인원수를 예상할 수는 있지만, 꼭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행이 운수가 좋으면 재범은 공치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날 같이 일을 할 사람들이 선발되면, 일행들은 같이 식당으로 가서 아침 식사를 한다. 그리고 7시부터 현장에서 일을 한다. 재범은 특별한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잡부로서 자재를 나르는 일, 기술자를 보조하는 일을 했다.

 

건설현장에는 위험요소가 너무 많았다. 화이버를 쓴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점심 식사를 한 시간에 걸쳐 하고, 쉬다가 오후 4시경까지 하루 8시간 일을 한다.

 

그러면 일당으로 재범은 11만원을 받는다. 그 중에서 현장 소장이나 소개소에 1만원을 주고, 2천원은 세금 비슷한 명목으로 공제된다. 하루 일당으로 재범에게 돌아오는 현금은 98천원이었다.

 

한달 내내 이런 일이 계속되는 건 아니었다. 공치는 날이 많았다. 여름에 장마철에도 일을 못했다. 겨울에도 일은 적었다. 한동안은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공사는 많이 중단되었다.

 

재범은 이런 노동일을 하면서 돈가치를 새삼스럽게 뼈저리게 느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무거운 물건을 들고 다니고, 뜨거운 햇볕 아래 땀을 흘리고 나면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얼굴은 새까맣게 탔다.

 

재범은 사람들이 커피 한 잔에 5천원씩 하는 것을 마시고, 뷔페식당에서 1인당 15만원씩 하는 식사를 하는 것을 보면 너무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재범은 이를 악물고 참고 견디었다.

 

이렇게 된 것이 모두 채양을 위해서 자신이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음주운전으로 처벌 받고, 면허가 취소되었기 때문이었지만, 재범은 한번도 채양을 원망하지 않았다. 음주단속이 된 날로부터 한 달 후에 재범은 채양을 만났다. 채양은 깜짝 놀랐다.

 

아니 얼굴이 왜 그래요?”

, 일부러 태웠어요. 비싼 돈 들여서 썬텐도 했고요. 제가 옛날에 음악을 열심히 할 때 저는 마이클 잭슨이 저의 우상이었어요. 그래서 뒤늦게 마이클의 흉내를 내본 거예요. 제가 좋아한 노래는 마이클의 빌리진이었어요.”

 

그러면서 재범은 <빌리진>의 노래를 하면서 마이클의 춤동작을 흉내냈다. “정말 마이클 잭슨과 똑 같네요. 멋있어요.”

 

그날 재범은 채양을 껴안았을 때, 너무 지쳐서 그것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소주를 많이 마셨다. 술 핑계를 대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노동일에 지친 것과 남성은 전혀 연관이 없는 것 같았다. 그날 채양은 평소와 달리 히말라야 정상에서 스키를 밤새 타고 있었다. 재범은 채양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건설자재 도매업체에 관리직으로 취직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다만, 만나는 횟수를 줄였다. 이상한 것은 재범이 채양에 대한 애정이 더 이상 깊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채양은 여전히 재범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재범이 나이트클럽에서 일을 할 때, 클럽에 단골로 다니던 엄정순(37, 가명)이 건설현장에 왔다가 재범을 알아보았다.

 

아니! 재범 씨 아니예요?”

, 정순 씨! 여기는 어쩐 일이예요?”

 

엄정순은 재범이 일을 하고 있는 상가건물 건축주의 딸이었다. 한동안 정순과 재범은 서로 좋아하고 몸을 섞었다. 그러다가 재범이 클럽을 그만 두는 바람에 연락이 끊어졌다.

 

정순은 재범이 불쌍했다.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었다. 아빠 회사 상무에게 간곡하게 부탁해서 재범을 회사 직원으로 채용하게 만들었다. 그 바람에 재범은 당당하게 사무실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막노동이 아닌 관리직, 영업직으로 일하게 되었다.

 

엄정순은 그동안 어떤 남자와 결혼했다가 1년 만에 파경을 맞아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었다. 정순이 만났던 남자는 의대를 졸업한 전문의 과정에 있는 엘리트였다.

 

정순의 집에 돈이 있었기 때문에, 정순의 부모는 의사 사위를 얻는다고 결혼정보회사를 통해서 어렵게 결혼을 시켰다. 그런데 그 의사는 이상했다.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똑똑하고, 잘 난 것으로 믿었다.

 

교회를 다니지 않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예수님보다 자신이 더 잘났다고 확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처녀성에 집착했다. 신혼여행 가서 첫날밤을 치룰 때, 불을 환하게 켜놓고 행위를 했다.

 

그리고 쳐녀혈흔이 없다는 것을 추궁했다. 행위를 한 다음 침대 시트를 스마트폰으로 여러 장 찍었다. 정순은 기가 막혔다. ‘도대체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이렇게 미개한 원시인이 나타났나?’ 그러면서 큰소리로 따졌다.

 

아니, 지금 뭐하는 거예요? 내가 처녀인가 아닌가 확인하는 거예요?”

. 내가 의사잖아? 당신이 처녀이면, 처녀로 대접해주고, 처녀가 아니면 비처녀로 대접해주려고 그래.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나도 결혼할 때, 당신이 처녀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어.” “

당신은 총각이었어요?”

나도 물론 총각이 아니야. 하지만 남자와 여자는 다른 거야.”

무엇이 어떻게 다는 거지요? 궁금하네요.”

 

이렇게 시작된 결혼생활을 머지않아 파경을 예고하고 있었다. 의사는 정순이 처녀가 아닌 사실을 확인한 다음에는 성관계를 아주 제한적으로 줄였다. 한달에 한번 하고 말았다. 정순도 더 이상 그 의사와는 관계를 하기가 싫었다.

 

마지 못해 해도 마치 투명인간이 올라와 있는 것처럼 무감각하고, 소름이 돋았다. 의사가 사정을 할 때면 마치 소독약을 주입시키는 것 같았다.

 

의사는 공공연하게 다른 여자와 성관계를 했다. 그 이유는 정순이 처녀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신의 무의식을 달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정순은 마침내 어머니에게 털어놓았다.

 

완전히 정신병자야! 변태야. 미성숙아야.” 정순의 어머니도 동감했다. 그래서 이혼을 시키기로 했다. 그런데, 의사는 이혼에 반대했다. “왜 그래요? 내가 처녀가 아닌 것을 다 이해하고, 사랑하고 있는데, 왜 이혼하려고 해요? 절대로 이혼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정순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이혼전문변호사를 찾아가 돈을 많이 줄테니까 빨리 이혼시켜 달라고 했다. 변호사는 어렵게 의사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핀 사실을 찾아내서 이혼을 시켰다.

음주운전자를 바꿔치기 해서 위기를 모면하다 / 작은 운명 (199)

 

재범이 나이 서른 세살에 나채양(여, 40세, 가명) 교수를 만났다. 당시 재범은 나이트클럽을 그만 두고, 어떤 작은 중소기업체 사장의 운전기사로 일을 하고 있었다. 재범은 채양과 연애를 했다.

 

채양은 미혼으로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서 대학교 조교수를 근무하고 있었다. 채양은 재범이 고등학교를 중퇴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재범에 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재범을 남자로 생각하고, 의젓하고 남자답고, 성격이 좋은 것으로 알고 사귀었다.

 

채양의 아버지는 성형외과를 하고 있어 돈도 많은 상태였다. 채양은 그동안 여러 남자와 연애도 했으나, 대부분의 남자들이 공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쩨쩨하고, 너무 이성적이어서 감성은 완전히 메마른 상태였다.

 

사회적 능력은 있었으나, 여자를 다룰 줄도 모르고, 기본적으로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자신만 아는 스타일이었다. 성관계를 해도 여자에 대한 배려심이 제로였다. 자신의 욕정만 채우고 돌아서면서, 채양이 성적으로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면 싫어하고 의심했다.

 

그래서 채양은 나이 마흔살이 될 때까지 공부만 하고, 자신의 취미생활을 하고, 운동을 하면서 멋있는 남자를 만나는 것을 거의 포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면서 채양은 자신이 불감증이라는 사실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런 시점에 채양은 재범을 만났다. 재범은 무척 인간적이었다. 여자를 무척 위했다. 모든 것을 여자에게 맞추려고 노력했다. 무척 자상했다. 혼자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고 하면서 강아지 때문에 집에 늦게 들어가는 것도 무척 고민할 정도였다.

 

스마트폰에는 오직 강아지 사진만이 있었다. 포메라이안이라는 강아지와 완전한 가족으로 둘이서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재범은 시를 좋아했다. 차에는 늘 시집을 여러 권 가지고 다녔다. 디스크도 시를 낭송하는 것이 들어있었다.

 

재범은 또 그림 그리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사진 찍는 것도 좋아했다. 그리고 술을 많이 마셨다. 채양은 이런 재범이 좋았다. 재범과 육체관계를 계속하면서 자신의 불감증도 고쳤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게 3개월이 흘러갔다.

 

이제는 채양이 재범에게 끌렸고, 재범은 또 다른 여자들처럼 채양과 사이에 권태기가 도래했다. 채양을 만나도 약간 시큰둥했다. 채양은 재범의 태도가 불안했다. 이런 남자를 놓치기는 싫었다.

 

그래서 어느 날 채양은 자신의 차를 운전하고 재범과 드라이브를 나갔다. 강이 보이는 전망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서 채양은 울적한 마음을 풀기 위해 와인을 몇잔 마셨다. 재범은 차를 운전하겠다면서 술을 마시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는 채양 혼자 계속 마시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같이 마셨다.

 

식사가 끝난 다음 두 사람은 모텔로 갔다. 모텔 방은 3층에 있었다. 넓은 창으로 강물이 흘러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두워진 강변에는 아름답고 슬픈 사랑이 작은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서로가 껴안기도 하고, 서로가 발로 차기도 하면서, 사랑들은 진흙속에 파묻혀 뒹굴고 있었다. 무수한 사랑들이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강가의 버들나무 가지가 쳐진 상태에서 상처 입은 사랑들을 감싸고 치료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강물을 보면서 또 한번 진한 사랑을 나누었다. 지금 이 순간 채양에게는 아무 것도 필요 없고,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지금 같이 있는 이 남자의 마음과 육체가 필요할 뿐이었다. 그 다음 날 채양은 학교에서 오전부터 강의가 있었기 때문에 늦게라도 집으로 돌아와야했다. 채양은 더 있고 싶었지만, 하는 수 없이 모텔에서 나왔다.

 

채양이 운전대에 앉자 재범은 술을 마셨기 때문에 운전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채양은 괜찮다고 고집을 부렸다. 재범도 어쩔 수 없이 그냥 조수석에 탔다. 재범이 채양의 허리를 만지고 허벅지를 만지지 채양은 아직도 가득 찬 욕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을 가고 있는데, 멀리서 차들이 정차하여 음주단속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재범은 채양을 뒷좌석으로 빨리 가도록 하고, 대신 자신이 운전대를 잡았다. 결국 재범은 채양 대신 음주운전으로 입건이 되었고, 면허가 취소되었으며, 벌금도 300만원을 냈다.

 

채양은 미안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채양이 음주운전으로 단속이 되면 학교에서 징계처분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로 두 사람의 관계는 계속되었고, 채양은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준 믿음직한 남자, 재범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음악에서 실패하고 클럽에서 일을 하다 / 작은 운명 (198)

 

현재범(50, 가명)은 고등학교 다닐 때 음악을 했다. 기타를 치고, 드럼을 쳤다. 그룹사운드를 구성했다. <지옥열차>라는 이름으로 4인조 그룹을 결성했다. 기타 2, 건반 1, 드럼 1인으로 구성했다. 재범은 드럼을 맡았다.

 

1학년 때부터 그룹을 했으니, 공부는 꼴찌를 도맡아했다. 담배와 술은 기본이었다.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어서, 그룹의 4명은 1학년 때부터 여자 친구가 한명씩 전속으로 있었다.

 

재범의 아버지는 아들이 음악을 하는 것을 전혀 모르고, 법대에 가서 판사를 하다가 국회의원을 하라고 방향을 잡아주었다. 아버지는 그 당시 돈을 많이 벌고 있었기 때문에, 재범에게 고액과외선생을 붙여주었다.

 

재범은 기초가 전혀 없었고, 공부에 취미가 없었기 때문에 과외선생이 와도 그냥 듣고만 있었다. 과외선생님들은 처음에는 너무 기초가 없고, 머리가 나쁘기 때문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재범의 어머니에게 과외지도를 못하겠다고 이야기했으나, 어머니 입장에서는 그런 사실을 남편이 알면 재범이 집에서 쫓겨나갈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선생들에게 사정사정해서 그냥 지도해달라고 부탁했다.

 

재범은 영어선생에게 팝송 가사나 해석해달라고 했다. 수학선생에게는 인터넷으로 팝송 찾는 법이나 배우려고 했다. 나중에는 과외선생들은 재범에게 공부를 가르키는 것은 아예 포기하고, 그냥 와서 잡담이나 하고 음악 이야기나 하다가 시간을 떼우고 갔다.

 

재범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애인이었던 여자 친구가 다른 친구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알고 흥분해서 자신의 애인을 건드린 다른 학교 3학년 남학생을 만나서 소주병으로 머리를 때렸다. 그 바람에 소년원을 갔다가 오는 바람에 학교는 중퇴를 했다.

 

재범의 아버지는 재범에 대해 포기상태에서 재범이 하고 싶은 대로 음악을 하도록 허용했다. 재범은 실용음악학원을 열심히 다니면서 음악공부를 본격적으로 했다. 재범이 군대에 다녀와서 커피를 배우고 있었다. 25살의 나이였다. 그런데 재범의 아버지가 바람을 피웠다.

 

재범의 아버지가 술집에서 만난 마담에게 원룸을 얻어주고, 다방을 차려주었다. 재범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마담에게 돈을 자꾸 주니까 이를 막기 위해, 그 마담을 만나러갔다. 이때 어머니는 재범을 데리고 갔다.

 

왜 남의 남편에게 달라붙어서 돈을 빼돌리는 거야? 더 이상 현 사장 만나지 말고, 눈 앞에서 사라져!”

아니! 왜 그러세요. 사장님은 사모님하고 이혼하기로 합의하고 별거하고 있다고 그러던데요.”

 

마담은 재범 아버지가 자필로 써서 준 <확인서>를 보여주었다. ‘본인은 마누라와 이혼하기로 합의하였음. 현재 별거중에 있음을 확인함.’ 재범 어머니는 기가 막혔다.

 

무슨 이혼합의고, 별거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헤어져.” 재범 어머니는 마담이 보여준 <확인서>를 빼앗아서 찢어버렸다. 그러면서 재범 어머니는 순간적으로 마담의 머리채를 잡아서 땅에 넘어뜨리고 짓밟았다.

 

그러자 마담은 곧 바로 재범 어머니에게 반격을 가했다. 마담은 젊었을 때 태권도나 유도 같은 무술을 익힌 것 같았다. 재범 어머니가 거꾸로 많이 맞았다.

 

이를 보고 있던 재범의 피가 거꾸로 솟았다. 사정 없이 마담의 배를 걷어찼다. 마담은 꼬꾸라졌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달려들어 말리고 누가 신고했는지 경찰차가 왔다.

 

이 사건 때문에 아버지는 아예 집을 나가버렸고, 재범은 재판까지 받고 집행유예을 선고받았다. 재범이 마담의 배를 찼기 때문에, 당시 마담은 재범 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유산을 했다.

 

이 사건으로 재범은 어머니와 같이 살면서 돈을 벌어야 했다. 아버지는 재범과 어머니와의 관계를 아주 냉정하게 끊었다. 마담과 같이 살면서 사업을 했다.

 

재범이 나중에 아버지를 찾아가서 잘못했다고 무릎을 꿇고 울면서 사정을 했으나, 아버지는,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 이미 부자관계는 끝났다. 호적에서 이미 파서 버렸으니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면 안 된다.”라고 냉정한 모습을 보였다.

 

어머니는 너무 억울해서 우울증에 걸렸고, 수시로 마담의 다방을 찾아가려고 했으나, 재범이 말렸다. 몇 년 후에 그 마담은 다른 건달과 눈이 맞아 아버지로부터 두들겨맞고 쫓겨났다.

 

재범의 어머니는 남편이 다시 집으로 돌아올 것을 기대했으나, 아버지는 마담과 헤어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번에는 그 다방에서 종업원으로 일을 하던 아주 젊은 여자와 동거를 시작했다.

 

마담이 운영하던 그 다방은 자연스럽게 젊은 종업원으로 사장이 바뀌었다. 재범은 음악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했다. 4인조 그룹, <지옥열차>도 해체하고 말았다. 재범은 먹고 살기 위해서 술집에서 일을 했다.

 

나이트클럽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클럽에 놀러온 나이 든 여자들과 성관계를 자주 하게 되었다. 나이 든 여자들에게 재범은 인기가 좋았다. 잠자리기술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재범은 여자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었다. 돈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여자들이 좋아하면, 재범도 그냥 좋아했다. 여자들이 선물을 하면 재범도 선물을 했다. 여자들이 돈을 쓰면 재범도 같이 돈을 썼다.

 

이상한 것은 재범은 여자를 만나도 오래 가지는 않았다. 오래 가야 석달을 넘기지 못했다. 처음에는 여자가 좋아도, 재범은 자주 만나면 더 이상은 만나기가 싫어졌다.

 

이 때문에 여자들은 재범을 바람둥이로 생각하고, 어떤 여자들은 재범을 끝까지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재범은 절대로 요지부동이었다.

 

그것은 재범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애인이 바람을 펴서 충격을 받았고, 나이 들어서 어머니가 아버지 애인 때문에 싸움을 한 사건 때문에 또 충격을 받은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산악회에서 낯선 경험을 하다 / 작은 운명 (197)

 

정민희(43, 가명)는 남편인 강 교수가 학교나 사회생활에서 점점 자리를 잡가가고 있고, 여러 여자들과 연애를 하고, 부인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민희는 결혼할 때에는 자신은 공부를 잘 못했기 때문에(사실은 공부에 취미가 없어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강 교수가 매우 학구적이고, 학문에 대한 열성이 있었고, 같이 대화를 해보면 모르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묘한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결혼했던 것이었다. 성관계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부부관계가 파경에 이른 것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이혼까지는 할 수 없었다. 만일 이혼을 했다가는 친정부모나 형제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창피하고, 꼭 이혼까지 할 필요성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산악회에서 만난 현재범(50, 가명)을 만나 연애를 했다. 현재범은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 키는 적고, 얼굴도 특별히 호감이 가는 타입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주 남자다웠다. 말도 큰소리로 하고, 배짱이 두둑했다. 산악회에서 왕초노릇을 했다. 등산도 꼭 다람쥐같았다. 혼자 배낭을 두 개 매고 뛰어올라갔다.

 

현재범은 배낭을 한 개는 등에 메고, 하나는 앞에 멨다. 배낭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절대로 비밀로 하고 보여주지 않았다. 등산할 때 재범은 늘 민희의 배낭도 대신 들고 올라갔다.

 

민희는 지금까지 만나던 남자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재범에게 자신도 모르게 이끌려갔다. 어느 날 재범은 민희에게 다른 산악회가 등산 가는데 같이 가자고 제의했다. 민희는 좋다고 했다. 늘상 다니던 산악회에 약간 식상했는데, 재범이 다른 산악회에 따라가 보자고 해서 같이 갔다.

 

그래서 소백산 산행에 참가했다.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도중 재범은 민희와 대화를 나누면서 천천히 내려왔다. 그래서 일행과 많이 떨어졌다. 재범은 민희가 피곤해 하는 것을 보고 숲에서 쉬었다 가자고 했다.

 

재범은 재범은 배낭에서 와인을 꺼냈다. 민희도 와인이 마시고 싶어졌다. 산에서 땀을 많이 빼고, 술을 마시고, 생리가 시작되기 전이라 그랬는지, 민희는 갑자기 욕정이 일었다. 재범의 어깨에 기대었다.

 

재범은 그것을 곧 눈치채고, 껴안았다. 재범은 좀 더 으슥한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배낭에서 돗자리를 꺼내고 그 위에 얇은 담요를 폈다. 민희는 눕히고 자연스럽게 관계를 했다.

 

숲속은 나무가 많아 햇빛도 보이자 않고, 시원했다. 녹음이 우거진 숲속에서의 행위는 매우 자연스러웠고, 동물적이었으며, 아주 진한 자극을 느끼게했다. 재범은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민희는 너무 행복했다. 너무 만족했다.

 

산악회 총무에게서 전화가 계속 왔다. 재범은 길을 잃어서 헤매고 있다고 하면서 일행은 먼저 출발하라고 했다. 재범은 산에서 내려와 버스를 타고 출발지점으로 돌아왔다. 민희는 그때까지도 몸이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민희의 몸상태를 꿰뚫고 있는 재범은 식사도 하지 않은 채, 부근에 있는 무인텔로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다시 본격적인 게임에 들어갔다. 민희는 그곳에서 아주 기절할 정도가 되었다. 지금까지 겪었던 것중에서 최고의 경험이었다. 민희는 재범을 놓칠 수가 없었다.

작은 운명 (196)

 

한편 강 교수 부인인 민희는 어떻게 되었을까? 민희 역시 공부는 아주 싫어했다. 그러다가 머리 좋은 강 교수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했다. 결혼 당시 강 교수는 집안이 어려웠고, 민희는 부잣집 외동딸이었다.

 

민희는 결혼 전에 여러 차례 연애를 했고, 남자들과 성관계도 가졌지만, 강 교수를 만나 결혼한 이후에는 완전히 마음을 고쳐먹고, 오직 강 교수에게만 순정을 바쳤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강 교수는 결혼한 직후부터 민희가 머리가 나쁘고 공부를 못했다는 이유로 은근히 무시하고 핀잔을 주었다. 민희 부모가 대준 돈으로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면서도 강 교수는 늘 민희가 지적이지 못한 점을 언급했다.

 

강 교수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국 TV는 거의 보지 않았다. 강 교수는 영어 좀 했다는 이유로 한국에서도 미국 방송 CNN이나 영국의 BBC 방송을 틀어놓고 있었다. 민희는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히 한국 방송 드라마 채널로 돌렸다. 그러면 강 교수는 민희가 유치하다고 짜증을 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시간이 가면서 민희는 강 교수와는 도저히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가 생기지 않은 것도 차라리 다행이었다. ‘이렇게 맞지 않는 남자의 아이를 낳게 되면, 그건 더 큰 불행이 될 거야.’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각방을 썼다. 처음에는 아주 이상했다. 부부가 각방을 쓴다는 것에 대해 말을 들어봤지만, 한국적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하고, 익숙해진다.

 

한 두달 지나니까 그 다음부터는 남편과 한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남편의 냄새도 싫었고, 코고는 소리도 싫었다. 특히 술을 마시고 들어와 자는 때에는 마치 돼지가 자는 것처럼 느껴졌다. 말할 때의 입술을 보면, 마치 식인종이 사람을 잡아먹고 입맛을 다지는 것처럼 보여 무서웠다. 사람이 돼지를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싫은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민희는 강 교수가 자신과는 관계를 하지 않고 각방을 쓰면서 다른 여자들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처음에는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상대 여자를 만나서 박살을 내려고도 마음 먹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강 교수가 그짓을 하지 않을 것도 아니고, 어차피 이혼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포기했다.

 

민희는 처녀 시절 연애하던 남자들의 낭만을 떠올렸다. 그러다가 우연히 시작한 산악회 동호회에 나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너무 지성적이지 않은 남자, 너무 잘난 척 하지 않는 남자, 너무 똑똑하지 않은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나이 들어 만나게 되니, 육체관계는 특별한 의미 없이 습관처럼 이어지는 게임처럼 느껴졌다.

 

민희는 자신이 바람을 피는 것에 대해 만약에 강 교수가 문제 삼으면 혼자서만 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강 교수의 뒷조사를 해서 증거를 확보해 놓았다. 그래서 맞불 작전을 편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두 사람은 아주 냉냉해졌다. 민희는 강 교수를 볼 때마다, 다른 여자와 껴안고 뒹굴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것은 완전히 동물적인 모습이었다. 인간이 아니었다.

 

사람의 배꼽 이하는 동물과 똑 같다. 만일 증명사진을 얼굴만 나오는 상반신이 아닌, 하체만 나오는 하반신으로 찍어서 제출하면 실제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민희는 외간 남자와 관계를 하면서도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실존의 방황일 뿐, 그렇게 더럽다거나 추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강 교수의 외도는 그야말로 무책임하고, 비인간적이며, 완전히 동물적인 추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희는 당분간 소강상태를 유지하려고 했다. 이혼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지금 이혼해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상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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