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24)

 

반미술의 아버지 반합격(潘合格, 70, 가명)의 이름도 한학에 정통한 미술의 할아버지 반한문(潘漢文, 99, 가명) 선생이 지어준 것이었다.

 

처음에는 반한자(潘漢字)로 하려다가 부자지간에 같은 한() 자가 들어있으면 마치 형제간에 돌림자를 쓰는 것처럼 오해가 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가운데 한() 자를 쓰지 않기 위해서 아들 이름을 합격(合格)으로 지었다.

 

면사무소 호적 담당 직원이 할아버지에게 이름이 <합격>이면 앞으로 아들이 보게 될 모든 시험에서 합격해야 할 텐데, 만일 한번이라도 떨어지는 날이면 이름을 <불합격> 또는 <낙방>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는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워자절대합격, 워자절대낙방(我子絶對合格, 我子絶對落榜)>. 면사무소 직원도 동네 서당에 몇 달 다녔기 때문에 한문을 조금 배웠다.

 

그렇지만 할아버지가 이렇게 어려운 한문으로 자기 아들 이름에 대해 설명하니 뭐라고 반박할 수가 없었다. 면사무소 직원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아들 국적을 대한민국이라고 하지 않고, <중화민국>이라고 썼다가 아니다 싶어서, <청나라>로 썼다.

 

그런데 면사무소 직원이 <청나라>는 이미 망하고, <모택동>이라는 이상한 모자 쓴 사람이 정권을 잡았다는 라디오 뉴스를 들었기 때문에, 다시 <대한제국>이라고 써서 결재를 올렸다.

 

면장은 마침 점심 시간에 동네 유지들과 <면발전종합대책>을 논의하다가 극렬한 설전이 벌어져서 유지들을 달래기 위해서 밀주로 담은 막걸리를 여덟 사발을 마시고 들어와 의자에 기대어 깊은 잠에 빠져있다가 갑자기 호적담당직원이 급한 결재라고 들이대기에 잘 읽어보지도 않고 그냥 결재를 해버렸다.

 

당시만 해도 외국인이 한국 영토에 들어와서 호적까지 출생신고를 했다는 뉴스는 나오지 않았는데, 이 면에서 최초의 신기록을 세운 것이었다.

 

결국 이 문제는 그대로 넘어갔다가 할아버지 아들인 반합격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들통이 나서 그 지역 엉터리신문기자가 대서특필하겠다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그 신문기자도 할아버지를 만나서 설명을 듣고 곧 바로 정정기사를 내주었다. 할아버지는 <漢文天才國籍 大韓帝國正當, 時代變化勘案 大韓民國修正>라고 초서체로 써서 그 기자에게 건네주었다.

 

그 기자는 할아버지가 써준 글씨를 도저히 해독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붓글씨가 너무 멋있고, 예술적 가치가 있었다. 나중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큰 돈이 될 것 같았다. TV <진품명품> 프로에 가지고 나가면 적어도 천만원은 감정이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기자는 내용을 전혀 모르지만, 마치 자신도 한문 공부를 많이 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기자는 <당신자식최고(當身子息最高)>라고 한문으로 쓰지는 못하고 한국어로 말했다.

 

할아버지는 자신보다 열 살이나 어린기자가 <당신>이라는 반말을 쓰고, 또한 장래 과거에 장원급제할 귀한 아들을, <자식>이라고 낮추어 부르니까 화가 치밀었지만, 어린 아들 <고종>을 막후섭정하던 <대원군>의 어려운 입장을 떠올리면서 참고 인내심을 가지고 염화시중의 미소를 띠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는 할아버지가 자신의 엉터리 한자말이 통했다는데 대만족을 하면서 할아버지가 써준 글씨를 받아가지고 와서 비싼 돈을 들여서 액자로 만들어 신문사 회의실에 걸어놓았다.

 

이런 연유로 영광스럽게도 <합격>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반합격은 일찍이 천자문을 뗀 것을 비롯해서 계속해서 할아버지 지도를 받아 한문과 한학 공부를 많이 했다.

 

그런데 갑자기 정부에서 한글전용정책을 발표하고, 한문은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게 되자, 합격은 주특기를 발휘할 기회를 상실하고, 그 대신 영어와 수학, 국어를 공부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한문을 숭상하고 한글은 천하게 여겼기 때문에, 아들인 반합격이 국어를 공부하는 것을 싫어했다. 또한 유교에 깊이 빠졌기 때문에 아들이 집에 가져다놓은 <성경>책도 불에 태워버렸다. 불에 태운 다음 그 재를 집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개울가에 묻어버렸다.

 

반합격은 이런 구태의연한 아버지의 박해를 받아가면서 몰래 반딧불 아래서 <국어>공부를 해야했다. 할아버지는 <국어>만 박해를 했지, <영어><수학>에 대해서는 관용정책을 폈다.

 

6.25전쟁을 겪으면서 할아버지는 미군을 따라다니면서, <헬로우, 기브 미 껌!> <땡큐> 정도는 해야 남들보다 껌이나 초콜렛을 얻을 수 있다는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미군들에게, <미군호의대단감사 당신미남부자(美軍好意大壇感謝 當身美男富者>라고 아무리 유식하게 말해도 미군은 할아버지는 이상한 사람으로 쳐다보고, 오히려 말도 되지 않는, <얄로! ! 오께!>라고 다섯 음절을 떠드는 유치한 아이들에게 껌과 초콜렛을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때 영어가 생존에 얼마나 필요한지 절감했다.

 

그리고 수학은 처음에는 <산수>로 시작했는데, 아들을 데리고 오일장 시장에 가서 물건값 계산하는 것을 보니, 역시 산수가 실생활에 얼마나 필요한지 깨달았다. 그 전에는 할아버지는 면에서 장이 설 때, 어떤 미모의 할머니가 주인인 주막집에 가서 막걸리와 빈대떡 안주를 먹고 외상으로 달아놓고 있다가 2개월에 한번씩 일괄결제를 하였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할아버지 외상값을 벽지 위에 표시를 해놓고 있다가 할아버지가 외상값을 갚으면 그림을 지우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막걸리 한병은 막대기 하나, 빈대떡은 동그라미 하나를 그렸다.

 

그리고 외상값이 변제가 되면, 주인 할머니는 막대기 하나를 <X>표시를 하고, 동그라미에는 가운데 까만 숯으로 칠해놓았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하다 보니 자꾸 분쟁이 생겼다. 할머니도 같이 막걸리를 마신 날에는 막대기나 동그라미 그리는 것을 까먹기도 하고, 숯으로 칠해놓은 동그라미 안의 칠이 흐려져서 그냥 맨동그라미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런 분쟁이 있을 때마다, 할아버지가 매번 양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할머니가 미스 <대한제국>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진이 없어 진위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할머니는 일찍이 처녀 때 한양에 몰래 올라가서 <고종황제>가 직접 참관하는 <미스 대한제국> 대회 때 영예의 금상을 받았다고 한다.

 

주막집 주인 할머니는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얼굴도 쭈글쭈글하고 별 볼일이 없었지만, 젊었을 때는 동네에서 <황진이>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황진이>는 시도 잘 쓰고, 노래도 잘 하는데, 어떻게 시도 못쓰고, 창도 잘 못하는 할머니가 <황진이>가 될 수 있느냐라는 국민청원이 당시 경무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와서 사람들이 클릭 참가한 인원이 전국에서 45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부 당국의 권고와 세계보건기구(WHO)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의 국제보건차원에서의 권유도 있고 해서, 할머니는 부득이 자신의 애칭을, <장희빈>으로 바꾸기로 했다.

 

그랬더니 <황진이> 때보다, <장희빈> 시대가 훨씬 더 매상도 오르고, 주막을 찾는 외지 손님들도 할머니의 고상한 이미지와 <장희빈>의 비극적인 이미지가 오버랩 되면서 깊은 감흥을 받았다.

 

할머니는 나중에는 영화 <타이타닉>의 여주인공 <케이트 윈슬렛>처럼 젊은 시절에 한양에 있는 멋있는 청년과 <애절한 사랑>을 했다는 전설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할머니는 영화 장면처럼 배 앞머리에서 뒤에는 남자가 팔을 벌리고 있고, 할머니는 깊은 바다를 행복하게 쳐다보는 포즈를 가끔 취했다.

 

그러나 술에 취하지 않은 맨정신에 할머니를 유심히 살펴본 남자들은, 할머니 현재의 외모로 봐서는 도저히 그럴 것 같지 않고, 혹시 궁궐에서 뽑는, <주방보조자> 선발대회 때 <빈대떡 분야>에서 당선된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만일 손님 중에 이런 <미스 대한제국> 당선 사실에 조금이라도 의문을 제기하면, 주인 할머니는 그 손님을 사람처럼 보지 않는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 그 자리에서는 웃고 넘어갔지만, 그 모욕적인 발언을 취중이라도 한 손님은 그 날 이후에는 그 주막에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박합격>이 산수공부를 체계적으로 한 다음부터는 백원짜리 공책에 할아버지가 마신 막걸리병의 갯수, 할아버지께서 드신 빈대떡의 종류, 크기, 개수를 아주 확실하게 써놓았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그 주인 할머니 사이의 무역분쟁도 생기지 않았고, 공정거래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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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3)

 

반미술은 아버지 반합격(潘合格, 70, 가명)42살에 태어났다. 미술이 태어날 때까지 아버지는 만년고시생이었다. 신림동 터줏대감이었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다닐 때 천재 소리를 들었다.

 

소문에 의하면, 아버지는 지방에서 태어나 할아버지 밑에서 한문을 배웠는데, 5살 때 이미 천자문(千字文)을 다 뗐다고 한다.

 

할아버지를 비롯한 그 집안의 종중 사람들은 합격이 조선 시대에 태어났으면, 적어도 율곡(栗谷) 이이나 退溪 이황 이상으로 유명한 한학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보다 조금 늦게 태어났으면 정약용이나 송시열 정도가 되었을 텐데, 시대를 잘못 타고 나서 한문이나 한학보다 영어나 수학을 가지고 우열을 가리니 너무 안타까웠다.

 

그 후에 정부에서는 한글전용정책을 실시함으로써 한문 가지고 폼을 잡지 못하게 하니까, 애써 한문 배워서 붓글씨 쓰고, 한시도 짓고 하던 사람들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합격의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한학을 하는 사람들을 규합하여 동학혁명비슷하게 정권을 뒤집는 혁명(revolution)을 모의해 보았는데, 혁명지지자가 100명쯤 모였을 때, 갑자기 한 사람이 술을 마시고 쿠테타음모가 들통이 났다.

 

그래서 혁명 모의자 100명 중 주모자 20명은 모두 가까운 곳에 있는 동굴속으로 피신했다. 이때 합격의 할아버지는 혁명주동자이었지만, 도피하지 않고 끝까지 의연하게 마을을 지켰다. 자신이 사형을 당해도 비겁하게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관군이 혁명군을 진압하러 오면, 집에 있는 낫과 도끼, 멧돼지 잡으려고 준비한 사냥총, 그리고 훈련시킨 진돗개 5마리를 가지고 결사항전을 할 생각이었다.

 

할아버지는 관군과 장기전을 벌일 경우를 대비해서 비상식량도 준비했다. 10가마, 보릿쌀 5가마, 고추장과 된장 각 한 장독분, 짱아찌 한 박스, 라면 10박스, 옛날 추억의 건빵 한 박스, 콘돔과 생리대(여성 대원용) 등을 비축해놓았다. 혁명군 상호 간에 연락할 암호는 한자 초서체를 쓰기로 했다.

 

암구호는 <한문> - <최고>였다. 이쪽에서 먼저 <한문>이라고 암호를 말했는데, 상대방이 <최고>라고 답변하면 아군인 것을 확인하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상대가 <최고>라고 하지 않고, <한글>이라고 하든가, <chinese>라고 하면 즉시 공격해서 사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비장한 각오를 했고, 만약을 대비해서 유서까지 써놓았다. 유서(遺書)는 물론 모두 한문으로 썼다. 한지에 붓으로 썼는데, 너무 많이 써서, 모두 100장에 걸쳐서 썼다.

 

너무 정성들여서 쓰다보니, 유서를 최종적으로 마무리짓는데, 보름이 걸렸다. 측근들은 할아버지에게 너무 유서 쓰는데 시간을 빼앗기면 정부군과 전투는 어떻게 하느냐고 진언을 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는 유서 쓰다가 측근들이 방해하는 바람에 유서의 일부를 잘못 썼다. 그냥 붓으로 덧칠을 해서 한 글자를 고치면 되는데, 워낙 꼼꼼하고 빈틈이 없는 할아버지는 매우 위급한 상황임에도 그때까지 쓴 유서 25장을 모두 찢어서 불에 태워버렸다.

 

유서를 한 밤중에 태웠기 때문에, 밤하늘에 불길이 치솟아 정부진압군이 혁명군의 위치를 알 수 있을까봐 걱정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의연하게 유서를 더욱 정성 들여 써나갔다.

 

할아버지는 그 동네가 몇백년 후에 성지(聖地)가 될 것이라고 확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할아버지의 쿠테타음모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한 달이 지나도록 정부군은 집압작전에 나서지 않았다.

 

신문에도 보도가 되지 않았다. 동굴속으로 들어간 일부 혁명동지들 중 일부는 체중이 절반으로 줄기도 했다. 몇 사람은 위급상황이 되어 119에 실려가기도 했다. 혁명군에게는 만일 도피 중 사망하게 되는 경우에는 메르스나 신종 바이러스 때문에 사망한 것이라고 사망원인을 위장하라는 공문도 내려왔다.

 

물론 어려운 한문으로 쓰여있기 때문에 정부군에서는 그런 내용의 공문을 해독할 사람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쿠테타음모사건이 폭로된 후 100일째 되는 날, 마침내 혁명주동세력은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더 이상 정부에서 이 사건을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을 내리고, 모든 혁명군은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교시했다.

 

그 이유는 한국 정부에서 한문을 경시하는 태도에 대해 중국 정부에서 강력하게 항의했고, 만일 무력으로 혁명군을 진압하게 되면, 6.25 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 정부군이 한국을 무력침공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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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2)

 

시청 공무원인 소종각(45세, 가명)은 너무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머리를 벽에 세게 박아서 몹시 아팠던 모양이었다. 오른 손은 계속 종각의 머리에 대고 누르고 있었다. 반미술(28세, 가명)은 겁에 질려 가만히 있었다.

 

미술은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남자가 이런 사고방식과 성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구나! 정말 무섭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종각의 태도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미술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장님. 저는 먼저 나가볼 게요. 머리도 아프고, 속이 많이 아파요. 죄송해요.” 종각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뭐라고! 먼저 간다고. 이렇게 큰 일을 저질러놓고, 너만 살겠다는 거야!”

 

미술은 머릿속이 하얗게 백지장이 되었다. 술집 마담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다. 종각은 미술의 핸드폰을 빼앗았다. 술이 거의 다 깬 것처럼 보이는 종각은 침대 시트를 거두고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시트 위에는 피가 조금 묻어 있었다.

 

미술은 사실 생리는 아니었다. 그건 이틀 전에 이미 끝났다. 마담에게 이차를 나오기 싫어서 생리라고 거짓말을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시트 위에 피가 약간 보인 것이었다. 종각은 미술을 보면서 물었다.

 

“이건 뭐야? 아니 생리까지 하면서 나와 관계를 하려고 했던 거야? 도대체 나를 뭐로 보고 이런 더러운 짓을 했어?”

“사장님. 아니예요. 생리는 며칠 전에 끝났어요. 생리중이면 생리대를 차고 있거나, 준비하고 있었을 거 아니예요.”

 

미술은 순간적으로 마담이 한 말이 떠올랐다. “네가 만일 생리 때문에 남자가 피를 보게 되면, 처녀로 처음 해서 그랬다고 거짓말을 확실하게 해야 해.”

 

미술은 마담이 말한 대로 첫경험(one's first sexual intercourse)이라고 말할까 했다. 그런데, 잘못 거짓말을 했다가는 흥분한 남자가 가만 있지 않을 것 같아서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종각은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생리가 아니면, 그럼 나와 처음 한 거라는 이야기야? 분명하게 말해 줘. 이건 매우 중요한 문제니까?”

“예. 사장님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이 없었어요. 오늘 처음 마담이 강요해서 사장님을 따라나왔던 거고, 사장님이 이상하게 남자답고 마음에 들어서 사장님이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던 거예요. 제 처녀성을 사장님께 바친 것은 후회하지 않아요. 어차피 저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 생각이었으니까요.”

 

이런 말을 하자, 미술은 갑자기 서러워서 그랬는지 눈물이 쏟아졌다. 훌쩍이면서 한참을 울었다. 모든 것은 거짓이었지만, 그래도 여자가 그런 거짓말을 남자 앞에서 하니까 이상하게 서러움이 북받쳤다.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미술은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남자에게 첫순정을 바친 것처럼 착각을 일으켰다. 그리고 갑자기 자신과 몸을 섞었던 그 남자가 이상하게 멋있게 보이고, 고결하게 보였다.

 

순간적으로 마취제를 투입한 것처럼, 그 남자의 속정이 자신의 몸 깊은 곳으로 뚫고 들어와서 자신을 ‘정(情)의 노예(奴隸)’로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미술은 갑자기 지나간 과거가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미술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법대를 졸업하고 고시공부를 했다. 머리도 좋고, 대학교 때 성적도 우수했다. 곧 바로 고시에 합격할 것으로 주변 사람들 모두가 기대를 했는데, 이상하게 아버지는 꼭 한 과목 과락으로 시험에 떨어졌다. 그것도 그 전해에는 최고 점수 수준으로 시험을 잘 보았던 과목에서 그 다음 해에는 과락으로 떨어졌다.

 

과락도 39점으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채점 위원이 과목 당 세 사람이었는데, 누군가 3점을 덜 주었기 때문에 평균 39점으로 1점이 부족해서 떨어지는 것이었다. 정말 재수가 없어도 보통 없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낙방이 몇 번 되풀이되다 보니, 시험 공부를 할 때에도 이런 노이로제와 트라우마가 아버지를 짓눌렀다. 그래서 아버지는 책을 읽어도 글씨가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고, 글씨가 겹쳐서 들어왔다. 숫자도 이상하게 보였다.

 

예를 들면 6과 9가 잘못 읽혔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사망한 날짜가 1979년 10월 26일이었는데, 종각의 눈에는 1676년 10월 29일로 읽히는 것이었다.

 

이렇게 1979년을 1676년으로 읽고, 암기하고 있으면 시험에서는 100%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1676년을 돌이켜보면, 단기 4009년에 해당하고, 불기 2220년에 해당한다.

 

1676년은 1979년과는 달라서, 청나라로서는 강희제(康熙帝)가 군림하고 있었고, 조선으로서는 숙종(肅宗) 2년에 해당하는 해이었다. 로마 교황 클레멘스가 그 해 사망하고, 인노첸시오 11세가 240대 로마 교황으로 취임한 역사적인 해다.

 

그런데 로마에서 교황이 사망한 해에 한국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것으로 암기를 했다면 채점 위원이 답안지를 보면서 얼마나 한심하게 보았을까? 채점 위원은 그런 답안지를 심신상실자가 정신병원을 탈출해서 몰래 시험을 본 것으로 추측했을 것이다.

 

아니면, 중국 청나라 강희제 때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한 사람이 부활하여 대한민국에서 고시를 준비하고 시험장에 나온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채점위원 세 사람은 이런 기이한 답안지를 보고, 혹시 죽은 귀신이 그 답안지에 붙어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채점위원들에게 달라붙었을까 두려워서 무당을 찾아가서 불쌍하게 죽어서 구천을 떠돌고 있는 영혼을 위한 진혼제를 비싼 경비를 들여서 합동으로 지내고 그런 다음 싸우나 고온 열탕에 들어가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했다.

 

그렇게 해도 불안하니까 비록 코로나 감염병 때문에 위험하기는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세 사람이 삼겹살집에 가서 소주와 맥주를 섞어서 1인당 10병씩 단숨에 들이키고 집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집에 들어갈 때에도 마트에서 굵은 소금을 사서 세 사람 머리부터 발끝까지 뿌리고 들어갔다. 누가 보면, 갑자기 맑은 하늘에서 우박이 쏟아져서 우산 없이 맞은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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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1)

 

개동은 미연과 속궁합이 잘 맞아서 그런지, 미연과 만나고 난 다음부터 이상하게 하고 있는 사업이 잘 되었다. 대형건설회사로부터 하청공사를 많이 맡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갈고 닦은 로비실력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해서 그런지, 그 지역의 시청과 교육청의 건설담당직원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개동은 그 지역 출신도 아니면서 공무원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데 탁월한 실력이 있었다. 개동은 말단 공무원부터 포섭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점 윗선으로 올라갔다. 그럼으로써 시청과 교육청에서 시행하는 관급공사를 조금씩 맡기 시작했다.

 

아주 규모가 큰 공사는 대형건설사를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 다음, 대형건설사가 관급공사를 따면 우선적으로 개동의 회사에서 하청을 맡았다. 개동은 공무원들을 상대하는 일은 모두 자기 자신이 했다. 절대로 다른 직원을 시키지 않았다.

 

그 이유는 회사의 오너가 직접 뇌물을 공무원들에게 주지 않고, 밑에 직원을 시키면, 나중에 그 직원이 수사를 받게 될 때, 목숨을 걸고 지켜주지 않고, 수사기관의 협박과 회유에 쉽게 넘어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부하 직원들은 대체로 사장으로부터 받은 돈을 공무원에게 뇌물로 줄 때, 정말로 돈을 건네주었다는 증거를 남기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장이 부하직원을 의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회사에서 대외업무를 맡고 있는 직원들은 공무원이나 거래업체 임직원에게 부정한 청탁을 하면서 돈을 줄 때, 상당한 금액은 전해주지 않고, 자신이 떼어 먹는다.

 

왜냐하면 뇌물은 수표로 주거나 은행계좌로 송금을 하게 되면, 명백한 물적 증거가 남기 때문에 절대로 그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원칙적으로 현금으로 준다. 그리고 상대방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영수증을 받을 수도 없다.

 

그냥 현금으로 주고, 돈을 주고 받았다는 사실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만 알고 넘어가는 것이다. 부하 직원은 추석이나 구정, 휴가철에 관련되는 공무원들이나 거래업체 임직원들에게 상품권을 돌리거나, 떡값이나 휴가비 등을 나누어줄 때, 해당자들의 리스트를 만들어야 하고, 각자에게 얼마씩 주었는지 구체적인 금액을 기재해놓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리스트와 전달 금액을 적어서 사장에게 보고를 해야 한다. 이런 보고서는 즉시 파기해야 하는데, 담당 직원은 자신의 컴퓨터에 입력해서 보관을 한다. 그래야 다음 명절 때 똑 같은 방식으로 누구에게 얼마씩 주어야 할 지 착오가 없이 신속정확하게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 직원들은 사장에게 보고한 내용과 달리, 금액을 적게 주고, 자신이 떼어먹기도 한다. 그리고 장부상에는 사장에게 보고한 금액을 모두 주었다고 기재해놓는다. 이러다가 나중에 그런 장부나 메모가 수사기관에 압수되면, 담당 직원은 장부에 기재된 금액을 모두 공무원에게 전달했다는 진술을 하게 된다.

 

뇌물을 준 사람은 가볍게 처벌되고, 더군다나 사장이 지시에 의해 회삿돈을 공무원에게 뇌물로 준 사람은 수사에 협조하면 입건 자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해당 공무원은 어떤 경우에는 받지도 않은 상태에서 다 뒤집어쓰고, 어떤 경우에는 100만원만 받았는데, 장부상에 300만원이라고 기재되어 있고, 회사 직원이 그만큼 주었다고 진술하면 그걸로 끝이다. 무죄를 밝힐 방법은 대한민국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전관예우를 동원해서 대형 로펌의 최고 유능한 변호사를 10명 선임해도 징역을 가고 파면을 당하게 된다. 해당 공무원은 수사기관의 강압에 의해 자백을 해도, 사장이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기 때문에, 뇌물을 일부라도 받은 공무원을 물고 들어가서 망하게 하지, 자신이 사장의 돈을 떼어먹었다는 자백을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면서 공무원을 관리하라고 사장이 중요한 미션을 맡길 때에는 사장과 그 부하 직원 사이에는 보통이 아닌 고도의 신뢰관계가 전제되는 것이다.

 

때문에 나중에 문제가 되어 담당 직원이 자신이 사장의 돈을 가운데서 가로채고, 공무원에게 뇌물을 제대로 전달해주지 않았다고 사실대로 실토하면 그 사장과의 관계는 영원히 끝나기 때문이다.

 

물론 사장과 충분히 상의해서 부하 직원이 상대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한 전략으로 부하 직원이 가운데서 뇌물을 몰래 가로채고 전달해주지 않았다고 진술하는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이만큼 복잡한 것이다.

 

개동은 이런 스토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모든 불법적인 거래는 회사 직원들에게도 일체 이야기하지 않고, 사장 혼자 알아서 처리했다. 그래서 회사에서 비자금을 만들어 5만원 현금으로 뇌물을 주었다.

 

은행에서 5만원권을 인출하는 것도 회사에서 거래하는 주거래은행이 아닌 다른 금융기관을 이용하고, 본인이 직접 가서 인출했다. 주로 수협이나 우체국예금 등을 이용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개동을 100% 신뢰했다.

 

개동은 또한 공무원들과 식사를 하고, 반드시 2차를 갔다. 허름한 술집 하나는 단골로 만들어서 거래를 했다. 그리고 여자를 좋아하는 공무원들은 그 술집에서 대학생으로서 아르바이트를 나오는 직원을 붙여주었다.

 

그런 접대하는 여직원을 뽑을 때에도 개동이 직접 면접을 보았다. 개동은 이런 단골 술집을 고를 때에도 매우 신중했다. 스물 군데가 넘는 술집을 다니면서 술을 마시고, 주인과 마담을 잘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그집 아가씨들 수준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보안이 유지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체크리스트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선정된 술집은 먼저 그 집 여주인이나 마담부터 개동이 꼬셔서 손아귀에 넣었다. 집중적으로 매상을 올려준 다음에 자연스럽게 육체관계를 맺고, 충분한 인간관계가 형성되면 그 이후부터 접대할 공무원을 한 명씩 데리고 가서 접대를 했다.

 

성접대를 하는 경우에도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접대한 공무원의 성향을 분석해야 했다. 한번은 그런 사전 점검 없이 시청 공무원이 겉으로 보아 술도 잘 마시고, 성적 농담도 잘 해서 당연히 여자를 좋아하는 줄 알고, 젊고 매력적인 아가씨에게 돈 50만원을 주고 이차로 모시라고 했다.

 

그래서 그 아가씨가 술에 취한 공무원을 모시고 모텔로 갔다. 술에 취한 공무원은 모텔이 자기 집 안방인 줄 알고 들어가서 침대에 누었다. 그때까지는 아가씨가 자기 부인인 줄 알았다. 그래서 옷을 벗고, 침대에서 잠을 자는데, 같이 간 아가씨는 빨리 임무를 완성하고 나오려고 서둘렀다.

 

아가씨도 옷을 벗고 남자 옆에 누워서 시동을 걸었다. 그랬더니 남자는 여전히 자기 부인인 줄 알고, 아가씨를 껴안고 흥분하기 시작했다. 술이 깨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을 하다가 도중에 상대가 자기 부인이 아니고, 너무 섹시한 다른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공무원은 즉시 일어나 옷을 입고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자신은 모태신앙을 가진 독실한 그리스챤으로서 결혼할 때에도 숫총각으로 결혼을 했고, 지금까지 결혼생활 13년 동안 자기 부인 이외에 다른 여자를 껴안아본 적 도 없고(불루스도 친 적이 없다고 했다), 특히 다른 여자 속으로 자신의 신체가 침범한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이것은 비록 과실이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그 여자에게 책임지라고 했다.

 

여자는 너무 억울했다. 자신은 술집 마담이 나가서 잘 모시라고 해서 나왔던 것이고, 돈 때문에 마지 못해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공무원은 정말 그 여자가 싫어하는 타입이라, 술집에서 이차를 나가라고 할 때에도, 거짓말로 마담에게 자신은 생리중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마담은 저 손님은 매우 중요한 손님이고, 저 손님을 놓치면 술집은 문을 닫아야 한다고 사정을 했다. 그러면서 마담은. “저 손님은 술이 많이 취해서 네가 생리인 줄 모를 거다. 만일 그 손님이 시트에 피가 묻은 것을 보고 물으면, 울면서 지금까지 처녀로 있었다고 해라.

 

그러면 손님이 감동하면서 수고비를 많이 줄 지 모른다. 그러면 너는 일등공신이 되고, 그 손님은 죽을 때까지 우리 집에 단골로 올 것이다.”고 했다. 그리고 마담은 그 아가씨에게 별도로 돈을 10만원 쥐어주었다.

 

그건 마담 주머니에서 특별히 나온 것이었다. 그렇게 마지 못해 나온 것인데, 이처럼 매력 없고, 몸에서도 썩은 냄새가 나고, 목에 힘이나 주는 남자를 최선을 다해 서비스해주었던 것인데, 갑자기 고마움도 모르고 헛소리를 하니 여자는 기가 막혔다

 

‘이 남자는 조선시대 대원군 때 사람이 부활한 것인가? 아니면 신부가 되려고 했다가 못해서 한이 맺혔나?’ 싶었다. 그래도 vip 손님이라고 하니까 “미안해요. 사장님.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사장님은 술에 취해 의식도 없는 상태에서 잠깐 들어왔던 것뿐이니까, 하신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도 그 남자는 펄펄 뛰었다. 그 남자는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아가씨의 뺨을 한번 세게 때렸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벽에 세 번 세게 박았다. 여자는 뺨도 아팠지만, 모텔 방 벽이 무너지면 깔려 죽을까 무척 공포에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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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0)

 

조영순(23세, 가명)은 어머니가 미용실을 다니고 있었다. 영순이 아버지는 개인 택시를 하고 있었다. 영순과 동생 영희는 그런대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영순이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는 택시를 운전하다가 사거리 교차로에서 신호를 위반하고 진입해 오는 오토바이와 충돌하는 사고가 났다.

 

그 오토바이에는 치킨집에서 배달하는 대학생이 타고 있었는데, 비가 오는 밤에 사고가 났고, 대학생은 중상을 입고 응급실로 후송되었다. 그 사고로 아버지는 자신이 신호위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했으나, 블랙박스도 고장이 나있었고, CCTV상에도 불분명하게 되어 결국 아버지는 구속되어 재판까지 받게 되었다.

 

오토바이를 운전하던 대학생은 3대 독자였고,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군대를 갔다온 복학생이었는데, 이미 결혼 약속까지 한 여자 친구도 있었다. 영순의 아버지가 1심 재판을 받는 도중에 그 대학생은 끝내 교통사고로 인한 상해로 인해서 사망하고 말았다.

 

아버지는 매우 억울하다고 펄펄 뛰었지만, 금고 1년 6월의 형을 받고 구치소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감방에 가 있는 동안 영순의 어머니는 헬스장에서 만난 젊은 남자와 눈이 맞아 연애를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아버지 면회도 잘 가지 않게 되고, 나중에 아버지가 감방에서 나와 어머니가 바람을 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심하게 폭행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이미 아버지에게서는 정이 다 떨어져 나간 상태였고, 아버지를 경찰서에 고소할 뜻을 비취자, 아버지는 징역을 살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정폭력으로 재판을 받게 되면, 실형을 살게 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이혼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이혼을 한 다음 아버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을 나갔다.

 

그리고 아버지는 두 번 다시 영순 어머니나 자식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영순은 이런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와 같이 살면서도 어머니를 너무 미워했다. 그렇지만, 영순과 영희는 어머니의 도움 없이는 혼자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와 같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같이 살았다.

 

영순 어머니가 45살이 되었을 때, 50살 된 유부남이 나타났다. 김개동(金介東, 50세, 가명)은 건축업을 하고 있었는데, 본처가 있고, 자녀도 세 명이나 있었다. 개동은 당시 사업이 잘 되고 있었다.

 

우연히 영순 어머니, 조미연(45세, 가명)을 만나서 필이 꽃혔다. 미연은 당시 45살이었지만, 몸매도 처녀 같았고, 얼굴도 가냘프게 생겨 무척 예뻤다. 미용실에 종업원으로 다니면서, 이혼하고 딸 두명을 부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개동은 미연을 위해 편하게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 무렵 국회의원 선거가 한참이었는데, 개동은 선거운동하는 것을 보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미연에게 A4용지에 자신의 공약(公約)을 타이핑해서 가져다 주었다.

 

공약 제1조는, 미연에게 아파트를 사서 살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제2조는, 미연에게 미용실을 차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제3조는, 일주일에 최소한 3회 이상 미연에게 사랑의 행위를 선물하겠다는 것이었다.

 

미연은 그 공약을 읽어보고, 첫째와 둘째 공약은 마음에 들었으나, 세 번째 공약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달에 한번만 하면 되지, 일주일에 3회 이상 한다는 것은, 아무리 돈 때문에 만나주지만 너무 동물적이었다.

 

그래서 미연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일주일에 한번으로 줄이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그랬더니 개동은 아직 미연의 나이가 젊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만 해서는 참지 못하고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날 위험성이 코로나19감염위험성보다 훨씬 높아서 안 된다고 했다.

 

미연은 하는 수 없었다. 그런 관계야 몇 달 하다보면, 남자 쪽에서 힘이 부치던지, 아니면 동일한 파트너니까 새로운 맛이 없어서 싫증이 날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국회의원 선거공약은 언제나 100% 지켜지는 것이 아니고, 더군다나 미연이나 개동은 국회의원도 아니고, 시의원도 아니고, 공기업체 다니는 것도 아니고, 사이비종교단체 교주도 아니니까 대충 써놓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개동은 사업 때문에 지방에 와 있었고, 본처는 다른 도시에서 살고 있어, 완전히 미연에게 몰두해있었다. 일주일에 3번이 아니라, 거의 매일 저녁에 와서 그짓을 하고 돌아갔다.

 

미연은 개동 때문에 지쳐서 낮에 미용실에서 일을 하는 것이 너무 힘이 들었다. 아무리 젊은 사람이라도 아오지탄광에 끌려가서 매일 중노동을 하면 지쳐서 쓰러지는 것과 똑 같았다. 미연을 그래도 나중을 보고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했다.

 

몸에 좋다는 인삼, 녹용도 사서 먹었다. 홈쇼핑에서 나오는 건강보조식품도 주문해서 많이 먹었다. 그랬더니 배만 나오고 살만 찔 뿐이지, 개동으로부터 강요되는 중노동을 감당할 체력은 무리였다.

 

미연이 나중에는 코피까지 흘리면서 솜으로 코를 막고 있는 상태에서까지 개동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동한 개동은, 미연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마침내 미용실을 차려주었다.

 

개동은 건축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용실 인테리어도 아는 업자를 불러서 고급스럽게 잘 해놓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더욱 사랑하는 밀월관계에 들어갔다. 만난 지 1년이 지난 때에, 개동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샀다.

 

그리고 아파트를 산지 6개월이 지난 때에 그 아파트를 미연 앞으로 등기를 넘겨주었다. 다만, 등기를 넘길 때에 등기원인을 증여(贈與)로 하지 않고, 매매(賣買)를 한 것으로 했다. 은행에 설정되어 있는 근저당권은 그대로 놔두고, 명의만 개동에서 미연 앞으로 넘겨주었다.

 

그 아파트에서 미연은 두 자녀와 같이 살았다. 미연은 무척 행복했다. 개동과 같은 유능한 사업가를 만났고, 미용실도 차려주어서 원장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전에는 월세를 살았는데, 아파트를 사주어서 아파트 주인이 되었다. 아파트 단지에서도 대우가 달랐다.

 

관리실에서도 주인으로서 깎뜻한 예우를 갖추어주었다. 미용실 손님들도 직원으로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여주었다. 원장이라고 하니까 훨씬 실력도 있어 보이고, 미모가 받쳐주니까 돈도 많은데, 놀기 심심하니까 취미생활로 미용실을 운영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미연은 점차 일하는 것도 귀찮아져서 밑에 직원을 한 명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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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9)

 

스텔라는 복자의 집에서 나와 친구 조영순(23세, 가명)을 만났다. 영순은 고등학교 친구로서 매우 가까웠다. <외로운 작은 새> 술집에 아르바이트로 나간 것도 영순 때문이었다. 그 전에 영순이 먼저 그 술집에서 3개월 간 일을 했다. 스텔라는 영순과의 약속 장소로 가려고 버스를 탔다.

 

아직도 코로나19 때문에 사람들은 무척 불안해하고 있었다. 확진자 수가 벌써 만명이 넘었다.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도 200명이 넘었다. 스텔라는 아직 젊으니까, 크게 걱정은 하지 않고 있었다.

 

TV를 보니, 65세 이상 노인이거나,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걸리면 위험하지, 젊은 사람은 크게 위험하지 않다고 했다. 다만, 식당이고 치킨집이고 손님들이 크게 줄어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난리 치니까, 스텔라도 덩달아 마음이 뒤숭숭했다.

 

그리고 지난 번 술집 사건 때문에 아직 일할 곳도 정하지 못한 상태다. 정부에서는 재난지원금을 가구당 최대 100만원씩 준다고 해놓고, 아직까지 어떻게 지급할 것인지 구체적인 기준이나 방법을 정하지 못했다고 하는 뉴스가 나왔다.

 

스텔라(23세, 가명)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원양어선을 탔기 때문에 비교적 잘 살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외국에 나가 배를 타느라고 6개월이나 1년씩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아버지 없는 상태에서 오래 살았다. 스텔라는 아버지를 무척 좋아했다.

 

아버지가 스텔라를 너무 귀여워했고, 집에 올 때마다 외국 인형과 장난감, 옷 등을 많이 사다 주었기 때문이었다. 스텔라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했다.

 

원래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것은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많이 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외국 항구에서 일주일씩 체류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현지에서 외국 아가씨들과 잠을 잤다. 그리고 그 아가씨들에게 돈을 많이 쓰고, 성병에도 걸렸다.

 

그래서 어머니와 자주 싸웠는데, 나중에 이혼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아버지가 없는 사이에 어머니가 동네 건달과 붙어먹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바람 피고 있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런 사실을 스텔라가 실수로 아버지에게 말을 했다.

 

“스텔라야. 학용품은 어떤 것을 사다줄까?” “아빠. 학용품은 많아.”

“네가 샀어?”

“아니. 어떤 아저씨가 사다줬어.”

“어떤 아저씨? 누가 스텔라에게 학용품을 사다줬어?”

“누군지는 몰라. 어떤 아저씨가 집에 왔을 때, 학용품 여러 가지를 사다줬어.”

 

스텔라의 이 말 때문에 그날 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모진 고문을 가했다. 몇 시간 동안 두들겨 맞고, 괴롭힘을 당한 끝에 어머니는 같은 동네에서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는, 어머니보다 열 살이나 어린 남자가 정을 통했다는 사실을 실토하고 말았다.

 

아버지는 흥분했다. 어머니의 은밀한 부위까지 신체검사를 해서, 아버지 이외의 다른 남자와 그짓을 몇 번이나 했는지, 정확하게 확인했다. 아버지가 신체검사를 한 결과 확인된 성교 횟수와 어머니가 자백한 성교 횟수가 너무 차이가 난다는 이유로, 어머니는 감금상태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린치를 당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큰소리로 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수건에 물을 적셔서 입에 물려놓았다. 그리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았다. 아이들은 밖에 나가서 있으라고 엄명을 내렸다.

 

아버지의 가혹행위로 인해서, 어머니는 최종적으로 그 치킨집 사장과 정상 체위에서 30회, 여성상위체위에서 15회 일을 저질렀다는 자백을 받았다. 어머니는 자필로 아버지가 부르는 대로 종이에 썼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묶어놓고, 방문 앞에 책상, 탁자 등을 쌓아놓아 어머니가 밖에 나오지 못하게 한 다음, 곧 바로 그 치킨집 사장을 만났다. 사장은 펄펄 뛰었다. 절대로 어머니와 성관계를 가진 사실이 없다고 극구 부인했다. 왜 생사람을 잡느냐고 난리를 쳤다.

 

아버지는 그 치킨집 사장이 어머니 말대로 간통사실을 인정하며, 그 자리에서 때려 죽이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갔다. 그런데 의외로 처음부터 100% 연애한 사실을 부인하니까, 아버지는 혹시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때려죽이는 일은 하지 않았다.

 

“우리 집사람은 당신하고 했다고 자백하고, 각서까지 썼는데, 만일 나중에 그것이 사실이면 당신을 절대로 가만 두지 않을 거야!”라고 경고를 했다.

 

그랬더니, 그 치킨집 주인은, “만일 내가 당신 부인과 아무 관계가 없었으면, 당신은 공갈죄로 징역을 갈 줄 알아!”

 

아버지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재수사를 하려고 뛰어왔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미 집에서 극적인 탈출을 하고 없었다. 스텔라와 오빠가 밖에서 기다리다가 너무 궁금해서 아버지의 명령을 어기고 집에 왔는데, 그때 상황이 난장판이라, 스텔라와 오빠가 방 앞에 있는 바리케이트를 힘겹게 치우고, 어머리를 구출했다.

 

어머니는 급하게 현금과 패물만 챙기고 도망갔다. 그 후 아버지는 다시 원양어선을 타러 외국으로 갔고, 끝내 어머니와 이혼했다. 스텔라와 오빠는 어머니와 같이 살았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 후 치킨집 사장과는 더 이상 만나지 않고, 삼겹살집 식당을 하는 사장과 동거생활을 했다. 삼겹살집 박훈동(52세, 가명) 사장은 어머니 집에 와서같이 살았는데, 스텔라가 중학교 2학년 때 스텔라가 잠이 들었을 때, 스텔라를 간음했다.

 

스텔라는 꿈속에서 자신이 커다란 바위에 눌리고 아랫도리가 아파서 죽을 것 같아서 깨어보니, 어머니와 같이 사는 박 사장이 자신의 옷을 벗기고 위에 올라와 있는 것이었다.

 

박 사장은 당시 유부남이었는데, 부인과 사이가 나빠서 혼자 집을 나와 스텔라 어머니와 동거를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 문제를 스텔라 어머니가 알게 되자, 어머니는 박 사장을 고소한다고 난리를 쳤다.

 

박 사장은 큰 문제가 될 것을 알고, 어머니에게 위자료로 천만원을 주었다. 어머니는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돈 천만원을 받고, 향후 1년 동안 매달 50만원씩 더 받기로 합의하고 사건을 종결지었다.

 

당시 어머니는 스텔라에게, “별 것 아니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원래 그 사람은 착한 사람이고, 술을 마시고 실수한 것이니까 모두 잊어버려라.”라고 달래주었다. 하지만 스텔라는 그 일을 겪고 나서, 자라면서 그 사건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심한 트라우마를 겪게 되었다. 스텔라는 어머니가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점차 깨달았다.

 

그래서 어머니가 싫어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텔라는 성적도 되지 않았지만, 대학에 진학할 것을 포기하고, 어머니로부터 독립했다. 혼자 싼 원룸을 얻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지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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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8)

 

복자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술에 취해 곧 바로 침대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 스텔라는 바로 나올까 하다가 복자가 너무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혹시나 싶어서 거실 쇼파에 기대어 있다가 스텔라도 잠이 들었다. 스텔라가 약 30분쯤 잠에서 깨어나 보니, 복자는 어디가 아픈지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가서 보니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다.

 

스텔라는 복자의 집안을 구경했다. 안방에는 어떤 50대 중반의 여자 사진이 걸려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누가 그렸는지, 어떤 남자의 초상화가 있었다. 그 초상화는 화가가 그린 것이 아니고,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어린 아이가 그린 것 같았다.

 

스텔라가 보니, 복자가 쓰고 있는 일기장이 있었다. 안방 화장대 위에 쓰던 일기장이 펼쳐져 있었다. 스텔라는 호기심 때문에 그 일기장을 거실로 가지고 나와서 읽어보았다. 복자는 고아원에 있을 때부터, 그때까지 계속해서 일기를 써왔다.

 

매일 쓴 것은 아니고, 일주일에 한번 정도 써놓았다. 길게 쓴 것은 아니었다. 대개 10줄 정도 간단하게 중요한 일을 써놓았다. 일기의 내용을 보니 고아원에서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사회에 나와서도 고생을 많이 했다.

 

다만, 지금의 남편인 국홍을 만나서 얼마나 행복했는지에 대해서는 과거와 달리 많은 양을 써놓았다.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원망도 많았다. 늦게 만난 친엄마, 김춘화에 대한 감정, 느낌도 많았다.

 

그러다가 친엄마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방암으로 돌아가신 이야기를 읽을 때, 스텔라는 눈물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 국홍이 강간사건으로 구속된 이후 면회를 다니면서 느꼈던 심정도 상세하게 되어 있었다.

 

끝 부분에 보니, 복자는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써있었다. 이 부분에서 스텔라는 심장이 멎는 듯 싶었다. 노트 맨 뒤에 편지지 세장이 끼여있었다. 복자가 최근에 써놓은 유서였다.

 

유서의 내용은 그동안 고아로 고생한 이야기, 남편을 만나서 행복했던 이야기, 그리고 남편이 구속되고 술집이 망한 이야기, 자신이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는 이야기, 더 이상 세상을 살 자신도 없고, 살 용기도 없다는 이야기, 다만, 남편이 석방되면 죽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너무 불쌍한 여자다. 내가 도와주어야겠다.’ 스텔라는 복자가 일어날 때까지 쇼파에 누워서 잠을 잤다. 아침에 복자가 스텔라를 깨웠다. “아가씨. 미안해요. 제가 너무 술을 많이 마셔서 실수를 했어요. 라면이라도 끓여줄게요. 요새 정신이 없어서 쌀을 못샀어요. 미안해요.”

 

“그래요. 라면 끓여 같이 먹어요. 제가 할게요. 그런데 안방에 걸린 사진은 누구 사진이예요.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초상화는 또 누구 거예요?”

 

“아! 제 친어머니 사진이예요. 그런데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남자 그림은 제가 아버지를 그린 거예요. 저는 아버지를 보지 못했어요. 그리고 제가 친어머니를 만났을 때에도 어머니 역시 아버지 사진을 한 장도 가지고 있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어머니께 아버지 얼굴에 관한 설명을 듣고, 상상해서 그린 거예요. 말하자면, 몽타주(montage) 같은 거지요. 하하.”

 

"언니는 정말 그림을 잘 그리세요. 사진 찍어놓은 것과 아주 똑같아요.“

스텔라는 복자가 직접 그렸다는 아버지 초상화가 실제로는 초등학생 수준이었지만, 일부러 기분 좋게 해주려고 칭찬을 늘어놓았다.

 

“사실 나도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그림을 좋아했어요. 커서 피카소 같은 화가가 되려고 했어요. 피카소까지는 못 되어도, 천경자 정도는 되려고 했는데, 고아원 원장님이 그림 그릴 도구를 사주지 않았어요. 그리고 내가 그림 소질이 없다고 구박을 주어서 포기했지요.”

 

스텔라는 복자의 일기장을 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같이 라면을 먹고, 스텔라는 밖으로 나왔다. ‘저 불쌍한 여자를 도와줄 거야. 그리고 남편도 석방되도록 내가 할 일을 해야지. 가장 중요한 것은 저 여자가 자살하지 않도록 내가 곁에 있어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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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7)

 

복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울부짖었다.

나 같은 인생은 살 가치가 없어요. 죽어야 해요. 핏덩이인 나를 버린 아빠는 한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어요. 엄마는 뒤늦게 나타났는데 얼마 있다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고아원에서 버림 받은 인생을 살다가 어렵게 남편을 만났어요. 같은 고아원 출신으로서 서로 아끼고 평생 같이 잘 살자고 맹세했던 내 남자가 그런 나쁜 인간인 줄 몰랐어요. 인간의 탈을 쓰고, 선한 양처럼, 나를 농락했어요. 그런 인간 빼내고 싶지는 않아요. 징역을 오래 살아야 해요.”

 

아니 사모님! 왜 그러세요. 사장님은 나쁜 사람 아니예요. 술 때문에 한번 실수한 거예요. 제가 단호하게 뿌리치지 못한 잘못도 크고요.”

스텔라는 복자가 너무 불쌍했다. 같이 울었다.

 

아냐. 아가씨는 전혀 잘못이 없어. 그 인간이 악마야. 사람도 아니야. 그래도 내가 그 인간을 감방에서 구해주고 싶은 것은 그 인간도 고아고, 이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야. 그것 하나뿐이야. 재판에서 나오면 그 날로 그 인간과는 끝이야. 나를 그렇게 배신하고, 어린 아가씨를 강간한 것이 사람이라고 할 수 없어. 다만, 술집을 차리기까지 험한 일, 한해본 것 없고, 고아로서 천대받고 살은 것 때문에 마지막으로 도와주고 긑내려고 하는 거야.”

 

복자야. 그러지 마! 신랑도 착한 사람이야. 남자란 때로 실수를 할 수 있는 거야. 술이 원수지. 나도 살면서 많은 잘못을 했어. 남자는 여자와 단 둘이 있으면 참을 수 없을 때가 있어. 복자가 이해해 줘. 아가씨! 미안해요. 복자가 술에 취해서 그래요.”

 

스텔라는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이 풀어졌다. 강간죄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아니라, 아주 오래 전부터 가깝게 지냈던 언니와 동생 관계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늦어서 술집에서 일어났다.

 

대리기사를 불러서 철옹의 차에 세 사람은 같이 탔다. 먼저 스텔라의 집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참 가다가 갑자기 스텔라가 말했다.

사장님! 언니가 너무 취했어요. 먼저 언니집부터 가요. 저는 괜찮아요.”

 

철옹도 술에 취한 상태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대리기사는 언잖은 표정을 짓더니 곧 바로 복자의 집으로 핸들을 돌렸다. 세 사람 모두 고개를 떨구고 잠이 들었다. 철옹은 아예 코를 골면서 술과 담배에 찌들은 악취를 조수석에서 내뿜고 있었다.

 

대리기사는 이번 타임은 정말 재수 없는 팀에 잘못 걸렸다고 이날의 일진을 탓했다. 대리기사는 그렇잖아도 어제 밤 꿈이 너무 나빠서 오늘은 일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지만 최근에 코로나 사태 때문에 대리건도 많이 줄어서 마지못해 운전을 나왔는데, 첫타임 손님이 이렇게 재수없는 팀이 걸린 것이었다. 차가 복자집앞에 섰다. 복자가 철옹의 부축을 받고 차에서 내리자 스텔라도 따라 내렸다.

 

그러면서 철옹에게 먼저 가시라고 했다. 스텔라는 그곳에서부터는 따로 가겠다고 했다. 철옹은 순간적으로 복자가 내리면 스텔라와 철옹 둘이만 차를 타게 되므로 스텔라가 그런 것이 싫어서 그러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렇게 하라고 하면서 택시비나 하라고 5만원짜리 하나를 꺼내주었다. 스텔라는 자존심을 상해하면서 돈을 받지 않았다. 철옹이 대리기사와 그곳을 떠나자 스텔라는 복자를 부축하고 복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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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6)

 

복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구치소로 가서 국홍을 면회했다. 자주 다니다보니 특별히 할 이야기도 없었지만, 복자는 혹시 국홍이 구치소에서 자살을 할까 제일 두려워했다. 때는 코로나19라고 하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 전 세계로 퍼져 유행하고 있었다. 지난 겨울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시작된 코로나19는 정말 무서웠다.

 

이 질병으로 인한 감염자가 속출하고 사망자가 늘어나자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했고, 그후 팬데믹(감염병 세계 유행)까지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복자가 TV를 켜면 수시로 한국 질병관리본부에서 코로나19에 대한 브리핑과 관련 뉴스를 보도하고 있었다.

 

복자는 두려웠다. 더군다나 직접 운전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구치소를 오고갈 때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다. 마스크를 쓰고 다녀도 택시 안에서도 감염될 수 있다고 하니까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다.

 

국홍이 구속되자 술집은 문을 닫았고, 영업을 하지 못했다. 복자는 남편이 강간죄로 구속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질까봐 일체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도 않았다. 마침내 법원에서 국홍에 대한 재판날짜가 잡혔다. 복자는 반드시 국홍을 빼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앞으로 어떻게 될 거냐고 물어보았다. 변호사 사무장은 복자에게 무죄를 다투어야 무죄 받는 것은 어렵고, 재판만 오래 끌기 때문에, 차라리 피해자와 합의하고 강간죄를 인정하고 집행유예로 나오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

 

복자는 그게 말이 되냐고 따졌지만, 사무장은 그러면 자신은 책임질 수 없다고 했다. 복자는 국홍과 상의했다.

 

“여보. 변호사님은 강간죄를 인정하고 집행유예로 빨리 나오자고 하는데, 그게 좋지 않아요?”

“아니, 변호사님은 지금까지 나를 무죄로 석방시켜준다고 약속했는데, 왜 갑자기 달라졌을까? 그리고 그 여자가 합의를 해줄 것 같지 않은데. 아무튼 우리는 법을 모르니까 변호사님 시키는 대로 해야지, 어떻게 하겠어? 그러면 그 여자 좀 만나봐.”

 

복자는 그 여자에게 전화를 해서 만나서 이야기 좀 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스텔라는 순순히 만나겠다고 했다. 복자는 혼자 나가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웠다. 그런 일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구치소에 국홍을 면회 다니면서 알게 된 성철옹(남, 45세, 가명)에게 전화를 했다.

 

성철옹은 다단계회사에서 회장을 도와주다가 회사가 부도나고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무더기로 구속되자, 밖에서 변호사를 선임해주고, 회사 임원들 형사재판을 거들어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철옹 자신은 직접적으로 조사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다단계회사 자금 일부를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돈도 잘 쓰고 있었다. 철옹도 과거에 사기죄로 징역을 산 경험이 있어, 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철옹은 구치소 대기실에서 복자를 자주 보면서 불쌍하게 생각하고 먼저 말을 걸어왔다.

 

복자도 철옹이 좋은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에 같이 차를 마시면서 속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철옹은 인간적으로 복자를 딱하게 생각하고, 복자의 남편 국홍을 나쁜 인간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도 나쁘지만, 결혼했는데 어떻게 하겠느냐면서 열심히 해서 빨리 석방시키라고 격려해주었다. 그리고 철옹은 자가용을 타고 면회를 다녔기 때문에, 구치소에서 복자를 만나는 경우에는 철옹의 차로 복자의 집까지 데려다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그래서 복자는 미안했지만, 이번에 강간사건의 피해자를 만나면서 합의를 보려고 할 때 혼자 가는 것이 그래서 철옹에게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철옹은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자신을 복자의 사촌오빠라고 하자고 했다. 그래서 피해자와 만날 때 철옹은 복자를 사촌동생이라고 하면서 말을 놓기로 했다.

 

복자는 철옹과 함께 스텔라를 만났다. 시내에 있는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저녁 시간이었다. “미안합니다. 우리 아빠가 잘못했다고 하면서, 사과를 하고 용서를 빌라고 했어요. 아빠는 원래 고아출신으로서 열심히 살던 사람인데, 이번에 술에 취해서 큰 실수를 했다고 해요. 한번만 이해하고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피해본 데 대한 배상은 할 게요.”

 

옆에서 철옹이 본격적으로 거들었다. “나는 사촌오빠예요. 배상을 할 테니, 어느 정도 하면 되는 지 알려주세요. 돈은 내가 대신 내 주는 거예요.”

 

스텔라는 고민이 되었다. 돈을 받자니 그렇고, 받지 않자니 그랬다. “저는 그 날 아르바이트 나갔다가 갑자기 폭행을 당하고 강간을 당했어요. 그 때문에 남자 친구와도 헤어졌어요. 남자 친구는 제가 동의해서 했다고 오해하고 있어요. 그쪽에서 저에 대한 배상을 얼마로 생각하고 있는 건지 말씀해 보세요.”

 

철옹이 말했다. “글세, 지금 동생네 사정이 너무 어려워요. 술집도 문을 닫았고, 변호사 비용도 많이 들었어요. 5백만원 정도면 안 될까요?”

 

스텔라는 선뜻 결정할 수 없었다. 며칠 생각하겠다고 했다. “좋아요. 그럼 며칠 동안 생각해 보세요. 하지만, 우리 세 사람은 어떻게 보면 감방에 있는 사람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인 거예요. 서로 미워할 이유는 없어요. 그리고 합의는 합의이고, 내 여동생이 지금 남편 때문에 창피하고 술집도 망하고, 남편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자꾸 죽고 싶다고 해요. 그러니까 이왕 오늘 만난 거, 셋이서 같이 식사나 하면서 더 이야기하면 어떨까요?”

 

스텔라도 갑자기 철옹의 제의가 싫지 않았다. 복자에 대해 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전에 복자도 고아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세 사람은 호텔 밖으로 나가서 식사 겸 술을 마실 곳으로 갔다. 복자는 울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철옹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정말 사촌오빠로서 복자의 과거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센스 있게 맞장구를 쳤다. 복자가 살아온 과거가 너무 딱하고 불쌍해서 스텔라도 나중에는 같이 눈물을 흘렸다.

 

세 사람은 술을 많이 마셨다. 세 사람 모두 취했다. 한참 울다보니까 나중에는 스텔라가 거꾸로 가해자가 된 것처럼 보였다. 스텔라 때문에 불쌍한 고아, 국홍이 감방에 가있고. 또 다른 고아 복자가 지금 비참하게 된 것처럼 상황이 반전되었다. 이런 무대를 만들고, 분위기를 연출한 사람은 다름 아닌, 철옹 PD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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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5)

 

TV를 보니 검찰에서는,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 TF’를 설치해서 <소녀방>사건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하고 있었다. 이번에 검거된, <소녀방> 운영자 ‘정털보’를 매일 소환하여 텔레그램 <소녀방>의 운영 체계와 공범들과의 공모 내용 등을 광범위하게 수사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착취 영상을 찍은 공범과 ‘정털보’에게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제공한 공범도 검거되었다.

 

철저한 보안 시스템을 갖춘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 <소녀방>에서 운영자, ‘정털보’는 왕이었다. 운영자들 돕는 공범들은 부하였고, 피해 여성들은 성적 노예신분이었다.

 

'정털보‘는 공범들과 SNS나 채팅 앱을 통해 여성들에게 고수익 아르바이트, 모델 제의 등의 메시지로 접근한 뒤 나체 사진을 받아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여성들의 약점을 잡아낸 ’털보‘는 지속적으로 음란물을 찍도록 강요했다.

 

협박을 해서 제작된 성착취 동영상은 음란물 공유방 텔레그램 회원들에게 가상화폐나 문화상품권으로 거래됐고, 회원들은 공동으로 피해자를 농락했다.

 

텔레그램을 통해 미성년자 여성들에 대한 성착취동영상을 만들어 유포했던 초기 범인들은 SNS의 일탈계 게시물을 보고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에게 접근한 뒤 신상을 해킹해 자극적이고 가학적인 성 착취 영상을 요구했다.

 

스텔라의 애인 엄정확은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지자, 일단 핸드폰을 하수도에 던져 폐기처분했다. 핸드폰이 증거로 사용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친구 명의로 핸드폰을 새로 개설했다. 그리고 평소 사용하던 은행계좌도 해지했다. 증거를 없앨만큼 없애놓고 친구 원룸을 전전하다가 마침내 검거되었다.

 

정확은 <소녀방> 운영자인 ‘정털보’를 도와서 어린 미성년자를 유인해서 동영상을 찍게 하는 일을 담당했다. 초기에는 정확도 단순한 유료회원으로 가입해서 성착취 동영상을 보고 즐기는 것만 했다가, 점점 열심히 하다 보니, 운영자인 ‘정털보’의 마음에 들어 발탁되었던 것이다.

 

정확이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스텔라는 면회를 가서 정확을 만났다. “스텔라야! 너 때문에 내가 구속되었어. 그때 내가 빨리 강간한 놈과 합의해서 합의금을 받아 나에게 꿔주라고 했을 때 말을 들었으면, 내가 변호사를 선임해서 불구속이 되었을 텐데, 네가 내 말을 듣지 않고, 합의금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싼 변호사 선임했다가 이렇게 구속이 되었어. 지금이라도 빨리 합의금 3천만원, 아니 천만원이라도 받아 와. 그러면 힘센 변호사가 보석으로 빼준다고 그래. 나를 도와 줘.”

 

스텔라는 정확의 눈빛을 보았다. 너무 무서웠다. 그것은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악마가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난 후, 또 다시 입맛을 다지는 그런 눈빛이었다. 살기로 가득 충만해 있었다. 그래서 스텔라는 거짓말을 했다.

 

“오빠, 나도 오빠 말을 듣고, 그 사장 부인을 만났어. 그런데 그 부인은 자기 남편은 절대로 나를 강간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자기 남편을 술을 먹이고 꼬셔서 성관계를 하고, 돈을 20만원 받았다고 하면서, 어떻게 고아 출신인 남편을 그렇게 악랄하게 강간범으로 몰았는지 절대로 가만 두지 않겠다고 펄펄 뛰었어. 그래서 무서워서 합의금 달라는 이야기를 더 이상 꺼내지 못했어. 그리고 그 부인은 오빠가 자기 남편 무자비하게 폭행했다고 그 부분도 끝까지 법으로 문제 삼겠다고 했어.”

 

“그렇다면, 스텔라 네가 그 사장과 한 것이 강간이 아니고, 네가 좋아서 했던 거란 말이지? 그러면 그렇지, 그 사장이 미쳤다고 네가 아르바이트 나간 첫날 바로 강간을 한다는 말이야? 그리고 그날 밖에 나오는 너를 볼 때, 그것은 절대로 강간 당한 여자가 아니었어. 신나서 그놈과 즐기고 나온 거였는데, 내가 그때 난리를 치니까 네가 거짓말을 한 거지. 나는 너의 거짓말에 속아서 그놈과 싸움을 한 거고. 알았어. 너 같이 더러운 여자는 더 이상 내 앞에 나타나지 마! 두 번 다시 나타나면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사실 나도 너처럼 뚱뚱하고 재미 없는 여자하고 성관계를 한 것을 무척 후회하고 있었어. 그래도 네가 나를 따르고, 나를 좋아한다고 하니까 마지 못해 만나주었던 것인데, 이제는 모든 것을 알고 나니까, 내가 너무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어. 다만, 지금 내 형편이 어려우니까, 모레까지 여기 구치소 사식비나 30만원 넣어줘. 내가 나가면 그건 곧 바로 갚을테니까.”

 

스텔라는 정확이 이렇게 순순히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더 이상 강간사건에서 합의금을 받아오라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하니 너무 고마웠다. “알았어. 오빠 미안해. 그때는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실수를 한 거야. 그동안 오빠 많이 사랑했어. 더 이상 오빠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게. 그리고 돈은 없지만, 내가 어디에서 빌려서라도 내일까지 영치금 30만원을 넣어줄게. 몸조심하고 빨리 나오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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