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29)

 

강 교수는 어느 날 갑자기 삶에 진한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교수가 되기 위해 외국에 가서도 열심히 연구했다. 출세하기 위해 부잣집 딸과 정략적인 결혼을 해서, 그 덕분에 미국 유학생활을 충분하게 했다. 자녀도 한 명 낳고, 겉으로는 멀쩡한 부인도 있고, 대학에서도 부교수까지 올라갔다.

 

속으로는 곪아터진 부인과의 결혼생활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부인의 과거 애인문제 때문에 두 사람 사이는 깨질대로 깨졌다. 형식적인 부부생활만 아무런 애정 없이 하고 있었다. 그것을 트집삼아 강 교수는 밖에서 여러 여자들과 연애를 했다.

 

그렇다고 어떤 한 여자에게 완전히 파묻혀 인생을 걸 용기도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은 용기의 문제도 아닌 것 같았다. 연애하는 여자가 목숨을 걸만한 매력이나 가치가 느껴지지 않았고, 상대 여자도 마찬가지로 강 교수가 가정 있는 남자였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다.

 

강 교수는 그런 자신의 모습과 상대 여자의 태도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결혼하고 첫 번째 외도 때에는 약간 달랐다. 그때는 아이가 생기기 전이었는데, 상대 여자가 미혼의 상태에서 강 교수에게 목숨을 걸었다.

 

특히 그 여자는 머리 좋은 인텔리였는데, 강 교수가 생애 첫남자라고 하면서 강 교수가 변하면 곧 생을 마감할 것처럼 강 교수에게 집착하고 매달렸다. 하지만 강 교수는 그 여자가 가진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잠자리가 별로 맞지 않아 늘 헤어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강 교수 입장에서는 여자와의 연애, 사랑은 기본적으로 육체관계가 서로 맞고 행복하게 해주어야 오래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생각이나 사상, 종교, 취미 등이 같거나 맞아도 그런 관계는 명학한 한계가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 여자를 떼는데 무려 6개월이 걸렸다. 강 교수는 그 여자가 자살하거나 강 교수에게 해꼬지를 하지 않고, 커다란 상처를 받지 않고,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면서 강 교수와 헤어지도록 하기 위해 수많은 연구를 하고 행동으로 옮겨 마침내 서로 웃으면서 헤어지는데 성공했다.

 

그러면서 그와 같이 그 여자와 헤어지는 이별의 과정 6개월 동안 너무 많은 고통과 위기를 겪고 마음 고생을 했다. 그 당시 6개월 동안은 무척 고통스러웠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면서 강 교수는 오히려 그때 젊은 나이에 겪었던 경험이 두고 두고 여자를 만날 때, 여자와 헤어질 때, 아주 좋은 지혜를 주고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강 교수가 그 여자를 떼기 위해 노력한 과정은 정말 많은 연구를 한 결과였기 때문에 사실 혼자만의 경험으로 알고 있기는 아까울 정도였다.

 

강 교수는 그에 관해 논문을 쓰려고 했다. ‘상처 주지 않고 헤어지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심층적인 연구를 하려고 했다. 그에 관한 국내외 책과 논문, 자료를 수집해서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이론과 가설을 과학적으로 논증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논문은 결국 처음부터 이별을 목적으로 그 방법론을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의 순수성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연구의 목적이 불순하다는 비난을 받을 것 같았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상처를 주지 않는 이별이란 그 자체로 모순인 것 같았다.

 

왜냐하면 이별은 사랑의 소멸을 뜻하는데, 사랑 자체가 사망하는데, 사랑이 받는 상처를 감소시키는 행위가 어떤 효과를 의미하는지도 애매했다.

 

그것은 사람의 생명을 소멸시키는 살인행위에 있어서 그 사람에게 상처를 덜 가하는 것, 즉 상해의 결과를 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것과 똑 같았다.

 

결국 상처를 주지 않고 헤어지는 방법을 연구할 것이 아니라, 이별을 막는 방법, 헤어지지 않는 방법을 연구해야 맞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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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30)

 

강 교수 옆에서 앉아서 듣고 있던 술집 마담격인 나이 든 여자가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남자라는 동물이 잘못인 거예요. 여자를 무시하고, 돈도 주지 않고 건드리려고 하니까 당하는 여자가 가만 있어요? 도대체 힘이 있다고 약한 여자를 제멋대로 만지고 농락하고 그에 대한 책임은지지 않으려고 하니까 감방에 가는 거예요. 여자와 연애를 하거나 섹스를 하고 싶으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살살 달래서 해야지, 무대포로 밀어붙이는 것은 동물이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어요. 남자들은 여자를 너무 몰라요. 예를 들면 나이 60살 된 힘센 여자가 젊었을 때 프로레슬링선수였는데, 갑자기 같이 술을 마시다가 40살된 남자를 껴안고 키스를 했다고 생각해봐요. 그 남자는 얼마나 충격을 받고 성적 수치심이 땅에 떨어질 것인가? 특히 여자 사장이 젊은 부하 직원을 데리고 섹스를 하지 않으면 직장에서 내쫓을 것처럼 겁을 주어 돈도 주지 않고 공짜로 섹스를 했다고 하면 그 남자는 자살하지 않는게 다행이지 않아요? 남자들 정신 차려야 해요.”

 

그 여자는 성교육 전문 강사를 오래 한 것처럼 보였다. 모든 말이 맞는 말이었다. 남자 중심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던 강 교수와 정 교수는 부끄러워서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러면서 마흔 살 쯤 되어 보이는 그 여종업원은 계속해서 두 남자에게 술을 권했다.

 

그리고 매상을 올리기 위해서 안주를 추가로 자꾸 주문했다. 두 남자는 그 여자가 하는 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매상이 올라가자 강 교수의 허벅지도 주물러주고, 원하면 키스도 해줄 것처럼 밀착해서 분위기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술집 한쪽 구석에서 어떤 40대 남자가 혼자 술을 마시면서 옆에 여종업원을 앉히고 여종업원을 껴안고 있었다. 여종업원은 몹시 기분이 나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자는 얼굴이 험상궃게 생겨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사람이었다.

 

“저 남자는 누구예요?”

“아! 저 손님은 이 지역에서 옛날에 활동하던 조직폭력배 두목이예요. 지금은 건달세계에서 손을 떼고 일식당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 술집에 수시로 와서 술을 마시면서 행패를 부리고 술값은 원가만 주고 있어요. 원가는 예를 들면, 맥주 한병에 우리 술집에서 4천원 받으면, 저 손님은 맥주 소매가를 감안해서 한병에 천3백원으로 계산해줘요. 처음에는 우리가 부당하다고 울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그랬더니 그 사람은 우리 요구대로 4천원으로 계산해주면서 자기 팔을 걷어서 커트칼로 5센치 정도 그어서 피를 흘린 다음 그 피를 소주잔에 받아서 들이마시고 나가더라고요. 그런 일이 있은 다음 우리는 절대로 저분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었어요. 돈이 문제가 아니잖아요? 잘못하면 주인이나 종업원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니까 어쩔 수 없는 게 술집 생리예요.” 

  

“아니! 술집에서 원가로 술을 먹으면 술집은 망하잖아?” “저 분은 자신이 일식당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일식에서는 술집과 달리 원가가 많이 들어간다는 거예요. 마진이 30%도 안 된다는 거예요. 직원들 인건비, 월세, 전기요금, 쓰레기 종량제 봉투 비용, 전염병 돌 때 마스크 비용 등을 다 공제하면 마진이 10%도 안 되는데, 왜 술집에서는 맥주 천원짜리를 5천원 받고, 안주도 노가리와 땅콩, 쥐포 등을 재래시장 가서 도매로 사오면 몇푼 된다고 한 접시에 만원 이상 받느냐는 거예요. 이런 부당한 폭리는 고리대금업자도 하지 않는다면서 술에 취해 이성을 잃고 계산능력이 전무한 남자들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우는 것은 무거운 범죄행위이며, 사회 정의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은 비록 생명에 위험이 닥친다해도 정의를 실천하다가 죽고 싶다는 거예요.”

 

강 교수와 정 교수는 그 말을 들으니까 무시무시했다.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고함소리가 나고 술병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해병대 출신 같은 나이 든 남자 두 사람이 해병대전우회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 깡패 같은 남자와 싸우고 있었다.

 

해병대 출신 남자들은 나이가 60살도 훨씬 넘어보였다. 술집 종업원들이 말려도 소용 없었다. 한 사람이 주방에서 칼을 들고 나와 손에 들고 그 깡패 같은 남자를 향해 경고를 했다. 그러자 그 깡패 같은 남자는 갑자기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빌었다.

 

“이 나쁜 놈! 빨리 이 술집에서 나가 꺼져. 두 번 다시는 이 술집에 나타나지 마. 우리가 매일 이곳에 와서 네 놈이 오는지 확인할 테니까!” “예. 알았습니다. 선배님들 말씀 꼭 지키겠습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싸움을 끝나고 그 건달은 술집을 나갔다. 그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술집 사장이 전화를 받고 나타났다.

 

자초지종을 들은 술집 주인은 그 해병대 출신 두 사람에게 가서, “사장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저 사람 때문에 그동안 고통을 많이 받았습니다. 오늘 사장님들 술값은 제가 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자주 오시면 술값을 무조건 50% 할인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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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9)

 

홍 교수가 실형을 받고 구치소로 들어가자 학교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토록 잘 나가던 홍 교수가 그렇게 나쁜 위선자였다는 식으로 매도가 되고 있었다. 남자 교수들은 이제 여학생에게 강의시간에도 눈길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여학생과 단 둘이 있는 시간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았다. 교수실로 여학생이 상담을 하러 와도 문을 열어놓고 상담을 했다. 강의 시간에도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

 

홍 교수는 1심 판결에 대해 자신은 절대로 성추행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지방법원 항소심재판부에 항소를 했다. 강 교수가 면회를 가면 홍 교수는 억울해서 죽고 싶다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강 교수는 정말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홍 교수 말을 들어보면 절대로 성추행을 한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 피해자라고 하는 여학생은 무엇 때문에 아무 죄도 없는 홍 교수를 상대로 고소를 하고 끝까지 성추행을 당했다고 펄펄 뛰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사건 수사와 재판을 맡았던 경찰관과 검사, 판사는 그런 사건에서 엉터리로 결론을 내렸다는 말인가? 강 교수는 홍 교수에게 거짓말탐지기에 의한 조사는 받았느냐고 물어보았다.

 

홍 교수는 자신과 그 여학생을 상대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해달라고 경찰관과 검사에게 요청을 했으나 묵살당했다고 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하지 않았을까?’

 

강 교수는 여러 가지로 심정이 착잡했다. 홍 교수와 가까운 다른 정 교수를 만나 술을 마시러 술집으로 갔다. 술집에는 손님들이 많았다. 여자 종업원은 아주 짧은 치마를 입고 서빙을 하고 있었다. 강 교수는 정 교수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술을 많이 마셨다.

 

총선을 몇 달 남겨놓지 않아서 정치권 이야기가 주된 이슈였다. 강 교수는 여당 성향이었고, 정 교수는 야당 성향이었다. 정 교수는 현 집권당이 너무 정치를 잘못해서 민생이 도탄에 빠졌다면서 이번 선거에서 반드시 망해야 한다고 과격한 발언을 하고 있었다.

 

강 교수는 과거 정권에 비하면 지금 현 정부는 그보다 100배 잘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면서 반박을 했다. 자칫 잘못하면 싸움이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제 정치 이야기는 그만 하자. 우리가 정치인도 아닌데, 공연히 열을 올려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 강 교수가 말을 돌렸다.

 

“그러자. 맞아. 그런데 홍 교수는 너무 억울한 것 같은데,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 “글쎄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도록 도와주자. 우리가 변호사를 만나서 상세하게 설명도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런데 요새 우리 사회가 me too 운동이 일어난 다음부터 너무 법원이나 검찰에서 여자 피해자 말만 믿고 성범죄사건에서 유죄판결을 때리는 것 같아 걱정이야. 게다가 대법원에서 성인지감수성인가 하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법률용어를 도입해서 남자들이 하는 억울하다는 호소는 그냥 묵살해버리는 것처럼 생각돼.”

 

“무서운 세상이 되었어. 아무튼 밖에 나오면 부인 이외의 다른 여자는 쳐다보지도 말고 살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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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8)

 

홍 교수의 면회를 다니면서 강 교수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대해 매우 진한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 목사님이 침례 요한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헤롯 안티바스 왕은 자신의 이복동생인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탐내어 그녀를 빼앗아 결혼하고, 자신의 본부인은 강제로 이혼해서 버렸다. 이런 사실에 대해 요한이 헤롯의 행위가 잘못된 죄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헤롯 왕은 자신의 잘못을 끝까지 주장하는 요한을 감옥에 쳐넣는다. 그 후 헤롯의 생일 잔치에 헤로디아의 딸인 살로메가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였다. 헤롯은 살로메의 소원을 무조건 들어주겠다고 하였고, 살로메는 자기 어머니인 헤로디아가 증오하는 요한의 머리를 달라는 소원을 이야기한다.

 

이에 헤롯 왕은 약속한 대로 요한을 죽여 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 살로메에게 준다. 살로메는 이를 자신의 어머니인 헤로디아에게 전해준다. 마태복음 14장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처럼 남녀간의 사랑은 매우 어려운 문제다. 다른 사람의 아내를 사랑해서 그 아내와 결혼하고, 첫 번째 결혼했던 부인과는 이혼하고 헤어진다. 요한은 당시 이러한 헤롯 왕의 이혼과 재혼을 범죄라고 단정했다. 그리고 왕을 비난했다.

 

왕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죄의식이 전혀 없었다. 같이 살던 첫 번째 부인이 싫어졌고, 비록 다른 남자의 부인이지만 마음에 들어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여자와 결혼하고, 첫 번째 부인과는 이혼했다. 그런데 왜 이것을 요한은 범죄라고 계속 주장하고 고집을 부리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은 왕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해서 요한을 감옥에 가두고, 나중에는 처형까지 했다. 물론 그것은 2천년 전의 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어쨌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헤롯 왕의 인식과 행동, 태도다. 더 나아가 헤롯 왕의 부인 헤로디아는 더 큰 문제다.

 

헤로디아는 헤롯 왕이 자신을 좋아하자, 헤롯과 결혼한다. 그러면서 첫 번째 남편인 빌립과는 헤어진다. 그리고 헤롯 왕과 헤로디아 자신을 비난하는 요한을 처형하도록 자신의 딸인 살로메를 시켜 헤롯 왕으로 하여금 사주한다. 과연 헤로디아가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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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7)

 

오랜 수사와 재판 끝에 마침내 판결을 선고하는 날자가 정해졌다. 결심을 한 날로부터 3주 후에 선고기일이 잡힌 것이었다.

 

홍 교수는 변호사가 잘 하면 무죄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한편으로는 낙관도 하면서도 잘못하면 징역을 살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공황상태에 빠졌다. 밤에도 잠을 잘 수 없었다. 실형을 선고받아 법정에서 구속되어 수갑을 차고 곧 바로 구치소로 들어가는 생각이 수시로 홍 교수를 짓눌렀다.

 

홍 교수는 수시로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었다. “변호사님!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너무 불안합니다. 변호사님께서 재판을 해보신 경험에 비추어 무죄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알려주세요.”

 

“글쎄요. 제가 볼 때에는 무죄 같은데, 피해자 여학생이 너무 분명하고 또렷하게 판사 앞에서 증언을 했기 때문에 걱정이예요.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그냥 힘들어도 참고 기다려보세요.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설사 유죄가 인정된다고 해도 초범이고, 대학 교수의 신분인데다가 범죄사실 자체가 크게 중하지 않기 때문에 실형은 나오지 않을 거예요.”

 

변호사 말을 들어보면 또 잠시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요새 사회 분위기가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직접적인 물적 증거가 없어도, 성범죄의 경우에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충분히 유죄가 나올 수 있고, 잘못하면 실형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법을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모두 달랐다. 강 교수는 가급적 홍 교수를 위로해주고 안심시켜주려고 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강간도 아니고, 단순한 성추행 가지고 징역을 가겠어? 그리고 단순히 피해자의 말밖에 없는 사건인데.”

 

홍 교수는 재판이 끝나고 3주 동안 정말 지옥을 경험했다. 마침내 판결 선고일이 다가왔다. 강 교수도 같이 법정에 갔다. 선고를 받고 같이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실 계획이었다. 두 사람은 법정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판사 한 사람이 들어와서 앉았다. 홍 교수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홍 교수는 판사 앞에서 섰다. 홍 교수의 이름을 확인하더니, “피고인을 징역 10월에 처한다.”는 판결을 선고했다. 그러더니 곧 바로 홍 교수는 그 자리에서 교도관에게 인계되었다.

 

강 교수는 놀랐다. 홍 교수와 대화할 시간도 없었다. 강 교수는 이른바 법정구속이 된 것이었다. 홍 교수의 판결선고를 보러 왔던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실형이 선고되자 탄성이 터졌다. “아주 잘 되었다. 정의가 살았다.”

 

홍 교수는 아무 준비도 없이 구치소로 수감되면 신체검사를 받고 수감생활을 해야 한다. 홍 교수는 구치소로 가서 재소자 옷으로 갈아입고 저녁 식사를 한 다음 배정된 감방으로 들어갔다. 강 교수는 사람의 운명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판사의 말 한 마디로 저녁에 술을 마시려고 했던 인간의 계획이 완전히 무산되고, 그 대신 차가운 감방에서 관식을 먹고 짐승처럼 자유는 박탈된 채 신음하면서 고생을 해야 하고, 학교에서는 파면될 것이고,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것이 순식간에 땅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홍 교수의 가족은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고, 그 자녀들은 또 성범죄자 아버지를 둔 멍에를 평생 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윤경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분명히 성추행을 당했는데 교수라는 사람이 끝내 범행을 부인하면서 거꾸로 윤경을 파렴치한 여학생으로 몰았던 사실에 대해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고, 윤경의 명예가 회복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했다. 하마터라면 새로 만난 남자 친구로부터 오해를 받고 그 친구를 놓칠 뻔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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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6)

 

미경은 강 교수를 사랑하고, 강 교수로부터 사랑을 받으면서 너무 행복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는 모두 잊혀졌다. 한때 미경 자신이 사랑하고 몸을 주었던 남자들은 이제 이름 조차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그 남자들은 일시적으로 같이 외국 여행을 다녀온 것에 불과한 존재였다.

 

처음 가보는 낯선 외국으로 두 사람이 한달 간 여행을 하고 돌아와 다시 헤어져 모르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경험으로 생각되었다. 그 사람의 흔적은 모두 사라지고, 기억도 소멸한 것은 결국 그 사람과의 사랑이나 애정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과 똑 같았다.

 

한편 강 교수의 동료 교수 문제로 한동안 바빴다.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고등학교 친구인 홍 봄근 교수가 제자를 성추행했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해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여자의 신체를 만짐으로써 강제추행했다는 내용으로 고소를 당했다. 봄근이 윤경이라는 여학생과 단 둘이 식사도 하고, 차를 태워주면서 술을 마신 상태에서 윤경의 허리를 껴안기도 하고, 짦은 치마를 입은 상태의 윤경의 허벅지를 만지기도 했다는 고소사실이었다.

 

노래방에 가서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윤경과 불루스를 치면서 가슴을 밀착시키고, 엉덩이를 세게 만졌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윤경의 남자 친구가 문제를 제기해서 중요한 학내문제로 비화되었다.

 

학교에서 즉각적인 조사나 징계절차를 취하지 않고 시간을 끌고 있자, 학생회에서 본격적으로 봄근의 성추행사실을 거론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윤경은 경찰서에 형사고소장을 제출했다. 홍봄근 교수는 학교측에 자신은 절대로 성추행한 사실은 없다고 주장했다.

 

거꾸로 홍 교수는 윤경이라는 여학생이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하여 잘 보임으로써 학점을 잘 받으려고 했던 것인데, 홍 교수가 학점을 원칙대로 하자 앙심을 품고 허위사실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성추행은 절대 하지 않았고, 다만 윤경과 같이 식사도 하고, 차도 같이 탔던 사실 및 불루스를 쳤던 사실은 인정하고 있었다.

 

강 교수는 홍 교수와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기 때문에 그 사건에 관하여 같이 여러 차례 상의를 했다. 홍 교수는 조사를 받으면서도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 자신은 절대로 그 여학생을 성추행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었다. 변호사도 선임했다. 변호사도 홍 교수의 말을 믿고 무죄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경찰에서는 아무리 홍 교수가 억울하다고 하면서 무혐의를 주장해도 끝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홍 교수는 재판을 받으면서 강 교수에게 죽고 싶다고 했다. 자살함으로써 자신의 결백을 밟히고 싶다는 것이었다.

 

강 교수는 홍 교수가 혹시 극단적 선택을 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자주 만나서 용기를 가지라고 위로도 해주고, 같이 술도 마셨다. 사회에서는 대학 교수가 제자인 여학생을 상대로 성추행을 했다는 것 때문에 홍 교수의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여론이 높았다.

 

1년 넘게 수사와 재판을 받으러 다니면서 홍 교수는 완전히 파김치가 되었다. 강 교수는 홍 교수에게 아무리 무죄를 다투어봤자 현실적으로 무죄를 받기 어려우면, 피해자와 합의를 하고 재판부에 선처를 바라는 것이 어떠냐고 어드바이스했다.

 

홍 교수는 그 말을 듣고 피해자와 합의를 하려고 했으나, 피해자는 돈을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고 하면서 강력한 처벌을 바란다는 진정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강 교수는 옆에서 홍 교수를 볼 때 너무 안타까웠다. 그러면서 남자는 정말 여자를 돌같이 보고 생활해야지, 조금이라도 오해를 살만한 행동을 해서는 큰일 나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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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5)

 

그러다가 마지막 나타난 사람이 바로 강 교수였다. 미경이 강 교수에게 바랬던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돈을 바랬던 것도 아니다. 인물 때문에 사랑했던 것도 아니다. 성적 능력에 이끌렸던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교수였기 때문에 사랑의 대상이 된 것이다. 강 교수의 남자로서의 순수함, 교수라는 신분이 가지는 카리스마, 지적 능력과 분위기, 여자에 대한 배려심 때문에 미경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려고 했다.

 

물론 시간이 가면서 강 교수와의 육체적 관계는 시들해졌다. 서로 나이도 있었지만, 강 교수가 그렇게 탁월한 기술이나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자에게는 남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언제나 육체보다는 정신이 더 중요했다.

 

미경은 강 교수와 관계를 할 때 그의 육체의 움직임을 본 것이 아니었다. 눈을 감고 그가 강의하는 모습, 안경을 쓰고 책을 읽고 있는 모습, 캠퍼스를 거닐면서 사색에 잠겨있는 모습을 연상하고 있었다.

 

그런 이미지에 빠져 있으면, 강 교수가 미경의 위에서 움직이는 동작은 어디까지나 단순한 그림자에 불과했다. 그래서 미경은 황홀경에 빠졌고, 사랑의 미로에서 몸부림쳤다. 미경의 모든 것을 바치고, 던지고 싶었다.

 

강 교수의 조각을 영원히 세우고 싶었다. 설사 강 교수가 미경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해도 좋았다. 강 교수가 자신을 농락하고 있다고 해도 좋았다. 그건 사랑의 일방적인 희생이었고, 기약 없는 메아리였다.

 

이처럼 사랑은 아무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밤새 내리는 눈처럼 쌓여만 간다. 자고 일어나면 하얗게 덮히는 눈과 같이 우리 마음을 순하게 만든다. 첫눈에 반한 사랑 때문에 정신을 잃고 빠져 들어간다. 누가 말릴 수 있으랴?

 

사랑은 감미롭다. 아름답게 흐르는 음악처럼 사람을 녹여 내린다. 사랑하게 되면 모두 시인이 된다. 들꽃을 보고 눈물을 흘리게 된다. 흐르는 시냇물에 마음을 씻는다. 가슴 속에서 부질없는 욕심을 덜어내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채워 넣는다.

 

그래서 연애를 하고 결혼도 한다. 때론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사랑 때문에 왕관까지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에는 가시가 있다. 보이지 않는 함정이 있다. 나중에 심장을 찔러 죽음에 이르게 하는 가시다.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비참한 인생이 되기도 한다. 사랑 때문에 행복한 사람도 많지만 사랑 때문에 파멸에 이르는 인생도 적지 않다. 그것이 인생이고 사랑이다. 그것이 행복이고 파멸이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빛과 그림자와 마찬가지다.

 

사랑에는 반드시 약속이 따른다. 사랑의 약속은 사랑의 생명이고 본질이다. 그것 때문에 사랑은 지속된다. 효력을 가진다.

 

사랑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가는 무엇인가? 사랑의 약속 위반은 다른 약속 위반과는 전혀 다르다, 상대방에 여기에 목숨을 걸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 배신 당한 사람이 죽던, 배신한 사람이 죽음을 맞던 비극이 발생할 수 있다.

 

꼭 죽음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사랑의 배신에는 보복이 따를 수 있다. 엄청난 피의 보복이다. 오뉴월에 내리는 서릿발이 꽃힌다. 평생을 저주하며 원망한다. 그런 저주와 원망 때문에 무서운 재앙을 당하기도 한다. 그걸 인과응보라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처음에는 좋지만, 곧 바로 사랑의 강한 구속을 받게 된다. 그 구속은 보통 강한 것이 아니다. 온통 거미줄을 쳐놓고 감시망을 펼친다. 24시간 밤낮 없이 감시카메라가 따라다니는 것과 같다. 보통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감내하기 어려운 정도다.

 

이런 사랑의 구속을 잘 참고 견디거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안주하는 사람들은 혼인주례사에서 많이 듣는 것처럼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일부일처제의 관습대로 서로 사랑하고 아이들을 낳고 출세하고 돈을 모아 잘 산다. 오손도손 살아가는 재미에다 가정의 평안함도 맛본다. 노후에도 편안히 잘 지내고 외롭지 않게 살아간다.

 

그러나 이런 구속을 견디지 못하는 체질이나 성격을 가진 사람, 상대와 호흡을 맞추기 어려운 사람은 사랑했다는 이유로 견딜 수 없는 질곡에 빠진다. 사랑의 구속을 감당하지 못해서다.

 

이런 사람은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고, 상대와 대화하기 싫어하며, 혼자서 다른 짓을 하다가 결국 다른 이성에 빠져 가정불화를 초래하고 이혼을 당하기도 한다. 불륜의 삼각관계에서 이쪽 저쪽으로부터 구박을 받고 외롭게 된다. 양쪽에서 대우를 받을 줄 알았는데 시간이 가면서 양쪽에서 학대를 받는다. 스스로 자초한 재난이기 때문에 주위에서 동정도 받지 못한다.

 

때문에 사랑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사랑은 얼마나 감미로운가 보다도 사랑의 구속과 변질에 대한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깊어가는 여름 밤 시원한 강물을 바라 보라. 저 홀로 점점 깊이를 만들고 잘 흘러가는 강물에서 사랑의 철학을 배울 수 있다. 겉에서만 보는 강물을 아름답지만, 그 속에는 많은 쓰레기와 아픈 상처를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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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4)

 

강 교수는 당분간은 어디 가서 성관계를 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형벌을 선고받았다. 강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되돌아보거나 반성하지는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누가 강 교수의 잘못을 지적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교회는 빼놓지 않고 다니고 있었지만, 목사님 설교에 강 교수를 특정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잘못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개별적인 방향이나 방안을 제시해주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강 교수가 개인적으로 성경책을 펴놓고 아무리 열심히 찾아보아도, 지금 살고 있는 것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를 밝혀주는 부분은 없었다.

 

단지 구약에, ‘간음하지 마라. 이웃집 아내를 탐내지 마라.’로 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현대 사회에서 성이 개방되고, 간통죄도 없어진 마당에 모두들 프리섹스를 하고 있는데, 강 교수만 신부님처럼 산다는 것은 매우 불합리해 보였다.

 

신약에서는, ‘마음으로도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정언명령을 내리고 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간음한 불쌍한 여자를 앞에 놓고, 무지한 사람들에게,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아무도 돌을 던지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강 교수는 자신은 육신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이므로 천사와 악마의 중간적 존재라고 믿었다. 그래서 살아있는 한, 몸에서 피가 흐르고 가슴에서 심장이 뛰고 있는 한, 성욕을 무조건 억제하는 건 자연의 섭리에 반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의 태도에 대한 자신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가끔 TV에서 유명 인사들이 여자문제로 망신을 당하고 추락하고, 감방 가는 것을 보게 되면, ‘그들은 나쁜 게 아니라, 어리석다. 여자를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고 성적으로 이용만 하려는 이기적이고 동물적인 사람이므로 징역 가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강 교수는 ‘여자 없는 무인도’로 이주하기로 결심해야 했다. 그런 자신이 너무 억울하고 한심했다. 그런데도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한편 미경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자신은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 살았다. 비록 첫단추는 잘못 끼어졌기 때문에 결혼도 실패했다. 그후 몇 사람의 남자를 만나서 사랑을 나누었지만, 남자복이 없어서 그런지 모두 다 건달이었고, 무책임한 방랑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경 자신은 정말 괜찮은 남자가 언젠가는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다. ‘제대로 된 남자! 제대로 배우고, 남자답고, 여자를 배려하면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가 언젠가는 미경의 앞에 나타나 진정으로 미경의 진수를 알아보고, 영원한 사랑을 해줄 것으로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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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3)

 

사람의 일상은 어느 날 한 순간에 방향이 크게 바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 교수는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잘 되어서 만족하고 무한한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연구도 열심히 하고, 강의도 잘해서 학생들에게 인기도 좋았다. 경영학 교수로서 기업체 자문활동도 해서 봉급 이외의 수입도 괜찮았다. 부잣집 딸과 결혼해서 경제적으로도 걱정을 하지 않고 있다. 남들은 어려운 처갓집 생활비도 보태주어야 한다고 하는데, 강 교수는 그런 면에서 해방된 상태였다.

 

애정은 없고 섹스리스 상태로 지내고 있지만, 그래도 겉으로는 정상적인 결혼상태고, 외모도 별로 손색이 없는 부인이 집에 존재하고 있다. 게다가 자립해서 미용실을 경영하고 있는, 비록 연상이지만 번듯한 미경이 애인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가끔 양념으로 젊은 제자와 만나 연애도 하고 있다. 그로 인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 뿐 아니라, 청춘의 피를 수혈 받아 노화도 방지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강 교수는 나이에 비해 아주 젊게 보였다.

 

그리고 항상 원기가 넘쳐흘렀다. 고급화장품을 사용하고, 피부맛사지를 주기적으로 받았다. 초강도의 정력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정력에 좋다는 것은 아무리 비싸도 돈을 아끼지 않았다.

 

강 교수는 자신이 존경하는 선배 교수로부터 전수받은 교훈, ‘젊었을 때 하고 싶은 대로 연애를 충분히 많이 하라. 성관계도 용불용설(用不用說)이니 젊었을 때 최대한 많이 하라. 그래야 늙어서 죽을 때 후회하지 않는다!’을 헌법이나 기본법처럼 삶의 기본 원칙으로 받아들였다.

 

성경이나 불경에서도 혹시 성관계를 가급적 많이 하라는 취지의 구절이 있는지 며칠 동안 찾아보았지만 딱히 들어맞는 구절을 찾지 못했다.

 

옛날에 어떤 절에 다니는 보살님이 ‘육보시(肉普施)’를 해야 한다고 해서 한동안 들뜬 적이 있었지만, 그건 현실성이 없는 말이라는 것을 곧 깨닫고 포기하기도 했다.

 

이슬람교에서 부인을 4명까지 합법적으로 둘 수 있다고 해서 참 좋은 제도라고 감탄을 하고 본격적으로 그 제도에 대해 연구를 했다. 그랬더니, 그 제도는 첫 번째 부인의 동의를 얻어야 가능한 것이고, 부인 4명을 모두 똑 같은 기준과 방법으로 부양하고 대우를 해야 한다는 것으로 알았다.

 

그리고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명의 부인을 부양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또한 부인과 같이 있는 시간도 공평하게 배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강 교수는 그런 구체적인 내용을 듣고 나서 절대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건 사랑이나 성적 관계도 아니고, 강제노역이나 가택연금을 당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리고 젊었을 때는 좋지만 조금만 나이를 먹어도 애정이 없는 상태에서 이집 저집 골고루 나누어 봉사를 하러 다니느니,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훨씬 더 편하고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강교수는 형식적으로는 일부일처제로 해놓고, 비공식적으로 첫 번째 부인의 동의를 받지 않고 비밀리에 애인을 두고 연애를 하는 것이 이슬람제도보다는 훨씬 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현대사회의 성적 제도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일처일부제도 마찬가지로 일처다부제보다는 훨씬 더 여성에게 좋은 제도라고 어렴풋이 생각이 되었다. 사랑이나 애정은 물질과 달라서 절대로 나누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도 이때였다. 두 사람을 똑 같이 사랑한다는 말은 애당초 모순이다.

 

다만 두 사람을 똑 같은 강도로 미워하는 것은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도 사랑과 증오는 천지차이였다.

 

이렇게 잘 나가던 교수가 부인의 사소한 접촉사고 인해서 한 순간에 모든 행복이 날아가버렸다. 그래서 행복은 새와 같다. 새처럼 가볍고 갑자기 날개를 펴고 멀리 날아가 버리면 흔적도 남지 않는다.

 

해는 질 때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다. 갑자기 해가 서산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행복은 그렇지 않다. 행복을 느끼는 것도 순간의 일이고, 행복을 상실하는 것도 순간의 일이다.

 

강 교수는 그동안 보았던 몇 가지 사건들이 떠올랐다. 어떤 사회 저명인사가 젊은 여자를 데리고 놀다가 강제추행죄, 위계간음죄, 강간죄 등으로 몰려서 추락한다.

 

고위공직자가 뇌물을 먹고 검찰의 특별수사를 받고 감방에서 동물처럼 신음한다. 무리한 투자를 했다가 거지가 된다. 모두 하루 아침에 추락하는 것이다. 추락하는 존재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창공을 나는 비행기는 브레이크를 밟더라도 추락을 면치 못한다.

 

강 교수는 아주 사소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거대한 쓰나미에 휩쓸려가다가, 자신의 영역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진흙구덩이로 내동이쳐진 것이었다.

 

사랑하던 미경도 만나지 못하고, 어린 제자와도 데이트할 수 없게 되었고, 더러운 불륜현장의 더러운 신음소리까지 확인한 부인과 같은 집에서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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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2)

 

“내가 오늘 당신이 자주 만나는 그 아가씨를 만났어요. 무슨 관계냐고 물었더니 아무 관계도 아니래요. 그래서 앞으로 연락하지 말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했어요. 미안해요. 공연히 당신을 의심해서...”

“아냐 괜찮아. 내가 딴 짓을 하지 않으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강 교수는 이미 미경을 만나기 전에 그 아가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래서 강 교수는 전혀 걱정말라고 안심을 시켰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이 아는 미경이라는 미용실 원장이 아가씨에게 피해를 주지 못하게 막을 것이고, 문제가 생기면 강 교수가 책임지고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고 강한 메시지를 주고 굳게 약속을 했다.

 

그 아가씨가 만났던 여자는 강 교수의 부인이 아니고, 단지 잘 아는 미용실 원장이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러면서 법적으로 그 여자는 아무런 권한도 없고, 지금이라도 강 교수가 더 이상 만나주지 않으면 아무 할 말도 없는 사람이라고 안심을 시켜주었다.

 

게다가 그 여자는 지금은 완전히 늙은 상태라 남녀간의 애정관계는 불가능한 불쌍한 존재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그랬더니 그 아가씨는 강 교수를 믿고 마음을 놓겠다고 하면서도 이런 말을 했다.

 

“교수님,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매우 세련되었고 돈도 많아 보였어요. 그리고 교양 있고, 교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교수님이 바람을 피면 마치 교수님을 죽일 것같은 태도였어요. 교수님이 그 아주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제가 물러설게요. 그 아주머니가 불쌍해요.”

 

결국 강 교수와 그 아가씨는 앞으로 계속해서 관계를 유지하기로 하였고, 간첩들이 접선하듯이 더욱 주위를 살피고, 아가씨의 핸드폰번호도 바꾸고 아무런 추적을 당하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그 아가씨가 크게 놀라서 고통을 받았던 사실에 대해 위로하는 차원에서 현금 100만원을 즉석에서 꺼내주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한달쯤 지나서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일어났다. 강 교수 부인이 바람을 핀 것이었다. 강 교수 부인이 운전하던 차가 접촉사고를 냈다. 상대 차량이 끼어들기를 하다가 사고를 냈는데, 보험회사 직원이 와서 쌍방과실로 처리하면서 강 교수 부인도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사건처리를 하려고 했다.

 

그래서 대학 교수인 강 교수는 흥분했다. 즉시 쌍방 차량의 블랙박스를 확인하자고 했다. 교통사고는 그렇게 해서 간단히 끝을 냈다.

 

그런데 강 교수가 블랙박스를 가지고 나중에 사건 이전의 내용을 모두 확인해보았더니, 차 안에서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말소리도 들렸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성관계 시간도 꽤 길었고, 대체로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적극적이었고, 무척 섹시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남자는 프로같았다. 특별한 감정 표시 없이 무덤덤하게 열심히 육체적인 움직임만 하는 것같았다. 일을 마치자 남자는 곧 바로 다른 정치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무슨 정당원 같기도 하고, 정치평론가로서 1인방송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같기도 했다. ‘어떻게 관계를 마치자마자 정치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평소 성관계의 중요성과 고귀함, 성스러움을 잘 알고 있는 강 교수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정치에 빠진 냉혈한같았다.

 

강 교수는 흥분했다. 집에 와서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 다시 블랙박스를 틀어놓고 난리를 쳤다. 강 교수는 자신의 부인이 그렇게 섹시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정사 장면을 들어보니 세상에 그렇게 섹시한 여자가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났다. 하지만 때릴 용기는 없었다. 강 교수 자신도 수없이 바람을 피었기 때문이었다. 부인은 이런 상황에서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지 않고, 오히려 당당했다.

 

“당신이 만나고 다니는 여자들 모두 증거를 이미 확보해놓았어. 내가 바람 핀 것은 거기에 비하면 새발의 피야. 어려운 한자말로 조족지혈(鳥足之血)이라고 하는 거야. 그러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넘어가. 그렇지 않으면 당신 인생 끝장을 내줄테니까. 나는 바람 필 충분한 자격이 있어. 하지만 당신은 대학교수잖아! 대학교수가 그따위로 위선 떨고 이 여자 저 여자 연애나 하고, 그것도 그 여자들 이용이나 하고 사는 사람은 더 이상 살 자격이 없다고 봐. 나는...”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강 교수는 그 아가씨를 포함해서 미경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당분간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부인과 ‘사랑전쟁’이 시작될 전운이 감도는 상황에서 미경을 계속 만났다가는 미경과 함께 심해 속으로 침몰할 위험이 있었다.

 

게다가 젊은 아가씨에 대해서도 부인이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어서, 그 아가씨의 구만리같은 앞날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었다.

 

이런 재난상황이 오래 계속되자, 미경은 나름대로 강 교수가 부인 핑계대고 자신을 멀리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강 교수로부터 모든 정을 거두어들였다. 가을에 추수를 해서 창고에 쌓아놓듯이, 강 교수와의 사랑의 추억을 보이지 않는 곳에 폐기처분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미경은 놀랐다. 한 때 깊은 정이 들어 없으면 못살 것 같은 강 교수의 존재가 전에 사랑을 나누다 감방에 간 건달들과 아주 똑 같은 무게와 질량으로 느껴지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국 남자라는 동물은 성교의 의미밖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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