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3)
젊었을 때 ‘걸어다니는 영어사전’이라고 불렸던 노인은 늙어서도 자신의 영어실력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영어단어를 많이 외우고 있다는 것이 큰 자랑거리는 아닌데도 노인은 병적으로 영어단어에 집착했다.
어느 날 가까운 한 친구가 그 노인에게, “만일 소말리아 남자가 한국어사전을 씹어먹고, 매일 한국어 단어만 외우고 있다고 하면, 누가 크게 존경하겠느냐?”고 빈정댔다. 그러자 노인은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소주병으로 친구의 이마를 내리쳤다. 병으로 맞은 친구의 머리는 돌처럼 단단해서 머리에 상처는 전혀 나지 않고, 오히려 술이 반쯤 남아있는 소주병만 깨졌다.
걸어다니는 영어사전은, “화를 내서 미안하다. 하지만 네 머리는 어째서 그렇게 단단하냐? 소주병만 깨지고 네 머리는 아무 표도 나지 않고 말짱하다!”고 물었다. 친구는, “영어단어를 열심히 외우지 않아서 그런 거야. 영어든 일본어든 외국어 단어를 열심히 외우지 않으면, 머리는 단단해진다고 들었어.”라고 대답하면서 어금니를 오랫동안 깨물고 있었다. 겉으로 부어오르지는 않았지만, 아프기는 무척 아팠던 모양이었다.
그 노인은 ‘동백꽃 피는 마을’에 와서 술을 마실 때도 한국말은 거의 하지 않았다. 간단한 영어 단어만을 열거하면서 의사표시를 했다. 다만, 자신의 과거를 자랑할 때는 영문법을 잘 모르니까 접속어만 영어로 하고 나머지는 한국말로 했다. 그런데 혼자 독학을 해서 그런지 액센트나 억약은 완전히 조선시대 말기 영어였다. 대원군의 쇄국정책 때문에 조선시대 양반들은 선교사들로부터 영어를 배울 때도 완전히 높낮이 없이 젊잖게 충청도식으로 발음을 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렇게 한국식으로 천천히 액센트 없이 영어 단어를 발음하니까 한국 사람들은 알아듣기 쉬웠다. 그리고 만일 청중이 알아듣지 못해서, ‘Beg your pardon?’이라고 물으면, 세 번까지는 반복해서 영어로 단어를 발음한 다음, 그래서 머리 나쁜 일부 여성팬이 다시 똑 같은 질문을 하면, 그때는 노인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가지고 다니는 영어사전을 꺼내서 신속하게 찾아서 보여준다. 포켓용 영어사전도 1960년 4월 30일 출판된 것으로서, 4.19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하와이로 망명하는 즈음해서 나온 것을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었다. 글씨가 너무 작고 종이 색깔도 바래서 조명이 어두운 술집에서는 시력이 2.0인 공부를 전혀 하지 않는 운동선수조차 영어단어나 그 뜻을 읽을 수는 없었다. 한번은 어떤 아가씨가 노인이 보여주는 영어사전을 불빛이 환한 화장실에 가지고 가서 확실하게 보고 오겠다고 하다가 화장실 바닥에 어떤 손님이 토해놓은 배설물에 미끄러져 영어사전을 배설물 위에 떨어뜨리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그 아가씨는 노인에게 맞아죽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영어사전을 화장실에 놓고 뺑소리를 쳤다. 아가씨가 화장실에 가서 돌아오지 않자. 술집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혹시 그 아가씨가 그 영어사전이 골동품으로서 TV에서 하는 진품명품코너에 가지고 가서 팔아먹으려고 나쁜 마음을 먹고 튀었는 줄 알고 술집 전체에 비상을 걸어 화장실을 비롯해서 아가씨의 소재를 확인했는데, 아가씨는 보이지 않고, 술집 남자종업원이 영문도 모르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아가씨를 찾는다고 하면서 바닥을 보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영어사전을 발로 짓밟아버렸다. 그래서 아예 몇장이 찢어져나갔다. 나중에 그 노인은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영어사전, 자신이 죽으면 큰아들에게 물려줄 영어사전이 군화발로 짓밟히고, 바닥에 어떤 놈이 토해놓은 배설물에 짓이겨져 있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기절을 하고 말았다. 다행이 병원응급실에 실려가서 의식은 회복했지만, 깨어난 다음에도 오직, “내 사전! 내 사전!”하면서 병원이 떠내려갈 정도로 울부짖었다. 병원 사람들은 노인의 발음이 약간은 영어발음처럼 들렸기 때문에, ‘내 사전, 내 사전’이라는 노인의 음성은, ‘내 사정, 내 사정’이라고 하는 것으로 알아듣고, 그 노인이 자위행위를 너무 심하게 하다가 실성했든가, 아니면 젊은 여자 애인이 사정을 받아주지 않고 도망갔기 때문이라고 선의로 해석했다. 같은 병원에 입원했던 어떤 여자 수녀 한 분은 노인을 공연음란죄로 형사고소해야 한다고 격분해서 말했으나, 종교인이 남을 처벌해달라고 고소를 하는 것은 캐돌릭 교리에 어긋나기 때문에 참는다고 말을 했다.
한번은 술집에서 미국 군인 커플이 와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중에 그 미국 손님들과 술값문제로 분쟁이 생겼다. 조니 워커를 한 병 다 마시고 나서 술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불평을 하는 것이었다. 정말 술병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났다. 술집에서는 영어를 알아듣는 사람이 없었다. 술집 주인과 종업원들은 매우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아무리 손짓 발짓을 대 해도 상호 간에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미국 남자는 자꾸 조니 워커 술병을 자신의 코에 대고 쿵쿵거렸다. 그리고 여자 친구 코에도 댔다. 술집 주인의 코에도 들이대려고 했다. 술집 여자 주인은 그 미국 사람이 술병으로 자신의 코를 쑤셔서 코뼈를 부러뜨리려는 것으로 알고 기겁을 했다. 남자 종업원이 코로 냄새를 맡아보았다. 그건 분명이 미국인이 술을 다 마시고, 그 안에 소변을 넣어서 씻어낸 것 같은 냄새였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미국인과 여자 손님은 테이블에서 일어난 사실이 없었다. 그건 술집 종업원들이 잘 알고 있었다. 두 시간 넘게 테이블에서 일어나지 않고 계속 술을 마시고 둘이 껴안고 있는 것을 보고, 종업원들은 미국 사람들은 오줌보가 큰가 보다고 하면서 자기들끼리 대화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종업원 중에 한 사람이 예전에 감방에 갔다온 사실이 있어, 형사사건에 관해 전문지식이 많았다. 그 종업원은 주인에게, “저 친구들이 술집에 들어올 때 몰래 소변을 받아 숨겨가지고 와서, 술을 다 마시고 그 준비한 소변을 병에 넣었다가 꺼내버린 것 같아요.”라고 탐정처럼 추리소설을 썼다. 그러자, 술집 여주인은, “그러면 김부장이 빨리 테이블 밑바닥에 소변이 쏟아져있는지 수사해바요.”라고 특별지시를 내렸다. 김부장이 테이블 밑 바닥에 엎드려 아무리 코를 대고 소변냄새를 찾으려고 해도 바닥에서는 소변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소변은 물론 바닥에는 전혀 물기가 없었다. “아마도 저 사람들 가방 같은 소지품에 소변이 담겨있는 비밀용기가 있을지 몰라요!”라고 탁월한 추리결론을 낸 것은 여자 종업원이었다. 그 여종업원은 술집에 나오기 전에 한 동안 경찰관과 연애를 했던 경력이 있어 경찰에서 범인을 잡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여주인 입장에서 미국인들의 가방속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그러고 있는데, 마침 그 시간에 영어사전이 여자 친구와 같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술집에서는 그 영어사전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미국 손님들은 그 노인이 미국에서 태어난 ‘Korean American'인줄 알고 몹시 반가워했다. 노인은 일단 평소 속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영어사전 복사한 것을 탁자에 꺼내놓고 미국인의 말을 들었다.
그래서 자신들의 주장을 빠른 속도로 원어민영어로 했다. 영어사전은 입장이 난처했다. 웬만한 영어는 단어를 보면 그 뜻을 알겠는데, 회화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그렇다고 못알아 듣는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었다가는, ’영어사전‘이 아니라, ’영어송장‘으로 불리워질 것이 뻔했다. 그래서 우선 가만히 듣고 있었다. 미국 사람은 아무리 떠들어도 노인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면서, 얼굴이 빨갛게 핏빛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겁을 먹었다.
노인은 점점 빨간 빛을 띠더니, 시간이 가면서 마치 죽은 사람처럼 얼굴 근육도 굳어져갔다. 미국인은 전에 이태원에서 깡패에게 집단 구타를 당한 역사적 경험이 있어, 아차 싶었다. 게다가 그 노인의 인상이 이태원 깡패 두목과 아주 비슷했다.
눈이 갈치눈처럼 작고 째진 것이 표독스러웠다. 입을 오므리고 있는 것이 한 시간 동안은 절대로 입술을 열 것 같지 않았다. 공연히 양주 한 병 공짜로 얻어먹으려고 했다가 한국에서 뼈도 못추리고, 미국으로 화물편에 실려갈 것을 예감했다.
미국인 두 사람은 자기들끼리 뭐라고 이야기하더니, ’We are very sorry.'라고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신용카드를 종업원에게 내주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술값을 계산하고 1.4후퇴 때 불리해서 도망가듯이 빠른 걸음으로 술집을 나갔다.
술집에서는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4강진출을 확정짓는 결승골을 넣은 것처럼 환성이 터졌다. 화장실 가까운 테이블에 앉아있던 여자손님 일행들도 손뼉을 치며 환호를 했다. 사건해결의 스토리를 전해들은 동네 파출소에서도 경찰관이 영어사전 노인의 사인을 받기 위해 긴급출동하기도 했다.
술집 손님들이 모여들어 그 노인에게 물었다. “아까 그 미국 군인의 덩치로 보아 헤비급 권투선수같던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문제를 해결하셨습니까?”
노인은 염화시중의 미소를 띠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인을 따라 온 여자 친구에게 손짓으로 술을 따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채워서 두 잔을 연거푸 마셨다. 그리고 조용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