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2)

 

미경은 선우 집안이 어렵다고 하니까, 선우 자취방에 가서 빨래도 해주고, 생활비도 대주었다. 선우는 특히 책값이 많이 든다고 했다. 자취방에는 책이 별로 없어 물어보면 책은 모두 학교 도서관 열람실에 보관해놓고 있다고 했다.

 

학원비도 많이 든다고 했다. 고시공부를 하려면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에 인삼과 한우 안심, 종합비타민, 삼계탕, 보신탕, 뱀탕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미경이 힘들여 번 돈을 주면 선우는 혼자 가서 몸에 좋은 것을 사서 먹는다고 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돈을 가지고 다른 여자들과 연애를 했다. 그리고 노래방 도우미들과 수시로 성관계를 했다.

 

미경은 선우를 경제적으로 도우려니 휴일도 없이 다른 사람보다 두배 일을 더 열심히 했다. 몸도 약한 데 그렇게 과로를 하니 자주 코피가 나왔다. 생리도 불규칙하게 되고 불면증까지 생겼다.

 

그렇게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몇 년 있으면 외교관 부인이 되어 고생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미경에게 어느 날 청천벼락이 떨어졌다. 며칠 동안 선우와 연락이 되지 않아, 선우의 자취방 주인을 찾아갔다.

 

아 글쎄, 그 놈이 알고 보니 사기꾼이었어. 가짜대학생이었어. 전과자가 대학생이라고 속이면서 사기를 친 거야. 내 방세도 떼어먹고 도망간 거야. 경찰관이 잡으러 왔는데, 그걸 낌새채고 밤에 모든 짐을 싸가지고 사라졌어. 학생도 무슨 피해를 봤으면 경찰에 신고해. 원 세상에 나쁜 사기꾼 같으니라고!”

 

미경은 갑자기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그렇게 당한 것이 너무 억울했다. 미경은 산부인과에 가서 임신사실을 확인하고, 임신중절수술을 했다. 선우의 뻔뻔스러운 얼굴, 더러운 표정, 징그러운 몸짓을 잊는데 꼬박 석달이 걸렸다. 뿐만 아니라 장래의 대사 부인이라는 부러움의 대상에서, ‘가짜 대학생 제비족의 피해자로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

 

미경은 강 교수에게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좋지 않은 이야기는 모두 빼고, 그냥 평범한 이야기, 열심히 살아온 이야기, 현재 최고경영자과정 다니면서 느끼는 보람을 이야기했다. 이혼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강 교수를 존경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강 교수는 미경의 말을 조용히 들어주었다.

 

TV에서는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한국인 4명과 현지인 3명에 대한 현장 수색 작업에 관한 상황이 보도되고 있었다. 실종된 지 벌써 7일이 지났다고 한다. 현지에서는 실종자에 대한 수색작업을 위해서, 군 수색대, 수색견 동원 수색팀, 민간 수색팀 등이 모두 동원되어 열심히 수색을 하고 있었다.

 

강 교수는 실종자 수색작업에 관해 관심이 많았다. 자신도 등산을 좋아해서 전에 히말라야 등반을 해본 경험도 있다고 했다. 눈사태는 정말 무서운 모양이었다. 눈사태가 나면 10미터 정도씩 눈이 쌓이고, 그 위에 얼음까지 덮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눈 속에 파묻힌 실종자를 수색하는 방법으로는 일종의 지뢰 탐지기 같은 금속탐지기와 드론 열 감지기를 사용한다. 눈 속 4m 깊이에 있는 사람 체온까지 감지하는 열 감지 카메라와 줌 기능 카메라가 장착된 드론도 투입되고 있었다.

 

뉴스를 보니, 또 쇼킹한 사건이 보도되고 있었다. 30살 된 남성이 어떤 업소에 가서 성매매를 했다. 남성은 성매매를 한 다음, 업소 주인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남성은 업주에게 돈을 돌려주지 않으면 경찰에 성매매업소를 신고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업주가 돈을 돌려주지 않자, 화가 난 남성은 업주를 살해했다. 그리고 업주의 시신에 불을 질렀다. 살해된 업주는 60살이 넘은 여자였다고 한다. 미경은 그 뉴스를 보면서 세상이 정말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성매매대금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그 몇푼 되지 않는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인다는 말인가? 피해자 입장에서는 그냥 돈을 돌려주었더라면 큰 일을 당하지 않았을 것 아닌가?’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미경은 궁금했다. ‘저런 흉악범은 사형을 시켜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제는 더 이상 사형집행을 하지 않는다고 하니, 자꾸 저런 강력범죄가 되풀이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강 교수에게 물어보았다. 강 교수는 자신은 사형제도에 대해 절대 반대한다고 했다. 그 사건은 범인에게 징역 30년이 선고되었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미경에게 남자를 조심하라고 했다. 미경은 그 동안 남자들에게 당한 폭력피해를 떠올리면서 다시 몸서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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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1)

 

미경은 자신은 고졸이고 오빠는 좋은 대학을 다니고 있고 더군다나 나중에 대사가 될 사람인데, 어떻게 나와 결혼할 수 있느냐고 수백번을 물었다. 아니 수천번 수만번을 물었다. 그랬더니 선우는 늘 똑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남자와 여자는 학벌이 중요한 게 아냐. 사랑이 중요한 거야.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마. 내가 고시 붙으면 너를 미국에 유학 보내 줄게.’

 

미경은 선우의 말을 듣고 정말 잘 주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선우는 성욕이 매우 강한 남자였다.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지 온몸이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다.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 미경을 원했다. 미경이 몸살이 나거나 특별한 일이 있어서 만나지 못하면 혼자 자위를 한다고 했다. 미경은 비싼 돈을 들여서 자위기구도 사주었다.

 

미경은 미용실 일 때문에 무척 힘들고 피곤했지만, 선우가 원하면 죽을 힘을 다해서 그를 위해 몸을 바쳤다. 미경은 여자의 운명이 이런 것이라고 믿었다. 남자를 위해 여자의 몸을 희생해야 한다고 믿었다.

 

오빠. 그런데, 자꾸 이런 데 힘을 쓰면, 공부하는데 지장 있잖아?”

그렇지 않아. 남자는 이것을 제대로 안하면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공부가 되지 않는 거야. 고시 붙은 사람들, 출세한 사람들은 모두 여자 좋아하고 섹스 좋아한다고 책에도 쓰여있어. TV를 봐. 높은 공무원들은 성접대를 받고 있잖아. 부인이 있는 고위직 공무원들은 또 젊은 부하 여직원과도 하고, 재벌들은 부인 이외에 여러 명의 젊은 애인을 거느리고 있어. 남자가 성적 에너지가 없으면 출세도 못하고, 돈도 못벌어. 말단 공무원이나 돈 없는 남자가 애인 때문에 문제된 뉴스는 한번도 없었잖아?”

 

하긴 그랬다. 미경도 TV를 보니까 모두 높은 사람들만 여자와 섹스를 하다가 문제가 되고 있지, 노숙자나 기초생활수급자, 군대 일등병이 성관계로 문제된 뉴스는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때마다 미경도 이상하게 생각했다.

 

정말 높은 남자와 돈 많은 남자들은 정력이 세긴 센 모양이다. 그래서 많이 배우고 예쁘고 능력있는 부인을 버젓이 두고 그 보다 못한 다른 여자들과 내연의 관계를 맺거나 강제로 간음을 하거나 부하 여직원을 건드려 구속되는지를 대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미경은 선우가 고시준비생이므로 어떤 대학교 책에서 보고 그런 것으로 믿고 아무 불평 없이 계속해서 선우가 하자는 대로 따랐다. 미경은 선우가 정력이 센 것을 보고 그렇다면 선우는 최소한 장관이나 국회의원은 할 것이라고 믿었다.

 

언젠가는 선우는 미경에게 영어로 된 책을 보여주는데, 그 책에는 여자들이 나체로 된 사진이 많이 들어있었다. 그 책은 플레이보이라는 잡지였는데, 선우는 그 책에 남자가 섹스를 잘 못하면 출세를 못하고 돈을 벌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는다는 논문이 쓰여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래서 미경은 하는 수 없이 선우의 출세를 위해서 생리중인데도 그짓을 거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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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0)

 

미경이 잠에서 깨자 강 교수는 미경을 데리고 부근에 있는 다른 레스토랑으로 갔다. 강 교수와 미경은 분위기 있는 와인바로 갔다. 강 교수는 술이 세서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것 같았다. 미경은 자신이 교수와 단둘이서 술을 마시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미경에게 강 교수는 그야말로 모든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는 신적인 존재였다. 모든 행동도 모범적이고, 아무런 흠이 없었다. 심지어 잠자리에서도 상대에 대한 모든 배려를 하면서, 분위기 있게 필요한 범위에서만 하고 뒤처리를 하는 남자로 생각이 되었다.

 

미경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했기 때문에 대학에 대해 무조건적인 동경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생도 아닌 교수님이라니, 그런 하늘 같은 존재인 교수님과 단둘이 사적으로 만나서 와인을 마시는 영광을 얻다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다른 여자들과 달리 미경이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미경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진학을 포기하고 곧 바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미용학원에 다닌 다음 취직했다. 미용실 일은 힘들었다. 특히 처음에 보조로 일을 배우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랬다. 조금만 잘못했어도 원장으로부터 눈물이 날 정도로 야단을 맞았다. 손님 머리를 잘못 잘라서 쫓겨날 뻔했던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친구들은 대학에 들어가 멋을 부리고 미팅을 하고 있는데, 자신은 미용실 보조로서 일하고 있으니 창피하기도 했다. 가끔 아는 친구들이 미경이 일하는 미용실에 손님으로 들어오면, 미경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서 그 친구가 갈 때까지 자리를 피하곤 했다.

 

특히 미경의 동창이 손님으로 왔는데, 같이 온 남자 친구가 대학생으로서 두꺼운 대학교 교재를 몇 권 들고 있는 것을 보면 속이 상해 미칠 정도였다. 원래 공부 못하는 학생이 두꺼운 책만 폼으로 들고 다닌다는 사실을 미경은 알지 못했다.

 

원장은 이런 미경의 태도가 못마땅했지만, 미경이 필요한 입장이어서 그런 것을 문제삼아 내보낼 수도 없었다.

 

그렇게 지내고 있는데, 미경은 말하자면 자신이 대학교 3학년 나이가 되었을 때 우연히 남자 대학생을 만나게 되었다. 대학은 다니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대학교에서 매년 한 학년씩 올라가면 미경도 그에 따라 마음 속으로 학년이 올라갔다.

 

선우라는 남자 아이는 당시 그 지역에서 제일 좋다고 하는 대학교 4학년 졸업반이었다. 그는 법대를 다니고 있었다. 미경은 그 남자와 6개월 동안 사귀었다. 그러면서 첫경험도 했다. 선우는 미경을 아주 사랑했다.

 

선우는 고시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미경에게 고시를 붙으면 결혼을 하자고 했다. 선우는 나중에 외교관이 되는 게 꿈이었다. 미경을 만나면 늘 외교관 생활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외교관이 되면 한국에는 있을 시간이 없고, 미국, 프랑스, 이태리, 브라질, 뉴질랜드, 캐나다, 스페인, 러시아, 중국, 파푸아 뉴기니아 등에서 생활해야 한다고 했다.

 

자기 같은 엘리트는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 같은 곳에서는 근무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경도 대사 부인으로서 해외 공관에서 외국 사람들과 늘 파티에 참석해야 하니까 영어 정도는 해두라고 했다. 미경은 그런 환상에 젖어 살았다. 그래서 미경도 영어회화책을 여러 권 샀다. 꾸준히 노력을 해서 미경도, 미국 사람을 만나면, ‘Hello. How are you?’ 정도는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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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9)

 

아가씨의 남자 친구가 만일 옛날 역사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서 읍참마속이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 아가씨를 설득시켜 마음을 돌이킬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친구는 공부를 전혀 하지 않고 지내서 아가씨가 갑자기 읍참마속이라는 어려운 문자를 쓰니까 아가씨 말대로 하지 않으면 아가씨 고향 읍에 있는 참가마 속에 남자 친구를 떠밀어넣어서 목숨을 잃게 하겠다는 뜻으로 알았다.

 

어렸을 때 한번 불에 다리를 데어본 아픈 경험이 있는 남자 친구는 뜨거운 불구덩이 참가마 속으로 들어가느니 아깝지만 여자 친구를 보내고 자신은 불을 좋아하지 않고 대신 물을 좋아해서 수영을 취미로 하는 다른 여자를 찾기로 마음을 먹었다.

 

남자는 울고 불면서 자신은 고의가 아니고 단순한 실수였다고 하면서 한번만 용서를 해주면 앞으로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고, 아가씨의 행선지를 종이에 써서 기사에게 보여주고 기사가 확실히 알았다는 서명날인을 받아서 자신이 보관하고 있겠다고 다짐했으나, 아가씨는 그런 남자 친구의 모습에서 더 없는 비굴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가씨 생각은 ‘고의로 알고 짓는 죄보다는 자신이 죄를 짓는지도 알지 못하고 죄를 저지르는 것’이 더욱 나쁘고 피해가 크다는 지론이었다. 이렇게 해서 그 아가씨는 조건이 좋았던 남자 친구와 그날로 완전히 헤어졌다고 한다.

 

때로는 남자와 여자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같이 모텔에 가고, 그곳에서 서로가 무엇을 했는지도 불분명한데, 나중에 술에서 깨어난 여자가 ‘분명히 네가 술에 취한 나를 건드렸을 거야!’라고 주장하면, 남자는 억울하지만 준강간죄로 징역을 가기도 한다.

 

서로 술에 취했기 때문이다. 술에 취한 여자로부터는 ‘성교에 대한 동의’를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설사 동의를 했다고 해도 술에 취한 상태에서 무엇을 구체적으로 동의했는지 서로 기억도 나지 않는다.

 

미경이 술에 취해 테이블에서 고개를 숙이고 졸고 있다가 눈을 떠보니, 갑자기 강 교수가 미경의 앞에 앉아 있었다. 강 교수는 일행들과 이야기를 한 다음 술값을 내주고 집에 가려고 하다가 혼자 있는 미경을 발견했다. 그래서 조용히 그 앞에 앉아 미경이 술에 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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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8)

 

대학생들은 순수했다. 그런 순수성 앞에서 미경은 부끄러웠다. 미경은 술집에 혼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도 생각되었지만, 강 교수가 자신을 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밖으로 나가야 하나? 아니면 나중에 인사라도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했지만, 술에 취해 옳은 판단을 못하고 있었다. 상황이 복잡해지자 술을 더 마셨다. 술을 마시면 변별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술에 취하면 많은 사건과 사고가 벌어진다.

 

대표적인 것이 음주운전이다. 평소에는 다른 사람들이 음주운전으로 재판을 받고 징역까지 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절대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지 않겠다고 머릿속으로 ‘정언명령’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술이 들어가면, ‘잠깐 운전하는데, 무슨 상관이 있을까? 지금 이 시간 내가 가는 곳까지 단속반이 없을 거야.’ 이렇게 생각한다. 자기 콘트롤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경은 전에 미용실 손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 여자 손님은 어느 날 술에 취해 택시를 탔다. 택시 탈 때는 정신이 들어서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운전하는 택시를 확인하고 탄 것 같았다.

 

그런데 한참 가다가 잠이 깨어서 밖을 보니 자신의 집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인천국제공항터미널까지 거의 다 가고 있었다. 아가씨는 깜짝 놀랐다.

 

‘아니, 이 택시기사가 나를 외국에 팔아먹으려고 인천공항으로 끌고 가는 것 같다.’ 그 택시 기사는 추워서 빵모자를 눌러쓰고 있어서 뒷좌석에서 봐서는 나이가 들었는지, 젊은 사람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아저씨, 지금 왜 인천공항으로 가고 있는 거지요?”라고 큰소리로 물었다. “아니, 손님이 가자고 한 것 아니예요?” “제가 왜 공항으로 가요? 외국 나갈 것도 아닌데? 지금 여권도 없단 말이예요?”

 

두 사람은 지구대까지 가서 택시 요금 때문에 싸움을 했다. 나중에 진상을 조사해보니, 아가씨가 택시를 탈 때 남자 친구가 택시를 잡아주고 아가씨에게 ‘잘 다녀와. 한 달 있다가 봐.’라고 말을 했다.

 

그때 택시 기사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있었는데,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이 전화로 남자 친구에게, ‘응. 지금 인천공항가고 있어. 잘 갔다올게.’라고 말하는 것을 택시 탄 여자가 말을 하는 것으로 잘못 알아들었던 것이다.

 

그 드라마 대사를 듣고, 택시 기사는, ‘인천공항요?’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고, 그 여자 손님은 자신의 남자 친구에게 창문을 열고. “예!‘라고 간단하게 대답을 해서 착오가 생겼던 것이다. 모든 것은 여자가 술에 취해 계속해서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 아가씨는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아가씨는 남자 친구를 불러서 따졌다.

 

“당신 때문에 망신을 당했어요. 왜 그때 내가 택시 탈 때 내 집을 정확하게 택시 기사에게 알려주지 않았어요? 하마터면 인천공항에서 중국행 비행기를 실려 갈뻔 했잖아요?” “아니, 그때 당신이 술을 마셨지만 정신이 말짱한 상태였잖아? 그래서 알아서 가는 줄 알았지?”“어쨌거나 이제 당신과는 끝이예요. 여자의 생명 신체를 그렇게 허술하게 방치해서 위험에 처하게 만든 죄는 결코 용서할 수 없어요. 아무리 울고불고 사정해도 나는 어쩔 수 없어요. 나도 당신을 자르는 심정이 매우 고통스럽지만 이럴 때는 단호하게 처리해야 하라는 것이 우리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이예요. 옛날 제갈량도 마속이라는 장수가 위나라 장합에게 크게 패배하자, 제갈량은 군령을 세우기 위해 울면서 마속의 목을 베였다고 해요. 이게 바로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건데, 나도 어쩔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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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7)

 

‘그렇다고 외로워하지 마! 어차피 인생은 혼자인 거야.’ 다시 낙엽의 무리가 외쳤다. 미경은 그런 소리를 애써 외면하려했다. 더 진한 외로움, 더 가득한 울분이 안에서 치밀어 올랐다.

 

미경은 학교 앞 호프집으로 갔다. 시끄러웠다. 음악도 빠르고, 무어라고 중얼거리는데, 가수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인생 아무 것도 아냐. 오늘이 중요해. 우리에게 내일은 없어. 우리가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해봐. 그걸 하면 끝나는 거야. 왜 그렇게 심각한 거지. 이 바보야!’

 

힙합과 랩에서 이렇게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미경은 중얼거렸다. ‘여기가 한국인 거지? LA가 아닌 거지?’

 

미경은 맥주를 마셨다. 갑자기 취하고 싶었다. 그런데 맥주로 취하면 배가 나올 것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소주도 시켜 맥주와 섞었다. 안주는 노가리와 땅콩이었다.

 

미경은 아직 젊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인생은 상대적인 거라 어린 여대생들 가운데 혼자 앉아 있으니, 미경의 인생은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늙어 눈치가 보였다. 얼굴은 몰라도 심장은 완전히 낡아빠져 사랑도 미움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미경은 이제 45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대학교 앞에 와보니 완전히 나이 든 노인처럼 생각이 되었다. 할머니들이 손님으로 올 때는 미경도 어린 축에 속했는데, 대학교 앞에서는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젊은이들의 음성은 밝고 미소는 예쁘다. 미용실에 와서 자녀 자랑이나 하고 있는 중년의 아주머니들과는 전혀 다르다. 미경은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가을이기 때문이리라.

 

한 시간쯤 혼자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있는데, 갑자기 강 교수가 호프집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미경은 정신이 확 들었다. 강 교수는 미경을 보지 못한 채 호프집 가장 안쪽에 있는 칸막이로 들어갔다. 강 교수는 남학생 2명과 여학생 1명과 일행이었다. 그 여학생은 호리호리한 키에 무척 지적인 얼굴이었다.

 

미경은 그 여학생을 보자 순간적으로 심한 콤플렉스를 느꼈다. ‘아니 강 교수님은 왜 저렇게 어린 여학생을 데리고 술집으로 들어오는 걸까? 저렇게 어리고 팔팔한 여학생을 데리고 다니니 나 같이 늙은 여자는 아무래도 매력이 없겠지!’

 

미경은 혼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으니 옆 테이블에서 대학생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요새 미술시장이 너무 상업적으로 변했어. 큰 일이야. 실제 비싼 값으로 팔리는 작품을 보면 내용은 별 것 아니잖아. 장사하는 사람들이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장해서 그런 거지.”

 

“정말 맞아. 예술은 순수해야 해. 그렇지 않고 상업적으로 작품 가격이 매겨진다면 그것은 이미 예술성을 상실하는 거야. 그리고 타락한 거지.”

 

“김환기 화백의 작품, Universe 5 작품은 132억원을 호가했어. 그리고 제프 쿤스의 은색 고철덩어리 ‘토끼’는 1000억원대에 팔렸어. 폴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피카소의 꿈(1932)도 모두 수천억원 대를 넘었어.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아.”

 

“우리는 그런 혼탁한 시류에 휩쓸리지 말고 순수한 마음으로 오직 그림만 그리자. 돈은 필요 없어. 원래 화가는 어렵게 살아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 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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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8)

 

한 시간쯤 혼자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있는데, 갑자기 강 교수가 호프집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미경은 정신이 확 들었다. 강 교수는 미경을 보지 못한 채 호프집 가장 안쪽에 있는 칸막이로 들어갔다. 강 교수는 남학생 2명과 여학생 1명과 일행이었다. 그 여학생은 호리호리한 키에 무척 지적인 얼굴이었다.

 

미경은 그 여학생을 보자 순간적으로 심한 콤플렉스를 느꼈다. ‘아니 강 교수님은 왜 저렇게 어린 여학생을 데리고 술집으로 들어오는 걸까? 저렇게 어리고 팔팔한 여학생을 데리고 다니니 나 같이 늙은 여자는 아무래도 매력이 없겠지!’

 

미경은 술집에 혼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도 생각되었지만, 강 교수가 자신을 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밖으로 나가야 하나? 아니면 나중에 인사라도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했지만, 술에 취해 옳은 판단을 못하고 있었다. 상황이 복잡해지자 술을 더 마셨다. 술을 마시면 변별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술에 취하면 많은 사건과 사고가 벌어진다.

 

대표적인 것이 음주운전이다. 평소에는 다른 사람들이 음주운전으로 재판을 받고 징역까지 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절대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지 않겠다고 머릿속으로 ‘정언명령’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술이 들어가면, ‘잠깐 운전하는데, 무슨 상관이 있을까? 지금 이 시간 내가 가는 곳까지 단속반이 없을 거야.’ 이렇게 생각한다. 자기콘트롤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경은 전에 미용실 손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 여자 손님은 어느 날 술에 취해 택시를 탔다. 택시 탈 때는 정신이 들어서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운전하는 택시를 확인하고 탄 것 같았다.

 

그런데 한참 가다가 잠이 깨어서 밖을 보니 자신의 집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인천국제공항터미널까지 거의 다 가고 있었다. 아가씨는 깜짝 놀랐다. ‘아니, 이 택시기사가 나를 외국에 팔아먹으려고 인천공항으로 끌고 가는 것 같다.’ 그 택시 기사는 추워서 빵모자를 눌러쓰고 있어서 뒷좌석에서 봐서는 나이가 들었는지, 젊은 사람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아저씨, 지금 왜 인천공항으로 가고 있는 거지요?”라고 큰소리로 물었다. “아니, 손님이 가자고 한 것 아니예요?” “제가 왜 공항으로 가요? 외국 나갈 것도 아닌데? 지금 여권도 없단 말이예요?”

 

두 사람은 지구대까지 가서 택시 요금 때문에 싸움을 했다. 나중에 진상을 조사해보니, 아가씨가 택시를 탈 때 남자 친구가 택시를 잡아주고 아가씨에게 ‘잘 다녀와. 한 달 있다가 봐.’라고 말을 했다.

 

그때 택시 기사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있었는데,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이 전화로 남자 친구에게, ‘응. 지금 인천공항가고 있어. 잘 갔다올게.’라고 말하는 것을 택시 탄 여자가 말을 하는 것으로 잘못 알아들었던 것이다.

 

그 드라마 대사를 듣고, 택시 기사는, ‘인천공항요?’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고, 그 여자 손님은 자신의 남자 친구에게 창문을 열고. “예!‘라고 간단하게 대답을 해서 착오가 생겼던 것이다. 모든 것은 여자가 술에 취해 계속해서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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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7)

 

미경은 언젠가 사주역학을 잘 보는 사람에게 찾아갔다. 가까운 여자 친구와 둘이서 사주관상을 봐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용하다는 역학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전생에 남의 첩으로 살았어. 그때 자네 때문에 본처가 제명에 못 죽었어. 그래서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거야. 지금까지 만났던 남자들이 다 놈팽이고, 건달이었을 거야. 그렇지? 뻔해. 내 눈은 못 속여.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놈들만 나타날 거야. 조심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제명에 못 죽어.”

 

미경은 놀랐다. 지금까지 여러 사람을 만나서 자신의 사주와 관상, 과거와 미래에 대해 물어보고 들어보았지만 지금처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정확하게 진단하고 맞추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남자를 만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냥 평생을 혼자 살아야 해요?”

 

역학자는 잠시 눈을 감고 무엇을 따져보는 듯 했다. 미경의 일행을 밖에 나가 있으라고 했다. 30분 정도 역학자는 방안에서 혼자서 큰 소리로 기도를 하는 것 같았다. 딸랑거리는 소리도 나고, 무언가 부르짖는 소리도 들렸다. 그런 다음 미경을 들어오라고 했다.

 

금년 가을에 괜찮은 사람이 나타나.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 자네하고 잘 맞아. 그 사람을 놓치면 안 돼. 잘 잡아. 그 사람은 책을 많이 보고 공부를 많이 한 남자야.”

 

미경은 이 말이 뇌리 속에 박혔다. ‘금년 가을. 많이 배운 남자!’ 무언가 운명의 기적소리가 들리고, 백마 탄 왕자가 몸을 단정하게 한 공주를 찾아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것을 감지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대학의 가을은 풍성하면서도 심오했다. 벤치에 앉아 있어도 깊은 사색에 빠져야했다. 교정에서의 삶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도서관 장서에 꽂혀있는 책들의 무게에 비례해서 삶은 바다 속으로, 심연의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야 했다.

 

미경은 최고경영자과정수업을 마치고 그냥 집으로 들어가기가 너무 서운했다. 그래서 혼자 벤치에 앉아 빨간 단풍잎과 진누런 은행잎을 보고 있었다. 벤치 아래로 떨어진 낙엽을 발로 비볐다. 바스락 소리가 난다.

 

그건 낙엽이 보내는 작은 속삭임이었다. ‘너는 아직 살아있는 거야. 무언가에 붙어있잖아?’ 낙엽의 음성을 들었다. 하지만 미경에게는 매달려야 할그 무엇이 없었다. 낙엽 때문에 순간적으로 진한 고독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렇다고 외로워하지 마! 어차피 인생은 혼자인 거야.’ 다시 낙엽의 무리가 외쳤다. 미경은 그런 소리를 애써 외면하려했다. 더 진한 외로움, 더 가득한 울분이 안에서 치밀어 올랐다.

 

미경은 학교 앞 호프집으로 갔다. 시끄러웠다. 음악도 빠르고, 무어라고 중얼거리는데, 가수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인생 아무 것도 아냐. 오늘이 중요해. 우리에게 내일은 없어. 우리가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해봐. 그걸 하면 끝나는 거야. 왜 그렇게 심각한 거지. 이 바보야!’

 

힙합과 랩에서 이렇게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미경은 중얼거렸다. ‘여기가 한국인 거지? LA가 아닌 거지?’

 

미경은 맥주를 마셨다. 갑자기 취하고 싶었다. 그런데 맥주로 취하면 배가 나올 것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소주도 시켜 맥주와 섞었다. 안주는 노가리와 땅콩이었다.

 

미경은 아직 젊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인생은 상대적인 거라 어린 여대생들 가운데 혼자 앉아 있으니, 미경의 인생은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늙어 눈치가 보였다. 얼굴은 몰라도 심장은 완전히 낡아빠져 사랑도 미움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젊은이들의 음성은 밝고 미소는 예쁘다. 미용실에 와서 자녀 자랑이나 하고 있는 중년의 아주머니들과는 전혀 다르다. 미경은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가을이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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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6)

 

아내를 상습적으로 폭행하는 남편이 아내를 실컷 두들겨 팬 다음 술을 마시고 잠을 자다가 아내에 의해 살해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부부싸움은 위험하다.

 

결국 미경은 10년 만에 이혼을 하고 말았다. 그것도 건달이 쉽게 협의이혼을 해주지 않는 바람에 변호사를 선임해서 10개월 만에 겨우 이혼판결을 받았다. 이혼하면서 그때까지 번 돈 절반도 빼앗기고 말았다.

 

미경은 너무 억울했다. 그리고 법은 법이 아니었다.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남자를 잘못 만나서 10년 간 고생했는데, 무엇 때문에 재산을 분할 당하고, 이혼녀로 낙인 찍혀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이혼소송을 하면서 느낀 것은 판사들은 남의 아픈 마음을 전혀 헤아릴 의사가 없는 것 같았다. 기계적으로 재판하고, 여자가 고생해서 번 돈과 남자가 번 돈을 아주 똑 같은 잣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미경은 이혼한 다음, 한 동안은 남자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미용실에 단골로 오는 남자 손님들도 이상하게 싫어졌다. 마지못해 남자 손님의 미용을 해주어도 속으로는 남자라는 동물에 대해 본능적으로 거부반응이 일었다.

 

그러다가 1년 정도 지나자 미경은 옛날 생각은 다 잊어버리고 남자를 만났다. 이상하게 거친 스타일의 남자에게 빠졌다. 미경이 넘어가는 남자들은 대개 이랬다.

 

돈도 없고 사회적 능력은 부족해 보이는데, 의리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남자에게 호감이 갔다. 여자를 위해 목숨이라도 바칠 것 같은 태도를 보이는 남자를 좋아했다.

 

머릿속은 비어 있는데, 술을 마시면 눈물을 흘리는 남자, 여자가 속상해 하면 끝까지 옆에 있어주고 집에도 들어가지 않는 남자, 운동을 좋아해서 근육이 튼튼한 남자, 골프에 미친 남자, 노래방에 가서 애절한 노래를 감정을 실어 혼자 심취해 부르는 남자를 좋아했다.

 

대신 정치 이야기만 하는 남자, 종교에 너무 심취해 있는 남자, 돈의 노예가 되어 죽을 때 돈을 가지고 가려는 남자, 운동을 너무 하지 않아서 젊은데도 지하철 계단을 잘 오르지 못하는 남자는 싫어했다.

 

그래서 이혼한 다음에도 대체로 그런 스타일의 남자를 만났다. 하지만 전생에 무슨 잘못을 많이 했는지, 만나는 남자마다 시간이 지나면 실망스럽고 미경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자해를 했다. 물건을 집어던지고 때려 부쉈다.

 

그런 남자들은 법도 소용이 없었다. 성질대로 살고, 잘못되면 감방에 가도 좋다는 배짱이었다. 미경은 쉽게 그런 남자들을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었다. 미용실을 크게 하고 있는 공인이었기 때문이었다.

 

한번 이혼한 다음에는 더욱 그랬다. 남자 때문에 사회적으로 남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대개 몇 달 사귀다 헤어졌다. 그리고 한 동안은 굳게 결심을 하고 죽을 때까지 남자 친구를 두지 않기로 했다. 몇 번이고 다짐했다. ‘앞으로 한 번 더 애인을 두면 내 성을 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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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5)

 

보통 싸움은 밖에서 이루어지고,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는 경우가 많다. 싸움이 벌어지면, 자연히 구경꾼이 모이게 된다. 남들이 싸우는 것을 보는 것처럼 재미 있는 일은 없다.

 

사람들은 묘한 심리를 가지고 있다. 싸움 구경하는 것, 불구경 하는 것, 교통사고 나서 부서진 자동차를 보는 것, 다른 사람이 사업하다 망했다는 소식을 듣는 것, 정치인이 잘난 척하다가 감방에 들어가는 장면을 보는 것을 즐겨한다.

 

사회 저명인사가 위선을 떨다가 가면이 벗겨지고 추락하는 것을 보는 것, 바람둥이가 암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아주 좋아하고, 쾌감을 느끼고 즐긴다. 자신의 작은 행복보다 더 큰 위안을 주고, 기쁨을 준다.

 

밖에서 싸움을 하면 대부분 말리는 사람이 있게 되고, 더 싸움이 계속되면 누군가 경찰에 112신고를 하게 된다. 그래서 싸움은 끝이 나고, 더 이상 피해는 진행되지 않는다.

 

그런데 부부싸움은 다르다. 말리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만일 한쪽이 수그러들지 않고 죽기 살기로 대들면 싸움은 계속되고, 자칫 잘못하면 대형사고가 날 수 있다.

 

신문을 보면, 부부싸움을 하다가 남편이 아내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홧김에 집에 불을 지르기도 한다.

 

전쟁에서 한쪽은 탱크를 밀고 오는데 소총을 들고 저항하는 경우가 있다. 퇴각로가 끊기면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다. 소총을 든 병사는 용기와 애국심이 있는 영웅이지만 탱크에 깔려 목숨을 잃는다.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약한 자가 죽는 것이 전쟁의 원리다.

 

복싱이나 K-1 격투기에서는 체중을 달아 보고 체급을 정한다. 상대방 전력을 파악하여 어느 정도 게임이 돼야 시합을 한다. 완전히 균형이 깨지는 싸움은 처음부터 붙이지도 않는다. 붙여 보아야 즉시 KO를 당하거나 생명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부싸움은 전혀 다르다. 우선 남자와 여자의 싸움이다. 남자와 여자는 신체적으로 힘의 차이가 현저하다. 태권도나 레슬링 여자 선수의 경우에는 거꾸로 부인이 남편보다 싸움을 잘 할 수도 있겠지만, 아주 예외다. 힘이 센 남자와 힘이 약한 여자가 싸우는 부부싸움은 여자가 매우 불리한 게임이다. 그래서 여자가 많이 폭행을 당한다.

 

부부가 싸우는 경우 제일 중요한 문제는 두 사람만이 있는 장소에서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보통 싸움은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벌어지므로 제3자가 말리는 경우가 많다. 술집에서도 그렇고 길거리에서 싸우는 경우도 그렇다.

 

집 안에서 싸우는 부부싸움은 아무도 말려줄 사람이 없다. 꽤 장시간 싸움이 계속되는 경우도 많다. 성격이 강한 사람들은 밤새도록 잔소리를 하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잠을 못 자게 만든다. 철야신문을 하고 잠을 안 재우는 가혹행위를 한다. 검사가 피의자에게 이런 일을 하면 즉시 파면되거나 형사처벌감이다.

 

부부간에 싸움을 오래하다 보면 상대방의 말이 점점 비위에 거슬리게 되고, 미워지기 시작한다. 똑 같은 말을 되풀이하면서 싸우게 되면 감정이 나빠지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상대방의 얼굴이 동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다가 큰 일이 벌어진다. 어느 한쪽이 빨리 수그러들지 않으면 끝장을 보게 된다. 물건을 집어 던지기도 하고, 폭행을 가하기고 하고, 머리카락을 뽑아놓기도 한다.

 

그러다가 극도로 흥분하게 되면 이성을 잃고 야구방망이나 부엌칼을 들고 때리거나 찌르기도 한다. 급소에 맞으면 죽기도 한다. 한쪽은 죽고 한쪽은 징역을 산다.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가? 한 집안이 순식간에 풍지박살이 난다. 가끔 부부싸움을 하다가 살인을 저지르는 기사가 나기도 한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부부싸움을 할 때 조심해야 할 일이 있다. 사람의 감정이란 어느 순간에 폭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흥분하면 일시적으로 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물불을 가리지 않게 된다. 그래서 싸우더라도 상대방이 어느 선을 넘어버리면 즉시 항복하거나 피해야 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싸우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일이다. 차라리 이혼을 하면 되는 일을 가지고 폭행, 살인, 가재도구파손 등의 야만적인 행동을 하면 나중에 엄청난 후회를 하게 된다.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한계를 가지고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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