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10)

 

다시 강 교수의 젊은 시절로 돌아가보자. 강 교수는 결혼하고 나서 언젠가부터 한국 영화는 절대로 보지 않았다. 그런데 부인 정혜가 한국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같이 영화관에 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같이 간 적이 있다.

 

영화가 너무 재미가 없어서 강 교수는 시작할 때부터 ‘The End’ 자막이 나올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도중에 영화에서 주인공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와 성관계를 하고 골아떨어져 코를 고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마침 강 교수가 주인공과 비슷한 소리로 코를 골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정혜를 비롯한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코를 고는 소리로 알고 있다가 주인공이 일어나서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으로 바뀌었는데도 강 교수는 계속 똑 같은 강도로 코를 골고 있었다. 강 교수 주변의 관객들은 영화스피커가 고장난 것으로 잘못 알았다. 강 교수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탄 오토바이가 언덕을 올라가기 위해 엑셀레이터를 세게 밟아서 부르릉 소리가 크게 날 때를 맞취서 방구를 세게 뀌었다. 이때는 영화 스피커소리와 똑 같아서 별 문제가 없었다.

 

아니! 주인공이 코를 골던 장면은 끝나고, 주인공은 오토바이를 타고 범인을 추격하고 있는데 왜 스피커에서는 코를 고는 소리가 계속 나느냐? 엉터리 영화다!”라고 소리를 쳤다.

 

그 소리에 강 교수는 잠에서 깨었다. 강 교수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알아차리고 더 큰 소리로 항의를 했다. “맞아요. 엉터리 영화다. 돈을 환불해주세요.”

 

옆에 있던 정혜의 얼굴이 빨개졌다. 정혜는 속으로, ‘이런 사기꾼 같은 인간이 내 남편이라니, 정말 한심하다. 코를 골았으면 빨리 코골이수술을 해서 코를 골지 말아야지, 어떻게 지가 잘못해놓고 죄없는 영화관에게 바가지를 씌우려고 하냐?’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정혜는 남편인 강 교수에게 물어보았다.

 

정말 당신이 코를 곤 걸 몰랐어요?” “무슨 말이야?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다 보고 있었는데. 내 바로 앞에 앉아있던 그 머리 하얀 남자가 코를 골아서 그런 문제가 생겼던 것 같아.”

 

이런 식으로 한국 영화를 싫어하니, 강 교수는 영화를 보아도 주인공 이름은 하나도 알 수 없고, 그들이 극중에서 하는 말이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스토리도 뻔하고, 대사도 유치했다. 그걸 진지하게 잠시도 한눈 팔지 않고, 재미 있고, 철학적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는 정혜를 비롯한 젊은 남녀 쌍쌍의 모습을 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강 교수는, ‘사람들의 수준은 이렇게 현저한 차이가 나는구나! 끼리끼리 사는 것이 편한데, 수준 차이가 나는 사람과 맞추어 산다는 것은 물과 기름이 섞이는 것처럼 불가능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에 반해 정혜는, ‘사람이 배워봤자, 거기서 거기지, 무슨 차이가 난다고 저렇게 교만하고 건방질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강 교수의 태도에 점점 정이 떨어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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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09)

 

강 교수는 이 기사를 보고 정말 명판결이라고 쾌재를 불렀다. 지금 시대가 얼마나 달라졌는데, 공무원이 불륜을 했다고 그것은 도덕과 윤리문제이지 법적으로 징계사유로 볼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강 교수는 바쁜 와중에도 그 판사에게 감사의 편지를 정성껏 작성해서 발송했다. 물론 자신의 신분은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본명이 아닌 가명을 사용했다.

 

편의상 강 교수는 자신의 이름을 정성교라고 했다. ‘성교’라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지 몰라서, 성교를 한글로 쓰지 않고, ‘聖橋’라고 썼다. ‘saint bridge'라는 의미였다.

 

아무튼 강 교수는 사랑과 섹스에 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연구심과 학구열이 높았다. 그러다 보니 정작 자신이 강의하는 과목에 대한 연구는 할 시간이 없었고, 강의 시간에도 불필요한 잡담이나 많이 했다.

 

그러나 워낙 인물이 좋았고, 정치나 사회문제, 기타 학교 재단의 비리, 사회적 위선자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감 없이 했고, 벤츠 스포츠카를 뚜껑 열리는 것을 타고 다녔고, 이태리 명품 옷이나 가방, 선글래스, 시계 등을 차고 다녔기 때문에 일부 머릿속이 약간 빈 학생들 사이에서는 명 교수라고 인기가 좋았다.

 

특히 학교 앞에서 원룸을 얻어 남학생과 여학생이 share를 하면서 동거를 하고 지속적인 성관계를 아무 부담없이 하고 있는 학생들은 강 교수를 대부(godfather)로 불렀다.

 

학생들이 강 교수를 대부라고 부르는 것을 몰래 알게 된 강 교수는 그 다음부터는 영화 대부의 주인공 비토 콜레오네 역을 맡았던 영화 배우 말론 브란도의 흉내를 내고 다녔다. 그랬더니 강 교수의 인기는 천정을 뚫고 창공까지 날아갈 정도였다.

 

이런 기이한 현상을 보고 그 대학교의 다른 교수들도 강 교수의 성공사례를 모방하여, 어떤 여교수는 마릴린 몬로, 남자 교수는 파바로티 융내를 냈지만, 기본적으로 바탕 얼굴과 체형이 뒷받침되지 못해 모두 실패했고, 학생들로부터 오히려 저질 교수라는 대자보가 붙기도 했다. 그 교수들 모두 사실상 강 교수 때문에 빚게 된 참사로서 실질적인 피해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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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08)

 

말레이시아 동성애 장면 촬영사건에서도 보듯이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전세계적으로 섹스동영상이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우리사회에서도 과거에 유명 인사, 연예인들의 섹스동영상이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다.

 

최근에도 섹스동영상촬영은 법에 금지되어 있고, 처벌대상이 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강 교수는 바람을 필 때 모텔에 들어가면서부터 여자의 핸드폰의 전원을 끄도록했다. 물론 자신의 핸드폰도 전원을 끄고 그것을 상대방 여자에게 확인시켜주었다.

 

그것은 법원에서 재판을 할 때 방청객들이 녹음이나 녹화를 못하도록 경고를 하는 것과 같았다. 강 교수는 그렇게 하는 이유를 같이 모텔에 들어가는 여자에게도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전원을 켜놓으면 잘못하면 저절로 배우자의 전화로 연결될 소지도 있고, 위치추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강 교수의 연구성과였다.

 

한번은 색을 지나치게 밝히는 혼자 사는 여자와 연애를 하는데, 갑자기 그 여자가 섹스동영상을 찍어놓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에 그러한 분쟁이 조정이 되지 않아서 도중에 성관계를 중단하고 모텔에서 밖으로 철수한 일도 있었다.

 

그때 강 교수는 그 여자의 숨은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석달간 서로 만나지 않도록 합의서를 썼다. 물론 전화나 문자메시지도 금지행위에 포함시켰다.

 

그랬더니 그 후 석달이 지난 다음 다시 만났을 때 그 여자는 모텔에 들어갈 때 아예 밧데리를 분리해서 강 교수에게 주었다.

 

강 교수는 자신의 학습효과가 이렇게 성공적으로 즉시 나타난 데 대해 대만족을 표시하고, 그날은 평소보다 세배의 에너지를 사용해서 여자를 만족시켜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방침을 제대로 준수한 데 대해서 감사의 표시로 밖에 나가 한우 투플러스 명품 안심고기를 10인분 시켜 둘이서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식사값만 무려 50만원이 나왔지만, 강 교수는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그래서 이차로 호프집에 가서 생맥주 각 5천씨씨를 마셨고, 안주로 프라이드 치킨 세 마리를 먹었다.

 

그 다음 날 신문을 보니 강 교수의 눈에 이런 기사가 들어왔다. ‘어떤 공무원이 직장 동료 2명과 불륜을 맺었다는 혐의로 직장에서 파면되었다. 그런데 법원에서는 직장 내의 불륜행위가 사적인 영역을 벗어나 공무원의 업무수행에 영향을 줬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간통죄가 위헌으로 선언된 이상 이는 윤리위반의 문제일 뿐, 더 이상 형사처벌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위가 정도가 약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해당 공무원에 대한 파면처분은 비위행위 정도에 비해 과중해서 위법하다는 판결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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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07)

 

강 교수는 워낙 어려운 환경에서 처가의 도움으로 박사가 되고 교수까지 되었기 때문에 바람을 필 때도 매우 조심스럽게 했다. 일단은 부인이 눈치 채지 못하게 최선의 노력을 했다.

 

여러 가지 연구를 해서 외도에 대한 증거를 사전에 없애버리고, 구체적인 실행과정에서 불필요한 증거를 남기지 않도록 했다.

 

우선 증거란 무엇인가 관해 법률서적을 샅샅히 뒤져보았다. 결혼한 다음 배우자의 부정행위의 개념과 범위에 관한 법서와 대법원의 판례, 지방법원의 판결을 모두 검토했다. 증거인멸죄에 관한 논문도 찾아서 읽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무상 어떤 증거가 문제되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인터넷 서치를 광범위하게 했다. 대부분의 사건에서 증거란 매우 단순한 것들이었다.

 

남자의 와이셔츠에 루즈를 묻혀온다든가, 남자의 내복에 이상한 분비물의 흔적이 남았다든가, 핸드폰에 남아있는 문자메시지, 카톡메시지, 메신저메시지 등이었다.

 

또는 복제폰이나 비밀녹음장치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었다. 또는 흥신소에 의뢰하여 증거를 수집하는 방법도 있었다. 몇 달 동안 이런 분야의 연구를 하니 강 교수는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권위자가 되었다.

 

‘남자가 바람 필 때 증거를 남기지 않는 방법과 문제점’으로 학위논문을 써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내용으로 대학에서 강좌를 개설하거나 어디 돌아다니면서 공개강의를 할 수는 없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개인적인 문제였고,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때 언론에서 어느 고위공직자가 별장에서 여자와 춤을 추고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건에서 사진에 찍힌 남성과 그 고위공직자가 동일한 인물인지에 대해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에도 강 교수는 연구조교까지 동원해가면서 그 사건에 대한 모든 보도자료를 수집해서 분석했다. 최근에는 또 말레이시아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보도되어 강 교수의 흥미를 끌었다.

 

말레이이사는 이슬람 국가로서 동성애는 여전히 처벌대상이다. 말레이시아 검찰총장은 "해당 동영상을 미국 전문가에 맡겨 분석했으나 해상도가 낮고, 프레임이 부족해 남성 두 명 다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며 "경찰도 사설 업체에 의뢰했으나 신원 판독이 불가능했다"고 발표했다. "동영상이 실제 촬영된 것은 맞지만, 수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아무도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몇 달 전에 모바일 메신저인 '왓츠앱'을 통해 남성 두 명이 침대에서 성행위를 하는 동영상과 사진 여러 장이 유포됐다. 동영상 주인공 중 한 명은 유력 정치인 OO 장관으로 지목됐다. 얼굴이 닮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또 다른 주인공을 자처한 남성이 "OO 장관이 맞고, OO 호텔에서 자신의 동의 없이 동영상이 촬영됐다"고 공개 주장하면서 의혹에 불을 붙였다.

 

경찰은 초동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영상 속 남성의 얼굴을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고, 한 정당 지도자가 영상 배포를 주도했다고 밝혀 '정치 공작 스캔들'로 번졌다. 이 사건 보도를 보고 강 교수는 자신이 직접 말레이시아로 출장을 가서 경찰이나 검찰을 도와주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서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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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44)

기을비가 내리고 있다. 비에 젖은 단풍잎이 파르르 떨고 있다. 곧 떨어질 운명 앞에서 작은 기도를 한다. ‘연약한 잎이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아름다운 색으로 치장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울의 가을은 정말 아름답다. 노란 은행잎으로 길게 뻗은 도로,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물들은 주변 산. 도심의 공원에는 현란할 정도로 가을색이 눈을 부시게 한다.

이런 가을을 맞아 명훈도 대학생활의 낭만을 한참 즐기고 있었다. 아버지가 능력이 있어 평생 먹고 살 것을 마련해 놓았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공부를 열심히 안 해도 되었고, 해외 연수도 1년 다녀와서 영어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유능한 사업가였다. 얼굴도 탤런트처럼 생겼고, 골프도 프로 수준이었다. 어머니도 약사로 개업을 해서 돈을 잘 벌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워낙 여자들에게 인기가 좋아서 늘 이쁘고 젊은 여자들을 데리고 다녔다. 그래서 어머니와 여자 문제 때문에 많이 싸우고 살았다.

예전에는 간통죄가 있어서 그대로 조심하는 편이었는데, 요새는 간통죄가 폐지되고, 합의에 의한 성인들의 성교는 오직 민사문제는 될 수 있을지언정, 형사문제는 되지 않아서 그런지 명훈이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싫으면 이혼하자. 왜 내가 당신만 쳐다보고 살아야 하느냐?’면서 노골적으로 바람을 피고 있다.

이런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서인지 명훈도 여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특히 집에 돈이 많아서 모든 것을 백화점에서 명품으로 사서 치장을 하고, 몸관리를 하니까 여자들이 줄로 서있었다.

여자를 꼬시는 법도 자꾸 노력하면 발달한다. 처음에는 시간이 걸렸는데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당일 같이 잠을 자는 일이 쉬워졌다. 아버지가 사준 외제차는 여자와 Car Sex를 하는데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

명훈은 차안을 아주 고급스럽게 인테리어를 했다. 그리고 고급 담뇨를 준비하고, 멋있는 음악을 준비했다. 고급 와인과 안주까지 갖추었다. 썬팅은 너무 진하게 해서 운전에 지장을 줄 정도였다.

명훈은 더 본격적으로 여자를 꼬시기 위해 연예기획사에서 운영하는 연기학원에 등록을 했다. 연예인이 될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곳에서 연예인으로 성공하려는 여자들을 만날 기회를 가지기 위해서였다.

그것도 모르고 기획사와 학원에서는 돈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명훈의 의도에 반해 명훈을 영화에 출연시키려고 나섰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명훈은 날개를 달고 수많은 여자들과 연애를 하고 섹스를 했다.

시간이 가면서 명훈은 모든 것이 아버지 돈 때문에 그런 것을 모르고 자신이 한국에서는 최고의 멋있는 남자, 대학생, 인기스타가 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카섹스는 아무래도 불편한 점이 많았다. 우선 카섹스를 할 장소가 문제였다. 서울 시내는 빈땅이 없을 정도로 도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어 차를 세워놓고 섹스를 하기가 어려웠다.

잘못하다가는 사람들 눈에 띄어서 즉결심판에 넘어갈 우려도 있다. 아니면 차안에서 한참 흥분해서 있는데 누가 문을 따라고 세게 두드리면 뇌출혈이 일어나서 응급실에 실려갈 위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카섹스는 샤워를 하지 못하고 의식을 치러야하는 불편이 있었다. 특히 여름에는 땀도 나고 싫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모텔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모텔을 이용하다가 언젠가 인터넷을 보니 모텔에 잘못갔다가는 나쁜 사람들이 몰래카메라를 모텔방에 설치해놓고 젊은 남자와 여자의 섹스동영상을 촬영해서 인터넷에 올려 유포시키는 사례가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명훈은 이 기사를 보고, 자신과 같은 멋있고, 연예인 같고, 외제차를 타고 다니고, 파트너 역시 매력 있고 섹시한 여자와 모텔에 들어가면 최우선 표적이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다.

만일 자신이 인터넷에 유포되면 아버지는 더 이상 외제차를 운전하지 못하게 할 것이고, 돈도 주지 않을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머리를 굴려서 공부를 열심히 하기 위해서라면서 학교 앞에 원룸을 얻어달라고 했다.

돈 많은 아버지는 공부를 한다고 하니까 무조건 얻어주었다. 그것도 월세 비싸고 모든 것이 갖추어진 원룸으로 얻어주었다. 명훈은 이렇게 되자 마음 놓고 여자들을 불러들였다.

고급 호텔 스위트룸처럼 꾸면 놓고 고급 와인과 좋은 음악, 고급스러운 조명을 갖추어놓으니 여자들도 무척 행복해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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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43)

경희는 식당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오늘 따라 술이 취했다. 취기가 돌자 술을 더 시켰다. 어떤 의미에서는 술에 취하고 싶었다. 술에 취해서 현재의 답답한 상황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새벽 2시가 다 되었다. 사람들은 조금씩 자리를 떠났다. 몇 테이블 밖에 손님이 없었다. 어쨌든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굳이 서둘러 일어날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그곳에서 밤을 새울 수는 없었다. 피곤해서 모텔에 가서 잠을 잘까도 생각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러고도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모텔이라니! 아까 낮에 자신의 운명을 뒤바꾸게 만든 그 악몽은 바로 모텔방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러니 모텔은 생각만 해도 정이 떨어졌다.

술을 마시고 멍하니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던 젊은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잠깐 같이 앉아도 되느냐는 것이었다. 경희는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인상이 착해보였다.

여자는 자신의 남자 친구가 배신을 해서 슬프다는 말을 꺼냈다. 경희는 무슨 말인지 듣고 싶었다. 여자는 28살이었다. 직장에 다니고 있는데 같은 직장에서 만난 남자와 1년 넘게 연인으로 지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다른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오늘 너무 속이 상해요. 그래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거예요.”
“왜 그렇게 속이 상해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괜찮아요?”
“제 남자 친구가 이제는 노골적으로 헤어지자고 해요.”
“왜요?”
“남자 친구의 새로 생긴 애인이 저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으라고 했대요. 그래서 남자 친구가 저와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거예요.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예요?”

경희는 조용히 그 여자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상한 건 그 여자의 말을 들어도 별로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문제가 뭐 그렇게 심각한 것이냐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얼마나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수시로 발생하는지 아는가? 그 정도 일은 아무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어리석게 괴로워하는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자와 여자는 만났다가 헤어지고, 또 다시 만나고, 파트너가 바뀌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싶었다. 아직 결혼한 것도 아닌데,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사회적 구속을 받는 것도 아닌데, 미혼의 남녀가 헤어지는 문제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하고, 고민하는 것이 우습게 생각되었다.

잠시 술기운에 잊고 있었던 경희의 처지가 다시 그 여자의 말 때문에 클로즈업되었다. ‘아! 남녀간의 문제는 바로 이런 것이구나!’ ‘나도 처음부터 남편하고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결혼했어도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일단 결혼했으면, 참고 살 것을...’

사랑이 괴로운 것은 본질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무조건 행복만 보장되는 사랑은 없다. 진정한 사랑이란 처음에 얻는 과정도 고통스럽고, 일단 얻어진 다음에도 수시로 크고 작은 마찰과 갈등이 반복된다. 더군다나 그 사랑이 시간이 가면서 흔들거리고, 제3자가 개입되면 폭풍에 휩쓸리게 된다.

“남자가 끝내 헤어지자고 하면 방법이 없지 않아요?” 경희는 여자를 위로하기 위해 한 마디 했다. 별로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그냥 무심코 나온 말이었다.

“근데 너무 억울해요. 그 남자 때문에 아이도 한번 지웠어요. 그래서 몸도 안 좋아졌고, 같은 직장에 있는 다른 여자에게 남자를 빼앗긴 것도 분하고. 그냥 포기하자니 아깝기도 하고 그러네요.”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직장에서 연애를 하고 있는데, 같은 직장의 다른 여자에게 애인을 빼앗기면 분하고 억울할 것이다. 그 말에는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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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42)

철수 자신도 결혼하기 전 여러 여자와 연애도 했고, 성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유독 아내인 경희의 혼전 관계만을 문제 삼을 수 없었다. 그러나 결혼한 후 6개월이 지난 다음 경희가 옛애인을 다시 만나 섹스동영상까지 찍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때부터 더 이상 정을 주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리고 그때 경희는 절대로 바람을 피지 않겠다고 각서까지 썼던 여자다.

그런데 또 다시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것도 옛애인이 다시 나타나서 협박을 한 것도 아니고, 이번에는 전혀 다른 뉴 페이스가 나타났고, 모텔 현장에서 섹스를 한 직후 나체로 있는 경희를 목격했기 때문에 충격도 다르고, 생각도 달랐다.

특히 철수의 입장에서 볼 때 경희가 바람을 핀 이번 남자, 영석은 철수보다 훨씬 체격도 건장해 보였고, 남자답게 보였기 때문에 이런 상대적인 콤플렉스도 무의식적으로 크게 작용한 것 같았다.

철수는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경희와 이혼을 해야 할까? 별거를 할까? 아니면 아이 때문에 참고 살아야 할까? 이제는 도저히 예전처럼 한집에서 부부라고 하면서 같이 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일단 너무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텔방에서 경희와 애인인 영식이 함께 섹스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떠올리면 절대로 용납을 할 수 없었다. 물론 철수가 경희에 대해 ‘더럽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매우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평가일 수밖에 없다.

경희가 남편 이외의 다른 남자와 연애를 하고, 섹스를 했다고 해서 경희 자신이 '더러워진 것‘은 아니다. 경희는 영식과 바람을 피기 전이나 바람을 핀 후나 아무런 변화가 없다. 육체적인 면에서도 없고, 정신적인 면에서도 없다. 경희가 더러워졌다거나, 더럽게 느껴진다는 것은 오직 배우자인 철수에 국한된 문제가 아닐까?

이것이 사랑에 있어 중대한 모순이고 아이로니다. 일반인 입장에서도 비슷하다. 유명한 배우가 결혼하고서도 수많은 염문을 뿌려도 그 연예인을 더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직 그 배우의 배우자만 그 연예인을 인간 같지 않고, 더러운 인간이며, 위선자라고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철수는 경희와의 관계에서 더 이상 사랑은 없는 것으로 확신했다. 오직 증오만이 남아 있었다. 사랑이 식으면 무관심이 된다. 하지만 때로는 그 사랑이 무서운 증오로 변하는 경우가 있다.

증오의 단계에까지 이르면 이미 종전의 사랑은 식은 것이 아니라, 완전히 소멸한 것이 된다. 사랑의 사체는 새로운 증오의 기폭제가 되고, 핵폭탄과 같은 무서운 파괴력을 가진다.

그래서 사랑이 식는 경우에도 그것이 더 나아가 증오로까지 발전되지는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의 생존을 위해서, 서로의 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그런데 다른 동업관계와 달리 결혼관계는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회적 체면이 있고, 주변에 가족이 있고, 더군다나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원래 두 사람이 함께 활동하는 것을 모임 또는 단체라 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동업이라고 한다. 또는 공동사업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이런 동업관계가 역사가 짧기 때문에 성공하는 확률이 적다. 지금까지 동업해서 재벌 된 사람이 거의 없고, 중소규모의 동업은 대부분 깨지고 서로 소송하기 바쁘다.

아무리 작은 사업이라고 해도 혼자 해야지, 두 사람이 함께 하면 잘 되어도 깨지고, 못되어도 깨진다. 적은 규모의 호프집을 동업으로 해보라.

처음에는 가족 이상으로 가깝고, 평생 힘을 합쳐 성공하자고 혈서까지 써가면서 다짐을 한다. 하지만 불과 몇 달만 지나보라! 무슨 일이 생기는가?

장사가 되지 않고, 적자를 보게 되면 서로를 원망한다. 각자의 기여도가 적다고 불평한다. 먼저 시작하자고 제안한 사람을 탓한다. 반대로 장사가 잘 되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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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06)

 

정혜는 자신의 남편인 강 교수가 영화나 드라마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으면, 문화적 소양이 결여된 한심한 사람으로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일만 하는 매우 이기적이고 감성이 없는 불쌍한 사람으로 평가했다. 뿐만 아니라 정혜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결혼한 다음 바람을 피는 남자가 나오면 몹시 흥분하면서 분개했다. 드라마에서 돈 때문에 부잣집 딸과 결혼한 다음 나중에 바람 피는 남자주인공에 대해서는 빨리 죽어야 한다는 저주까지 퍼부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여자가 뒷바라지를 해서 판사나 검사, 또는 의사를 만들었는데, 출세하니까 그 여자를 버리고 여성 법조인이나 여성 의사와 결혼하는 드라마를 볼 때에는 방안에서 먹은 음식물을 모두 토해서 큰일 날뻔하기도 했다.

 

영문을 모르는 강 교수는 정혜가 공황장애증세를 일으킨 것으로 잘못 알고 큰 걱정을 했다. 이 때문에 강 교수는 만일 자신이 처갓집 도움으로 교수가 되었는데, 나중에 바람을 피었다가는 아내가 곧 즉사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그렇게 되면 혹시 강 교수는 아내 정혜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해 살인죄나 업무상과실치사죄, 또는 자살관여죄 등으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되지 않나 걱정을 했다.

 

그래서 아는 변호사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변호사는 한 달 동안 법률검토를 했다고 하면서, 그런 사건은 강 교수가 바람 핀 행위와 아내의 사망과의 사이에 법적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강 교수는 절대로 징역을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아주 명쾌한 유권해석을 해주었다.

 

그러나 강 교수가 아는 유명한 신학대학교 원로 교수께서는 그렇게 되면 강 교수는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 활활 타는 유황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성경적 해석을 해주었다.

 

또한 어떤 연세 많은 스님께서는 그런 경우 강 교수는 윤회설에 따라 다음 번 생애에는 개로 태어나거나 뱀으로 환생해서 많은 여자들로부터 극심한 괴롭힘을 받을 것이라고 불경적 해석을 해주었다.

 

그러나 강 교수는 나중에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되든지 상관 없지만, 혹시 어렵게 딴 교수 자리가 날라가지 않을까 고민을 했다. 교수 파면도 그렇고, 혹시 골프 치러 갔다가 갑자기 벼락을 쳐서 골프 아이온 채 때문에 네 명의 플레어어 가운데 강 교수만 벼락을 머리 정수리에 맞아 비참하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 벌벌 떨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강 교수는 아주 정확한 유권해석을 받기 위해 유명하다는 역학자를 찾아가서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역학자는, “당신 사주와 관상, 손금, 발바닥금, 체형, 음성 등을 종합해 볼 때, 당신은 어쩔 수 없이 바람을 많이 피게 타고 났어. 그것 때문에 언젠가는 큰 화를 당할 거야. 그리고 당신에게는 절대로 좋은 여자는 나타나지 않아. 모두 이상한 여자들만 나타나서 달라붙을 거야. 그렇지만 타고난 운세와 운명을 피할 수도 없고, 피할 생각도 하지 마! 그걸 피하려고 하면 더 큰 화를 당하게 되는 거야.”라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이 대목에서 강 교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왜 이상한 여자들만 내게 나타난다는 것이지? 정말 더러운 운명을 타고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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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05)

 

강철민 교수가 이렇게 박사까지 딴 다음 매우 고차원의 지식인인 것처럼 위세를 떨고, 잘난 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부인은 여전히 옛날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서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않고 있었다. 한국인의 전통과 보수적인 태도를 굳건히 고수하고 있었다.

 

강 교수의 부인 정혜는 워낙 학교 다닐 때부터 책을 싫어했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에도 모든 책은 처음 샀을 때와 똑 같이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노트 필기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과목에 노트는 한 권만 있으면 고등학교 3년 동안 아무 일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정혜의 친구들은 정혜가 수업시간에 전혀 펜을 움직이지 않고 있어서 들으면 모두 자동으로 암기가 되는 천재인 것으로 오해했다.

 

그런데 중간고사를 보니까 시험지 답안지에도 펜을 아주 최소한 사용했기 때문에 반에서 꼴찌를 한 것을 보고, 정혜가 필기를 하지 않는 것은 암기를 해서가 아니라, 필기할 능력조차 없었기 때문이라고 완전히 파악을 하게 되었다.

 

정혜는 미술시간에도 물감을 아끼느라고 여백을 많이 남기고 그렸다. 처음에는 미술선생님도 정혜의 그림이 피카소 같은 추상화를 초현대식으로 그리는 독특한 화풍으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게으르고 귀찮기도 하고, 가급적 물감을 적게 쓰려는 심보를 가진 것으로 알고 무척 미워했다.

 

정혜는 이런 연장선상에서 시나 소설 같은 문학에는 아예 취미가 없었다. 시는 김소월의 ‘나보기가 역겨워’ 하나만 알고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초등학교 때 배운 ‘섬그늘’ ‘오빠생각’ 등의 동요가 전부였다.

 

그런 동요도 초등학생들이 부른 것만 좋아했고, 나이 든 가수 이선희나 박인희가 부른 동요는 절대로 듣지 않았다. 나이 든 가수가 부른 동요를 들으면 옛날 유치한 감성이 날아가버린다는 이유에서였다.

 

정혜는 영화나 드라마는 아주 좋아했다. 특히 CGV가 등장한 이후에는 관객수가 많다고 하는 영화는 한편도 빠뜨리지 않고 보았다. 드라마도 ‘사랑과 전쟁’을 비롯해서 애정관계를 다루는 것은 모두 보았다.

 

특히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의 이름과 나이, 데뷔연도, 중요 등장작품, 영화 감독의 신상에 대해서는 특별히 노트를 하나 만들어 세세하게 기록해가면서 외웠다.

 

이렇게 정혜가 영화나 드라마에 관한 필기를 노트에 잘 하는 것을 보고, 강 교수가 그런 방식으로 가계부를 써보자고 제안했다가 그 날 정혜는 흥분해서 하마터면 살고 있는 집에 방화를 할 뻔 했다.

 

갑자기 가스레인지를 켜고 화장지를 찾아서 강 교수는 그 자리에서 살려달라고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 정혜의 생각은 그 큰 부자인 친정어머니도 가계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평생 알지 못하고 잘 살고 있는데, 친정집 경제규모가 100분의 1도 안 되는 주제에 무슨 가계부 같은 이야기를 꺼내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돈도 잘 못벌면서 찌질한 인간은 바로 불로 태워서 곧 바로 지옥의 유황불로 직행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강 교수는 정혜 혼자 불을 내서 혼자 죽으려는 것으로 커다란 오해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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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04)

 

강 교수는 일부러 부인 앞에서 영어나 독일어로 된 원서를 읽었다. 성경도 한글 성경은 시시하다고 보지 않고, 독일어로 된 성경이나 라틴어로 된 성경원본을 놓고 앉아서 독일어로 기도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꼭 방언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강 교수 독일어 실력은 형편이 없었다.

 

그래서 독일 사람을 만나도 인사말만 독일어로 몇 마디 하고, 나머지는 영어로 하거나 한국말로 했다. 사실 독일어로 기도하는 것도 부인이 옆에 있을 때만 몇 마디 하다가, 부인이 부엌으로 과일을 가지러 가면 곧 멈추고 한국말로 중얼거렸다.

 

강 교수는 부인 앞에서는 음악도 클래식을 들었다. 아니면 오래 된 옛날 팝송을 들었다. 그 나이에 다른 사람들이 즐겨듣는 배호 노래나, 남진 노래는 수준이 낮아서 못듣는다면서 그런 트롯트 음악이 나오면 얼굴을 찡그리고, 곧 배가 기울어 물에 빠져 죽을 사람처럼 괴로워했다.

 

그런데 강 교수 부인은 결혼하기 전이나 결혼하고서도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전까지는 강철민이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강 교수 18번은, ‘쨍하고 해뜰 날’이었는데, 그 노래는 가사를 보지 않고도 2절까지 글자 한자 틀리지 않고, 반주가 없어도 잘 부르는 사람이었다.

 

강 교수는 언젠가 술에 취해 친구들에게 자신의 18번에 대해 설명하기를, 자신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늘 음지에서만 살았는데, 그 노래를 18번으로 정하고 꾸준히 불렀더니, 108번째 그 노래를 부른 그 다음 날, 부잣집 외동딸을 만나서 팔자를 고쳤다는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도 좋아했는데, 강철민은 ‘처갓집 재산은 우리 것’이라는 식으로 가사를 왜곡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늘 이런 말을 되풀이했다. “사람은 노래를 부르더라도 좋은 노래, 밝은 노래를 불러야 한다. 그리고 젊었을 때 일찍 죽은 가수의 노래는 절대로 불러서는 안 된다. 어두운 노래, 부정적인 노래를 부르면 그렇게 운명이 비뚤어진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에, 강철민은 절대로 일찍 세상을 떠난 배호나 남정희 같은 가수들의 노래는 부르지 않았다. 대신 80세 넘게 건강하게 살고 있는 원로가수들의 노래를 즐겨 따라했다.

 

한번은 강 교수 친구가 영국의 그룹, 런던 보이스의 음반을 선물로 주었는데, 강 교수는 런던 보이스 그룹 멤버 두 사람이 교통사고로 같은 날 요절했다는 사실을 인터넷에서 확인하고, 그 음반을 아예 소각해버렸다. 강 교수는 그리고 사랑이 파탄나는 노래도 절대로 부르지 않았다.

 

주로 행복한 사랑, 복을 가져오는 찬송가만을 좋아했다. 때문에 이별을 주제로 하는 노래는 부르지 않았다. 윤덕심이 부른 ‘사의 찬미’와 같이 죽을 사자가 들어간 노래는 들으면 소름이 끼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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