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특별수사를 받고 공황상태에 빠지다

 

지금 명훈 아빠가 공황상태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일까? 그 어떤 방법도 없었다. 가만 있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

 

‘누군가 회사 내부 자료를 빼내서 제보를 한 것이다. 검찰에서는 우리 회사에 대한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다.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검찰에서 회사의 비리와 문제점을 더 파고들면, 부도날 것이고, 징역을 많이 살아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있다는 말인가?’

 

명훈 아빠의 머릿속을 맴도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회사는 부도나고 자신은 감방에 가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가벼운 행정법규위반사건으로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은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검찰의 특별수사를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

 

수사를 받는 사람은 공포에 질린다. 저 혼자 깊어가는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밖으로 탈출해서 살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덫에 걸려 절망한다. 이럴 때 참 외롭다. 상의를 할 사람도 없다. 상의를 한다 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족과 대화를 해도 뾰족한 방법은 없다.

 

명훈 아빠는 술을 마셨다. 담배를 줄로 피었다. 신체를 학대시키고 마비시킴으로써 잠시나마 무감각해지고 싶었다. 이런 경우에 어떤 사람은 마약을 찾기도 한다. 수면제를 먹고 잠에 빠진다.

 

명훈 아빠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자신이 너무 억울했다. ‘왜 하필이면 내가 타겟이 된 것인가?’ ‘하나님은 너무 불공평하다. 무슨 이유로 이런 시련을 준단 말인가!’

 

건강하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암 진단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60살도 되지 않는 나이에, 한참 팔팔하게 사회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몸이 이상해서 병원을 찾는다. 갑자기 폐암 판정을 받는다. 그것도 폐암 말기다. 그는 한 순간에 패닉상태에 빠지고, 몇 달 또는 몇 년간 병마와 싸우다가 끝내 세상을 떠난다.

 

그런 불행이 자신에게 닥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폐암에 걸리면 다른 암보다 특별히 호흡곤란으로 심한 고통을 받고 예후가 나쁘다는 사실도 들어보지 못했던 사람이, 갑자기 그렇게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암에 많이 걸려도, 자신만은 암에 걸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건 나중에 70이 넘고, 80이 넘었을 때의 아득히 먼 훗날의 허상이라고만 생각했다.

 

검찰수사도 이와 비슷하다.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자신에게 특별수사가 들이닥치고, 법이라는 무서운 창과 칼이 목을 향해 겨누고, 곧 수갑을 차고 감방에 던져지고, 끌려다니며 짐승처럼 먹고 자야 할지 모른다는 현실은 완전히 돌게 만든다.

 

명훈 아빠는 그동안 외국에 출장 가거나, 여행을 다녀올 때 반드시 양주를 사가지고 왔다. 병이 예쁘고, 이름이 멋있는 것, 유명하다는 술은 아끼지 않고 면세로 열심히 사가지고 와서 집안에 전시해놓았다. 싸구려 술 이외에는 아까워서 마시지도 못했다.

 

그러나 공무원에게는 고가의 양주를 기꺼이 선물로 바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마다 느꼈던 것은 공무원들은 아무리 주어도 전혀 고맙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럼에도 명훈 아빠는 뇌물과 선물을 끊임없이 주면서 사업을 해왔다.

 

술에 취해 몽롱한 상태인데 켜져 있는 TV에서는 가요무대를 하고 있었다. <이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히 생각하니 세상 만사가/ 춘몽 중에 또 다시 꿈같도다>

 

아주 옛날 노랜데, 어떤 젊은 여자 가수가 대신 부르고 있었다. 이런 구성진 노래는 나이들어 늙음과 허망함이 저절로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 불러야 제 맛인데 새파랗게 젊은 가수가 부르니 도통 분위기가 맞지 않았다. 시골 한학당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붓으로 천자문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 노인 돌아가신 곳에서 아주 새파란 젊은 이가 노트북을 가지고 워드프로세서를 하는 것처럼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원래 그 노래를 불렀던 가수 이름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데, 아마 세상을 떠났을 것은 분명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지금 스마트폰으로 오리지날 가수 이름을 확인하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나도 죽을 판인데, 돌아가신 분 이름을 확인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몇 달 전처럼 집안에 아무런 우환이 없을 때 같았으면, 명훈에게 가수 이름을 찾아보려고 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모든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귀찮고 허망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

 

/ 작은 운명 (213)

작은 운명 (213)

나채양(40세, 가명)은 처음에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엄정순(37세, 가명)이 <우울한 봄날> 카페의 주인이라니! 세상이 아무리 좁다고 해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채양은 옛날 대학교 다닐 때의 일을 떠올렸다. 오래 전의 일이었지만, 아직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바로 엊그제 일처럼 아주 생생했다. 경제학과 4학년 복학생 민선수를 놓고, 애정의 삼각관계에서 채양은 아주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그때 민선수가 엄정순 때문에 채양을 배신했고, 그로 인해서 채양은 민선수와 헤어져야했다. 결국 엄정순도 당시 민선수를 차지하지는 못하고 말았다. 하지만 채양의 입장에서는 민선수와의 관계가 깨어진 것은 직접적인 원인이 엄정순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의 악연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현재 채양이 연애를 하고 있는 현재범(33세, 가명)과 같이 <우울한 봄날> 카페에서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강간사건에서 혐의를 벗어나는 방법

 

홍무책 변호사(40, 가명)는 원래 음악대학을 가려고 했는데, 부모님이 강력하게 반대해서 결국 음악을 전공하려는 것을 포기했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지만, 여전히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변호사가 된 다음에도 꾸준히 노래방을 다녔다. 홍 변호사는 <죽을 때까지> 노래방의 단골손님이었다. 구강패 사장은 홍 변호사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꽃뱀에게 걸려든 것 같아요. 경찰서 수사과장 부인이라고 하는데, 나는 혼자 사는 여자로 알고, 같이 술을 마시다가 모텔방에 갔던 것이고, 서로 술에 취해 성관계를 할 때, 그 여자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았어요. 나도 술에 많이 취해서,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여자도 관계를 할 때 무척 좋아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대충 관계를 한 다음, 둘이서 같이 잠을 잤고, 내가 술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옷을 입고 모텔에서 나왔는데, 집으로 택시를 타고 가는데, 경찰관이 핸드폰으로 연락을 해왔던 거예요.”

 

강간죄는 피해자 진술이 가장 중요해요. 피의자가 어떤 변명을 해도, 경찰에서는 변명을 무시하고, 피해자가 어떻게 강간을 당했는지 하는 진술에만 초점을 맞추어 수사를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자가 좋아서 관계를 했다고 진술하지 않고, 하기 싫은 데 남자가 강압적으로 했다고 하면 꼼짝 없이 뒤집어쓰는 거예요. 큰일 났네요. 일단 피해자와 합의를 하도록 해요.”

 

나는 정말 너무 억울해요. 그 여자가 하기 싫었으면 내가 모텔에 가자고 했다고 해서 순순히 따라올 리가 있겠어요. 그 여자도 내가 싫지 않고, 하고 싶었으니까 모텔에 따라간 거지요. 반항을 했으면, 내가 강압적으로 할 이유도 없었겠지요.”

 

홍 변호사는 현재 상황에서는 합의 보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고 했다. 만일 합의가 되지 않고,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게 되면, 자신이 변호인참여를 해주겠다고 했다.

 

변호사님! 합의를 하면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지 않아도 되나요?”

옛날과 달라서 요새는 강간죄는 합의가 되어도 단순히 정상관계에 불과하지, 일단 강간죄가 성립하면 처벌 받게 되는 거예요. 그러나 합의가 되면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서 실형을 살지 않고,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어요.”

 

구강패 사장은 어쩔 수 없었다. 가운데 있는 전맹순의 도움을 받아서, 일단 합의를 추진했다. 하공순에 대한 위자료는 천만원을 주기로 했다. 민선수에 대해 구강패 사장이 받아야 할 돈 나머지 금액은 모두 포기하기로 하고, 민선수와의 모든 관계를 끝내기로 했다.

 

문제는 하공순 측의 요구사항인 구강패 사장의 부인을 자유롭게 풀어주라는 것이었다. 구강패는 부인인 정촌녀에게 말했다.

 

하공순이 당신을 자유롭게 풀어주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주면 좋을까?”

제가 당신이 감방에 있을 때, 민선수 학생과 잘못을 저지른 것은 그동안 저와 민선수 학생이 충분히 죄값을 치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당신이 나를 그동안 그렇게 구박하고 학대하면서, 당신은 다른 여자를 강간까지 했으니, 나도 이제는 더 이상 당신과 같이 살 수가 없어요. 이혼을 해주던가, 아니면 별거를 해요.”

 

구강패는 부인에게도 만정이 떨어졌다.

좋아. 별거를 해. 그리고 당신이 이 집에서 나가. 내가 방을 하나 얻어주고, 생활비는 매달 100만원씩 줄게.”

 

이렇게 해서 구강패에 대한 강간신고사건은 완전히 합의가 되었다. 합의가 된 다음 구강패는 홍 변호사의 열성적인 변론에 힘입어 불구속으로 재판에 넘어갔고, 다행이 집행유예로 징역을 살지는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구강패는 절대로 여자를 믿지 않게 되었다. 구강패는 여자를 만날 때, 아무리 혼자 살고 있고, 돌싱이거나 사별녀라고 해도 곧이 듣지 않았다. 반드시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어오라고 했다. 혼인증명서도 보자고 했다.

 

싱글녀인 것을 확인했어도 모텔에 가서 성관계를 할 때는 비밀녹음을 했다. 그리고 옷을 다 입고 있는 상태에서 기념사진을 찍어놓았다.

 

홍 변호사로부터 철저하게 코치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최근에는 비동의간음죄도 문제 되고, 성인지감수성(性認知感受性) 이론 때문에 갈수록 성관계를 잘못 했다가는 강간범으로 몰려서 콩밥을 먹을 위험성이 높아졌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구강패가 이렇게 철저하게 대비하는 모습을 보면 웃으면서, “왜 그렇게 꽃뱀들만 만나셨던가봐요? 그렇게 하면 성욕이 떨어질텐데, 너무 그렇게 하지 마세요. 그렇게 나쁜 여자들은 많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구강패는 이런 말을 하는 여자들을 더 나쁘게 보았다. 겉으로 웃으면서 뒤퉁수를 치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하공순은 구강패로부터 받은 위자료 천만원 중에서 500만원을 민선수에게 주려고 했다.

 

민선수는 끝내 그 돈을 받지 않았다. 민선수는 이런 하공순의 마음씨가 너무 고마웠다. 그래서 민선수는 하공순을 위해서 몸보시를 해주었다. 화대를 받지 않고, 3개월 동안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서 특별서비스를 해주었다.

 

3개월의 hot time을 마치자 두 사람은 더 이상 만나지 않기로 굳게 다짐하고 헤어졌다. 이런 과정에서 민선수와 엄정순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끝났다. 민선수는 하공순과의 관계를 끝낸 다음, 3개월 후에는 정촌녀 여사를 만나서 성관계를 3개월 동안 했다.

 

그것은 정촌녀가 구강패로부터 버림을 받고, 비참하게 된 원인이 민선수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촌녀는 정말 민선수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정촌녀와의 관계도 3개월이 지나면서 민선수는 단호하게 정리했다. 서로의 인생을 위해서였다.

 

<작은 운명> 212

강간죄를 저지른 남성이 징역을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다

 

구강패(48세, 가명) 사장은 미칠 지경이었다. 자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미 지역에서 꽤 유명한 인사가 되었다. <죽을 때까지> 노래방의 회장으로서 돈도 많이 벌고 있고, 명성도 얻었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지역국가의 노래방협회에서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상태였다. 그리고 장차 노래방 체인회사를 만들어서, 한국 내에서 최소한 체인점 1,000개를 개설하고, 이어서 중국 본토에 100만개의 체인점을 개설할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에 북경과 상해에서 구강패 사장의 <죽을 때까지> 노래방 체인점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다녀가고 있었다. 구강패 사장은, 노래방 <죽을 때까지>의 체인회사 설립과 체인점 가입계약 및 사후관리를 위해서 법무법인 한 군데와 고문계약을 체결하고 매달 50만원씩 주고 있었다.

 

구강패 사장은 마음만 먹으면 여자들은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여자들을 태우고 다니기 위하여 고급 독일제 오토바이를 한 대 구입했다. 오토바이 가격이 무려 5천만원이나 나갔다. 마음에 드는 여자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드라이브를 가면, 여자들은 으례히 구강패 사장에게 특별서비스를 해주었다.

 

오히려 여자들이 구강패 사장의 낭만적인 모습을 좋아해서 구강패 사장이 여자들에게 서비스 차지를 주려고 해도, 여자들은 극구 사양했다. 거꾸로 여자들이 구 사장으로부터 깊이 있는 서비스를 받았기 때문에, 구 사장이 남자로서 나이 든 여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육체 봉사를 하였다는 공로를 인정해서 여자들이 구 사장에게 한우 투플러서 최상등급으로 기름기 없는 등심을 한 번에 5인분씩 먹게 해주었다.

 

구 사장은 그렇게 만나는 여자들과 스케줄이 맞지 않아서 외롭게 지내야 할 딱한 처지가 되면, 자신의 노래방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노래방으로 가서 여자 도우미를 특별히 주문해서 몸을 풀기도 했다. 이렇게 아무리 개판을 쳐도, 구강패의 부인인 정촌녀는 민선수와 몇 번 한 전과 때문에 꼼짝 못하고 눌려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구강패는 정말 재수 없게 하공순(35세, 가명)과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같이 모텔에 갔다가 잠깐 한번 했는데, 하공순이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었고, 뿐만 아니라 하공순의 요구조건이 위자료만이 아니라, 민선수(27세, 가명)를 조건 없이 풀어주라고 하고, 마누라 정촌녀(45세, 가명)까지 자유롭게 놓아주라는 강요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옛날 같으면, 하공순과 민선수, 정촌녀를 한꺼번에 불러서 박살을 내고 싶은데, 지금은 유명한 노래방 회장이 되었으니, 그렇게 성질대로 할 수도 없었다.

 

“아무래도 이것들이 작당을 해서 나를 괴롭히려는 거야. 민선수 이 놈이 경제학과 다니고 있으니, 이 모든 음모가 민선수 머리에서 나온 것이 틀림 없어.”

 

그래서 구강패는 민선수를 따로 불렀다.

“학생! 내가 실수로 하공순 여사와 한번 했는데, 왜 그 여자가 너를 자유롭게 풀어주라고 할까? 내가 학생에게 뭐 잘못한 것이 있었나? 그리고 너를 자유롭게 풀어주라고 한다는데, 너는 지금 자유가 없는 거야?”

 

“예. 무슨 말씀인가요? 저는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하공순 여사님은 저와 아무 관계 없습니다. 그냥 제 단골 손님일 뿐입니다. 오시면 그냥 노래만 하시고, 술만 마시다 갔어요.”

 

“그 여자하고는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는 거야? 분명히 네가 한 것 같은데?”

“아닙니다.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전맹순 여사님 친구고, 전맹순 여사님은 사장님과 잘 아는 전맹초 사장님 여동생이지 않습니까? 그런 것을 제가 잘 아는데, 어떻게 하공순 여사님과 제가 나쁜 짓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알기에는 하공순 여사님은 남편분이 경찰서 수사과장이라고 하는 것을 들었어요.”

“뭐라고! 그 여자 남편이 수사과장이라고?”

 

구강패 사장은 크게 놀랐다.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졌다. 구 사장은 노래방 단골 손님인 정무책 변호사(40세, 가명)를 만나러 갔다. 차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서울 이태원 클럽과 관련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총 187명으로 늘었습니다. 이태원 일대 클럽을 다녀와서 감염된 환자보다 방문자와 접촉해 걸린 2차 이후 감염 환자가 더 많아졌습니다.’ 코로나19 중앙방역대책본부에서 발표하고 있었다.

 

‘큰일이네. 빨리 코로나사태가 진정되어야 할 텐데.’ 구강패 사장의 마음은 착잡했다. 그런데 계속해서 라디오에서는 어떤 사건 보도를 하고 있었다.

 

‘“노래방 여성 도우미 2명을 성폭행한 30대 남성에게 징역 10년의 중형이 선고됐습니다. 30대 중반인 이 남성에게는 8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 장애인복지시설에 10년간 취업제한명령도 내려졌습니다. 피고인은 노래방에서 50세 된 여자 도우미와 술을 마신 뒤 아무 요구도 하지 않겠다면서 모텔로 데리고 간 다음, 강간했다고 합니다.”

 

뉴스에서 보도하고 있는 성폭행사건은 가해자인 남자는 30대 중반이고, 피해 여성은 50대 초반의 노래방 도우미였다. 그 사건에서 남자는 징역 10년이라는 엄청난 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사건과 비교해보면, 구강패는 48세 남성이고, 피해자는 자신보다 13살이나 어린 35세의 여성이다.

 

그렇다면 뉴스에 나오는 사건보다 구강패 사건이 훨씬 무겁게 취급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강패는 소름이 끼쳤다. 자신이 감방에 가서 징역을 10년이 살고 나오면, 그때는 58세가 될 텐데, 그때쯤이면 구강패는 발기불능이 되어 성관계를 누릴 수 없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억울해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겠느냐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구강패 자신이 알고 있는 용불용설이론에 의하면 남성은 오랫동안 써먹지 않고 있으면, 자연적으로 쇠퇴해서 불능상태가 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억울했다. 그렇다고 구치소에서 구강패만 특별히 그짓을 하기 위해서 특별외출을 허가해줄 것 같지도 않았다.

 

/ 작은 운명 (211)

모텔에서 술에 취한 여자를 간음한 사건 

 

그 날 이후 전맹순(35, 가명)는 민선수가 너무 불쌍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정촌녀(45, 가명)을 만났다.

 

언니! 선수가 너무 불쌍해요. 아무리 잘못했다고 해서 대학생 어린 애를 그렇게까지 심하게 학대할 수 있어요? 구강패 사장님이 너무 심한 것 아니예요?”

 

맞아. 강패씨가 해도 너무 해. 그런데 강패씨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야. 잘못했다가는 강패씨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

 

맹순과 촌녀는 강패가 친구들과 바다낚시를 3일간 떠난 것을 기화로 <죽을 때까지> 노래방으로 가서 민선수(27, 대학생, 가명)를 만났다. 민선수는 그날도 돈을 벌기 위해 여자 손님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했다.

 

12시가 되어 영업시간이 끝나가는 시간이었다. 선수는 그날도 저녁 6시부터 노래방도우미로 일을 했다. 워낙 여자 손님들에게 인기가 좋아서 사전에 예약한 손님만 모두 6명을 다 소화했다.

 

한 사람에게서 도우미 출장비 3만원, 특별봉사료 10만원, 합계 13만원씩 6명으로부터 모두 78만원을 받았다. 오늘 따라 손님들이 5만원권이 아닌, 천원짜리와 100원짜리 동전을 많이 가져왔기 때문에, 선수가 노래방에서 받은 돈을 넣어가지고 다니는 노란 주전자안이 가득 찼다.

 

처음에는 선수는 요령이 없어서 많은 여자손님들을 있는 힘을 다해서 풀서비스를 해주었다. 그러다보니 도저히 체력적으로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자신의 몸을 극도로 아꼈다.

 

여자들에게 특별봉사하는 시간은 20분을 넘기지 않았다. 그리고 절대로 남자의 그것을 배출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한 시간 후에 다른 여자와 그것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손님은 이런 민수의 절제심에 소비자불만을 떠뜨렸지만, 그것은 규정에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선수는 특별봉사를 많이 한 날에는 몸보신을 하기 위해서 돼지고기 목살 200그램, 삼겹살 200그램, 육회 한 접시, 우유 1리터를 반드시 먹었다.

 

맹순과 촌녀는 민선수를 데리고 24시간 영업하는 식당으로 갔다. 오늘은 특별히 소고기 안심으로만 시켰다. 선수는 아무 말 없이 고기를 먹었다. 안심 600그램씩 2접시, 그러니까 합계 1킬로 200그램의 고기를 혼자 다 먹었다.

 

맹순과 촌녀가 따뜻하게 위로를 해주자, 선수는 닭똥같은 눈물을 떨구면서 소주를 맥주잔에 따라 들이켰다. 맹순과 촌녀도 그런 분위기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세 사람은 술에 취했다. 선수는 울면서 말했다.

 

저는 모든 게 제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도 원망하지 않아요. 그리고 구강패 사장님이 저에게 이렇게 심하게 해도 나는 충분히 이해해요. 제가 사모님을 건드렸잖아요? 그 죗값을 달게 받을 거예요.“

 

앞으로 얼마는 더 갚아야 해요? 우리가 어디서 돈을 마련해서 빌려줄게요.” “그럴 필요 없어요. 저는 제 힘으로 벌어서 구강패 사장님과 약속한 돈을 다 갚을 거예요.”

 

맹순은 이런 선수의 인간다운 모습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맹순은 가까운 친구로서 이혼하고 혼자 살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하공순(35, 가명)에게 같이 선수를 도와주자고 했다.

 

그래서 맹순과 공순은 일주일에 세 번찍 <죽을 때까지> 노래방에 가서 민선수를 도우미로 불러놀았다. 그리고 선수로부터 특별서비스를 받았다. 1회 서비스를 받을 때마다 맹순과 공순은 다른 여자 손님들은 10만원을 주는데, 자신들은 특별히 120만원씩 주었다.

 

이렇게 2개월이 지났다. 그런데 구강패 사장은 맹순은 전맹초의 여동생이었기 때문에 일정한 거리를 두었지만, 맹순의 친구인 공순에게 눈독을 들였다. 어느 날 구강패 사장은 노래방에 왔다가 술을 많이 마시고, 돌아가는 하공순(35, 가명)에게 2차로 술을 마시자고 했다.

 

공순은 강패가 나쁜 사람이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노래방 주인이기 때문에 같이 가서 술을 마셨다. 그날 따라 묘한 기분이 들어 술을 많이 마신 공순은 구강패 사장이 모텔까지 데려다 준다는 말에 부근에 있는 모텔에 갔다.

 

그런데 구강패 사장은 공순이 자신을 받아주는 것으로 착각하고, 모텔방에서 나가지 않고, 수작을 부리다가 공순을 강압적으로 간음했다. 구강패 사장이 모텔방에서 나가자 공순은 곧 바로 112신고를 했다.

 

술에 취해서 모텔까지 데려다 준 구강패 사장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간음을 했다는 내용으로 신고했다. 이 바람에 구강패 사장은 강간죄로 입건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다.

 

구강패 사장은 공순이 맹순와 가까운 친구라는 사실과 <죽을 때까지> 노래방 단골 손님으로서 민선수와 여러 차례 성매매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전맹초 사장에게 SOS를 쳤다. 전맹순은 구강패 사장을 만났다.

 

맹순씨가 가운데서 공순씨를 잘 설득시켜서 합의를 봐주세요. 내가 잘못했으니까 위자료를 준다고 해요.” “

 

사장님이 사람을 잘못 보신 거예요. 제 친구 공순이는 돈도 있고, 프라이드가 대단한 여자예요. 현재 공순이는 사장님을 징역 보내는 대신, 위자료로 5천만원을 요구하고 있어요. 그리고 민선수를 아무 조건 없이 풀어주라는 거예요. 또한 사장님 사모님 정촌녀씨도 놓아주라는 거예요.”

 

아니, 공순씨가 왜 민선수와 정촌녀를 풀어주라고 해요?”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다만, 공순이 이야기는 이 지역에서 사장님이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악한 일을 많이 해서 정의감에서 가만 둘 수 없다는 거예요.”

 

- 작은 운명 (210) -

불륜에 대한 위자료를 빨리 갚으라고 강요하다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 전맹초(40세, 가명)는 자신이 운영하는 <맹초통닭집>의 상호를 <튀겨도 다시 한번>통닭집으로 바꾸었다. 그러면서 운영시스템을 대폭 바꿨다. 닭집을 법인체로 바꾸고, 주주들을 모아서 자본금을 10억원으로 늘렸다. 구강패 사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노래방 이름을 계속해서, <죽을 때까지>노래방으로 사용했다.

 

민선수(27세, 가명)는 6개월 전에 구강패(48세, 가명) 사장의 부인, 정촌녀(45세, 가명)와 몰래 간통을 했다가 이러한 불륜사실이 밝혀져서, 구강패 사장에게 돈 천만원을 배상하기로 각서를 썼다.

 

민선수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어렵게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구강패 사장에게 손해배상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득이 강패가 운영하는 <죽을 때까지> 노래방에서 여자 손님을 접대하는 <남성 도우미>로 일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단골 여자 손님들을 성접대하고 돈을 받았다. 그 돈을 모아서 최종적으로 구강패에게 7백만원을 변제하였으나, 나머지 3백만원을 갚지 못하고 있었다.

 

민선수는 도우미로 일을 하는 과정에서 성병까지 옮아서 비뇨기과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너무 많은 여자들과 성관계를 하다 보니, 몸이 극도로 쇠약해졌다. 대학교도 휴학하게 되었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하는 수 없이 민선수는 자신을 좋아하는 엄정순(21세, 가명)을 만나 도움을 청했다.

 

엄정순은 민선수가 아르바이트로 과외지도를 했던 여학생이었는데, 대학교에 입학해서 다시 만나게 되었고, 성관계를 계속 해왔던 사이다. 엄정순의 집은 경제적으로 넉넉했다.

 

“정순아, 우리 어머니가 유방암에 걸렸어. 병원비가 없어서 수술도 못하고 있는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 미안하지만, 네가 부모님께 말씀드려서 전에 너를 가르치던 과외선생에게 돈 좀 500만원 빌려주시라고 하면 안 될까? 내가 대학교 졸업하고 취직하면 이자까지 쳐서 꼭 갚을테니까.” 정순을 이 말을 듣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구강패는 민선수에게 술을 한잔 하자고 했다. 선수가 약속한 술집으로 가니, 그곳에는 구강패 부인 정촌녀와 <죽을 때까지> 노래방 주인인 전맹초(40세, 가명)와 그의 여동생, 전맹순(35세, 가명)도 있었다. 선수는 바짝 긴장했다. 가슴이 철렁 가라앉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구강패는 민선수를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이 친구는 이름이 민선수요. 워낙 머리가 좋아서 들어가기 어려운 경제학과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4년 내내 학점이 모두 에이 플러스를 받았대.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엘리트이며 천재라고 해. 두뇌는 아인슈타인보다 더 좋다고 해. 모든 생활에서 아주 모범적인 대학생이야. 다만, 어렸을 때 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내 마누라 위에 올라가서 그짓을 한 거야. 그것도 내 마누라는 나에게 처녀로 시집와서 나밖에 모르는데, 내가 감방에 가서 감시를 하지 못하는 틈을 타서, 내 마누라가 죽기 살기로 반항을 하는데도. 탱크로 밀고 들어오는 적군처럼 그냥 내 마누라 동굴속으로 진격해서 동굴안을 초토화시켜버렸어. 그때 내 마누라는 그 순간 기절해버렸대. 의식까지 잃었는지는 확인 못했지만, 아마도 이 놈의 무기가 너무 강력하고 화력이 좋아서 인생 최고의 절정을 느꼈던 모양이야. 그래서 나중에 내가 마누라를 조사하니까, 마누라는 이 놈과 모두 50번 했다고 하고, 이 친구는 3번밖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상반된 진술을 하고 있어. 그래서 내가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하려고 했는데, 경찰이나 검찰에서 거짓말탐지기를 나 같이 감방 다녀온 사람에게 빌려줄 것 같지가 않아.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이 놈 말은 거짓말로 단정하고 믿지 않고, 그래도 오래 나와 같이 살아서 속정이 깊이 든 마누라 말을 믿기로 했어. 그래서 이 친구에게 내 마누라 배 위에 50번 올라가서 50회 동굴 탐험을 했으니까, 1회 사용료 및 탐사료로 20만원씩 50회, 합계 1,000만원을 달라고 했어. 그래서 각서를 받았는데, 아직까지 절반도 갚지 않고 있어. 그래서 나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 여러분들의 고견을 들으려고 초대를 한 거야. 나로서는 정말 인생이 걸린 문제니까, 나를 생각해서 오늘 밤 여러분들이 좋은 의견을 내주었으면 그 은혜를 평생 잊지 않을 거예요.”

 

민선수는 구강패의 말이 전부 거짓말이고, 자신은 구강패 부인이 먼저 유도하여 간음을 했던 것이고, 모두 5번밖에 하지 않았는데, 구강패는 그것의 열배에 해당하는 50회를 했다고 우기고 있는 것이어서, 자신도 할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중 일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5번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모님을 강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말을 하자, 구강패는 무척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이런 구강패의 표정을 읽은 전맹초 사장(40세, 가명)이 민선수의 말을 가로막았다.

 

“잠깐. 젊은 친구! 가만 있어봐. 지금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자네가 우리 사장님 사모님과 그짓을 한 건 맞는 거야? 그게 사실이라면 횟수가 문제가 아니잖아. 그리고 자네가 사장님께 천만원 물어내겠다고 약속을 했으면, 빨리 지켜야지 왜 그걸 갚지 않고 있는 거지?”

 

민선수는 더 이상 말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빨리 갚겠습니다.”

 

그러자 구강패는, “이 놈이 무슨 돈이 있어 내 돈을 갚겠어. 이 놈은 내 돈을 갚겠다면서 나에게 사정 사정해서 우리 노래방에서 남자 도우미로 일을 하도록 허용했어. 사실 노래방에서 일을 하는 도우미들은 100% 여자들이지, 남자 도우미를 쓰는 곳이 어디 있어?”라고 말했다.

 

“아니 그럼 이 친구가 <죽을 때까지>에서 남자 도우미로 일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전맹초의 여동생 전맹순(35세, 가명)이 놀라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래, 나도 남자 도우미는 처음 써보는 거야. 그런데 이 놈이 워낙 성적 능력이 탁월해서 그런지 동네 여자 손님들이 모두 이 놈을 좋아해. 어떤 날은 순차로 여자 손님 6명을 1시간 간격으로 받아서 해치웠다고 해. 한번에 노래방 기본 도우미 출장비 3만원에 특별서비스요금 10만원씩 계산하면 하루에 6명으로부터 합계 78만원을 이 친구가 받는 거야. 그렇다면, 이 친구는 여자처럼 생리하는 날도 없으니까 한달에 30일 일하면, 한달이면, 2,340만원을 벌게 되는 거야. 왠만한 변호사보다 몇 배 더 벌어. 정말 수지맞는 장사지. 그리고 이런 장사는 자격증도 필요없어. 남자면 돼. 다만, 정력이 뒷받침되는 문제는 있어. 그리고 세금도 한푼도 안내는 거야. 그렇다면, 이 친구가 그동안 6달이나 일을 했으니까 최소한 1억원은 벌었을텐데, 그 많은 돈을 어디에다 숨겨놓았는지 모르겠어. 이 놈은 그렇게 많은 돈을 벌면서, 매일 돈 없다고 거지처럼 앙앙대고 있다고 해. 여자 친구들로부터도 매일 얻어먹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모텔비도 모두 여자들이 낸다고 해. 정말 나중에 큰 돈 모아 재벌이 될 인물임이 틀림없어.”

 

“사장님 말씀 듣고 보니까 정말 이상하네요. 그렇게 많은 돈을 버는데 왜 돈이 없다고 할까요?”

 

옆에서 전맹초 사장이 거들었다. 전맹초 사장은, “자네, 지금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지갑을 꺼내서 보여줘 봐.”라고 말하면서 어금니를 소리가 나도록 깨물었다.

 

민선수가 무서워서 아무 저항도 못하고 지갑을 꺼내보여주었다. 지갑에는 현금 50만원이 들어있었다. 최근에 번 돈을 모아놓은 것이었다.

 

“야. 정말 대단하네. 어떻게 대학생이 현금을 50만원이나 가지고 있어. 그것도 모두 5만원 새빳지야. 정말 훌륭하네. 나도 진작부터 노래방 도우미나 할 걸. 아까운 세월 놓쳤네.”

 

전맹초는 자신도 노래방 도우미를 하지 못한 걸 안타깝게 생각했다. 전맹순(35세, 가명)은 옆에서 보고 있자니, 민선수가 너무 불쌍해보였다.

 

“사장님. 이 학생이 돈을 벌어서 갚겠다고 하니까 좀 기다려주시면 어때요? 떼어먹지 않을 사람 같아요.”

 

구강패는 전맹순을 바라보면서 아주 흡족해했다. “거 봐요. 이 놈이 생긴 건 이래도, 여자들에게는 인기가 짱이라니까. 벌써 전 사장 동생분이 이 놈을 좋게 봐서 도와주려고 하잖아. 그런데 당신 생각은 어때?”

 

구강패는 자기 부인인 정촌녀(45세, 가명)을 경멸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제가 보기에도 선수씨는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열심히 일을 해서 꼭 갚겠다고 하니까 조금 기다려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맞아. 모든 사람들이 똑 같이 나보고 기다려주라고 하니까 내가 기다려주겠어요.” - 작은 운명 (209)

통닭집 이름을 <튀겨도 다시 한번>으로 정하다

 

구강패 사장은 <죽을 때까지 불러>라는 상호로 <노래방>을 하려고 했으나, 끝내 구청에서 상호등록을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미등록상태로, 강패는 자신이 운영하는 노래방 간판을, <죽을 때 까지>로 했다. 영어로는, <until we die>로 써놓았다. 한자로는, <死亡時>로 했다.

 

바깥 전체적인 분위기를 어둡게 했기 때문에, 술에 취한 사람들이 보면, 마치 <장의사>같았다. 눈이 나쁜 사람들에게는, <장례식장>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강패가 노래방 상호, <죽을 때까지>를 쟁취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하루 종일 화장실에 가지도 않고 부동자세로 서있다가, 노숙자에게 소주병으로 머리를 맞아 의식을 잃고 응급실까지 실려갔다는 전설이 그 지역에 퍼지면서 손님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구청 앞 1인시위가 엄청난 홍보효과를 가져온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노래방에 말기 암환자가 와서 노래를 부르고 간 다음 기적적으로 완치되었다는 소문이 나자, 급속도로 손님이 늘었다.

 

그래서 발렛 파킹관리직원도 두어야 했고, 입장을 위해 대기번호표도 발급해야 했다. 하는 수 없이 사전에 입장권을 판매했더니, 암표가 기승을 부려 구청에서 단속이 나왔다.

 

<아시아국가노래방인권수호연합회>에서도 구강패 사건을 심각하게 다루었다. 그래서 아시아지역 노래방운영자그룹의 회장단 100명이 해당 구청장을 항의방문하기도 했다.

 

노래방 상호선택권을 부당하게 탄압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때문에 구강패 사장은 아시아지역국가에서는 아주 유명한 스타가 되었다. 외국 언론사에서도 구강패 사장의 인터뷰를 많이 해갔다.

 

일본,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 같은 나라에서는 구강패 사장이 그 나라를 방문하면, 모든 노래방 입장료를 면제해주는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구강패 사장은 하루 아침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죽을 때까지> 노래방에서는 주로 <사의 찬미>를 많이 불렀다.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 너의 가는 곳 그 어데냐 /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 너는 무엇을 찾으려 가느냐> 사의 찬미 1절 가사는 <죽을 때까지> 노래방 단골 손님들에게는 18번 노래가 되었다.

 

어떤 음대 교수는 매일 이 노래방에 와서, 혼자, <사의 찬미> 노래만 반복해서 108번 부르고 가기도 했다. 사람들은 점차 그 여자 음대 교수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의 찬미> 노래를 너무 잘 불렀기 때문이었다.

 

구강패 사장도 그 음대 교수가 마음에 들어, 나중에는 노래방을 100% 무료로 이용하도록 허용했다. 음대 교수에 대해 알면 알수록 신비한 사실이 많았다. 생일이 83일이었다.

 

이 날은 공교롭게도 <사의 찬미>를 작사하고 음반에 취입한 윤심덕이 현해탄에서 김우진과 투신한 날이었다. 음대 교수 이름은 윤심진이었다. <심덕><우진>에서 글자를 한 자씩 따서 합성한 것이었다. 음성이나 음색도 <윤심덕>과 비슷했다. 가끔 일본을 혼자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상했다.

 

음대 교수는 30대 중반이었는데, 남자 친구는 절대로 사귀지 않는다고 했다. 술을 많이 마셨다. 담배도 많이 폈다. <사의 찬미>를 부를 때는, 노래방 룸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잘 모르고, 그 음대 교수가 <사의 찬미>를 부르고 있을 때 룸에 들어가면, 즉시 노래를 멈추고, 무단침입자를 아주 무서운 눈으로 쏘아보는 것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 여교수는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했다.

 

한편, <맹초통닭집> 주인인 전맹초(40, 가명)<맹초통닭집>이라는 상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새로운 상호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단골 손님 10명을 초대해서 <죽을 때까지> 노래방으로 갔다.

 

전맹초는 최근에 다른 지역을 중심으로 뜨기 시작하는, <나훈아통닭집>처럼 유명한 가수 이름을 넣어서 상호를 짓는 것을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전맹초 사장을 포함한 모두 11명의 토론참가자들은 노래방에서 가장 큰 룸 하나를 빌렸다.

 

그리고 토의에 들어가, 11명 전원일치 결론이 나올 때까지 룸에서 나오지 않기로 했다. 이른바 <죽을 때까지> 토론에 들어간 것이었다. 최종 결론이 날 때까지는 모두 노래방에서 나올 수 없었다.

 

급성맹장염에 걸려도 병원 응급실에 갈 수 없었다. 방 안에서 약국 약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약으로 해결할 수 없는 뇌출혈환자의 경우는 문제였지만, 그런 경우에도 예외를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술과 담배는 무제한 허용했다. 좋은 아이디어를 얻는데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법에서 금지하는 히로뽕, 코카인은 반입이 금지되었다. 토의 초반에 나온 이름은, <나아훈통닭집> <이미지통닭집> <프레슬리숫탉집> <마돈나암탉집> 등이 유력했다.

 

그러나 이런 이름들은 <나훈아통닭집>과 유사하거나, 모방적인 이미지를 준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다. 토론 제2라운드에서는 <방탄통닭> <소녀통닭> 등이 거론되었으나, 한류열풍에 <통닭집> 이미지는 연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되었다.

 

3라운드에서는, <암탉이 운다> <닭의 모가지를 비튼다> <닭발로 긁는다> 등이 유력한 후보로 올랐지만, 한 사람이 찬성하지 않아 결론을 내지 못했다. 토론을 시작한지 벌써 3일째가 되었다.

 

토론 3일째가 되는 날부터는 일체 음식과 물도 금지되었다. 배가 부르고 따뜻해서는 토론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화장실 사용도 금지되었다. 대신 대소변용 성인 기저귀가 공적으로 하루에 한 개씩 제공되었다.

 

4일째는 두 사람이 의식을 잃었다가 한 시간만에 깨어났다. 대부분 사람들은 잠을 자지 않기 위해 각성제를 먹었다. 체력 유지를 위해서는 토론장 한쪽에서 아령을 들거나, 팔굽혀피기를 했다.

 

어떤 사람은 잠을 쫓기 위해 벽에서 거꾸로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토론에 참여하기도 했다. 일주일이 되는 날 밤 1145분에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튀겨도 다시 한번>이라는 이름을 내놓았다.

 

아무래도 요새 제일 뜨는 통닭집이, <나훈아통닭집>이라는 사실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도 <나훈아>에 필적하는 가수를 찾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남진>밖에 없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짝짝짝, 짜악짜아짝. 대한민국> 사람들은 환호했다. 나이 많은 사람은 마이크를 잡고 연설을 이어갔다.

 

하지만, 남진 이름을 그대로 쓰면, 그것은 <나훈아통닭집>을 따라하는 것이 됩니다. 다른 사람이 한 것을 모방하는 것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습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남지> 가수 이름이 필요하니까 <남진>을 상징하는 히트곡, <미워도 다시 한번>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친애하는 유권자 여러분!“

 

그 사람은 국회의원 선거에 여러 번 출마했다가 떨어진 사람 같았다. 그렇잖아도 잠바 색깔이 핑크빛이었다. 바지도 핑크색이었다. 안경도 핑크빛이었다. 안경알 색깔도 핑크였다.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지자, 그 남자는 노래방 기계에서 <11534>을 눌었다.

 

<미워도 다시 한번> 곡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는 마이크를 잡고, 이 노래 2절까지 크게 불렀다. 감정에 도취되어 눈을 완전히 감고 불렀다. 노래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음정 박자는 틀렸다. 꼭 돼지 목 따는 소리로 들렸다.

 

노래는 못했지만, 워낙 발언 내용이 시의적절하고 논리적이어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사에 반해서 <앵콜>을 외쳤다. 그 남자는 정말 자신이 노래를 잘 해서 <앵콜>이 나온 것으로 착각했다.

 

게다가 노래방기계에서도 <100점 빵빠레>가 울려퍼졌다. 그는 계속해서 앵콜송을 불렀다. <가슴 아프게> <님과 함께> <둥지> <당신이 좋아> 등을 연속으로 불렀다. 물론 가사는 노래방 기계를 보고 불렀다. 이런 과정을 거쳐 결국 통닭집 이름을, <튀겨도 다시 한번>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죽을 때까지> 노래방 이름 때문에 폭행을 당하다

 

구강패(48, 가명)는 맹순의 아이 문제에서 억울한 혐의를 벗게 되자, 아주 홀가분해졌다. 뿐만 아니라, 맹순이 때문에 맹순 오빠와 같은 훌륭한 사람을 만나게 되어 너무 좋았다.

 

맹순 오빠 전맹초(40, 가명) 역시 구강패의 인간됨됨이를 보고 친하게 지내기로 했다. 전맹초는 통닭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원래 <맹초통닭집>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는데, 장사가 잘 되고 손님들이 많아지자, <맹초>라는 이름이 이상하지 않느냐는 여론이 들끓었다.

 

통닭집 단골손님으로 부장판사도 있었고, 경찰서 수사과장도 있었다. 단골손님들은 <맹초통닭집>의 새로운 상호를 정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매우 학구적이었던 수사과장은, 통닭집 상호를 생각해 내느라고, 국어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넘겨가면서 좋은 이름, 단어를 찾아보았다.

 

6개월이 넘도록 수만가지의 이름과 단어를 써가면서 골머리를 앓았지만, 끝내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어떤 단골손님이, <나훈아통닭집>이 최근에 급성장하고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하면서, 유명한 가수 이름을 넣어서 나중에 대규모 <통닭집> 체인점을 개설하면 어떠냐는 아주 바람직한 의견을 제시했다.

 

전맹초 사장은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고 하면서 단골 손님 10명을 초대해서, 노래방으로 갔다. 노래방은 구강패가 운영하는, <죽을 때까지 불러 노래방>이었다. 노래방 상호는 구강패의 일진회 후배들이 작명을 해준 것이었다.

 

구강패는 이 노래방 이름이 너무 좋은 것이라고 들떠있었지만, 구청에서는 상호가 너무 저속하다는 이유로 신고접수를 받아주지 않았다. 구강패가 구청 담당 직원에게 항의를 하러 갔다.

 

담당 직원은, “이런 상호를 등록해주면, 그 노래방에서 손님들이 죽을 때까지 노래를 부르다가 정말 죽으면, 사장님이 책임을 져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허가를 내준 저도 같이 책임을 져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좀 순한 이름으로 바꾸세요. 예를 들면, <태어날 때까지 불러>노래방, 이런 이름이 긍정적이고 좋잖아요.”

 

구강패는 화가 났다. “아니, 그렇게 이름을 지으면, 여자 손님들이 우리 노래방에 와서 애기 날 때까지 계속 부르다가 쓰러져서 사산(死産)하면 책임질 거예요?”

 

구강패는 그 다음 날부터 구청 앞에 가서 1인 시위를 했다. ‘<죽을 때까지> 허가하라!’ 이런 포스터를 써서 들고, 혼자 서있었다. 머리띠에도 <죽을 때까지>라고 붉은 천에 검은 글씨로 써서 메고 있었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시위하는 구강패가 죽고 싶어서, 외국에서 허용되는, 안락사(安樂死)를 허가해 달라는 것으로 알고 불쌍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구강패를 위로해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구강패가 불치의 암에 걸려서 치료비가 없기 때문에 안락사를 하려는 것으로 알고, 구강패 발 밑에 깡통을 하나 사다 주고, 그곳에 10원짜리 동전을 몇 개 넣었다.

 

구청 청소부 아저씨는 자신도 예전에 비슷한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는데, 자살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고 있다면서, 그 깡통에다 <급성췌장암 말기!!!>라고 노란 페이트로 써주었다. 그리고 <췌장>도 그려놓았다.

 

구강패는 하루 종일 서 있으면서, 일체 말을 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시위를 하면서도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어야했다. 시위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구강패는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무려 11시간을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화장실도 가지 않았다. 진정한 시위라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아예 바지 속에 기저귀를 5개나 겹쳐서 찼다. 이를 악물고 서서 버텼다. 오후 6시가 되니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여러 차례 소변을 보았기 때문에, 기저귀의 무게가 3리터는 되는 것같았다. 그래도 끝까지 버텼다.

 

오후 6시부터는 공무원들의 퇴근시간이었기 때문에 보다 많은 공무원들이 볼 수 있는 황금의 시간이었다. 주변에서 퇴근하는 직장인들도 재미 있는 풍경이었기 때문에 모두 한번씩 구경을 하고 지나갔다.

 

오후 7시가 되자 퇴근시간이 지나고 통행인이 적어졌다. 10분 있다가 시위를 종료하려고 마음 먹었는데, 어떤 노숙자 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구호를 읽어보고, 밑에 깡통을 보더니, 갑자기 주먹으로 구강패의 아구통을 돌렸다.

 

구강패는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의식도 혼미한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공격을 당하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러자 그 노숙자는 연이어서 운동화 신은 발로 구강패의 급소를 짓밟았다.

 

다행이 구강패는 기저귀를 다섯 개나 차고 있었고, 그곳에 소변양이 가득 차 있었으므로 급소보호대 역할을 해서 성불구자가 되지는 않았다. 그대로 있다가는 곧 사망에 이를 지경이 되었다.

 

구강패는 그날 시위현장에서는 절대로 말을 한 마디로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지만, 그래서는 맞아 죽을 지경이 되었다. “살려주세요!”라고 다섯 글자로 말을 했다.

 

노숙자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등에 메고 있던 배낭에서 소주병을 꺼냈다. 그리고 구강패의 머리를 다섯 번 내리쳤다. 구강패는 기절하고 말았다. 노숙자는 지나가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119를 불러서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응급실에서 의식을 되찾은 구강패의 손을 잡으며, 노숙자는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나 때문에 죽지 않고 살게 된 것을 고맙게 생각해! 나는 3시간 전부터 길 건너에서 당신을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당신은 <죽을 때까지>라고 써놓고,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았어. 그래서 나는 당신이 정말 오늘 죽고 말겠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 안타까웠어. 그래서 당신을 살리기 위해서는 당신을 심하게 때려서 <살려주세요>라는 말을 하도록 마음 먹었어. 그래서 처음에는 가볍게 때렸는데, 당신 맷집이 워낙 좋아서 그런지 아무리 맞아도 말을 하지 않아. 그래서 더 때렸더니, 마침내, <살려주세요>라고 말을 하는 거야. 그래서 당신은 이렇게 살아났어. 그리고 남자는 오늘 죽겠다고 마음 먹었다가 살겠다고 아우성쳐서 살아났으면, 오늘은 절대로 죽으면 안 돼. 남아일언중천금(南兒一言重千金)이야. 죽더라도 오늘 밤 12시를 넘겨서 내일 죽어야 해!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아직 몸뚱아리가 쓸만한데, 왠만하면 죽지 말고, 죽을 마음 있으면, 혼자 사는 불쌍한 여자들에게 육보시(肉布施)나 하고 살아. 내가 바쁜데도 이렇게 당신을 살려내는 이유는, 내 위로 형님과 누님 다섯분이 모두 세상을 비관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불행한 가정 내력이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나는 요새 개인적으로 먹고 살기 위해 동냥하러 다니느라고 바쁜 와중에도 당신 같이 아무 이유 없이 죽으려는 불쌍한 인간들을 구제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고 있어. 특히 한강 다리 위, 강가. 철로길 등을 많이 다니고 있어. 나로서는 참 이해가 가지 않아. 이렇게 좋은 세상, 열심히 살지, 왜 자꾸 자살하려고 하는지 끌끌...”

 

구강패는 그 노숙자의 말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고맙다고 하면서 지갑에서 10만원을 꺼내 주었다. 노숙자는 됐다고 하면서도 구강패가 주는 10만원을 받아 주머니속에 넣었다.

 

그러면서 노숙자는, “당신이 오늘 모금한 깡통속의 성금은 내가 가지고 가니까 그렇게 알아! 오늘 많이 모았어. 모두 세어보니까, 30999십원이나 돼. 거의 다 동전이야. 너무 무거워. 이렇게 동전이 많이 들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소주병을 꺼낼 필요 없이, 그냥 이 무거운 깡통으로 당신 대갈통을 깔 걸 그랬어. 하지만 만일 내가 당신 대가리를 소주병이 아닌, 이 깡통으로 찍었으면, 본의 아니게 당신을 천당으로 보낼 뻔 했어. 아무튼 당신 관상을 보니까 빨리 죽을 상은 아냐. 최소한 60살까지는 충분히 살 것 같아. 나는 갈테니까 치료 잘 하고 집으로 가. 그리고 또 내가 보고 싶으면, 역 광장 앞으로 와. 내 별명은, <생명치료사>.“

 

<죽을 때까지> 노래방 이름 때문에 폭행을 당하다

 

구강패(48, 가명)는 맹순의 아이 문제에서 억울한 혐의를 벗게 되자, 아주 홀가분해졌다. 뿐만 아니라, 맹순이 때문에 맹순 오빠와 같은 훌륭한 사람을 만나게 되어 너무 좋았다.

 

맹순 오빠 전맹초(40, 가명) 역시 구강패의 인간됨됨이를 보고 친하게 지내기로 했다. 전맹초는 통닭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원래 <맹초통닭집>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는데, 장사가 잘 되고 손님들이 많아지자, <맹초>라는 이름이 이상하지 않느냐는 여론이 들끓었다.

 

통닭집 단골손님으로 부장판사도 있었고, 경찰서 수사과장도 있었다. 단골손님들은 <맹초통닭집>의 새로운 상호를 정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매우 학구적이었던 수사과장은, 통닭집 상호를 생각해 내느라고, 국어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넘겨가면서 좋은 이름, 단어를 찾아보았다.

 

6개월이 넘도록 수만가지의 이름과 단어를 써가면서 골머리를 앓았지만, 끝내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어떤 단골손님이, <나훈아통닭집>이 최근에 급성장하고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하면서, 유명한 가수 이름을 넣어서 나중에 대규모 <통닭집> 체인점을 개설하면 어떠냐는 아주 바람직한 의견을 제시했다.

 

전맹초 사장은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고 하면서 단골 손님 10명을 초대해서, 노래방으로 갔다. 노래방은 구강패가 운영하는, <죽을 때까지 불러 노래방>이었다. 노래방 상호는 구강패의 일진회 후배들이 작명을 해준 것이었다.

 

구강패는 이 노래방 이름이 너무 좋은 것이라고 들떠있었지만, 구청에서는 상호가 너무 저속하다는 이유로 신고접수를 받아주지 않았다. 구강패가 구청 담당 직원에게 항의를 하러 갔다.

 

담당 직원은, “이런 상호를 등록해주면, 그 노래방에서 손님들이 죽을 때까지 노래를 부르다가 정말 죽으면, 사장님이 책임을 져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허가를 내준 저도 같이 책임을 져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좀 순한 이름으로 바꾸세요. 예를 들면, <태어날 때까지 불러>노래방, 이런 이름이 긍정적이고 좋잖아요.”

 

구강패는 화가 났다. “아니, 그렇게 이름을 지으면, 여자 손님들이 우리 노래방에 와서 애기 날 때까지 계속 부르다가 쓰러져서 사산(死産)하면 책임질 거예요?”

 

구강패는 그 다음 날부터 구청 앞에 가서 1인 시위를 했다. ‘<죽을 때까지> 허가하라!’ 이런 포스터를 써서 들고, 혼자 서있었다. 머리띠에도 <죽을 때까지>라고 붉은 천에 검은 글씨로 써서 메고 있었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시위하는 구강패가 죽고 싶어서, 외국에서 허용되는, 안락사(安樂死)를 허가해 달라는 것으로 알고 불쌍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구강패를 위로해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구강패가 불치의 암에 걸려서 치료비가 없기 때문에 안락사를 하려는 것으로 알고, 구강패 발 밑에 깡통을 하나 사다 주고, 그곳에 10원짜리 동전을 몇 개 넣었다.

 

구청 청소부 아저씨는 자신도 예전에 비슷한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는데, 자살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고 있다면서, 그 깡통에다 <급성췌장암 말기!!!>라고 노란 페이트로 써주었다. 그리고 <췌장>도 그려놓았다.

 

구강패는 하루 종일 서 있으면서, 일체 말을 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시위를 하면서도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어야했다. 시위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구강패는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무려 11시간을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화장실도 가지 않았다. 진정한 시위라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아예 바지 속에 기저귀를 5개나 겹쳐서 찼다. 이를 악물고 서서 버텼다. 오후 6시가 되니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여러 차례 소변을 보았기 때문에, 기저귀의 무게가 3리터는 되는 것같았다. 그래도 끝까지 버텼다.

 

오후 6시부터는 공무원들의 퇴근시간이었기 때문에 보다 많은 공무원들이 볼 수 있는 황금의 시간이었다. 주변에서 퇴근하는 직장인들도 재미 있는 풍경이었기 때문에 모두 한번씩 구경을 하고 지나갔다.

 

오후 7시가 되자 퇴근시간이 지나고 통행인이 적어졌다. 10분 있다가 시위를 종료하려고 마음 먹었는데, 어떤 노숙자 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구호를 읽어보고, 밑에 깡통을 보더니, 갑자기 주먹으로 구강패의 아구통을 돌렸다.

 

구강패는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의식도 혼미한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공격을 당하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러자 그 노숙자는 연이어서 운동화 신은 발로 구강패의 급소를 짓밟았다.

 

다행이 구강패는 기저귀를 다섯 개나 차고 있었고, 그곳에 소변양이 가득 차 있었으므로 급소보호대 역할을 해서 성불구자가 되지는 않았다. 그대로 있다가는 곧 사망에 이를 지경이 되었다.

 

구강패는 그날 시위현장에서는 절대로 말을 한 마디로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지만, 그래서는 맞아 죽을 지경이 되었다. “살려주세요!”라고 다섯 글자로 말을 했다.

 

노숙자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등에 메고 있던 배낭에서 소주병을 꺼냈다. 그리고 구강패의 머리를 다섯 번 내리쳤다. 구강패는 기절하고 말았다. 노숙자는 지나가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119를 불러서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응급실에서 의식을 되찾은 구강패의 손을 잡으며, 노숙자는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나 때문에 죽지 않고 살게 된 것을 고맙게 생각해! 나는 3시간 전부터 길 건너에서 당신을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당신은 <죽을 때까지>라고 써놓고,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았어. 그래서 나는 당신이 정말 오늘 죽고 말겠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 안타까웠어. 그래서 당신을 살리기 위해서는 당신을 심하게 때려서 <살려주세요>라는 말을 하도록 마음 먹었어. 그래서 처음에는 가볍게 때렸는데, 당신 맷집이 워낙 좋아서 그런지 아무리 맞아도 말을 하지 않아. 그래서 더 때렸더니, 마침내, <살려주세요>라고 말을 하는 거야. 그래서 당신은 이렇게 살아났어. 그리고 남자는 오늘 죽겠다고 마음 먹었다가 살겠다고 아우성쳐서 살아났으면, 오늘은 절대로 죽으면 안 돼. 남아일언중천금(南兒一言重千金)이야. 죽더라도 오늘 밤 12시를 넘겨서 내일 죽어야 해!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아직 몸뚱아리가 쓸만한데, 왠만하면 죽지 말고, 죽을 마음 있으면, 혼자 사는 불쌍한 여자들에게 육보시(肉布施)나 하고 살아. 내가 바쁜데도 이렇게 당신을 살려내는 이유는, 내 위로 형님과 누님 다섯분이 모두 세상을 비관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불행한 가정 내력이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나는 요새 개인적으로 먹고 살기 위해 동냥하러 다니느라고 바쁜 와중에도 당신 같이 아무 이유 없이 죽으려는 불쌍한 인간들을 구제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고 있어. 특히 한강 다리 위, 강가. 철로길 등을 많이 다니고 있어. 나로서는 참 이해가 가지 않아. 이렇게 좋은 세상, 열심히 살지, 왜 자꾸 자살하려고 하는지 끌끌...”

 

구강패는 그 노숙자의 말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고맙다고 하면서 지갑에서 10만원을 꺼내 주었다. 노숙자는 됐다고 하면서도 구강패가 주는 10만원을 받아 주머니속에 넣었다.

 

그러면서 노숙자는, “당신이 오늘 모금한 깡통속의 성금은 내가 가지고 가니까 그렇게 알아! 오늘 많이 모았어. 모두 세어보니까, 30999십원이나 돼. 거의 다 동전이야. 너무 무거워. 이렇게 동전이 많이 들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소주병을 꺼낼 필요 없이, 그냥 이 무거운 깡통으로 당신 대갈통을 깔 걸 그랬어. 하지만 만일 내가 당신 대가리를 소주병이 아닌, 이 깡통으로 찍었으면, 본의 아니게 당신을 천당으로 보낼 뻔 했어. 아무튼 당신 관상을 보니까 빨리 죽을 상은 아냐. 최소한 60살까지는 충분히 살 것 같아. 나는 갈테니까 치료 잘 하고 집으로 가. 그리고 또 내가 보고 싶으면, 역 광장 앞으로 와. 내 별명은, <생명치료사>.“

 

<사랑해> 문신에 대한 필적 감정을 마치다

 

맹순의 아이 문제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맹순 오빠는 여러 사람의 진술을 들어본 결과, 이 문제는 맹순의 은밀한 부위에 있는 <사랑해>라는 문신의 필적감정을 해서 결론을 내리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맹순 오빠는, <구강패><구강패 친구>를 불러놓고, 사건경위서를 자필로 작성하라고 했다. 두 사람은 워낙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싫어하고, 글씨를 써보지 않았기 때문에 한 장짜리 사건경위서를 작성하는데, 무려 5시간이나 걸렸다.

 

그리고 써놓은 문자는, <한글>이라고는 볼 수 없고, 히브리어나 아람어 같았다. 라틴어 같기도 하고, 페르시아어처럼 보였다. 맹순 오빠가 <맹순이 문신>과 돋보기로 확대해서 대조해보니, 아무리 맹순이에게 유리하게 판정을 해주려고 해도, 그렇게까지 법과 정의에 위반되는 필적감정의견을 내놓을 수는 없었다.

 

맹순 오빠는 최종 결론을 선언했다. 네 사람 모두 <복다방>으로 가서, 테이블에 앉았다. 맹순 오빠는 국회 본회의가 개최될 때 <국회의장>이 사용하는 <의사봉> 대신 철물점에서 커다란 <쇠망치>를 준비해놓았다.

 

<본인은 맹순의 몸에 새겨져 있는 문신의 필적을 아무런 사심 없이 정밀하게 구강패와 원졸개, 두 사람의 필적을 대조한 결과, 두 사람의 필적이 아님을 선언합니다.>

 

이렇게 큰소리로 선언하고, 쇠망치로 탁자를 세게 쳤다. 탁자는 찌르러지고, 그 위에 놓여있던 커피잔들은 땅에 떨어져 박살이 났다. 맹순 오빠가 최종 판정결과를 선언할 때, 맹순을 비롯한 <구강패><원졸개> 세 사람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서있었다.

 

<복다방> 출입문은 닫은 채 폐쇄하고, 그 앞에는 다방 종업원 두 사람이 장내 질서유지 차원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다. 종업원들이 소지하고 있는 무기는 스테이크를 썰 때 사용하는 <포크와 나이프(fork & knife)>였다.

 

구강패와 원졸개는 일단 자신의 무죄가 확인되었기 때문에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반면에 맹순이 본인은 오빠의 판정에 불만이 많았지만, 워낙 오래 전의 일이고, 학식과 덕망이 있는 큰오빠가 객관적으로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지켜보았으므로, 더 이상 불복을 할 수 없었다.

 

끝으로 맹순 오빠는 세 사람에게 각자의 소감과 의견을 진술하도록 했다. 최후진술이므로 아주 간단하게 솔직한 의견을 말하도록 요구했다. 이때 맹순 오빠의 표정은 정말 진지하고 엄숙했다. 대법원장이 대법원 대법정에서,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하는 것보다 더 엄중한 모습이었다. 먼저 <구강패>가 말했다.

 

정말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어려운 것이었는데, 존경하는 심판님께서 공정하고 신속하게 저의 억울함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주신 것을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맹순 씨의 아이 아빠가 누구인지, 힘드시더라도 끝까지 파헤쳐서 세상에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음에는 <원졸개>가 작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 “저는 이번 사건 조사과정을 겪으면서, 제가 그동안 세상을 너무 모르는 상태에서 잘못 살아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물론 저는 맹순 씨와 한번 한 사실은 있습니다만은, 한번 했다는 사실이 이렇게 큰 파장을 가져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여자와 성관계는 하지 않을 것임을 맹세합니다.”

 

끝으로 맹순이 차례가 되었다.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맹순 오빠는 세 사람 모두 자신의 판정결과에 100% 승복하는 것을 보고 스스로 자신이 대견스러웠는지 연한 미소를 띠었다. “여러분들, 그동안 고생 많이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정말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는 너무 많은 위선과 가식이 판을 치고 있어요. 인간은 모두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우리 모두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큰 죄의식 없이 밖에서 다른 여자 배 위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그 여자로 하여금 원치 않는 임신을 시킬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이런 경우, 그 남자를 돌로 쳐서 죽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신약 시대이기 때문에 그 남자를 죽이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두 분은 절대로 밖에서 여자를 공짜로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맹순이도 남자관계를 할 때에는 헌법에서 보장되고 있는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 여부에 관해 명확한 의사표시를 하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구강패><원졸개>는 맹순 오빠를 존경했다. ‘저 분은 아마 대법관 출신인 모양이야. 우리에게 신분을 밝히지 않아서 그렇지!’ 네 사람은 복잡하고 골치 아픈 사건이 해결되었기 때문에 같이 술을 마시러 갔다.

 

소주와 맥주를 섞은 <쏘맥폭탄주>를 제조해서 마시기로 했다. 폭탄제조도 맹순 오빠가 손수 했다. 마트에서 <수박>을 네통 사오라고 했다. 수박의 상단을 절개해서 속을 일부 파낸 다음, 그 속에 소주와 맥주를 배합하여 부었다.

 

그리고 수박의 하단에 구멍을 뚫어 그 구멍으로 술이 나오게 했다. 막걸리잔을 그 구멍에 대고 술을 받아 다시 맥주잔으로 옮겼다. 네 사람은 이렇게 제조한 폭탄주를 맥주잔으로 1인당 각자 20잔씩 마시도록 했다. <2020220>이었기 때문에 날자를 고려해서 행운의 숫자 <20>에 맞추도록 한 것이었다. 역시 맹순 오빠의 사려 깊은 배려가 우러나오고 있었다.

 

<구강패>가 건의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희야 괜찮지만, 맹순 씨는 현재 임신 중인데, 폭탄주 20잔은 너무 무리 아닐까요? 맹순 씨가 뱃속의 아이를 출산하게 되면, 그 아이가 나중에 검찰총장이나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이 말에 맹순 오빠는 잠시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할 수 없어요. 일단 법으로 정했으면 누구든 예외를 둘 수 없어요. 그리고 아직은 맹순이가 꼭 아이를 낳는다는 것도 아니고, 술 마시고 낳은 아이도 잘 된 경우는 역사상 수없이 많아요. 그러니까 맹순이도 참고 마셔야 한다.”

 

네 사람은 각자 폭탄주 20잔씩을 마셨다. 네 사람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갑자기 어떤 여자 세 사람이 들어와서 맹순의 머리카락을 끌어당기고 집단으로 폭행을 하기 시작했다.

 

이 나쁜 OO같은 X! 네가 내 남편에게 성병을 옮겨놓고, 돈을 천만원 사기 쳤다면서?” 맹순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당하고 있었다. <구강패>가 술에 취했지만, 갑자기 몸을 날렸다. 세 명의 여자를 양발로 걷어차서 모두 고꾸라뜨렸다.

 

술집 손님들은 모두 놀랐다. 여자들이 남편 문제로 싸우는 거야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술에 취한 남자가 순식간에 여자 세명을 날려버리는 장면은 정말 놀라웠다. 태권도 100단이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소림사에서 무술을 50년 한 사람 아니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가 상대 여자 세명은 모두 레슬링선수인 것처럼 체중이 120킬로그램 이상이었고, 살이 많이 쪄서 목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머리는 어깨에 붙어있었다.

 

여자들은 곁에서 부축하는 사람없이 혼자서 술집안으로 걸어들어온 것이 기적처럼 보였는데, 어떻게 <구강패>가 한방에 세명의 거인을 쓰러뜨렸는지 경탄했다.

 

어떤 사진작가는 그 상황을 순간에 카메라에 포착하지 못한 것을 너무 안타깝게 생각했다. 뒤늦게 차에서 카메라를 꺼내가지고 왔지만, 그때는 상황이 종료되어 그 세 여자는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면서 도망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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