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욕망 (1)

 

사랑은 모든 것을 움직일 수 있다. 사랑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사랑처럼 위대한 힘을 가진 존재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을 동경하며 소중한 가치로 결코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욕망은 삶의 원동력이다. 욕망의 방향은 사방으로 뻗쳐 있으며 무한궤도를 달리고 있다. 생을 마칠 때까지 사람들은 욕망의 노예가 되어 지배를 받으며 굴종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랑과 욕망 (2)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에서 욕망에 따르는 것인데 종국에 가서는 수단이었던 욕망이 목적 자체가 되고, 수단에 불과한 욕망이 주인을 파멸시키고 만다. 사람들은 누구나 날 때부터 욕망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 무엇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욕심 때문에 태어날 때 두 주먹을 꼭 쥐고 새끼 사자가 포효하듯이 앙~하고 힘찬 울음을 떠뜨린다. 그 울움소리를 듣고 사람들은 그 아이가 세상에서 제것을 제대로 찾아먹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 예측한다.

 

사랑과 욕망 (3)

 

제대로 울지도 않고 주먹도 편채로 세상에 나오면 힘든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을 하게 된다. 그 어린아이가 가졌던 본능적인 욕심은 지능이 더해지면서 폭넓은 욕망으로 바뀌게 되며, 점차 발전하면서 탐욕이 된다.

 

이처럼 욕망은 기본적인 동물적 본능을 바탕으로 지식과 지혜로 인해 시야가 넓어지면서 체계적인 단계로 나아간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터득하는 것이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괴물이다.

 

사랑과 욕망 (4)

 

삶을 의미있게 만들어주는 추진력이 되면서도, 삶을 송두리째 뿌리 뽑아버리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랑은 전혀 다르다. 태어날 때 어린아이는 단지 욕망만을 가지고 있을 뿐 사랑을 알지 못한다. 사랑은 자연적으로 부여되는 선물이 아니다.

 

그 사랑은 누군가가 가르쳐 주어야 하며, 경험을 통해 학습하지 않으면 얻어지지 않는다.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젖을 먹는 것에서부터 사랑을 배운다. 어머니가 몸으로 실천하는 사랑을 보고 배우며, 자신의 것으로 머리 속에 저장해 놓는다.

 

사랑과 욕망 (5)

 

시간이 가면서 그 아이는 사랑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서 이성과의 사랑도 알게 되고, 세상의 많은 동물과 식물, 추상적인 가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과 열정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포용력도 갖추게 된다.

 

사랑의 본질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태생적인 환경으로 인해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는 불행하게도 사랑을 모르며 사랑을 배우지 못하게 된다.

 

사랑과 욕망 (6)

 

사랑이란 매우 특수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장과정에서 서서히 단계적으로 체험하지 않으면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다. 어릴 때의 사랑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집중적으로 사랑의 특강을 들었다고 해서 사랑이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장자는 제자들에게 돈과 명예를 쫓더라도 거기에 그치거나 머물지 말라. 계속해서 진리를 향해 더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공부를 해서 높은 관직에 올랐거나, 사업을 해서 돈을 벌었다고 교만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사랑과 욕망 (7)

 

많은 사람들이 남 보다 조금 더 배우고, 조금 높은 위치에 올라갔다고, 돈이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잘난 체 하며, 스스로의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지 않고 말초적인 향락에 빠지거나 명품만을 추구하면서 물질적 충족만을 얻으려고 한다.

 

몇십억원이나 하는 고급 주택에 살고, 고급 외제차에 고급 명품과 보석 등으로 치장하면서도 속은 공허하고, 황폐한 상태에서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돈의 노예가 되어, 끊임 없이 더 돈을 모아 부의 종이 되어 굴종하고 있다.

 

사랑과 욕망 (8)

 

돈을 잃으면 자신의 목숨도 잃게 되는 지경이 된다. 자식들이 가장 중요한 우상이 되어 일류 대학에 가야 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야 하고, 출세를 하지 않으면 심한 패배감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

 

조직에서 출세를 하지 못하면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장자는 그런 사람들의 그런 자족감과 교만함을 매미나 뱁새의 생각과 다름 없다고 평가했다.

 

사랑과 욕망 (9)

 

장자의 지론은 사람은 어느 위치에 있던지간에 더욱 부지런히 힘쓰고, 무엇이 잘 안 된다고 해서 낙담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분수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현상에 대해 일희일비할 일도 아니다.

 

그래서 장자는, “至人은 무엇에도 기댈 일이 없고, 神人은 공을 내세울 일이 없으며, 聖人은 이름을 내세울 일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살면서 황폐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귀담아 들을 말이다.

 

사랑과 욕망 (10)

 

행욕경(行欲經)에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세상에는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의 종류가 열 가지가 있다.

 

그중 최하 수준은, 법에 맞지 않고 도의에 어긋나게 재물을 구한 뒤에는 스스로도 안온하지 않고, 부모 처자 노비 하인들도 안온하게 하지 않으며, 하늘에 올라 즐거움을 얻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아 하늘에 나서 장수하게 하는 사문과 범지도 공양하지 않는 경우다. 쉽게 풀어보면 돈을 벌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번 다음에는 주변 사람들을 위해 전혀 쓰지 않고 혼자만 쌓아두고 있다가 죽는 경우가 가장 악한 일이라는 뜻이다.

 

사랑과 욕망 (11)

 

가장 높고 묘한 수준은, 법과 도의에 맞게 재물을 구한 뒤에 능히 스스로도 안온하고 또 부모 처자 노비 하인들도 안온하게 하며, 하늘에 올라 즐거움을 얻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아 하늘에 나서 장수하게 하는 사문과 범지도 공양하는 것이다.

 

재물을 얻은 뒤에도 물들지 않고 집착하지 않아 묶이지 않고 얽매이지 않으며, 얽매이지 않은 뒤에는 그 물들어 집착함의 재환을 보아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고서 사용하는 경우이다.

 

사랑과 욕망 (12)

 

이것은 법과 도덕에 어긋남이 없이 열심히 노력해서 재물을 얻은 다음에 부모 형제들과 나누어 쓰고, 좋은 일을 위해 널리 베풀게 되면 복도 짓는 것이 되면서 덕이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가? 과연 돈을 벌고 출세하는 데 정당한 과정을 밟고 있는가? 아니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법과 도덕을 무시하고 욕심을 부리면서 부당한 부를 축적하고 남을 짓밟고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랑과 욕망 (13)

 

부와 명예를 얻은 다음, 그것이 오로지 자신의 노력만에 의한 결과라고 잘못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을 돌보지 않고, 죽을 때까지 혼자, 그리고 가족들과 잘 먹고 잘 살려고 탐욕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것이 악을 쌓고 덕을 베풀지 못하며 결국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사랑과 욕망 (14)

 

사랑과 욕망의 조화는 인생에 있어서 살아가는 목적을 분명히 함으로써 목적이 이끄는 삶의 방향을 정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짧은 시간, 제한된 에너지를 가지고 그야말로 인간답게,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능력도 갖추고 그로 인해 얻어지는 과실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면서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게 최선의 가치고, 삶의 의미라고 믿는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린도전서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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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성의 경계 (1)

 

사랑은 상당 부분 성적인 본능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성적인 외설스러움은 초기 단계에서 사랑을 이끌어가는 주요한 동인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이 갈수록 후퇴한다. 성적인 본능은 인간을 고독하게 만든다.

 

성적으로 황홀한 환희를 맛볼 수는 있지만, 그것은 매우 단편적이며 비영속적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성적으로 구성하려는 시도는 무모하다. 사랑은 90% 이상을 정신적인 감성으로 채워야 하는 특수성이 있다. 그래야 순수와 열정을 모두 담을 수 있다.

 

사랑과 성의 경계 (2)

 

사랑에는 최소한의 나르시시즘이 존재한다. 자신과 상대방의 나르시시즘이 무시되면 사랑은 실종된다. 사랑은 심리적인 치사함이 바탕에 깔려있다. 인간성을 지나치게 초월해서 신성에 근접할수록 사랑은 형해화될 우려가 있다.

 

롤랑 바르트도 이런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사랑에 있어서 외설적인 면은 결코 긍정되기 어렵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

 

사랑과 성의 경계 (3)

 

<사랑의 외설스러움은 극단적인 것이다. 그것을 수용하여 거기에 위반의 강력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주체의 고독은 모든 장식이 제거되어 소심하다. 이런 종류의 외설은 바타유와 같은 작가도 글로 옮기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의 텍스트는 작은 나르시시즘과 심리적인 치사함으로 만들어진다. 그것은 위대한 것과는 거리가 먼, 또는 그 위대함은 어떤 위대함에도 합류할 수 없는, 천박한 물질주의에 조차도 합류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외설적인 것이 진정으로 긍정, 언어의 경계인 아멘과 일치될 수 있는 것은 바로 불가능의 순간이다.> -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지음, 김희영 옮김, 258쪽에서 -

 

사랑과 성의 경계 (4)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지나치게 성적인 면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오직 밤의 문화다. 어두울 때, 어두운 곳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밤이라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것도 은밀하게, 타인의 부재 속에서만 행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육체적인 사랑이다. 하지만 그 사랑의 맡바탕에는 반드시 이성적인 영혼의 교감, 영혼의 부분적 합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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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변하는 것인가? (1)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사랑은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존재하는 계속적인 정신작용이다. 뿐만 아니라 몸으로, 감성으로 순간 순간 느끼는 육체적 반응이다.

 

사랑은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어느 날 갑자기 형성되어 존재하기 시작한다. 그런 사랑은 끊임 없이 변화하며 성장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

 

사랑은 변하는 것인가? (2)

 

인간의 여러 가지 행위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사랑이다. 사랑이라고 부르는 감정’, 그리고 관계는 매우 복잡하고 애매모호한 개념이다. 아무도 사랑을 보거나 만질 수 없다.

 

지금까지 사랑이라는 실체에 대해 모든 사람이 만족할만한 정의를 얻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 무언지, 사랑을 할 때 무엇을 느낄 수 있는지, 때론 사랑이 죽음을 초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니 알려고 노력해 왔다.

 

사랑은 변하는 것인가? (3)

 

사랑이라는 현상에서 가장 난해한 부분은, 사랑의 추상성에 있다. 너무 추상적이어서 내가 사랑하고 있는 것인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인지 조차 구별하기 어렵다.

 

자신이 정신적으로 사랑하는 것인지, 육체적으로 사랑에 빠진 것인지 역시 불분명하다. 좋아하는 감정이 사랑인지, 동경인지, 욕정인지 역시 경계가 애매할 때가 많다.

 

사랑은 변하는 것인가? (4)

 

사랑의 가변성(可變性)은 사랑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인식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사랑의 강도와 열기는 매 시간 시간 다르다. 어느 때도 동일한 수준을 유지하지 않는다. 때로 미치도록 만들고, 때로는 단지 편안한 상태로, 경우에 따라서는 의식주와 같은 일상의 한 부분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사랑은 변하는 것인가? (5)

 

더군다나 사랑에는 변질되는 속성이 있다. 원인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사랑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나기고 하고, 뜨겁던 고열의 철물이 마침내 딱딱한 쇠로 굳어지듯이 사랑의 본질을 상실하기도 한다.

 

사랑이 식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언제 사랑을 했었던 것인지 기억 속에 꺼내 음미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사랑은 변하는 것인가? (6)

 

이런 사랑의 가변성은 그 어느 현상보다도, 그 어떤 인간의 인식과 행동보다도 특이하며 사랑의 개념을 정의하는 데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되는 중요한 특성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사랑이 어려운 것은, 사랑의 주체이며 객체인 사람이라는 존재가 동물과 달리 신()을 지향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변하는 것인가? (7)

 

사람은 결코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신과 같이 완벽을 추구하면서도 몸은 동물과 같은 차원에 머물고 있는 중간 존재이다. 밀림 속의 동물과 같이 약육강식의 살벌한 환경 속에서 자신을 보호해야 하고, 종족을 보존해야 한다.

 

매우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그럼으로써 항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냥 동물처럼 먹고 자고 번식하는 것으로 만족하면 편할텐 데, 그러지 못하는 데서 인간의 비극은 출발한다.

 

사랑은 변하는 것인가? (8)

 

게다가 정신적으로 보람 있는 일, 미를 추구하고,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의식과 정신 때문에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게 만드는 속성 때문에 인간은 동물과 다른 차원에서 사랑을 이루고자 추구하게 된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사랑을 정신적으로 감성적으로 인식하며, 또한 신과는 달리 순수한 정신세계의 문제가 아닌 육체의 결합을 전제로 그 위에 정신적 교감을 추구하려는 아주 어려운 과제로 풀어나가려고 한다.

 

사랑은 변하는 것인가? (9)

 

동물의 애정도 아니고, 신의 정신적 사랑도 아닌, 인간만의 정신과 육체의 결합, 두 가지에서 좋은 점만을 추출해서 이상형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종국에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모든 면에서 불충분한 모자이크에 불과한 성과를 내고 마는 것이다. 그 나중의 현상에 인간은 실망하고, 분노하며 대부분 사랑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사랑에서 떠나간다.

 

사랑은 변하는 것인가? (10)

 

극단의 경우는 실패한 사랑의 미완성작품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던지기도 했다. 일부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사랑탑이 신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오판하고 교만한 상태에서 세상 사람들 앞으로 나가 완벽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그들 역시 늙고 병들어 가면서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사랑은 변하는 것인가? (11)

 

일부 사람들이 그들의 완벽했던 사랑의 일면을 소설이나, 영화, 오페라, 음악, 미술 등으로 표현해서 전하고 있다. 그러나 후세 사람들은 완벽했다는 그들의 사랑의 완전성과 불변성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랑은 변하는 것인가? (12)

 

인간은 결코 완벽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어디엔가 그런 사랑은 존재한다고 믿고 있으며, 다만 이루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은 하기 어려워도 누군가는 할 수 있는 인간의 가능한 영역내의 문제라고 믿고 있다.

 

그러면서 거기에 이르지 못하는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고, 원망한다. 완전한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전제된다. 신과 같은 완전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신과 같은 완전한 믿음을 줄 수 있어야 가능하다.

 

사랑은 변하는 것인가? (13)

 

그러면 과연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랑에 대한 명확한 인식, 사랑의 실천방법, 사랑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을이 깊어가는 시간이다. 단풍나무를 보면서 조용한 사색에 빠져본다. 단풍잎 하나를 따서 손에 넣는다.

 

사랑은 변하는 것인가? (14)

 

단풍의 아름다운 색깔을 보면서, 나는 단풍의 따뜻한 체온을 느껴보고 싶었다. 단풍에게서 사랑의 향기를 맡아보고 싶었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단 한 사람, 나를 사랑하는 단 한 사람과 나란히 앉아서 단풍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나 단풍이 빨갛게 물드는 것은, 성숙과 함께 변화라는 의미에서 내 마음은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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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심(變心)의 사랑학 (1)

 

사랑했던 마음이 식거나 없어지는 것을 변심이라고 한다. 변심(變心)이란 사랑의 상태 또는 관계가 변화하는 심리적 변화를 의미한다. 사람이란 어느 경우에나 변할 수 있고,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

 

변하지 않는 존재란 없다. 현대사회에 있어서는 오히려 적극적인 변화를 중요한 장점과 미덕으로 본다. 변하지 않고 구태의연하게 과거 상태를 유지하려고 고집하는 사람을 보수적이라고 한다.

 

변심(變心)의 사랑학 (2)

 

그만큼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변화와 개혁, 새로운 적응을 위한 노력은 창의적이며 적극적인 현대인의 새로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에 있어서는 다르다.

 

사랑은 사회적인 활동이나 비지니스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신뢰를 바탕으로 무한책임을 전제로 하는 소중한 인간관계이며, 도덕과 윤리의 문제다.

 

변심(變心)의 사랑학 (3)

 

한시적인 관계도 아니고, 죽을 때까지 일심동체가 되어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고 모든 것을 공유하겠다는 약속을 기초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같은 사랑의 약속은 출발부터 신중해야 하고, 지킬 수 있는 상태에서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일단 맺은 사랑의 언약은 끝까지 지켜야 한다. 세상이 무너져도 이런 약속은 지켜야 한다.

 

변심(變心)의 사랑학 (4)

 

생을 마칠 때까지 서로가 맺은 사랑의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 실제로 지킨 사람들은 주변으로부터 칭송을 받는다. 명예로운 사랑의 작위를 수여받는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연인들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 한쪽이 이러한 사랑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관계가 변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사랑이 변하는 이유는 그야말로 수만 가지가 있어 획일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 변했을 때 그 충격은 대단히 크다. 사랑의 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 충격도 크다.

 

변심(變心)의 사랑학 (5)

 

그래서 변한 사랑에 대해 비이성적인 대응을 보인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변했을 때, 상대방은 억울하게 당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버림받을 합당한 이유가 별로 없는데, 상대방이 아무런 이유 없이 변해 버렸기 때문에 승복을 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억울한 상대방은 사랑의 배신에 대해 복수를 한다. 상대방을 살해하는 것은 극단의 경우다. 그 정도까지는 안 돼도 상대방을 괴롭히려는 노력을 한다. 자신을 버리고 좋은 사람을 만나 잘 사는 것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는 심사다.

 

변심(變心)의 사랑학 (6)

 

나를 버리고 가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변심한 애인을 그냥 놔둘 수 없기에 새로 만난 이성에게 자신들의 과거를 폭로한다거나, 결혼식장에 가서 난동을 부리기도 한다. 심지어는 애인의 나체사진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한다. 폭행을 하거나 협박을 한다.

 

그러나 이런 모든 행동들은 아무 의미도 없고, 그렇게 했다고 해서 돌아오는 것도 얻어지는 것도 별로 없다.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사랑이 깨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오히려 깨진 사랑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여기고 비난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변심(變心)의 사랑학 (7)

 

그러므로 변심한 사랑 때문에 또 다른 일을 벌이는 것은 부질 없는 일이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왕 변해버린 사람을 돌이킬 수 없다면 빨리 포기하고 돌아서야 한다. 굳이 해꼬지를 해서 자신의 인격만 더 추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이 약이라고 먼 훗날 생각해 보면 젊은 시절 배신 당한 일은 그렇게 고통스러워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는 악몽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변심(變心)의 사랑학 (8)

 

오히려 배신 당한 경우 상대방이 변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되새겨 보고, 그 마음을 돌이키기 위한 노력을 최대한 해보고 안 되면 결국 자신에게 모든 원인이 있음을 깨닫고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게 진정 사랑했던 사람이 가야 할 길이 아닌가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치정관련 사건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함부로 사랑을 했다가는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변심(變心)의 사랑학 (9)

 

언론에 모두 보도가 되지 않아서 그렇지 알게 모르게 남녀 간의 애정문제로 인한 사건은 많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처음부터 애정의 상대방을 선택할 때 신중해야 한다. 자신의 영혼을 담을 깨끗한 그릇인가 아닌가를 잘 살펴본 다음에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

 

변심(變心)의 사랑학 (10)

 

사랑에 있어서 사람들은 수많은 배신을 경험하게 된다.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주고, 정을 주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옮겨간다. 옛정을 헌신짝처럼 버린다. 혼자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극도의 이기심이 발동되는 것이다.

 

상대방이 별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속내다. 그런 속마음은 숨기고 공연히 트집을 잡는다. 성격이 맞지 않는다거나, 애정이 없어졌다거나 하는 식이다. 신의를 저버리는 배신은 인간의 본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변심(變心)의 사랑학 (11)

 

그러므로 사랑을 할 때 배신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처음부터 상대방의 성격이나 환경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로마의 황제 시저는 가장 믿었던 조카인 브루투스의 칼을 맞고 죽는다. 시저는 죽어가면서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다른 사람은 다 배신해도 브루투스 네가 나를 배신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말이다. 사랑의 경험이 적은 사람들은 상대방의 변심 때문에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어떤 경우에는 그런 배신감 때문에 두 번 다시 새로운 사랑을 하지 못한다.

 

변심(變心)의 사랑학 (12)

 

그러나 사랑은 시간에 따라 변하게 된다. 사랑을 하려면 많은 긴장이 필요한 데 사람은 누구나 오랜 시간 같은 강도로 긴장을 유지할 수 없다. 주기적으로 긴장을 해소가 되며 완화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환경의 변화에 우선적으로 적응하려고 노력을 하다 보면 사람의 존재와 가치는 초기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인식되고 그 중요성은 만성화되어 현저하게 떨어진다. 뿐만 아니라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상대방이 있어야 가능하다.

 

변심(變心)의 사랑학 (13)

 

이것이 사랑의 공범이론이다. 필요적 공범인 사랑은 바로 공범의 심리학적 관점에서 나타나는 역할의 분담, 책임의 공유, 내부적 관계의 불완전성 등등을 필연적으로 겪게 된다.

 

두 사람의 관계는 항상 변화될 가능성이 있고, 서로가 변하기 때문에 관계는 수시로 변경되어야 한다. 게다가 애정관계는 단순한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특수한 합일체의 관계이기 때문에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된다.

 

변심(變心)의 사랑학 (14)

 

서로의 자존심을 존중하면서 상대방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도 안 되는 특수한 관계이다. 애정관계에서 가장 위험한 적은 제3자가 그 관계에 끼어드는 것이다. 외부의 적인 제3자에 의해 애정의 성()은 갑자기 붕괴되거나 서서히 함락될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경계의 눈초리를 늦추면 안 되는데, 이런 상황이 되면 당사자는 극도의 피곤함을 느끼게 되고, 본래의 애정관계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된다. 어쨌든 애정관계가 어느 한쪽의 변화로 인해 깨어지는 경우 양 당사자의 입장은 현저한 차이를 보여준다.

 

변심(變心)의 사랑학 (15)

 

사랑학에서 이런 경우 먼저 깬 사람을 변심의 가해자로, 그 상대방을 변심의 피해자로 분류한다. 피해자는 대단한 심리적 충격을 받고 현실적인 고통을 받게 된다. 그에 비해 가해자의 입장은 다르다. 보이지 않는 사랑에 대한 책임감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그러면서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가 마음이 맞아야 하는 것이고, 시간이 가면 변할 수 있다는 논리를 고집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한다면서, 애정 없이 계속 관계를 끌고 나갈 수 없고, 그렇게 해야 나중에 서로가 후회하고 남는 것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그건 궤변은 아니다. 매우 진실에 가까운 말이지만, 그 본질은 사랑에 대한 무책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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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사랑 (1)

 

사랑처럼 힘든 일이 있을까? 정답은 없다이다. 우리가 추상적으로 꿈꾸는 사랑은 현실에서 좀처럼 찾기 어렵다. 단지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꾸며낸 이야기다.

 

그러므로 편안하게 살려면 너무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지 마라. 그냥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보통의 사랑, 그것도 오래 되지 않아 쉽게 일상으로 돌아올 사랑으로 만족하라.

 

불타는 사랑 (2)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찾아온 사랑! 그 사랑에 모든 것을 걸고 싶은 사랑! 그런 사랑에 직면하게 되면, 그 사랑에 올인하라. 비록 그 사랑 때문에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사랑하라.

 

그 사랑에 빠져라. 사랑은 불꽃이다. 화염이다. 매우 위험한 존재다. 사랑은 자신과 상대방을 불에 태워버리기도 한다. 심각한 화상을 입어 평생 고통을 받을지도 모른다.

 

불타는 사랑 (3)

 

사랑은 언어를 내포하는 불꽃이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불이 말을 하다니! 말을 하는 불은 지금의 화력이 소진하더라도 언어로 상대방을 태운다. 사랑의 약속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했기 때문에 그 말을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 그리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불타는 사랑 (4)

 

그런 약속은 바로 불꽃이 꺼진 다음에도 계속해서 엄청난 화력을 발휘한다. 사랑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사랑은 육체와 정신으로 하는 종합예술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의 에너지를 최대한 사용하여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킨다. 두 영혼의 완벽한 결합이 주는 환희와 충만감은 정말 신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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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ne with the Wind (1)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마거릿 미첼(Margaret Mitchell)이 쓴 소설이다. 남북전쟁과 전후의 재건을 배경으로 미국 남부의 귀족 사회가 붕괴해 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스칼렛은 조지아 주의 애틀랜타에 있는 큰 농장, 타라에서 태어났다. 16세 스칼렛은 애슐리를 좋아하고 있었는데, 애슬리는 스칼렛의 사촌인 멜라니와 결혼한다. 스칼렛은 애슐리의 여동생과 결혼하기로 되어 있던 멜라니의 오빠 찰스와 결혼한다.

 

Gone with the Wind (2)

 

찰스는 얼마 뒤에 전사하고 스칼렛은 아들을 낳는다. 스칼렛은 아들과 유모를 데리고 애슐리의 숙모 집에 들어가서 살게 된다. 애슐리도 전쟁에 징집되어 나간다. 스칼렛은 레트 버틀러의 도움을 받아 멜라니와 아들, 유모와 함께 타라로 피난을 간다.

 

스칼렛은 열심히 일을 해서 가족들을 부양한다. 스칼렛은 돈 때문에 프랭크 케네디라는 목재상과 재혼한다. 프랭크는 사업에 실패하고 죽는다.

 

Gone with the Wind (3)

 

스칼렛은 레트와 세 번째 결혼을 한다. 레트는 자신은 애슐리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멜라니가 죽으면서 스칼렛에게 레트를 소중히 하라는 유언을 남기자, 스칼렛도 애슐리에 대한 사랑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레트를 사랑하려고 한다.

 

그러나 레트도 이미 사랑이 식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스칼렛으로부터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스칼렛은 애슐리와 레트 두 사람을 동시에 잃게 되었지만, 다시 레트를 찾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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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힘든 여정 (1)

 

사랑을 찾아 나서는 여정에는 보이지 않는 위험이 많다. 그것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똑 같은 인격을 가지고 있는 존재,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가변적인 존재와 벌이는 게임이다.

 

사랑은 자칫 잘못하면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또한 자신도 상처를 받을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사랑의 상처는 사랑의 이면이다. 사랑을 뒤집으면 상처가 된다.

 

사랑의 힘든 여정 (2)

 

상처 때문에 사랑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상처를 두려워서 처음부터 사랑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사랑에 의존하지 않고, 사랑과 비슷한 그 무엇을 얻으려는 노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인간에게 사랑을 대체할 만한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있다면 그것은 사랑을 모방하는 감정일 뿐이다.

 

사랑의 힘든 여정 (3)

 

'사랑을 얻기 위해 한숨짓고, 얻은 다음에는 믿지 못해 조바심을 내고, 결국에는 그것을 잃어비릴까봐 스스로 피폐해지는 과민한 사랑. 어쩌면 그것은 나의 기질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의존적이고 어리석은 방식으로 타인에게 사랑을 구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결혼한 사람에게는 그런 사랑을 원하지 않을 자유가 없다. 나는 사랑의 소모를 두려워했다. 마치 광합성으로 스스로 제 먹이를 만드는 녹색 식물처럼, 햇빛을 받아들이고 물을 길어올려 자기 안에서 스스로 먹이를 만드는 사랑을 원했다.

 

내 몸속에서 혼자 사랑이라는 먹이를 만들고 그것을 먹으며 생존해가기를 말이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황량한 겨울 들판을 헤매며 타인을 찾아 울부짖고 싶지는 않았다.’(은희경 장편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문학동네, 268쪽에서).

 

사랑의 힘든 여정 (4)

 

사랑이라는 존재 때문에 슬퍼하는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예견된 과정일 수 있다. 은희경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사랑은 참 묘하다. 처음에는 사랑을 얻기 위해 무한 노력을 하면서, 얻지 못할까 봐 조바심을 내고, 애걸복걸한다.

 

그리고 마침내 어렵게 얻은 사랑에 대해 혼자 불신, 의심의 강을 건넌다. 그건 사랑도 아니다. 상대방을 붙잡지 못해서 혼자 깊어만 가는 불신의 강물은 넘쳐서 끝내 바다 끝까지 간다. 결국 사랑의 상실로 끝나는 여정에는 늘 나그네와 같은 회한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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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y to hate (1)

 

사랑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는 것도 큰 고통이지만, 미워하는 사람을 보아야 하는 것은 더 큰 고통이다. 이게 인생이다. 다른 사람이 미워질 때가 있다. 미움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미움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경우에는 미워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연구해야 한다. ‘무조건 미워하지 마라.’ ‘원수도 사랑하라.’ ‘미워하면 자신만 손해다.’ 이런 이야기는 인간이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꼭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것만도 아니다.

 

way to hate (2)

 

미워하는 법이란, 우선 미워하되 자신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는 것이 첫 번째 법칙이다. 미움은 사랑과 다르다. 사랑은 평화지만, 미움은 전쟁이다. 그래서 사랑할 때와는 마음가짐이 전혀 달라야 한다. 상대방과 정식적인 싸움을 하는 것이므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단단하게 먹어야 한다. 그래야 지지 않는다.

 

way to hate (3)

 

둘째, 미워하는 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미움이 정당한 것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것은 뒤집어 말하면, 상대방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고의인지 과실인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잘못이 그 사람의 본질적인 악성이나 그릇된 성격에서 비롯된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정말 미워해야 할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way to hate (4)

 

셋째, 미워할 때는 아주 철저하게 미워해야 한다. 짧은 시간에 관계를 끊고 확실하게 미워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미움을 가급적 표출하는 것이 좋다. 속으로 앓고, 혼자 미움을 누르고 있으면 홧병이 나고 혼자 바보가 된다. 그리고 미움은 가급적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하고 벗어나야 한다.

 

way to hate (5)

 

넷째, 상대방이 잘못한 것으로 인해 자신에게 정신적 물질적 피해가 있으면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이 좋다. 법적인 조치를 취하거나 상대방을 응징하는 것을 철저하게 하는 것이 좋다.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way to hate (6)

 

다섯째, 미워할 때 자신의 건강과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상대방을 미워하다가 자신이 건강을 해치고, 할 일을 못해서는 안 된다.

 

여섯째, 상대방을 완전히 무시하라. 상대방이 수준이 낮거나, 야비한 경우, 저질이라고 판단되면 특별한 손해가 없는 경우에는 빨리 관계를 끊고 더 이상 상대하지 마라.

 

way to hate (7)

 

일곱째, 미움을 통해 강해지는 훈련을 한다고 생각하고 세상 사는 좋은 경험을 하나 더 얻는다고 편하게 생각하라. 여덟째, 가급적 빠른 시간에 미움에서 벗어나고, 더 이상 나쁜 사건, 상대방 자체에 대해 기억에서 지워버려라.

 

way to hate (8)

 

아홉째, 미워했던 경험을 통해 나쁜 사람, 배신할 사람, 수준 낮은 사람을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우고, 더 이상 미움의 대상이 될 사람은 처음부터 깊은 관계를 맺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열째, 이런 훈련을 통해 수양도 되고, 인격적으로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단계에 올라라. 남을 미워하지 않도록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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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망초 사랑 (1)

 

나는 너를 사랑한다. 하지만 우리 사랑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나는 너를 보낸다.’ 가슴 아프지만, 너의 행복을 위해 나는 떠난다. 그리고 너를 보낸다. 부디 행복해라. 나를 잊고 행복해라.

 

팬텀은 천재적인 음악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얼굴이 흉해서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 못했다.

 

물망초 사랑 (2)

 

팬텀은 파리의 오페라 극장에서 유령 행세를 하면서 무명 가수인 크리스틴을 사랑했다. 팬텀은 무명가수인 크리스틴을 가르쳐 오페라의 주인공이 되게 만들었다.

 

그런데 크리스틴은 라울과 약혼을 한다. 팬텀은 크리스틴을 납치하여 데리고 있으면서 자신과 결혼할 것을 강요한다.

 

물망초 사랑 (3)

 

라울은 크리스틴을 구하려 왔다가 유령의 덫에 걸려 죽음의 위기에 선다. 팬텀은 이러한 상황에서 크리스틴에게 자신과 결혼할 것인지, 아니면 약혼자인 라울을 죽도록 만들 것인지 선택하도록 강요한다.

 

크리스틴은 라울을 살려주면 팬텀과 결혼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오페라의 유령인 팬텀은 크리스틴과 라울이 사랑할 수 있도록 놓아준다. 그리고 팬텀 자신도 유령처럼 사라진다.

 

물망초 사랑 (4)

 

오페라의 유령1986년 런던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이룰 수 없는 가슴 아픈 사랑을 그린 뮤지컬이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른 사랑이 생기면 그 사랑까지도 아껴주어야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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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인 사랑의 가치 (1)

 

인간은 동물이 아니다. 육체적인 정욕을 정신적인 사랑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물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적인 사랑을 맛보지 못한 채 삭막한 존재로 전락한다.

 

()은 사랑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사랑이 없는 성관계는 그야말로 단세포적인, 매우 동물적인 생리작용에 불과하다. 남는 것은 순간적인 쾌락뿐, 허망함과 불쾌함이다.

 

정신적인 사랑의 가치 (2)

 

더군다나 상대는 자존심이 짓밟히고, 성에 대한 거부감과 트라우마를 겪는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든, 어떤 상황이든, 절대로 사랑의 과정을 생략한 채, 성관계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기초공사를 하지 않고, 집을 지으면 언젠가 무너져, 그 무게에 짓눌려 인생이 망가질 위험이 있다. 사랑은 언제나 진지해야 한다. 사랑은 곧 생명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사랑의 가치 (3)

 

사랑이 임신의 조건과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생명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랑은 장난이 아니다. 사랑을 장난으로 여기는 사람은 그 사랑으로 인해 보복을 당한다.

 

사랑이 결코 장난이 아닌 상대는 자신이 농락을 당한 것으로 생각하는 순간, 자신의 존재가 부정되었기 때문에, 상대를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정신적인 사랑의 가치 (4)

 

사랑은 상대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해야 얻을 수 있는 쌍무성(雙務性)을 갖는다. 두 사람이 서로 대등한 권리와 의무를 공유하면서, 공동의 선, 공동의 이익을 위해 몸과 마음을 나누는 육체적, 정신적 행위이다.

 

사랑을 규제하는 법과 제도도 중요하지만, 사랑은 인간의 본성에 기초한 자연법(自然法)에 근거해서 규율된다. 사랑을 하지 않고, 성관계를 하지 않아도 죽지는 않는다. 동물과 달리, 인간에게는 성욕을 억제할 수 있는 도덕률, 규범력이 주어져 있다.

 

정신적인 사랑의 가치 (5)

 

게다가 동물이 모르는 자위법을 터득하고 있다. 오늘부터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고, 동물적인 욕정을 스스로 통제하라. 그리고 아름다운 정신적인 사랑을 추구하라.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그냥 혼자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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