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 사랑글을 그만 써야 할까? (1)

 

페친 한 분께서 이런 글을 올렸다. “변호사님, 사랑 얘기 그만 하시면 안 될까요?”

 

나는 그 페친 분의 의도를 잘 안다. 내가 페이스북에 너무 많은 사랑에 관한 글을 올리고 있으니까, 우선 싫증도 날 것이다.

 

그리고 나이 먹은 변호사가 매일 사랑글을 올리니, 변호사로서 품위가 떨어질 것을 염려하는 까닭이다.

 

뿐만 아니라, 내용에 따라서는 일부 사람들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글도 있기 때문에, 공연히 적을 만들지 말라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페북 사랑글을 그만 써야 할까? (2)

 

나는 그 분의 지적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분 뿐 아니라 다른 페친분들도 상당 수, 내가 사랑글을 많이 쓰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비판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나는 사랑에 관한 글을 많이 써왔다. 2005년부터 써왔으니까, 벌써 16년째다. 내 다움 블로그, ‘김주덕 변호사의 문화산책(옛 이름은 가을사랑이었다)’에는 시와 수필, 그리고 사랑글이 아주 많이 올려져 있다.

 

내가 사랑글을 쓰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종의 변명이다. 첫째, 내게 있어서 사랑은 매우 중요한 테마이며, 관심사다. 사랑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비중을 가지며, 심각한 과제이고,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페북 사랑글을 그만 써야 할까? (3)

 

사랑 없이 사는 사람도 많이 있다. 사랑 때문에 행복한 사람들도 많고, 반면에 사랑 때문에 사랑 때문에 불행한 사람들도 너무 많다.

 

그것이 인생이고 현실이다. 동물과 다른 점이 이 영역이다. 동물은 사랑 때문에 행복하면 행복했지, 불행한 것 같지는 않다.

 

또한 모르긴 몰라도, 동물에게는 사랑이나 교미는 아주 최소한의 행동이며, 본능일 뿐, 사랑이나 교미 때문에 심각한 고통을 받거나 심지어 생명을 끊지는 않는다.

 

페북 사랑글을 그만 써야 할까? (4)

 

인간은 전혀 다르다. 아니 인간만이 독특하다. 인간은 사랑 때문에 아프고 슬프다. 사랑은 기본적으로 아픔과 슬픔이다. 사랑은 단순히 행복만 주고, 영원한 쾌락, 쾌감, 좋은 감정만 선물하는 요술방망이가 아니다.

 

사랑은 출발부터 애간장을 녹이고, 긴장하고, 사랑을 맺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 과정에서 남녀가 정조를 바치기도 하고, 의미 없이 상실하기도 한다. 첫사랑에 실패하면서 사랑에 대한 관념이 달라지기도 한다.

 

나이 들면서 수없는 사랑을 반복하기도 하고, 아예 사랑을 포기하고 일만 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랑과 섹스를 혼동하기도 하고, 사랑을 잘못해서 성추행, 성폭력, 혼인빙자간음, 간통의 문제를 야기시키는 경우도 있다.

 

물론 여기에서 혼인빙자간음죄와 간통죄는 형벌의 대상으로서는 폐지되었다. 민법상은 불법해위에 해당한다.

 

페북 사랑글을 그만 써야 할까? (5)

 

이런 사람들은 사랑 때문에, 재판을 받기도 하고, 손해배상을 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은 사랑이나 섹스 문제로 망신을 당하고, 공직에서 물러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성의 문제로 감방에서 동물처럼 지내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깨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혼율도 매우 높다. 꽃뱀이나 제비족이 활발하게 활개치고 있는 나라도 아마 우리나라가 그 어느 나라 못지 않을 것이다.

 

성매매는 아무리 단속해도 멈추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한 조건 없는 만남 등을 통해서 남녀가 성관계를 하고 돈을 주고 받는 행위까지 무조건 성매매로 일률적으로 범죄행위로 단정하는 것도 문제는 문제다.

 

도대체 개인 간의 성행위를 법에서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광범위하게 형사처벌을 하려는 것일까?

 

페북 사랑글을 그만 써야 할까? (6)

 

성의 문제는 비단 당사자 간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의 문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젊은 사람들의 임신과 낙태도 심각한 문제다.

 

법률상담을 해보면, 젊은 사람들이 데이트 하다가 임신이 되면 남자가 연락을 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여자가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여자는 낙태하려고 하는데, 남자는 수술비도 주지 않고, 나 몰라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는 상담이다. 혼인빙자간음죄가 폐지되었으니, 물론 형사로 어떻게 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여자가 아이를 낳아서 남자의 친생자로 공부에 올리고 양육비를 청구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페북 사랑글을 그만 써야 할까? (7)

 

내가 쓰는 사랑에 관한 글은 이러한 사랑의 양면성에 대해 한번쯤 생각을 해보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나는 음담패설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내가 직접 경험한 것과 수많은 사건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을 녹여서 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크리스찬들은 내가 인간의 사랑의 글을 쓰는 것을 종교적인 차원에서 비판하기도 한다. 사랑은 성스러워야 하고, 사랑의 일탈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다.

 

페북 사랑글을 그만 써야 할까? (8)

 

하지만 나도 크리스찬이다. 우리들의 삶이 100% 신앙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은 물로 있겠지만, 내가 쓰는 글은 그와 같이 아주 경건한 신앙인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글이다.

 

아무튼 일부 페친들의 의견을 수용해서 앞으로는 사랑글을 쓸 때 보다 주의를 기울이고, 가급적 사랑글을 적게 쓰려고 한다. 대신 법률 이야기를 많이 쓸 생각이다.

 

사랑을 배신하는 남자의 심리(1)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여자를 농락한 남자가 사랑을 배신하고 다른 여자와 잘 살고 있다. 배신 당한 여자는 큰 상처를 입고 삶에 자신을 잃은 채 절망에 빠져있다. 여자는 법으로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어떤 복수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일년 후에 커다란 사기를 당해 사업이 망하고 거지가 되었다. 이런 경우 이 남자가 망한 결과와 여자를 배신한 행위와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 것일까?

 

사랑을 배신하는 남자의 심리(2)

 

법에서 논의하고 있는 조건과 결과 사이의 법률적 인과관계를 따지는 법학에서는 물론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남자가 아무런 죄 없는 여자를 특별한 이유 없이 배신하고 상처를 주는 행위가 조건이 되어 남자의 사업이 망하고, 신용불량자가 되었다는 결과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권선징악(勸善懲惡) 이론을 도입하기도 어렵다.

 

사랑을 배신하는 남자의 심리(3)

 

권선징악이라는 말은 노나라 성공 시대에 쓰여진, ‘좌전(左傳) 성공(成公) 14에 나오는 것으로서, 도덕적으로 악행은 징계하고 선행을 권장한다는 의미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세 중동지방에서는 여자가 남자를 저주하기 위해 무속인을 동원해서 남자의 상을 딴 볏집으로 형상을 만들어놓고 여러 군데 바늘을 꽃은 다음 태양이 그림자 없이 그 형상 위를 비추면 남자는 그 시간 즉사하였다고 한다.

 

사랑을 배신하는 남자의 심리(4)

 

이처럼 남에게 원한을 살 일을 해서 끊임없이 저주와 원망을 받으면 어떤 불행한 일을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주술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남에게 나쁜 일을 계속하는 사람은 살아 생전에 큰 화를 당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을 이유 없이 배신하고 상처를 주는 일은 가급적 해서는 안 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어느 날 저주로 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모순 때문에 존재한다 (1)

 

사랑에는 언제나 대상이 존재한다. 그 대상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 사랑의 본질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누구나 사랑할 때, 상대방의 정확한 내면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방이 의도적으로 많은 것을 감추거나 분식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 이미 상대방에 대해 좋은 선입관을 가지고 그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정확한 인식과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랑은 모순 때문에 존재한다 (2)

 

이것이 바로 사랑의 모순이며, 사랑이 일반 거래와 다른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대방에 대한 파악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나중에 많은 불행이 초래된다. 롤랑 바르트도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나는 이런 모순에 사로잡힌다. 나는 그 사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또 그에게 그 사실을 의기양양하게 시위한다(“난 당신을 잘 알아요 . 나만큼 당신을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거요!”). 그러면서도 나는 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도, 찾아낼 수도, 다룰 수도 없다. 나는 명백한 사실에 부딪히게 된다. 나는 그 사람을 열어젖혀 그의 근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수수께끼를 풀어헤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는 어디서 온 사람일까? 그는 누구일까? 나는 기진맥진해진다. 나는 그것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지음, 김희영 옮김, 195쪽에서-

 

사랑은 모순 때문에 존재한다 (3)

 

사랑할 때 우리는 착각을 한다. 상대방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구체적으로 그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면 별로 아는 것이 없다. 그의 진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통스럽다. 그것이 사랑의 모순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현재 내가 알고 있는 그의 모습에 그냥 만족하면 된다. 그것을 다시 왜곡하지 마라. 상대방의 진실한 모습을, 완벽한 존재의 모습을 찾아내려고 하지 마라. 자신의 눈에 비친 그의 현재의 모습이 그의 존재의 그림자라고 생각하라.

 

사랑은 모순 때문에 존재한다 (4)

 

영희가 끝까지 헤어지지 않겠다고 버티면 철수가 영희를 버리기는 쉽지 않다. 부인과 이혼하지 않고, 관계가 계속될 소지도 많다. 처음에만 시끄럽다가 부인도 지치고, 현실적으로 타협해서 관계가 묵인되는 경우도 많다.

 

철수는 결국 아내와 애인 양쪽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된다. 많은 여자들이 유부남을 놓지 않고 붙잡고 매달려 이렇게 되는 수도 많다. 특히 돈이 많은 재벌의 경우에는 돈 때문에도 여자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사랑은 모순 때문에 존재한다 (5)

 

그런데 영희처럼 깨끗하게 포기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건 자존심이 아주 강한 사람들이다. 상대방과 싸우기 싫고 치사한 꼴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영희처럼 돌아설 때 돌아설 줄 안다.

 

사실 영희와 같은 입장에서 상대방 여자가 이혼해 줄 것도 아닌데 어정쩡한 상태에서 남자를 붙잡고 있어 보아야 앞이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앞날이 매우 험난해 보이고, 치사한 생각이 들 것이다.

 

사랑은 모순 때문에 존재한다 (6)

 

어떤 의미에서는 깨끗하게 일찍 끝내는 것이 옳은 판단일지 모른다. 시간이 흐르면서 영희는 철수에게 이용 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서글퍼질지 모른다.

 

그러나 철수는 결코 자신이 영희를 5년 동안 이용했다는 생각은 털끝만치도 안할 것이다. 서로가 사랑했고, 서로가 좋았다는 생각을 할 것이고, 자신도 그만큼 시간과 에너지를 사랑하는데 썼다고 주장하면서 과연 영희가 잃은 것이 무엇인가 하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게 남자와 여자의 인식 차이이고, 사회에서 보는 객관적인 인식과 주관적인 평가의 차이일 것이다.

 

사랑은 주는 것일까? (1)

 

사랑은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이다. 먹는 것과 자는 것이 인간의 중요한 본능이듯이, 성적 욕구와 애정의 욕구는 인간의 기본적이고 절대적인 본능에 속한다.

 

누구나 사랑을 한다. 아니 사랑에 빠진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두 사람 사이에 안정적인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흔들리며 불완정한 상태가 된다.

 

사랑은 주는 것일까? (2)

 

사랑이 불균형할 때 사랑은 요동치며, 두 사람은 불안하고, 심리적으로 고통을 겪는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사랑은 더욱 확고하게 굳어지기도 하고,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에서 사랑은 파괴되고 소멸하기도 한다.

 

사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랑은 과연 주는 것이냐, 아니면 받는 것이냐 하는 것이다.

 

사랑은 주는 것일까? (3)

 

사랑은 주는 걸까? 받는 걸까?” 지극히 단순한 질문 같지만, 막상 그 대답은 쉽지 않다. 사랑은 누가 주는 것도, 누가 받는 것도 아니다. 사랑을 주는 것을 확인할 수 없듯이 받는 것을 알 수도 없다.

 

사랑이란 자신의 마음을 다른 사람의 가슴에 담아두는 일이다. 혼자 있으면 외롭고 흔들리는 마음을 어딘가에 붙잡아 매어두는 것이다. 사랑에는 상대를 향하는 방향성(方向性)이 있다. 어느 한 곳을 향해 흐르는 감정이다.

 

사랑은 주는 것일까? (4)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움직이는 감정은 사랑이 아니다. 그야말로 방황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은 상대방의 가슴 속에 자신의 마음을 묻어두는 것이다. 사랑은 매우 추상적이다. 형이상학적인 일이다.

 

사랑은 한 곳에 머문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 싹을 키우고 뿌리를 내린다. 격한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고 세찬 폭풍에도 견디어 낸다. 깊은 바닷속에 닻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주는 것일까? (5)

 

사랑이 불안한 이유를 아는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사랑은 단지 마음으로만 확인된다. 그래서 겨울 내내 뜬 눈으로 지새우면서, 사랑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사랑은 주는 것일까? (6)

 

영원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하는 사람 속에서 두 마음이 뒤엉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서로가 구별할 수 없고, 떼어낼 수도 없는, 한 덩이 눈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금 그대가 찾고 있는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상대방의 가슴 속에 있지 않다. 그대의 가슴 속을 들여다 보라. 바로 그곳에 뜨겁게 숨쉬고 있는 사랑이 들어 있다.

 

사랑은 주는 것일까? (7)

 

사랑이란 주는 것이다. 사랑은 결코 받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마음처럼 뜨거운 것은 없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 거기에 모든 것을 바칠 때 사랑은 불타오른다. 불속에서 타오르는 사랑은 아주 선명해진다. 그 사랑 앞에서 모든 것은 녹아버린다.

 

사랑은 주는 것일까? (8)

 

사랑은 상대적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받아야 한다. 그래서 사랑의 확인은 절대적이다. 확인되지 않는 사랑은 일방적인 비극으로 끝난다.

 

사랑은 끊임없는 확인이 필요하다. 아침 저녁으로 확인되어야 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동안 내내 다짐되어야 한다.

 

사랑은 주는 것일까? (9)

 

사랑은 확인으로 스스로 존재되어지는 특성이 있다.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확인해 주어라. 영원히 그 확인을 계속하라.

 

렇지 않으면 사랑은 생명력을 상실한다. 낙엽처럼 떨어져 비참하게 뒹굴게 된다. 사랑은 사랑받기를 요구하는 것이다(Love is asking to be loved).

 

사랑은 아름다운 슬픔! (1)

 

사랑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 황량한 세상에서도 너의 따뜻한 촉감. 풀잎의 감촉에서 순수한 사랑을 느낀다. 사랑에 취해 몽롱한 눈으로 세상을 보자. 영원히 실망하지 않을 우리만의 세계를 만들자.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사랑은 아름다운 슬픔! (2)

 

서로를 풀밭에서 바라 보는 것. 그런 아름다운 배경에서 상대방의 독백을 듣는 것. 바로 그런 일이다. 생명의 풀밭에서 진한 향기를 뿌리는 일은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다. 별이 떨어지는 시간까지 사랑에 빠져 별을 보자. 그리고 인생을 느끼자.

 

사랑은 아름다운 슬픔! (3)

 

사랑 때문에 밤새워 괴로워했는가? 이룰 수 없는 사랑이기에 애절하고 가슴 아팠던 사랑! 그 앞에서 우리는 초라해지고 무릎을 꿇는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긴 인생의 여정에서 서로 아끼고 걱정했던 시간들. 그리고 함께 꿈꾸었던 공간들. 사랑 받을 수 없는 사람은 슬픈 사슴이다.

 

사랑은 아름다운 슬픔! (4)

 

사랑이 없는 황령한 공간에서 우리는 지독한 형벌을 받는다. 사랑의 열병에서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고통에 빠진다. 사랑은 우연히 시작된다. 수많은 사람 중에서 우연히 만났던 사람. 그와 그토록 깊은 맺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를 좋아하고 그로 인하여 서로의 영혼이 뒤엉켜 세찬 급류에 떠내려갔다.

 

사랑은 아름다운 슬픔! (5)

 

강물 속에는 많은 암벽이 있다. 그 사랑의 바위에 부딪히면서 온 몸은 상처투성이가 된다. 그래도 미워하지 말자. 당신 때문에 받은 상처라 말하지 말자. 사랑했다면,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사랑했던 사람에게는 결코 상처를 남기지 않는 법이다. 사람들은 왜 사랑하고 그리워하는가?

 

사랑은 아름다운 슬픔! (6)

 

사랑은 우리에게 매우 다양한 형태로 다가온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정의했지만, 완전할 수는 없었다. 사랑은 몹시 불완전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지독히 사랑했으나 헤어질 수밖에 없는 연인들. 버림받은 사람은 그 애틋했던 사랑을 끝내 잊지 못한다. 인생에서 모든 것을 잃기도 한다.

 

사랑은 아름다운 슬픔! (7)

 

사랑의 배신처럼 큰 죄악은 없다. '우리는 한 평생 같이 살기로 약속했다. 어떻게 나를 배신할 수 있는냐?' 이런 애원 때문에 돌이킬 수 있을까? 한번 떠난 마음인데. 흘러간 강물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의 배신자에게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사람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사랑은 아름다운 슬픔! (8)

 

사랑에는 숨은 의도가 있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을 이용하기 위해 접근하고 서로가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가식이다. 사랑은 순수해야 한다.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다만, 그 사람이 좋아서 매달리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힘들고 고통스럽다.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사랑은 아름다운 슬픔! (9)

 

우연히 만나 정이 들고 사랑해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사람들. 정들면 마음 아프고 함께 있지 못해 서글픈 사람들. 사랑은 원죄다. 타고난 운명처럼 사랑은 슬픈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다. 사랑은 아픔이다. 사랑이란 기쁨보다는 슬픔이다. 그것은 인간의 본질과도 관련된다.

 

사랑은 아름다운 슬픔! (10)

 

사랑은 무에서 삶을 잉태하면서 찬란한 빛을 발한다. 그로 인하여 나타나는 삶의 색깔은 무지개빛이다. 그런 사랑이 왜 영원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일까?

 

사랑은 아름다운 슬픔! (11)

 

둘이서 만들었던 오랜 세월의 사랑! 그 그림자를 보면서 느끼는 처절한 감정. 느껴본 사람만이 아는 애정의 상처라는 강물의 깊이. 다가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그대의 환영. 그리고 사랑의 탑. 그렇게 사랑은 슬프다. 그러면서도 잊어버릴 수 없는 아름다운 슬픔이다.

 

사랑은 아름다운 슬픔! (12)

 

사랑은 아름다운 슬픔이다. 진한 아픔이다. 사랑이 아프고 슬픈 까닭은 욕망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고, 영원히 곁에 두고 싶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걱정과 두려움이 생긴다. 이 때문에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맛보게 된다.

 

사랑은 아름다운 슬픔! (13)

 

때로는 흥분하고 분노하며 격정의 파도에 떠내려간다. 정말 사랑하고 있는가? 그 누구를 가슴 깊이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면 당신은 은은한 슬픔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가 완벽한 인간일 수 없는 한, 그는 인간적인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애처롭게 보여 가슴을 아프게 한다.

 

사랑은 아름다운 슬픔! (14)

 

그가 혹시 변할까봐 노심초사하게 되고, 그의 의지에 매달려 사랑을 붙잡고 있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슬퍼진다. 또한 그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나를 사랑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볼 때 진한 슬픔이 밀려온다.

 

사랑은 아름다운 슬픔! (15)

 

그래서 사랑은 아름다운 슬픔이다. 그러나 그러한 끊임없는 슬픔의 끝자락에는 사랑의 향기가 남는다. 다른 슬픔과는 전혀 차원을 달리한다. 사랑의 슬픔에는 언제나 사랑만이 갖는 특유의 향기를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남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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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슬픈 것인가? (1)

 

사랑의 기쁨과 슬픔(Liebesfreud und Liebesleid)은 그 자체로 모순되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랑의 본질은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은 행복을 주며, 불행을 주는 것이다. 사랑의 이중성은 인간이 사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영원한 과제이다.

 

사랑은 슬픈 것인가? (2)

 

당신의 사랑은 내게 너무 커다란 무게로 다가왔어요. 나는 처음부터 예감했어요. 우리 사랑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 그로 인해 운명이 바뀔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요. 왜 그랬을까요? 저항할 수 없는 마력에 이끌려 마음을 빼앗겼던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요? 하지만, 나와는 맞지 않았어요. 당신은 내게 잘해주려고 애썼지만, 나는 당신에게 적응하지 못했어요.”

 

사랑은 슬픈 것인가? (3)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도 외로움을 느낀다. 진한 사랑일수록 외로움은 더욱 진해진다. 사랑을 하면 할수록 외골수로 빠져들어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 사랑은 고독한 실존이 부르짖는 야수의 외침과 같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오직 한 곳을 향해 시선을 집중시킨다.

 

사랑은 슬픈 것인가? (4)

 

사랑은 사랑 이외의 그 어느 것도 보지 않는다. 그것이 사랑을 고독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불륜의 사랑은 아프다. 본질적으로 아픔을 바탕에 깔고 있다. 불륜은 두 가지 점에서 아프다. 도덕적으로 제약을 받고 있다. 단단히 묶어놓을 도구도 마땅치 않다.

 

사랑은 슬픈 것인가? (5)

 

그래서 떳떳하지 못한 상태에서 불확실한 사랑을 해야 하는 것이 아프고 힘이 든다. 게리트 젱어가 쓴 불륜의 심리학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도 불륜의 사랑이 주는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사랑은 슬픈 것인가? (6)

 

<두 사람이 함께 할 때, 멀지 않은 그늘 속에 제3의 인물이 서 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 그리고 유혹적인 뱀이 존재하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늘 속의 사랑에 관심을 쏟아왔다.

 

한 여자가 두 남자를 사랑하거나, 한 남자가 두 여자를 사랑하거나, 혹은 배우자 각자가 각각 그늘진 은밀한 관계를 갖는 그늘 속의 사랑, 어디를 가든 눈을 돌려보면 이런 불륜의 사랑이 없는 곳이 없다.>

-게르티 젱어 지음, 함미라 옮김, 불륜의 심리학, 들어가는 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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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 (1)

 

사랑(love)이란 생명체와 생명체 사이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사람과 동물, 사람과 자연 사이의 사랑은 본래의 의미와는 다르다. 사랑은 존재의 이유다.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필수요소다. 사랑을 떠난 사람은 이미 살아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없다.

 

사랑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 (2)

 

사랑을 하는 사람은 먼저 사랑에 대한 철학(philosophy)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랑에 대한 자신의 고유한 코드번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랑에 대한 깊은 고찰 없이 그냥 세파에 휩쓸려 경험하게 되는 사랑은 실패하기 쉽고, 나중에 커다란 후유증을 낳는다.

 

사랑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 (3)

 

그러므로 먼저 사랑에 대해 알아야 한다. 사랑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토대로 나름대로 철학을 세워야 한다. 그런 다음 사랑에 도전해야 한다. 사랑이라는 씨앗(seed)은 아주 작은 개체에서 시작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점차 거대한 나무를 형성한다.

 

사랑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 (4)

 

사랑의 씨앗은 그 자체의 고유한 인자를 가지고 있다. 사랑의 인자는 씨앗이 떨어져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는 토양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씨앗이 발아하여 자라는 모습을 상상할 수는 있지만 정확하게 그 미래의 모습을 그릴 수는 없다.

 

사랑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 (5)

 

사랑이라는 생명체는 화분 속의 분재와는 다르다. 분재(a dwarf tree in a pot)는 그 토양의 제한 때문에 자라는 모습을 쉽게 알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재배하는 사람의 의도대로 성장 방향을 수정할 수 있다.

 

사랑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 (6)

 

그러나 사랑은 그렇지 않다. 사랑은 분재가 아니다. 자연 속에 그대로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는 생명체다. 사랑은 하나의 씨앗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두 개의 서로 다른 씨앗이 만나 하나의 형상을 그려나가는 과정이다.

 

사랑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 (7)

 

사랑이라는 생명체는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두 개의 씨앗에서 출발한다. 그 씨앗은 사랑의 인자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랑의 인자는 인간 실존의 불완전한 모습과 개체의 고독, 불확실한 환경의 영향을 받고 형성된다. 인자는 태생적 한계를 스스로 설정하고 있다.

 

사랑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 (8)

 

사랑의 인자는 가냘프고 부드럽고 그러면서도 애매모호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 사랑의 인자를 어떻게 키워나갈 것인지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 있다.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서는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한다. 사랑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세도 필요하다.

 

사랑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 (9)

 

사랑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그 사랑은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사랑에는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사랑은 서로의 영혼을 위한 쉼터를 마련해 준다. 새의 둥지(nest) 보다도 원초적으로 만들어 진 작은 동굴(cave)과 같다.

 

사랑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 (10)

 

그 동굴을 찾아 사랑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내부 인테리어를 하는 것이 사랑을 꾸미는 작업이다. 둥지는 망쳐질 수 있지만, 동굴은 변하지 않는다. 이미 수 억년의 모진 풍파를 견뎌낸 동굴은 비바람도 막을 수 있고, 한 여름의 햇볕도 피할 수 있게 해 준다. 겨울의 몰아치는 눈바람도 막아 준다.

 

사랑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 (11)

 

동굴은 영원한 보금자리를 제공해 준다. 그 작은 동굴에서 사랑을 마음껏 가꾸어 나가자. 동굴 벽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써놓자. 사랑은 순수하고 영원한 것이어야 한다. 빛이 오직 한 방향으로 나아가듯이 사랑은 곁눈질을 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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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사랑했다면> (1)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지면서 원수가 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을 보면, 서로가 사랑했던 그 시간이 억울하다고 한다.

사람을 잘못 만나 신세를 망쳤다고도 한다.

절대로 성격이 맞지 않는 사람과는 만나서는 안 된다고 후회한다.

 

<한때 사랑했다면> (2)

 

하지만 그것을 모두 잘못이다.

어쨌든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까지 한다는 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어쩌면 필연일지 모른다.

 

<한때 사랑했다면> (3)

 

그토록 수없이 많은, 모래알보다 더 많은 사람 가운데,

그 시간과 그 공간에서 만나고,

사랑까지 하고,

몸까지 섞고,

가슴으로 사랑했다는 건

보통 인연이 아닌 것이다.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필연인 것이다.

 

<한때 사랑했다면> (4)

 

그리고 그 당시에는 서로가 좋아서

사랑했고, 그 때문에 행복했다.

둘이 하나가 되어

완벽한 인간이 된 것을 생각했다.

 

<한때 사랑했다면> (5)

 

그러므로 비록 헤어져도

두 사람이 만들었던 사랑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미워도,

둘의 추억, 기억, 함께 했던 시간은 사랑하라.

그것이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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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놓은 애인 (1)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사치였고,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욕심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가정도 못 꾸미고 혼자 살고 있는데, 가정은 가정대로 유지하고, 애인은 애인대로 별도로 두고 싶은 것은 사실 지나친 욕심이다.

 

더군다나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영희를 숨겨놓은 애인으로 둔다는 것은 호화스러운 사치였다. 그런데도 그 사치스러운 존재를 두는 것은 별로 돈도 많이 들지 않았고, 힘도 들지 않았다. 영희가 스스로 알아서 잘 했기 때문이었다.

 

숨겨놓은 애인 (2)

 

이와 비슷한 상황이 되면 여자 입장에서 남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남자에게 집을 얻어 달라고 하거나 생활비를 대달라고 한다. 여자에게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묘한 심리에서 그러는 것 같다.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물질적인 기준에 비추어 확인하고 싶어서다. 아니면 그냥 여자로서 이용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숨겨놓은 애인 (3)

 

이때 남자 입장에서는 그러한 여자 주장이 당연하다고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혼자 외롭게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정신적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희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욕심도 부리지 않고,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철수를 사랑했다. 나름대로 자존심도 작용했다. 다만, 함께 지내는 시간만큼은 철수가 돈을 충분히 썼고 잘 해주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만족했다.

 

숨겨놓은 애인 (4)

 

그러나 막상 부인이 불륜을 알아내서 위자료를 청구하겠다고 하자,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아무리 사랑이 중하다고 해도,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겁이 많이 났다. 그래서 결심을 한 것이다.

 

펼펄뛰는 부인을 달래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영희와 헤여져야 한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면 철수는 무책임한 것일까? 사랑에 대해 무언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숨겨놓은 애인 (5)

 

이때 철수가 영희를 사랑한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하면서 부인과 무슨 협상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철수가 어떤 방법을 선택했다고 해도 문제는 복잡해진다. 애당초 철수는 책임질 수 없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시켰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비난을 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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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서 실패하지 않는 방법 (1)

 

변호사로서 수많은 남녀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경험한 결과 얻은 생각은 이렇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랑을 한다. 그러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사랑 때문에 많은 것을 얻기고 하지만, 사랑 때문에 많은 것을 잃기도 한다. 살면서 여러 차례 사랑에 대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사랑의 본질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 똑 같은 잘못을 되풀이한다.

 

사랑에서 실패하지 않는 방법 (2)

 

사람들이 주로 잘못하는 사랑에 있어서의 오류는 무엇일까?

 

단순한 성적 매력에 이끌려 사랑을 하는 것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르면서, 어린 나이, 또는 젊은 나이에 이성 간의 단순한 성적 매력에만 이끌려 몇 번 만나고, 곧 성관계를 맺는다.

 

아무 것도 제대로 따지지 않고 시작한다. 하지만 이런 성관계로 시작된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한다. 그 이유는 성관계는 어느 정도 반복되어 익숙해지면 더 이상 매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에서 실패하지 않는 방법 (3)

 

상대의 성격이나 인간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사랑을 하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상대의 겉모습, 말과 행동만 피상적으로 보고 좋아하거나 마음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두 사람 사이의 조화와 균형을 필요로 한다. 서로 너무 달라 맞지 않으면, 결코 오래 갈 수 없다.

 

사랑에서 실패하지 않는 방법 (4)

 

어느 한쪽의 일방적이고 적극적인 구애노력을 보고, 마음이 약해서 그 사랑을 받아들여주는 경우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는 쪽이 균형이 기울어진다.

 

사회적 조건이나 객관적인 여건이 불리하고, 상대가 가진 것이 많기 때문에 대단히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면 마음이 약해서 사랑을 받아준 것을 깨닫고 그 사랑이 불완전해지는 것이다.

 

사랑에서 실패하지 않는 방법 (5)

 

두 사람 사이의 환경이나 조건에서 너무 심한 격차가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상대가 너무 능력이 없거나, 돈을 벌지 못하면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사랑에는 많은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과 사랑을 하면 불행해진다.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서도 바람을 피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자녀를 제대로 보살피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결국 그 사랑을 유지하지 못한다.

 

사랑에서 실패하지 않는 방법 (6)

 

사랑은 육체적 사랑보다 정신적 사랑에 비중을 두어야 진정한 사랑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다. 육체적 사랑은 그 자체로 한계가 있다. 아무리 미인이나 얼짱이라도 3년 지나면 그러한 미모나 외모로부터 특별한 행복감을 얻는 것은 어렵다.

 

사랑에서 실패하지 않는 방법 (7)

 

그렇다면 진정한 사랑은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사랑의 본질을 먼저 공부하고 알아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인간성이다. 인간으로서 기본이 되어야 하고, 따뜻한 사람이어야 한다.

 

사랑에 대한 책임감을 인식하고, 상대를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리지 말고, 사회에 적응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어 성실하게 살아갈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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