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급적 이혼하지 마라!

 

인간은 출생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사망의 시기별, 단계별 삶을 살아간다. 이것은 개인의 생애를 단순하게 시간대로 구분한 것이다.

 

개인의 학교 생활에만 초점을 맞추면,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이런 단계로 일정한 기간 동안 생활을 한다.

 

이러한 개인의 생애나 학교 생활은 모두 한 사람의 문제이며, 모든 것은 개인의 책임 하에 진행된다.

 

그러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닌 결혼생활은 전혀 다르다.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이 합의하여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향후 예측이 전혀 불가능하다.

 

두 사람이 공동으로 하는 결혼생활은 당사자의 합의에 의해 종료시키는 이혼제도가 있다. 이혼이 중간에 개입하는 경우, 개인의 결혼생활은 다음과 같은 단계로 진행된다.

 

혼인(first marriage) 신고 결혼 생활 결혼 파탄 이혼 신고 재혼인 신고(second marriage) 재결혼 생활 재결혼 파탄 재이혼 신고 재재혼인(third marriage) 신고 재재결혼생활 재재결혼 파탄 재재이혼신고

 

이것은 개인이 학교 생활을 각 단계에서 아무 때이고, 더 이상 상급 과정으로 진학하지 않으면, 학교 생활이 종료되는 것과 같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한 것으로 끝난다.

 

마찬가지로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더 이상 혼인하지 않으면 한번의 결혼, 한번의 이혼으로 끝이 나는 것이다.

 

결혼생활은 이혼뿐 아니라, 부부 중 한 사람이 먼저 사망하는 경우에도 결혼생활은 종료된다. 이른바 배우자가 사망함으로써 과부나 홀아비가 되는 것이다.

 

오래 된 용어이기는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과부또는 홀아비라는 단어는 별로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이혼한 사람은 돌싱이라는 비교적 세련된 용어가 생겼는데, 아직까지 과부나 홀아비에 대한 적절한 용어는 들어보지 못했다. 아마 과문한 탓일게다.

 

우리는 결혼과 이혼에 관하여, <이혼 위기 이혼 결심 이혼 진행 이혼 신고 이혼 이후>로 단계를 구분하여 고찰할 것이다.

 

이혼학을 한자로 쓰면 이렇다. <離 婚 學> 나도 오랫동안 한자를 썼기 때문에, 옛날에는 제법 많은 한자를 썼다. 그러나 한글전용이 된 이후에 한자를 거의 쓰지 않다보니, 지금은 읽을 수는 있어도, 막상 한자로 쓰라고 하면 자신이 없어졌다.

 

게다가 한자 중 복잡한 글자를 보면, 옛날에 어떻게 저런 것을 다 외워서 쓸 수 있었던 것일까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이혼이라는 한자, 離婚만 봐도 그렇다. 얼마나 복잡한가? 그것은 이혼이 그렇게 복잡하다는 뜻이다. 이혼은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프다.

 

이혼을 결심하기까지 두 사람은 얼마나 많은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으며, 현실에서 지옥의 강을 건너고 있는가?

 

이혼은 지옥이다’ ‘이혼은 전쟁이다’ ‘이혼은 잔인하다’ ‘이혼은 최악의 사랑이다이런 한탄이 쏟아져나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또한 이혼과정도 만만치 않다. 그냥 쿨하게 협의이혼으로 끝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오랫동안 서로 치열하게 싸운다. 이혼을 하려는 사람과 이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싸운다.

 

이혼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한푼도 주지 않고 내쫓으려는 인간과 가급적 많이 받아가지고 나가려는 사람이 싸운다. 서로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가겠다는 선량한 사람들도 싸우고, 서로 불쌍한 자녀들을 맡지 않겠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악한(惡漢)들도 싸운다.

 

이혼학(離婚學)은 매우 중요한 학문이다. 적어도 혼인학(婚姻學)보다는 훨씬 중요하다. 결혼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지 않으면 된다. 요새 비혼(非婚)이 늘고 있다고 한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늦게 결혼하면 된다. 만혼(晩婚)이다.

 

하지만, 이혼은 그렇지 않다. 이혼을 하고 싶어도 혼자는 못한다. 상대가 동의를 해야 가능하다. 법으로 이혼판결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서로 원수가 되면서 하는 방법이다.

 

결혼은 굳이 막을 필요가 없다. 결혼은 행복을 위한 것이므로 행복하기 위해 결혼하겠다는데, 옆에서 결혼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혼은 다르다. 옆에서 가급적 이혼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혼은 자녀 때문에 상상도 하지 못할 고통이 따르고, 현실적으로 불행한 일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옆에서 아무리 어드바이스를 해주어도, 당사자들은 끝내 이혼한다. ‘오죽하면 이혼할까?’ 맞는 말이다. 두 사람은 충분히 심사숙고했을 것이다. 더 이상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이혼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옆에 있는 사람들은 끝까지 이혼을 만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이 이혼을 할 때에는 하더라도, 옆에서 이혼에 반대하는 의견을 제시하여야 한다. 그러한 반대의견을 참고하면서 이혼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자녀가 싸우고 본가에 와서 이혼하겠다고 하면 부모가 더 앞장을 선다. ‘그런 놈과는 빨리 헤어져라. 앞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렇게 해서 좋은 경우도 많지만, 나중에 후회하는 부모나 자녀들도 많다.

 

왜냐하면 이혼의 부작용, 후유증, 단점은 결코 생각처럼 만만하지 않은 것이 우리 현실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이런 이혼문제에 있어서 사회적 인식이 완전히 서구화되지 않은 과도기 상태이다.

 

특히 나이 든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아직도 이혼에 대해 보수적인 것같다. 주변에서도 보면, 초혼인 아들이 이혼한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결사반대하는 노인들이 많이 있다.

 

이혼학에서는 결혼생활을 원만하게 함으로써 파경에 이르지 않고, 이혼이나 별거를 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연구하여 제시한다. 그리고 부부관계가 좋지 않은 경우, 이혼하지 않고 다시 관계가 복원되거나 재건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또한 끝내 이혼할 수밖에 없는 부부들에게는 건강하게 이혼하는 법을 제시한다.

 

이혼학에서는 이혼하는 법적 절차와 재산분할, 자녀의 친권 및 양육권, 양육비 부담, 위자료, 면접교섭권 등의 문제를 연구한다.

 

이혼학에서는 이혼한 후의 싱글 라이프에 관해 연구하고, 재혼의 문제점을 연구한다.

'사랑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런 남자와는 절대 결혼하지 마라  (0) 2022.07.03
이혼제도를 개선하여야 한다  (0) 2022.06.29
이혼학의 목적  (0) 2022.06.28
이혼학 강의  (0) 2022.06.28
‘불행한 결혼 vs 행복한 이혼’  (0) 2022.06.28

이혼학의 목적

 

이혼학의 목적은 가급적 이혼하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 이혼은 곧 가정의 해체를 의미한다. 가정이 해체되면 부부뿐 아니라 자녀를 포함하여 다른 넓은 의미의 가족 구성원이나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이 가기 때문이다.

 

이혼을 막거나 예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처음 단계에서 결혼할 때 배우자를 잘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최우선이다. 서로 맞지 않는 두 사람이 결혼하면 아무리 한쪽에서 노력을 해도 맞출 수 없는 것이 인간관계이다.

 

20년 내지 30년 이상 서로 다른 환경에서 생활한 남자와 여자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서로 절대적인 책임을 지고, 의무를 부담한 채, 서로 참고 견디면서 화목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전과 달라서 요새 젊은 사람들은 극도의 개인주의, 이기주의에 물들어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 모두 자신이 잘 났고, 옳다고 생각한다.

 

상대와 생각이 다르거나 성격이 다르면, 자신의 생각이나 성격을 맞추려고 하지 않고, 상대를 이상하게 생각한다. 상대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에 따르도록 하려고 한다.

 

상대 역시 똑 같은 입장이기 때문에, 결국 두 사람은 갈등관계가 되고, 서서히 사이가 나빠진다. 조금도 양보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때문에 결혼하기 전에 배우자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또한 자기 자신의 성격도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파악하고, 상대와 맞추어 나갈 수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서로 맞출 자신이 없으면, 애당초 그만 두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종교가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종교가 없거나, 종교를 가지고 있어도 적당한 수준이면 괜찮다. 그러나 아주 독실한 기독교인과 독실한 불교인도 나중에 종교면에서 절충하기는 어렵다. 연애감정에 빠져 나중에 종교도 맞추겠다고 해놓고 정작 결혼한 다음에는 종교적인 문제로 이혼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사회에서 이단이라고 하는 특수한 종교단체에 들어가서 가정도 버리고, 이혼도 불사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종교단체에서는 이를 말리는 배우자나 가족을 사탄이라고 규정짓기 때문에 이런 경우 가정은 깨지고 만다.

 

이단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이들이 어린데, 매일 새벽기도 나가고, 아이들 돌봄도 소홀하고, 가사를 팽개치는 여자 때문에 이혼하는 남자도 있다. 경제가 어려운데 교회 십일조나 건축헌금, 감사헌금은 어떠한 경우에도 해야 한다고 우기는 남편 때문에 아내가 견디지 못하고 이혼하는 경우도 있다.

 

두 번째는 결혼생활을 참고 견딜 수 있는 의사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 결혼생활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이 서로 열심히 일을 해야 하고, 검소하고 절약을 해야 한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두 사람이 공동생활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집안에서도 아무렇게나 어지럽혀 놓아서도 안 된다. 화장실도 깨끗하게 써야 하고, 치약도 제대로 짜서 써야 한다. 불도 제대로 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것들이 하나씩 보면 사소한 것처럼 보여도 상대는 짜증이 나는 일이다.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듣지 않으면 상대는 미워지고 나중에는 싫어지는 것이다.

 

결혼생활은 기본적으로 부부가 가정에 충실하여야 할 것을 요구한다. 밖에 나가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가정과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배려하고, 헌신하기를 요구한다.

 

이러한 충실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 배우자는 가정에 대한 애정, 상대에 대한 사랑이 식었다고 단정한다. 특히 몇 년이 지난 부부의 경우, 일차적인 이상징후는 성관계에서 나타난다.

 

종전에 하던대로 하지 않고, 갑자기 횟수가 줄어든다든가, 성관계를 기피한다든가, 해도 적당히 한다든가 하면, 벌써 이상해진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상태가 더 지속되면, 각방을 쓰게 되고, 각방을 쓰기 시작하면 얼마 가지 않아 완전히 섹스리스가 된다.

'사랑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혼제도를 개선하여야 한다  (0) 2022.06.29
가급적 이혼하지 마라!  (0) 2022.06.29
이혼학 강의  (0) 2022.06.28
‘불행한 결혼 vs 행복한 이혼’  (0) 2022.06.28
이혼의 장점과 단점  (0) 2022.06.27

이혼학 강의

 

우리는 결혼이라는 말은 쉽게 그 의미가 전달된다. 결혼식을 떠올리면, 신랑과 신부가 모두 행복에 겨워서 환한 미소를 짓고, 무지개빛 미래를 향해 첫발을 내딛는다.

 

하객 모두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고, 그들이 자녀를 낳고 가정을 꾸미며, 백년해로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두 사람은 신혼여행을 떠나 첫날밤을 치루며, 아침 식사를 함께 하는 사회적 특권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이혼’은 전혀 다르다. 이혼식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남자와 여자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기 어렵고, 설사 알았다고 해도 직접 물어보기가 곤란하다.

 

이혼했다고 하면 두 사람이 이혼신고를 하고, 각자 따로 떨어져 생활하고, 돌아온 싱글의 신분이 되었다는 사실이 떠오를 뿐이다. 그들의 머릿속이 복잡한지, 생활이 힘들어졌는지, 새로운 사랑을 하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

 

결혼은 공개된 행위이고, 이혼은 공개되지 않는 행위이다. 결혼은 널리 알릴수록 좋고, 이혼은 널리 알리지 않는 것이 좋다. 결혼은 축복을 받아야 하고, 이혼은 위로를 받아야 한다.

 

왜 그럴까? 결혼과 이혼이 이와 같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이혼학은 이혼을 테마로 하는 학문이다. 이혼학에서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① 어떠한 경우에 결혼 생활이 파탄났다고 하는 것인가? ② 결혼 생활의 파탄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③ 결혼 생활이 위기에 처했을 때 부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④ 이혼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⑤ 이혼할 때 유의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가? ⑥ 자녀에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⑦ 이혼 후의 생활은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⑧ 이혼 과정 및 이혼 후의 아픔과 슬픔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⑨ 이혼 후 새로운 사랑을 어떻게 할 것인가? ⑩ 재혼 후 다시 이혼하는 경우는 무엇 때문인가?

 

이러한 열 가지 질문에 대해 이혼학은 답변을 해야 한다. 올바른 답변을 하기 위해서는 이혼에 관한 법, 윤리학, 사회학, 심리학, 철학, 가족학, 여성학, 가족복지학 등에 관한 광범위한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한다.

 

불행한 결혼 vs 행복한 이혼

 

76일에 개최되는 사랑학 세미나 주제는 불행한 결혼 vs 행복한 이혼이다. 나는 이 세미나를 준비하기 위해 한 달 동안, “결혼과 이혼, 재혼에 대해 많은 자료를 찾아보았다.

 

특히 법에 대해서는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지내신 윤진수 변호사님의 가족법 강의 4개정판을 정독하였다. 그리고 결혼과 이혼에 관한 대법원 판례를 모두 읽고 있는 중이다.

 

인터넷에서 영어로, ‘marrage’‘divorce’를 검색하면 수많은 자료가 나온다.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 너무 많다.

 

프랑스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쓴, ‘사랑의 역사를 다시 읽고 있다. 김영 교수님이 번역한 1997년 민음사에서 출간된 책이다. 저자의 폭넓은 학문적 지식과 날카로운 해석능력에 감탄하고 있다.

 

저자는 사랑의 역사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실제로는 서양의 정신사라고 할 수 있다. 사랑에 관하여 구약성경의 아가서부터 현대의 프로이트까지 철저하게 꿰뚫고 있다.

 

사랑과 결혼, 성과 이혼, 개인의 행복과 불행은 따지고 보면, 그 어느 것이나 지독하게 개인적인 것이며, 주관적이고, 개별적인 경험이고 기억이다.

 

모든 인간이 지극히 짧은 인생길에서 마주치는 타인과의 우연한 만남, 지속되는 특별한 관계, 그 안에서의 갈등과 문제 해결, 그로 인해 얻어지는 희로애락, 실존의 결합과 해체 과정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운명적으로 만난다. 그 어떤 경우든 지구 상의 인구가 79억명이나 되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 성관계를 맺고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특히 일시적인 연애나 섹스를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결혼까지 한다는 것은 운명론에 의하지 않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은 운명이고, 이혼은 선택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틀린 말이다. ‘결혼도 운명이고, 이혼도 운명이다라고 하는 것이 맞다.

 

운명론이 아니고는 한 사람이 어떻게 다른 한 사람을 만나 오랜 기간 같이 붙어 살며, 자식까지 낳고 가정을 꾸밀 수 있을까?

 

그리고 운명이 아니면, 어떻게 그렇게 지구 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과 남남이 되며, 냉정하게 갈라설 수 있는가? 이러한 만남과 헤어짐은 모두 운명일 것이다.

 

다시 결혼과 이혼으로 돌아가보자. 결혼은 서로 좋아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혼례를 치루고 혼인신고를 한다. 두 사람은 혼인서약을 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30년 넘게 생활해온 두 사람은 많은 면에서 다르고, 이질적이다. 근본적으로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있다. 결혼생활은 서로 양보하고, 서로 배려하고, 서로 존중하여야 유지가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부부는 서로 충돌하고, 갈등을 일으키며, 싸우게 된다. 서로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하면서, 서로 무시하고, 정신적으로 학대하게 된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이 정도 되면 서로 보지 않고, 기분 나쁜 관계로 정리하면 되지만, 부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집에서 24시간 지내야하며, 자녀 때문에 공동의 이해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안에서는 피터지게 싸우고, 밖에 나가서는 다정한 부부로서 행복한 척해야 한다.

 

이러한 모순된 행동, 위선과 가식이 계속되면 부부는 쌍방 모두 우울증에 걸리고, 이상심리가 되며, 두 사람의 삶은 불행해지고, 고통과 질곡에서 헤매게 된다.

 

이럴 때 두 사람은 이혼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혼은 이혼대로 말할 수 없는 위험과 고통이 따른다. 때문에 이혼하기 전에 부부는 최선을 다해서 이혼하지 않고, 현재의 결혼생활을 바꿔서 정상적인 부부관계로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

 

첫 번째, 인생이 긴 것 같지만, 정말 짧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생백년이라고 하지만, 우리 모두가 100세까지 사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모두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렇게 짧은 인생, 거대한 우주의 은하계에서 한 점 먼지 같은 지구상에서 발을 붙이고 살고 있는 우리는 그 가운데에서도 ‘79억분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니 지금까지 살아온 현재의 배우자와 다시 한번 화해하고, ‘원수에서 친구로전환하여 사는 것은 어떠한가?

 

두 번째, 자녀를 생각하면 함부로 이혼해서는 안 된다. 부부야 이미 살만큼 산 사람들이지만, 아직 자녀들은 어리고, 세상에서는 어린 사슴 새끼와 같다. 어미의 보호가 없으면 살 수 없다. 설사 산다고 해도, 얼마나 불쌍할까? 부부는 밉지만, 아무 죄 없는 자녀를 생각해서 그냥 참고 사는 방법을 연구해 보라.

 

세 번째, 성질대로라면 100번도 더 이혼하는 것이지만, 막상 이혼하면 지금과 같은 고물가시대, 불황기에 먹고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장사하면서 동업하는 경우에도 동업이 깨지면 두 사람 모두 망한다.

 

결혼은 단순한 동업이 아니라, 몸과 마음, 전 재산, 자녀까지 함께 하는 완벽한 동업관계인데, 이것이 깨지면 동업자는 정말 많은 것을 잃고 많은 것을 손해본다.

 

네 번째, 싱글 라이프는 고독하고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둘이 오랫동안 같이 사는데 익숙해 있다가, 갑자기 혼자가 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환경의 변화로 그 많은 시간 외롭고 심심하고, 할 일이 없어 견디기 어렵다. 혼자 밥을 먹는 것도 그렇다. 외식을 해도 혼자 가서 밥을 먹거나 술을 마셔봐라. 얼마나 멋쩍을까?

 

부부는 사실 친구처럼 짝이 되어 모든 것을 같이 할 수 있어 편리하다. 목욕탕 빼고는 어느 곳이나 동행할 수 있다. 이혼하고 혼자 사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생각하면 함부로 이혼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섯 번째, 이혼하면 건강관리를 하기 어렵다. 육체적인 건강도 그렇지만, 정신적인 건강이 문제다. 특히 나이 들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우울증에 걸린다. 늙어 병이 들면 옆에 간병해줄 사람도 필요하다. 부부만큼 편한 반려자는 있을 수 없다.

 

여섯 번째, 사랑이나 섹스를 좋아해서 혼자 살지 못하는 사람은 이혼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고 한다. 그러나 통계는 재혼 또는 삼혼의 실패율은 매우 높다고 한다.

 

그 이유는 초혼과 달라서 재혼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 자체가 그렇고, 이혼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대 배우자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결혼생활에 실패한 원인이 있은데, 그러한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깨닫거나 고치지 못하고 재혼생활에 들어갔다가 또 다시 실패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혼 후 다시 좋은 사람 만나서 사랑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여야 한다.

 

일곱 번째, 이혼과정이 쉬울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복잡하고 까다롭고, 어려울 수도 있다. 특히 합의로 이혼하지 않고, 재판까지 가면 문제는 달라진다. 두 사람 모두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

 

그리고 재산이 없는 부부의 경우, 이혼을 당하면 무일푼으로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이혼하면서 부부가 서로 완전한 원수가 되기도 한다.

 

여덟 번째, 아직도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이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남아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혼하는 세상이지만, 일부 사람들은 이혼을 창피하게 생각하고 숨기려고 한다. 일부러 내놓고 밝히려고는 하지 않는다.

 

'사랑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혼학의 목적  (0) 2022.06.28
이혼학 강의  (0) 2022.06.28
이혼의 장점과 단점  (0) 2022.06.27
<허망한 사랑에 빠지지 말고, 형이하학적인 성에 너무 탐닉하지 마라>  (0) 2022.06.22
사랑의 정체  (0) 2022.06.22

이혼의 장점과 단점

 

이혼이 오늘날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지만, 여전히 이혼하는 당사자는 매우 힘든 삶의 한 여정이다. 결혼할 때에는 그 누구도 이혼을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다 이혼을 해도 우리 부부만큼은 이혼의 ()’자도 꺼내지 않는다고 한 사람들이 몇 년, 또는 몇 십년 지나서,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주변 사람들은 저렇게 잘 맞는 것처럼 보이고, 행복해 보이던 부부가 왜 이혼을 할까?’하고 의아해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부부는 이렇게 맞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짧은 인생, 지금이라도 더 이상 고통 받지 말고, 빨리 헤어지자.’라고 하면서, 공동결합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single life의 길을 선택한다.

 

하지만, 이혼은 결코 간단치 않다. 이혼에 따르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혼의 단점은 무엇일까?

 

가정이 해체된다는 것이다. 애써 만들었던 삶의 보금자리가 송두리째 무너지고 없어진다는 것이다. 가정은 부부가 살 집을 마련하고, 자녀를 낳고, 공동생활을 하던 공간이다. 마치 새의 둥지와 같다. 서로 믿고, 의지하고, 정을 나누면서, 동고동락을 하던 곳이다. 이혼은 이러한 가족을 쪼개는 것이며, 가정을 상실하는 것이다.

 

공동으로 하던 의식주를 각자가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부부는 각자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해야 하고, 살림살이도 다시 장만해애 한다. 그동안 익숙해있던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도 보통 불편한 것이 아니다. 생활비도 더 들게 된다.

 

자녀들에게 중대한 심적 고통을 안겨준다. 자녀들의 학교 생활, 사회 생활에 많은 변화와 지장을 준다. 자녀들은 가정과 가족의 해체에 따른 심리적 불안감을 겪게 되고, 자신감을 상실하며, 자존감을 유지하지 못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이혼은 삶 자체를 불안하게 만든다. 재산분할도 받지 못하고, 직장도 없는 상태에서 이혼을 당하면, 생활 자체가 곤란하게 된다.

 

이혼 후 혼자 생활하면서 외롭고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혼한 다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많은 경우 이혼하고 계속해서 혼자 살아야 하는 경우, 부부생활에 익숙했던 사람이 갑자기 원치 않는 이혼을 당하면 남은 인생이 매우 힘들고 어려워진다.

 

이와 같은 이혼의 부작용,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혼을 결심하고, 이혼을 감행한다. 이혼에는 또한 적지 않은 장점,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불행한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는 해방의 의미가 있다. 사실, 부부가 서로 맞지 않은 상태에서 애정도 식고, 딱딱하게 무미건조한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면,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감당하기 어렵다. 이럴 때에는 이혼만이 최선책이다. 빨리 헤어져야 조금이라도 덜 고통을 받고, 남은 인생을 각자 자유롭게 즐기면서 살 수 있다.

 

싱글 라이프에서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고, 결혼 생활의 부담에서 벗어나,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위험한 사업을 하다고 부도가 나거나, 도박에 빠지거나, 주식 투자를 하다가 망할 위험이 있으면, 이혼을 함으로써 한 사람이라도 재산을 지키면, 자녀들을 덜 고생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자녀에게도, 매일 부부가 사이가 나빠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는 헤어져서 더 이상 싸우는 꼴을 보이지 않는 것이 자녀 교육이나 생활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이 경우 이혼하더라도 부모는 자녀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주어야 한다.

 

이혼한 후 더 좋은 사람을 만나 재혼함으로써 사랑과 행복을 얻을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허망한 사랑에 빠지지 말고, 형이하학적인 성에 너무 탐닉하지 마라>

 

많은 사람들이 사랑과 성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여유 없이 그날 그날 살아가는데 바쁘고, 급급한 상황이다. 먹고 사는 것이 걱정이 없고, 할 일을 웬만큼 해놓은 사람들이 로맨틱한 사랑을 찾고, 쾌락적인 성에 탐닉할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누가 뭐라고 해고, 의식주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어야 하고, 가정이 평화롭고 화목해야 하며, 자식들이 잘 커야 행복한 것이다.

 

평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화만사성이다. 가족 중심으로 살고, 부부관계와 부모자녀관계가 좋아야 마음이 평안하고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예전과 달리, 날이 갈수록 현대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단순하고 기초적인 삶의 조건을 갖추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하기도 어렵고, 늦게 결혼해도 원만한 가정생활을 하기가 어렵다. 중간에 결혼이 깨지는 경우가 늘어나고, 꼭 이혼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냉냉한 관계로 마지못해 살아가는 커플들도 많다. 섹스리스는 기본이고, 각방을 쓰면서 부부가 아닌 동거인처럼 지내는 경우도 많다. 졸혼 이야기가 흔한 이유도 이런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에서 남녀가 사랑할 때 어떻게 해야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가를 연구해야 한다. 사랑과 성, 결혼과 이혼에 대한 기본적인 사고와 인식을 새롭게 전환할 필요도 있다.

 

과거와 달리 요새 사람들은 결혼제도, 혼인신고제도가 주는 부담감, 책임감, 법적 도덕적 의무가 너무 무겁다고 생각한다. 결혼할 때는 이런 것을 잘 모르고 있다가, 막상 결혼생활을 해보니, 이런 것들이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낭만적이고 이상적으로만 생각했던 결혼생활이 현실로 들어와서는 서로 맞추기가 어렵고, 개인의 자유를 엄청나게 제한하고 속박하는 굴레로 느껴지는 것이다.

 

연애감정이나 로맨틱한 정서, 섹스의 쾌락은 몇 년이 지나면 싸늘하게 식는다. 삭막한 현실에서 남녀간의 사랑은 더 이상 생산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이혼만이 해답은 아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이혼을 결정하는데 많은 장애요소가 있다. 이혼 후의 싱글 라이프가 좋은 점도 있지만, 불편하고 고통스럽고 힘든 점이 더 많은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이혼 후에 다시 상처받기 싫어서 계속 싱글로 지내는 사람들도 많지만, 과거의 아픈 추억을 잊어버리고, 또 새롭게 데이트 하거나 재혼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초혼의 결혼생활이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에, 재혼생활은 더 힘든 과정이 되고 있다.

 

재혼할 때에는 새출발을 하면서, 잘 하려고 마음 먹고, 노력도 많이 하지만, 여전히 재혼생활 역시 상대가 있고, 딸린 배다른 자녀들도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힘이 든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참고 살고 있는데, 참지 못하고 이혼한 사람들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도 잘못이 있거나 부족한 면이 있고, 공동생활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하는 성격일 수 있는데, 재혼하면서 이러한 문제 되는 부분을 완전하게 고치거나 개선하지 못한 채 재혼하면, 또 다시 이러한 문제들이 부각되어 또 이혼을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재혼했다가 또 이혼했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초혼 때보다 몇 배가 더 참고 살지만, 상대가 협조를 제대로 해주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재이혼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삶에 있어서 사랑이나 성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또한 사랑이나 성을 잘못 다루면 개인은 아주 불행해질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직은 젊고 세상을 잘 몰라서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사랑은 허망하고, 성은 역시 형이하학적인 것이다. 사랑에 목숨 걸지 마라. 성에 지나치게 탐닉하지 마라. 이것이 오늘의 교훈이다.

 

 

'사랑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행한 결혼 vs 행복한 이혼’  (0) 2022.06.28
이혼의 장점과 단점  (0) 2022.06.27
사랑의 정체  (0) 2022.06.22
실존주의 사상의 내용  (0) 2022.06.21
사랑에 대한 책임  (0) 2022.06.21

사랑의 정체

 

우리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것일까? 사랑을 개념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언어로 사랑의 실체를 정확하고, 완벽하게 표현하거나 전달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다.

 

사랑을 생각할 때, 우리의 머릿속에는 어떤 한 사람을 떠올린다. 그 사람의 얼굴, 눈빛, 표정, 미소, 신체, 말하는 것이나 행동, 심리상태 등을 생각한다. 그 사람을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 보고 싶어하는 것, 그 사람과 신체적 접촉을 하고 싶은 욕망, 또는 과거에 같이 행동하고 껴안고 성관계를 했던 기억 등을 포괄적으로 사랑이라는 카테고리에 담을 수 있다.

 

사랑이란 두 사람이 서로 가깝게 느끼고, 같이 무엇인가 하고, 서로 아끼고, 보호해주고, 서로 힘을 합하여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며, 성적인 접촉과 성행위를 통해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련의 생각과 감정, 행동을 말한다.

 

사랑은 나와 너의 관계에서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이다. 때문에 당연히 시간적 영속성을 전제로 하며, 사랑의 현상과 내용은 그때그때 변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반드시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므로, 사랑은 두 사람이 대향적인 관점에서 서로에게 주고받는 정신작용과 육체작용을 통해서 사랑의 의미와 내용을 느끼고 확인하여야 그 존재를 인정받는다.

 

사랑은 단순한 육체적 성적 결합을 초월한다. 에로티시즘을 넘어서는 정서적, 육체적 쾌락과 흥분, 열정으로 인한 감정의 마비상태를 경험하는 것이므로, 두 사람에게는 삶에 있어서 진정한 고뇌로 해석될 수도 있다.

 

사랑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창조해내는 신비스러운 감정이며 정서적 감동상태이며, 동시에 공감하는 악기의 선율이다. 때문에 사랑을 통해 두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육체적 반응은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남자와 여자의 신체적 생리적 차이 때문에 원칙적으로 일치하거나 매우 근접한 상태로 접근하는 것조차 어렵다. 두 사람은 각자의 조건과 환경, 신체적 특성에 따라 개별적인 작용과 반작용을 하는 것이며, 사랑에 대한 이해와 개념 규정은 많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개인이 경험하는 사랑은 그야말로 철저하게 개별적이며, 개인적이며, 주관적이고, 독자적이다. 뿐만 아니라, 동일한 개인이 경험하는 사랑의 내용도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르고, 특히 상대가 다른 경우에는 전혀 다른 사랑의 체험을 하는 것이다.

 

한 개인이 체험하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에 있어서, 그가 성장하면서,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회적 환경이나 조건이 달라지면서, 사랑의 체험의 결과와 내용, 형태, 강도 등은 모두 다르고, 어떤 경우나 동일한 것은 거의 없다.

 

사랑은 인간의 성적 욕구와 사랑에 대한 갈망과 의지를 필요로 한다.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사랑의 필요조건이기도 한다. 인간이 늙거나 병이 들어 건강하지 못하거나, 성적 욕구를 느끼지 못하면 그 사람은 다른 이성을 사랑하는 것이 어렵다. 물론 섹스 이외에 정신적인 사랑을 할 수는 있으나, 이러한 형태의 사랑은 우리가 논하는 범주에서 벗어난다.

 

또한 사랑은 사랑에 대한 갈망과 의지를 전제로 한다. 사랑하려는 생각과 마음가짐, 사랑을 갈망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사랑에의 욕구는 두 사람 모두에게 존재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사랑을 강요하는 것이거나, 일방적인 짝사랑이거나, 단순한 스토킹에 불과하여 완전한 사랑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은 인간의 사랑에 대해 여러 가지 제약을 가하고,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과 고통을 감수하여야 할 때도 있다.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드물고, 설사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해도, 사랑으로 연결시키는 구애활동이 쉽지 않다. 잘못하면 성범죄자로 오해를 받거나, 스토커로 신고가 될 위험도 있다. 남자와 여자 모두 사랑에 대해 생각하는 개념이 다르고, 상대를 선택하는 기준이 서로 다를뿐 아니라 서로 눈높이가 따로따로 높기 때문에 하향조정해서 합의하는 것이 어렵다.

 

동일한 사람이 경험하는 사랑도 마찬가지다. 처음 사랑을 할 때에는 성적 욕구가 강하다. 물론 정신적 사랑도 동반하는 것이지만, 섹스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일단 섹스를 한 다음 동일한 행위가 반복되면, 3년쯤 지나면 섹스가 싫증이 나고,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한계이며, 약점이다.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는 대목이다.

 

사랑은 두 사람의 사랑의 욕구가 합치하는 접점에서 확인되며 존재한다. 사랑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이동하며, 방황한다.

 

현대사회는 하나의 사랑과 다른 사랑이 겹치는 지점이 많다. 이것은 애정의 삼각관계를 형성하며, 매우 혼란스러운 행태를 보여준다. 두 가지 사랑 모두 사랑은 사랑이다. 다만, 사랑의 본질상 겹쳐지는 사랑은 빛의 초점을 상실한다.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사랑은 결국 추락하고, 남는 것은 사랑의 초라한 흔적뿐이다.

 

사랑은 무엇으로 기억되고 보존되는가? 사랑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존재이기 때문에 사랑은 절대로 원형대로 유지되지도 않고 보존되지도 않는다. 사랑은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두 사람만의 고유한 내적 감정이기 때문에 시간이 가면 희미해지고, 동질성이 유지되기 어렵다.

 

몇십년 전에 사랑했던 사람과 있었던 추억을 더듬어보면, 너무 희미하고, 아련해서 마치 봄날 아지랑이를 손에 잡으려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실존주의 사상의 내용

 

실존주의(existentialism, 實存主義)라 함은, 세계 내의 인간 실존에 대한 해석에 힘쓰며 인간 실존의 구체성과 문제적 성격을 강조하는 철학을 말한다.

 

실존은 항상 특수하고 개별적이다. 실존은 존재 양식에 대한 문제이며, 존재 의미에 대한 탐구이다. 존재 의미에 대한 탐구는 끊임없이 다양한 가능성에 직면하며, 인간은 이러한 가능성 가운데서 선택하고 그 선택에 몸을 맡겨야 한다. 실존은 선택을 제한하는 구체적인 상황 속의 세계내 존재이다.

 

실존주의에서는 실존은 다른 존재와의 관계로서 항상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초월적 존재로 이해한다.

 

실존주의는 모든 인간 현실의 불안정과 위험을 강조하고 인간은 '세계에 던져져 있다'는 점과 인간의 자유는 그것을 공허하게 만들 수 있는 한계에 의해 제한되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고통·타락·질병·죽음 등과 같은 실존의 부정적 측면들은 인간 현실의 본질적 특징이 되었다.

 

니체는 '운명애'(amor fati)'인간의 위대함을 위한 정식'으로 보았다. 자유는 현재 존재하고 있는 것과 지금까지 존재해온 것을 바라는 데 있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바랄 수 없다는 듯이 그것을 선택하고 사랑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

 

인간은 가능성에 기초하여 미래를 기투한다. 선택한다는 것은 위험을 내포한다. 가장 심각한 위험은 인간이 비본래성 내지 소외로 하락하고 인격에서 사물로 타락하는 것이다.

 

실존주의는 실존의 개별성과 반복 불가능성을 강조하며 때로는 타인과의 공존을 소외로 여긴다.

 

 

사랑에 대한 책임

 

사랑학을 연구하다 보니, 사랑과 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적인 책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과 성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이며, 생각과 감정, 행위이다. 때문에 기본적으로 인간적인 배려와 책임이 따른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사랑과 성에 대한 책임의식이 날이 갈수록 결여되고 있다. 좋아서 사랑하고 성관계를 맺으면, 상대를 인간적으로 보호하고, 아끼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책임 의식 없이 그냥 둘이 놀고, 즐기고, 섹스하고, 싫어지면 헤어지고, 버리고, 돌아서버린다.

 

미안한 마음을 전혀 갖지 않는다. 심지어는 한 여자를 사랑하다가,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린다. 전에 여자가 불행해지고, 비참해지는 것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는 결혼과 이혼에까지 연결된다. 쉽게 결혼하고, 쉽게 이혼한다. 이혼함으로써 상대가 받는 상처와 고통은 내 문제가 아니다. 오직 상대의 문제라고 치부한다.

 

이혼은 특히 자녀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파괴적이다. 자녀로 하여금 보금자리인 가정을 상실하게 하고, 성장기, 사춘기에 방황하게 만든다. 자신감과 자존감을 잃게 만들고, 내성적으로 만들고, 우울증에 빠지게 한다.

 

어린 자녀들은 다른 친구들이 부모와 함께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는 것을 늘 부러워하고, 자신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하게 된다. 도대체 이러한 자녀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고, 죄가 있기에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이혼하는 부부는 어떤 경우나 자녀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 결혼해서 여자가 집에서 살림 다 하고, 자녀 낳고, 양육하고, 남편 뒷바라지 다 하고, 잠자리를 다 해주었는데, 남편이 먹고 살 만하니까 밖에서 다른 젊은 여자 데리고 놀면서 이혼까지 하게 되면, 그것은 얼마나 나쁜 짓인가? 부인을 철저하게 이용하고, 나중에 쓸모없다고 버리는 배은망덕한 일이다.

 

우리 사랑하기에 앞서서 무엇 때문에 사랑하는가? 그리고 나중에 우리가 만든 사랑에 어떠한 책임을 져야 하는가? 특히 자녀를 낳으면, 자녀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져야 하는가? 이런 저런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인간적인 고민을 해보자.

 

'사랑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의 정체  (0) 2022.06.22
실존주의 사상의 내용  (0) 2022.06.21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0) 2022.06.21
인간답게 사는 법  (0) 2022.06.19
이혼할 때 자녀에 대한 태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0) 2022.06.19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아주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잘 안 한다. 하더라도 아주 늦게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결혼할 여건이 안 되기 때문이다. 결혼하려면 같이 살 집이 있어야 하고, 생활비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도시 생활에서 혼자 사는 것은 그럭저럭 할 수 있어도, 두 사람이 같이 살려면 원룸에서 투룸이 되어야 하고, 생활비도 세배로 들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월급을 받아야 본인의 생활비로 쓰고 나면, 저축은 거의 불가능하다. 저축을 해봤자, 은행이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몫돈을 만들기 어렵다. 몫돈을 만들어봤자. 급격한 물가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때문에 집을 마련하는 것은 날이 갈수록 요원해진다. 청년주택이고 뭐고 해봤자, 극소수의 몇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지, 대다수의 청년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두 번째, 결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젊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마음에 들면, 진한 연애감정에 빠져 목숨을 걸만한 사랑을 하고, 그래서 결혼하려고 난리를 쳤다. 또한 육체관계를 하게 되면, 웬만하면 서로 정도 들고, 책임감 때문에 결혼하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육체관계를 했다고 해서 꼭 결혼하고 연관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나 의식은 희미해진 것 같다. 육체관계를 했다고 해도, 서로가 좋은 것이지, 꼭 남자가 여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관념은 이미 구태로 변했다. 혼인빙자간음죄도 폐지되었다. 이제는 남녀 모두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권리 때문에 성관계, 육체관계는 본인의 자유의사에 따른 것으로서 자기책임의 문제로 돌아간다. 여자의 동의가 있었다면, 설사 임신까지 했다고 해도, 그로 인해 여자가 남자에게 결혼하거나 평생 책임지라고 할 권리는 없다. 두 사람이 연애하고 사랑하다가 여자가 임신한 상태에서 남자가 연락을 끊어버리면 여자는 아주 곤란한 상황이 된다. 그런 사례가 적지 않다. 인터넷으로 채팅을 하면서 가까워져서 두 사람이 만난다.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두 사람은 성관계를 한다. 3개월 후에 여자는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 남자는 여자에게 낙태수술을 하라고 한다. 여자도 낙태수술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여자가 수술비를 달라고 하자, 남자는 연락을 끊어버린다. 여자는 변호사에게 상담을 한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느냐?” 변호사의 답변은 이렇다. “우선 형사문제는 되지 않는다. 남자의 행위가 범죄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사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문제를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도 쉬워보이지 않는다.” 여자는 결국 남자에 대한 심한 배신감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고, 대인기피증세를 보인다. 아이를 낳을 수는 없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본인 돈으로 낙태수술을 한다. 몸도 망가지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주변 사람들은, 남자는 아주 나쁜 인간이지만, 여자도 바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우리 사회가 이러지는 않았던 것같다. 아무리 나쁜 인간이라도 여자와 연애하다 임신시켰으면, 적어도 수술비는 마련해서 대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미안한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요새 일부 남자들은 그렇지 않다. “서로 좋아서 연애한 것이고, 서로 섹스를 즐겼는데, 왜 남자 혼자 책임을 져야 하느냐? 여자, 네가 알아서 해라. 그리고 나를 만났을 때, 이미 너는 여러 남자들과 섹스를 했던 여자 아니냐? 이번 임신도 처음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돈이 없다.” 이런 마음을 먹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여자 부모가 알면 어떨까? 얼마나 속이 상하고 가슴이 아플까? 여자 아이가 철부지도 아니고, 저렇게 세상을 모를까? 그 나쁜 인간을 만나서 혼을 내주고 싶은데, 아무런 방법도 없다고 하니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법은 왜 이런 것일까? 세 번째, 예전에는 결혼 이외에는 달리 성생활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요새는 꼭 결혼하지 않아도 남녀가 성생활을 하는 기회가 많아졌고, 비교적 쉬워졌다. 물론 여기에서도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돈 있고, 잘 났고, 능력이 있으면 섹스 파트너를 쉽게 구할 수 있고, 동시에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돈이 없고, 잘나지 못했고, 능력이 없으면 섹스 파트너를 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재혼도 마찬가지다. 돈이 있는 남자는 쉽게 재혼할 수 있고, 더군다나 젊은 여자도 구할 수 있지만, 돈이 없는 남자가 상처하거나 이혼한 다음 밥을 해줄 여자를 찾으면, 보통 50년이 걸린다. 순수한 인간적인 정 때문에 무능력한 홀아비 밥해주고, 잠자리해줄 순정파 여자는 근대소설에서나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일부 남자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책임을지지 않는 범위에서 자꾸 여자들을 바꿔가면서 연애하고 섹스를 한다. 그런 맛에 결혼은 하지 않는다. 네 번째, 현대인들은 결혼이나 혼인이 법적으로 너무 심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의무나 책임, 구속을 귀찮아하고, 두려워한다. 결혼하면 좋은 점도 많지만, 그에 못지 않게 박탈당하는 자유가 많고, 꼼짝 못하게 하는 굴레를 쓰는 것이다. 결혼하면 개인의 자유는 없는 것이다.

 

'사랑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실존주의 사상의 내용  (0) 2022.06.21
사랑에 대한 책임  (0) 2022.06.21
인간답게 사는 법  (0) 2022.06.19
이혼할 때 자녀에 대한 태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0) 2022.06.19
사랑학이란 무엇인가?  (0) 2022.06.1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