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사면권이 남용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
가을사랑
정부는 55명에 대한 설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사면안은 사면법에 따라 법무부장관이 국무회의에 안건으로 상정하고, 심의 의결한 후 대통령이 재가한 것이다.
그동안 모든 정권에 있어서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은 언제나 중요한 정치적 쟁점이 되었다. 수많은 논란이 있고, 비판이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사면권을 지나치게 남용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특히 부정부패사범과 권력형 비리사건, 기업인들의 거액의 재산범죄 등에 대해 기준 없이 그냥 사면함으로써 일반 국민들로부터 권한남용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물론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대통령 고유권한이다. 하지만 사면의 취지는 엄격한 법집행을 무조건 함으로써 법에서 추구하는 이념과 국가나 국민이 추구하는 다른 이념과 사이에 생기는 갈등을 조정하고, 법의 이념인 정의와 합목적성을 효율적으로 조화시키려는데 있다.
사면은 법을 위반하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아무 이유 없이 그들의 형사책임을 감면해주거나 징역을 사는 것을 면제해주는 제도가 아니다. 대통령이 제왕적인 입장에서 특전이나 은전을 베풀도록 하는 제도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헌법에 입각해서 헌법의 이념에 따라 사면권이 행사되어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사면권을 남용하거나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경우 발생하는 폐단은 어떠한 것이 있을까?
첫째, 국가의 법질서가 무너지게 된다. 실정법을 위반하여 재판을 받고 징역을 살고 있는 중대한 범죄인을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사면해서 풀어주고 복권시켜주면 부정부패사범이 근절될 수 없다.
우리나라의 부정부패가 근절되지 않고 다른 선진국에 비해 부정부패지수가 높은 이유는 검찰에서 철저한 수사를 하지 않고, 법원에서 가벼운 처벌을 하며, 더 나아가 대통령이 부정부패사범을 특별사면해주기 때문이다.
형집행은 사법단계의 마지막 절차이며, 법과 질서를 지키는 최후의 수단이다. 그런데 이런 법집행과정이 대통령의 사면권에 의해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사회에서는 더 이상 법과 질서가 지켜지지 않는다.
둘째, 대통령의 사면권이 남용되면 심각한 형평성의 문제가 야기된다. 이번에 55명이 특별사면되었는데, 그들의 선정기준은 무엇인지 명백하지 않다. 그들을 선정한 기준에 과연 55명만 될 것인가?
그것도 의문이고, 더 나아가 사면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수감자들과의 형평성은 더 큰 문제이다. 결국 특별사면은 그야말로 아주 특별한 사면할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예외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국에 수감되어 있는 수많은 수감자들, 이미 형을 모두 집행받고 나온 사람들과의 불공평성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 유전무죄라는 자조적이며 냉소적인 말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사법에 대한 불신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유권무죄(有權無罪, 권력이 있으면 무죄라는 의미)라는 말, 유권불집행(有權不執行)이라는 말이 더욱 확대되면 큰일이다.
지금도 교도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석방을 탄원하고 있다. 그 의미도 잘 모르면서 특별사면, 일반사면, 감형, 복권 등을 기다리고 있는 범죄인들이 너무도 많다. 그런데 주로 정치인, 대기업인 등을 중심으로 부정부패사범을 55명 선정해서 연초에 설을 맞아 풀어준다는 것은 일반국민들에게 주는 실망감이 너무 클 것이다.
원래 사면제도는 국민의 대통합 차원에서 모든 범죄인을 대상으로하는 일반사면에 중점이 두어져야 한다. 일반사면이라 함은 범죄의 종류를 지정하여 이에 해당하는 모든 범죄인에 대하여 형의 선고의 효과를 전부 또는 일부 소멸시키거나 형의 선고를 받지 아니한 자에 대하여 공소권을 소멸시키는 것을 말한다. 일반사면은 대통령령으로써 하되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치고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한다.
이러한 일반사면을 통해 대다수 국민들이 혜택을 볼 수 있어야 진정한 사면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것이다.
사면법은 사면의 중대성에 비추어 법이 너무 간단하게 되어 있다. 이번 기회에 사면법을 대폭 손질해서 사면권이 남용되지 않도록 정비해야 한다.
사면심사위원회제도를 새로 신설해서 운영하고 있다고 하지만, 정말 내실있는 위원회 운영을 해서 대통령의 사면권이 남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