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경이로움 [6]

 

 

 

버스를 타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 오래 탕속에 있을 수 없었다. 서둘어 온천에서 나왔다. 외딴 곳이라 택시 잡기가 어려워서 타고간 택시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온천으로 오라고 했다. 내릴 때 택시 기사의 핸드폰 번호를 알아놓았던 것이다. 택시 기사는 온다고 해 놓고 곧 바로 오지 않았다. 버스 시간에 맞추어야 하는데 초조했다.

 

기다리고 있는데 택시 한대가 들어왔다. 나는 예약한 택시인 줄 알고 그 앞으로 갔다. 그랬더니 택시 안에서 손님이 내린다. 시간이 없어 그 택시를 타기로 하고, 예약한 택시는 취소하기로 했다. 친구가 화장실에 갔다 오더니 일단 택시를 탔다. 그런데 우리가 막 나오는데 어떤 택시가 한대 들어오고 있었다. 그 예약한 택시 같았다.

 

친구는 일단 택시 기사에게 세워달라고 했다. 우리가 탔던 택시에서 내려 예약한 택시를 타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미안하게 되었지만 그냥 탔던 차를 타고 가고 그 예약했던 기사에게는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하자고 했다. 예약헸던 차가 늦게 왔고 우리는 급한 상황이니 그냥 가도 될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친구는 고집을 부리고 나는 그냥 가자고 했더니 우리가 탄 기사도 그냥 가자고 하면서 차를 세우지 않고 달렸다. 

 

그러자 친구는 기사와 나에게 그러면 되느냐고 화를 냈다. 예약을 했으면 기다려야지 다른 차를 타고 가면 그 기사는 애써 우리한테 왔다가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느냐는 말이었다. 말인즉 옳지만 당시 상황이 예약택시를 기다리가가 혹시 늦으면 버스 출발시간에 늦고 그러면 단체행동을 하는데 있어서 미안할 것 같아서 그런 것 아니냐고 양해를 구했지만 말을 하다 보니 친구는 더욱 화를 냈다.

 

내 입장이 가운데서 난처했다. 기사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친구가 예약을 해 놓았고, 기다리다가 시간이 늦을 것 같아 내가 다른 택시를 잡았고, 친구는 화장실에 갔다나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그냥 택시를 탔던 것인데, 그 때 마침 예약했던 택시가 들어왔던 것이어서 친구가 주장하는 건 모두 맞는 말이었다. 

 

한 10분 타고 가면서 친구는 택시 기사에게 같은 기사끼리 그러면 되느냐고 자꾸 잔소리를 되풀이했고, 나는 가운데서 내가 잘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을 살면서 어려운 상활이 이런 것이었다. 친구는 예약했던 택시 기사에 대해 무척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버스 시간에 늦을까봐 미안하지만 급한대로 다른 택시를 잡았다. 택시 기사는 일단 승객이 탔으니까 그냥 가자고 했던 것이다. 예약한 택시 기사에게는 미안하다고 전화를 해주었다. 시간이 급해 기다리지 못했다는 사정 설명을 했다.  

 

버스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다들 지친 표정이었다. 다행이 시간을 맞춰 도착했다. 버스는 정확하게 3시에 출발했다. 모두들 프로라 그런지 시간을 어기는 사람이 없었다. 버스가 떠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속초의 빗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는 매우 위험해 보였다. 빗길을 빠른 속도로 달리니 불안하기도 했다. 차창 밖으로 들판에 벼가 잘 자라고 있었다. 그 초록색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느꼈다. 들판에 서있는 시골집들이 정겹게 보였다. 더위를 잊은채 매미소리를 들으며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평온함을 느꼈다.

 

차가 서울에 도착하니 8시가 되었다. 몹시 지친 상태였지만 그래도 좋은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체로 하지 않으면 혼자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야간산행이었다. 인생이란 마음 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거기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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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경이로움 [5]

 

 

 

정말 대청봉에서 내려오는 길은 너무 멀었다. 돌이 많아 돌길을 걸어야 했다. 바위를 밟고 내려오는 건 정말 힘이 들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리고 아프고, 발바닥이 제일 아팠다. 발가락도 아팠다. 등메 맨 배낭도 무겁게 느껴졌다. 경치도 나중에는 너무 많이 보니 싫증도 났다. 이제 제발 그만 걸었으면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앞으로 더 가야할 시간에 대해 모두 달랐다. 너무 차이가 났고 부정확했다. 다들 자기 기준에 의해 말하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얼마 남았다는 이정표도 생각과 너무 차이가 있었다. 너무 지쳐 내려오는 속도가 늦기 때문이었다. 힘이 다 떨어져 내려가는 사람과 힘이 넘쳐 올라오는 사람의 차이였다.

 

나중에는 지치고 지쳐 아무 것도 생각이 없었다. 빨리 타를 탈 수 있는 곳에 도착하기만을 바랬다. 비선대까지만 가면 택시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막상 비선대에 가보니 그게 아니었다.

 

비선대는 정말 커다란 바위가 있었고, 경치가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많이 그곳에서 좋은 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다. 비선대에는 바로 옆에 커다란 식당이 하나 있었다. 팥빙수를 하나 먹었다. 시원했다.

 

비선대를 지나서도 한참을 걸어야 했다. 신흥사까지 가는 표지판이 보였다. 그곳에도 차는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국립공원내이기 때문이었다. 걸어도 끝이 없었다. 지친 몸이란 그런 것이었다.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냥 조금씩 비를 맞고 걸었다.

 

마침내 신흥사에 도착했다. 비가 내리고 있었어도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였다. 시간을 보니 오후 1시 30분이었다. 나는 무려 11시간이나 걸었던 것이었다. 기록이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냥 멋도 모르고 시작했다가 중간에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 하는 수 없이 따라갔던 산행이었다.

 

전쟁이 나서 피난을 가면 이럴까? 군대에서 유격훈력을 받던 생각이 났다. 그때도 야간행군을 했다. 그때는 젊어서 그것을 견뎠을 것이다. 나이 들어 이런 산악회에 따라가지 않으면 결코 혼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을 해낸 것이었다. 발바닥은 아프고 몸은 피로에 지쳐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었어도 마음은 보람에 차 있었다. 설악동에 나가니 모처럼 차들이 보였다.

 

서울 가는 버스는 3시 정각에 출발하기도 되어 있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택시를 타고 온천으로 갔다. 택시요금이 5,800원 나오는 길이었다. 한 10분 정도 걸렸다. 급하게 온천을 하기로 했다. 피로를 풀어야 했고, 몸에 땀이 많이 나서 씼기도 해야 했다. 

 

그곳 온천물도 미끈미끈한 게 아주 좋았다. 입장료가 4,000원인데 수건도 두장이나 준다. 탕안에서 밖을 보니 소나무가 가득히 서있는 야산이 보였다. 소나무와 풀들을 바라보며 따뜻한 물 속에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순간의 행복이었다. 모든 것을 잊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시간이었다.

 

목욕탕 내에는 손님들이 별로 없었다. 5명 정도가 있었다. 한 젊은 남자가 탕 안을 그냥 걸어다니고 있었다. 가슴에 유난히 털이 많다. 그걸 과시하러 다니는 것일까? 어떻게 가슴에 그렇게 털이 많이 났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미국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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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경이로움 [4]

 

 

 

대청봉에서 조금 내려오면 산 꼭대기에 산장이 있었다. 그곳에서 컵라면을 팔고 있었다. 생수도 파는 곳이었다. 아침 7시가 되어 그곳에 도착했다. 그 산장까지는 사람이 도저히 물건을 들고 올라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부근을 보니 헬리콥터 착륙장이 있었다. 헬리콥터를 이용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판매창구가 문이 닫혀 있었다. '식사중이니 기다리세요'라는 표지가 있다. 한 10분을 기다려도 문을 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햇살은 따갑게 비취고 기다릴 곳도 마땅치 않았다. 컵라면을 먹지 못하고 그냥 하산을 시작했다.

 

먹을 것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아 배낭 속에는 먹을 것이 별로 없었다. 산행에는 물이 절대로 필요하고 먹을 것을 많이 준비하는 게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물만 먹으니 기운이 빠지고 콘디션이 좋지 않았다. 작은 귤이 좋은 것 같았다. 안내원이 몇 개를 주어 맛있게 먹었다.

 

내려오는 길은 대청봉에서 비선대를 향해 오는 코스였다. 처음에는 내려오는 길은 별 것 아닐 거라고 쉽게 생각했다. 그런데 내려오는 길이 장난이 아니었다. 가파른 길에 돌이 너무 많았다. 대부분 들을 밟고 내려와야 했다. 등산화를 신고 등산 양말을 신었지만 발이 무척 아팠다. 무릎에 무리가 갈 것 같기도 했다. 빨리 걸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산에서 내려오는 것은 올라가는 것에 비하면 수월한 일이다. 힘들게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위안을 했다. 저 사람들은 언제 정상에 올라갈 수 있을까? 나는 이미 정상을 맛보고 고생을 마치고 내려오고 있다는 생각에 흐뭇했다.

 

인생이란 것도 저런 것일게다. 힘들게 올라가는 사람은 나름대로 보람이 있다. 정상에 오른다는 꿈이 있고, 목표가 있다. 희망이 있다. 그래서 힘이 들어도 열심히 노력을 한다. 앞만 보고 올라간다. 내려오는 사람을 별로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내려오는 사람은 그냥 내려오는 것인가 보다하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작은 월세방에서 시작해도 꿈이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수백 평의 재벌 집에서 사는 것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전철을 타고 다녀도 자신의 의지만 있으면 꿀 수 있는 꿈이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서 꿈이 없는 사람보다 훨씬 행복하다.  

 

내려오는 길은 무척 멀고 길었다. 아무리 가도 끝이 없었다. 대청봉에서 한참 동안은 산 등성이를 타고 내려오다가 중간부터는 설악산 계곡을 따라 길게 내려가는 것이었다. 어느 폭포의 웅장한 규모에 놀랐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고 감탄했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에 새삼 놀랐다. 어째서 이런 경치 좋은 곳을 이제서야 보게 되었을까? 

 

중간에서 만난 오련폭포(五漣瀑浦)도 폭포가 5개나 연달아 있었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그런 곳에 사람들이 다닐 수 있게 철계단을 설치해 놓은 것도 정말 대단해 보였다. 세계적인 관광명소임에 틀림이 없었다. 설악산의 계곡을 흐르는 물은 정말 깨끗했다. 전혀 오염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존돼 있었다. 

 

내려 오면서 어느 산장에서 계곡물에서 잠시 쉬었다. 물이 얼음물처럼 차가웠다. 이 더운 여름날 그토록 차가움을 느낄 수 있다니, 자연이란 얼마나 대단한가를 새삼 느껴 보았다. 그 산장에서 황도통조림과 연양갱을 먹었다. 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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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봉 정상에 오르다

 

가을사랑

 

2005년 7월 24일, 한참 더울 때 대청봉 등산을 떠났다. 새벽 2시 30분 우리 일행이 탄 버스는 오색매표소에 도착했다. 그 시간에도 매표소에서 표를 파는 직원이 있었다. 얼마나 힘든 야간근무일까 생각했다. 건강관리를 위해 새벽부터 등산을 시작하는 사람과, 직업으로 새벽에도 입장권을 팔고 있는 사람의 차이를 생각해 보았다.

 

아주 캄캄한 밤에 등산을 시작했다. 그래도 사람들을 따라가니 무섭지는 않았다. 후랫시 하나에 의지하면서 험한 산길을 올라가야 했다. 사람들은 잘 걸었다. 많이 산행을 해본 사람들이라 달랐다. 나도 힘겹게 따라갈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지치고 힘들고 피곤해도 어쩔 수 없었다.

 

뒤쳐지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안내하는 여자 가이드 직원이 맨 후미에서 도와주고 있었다. 캄캄한 밤에 산길을 오르는 건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이를 악물고 올라갔다. 후랫시는 의외로 산행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머리에 다는 후랫시를 준비해 왔다. 어떤 것이 잘 보이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사용한 것은 휴게소에서 산 5천원짜리 후랫시였다.

 

오색에서 출발한 우리는 대청봉까지 올라가는 코스를 따라 등산을 했다. 거의 4시간이 걸렸다. 물만 많이 마시고 올라갔다. 새벽 5시 30분 정도가 되니 이제는 후랫시가 없어도 걸을 수 있었다. 한밤중에 시작한 길이 시간이 가면서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고 어둠이 걷히는 광경을 직접 보고 느낀다는 건 정말 경이로운 체험이었다.

 

밤을 꼬박 새우고 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또한 소중한 체험이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중간에 포기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한밤중에 산에 올라가 되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고, 중간에 다른 길로 내려올 수도 없었다. 뒤에 처지면 무서워서 빨리 따라가야 했다. 세상에는 이렇게 강요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자신의 의지로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사람은 누구나 무슨 일이든지 하게 된다.

 

밤이 깊은 시간에는 산새도 조용히 있었다. 풀벌레들도 숨을 죽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침묵하고 있었다. 우리는 거의 말을 하지 않고 힘들게 올라가고만 있었다. 말을 할 상황도 아니었다. 너무 힘이 들어 그냥 올라가기에도 바빴다. 다른 여유가 없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머리속도 모든 것이 정지해 있었다.

 

올라가면서 나는 지금 이 시간이 오후 시간인 것으로 착각할 때가 많았다. 특히 시간을 확인해 보면 더욱 그렇다. 6시고 7시고 하는 것이 그랬다. 마치 외국 여행 때 시차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중에 대청봉 정상에 이르기 직전 30분 간은 정말 힘이 들었다.

 

마침내 나는 대청봉 정상에 올랐다. 양양군이었다. 정상에는 1,708미터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정말 힘들게 올라왔다. 등산을 잘 하는 사람은 오색에서 대청봉 정상까지 2시간 반이면 올라온다고 한다. 나는 4시간 가깝게 걸렸다. 새벽 6시 반이었다. 정말 장관이었다. 주변에 보이는 산들의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금강산을 굳이 갈 필요가 없었다.

 

산 정상에는 잣나무가 아주 작은 키로 자라고 있었다. 무슨 이름이 있었는데 잊어버렸다. 내 생애에 또 올라올 기회가 있을까 싶었다. 너무 힘든 코스라 다시 올 엄두는 나지 않았다. 정상 주변의 산등성이에는 마치 정원을 꾸며놓은 것처럼 나무들이 고르게 꽉 차있었다. 전혀 여백이 없는 순초록의 생명의 숲이 넓게 펼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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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는 산악회에서 모집한 사람들 41명이 탔다. 빈자리는 하나도 없었다. 한줄에 4명씩 10줄이고 맨끝에 한 자리가 더 있다. 나에게는 41번 자리가 주어졌다. 늦게 예약을 해서 그런 것 같았다. 맨 뒷줄 가운데 자리는 앞이 훤하게 비어서 다리를 편하게 뻗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버스가 급정차하면 앞으로 나가 떨어질 것처럼 보였다.

 

회비는 한사람에 3만원이었다. 무박 2일 코스다. 처음 해보는 야간산행이었다. 버스에 탄 사람들을 보니 모두 등산에 프로처럼 보였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었다. 내가 제일 나이가 많은 것처럼 생각되었다.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 등산을 한다고 생각하니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들어 힘도 딸리고 체력도 딸릴텐데 저 사람들을 따라갈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왜 젊었을 때 이런 등산 같은 것에 취미를 못붙이고 살았을까? 일만 열심히 하고 술이나 마시고 살은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등등의 후회 비슷한 회한을 느껴보기도 했다. 다 부질 없는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좀 더 재미있게 취미생활을 하면 될 거라고 위안을 했다.

 

일부 사람들은 코펠까지 준비해서 산에 올라가 밥도 해먹을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배낭도 보니 내것보다 컸다. 안내원은 등산 코스가 다른 사람도 있다고 했다. 더 어려운 코스를 도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그냥 기본적인 코스를 산행하는 것이다. 안내원은 여자 한 사람이었다. 제일 후미에서 길안내를 해주겠다고 했다. 등산을 잘 하는 사람들은 알아서 자신들의 코스를 돌아 나중에 버스에서 만나면 된다는 것이었다.

 

버스는 밤길을 달리고 있었다. 밤이라 어디로 가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한참을 달려 버스는 클린턴 휴게소에 도착했다. 왜 미국 대통령 클린턴 이름을 따서 휴게소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겠다. 아직 한국 대통령을 지낸 사람들의 이름을 딴 휴게소는 없는 상황이 서글프기도 했다.

 

한국에서 대통령을 지낸 사람들이 대부분 존경 받지 못하고 비아냥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다. 앞으로는 우리 사회에도 존경 받는 대통령, 대법원장, 국회의장 등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사회 각 분야에서도 역사적으로 존경 받고 귀감이 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청계산 등산을 할 때도 물을 많이 먹고 저녁을 급하게 먹어서 그런지 배가 아팠다. 콘디션이 나빠 등산이 걱정되었다. 단체로 버스를 타고 가는데 배가 아파 휴게소까지 남은 시간을 따지고 초조하게 기다리는 시간은 정말 고역이었다. 남에게 말 못할 상태로 힘든 시간을 참고 버텨야했다. 등산을 할 때는 비상약도 필요한 것이었다.

 

산행 시작 전 마지막 휴게소에서 모든 걸 준비하라는 안내원의 설명이 있었다. 그곳에서 우동을 한 그릇 먹었다. 그리고 후랏시를 샀다. 후랏시는 산행용인데 4천원이었다. 손에 쥐기가 쉽게 만들어졌다. 쵸콜렛도 하나 샀다. 물을 사고 장갑도 샀다. 이제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처음하는 야간산행을 하기 위해서였다.   

 

 


어느 농장에서 자라고 있는 아름다운 풀꽃들이다. 이름은 잘 모르겠으나, 그 은은함이 눈에 들어온다. 어느 꽃이던 그 자체로서 보아야 한다. 다른 꽃과 비교하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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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경이로움 [1]

 

 

개미 같은 인생이 볼 때 세상은 참으로 넓다. 아무리 잘난 척 해도 좀 더 넓게 보면 참으로 별 것 아닌 존재가 인생이다. 사람의 안목이란 그래서 자꾸 넓혀 나가야 한다. 우물안 개구리처럼 살면 끝내 좁은 인생이 된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속알머리 좁은 사람이 되고, 걸핏하면 화를 낸다.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자신의 인생을 불평 불만으로 가득 채운다. 그건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가급적 시간을 내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 보자. 그러면 얻는 것이 많아진다.  

 

지난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까지 매일 재판이 있어 몹시 바빴다. 사건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마음도 편치 않았던 시간들이었다. 북부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서울중앙지방법원 항소심 재판에 참석했다. 나는 그러한 재판들을 통해서 많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우리나라 재판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새삼스럽게 느껴보기도 했다.

 

모든 사건들이 당사자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일들이었다. 그런 사건의 비중 때문에 나는 많은 신경을 썼다. 그래서 금요일 오후가 되니 새로운 기분전환을 하고 싶어졌다. 일주일 동안에 쌓였던 피로를 풀 필요성도 느꼈다. 신경을 많이 쓴 대신에 이번에는 몸을 많이 써서 균형을 잡고 싶었다.

 

금요일인 7월 22일 오후 5시 반에 나는 청계산 산행을 시작했다. 더운 날씨였지만 그래도 산에 오르면 기분이 좋다. 산 속에는 나무가 많아서 그런지 도심지 한복판보다는 덜 덥다. 이젠 울창해진 숲속에서 7월의 성숙함을 한껏 느껴본다. 산으로서는 가장 좋은 때인것처럼 보였다. 장마를 통해 산에는 물도 많이 저장되어 있었다. 나무들이 마음껏 수분을 빨아들여 풍성해 보였다. 마치 부잣집 광처럼 풍요로움이 넘치고 있었다.

 

숲속을 보면 바닷가의 모래알보다 나뭇잎이 더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모래알처럼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만난 인연 보다는 숲 속의 나뭇잎처럼 수 없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만난 인연이라고 비유하는 게 더 나을지 모른다. 더군다나 모래알은 변하지 않지만, 나뭇잎은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새 잎으로 바뀌는 것이 사람의 일생과 비슷하다. 지금은 저 푸른 잎이 몇 달 지나면 갈색으로 변해 말라 비틀어지고 결국 나무가지에서 떨어져 낙엽으로 굴르고 말 것이다.

 

이젠 자주 올라다녀 익숙해진 청계산 매봉까지 올라가는 길은 나에게 매우 친숙한 느낌을 준다. 마치 내 정원 같기도 하다. 산은 자주 접하는 사람이 주인이다. 자주 올라다니면서 나무들을 바라보고 바위에 걸터 앉는 사람이 임자다. 500개가 넘는 나무계단도 이젠 익숙해졌다. 구청에서 보수 공사를 한 것 같기도 하다. 몇 군데 나무 주변에 흙을 돋구어 놓았다.

 

산에 오를 때마다 나는 등산로를 다듬어 놓은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해 본다. 맨 몸으로 올라가기에도 힘든 데 어떻게 저런 공사를 해놓았을까? 그들이 흘린 피와 땀으로 우리는 아주 편하게 올라다니는 것이다. 그들의 숨은 노고를 고맙게 생각해 본다.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별로 쉴 틈도 곧 바로 택시를 타고 서초구민회관 앞으로 갔다. 버스는 10시 20분에 출발한다. 단체행동이라 시간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되고, 시간을 어기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초구민회관 앞에는 야간산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모여 버스를 기다리는 곳이었다. 원래 동대문에서 출발하지만 이곳에서도 일부 사람들을 태우기 위해 정차한다.

 

밤 10시 20분경 나는 새하나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친구 한 사람과 함께 야간산행을 하기로 한 것이다.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따라가기로 한 것이다. 어렵드라도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다 그렇고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등산인데 그냥 따라가면 할 수 있을 거라고 편하게 생각했다. 일종의 만용이고 배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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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으로부터 밤 늦게 전화 상담을 받았다. 사정이 급한 사람은 밤이고 낮이고 없다. 사건 때문에 답답하면 전화로 상담을 해 온다. 처음에는 귀찮은 생각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보니 사건 때문에 불안하고 답답한 심정에 있는 사람은 한 시간이 급하고 일초를 기다리기 어렵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아무 때고 전화 상담이 오면 친절하게 받아준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실제로 상담 결과 진심으로 고맙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말을 들으면 공연한 인사말이라도 아주 기분이 좋아진다.

 

전화상담을 요청한 사람은 15년 살던 부인을 간통죄로 현장에서 잡아 경찰서에 넘긴 남자였다. 부인이 바람을 피는 것을 직감으로 느끼고, 증거를 잡기 위해 무척 고생을 했다고 한다. 사실 뱀이 지나간 자리, 강물이 흘러간 자리 같은 남녀 사이의 정사를 입증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불륜의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남의 눈을 피해서 은밀한 곳에서 불을 끄고 정사를 벌이기 때문에 그 직접 증거를 발견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애당초 우리나라 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간통죄는 법률적인 입증이 거의 불가능한 것을 전제로 만들어 놓은 특수한 범죄(crime)다. 배우자 있는 사람이 배우자 아닌 다른 이성과 성교를 해야 처벌되도록 해놓은 것이 형법 제241조다. 성교를 해야만 기수가 되고 범죄가 완성된다. 미수범이나 예비행위를 처벌하지 않는다.

 

사랑한다거나 서로 껴안고 있거나 잠을 함께 잤다고 해서 처벌되는 건 아니다. 심지어 방을 얻어 동거를 하고 있어도 성교를 하지 않았다고 하면 선뜻 처벌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오랄섹스도 처벌대상이 되지 않는다. 형법제정자들은 1953년 제정 당시 오랄섹스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과거에는 피의자나 피고인의 인권이 철저하게 보호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녀가 한방에서 하루밤을 보냈다면, 그냥 법원에서 성교를 한 것으로 인정하고 처벌하기도 했다. 경찰이나 검찰에서도 그 정도면 어렵지 않게 자백을 강요했고 실제로 자백을 받아 처벌했다.

 

그러나 이러한 법집행기관의 태도는 다른 범죄에서와 마찬가지로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한다는 형사소송법의 일반 원칙과 기준이 적용되고, 특히 간통죄에 대한 형사정책적인 폐지논의가 가속화됨에 따라 180도 달라졌다. 간통죄를 폐지하자는 논의는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간통죄를 처벌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을 제시해왔다. 그래도 아직까지 간통죄는 폐지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간통죄의 입증에 있어서 아주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게 되었고, 무리한 수사나 강압적인 수사를 하지 않게 되었다. 상담을 해온 남자는 자신이 모텔을 찾아 부인과 외간남자가 함께 있는 것을 잡았는데, 경찰관은 산부인과검사도 하지 않고, 그냥 경찰서에 데리고 가서 조사만 하고 풀어주었다는 것이었다.

 

고소장도 제출하고 이혼심판사실확인서도 모두 제출해 고소의 요건을 다 갖추었는데도 경찰관은 구속할 의사도 업이, 그냥 피의자들을 돌려보냈다는 것이었다. 고소인으로서는 그러한 경찰관의 태도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소한 남자가 항의를 했더니 경찰관은 요새 간통죄는 그렇게 처리한다고 하면서 아마 벌금 정도를 낼 것이라고 했다. 고소인은 나에게 전화를 해서 왜 이렇게 되는 것이냐면서 간통죄에 벌금형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간통죄는 2년 이하의 징역이며 벌금형은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고소인은 나에게 경찰관이 분명히 간통죄에 벌금형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벌금으로 끝난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내가 혹시 착각을 했나 하고 법전을 찾아 보았다. 여전히 간통죄에는 2년 이하의 징역형밖에 없었다. 벌금형은 없었다. 예전에 간통죄 폐지안 대신에 벌금형을 선택적으로 넣자는 일부 의견이 있었으나 채택되지 않은 상태였다.

 

간통죄에 대한 형사처벌은 항상 많은 문제점을 가져오고 있다. 고소인의 입장에서는 바람 핀 사람들을 징역 보내야 시원하겠지만,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또 억울하게 생각하는 측면이 있다. 어려운 문제다. 나는 전화 상담을 요청해 온 사람에게 여러 가지 설명을 해주었다. 그는 나중에야 간통죄 처벌에 관한 수사 및 재판 현실을 이해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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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의 여름 한낮은 무척 더웠다. 길을 걷고 있으면 땀이 저절로 난다. 서초역 사거리에 외롭게 서있는 오래 된 향나무도 더위를 먹었는지 지쳐 있는 표정이다. 그 옆에 우뚝 서있는 대법원 건물과 대검찰청 청사가 눈에 들어 온다. 보이지 않는 법의 상징이다.

 

오늘도 몇 사람은 억울하다는 피켓을 들고 대검찰청 정문 앞에 서있다. 더운 날씨에 하루 종일 서있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법과 정의의 실천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다.

 

오후 2시에 고등법원에서 형사재판이 있었다. 나는 가방에 서류를 넣고 걸어갔다. 햇살이 따갑다. 더웠지만 나는 별로 더위를 타지 않는 편이라 참을만 했다. 한참을 가는데 갑자기 양복 단추가 하나 떨어졌다. 단추 하나가 떨어지니 밑에 단추 하나만으로 상의를 잠구기가 곤란했다. 달리 응급처치를 할 수도 없었다. 법정에 가니 내가 제일 먼저 도착했다.

 

조용히 앉아 기록을 보고 있었다. 어떤 변호사가 와서 인사를 한다. 예전에 내가 근무하던 어느 청에서 시보생활을 했다고 한다. 기억이 났다.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어느 변호사와 연수원 동기로서 그 당시 함께 그 청에서 시보를 했다는 것이다. 세월이 빠르다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벌써 14년 전의 일이다.

 

재판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 변호사에게 먼저 변론을 하라고 양보했다. 그 변호사는 사선이 아닌 국선사건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3건의 사건을 국선변론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 보았다. 재판장은 머리가 반백이었다. 오래 된 법조 경력이 몸에 배어 있었다.

 

재판 받는 피고인들은 몹시 경직되어 있었다. 사실상 마지막 재판인 고등법원 항소심에서 무언가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재판구조상 그런 변명과 변론이 과연 얼마나 충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는 의문이다. 그래서 지금 사법제도개혁이 한참 진행중이다.

 

내가 맡은 사건의 피고인이 출석했다.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입장이다. 사회에서는 엘리트였다. 직장 내에서 인정 받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신망을 받던 사람이다. 어떻게 사모펀드를 운영하다가 커다란 손해를 보고 원금을 못돌려주니 사기죄로 몰려 재판을 받고 있는 입장이다.

 

1심에서 실형을 받아 항소심에서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해 억울함을 밝혀야 할 상황이다. 그 초조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낭에게 모든 걸 의지하고 있었다. 다음 재판은 8월 중순으로 잡혔다. 나는 그가 풀려날 때까지 머리가 무거울 것이다. 어깨가 무거울 것이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법정 밖으로 나왔다.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은 덥다고 난리들이다. 그렇게 여름은 진행되고 있었다.  

 

 


여름이 한참이다. 이젠 장마도 끝나고 뙤약빛이 따갑다. 저기 보이는 논에는 벼가 한참 익어가고 있다. 우리 사랑도 따사로운 햇살에 벼처럼 익어가고 있다. 그 앞에 예쁘게 피어있는 노란꽃은 사랑이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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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에 민사재판이 있어 북부지방법원에 갔다. 강변도로를 따라 갔는데 태릉쪽으로 빠져 나가 보니 길이 복잡했다. 몇 번 가보았는데 막상 그 부근에 가서 사람들에게 세번이나 물어보아야 했다. 북부지방법원 앞에는 담 앞으로 길게 노상공영주차장이 있었다. 10분에 500 원씩이다. 9시 40분경에 도착하니 차들이 한 두 대 빠져나가고 있었다. 다행이 차를 주차시킬 수 있었다. 주차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판이다.

 

법원 앞에는 변호사, 법무사 등의 간판이 매우 어지럽게 붙여져 있었다. 미국에 다녀 보면 법원 앞에 우리나라처럼 변호사 간판이 어수선하게 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굳이 그렇게 이름을 크게 붙여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할 필요가 있을까? 하기야 의뢰인들이 사무실을 찾아오기 쉽게 하려면 그렇게도 해야 겠지만, 아무래도 안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법원 구내에는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웬 일들이 그렇게 많은지, 사람들은 법원에 와서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대부분은 분쟁 때문에 찾아온 사람들이겠지만. 북부지방법원은 청사가 오래되었고, 자꾸 건물을 증축해서 그런지 어수선한 분위기다. 남부나 서부, 의정부와는 완전히 분위기가 다른다. 

 

법정에 들어가니 15분전이었다. 개정을 하려면 15분을 기다려야 한다. 방청석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기다리면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 표정들이 모두 심각하다. 법복을 입은 판사 세 사람이 들어왔다. 근엄한 표정들이다. 간단한 판결 선고 후에 사건심리가 시작되었다. 

 

내가 맡은 사건은 상대방이 폐문부재로 소장 송달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주소를 보정해서 소장이 송달되도록 해야 할 입장이다. 상대방은 전략상 소장을 수령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민사재판이 오래 걸리는 이유가 바로 이런 점 등에 있다. 상대가 있으니 일방적으로 진행할 수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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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검사

 

 

어떤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나와 동갑이었다. 사업 수완도 있는 사람이다. 그녀는 남편이 구속되자 남편을 구속집행정지로 석방시키려고 백방으로 노력하던 중 의사에게 손을 썼다는 이유 등으로 구속되었다.

 

원래 법이 부부를 같이 구속시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부부를 동시에 구속시키면 가정이 완전히 파탄나고 옥바라지를 할 사람이 없어 매우 비인도적이기 때문이다. 부자나 형제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법률규정에는 명문으로 되어 있지 않지만 한국적 풍토법이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녀는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다가 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또 구속되어 징역형을 받았다. 나는 그녀가 구속되어 있는 동안 두 차례 만나 위로를 했다. 인간적인 배려였다.

 

그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하는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다가 자신도 구속되니 고생도 고생이지만 남편을 면회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남편의 재판이나 감옥생활을 뒷바라지 하기도 어려워졌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가? 구체적인 사건 내용이야 어떻튼 검사나 판사들이 아주 가혹해 보였다. 인정 사정이 없어 보였다. 내가 직접 변론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용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일견 상식적인 판단은 그랬다. 

 

어느 가난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했다. 그는 그 여자와 아이를 낳았으나 생활이 너무 어려워 궁여지책으로 화폐를 위조했다. 당시 화폐위조죄는 사형에 해당했으나 남자는 여자와 아이를 먹여 살리려고 목숨을 걸었다. 남자가 위조한 화폐를 여자가 사용하다가 붙잡혔다. 

 

여자를 붙잡았으나 위조화폐를 사용한 죄 외에는 화폐를 위조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 검사는 그녀의 남편이 화폐를 위조한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검사가 남편을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은 그녀의 자백을 받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남자를 지극히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신문해도 강경하게 부인할 뿐이었다. 

 

검사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검사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교묘하게 편지를 위조하여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그 여자로 하여금 남자에게 소속고 있다는 생각을 갖도록 만들었다. 야비한 수사기법이었다. 

 

여자는 배신감에 불타 남편의 죄를 고발하고 모든 것을 자백했다. 남자의 화폐위조죄는 확실하게 증명되었다. 이러한 수사방법을 들은 사람들은 검사의 교묘한 수사방법에 감탄했다. 그 검사는 여자의 질투심을 이용하여 격분한 마음에서 진실을 토로케 하였다. 복수심을 이용하여 정의를 실현했던 것이다. 여자의 남편은 공범인 아내와 함께 중죄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1802 - 1885) 가 쓴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이야기다. 나는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위 소설에서 나오는 검사를 떠올렸다. 그녀는 그래도 웃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나오면서 나는 햇살 비추이는 정원을 보며 그녀의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해는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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