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는 해가 일찍 솟아오른다. 5시도 안돼 훤하게 밝았다. 이름 모를 바닷새들의 울음소리도 잠을 깨우는 데 일조를 한다. 바다 위에 솟은 해는 힘찬 하루를 예고하고 있었다. 어두움을 떨쳐 버리고 환하게 세상을 비추고 있는 태양은 위대해 보였다.
절반의 시간 동안 태양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엔가 숨어버린다. 그 위대한 태양은 일시 모든 생명을 떠나 사라져 버린다. 그래도 고대인들은 태양을 가장 위대한 신으로 숭배했다. 일시 사라졌어도 그 존재의 영속성을 믿었다. 그건 현명한 처사였다. 태양은 일시 저 지평 너머로 숨는 것일뿐 아주 사라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나는 간밤의 우울했던 기분에서 벗어났다. 밝은 태양을 바라보면서 내 마음도 가벼워졌다. 바다의 어두움을 보면서 가라앉았던 마음은 갈매기처럼 바다 위를 날고 있었다. 파도는 밤새 그치지 않았다. 끝없이 내가 있는 곳을 향해 밀려왔다. 나를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래도 나는 밀려나지 않았다.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었다. 내가 파도를 이겼다. 파도는 나에게 패배했다. 나는 파도를 이긴 승리감에 도취되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파도를 뒤로 하고 나는 산위로 올라갔다.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갔다. 얼마 안 되어 우거진 숲이 보였다. 숲은 아직 잠에서 덜 깨어 있었다. 고요했다. 땅은 비가 온 뒤라 약간 축축했다. 갑자기 벌 한마리가 달라든다. 나는 놀랐다. 벌 한마리에 내 존재는 동물적으로 방어태세를 취해야 했다. 물리지 않기 위해 피할 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 커다란 등치가 아주 작은 벌 한마리에 위협을 느끼다니 자연의 법칙은 그런 것이었다.
새벽의 숲속은 무슨 들짐승이 뛰쳐 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아무도 없는 산속을 계속 걸을 수는 없었다. 나는 방향을 돌렸다. 조금 내려오니 바다가 보였다. 푸른 바다가 넘실대고 있었다. 사실 바다 속은 더 무섭다. 사람이 빠지면 순식간에 물고기가 달라들어 해체시킬 것이다. 땅 위보다 그런 점에서는 더 심하다.
오따루 수족공원에서 본 쇼가 생각났다. 물개들 쇼를 보여주는데 20센치미터 정도 되는 물고기를 한번에 다섯마리씩이나 준다. 그러면 물개들은 순식간에 그 물고기들을 받아 삼킨다. 별로 씹지도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냥 삼켜버리면 소화가 되는 모양이다. 펭귄들도 마찬가지였다. 덩치는 별로 크지 않은데 조련사들이 주는 물고기를 그냥 여러 마리를 통채로 삼켜버리고 있었다.
산 밑에는 작은 집들이 많이 있었다. 아기자기하게 집들을 꾸며놓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나 작은 마을이나 차분히 들여다 보면 구석구석 사람들의 정성어린 손길이 쌓여 마을을 이루고 거대한 도시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갑자기 마을이 생기고 도시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나는 떠오르는 태양과 바다를 바라보면서 한 없이 겸손해지기로 했다. 자연의 위대성 앞에 무릎을 꿇었다. 산 밑의 작은 집 마당이 아기자기하게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작은 범주의 환경에 더 충실해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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