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모진 운명 6-19
명훈에 대한 강간치상사건에 관하여 구속영장실질심사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검찰청에서 명훈에게 전화가 왔다. 명훈은 만 19세가 넘은 성년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보호자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법적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 것이다.
“정명훈씨지요? 이번 주 금요일 오전 10시까지 검사실로 와 주세요.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가야 합니다. 반드시 출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변호사는 실질심사 때 법정에 가서 정명훈씨에 대한 변론을 할 수 있습니다. 담당 변호사님께도 알려드리세요.”
전화를 받는 순간 명훈은 심한 충격을 받았다. 이미 영장을 칠 거라는 말은 변호사로부터 들었지만, 정말 자신이 감방에 갈 거라는 사실에 직면하자 공황장애상태에 빠졌다.
공황장애란 뚜렷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는 불안장애를 말한다. 이런 증상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머리 속으로만 이해하기는 어렵다.
당하는 사람은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정도의 심한 고통을 겪기 때문이다. 극심한 불안과 공포심리, 그로 인해 가슴이 뛰고, 호흡곤란의 상태가 온다.
가슴은 답답하고, 어지러우며, 곧 죽을 것처럼 생각이 든다. 심한 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생기기도 한다.
사랑의 모진 운명 6-20
어떤 사건으로 인해 조사를 받다가 어느 시점부터 그 사건으로 인해 구속될 수 있다는 위험성에 처하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무섭고 두렵다. 당장 감방에 들어가면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은 극에 달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잠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1년을 살지 5년을 살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감방 안에서 폐인이 되고, 건강을 잃고, 그러다가 몇 년 있다가 나오면 그때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느끼고 고통을 겪는다. 그래서 일단은 도망갈 방법을 한번쯤 생각해 본다. 너무 무서우니까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심리다. 때문에 명훈은 자신의 사건을 맡고 있는 변호사에게 전화를 했다.
“변호사님! 큰 일 났어요. 이번 주 금요일 10시까지 검사실로 와서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으라고 해요.”
사실 명훈의 실력으로는 구속영장실질심사의 정확한 뜻이나 의미, 절차나 효과도 모르고 있었다.
명훈뿐 아니라 일반인들은 대개 마찬가지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10년 넘게 한 사람도 막상 형사소송절차에 대해서 물어보면 아무 것도 모른다. 마치 중학교 1학년 수준이다.
사랑의 모진 운명 7-1
그게 정상일 것이다. 우리가 어떤 암에 걸렸다고 할 때, 암에 대해 아무리 많은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연구를 하고, 공부를 한다고 해도 전문의사 입장에서 볼 때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다.
그래도 질병은 너무 많이 보고 들어서 어느 정도 상식을 가질 수 있지만, 형사사건은 보통 사람들은 평생 한 번도 경험하지 않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래서 구체적인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군다나 명훈이처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놀러나 다니고, 여자아이나 꼬시고 다니는 대학생은 형사절차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구속되고 감방이나 가고 하는 것이다.
구속은 알 수 있었다. 영장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실질심사의 뜻은 잘 모르겠다. 왜 심사라고 하는지, 그리고 왜 ‘형식’심사가 아니라 ‘실질’심사라고 하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 우리나라 법은 너무 어려운 한자말로 거의 대부분이 되어 있다. 요새는 더군다나 한글을 전용하고 있어 한자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특히 젊은 사람들은 한자를 모른다. 나이 든 사람들도 한자를 몇십년 제대로 쓰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읽을 줄은 알아도 한자로 쓰라고 하면 잘 쓰지 못한다.
아직도 일본에 가면 한자를 많이 쓰고 있다. 중국에 가도 한자를 사용한다. 중국 한자는 또 대부분 다르게 새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배운 한문 실력으로는 거의 읽지 못하게 되어 있다.
사랑의 모진 운명 7-2
구속영장이라고 하는 것은 수사기관에서 어떤 범죄인의 신병을 확보하여 유치장에 넣어놓고 도망가지 못하고, 증거를 없애지 못하도록 할 목적으로, 말하자면 가두어놓기 위해 법원으로부터 받는 ‘피의자를 가둘 수 있도록 법원의 허가를 받는 서류’를 말한다.
구속영장이라는 서류는 법원의 판사가 서명하는 문서다. 이 문서에는 정명훈을 강간치상죄로 구속해도 좋다는 허가사항이 들어있다.
구속영장은 검사가 정명훈을 구속하기 위하여 판사에게 청구하고, 판사가 이를 허가하는 내용으로 발부해주면 검사는 이러한 구속영장을 가지고 정명훈을 구치소에 집어 넣은 것이다. 이처럼 구속영장은 매우 무서운 효력을 가지고 있는 문서다.
보통은 두장으로 되어 있다. 앞장은 표지이고, 뒷장은 범죄사실이 기재되어 있다. 복잡한 사건의 경우에는 10쪽 이상으로 길게 되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도 판사 한 사람의 명의로 발부되었다. 구속영장에는 피의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범죄사실이 기재되어 있다.
범죄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증거자료는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사건 기록에 편철되어 있다. 이와 같은 구속영장이 발부되느냐, 기각되느냐는 피의자에 대해 결정적인 운명의 갈림길이 되는 것이다.
사랑의 모진 운명 7-3
그런데 판사가 구속영장을 발부하기 전에 피의자를 한번 불러서 억울한 사정이 있는지, 과연 구속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 구속의 요건과 필요성 등에 대해 들어보는 절차가 바로 구속영장 실질심사다.
“변호사님! 저는 구속되는 거예요? 금요일 감방에 들어가는 거예요?”
“글쎄요. 꼭 구속되는 건 아니지만, 일단 검사가 구속영장을 청구하게 되면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할 가능성이 높아요. 그러면 그날 구치소로 넘어가게 돼요. 준비를 많이 해야 해요.”
“저는 정말 강간을 하지 않았는데, 왜 구속영장이 발부될 것 같아요? 변호사님이 꼭 막아주세요. 부탁이예요.”
“이 사건은 판사가 피해자의 말을 믿느냐, 명훈씨 말을 믿느냐 하는 데 달려 있어요. 특별한 물적 증거는 없는 상태니까요. 그러나 구속영장이 발부될 지 여부는 아무도 몰라요. 판사 판단에 달려있으니까요.”
“구속될지, 불구속될지, 불확실하면 저는 일단 피해 있고 싶어요. 피해 있으면서 피해자와 합의한 다음 들어가면 안 될까요?”
“그건 곤란해요. 실질심사에 불출석하면, 판사는 그냥 피의자에 대한 심문을 하지 않고 영장을 발부할 거예요. 그러면 나중에 붙잡혀서 구속되는 거예요.”
더 이상 변호사와 말을 해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상황이었다. 전화를 끊고 명훈은 엄마에게 갔다. 명훈 엄마는 그 말을 듣자 난리가 났다. 당장 변호사 사무실로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