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모진 운명 4-29

은영은 명자를 만났다. 명자에게 지금의 진행상황을 다 이야기했다. 그리고 자신을 강간했던 악마가 명훈네 기사로 일하고 있고, 은영을 만나 협박을 한 이야기, 은영에게 돈을 받아주겟다는 이야기 등을 전했다. 명자는 놀랐다.

“그러면 어떻게 하지? 그 사람이 너의 과거를 다 이야기하면, 명훈씨도 마음이 달라질 것이고, 그 집안에서도 난리날 거 아냐?”

“일단 나는 그 사람을 모른다고 했어. 그 사람이 나를 강간했다는 사실도 딱 잡아뗐어. 오래 된 일이고, 아무런 증거가 없는 거니까? 그 사람을 나쁜 사람, 미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해. 설사 명훈 엄마나 명훈이가 물어도 나는 딱 잡아뗄 거야. 다만, 제인을 만나 그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제인도 시집가서 잘 살고 있는데 피해가 갈 수 있고, 나를 원망할 지도 몰라서 걱정이야.”

“그럼 정자에게 말해줘야 하는 거 아냐? 혹시 모르잖아. 흥신소 시켜서 정자 전화번호나 사는 곳을 알아낼 수도 있잖아? 큰 일이다. 일이 너무 복잡해지는 것 같아.”

“아냐, 정자에게는 말하면 안 돼. 놀라서 자빠질 거야. 내가 알아서 처리할 게. 더 이상 명훈네와 연락하지 않고 나 혼자 아이를 낳은 다음 연락하면 어떨까? 그때는 이미 아이를 낳았으니 어쩌지 못할 거 아냐?”

사랑의 모진 운명 4-30

며칠 후 박기사로부터 은영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은영씨, 내가 명훈 엄마에게 말했어. 1억 원을 주고 해결하겠다고. 그러니까 1억 원을 받으면 반반씩 나누어가져. 은영씨는 5천만 원이면 충분하잖아. 내가 돈을 어렵게 받아주는 거니까. 그리고 아이는 빨리 수술하고 명훈과는 헤어져. 요새 명훈 아빠가 검찰 수사를 바고 있어 곧 구속되고 회사는 부도날 것 같아. 그러면 아이를 낳아봤자 은영씨는 양육비도 못받고, 거지 아빠와 결혼하게 돼. 명훈이는 능력도 없고, 부모덕에 살다가 거지가 되는 거야. 은영씨는 5천 가지고 작은 커피집이나 하나 차려. 그리고 능력 있는 남자 만나면 돼. 알았지, 빨리 결정해야 돼. 명훈 아빠 구속되면 이 돈도 못받아.”

“걱정 마세요. 제가 직접 명훈씨를 만나서 해결할 게요.”“그건 안 돼. 명훈은 은영씨를 안 만날 거야. 내가 못만나게 했으니까. 그리고 만일 은영씨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은영씨의 과거에 대해 모든 걸 내가 폭로할 거야. 그러면 모든 게 끝이야.”

은영은 더 이상 박기사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전화를 끊고 더 이상 받지 않았다. 그리고 명훈에게 전화를 했다. 명훈은 전원이 꺼져 있었다. 명훈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명훈 엄마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은영은 메시지를 남겼다. 전화를 해달라는 취지였다. 그래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사랑의 모진 운명 5-1

명훈 아빠는 또 다시 검찰청에 출석했다. 이번에도 역시 변호사를 대동하고 갔다. 돈도 있었지만, 역시 검찰에서 특별수사를 할 때는 반드시 변호사를 데리고 가서 참여시키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조사를 받으면 일단 검찰의 분위기에 위축되고, 검사가 집요하게 물으면 공황상태가 되어서 잘 답변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변호사가 옆에 있으면 일단 안심이 되고, 중간에 쉬는 시간에 상의도 할 수 있다.

그리고 특히 조사가 끝난 다음 피의자신문조서를 읽어보고 제대로 되어 있는지 변호사가 봐주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정상석 피의자는 시청 공무원에게 돈을 준 정황이 많이 드러나고 있어요. 공무원에게 돈을 준 것을 사실대로 이야기해요. 그렇지 않으면 이 수사가 언제까지 갈 지 모르고, 회사는 부도날 위험이 있잖아요. 자꾸 공무원을 감싸고 들다가 본인에게 큰 피해가 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저는 정말 시청 공무원들에게 돈을 주지 않았어요. 그리고 내가 왜 돈을 줍니까? 적법하게 건축허가를 받았고, 설계사무소를 통해 허가를 받은 거예요. 공무원들을 만나 식사를 한 사실은 인정해요. 하지만 부정한 청탁을 한 사실도 없고, 뇌물을 준 사실은 절대 없어요.”

사랑의 모진 운명 5-2

검사는 공무원과의 만난 사실에 대해 꽤 상세하게 파고 들었다. 그리고 일부 공무원들은 명훈 아빠 말고 다른 업자들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적은 금액이나마 밝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검사는 명훈 아빠가 회사 자금을 개인적으로 윺용한 업무상 횡령 부분에 대해 계속해서 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피스텔을 사서 살게 해준 애인인 술집 마담까지 불러서 조사를 하였다.

그러면서 검사는 조사를 마치고 변호사에게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이라고 귀뜸해주었다. 사전구속영장이라 함은 검사가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영장이 발부되면, 그때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집행해서 구속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에 반대되는 말은 사후구속영장이다. 이것은 일단 피의자의 신병을 체포해서 조사를 한 다음 48시간 이내에 법원에 사후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제도다. 보통은 사전구속영장제도를 많이 이용한다. 사후구속영장은 기소중지되어 지명수배되어 있는 사람을 검거했을 때 이용하는 것이다.

검사실에서 나와 명훈 아빠는 변호사 사무실로 갔다. 변호사는 말했다.

“검사가 영장을 친대요. 시청 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사실이 있으면 협조하고 불구속으로 해달라고 부탁하는 게 어때요?”

“내가 자진해서 불면 앞으로 시청 일은 더 이상 못하게 되잖아요? 그리고 내가 필요해서 이용해 먹고, 지금 와서 내가 살자고 공무원을 구속시킬 수는 없어요.”

변호사는 명훈 아빠가 강하게 나오니까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구속에 대비해서 변론요지서를 만들겠다고 했다. 명훈 아빠는 초조하고 불안했다. 곧 구속이 되는가 싶으니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변호사님! 구속은 막아주세요. 회사가 부도나게 생겼어요. 검사님에게 잘 부탁해 보세요. 돈이 더 필요하면 드릴테니 말씀하세요. 검사님이나 부장검사님을 만나봐주세요. 같이 술자리를 만들던지, 제발 부탁해요.”

“요새 그런 건 통하지 않아요. 일단 내가 변론요지서를 만들고 열심히 할테니 기다리고 있어요.”

사랑의 모진 운명 5-3

명훈 엄마는 명훈과 함께 변호사 사무실에 갔다. 젊은 여자 변호사였다. 강 변호사는 매우 지직으로 보였다. 서른 살이 갓 넘은 것처럼 보였다. 명훈은 딱딱한 남자 변호사보다 이쁜 여자 변호사가 자기 변호사라니 기분이 좋았다.

“경찰 조사 받을 때 이렇게 하세요. 일단 모두 부인하세요. 강간한 사실 자체를 부인해요. 그리고 술에 취했지만, 완전히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다고 하면 안 돼요. 정신은 있었다고 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 여자 말은 다 증거로 인정되고, 명훈 씨 말은 아무런 증거가 되지 못하고 다 그 여자 말대로 뒤집어쓰게 돼요.”

“그럼 어떻게 했다고 말해요?”

“술을 같이 마시고, 명훈씨는 모텔에 가서 쉬겠다고 했더니 그 여자가 데려다 주었고, 잠깐 같이 방에 있다가 그 여자가 가겠다고 해서 조금 더 있다 가면 좋겠다고 손을 잡았더니, 화를 내면서 뿌리치고 나갔다고 하세요. 그리고 곧 있다가 그 여자가 친구를 데리고 와서 맥주집으로 끌고 가서 난리를 치면서 부르는대로 쓰라고 하고 사인을 했다고 해요. 아무런 증거가 없잖아요. 서로의 주장이 다르고 의심스러울 때는 피해자의 이익이 아니라, 피고인의 이익으로 재판하는 거예요. 너무 걱정 말아요.”

“근데 사실은 제가 침대에 눕히고, 치마를 걷어 올리고 팬티까지 내렸어요. 그리고 하려다가 말았는데요. 새빨갛게 거짓말해도 괜찮을까요?”

사랑의 모진 운명 5-4

“그거 본 사람은 없잖아요? 방에 CCTV도 없었잖아요? 그 여자가 휴대폰으로 녹음한 것도 아닐테도. 각서는 어디까지나 두 여자가 강압적으로 협박하고 겁을 주어서 사인한 거라고 하면 돼요. 증거재판주의잖아요? 증거재판주의!”

“맞아요. 정말 저는 안 했어요. 올라타기는 했어도 정말 삽입도 안 하고, 사정도 안했어요. 대기만 했어요.”

명훈은 흥분해서 이렇게 말은 해놓고, 여변호사가 약간 얼굴이 발개지는 걸 보고 순간적으로 아차했다. 아무리 변호사 사무실이지만, 젊은 여자 변호사 앞에서 삽입이니, 사정이니 하는 적나라한 용어를 사용한 것을 후회했다.

‘명훈씨 아무튼 그런 식으로 답변하면 불리해요. 끝까지 안했다고 강하게 부인해요. 그리고 부인하는 건 피의자의 권리예요. 피의자에게는 묵비권, 진술거부권, 자백을 강요 당하지 않을 권리, 부인할 권리가 헌법이나 형사소송법에 보장되거 있는 거예요.“

여자 변호사는 법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었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연애나 하고 클럽이나 다니고 자가용운전이나 열심히 했던 명훈의 귀에는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묵비권은 무엇이고, 진술거부권은 무엇일까? 부인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자백을 강요 받지 않는 것이 무슨 권리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혹시 경찰관이 거짓말탐지기 측정을 하자고 하면 동의하지 말아요. 부정확할뿐더러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거니까요.”

명훈 엄마는 변호사 사무실을 나오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린 아들이 여자 좋아해서 그런 것은 이해하는데, 해도 너무한 것 같았다. 애인도 있다면서, 원하면 섹스를 할 여자도 있는데, 왜 나이 먹은 주부를 강간하려고 했을까?

자기 친정에는 이런 성폭력범은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왜 정씨 집안은 이럴까? 자신이 약사인데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아들에게 성교육을 시킬 것을... 그리고 이번 사건도 피해자와 합의를 할 것을... 일을 그르친 것 같아 속이 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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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4-25

명훈 아빠는 계속해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번에는 시청 건축과장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혐의에 대해 추궁을 받았다.

정상석 사장이 최 과장과 자주 만나고 식사를 한 사실과 정 사장이 어려운 건축허가를 받은 부분에 대해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투서를 한 것이었다.

일단 직접적인 물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최 과장도 뇌물을 받은 사실을 부인했다. 정 사장 역시 뇌물을 준 사실이 없다고 극구 부인했다.

검사는 두 사람의 핸드폰 통화내역과 은행계좌 거래내역, 건축허가 관련 서류 등을 모두 압수하여 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더 나아가서 최 과장이 처리한 건축허가건을 모두 의심을 가지고 들여다 보았다.

그 과정에서 서류상 명백하게 드러난 잘못에 대해서는 허위공문서작성죄 등을 걸어서 형사입건해 놓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최 과장이 업자로부터 뇌물을 상당히 많이 받았으리라는 혐의를 두고 수사를 계속했다.

또한 정 사장이 자신이 대표이사로 되어 있는 법인의 자금을 유용한 혐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증거를 확보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정 사장의 컴퓨터가 압수됨으로써 그 안에 들어 있는 이메일에 애인들과 주고 받은 자료가 다 있어 수사관들이 내용을 보게 되면 보통 창피한 문제가 아니었다.

오래 조사를 받다 보니 정 사장은 몹시 지쳤다. 더 이상 저항할 힘이 없어졌다. 이대로 가다가면 언제 수사가 끝날지도 모르고, 검사가 계속 들이파면 자꾸 다른 범죄사실이 드러날 위험도 있었고, 회사는 부도날 상황이었다. 그래서 변호사에게 물었다.

사랑의 모진 운명 4-26

“변호사님. 일부 혐의사실을 자백하고 수사를 끝내달라고 하면 어떨까요?”

“글쎄요.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예요. 검찰의 특별수사가 아무런 제한이 없기 때문에 검사가 독하게 마음 먹고 계속 들이파면 골치 아픈 거예요.”

“그렇게 하면 제가 구속되지 않을까요? 차라리 어디 도망가 있을까요? 담당 검사가 곧 있을 인사이동 때 다른 곳으로 가면 그때 나타나서 자수를 하면 어떨까요?”

“글쎄요. 다음 정기인사 때 분명히 주임검사는 다른 곳으로 갈 것은 같아요. 그러나 도망가면 지명수배가 되고 기소중지가 될 거예요. 그러면 회사는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회사야 구속되나 도망가 있으나 힘들어 지는 건 마찬가지예요.”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나누었지만, 현실에 있어 수사를 받다가 도망간다는 것도 어렵고, 구속되는 것은 더 어렵기 때문에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명훈은 학교를 다니고는 있어도 온통 정신이 없었다. 강간사건도 해결되지 않았고, 은영이 아이도 수술하지 않았다. 집에서는 자세한 사정을 모르지만 아빠가 검찰청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명훈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은영이 문제는 엄마가 해결해 줄 것으로 믿고 있었는데, 잘 안되고 있었다. 은영이 사건에 있어서 자신은 정말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 같았다.

사랑의 모진 운명 4-27

요새 남자와 여자가 서로 좋아서 성관계를 하면 쿨하게 하는 거지, 이렇게 몰래 임신을 하고 공갈을 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그것은 전적으로 은영이 나쁜 것이고, 자신은 억울한 피해자였다.

정말 재수가 더럽게 없어 이런 거지 같은 여자애를 만난 것이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때 가임기라 은영이 임신을 한 것은 백만불의 일의 확률로서 명훈에게는 맑은 하늘에 벼락을 맞고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불행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강간건도 정말 술에 취해서 실수한 것인데, 하필이면 나이 많은 가정 주부가 어린 애들 노는 클럽에 와서 어린 애들 행세를 하다가 나한테 걸려서 강간을 당했다고 하니 이것은 더 미칠 노릇이었다.

그동안 만난 여자들은 모두 천사였다. 세상 모든 여자들이 그런 줄 알았다. 서로 즐기고 놀고, 쿨하게 헤어질 줄 아는 서구문화를 제대로 받아들인 줄 알았는데, 세상에는 일부 못난 여자들이 돌연변이 염색체로 태어나 세상을 어지럽히고, 착하고 순진한 명훈이 있는 남자들을 괴롭히고, 이용해 먹고 돈을 뜯으려는 것 같아 몹시 기분이 나쁜 상태였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정명훈씨지요? 경찰선데요. 강간죄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경찰서로 나와서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3일 후에 경찰서로 신분증을 가지고 출석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모진 운명 4-28

“예! 무슨 말씀이세요. 요새 보이스피싱이 많아 경찰서라고 사칭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던대요. 저는 강간한 사실이 없어요. 전화 끊으세요.”

명훈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태원 사건은 강간이 아닌 것이 분명한데 아마 보이스피싱수법으로 경찰이라고 사칭해서 돈을 사기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화를 끊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관에게서 출석을 요구하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엄마, 경찰서에서 이런 문자메시지가 왔어요. 이건 보이스피싱 아닐까요?”

명훈 엄마는 크게 놀랐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올 것이 왔구나! 큰일 났네.’

그리고 문자메시지에 적혀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거기 OO 경찰서지요? OOO 수사관님 계세요? 저는 정명훈의 보호잔데요.”

“예, 전화바꿨습니다. 정명훈이 강간죄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3일 후에 OO경찰서로 출석하도록 해주세요. 보호자도 같이 와도 좋습니다. 틀림없이 출석해야 합니다. 만일 출석을 거부하면 체포장이 발부될 수 있습니다.”

명훈 엄마는 급히 아는 변호사에게 연락했다. 일단 변호사는 선임계를 내고 명훈이 경찰서에 출석할 때 같이 가서 변호인참여를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명훈을 만나 수사에 대비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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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4-21

명훈 아빠 운전기사가 명훈 엄마에게 물었다. 지난 번 호텔에서 강남역까지 태워다 준 여자가 바로 은영이라는 사실을 알고 궁금해 하던 중에 다시 명훈 엄마를 태우고 그 호텔로 가게 되는 일이 있자, 이때다 싶어서 물었다.

“사모님. 지난 번 호텔에서 제가 강남역까지 모셔다 드린 여자 손님 두 사람 있잖아요? 그 중 한 사람은 제가 옛날에 만난 적이 있는 여자예요. 근데 무슨 일이세요? 사모님이 잘 아는 사람들이예요?”

명훈 엄마는 갑자기 귀가 번적 띄었다.

“아니. 누구를 알아요? 어떤 여자를 아는 거예요?”

“그때 비싼 옷 입은 여자 말이예요.”

“그럼 박기사가 한번 그 여자를 만나 볼래요? 한번 만나서 잘 설득시켜봐요. 내가 수고비는 톡톡히 줄테니까.”

“연락처는 모르는데요? 아주 오래 전에 만난 사람이라.”

“연락처는 내가 알고 있으니까 박기사가 연락해서 만나서 나쁜 생각하지 말고 좋게 해결하자고 부탁해봐요.”

“예. 사모님. 걱정마세요. 제 말은 듣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박기사는 은영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자신이 명훈 아빠 기사로 일하고 있다고 하면서 명훈 엄마 부탁으로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은영은 놀랐다. 하지만 그런 제의를 거절할 수 없었다.

“은영씨. 오랜만이예요. 잘 지내셨지요? 이야기 들으니까 제가 모시는 사장님 아드님 아이를 가졌다면서요? 축하해요. 부잣집 며느리가 돼서 팔자 고치신 거예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사랑의 모진 운명 4-22

“근데 할 말이 뭐예요?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어요. 사모님이 뭐라고 해요?”

“그게 아니라, 내가 사모님에게 먼저 말했어요. 은영씨를 내가 잘 아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은영씨는 깨끗이 잊어버리고 아이를 수술해요. 내가 돈을 받아줄테니. 얼마를 원해요? 깨놓고 이야기해요. 우리끼리니까. 한 1억 원 받아줄까요?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무슨 말이예요? 나는 돈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예요. 명훈씨를 사랑하고 있어요. 명훈씨 역시 나를 사랑하고, 우리는 아이 때문에 헤어질 수 없는 거예요.”

“그럼 나와 성관계한 거 말하면 모든 것이 끝날텐데. 괜찮아요? 그리고 그때 나와 육체관계하고 사랑하다가 나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에게 간 것도 사과하지 않는 은영씨 태도 용서할 수 없어요. 나는 모든 사실을 폭로하고 나도 그 직장 그만두면 돼요.”

“아니, 언제 내가 당신과 성관계했어요? 그리고 무슨 사랑을 하고 누가 배신했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해요? 당신 정말 나쁜 사람이고, 무서운 사람이네요. 나를 언제 봤다고 공갈을 쳐요?”

“은영씨, 내가 은영씨 이름도 알고, 그때 은영씨 친구인 제인과 같이 연애했던 것 은영씨도 잘 알잖아요? 자꾸 그러면 내가 제인을 만나서 삼자대질을 할게요. 그렇게 딱 잡아뗀다고 될 줄 알아요? 명훈 아빠는 돈이 많아 심부름센터를 시키면 모두 다 찾아낼 수 있어요.”

은영은 소름이 끼쳤다. 그때 자신을 강압적으로 처녀성을 빼앗고, 상처를 준 악마였다. 더군다나 제인이라는 경자의 애인으로서 애인의 친구를 겁탈한 X이다.

사랑의 모진 운명 4-23

그때는 어리고 세상 물정을 몰라서 당했고, 당한 다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울고만 있었다. 그런데 그런 악한이 지금 또 악연이 되어 명훈네 기사로 있다니,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게다가 은영이 때문에 박기사가 정자를 찾아내서 공갈 치면 부잣집에 시집가서 잘 살고 있는 정자의 가정이 파탄날 위험성이 있었다. 은영은 정말 법만 없으면 박기사를 죽이고 싶었다. 세상에 이렇게 나쁜 인간이 같은 서울에서 살고 있다니 끔찍했다.

“정말 당신은 나쁜 사람이네요. 좋아요. 서로 마음대로 해요. 다 이야기해요. 나도 끝까지 씨울테니.”

“은영씨는 나를 잘 몰라서 그래. 그때 은영씨나 제인씨를 만날 때는 나도 대학에 다니고 행복했어. 그런데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님이 사업에 실패하고 자살하셨어.

어머니는 얼마 있다가 정신병원에 들어갔다가 돌아가시고. 나는 혼자서 고생을 하고 살았어. 그러다가 마약조직에 끌려들어가 감방을 갔다 왔어. 나는 두 번이아 자살을 시도했어.

지금 겨우 맘잡고 기사로 일하고 있어. 그런데 은영씨 문제를 알게 되었어. 사모님은 은영씨 문제를 해결하면 나에게 천만 원을 준다고 약속했어.

근데 지금 은영씨가 나를 도와주지 않으면 내가 가만 있을 수 없다는 걸 이해해줘. 그리고 내가 객관적으로 볼 때 은영씨가 어린 남자 아이를 갖고 돈을 뜯어내는 건 옳지 않아.“

은영은 말없이 듣고 있었다. 박기사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도대체 자신이 잘못한 것은 다 빼버리고, 세상 모든 일을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정당화시키고 있엇다.

사랑의 모진 운명 4-24

“나는 비록 감방에 갔다 왔지만, 바르게 살고 있어. 정의감도 있고. 경우가 나쁘거나 옳지 않은 사람을 보면 내가 못견뎌. 알았지?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빨리 들어. 명훈네로부터 돈도 내가 충분히 받아줄게. 1억 원이면 될 거야. 더 욕심 부리면 큰일 나. 지금 TV를 봐.

돈 많은 재벌들도 더 욕심 부리다 감방가잖아. 평새 부귀영화를 누리던 사람들이 늙어서 경로당 가서 장기나 두고 있으면 될 텐데 장관이나 비서실장인가 뭔가 하다가 또 감방 가 있잖아.

다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을 부리다가 패가망신하는 거야. 그러다가 감방에 가서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어. 얼마나 어리석을까?

그러니까 은영씨는 그러지 마. 내가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이라 아끼고 싶어서 이런 충고를 하는 거야.

나와 아무런 관계 없으면 나같이 바쁜 사람이 미쳤다고 이렇게 만나서 시간 낭비하고 듣기 싫은 소리르 하겠어. 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은 거야. 알았지. 3일의 여유를 줄테니까 나에게 연락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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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4-18

명훈 엄마 역시 보통 괴로운 것이 아니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얼마 전에는 어떤 사람이 명훈 엄마가 운영하는 약국에 와서 약사 아닌 사람이 약을 판매했다는 내용으로 보건소에 신고를 했다.

약국에서 근무하는 보조자가 약을 파는 것을 사진을 몰래 찍어 신고한 것이었다. 그래서 보건소에서 조사가 나왔고, 경찰에 고발되어 벌금을 받게 되었다. 약사에 대해서는 면허정지처분까지 떨어졌다.

어떤 사람이 명훈 엄마 약국을 집중적으로 감시하여 몰래카메라로 동영상까지 찍어 약사 아닌 사람이 약을 판매한 장면을 찍어 고발한 것이었다.

아마 부근에 있는 경쟁관계에 있는 약국에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여 그 부근 약국들에 대해 비약사의 약판매행위를 계속해서 감시하고 증거를 잡아서 고발하는 것같았다.

정말 무서운 세상이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병원에서 가지고 온 처방전의 경우에는 절대로 약사 아닌 사람이 조제하지는 않는다.

처방전 없이 사러 온 일반 약의 경우 약사가 바쁘면 비약사인 총무 같은 사람이 간단하게 판매하기도 하는데 이것을 약점 잡아 고발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약점이 있으면 언제 누가 어떤 방법으로 그 약점을 잡아서 고발을 할지 모르는 세상이다.

“명훈 엄마 되시죠? 지난 번 뵈었던 강간사건 피해자 친구입니다. 제 친구가 병원에서 상해진단서를 떼어서 경찰서에 고소를 한다고 해요. 어떻게 해결할 의사는 없으신 거지요? 제가 중간에서 좋게 해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말씀드리는 거예요. 제 친구는 그 일로 병원에도 다니고 있고, 또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어요. 그런데 경찰에 고소를 하게 되면 혹시 남편이 알게 될까봐 망설이고 있는데 피해가 너무 큰 것 같아요.”

사랑의 모진 운명 4-19

“친구분은 얼마를 요구하는 거지요?”

“친구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데, 제가 볼 때 한 3천 정도는 줘야되지 않을까 싶어요.”

“뭐라고요! 3천이라고 했어요? 지금. 3백이 아니라 3천만 원을 달라는 겁니까?”

“아니 제 친구가 강간을 당해서 가정도 파탄나게 생겼고, 아파서 병원도 다니고 있잖아요? 그리고 요새 강간범이 얼마나 무섭게 처벌되는지 모르세요? 애엄마를 강간해서 정신과 치료까지 받게 만들었는데, 3천이 많다는 말이예요? 그럼 그만 두세요. 내일 고소할 테니까. 친구는 이미 변호사를 선임해서 고소준비를 다해놓았어요. 끊을 게요.”

상대 여자는 사정 없이, 아주 냉정하게 사무적으로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명훈 엄마는 정신이 빠짝 나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 여자는 다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명훈 엄마는 급히 고등학교 친구로서 법대 교수생활을 하고 있는 여자를 만나자고 했다.

“아니 세상에 이런 꽃뱀들 봤나! 정말 너무한 것 아니니? 이게 강간이 되는 거야?‘

“글세 명훈이 말이 증명이 되면 강간이 아닐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 나야 학교에서 강의만 하니까 실제 수사나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몰라. 하지만 고소를 당하면 골치 아플텐데 어쩌지?”

“글세 명훈이 한 짓이 기껏해봤자 미수에 그친 것인데 그걸 가지고 얼마나 처벌하겠어? 그 여자들은 완전히 날강도야. 유부녀가 애도 있는데 40이나 돼서 어린 아이들 노는 클럽에 와서 술을 처먹고 모텔까지 따라가서 강간 당했다고 돈이나 뜯어내는데 이렇게 억울한 일이 있을 수 있나? 정 안되면 그 여자 남편을 찾아가서 마누라 단속 잘 하라고 말을 해야겠어.”

사랑의 모진 운명 4-20

“아무튼 강간죄 미수범도 인정되면 처벌이 무거울 것 같으니 가급적 합의를 하는게 좋지 않을까? 합의를 하지 않으면 전과자 되고, 또 변호사 비용도 들잖아?”

명훈 엄마는 어떤 판단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생각으로는 명훈이 한 행위에 대한 대가치고는 3천은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도대체 그 여자가 피해를 본 것은 무엇일까?

상식적으로 강간죄란 여자의 정조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에서 처벌하는 것일텐데, 그 여자의 정조를 보호할 가치가 있을까?

그리고 정조를 보호한다고 해도, 명훈이가 하지도 않았다는데, 무슨 정조가 침해된 것일까?

설사 정조가 침해되었다고 해도 돈으로 환산하면 몇십만 원이면 되지 무슨 천만 원 단위로 부른단 말인가? 정숙한 여자 같으면 클럽가고, 모텔갔다가 남자에게 당할 뻔 했으면 창피해서 말도 꺼내지 않을 텐데, 이건 완전히 사기고 공갈이다.‘라고 생각했다. 그

렇지만 일단 상대방이 고소를 하면 문제가 커질 것 같아 다시 조바심이 났다. 친구라는 여자에게 전화를 계속 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문자를 보냈다. ‘5백만 원을 드릴게요. 합의해주세요. 명훈 엄마’ 그리고 너무나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쓰려서 수면제를 먹고 잠에 들었다. 고통을 잊기 위해서는 수면제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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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4-15

정 사장은 파김치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공황상태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검찰에 의해서 구속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변호사도 특별한 대책을 세워주지 못하고 있다

검찰에서는 상대방과 말을 맞추지 못하도록 일체 연락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동해주식회사 사장도 전혀 협조를 하지 않고 있고, 뇌물 받았다는 혐의를 받는 시청 공무원에 대한 조사도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회사 비자금을 5억 원 만들어 사용했다는 부분도 검찰에서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구속이 무서워서 도망갈 수도 없다.

도주하면 곧 바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될 위험이 있다. 증거를 인멸한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아주 외국으로 피해 있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으나 그러면 회사는 부도난다.

그리고 아직까지 이 사건 수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아무런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밤에 잠도 못자고, 혼자 이 생각 저 생각 하다보면 모든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가 된다.

자신은 구속되어 징역을 몇 년 살고, 회사는 부도나고, 신문에 나면 명예는 추락한다. 앞으로 관청 일은 더 이상 볼 수도 없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것이 너무 허망하게 무너지는 것이었다.

너무 억울했다. 고생해서 이제 잘 살 수 있는 때가 되었는데, 놀지도 못하고, 악착같이 일을 했는데, 너무 억울했다. 이럴 때는 아무하고도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심지어 부인과도 자꾸 말하기 싫었다. 걱정해봤자 부인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변호사도 돈을 많이 주고 선임했지만, 별로 도움도 되지 않고 있다.

사랑의 모진 운명 4-16

변호사는 남의 일이기 때문에 정 사장처럼 크게 걱정도 하지 않는다. 먼저 정 사장에게 전화를 해오는 일도 없다. 꼭 정 사장이 먼저 전화하고 찾아가야 그제서야 비로소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세상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있었다. 외로웠다 그렇다고 형제들에게 말을 해봤자, 창피하기만 하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다. 남자의 바깥 생활, 사업, 대외관계는 언제나 이렇다.

모든 것이 자신의 어깨에 지고 있는 짐이다. 자기만의 삶의 지게에 올려져있는 무거움이다. 점점 공황상태가 되면서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자신감을 잃게 된다.

우울증세도 나타날 것이고, 대인기피증세도 나타날 것이다. 잘못하면 자살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TV를 켰다. 그리고 술을 찾았다. 그동안 집에서는 담배를 피지 않았는데, 하는 수 없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지금의 공황상태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런 것밖에 없었다. 자신의 육체를 마비시키고, 정신을 둔화시키는 것이 유일했다. 술기운이 올라오자 약간 몽롱해졌다. TV에서는 어떤 현직 검사가 투신자살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검찰의 수사를 받고, 구속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현직 검사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 중압감과 수치심, 억울함 때문에 투신해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정 사장은 왜 저런 자살사건이 일어나는지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전에는 뉴스에 피의자가 자살했다고 해도 남의 일이었기 때문에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대기업 회장도 자살하고, 도지사도 자살하고, 공무원도 자살하고, 경찰관도 자살했다.

사랑의 모진 운명 4-17

그런 뉴TM에 접하면서 정 사장은 ‘왜 저렇게 약해질까? 조사 받고 징역 살면 되지, 왜 죽을까? 죽으면 가족들은 어떻게 하라고?“ 이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해가 갔다. '오죽 했으면 죽고 싶었을까? 검찰 수사가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리고 사건 관계인들에 대한 배신감, 증오심 때문에 견딜 수 없었을 거야?'

정 사장은 TV 채널을 돌렸다. 개그 프로를 재방송하고 있었다. 그전에는 개르 프로를 자주 보았다. 지금은 개그하는 사람들이 이상해 보였다 저런 것을 보고 웃고 있는 방청객들도 한심해 보였다.

‘세상이 얼마나 살기 어려운데, 저런 말장난이나 하고들 있고, 그걸 보러 녹화현장까지 앉아 있을까?’ 채널을 계속 돌려도 모두 한심한 프로들뿐이었다. 실화라고 사건에 관한 프로도 듣기 싫었다. TV를 껐다.

라디오 방송을 켰다. 구성진 노래가 들려왔다.

<이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히 생각하니 세상 만사가/ 춘몽중에 또 다시 꿈같도다>

노래는 정 사장 가슴 속에 깊이 박히고 있었다. 슬펐다. 아팠다. 노래 제목은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옆에 있는 성경을 펴니 이런 구절이 눈에 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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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4-9

명훈 엄마는 이런 저런 궁리 끝에 우선 은영의 문제는 시간도 끌고, 명훈으로 하여금 은영을 만나도록 해서 낙태를 시킬 작전을 짰다. 그래서 명훈에게 이야기해서 일단 은영을 만나서 잘 지낼 것처럼 하고 시간을 봐서 설득시켜 수술을 하도록 유도하라고 했다.

명훈은 지금 강간사건도 있는 상태라 엄마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며칠 후에 명훈은 은영에게 연락을 했다.

“그동안 미안했어. 생각해보니까 내 애기를 가졌는데, 내가 신경을 쓰지 못했어. 미안해. 내가 옷 한 벌 해줄게. 옷 사러 가자.”

“정말. 고마워. 내가 심하게 해서 미안해. 앞으로는 안 그럴게.”

명훈은 은영을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옷을 사주고 함께 식사를 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텔로 데리고 갔다. 은영은 명훈의 속도 모르는 것처럼 마냥 행복해했다.

명훈은 은영에게 예전과 달리 난폭하게 성관계를 시도했다. 은영은 본능적으로 이를 거부했다.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명훈은 눈치를 채고 무리한 시도를 거두어들였다.

사랑의 모진 운명 4-10

명훈은 은영을 데리고 맥주집으로 갔다. 술을 많이 마신 다음 은영에게 물었다.

“지금 나 사랑하는 거야?”

“응, 오빠, 많이 사랑해. 오빠만 사랑해. 나 버리지 마! 정말 잘 할게. 아이도 잘 자라고 있어. 오빠 닮은 아이 낳아 똑똑하게 잘 키울게.”

“근데,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듣고, 나를 괴롭히지 말아야 할 거 아냐? 지금 나는 집에서 쫓겨나게 생겼어. 엄마 아빠는 매일 이 문제로 싸우고, 나보고 나가서 죽으라고 해. 그러니까 일단 아이를 테어버리고 우리 차분하게 사랑하면 안 될까? 내가 책임질게.”

“오빠, 그런데 내가 오빠를 어떻게 믿어. 그동안 나를 못본척하고 버렸었잖아? 그럼 아이를 수술할테니 혼인신고만 해줘. 그러면 내가 믿을 수 있잖아? 제발 부탁이야. 나도 오빠를 괴롭히고 싶지 않아.”

“아니, 어떻게 지금 학생인데 혼인신고를 해. 그게 무엇 때문에 급해. 사랑은 그냥 믿는 거지. 사람을 못믿고 의심하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했어. 어떤 책에서 읽었어. 나는 그 말을 믿어. 원치 않는 아이를 몰래 임신하고 일방적으로 낳겠다고 하는 건 나쁜 거야? 그러니까 우리 수술하고 앞으로 서로 믿고 잘 지내. 부탁이야.”

“그럼 수술하면, 나를 사랑하고 버리지 않는다는 약속을 내가 믿게 해줄 방법을 찾아봐. 내가 생각해 볼게.”

“응 알았어. 좋은 방법을 생각해 볼게.”

사랑의 모진 운명 4-11

“그런데, 그 아이 정말 내 아이는 맞는 거야? 나는 몇 번 안 했잖아? 우리 엄마 얘기로는 자기가 다른 남자와 동거도 하고, 낙태수술도 여러 번 했다고 그러던데. 내 애기도 아니라고 그랬어.”

“그건 엄마가 거짓말로 나를 떼어버리려고 거짓말 하는 거야. 믿지 마. 나는 동거도 안했고, 낙태도 안했어. 나는 자기가 첫사랑이고, 처음 섹스를 한 거야. 아이도 처음 생긴 거고. 나는 성당에 다니기 때문에 절대로 거짓말 하지 않아. 병원에 가서 같이 확인시켜 줄게. 내가 처녀로서 자기와 첫 섹스를 했다는 사실과 이번이 첫 번째 임신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줄 수 있어.”

“정말 내가 첫 번째 남자고 내 아이가 맞다면 내가 책임져야 해.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자기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명훈은 갑자기 은영의 말이 사실로 여겨졌고, 거짓말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술에 취했지만, 은영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어린 나이지만,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생각이 문득 이상한 정을 느끼게 한 것 같았다.

“오빠 내 말을 믿어. 그리고 모든 여건을 초월해서 우리 사랑하면서 잘 살면 좋겠어. 내가 잘 할게.”

명훈 아빠는 다시 검사실로 출석했다. 변호사를 대동하고 들어갔다. 검사는 다시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고지했다.

그리고 제1회 조사받은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서 설명해 준 다음,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동해주식회사 박국경 사장을 들어오게 해서 대질조사를 시작했다.

대질조사(對質調査)라 함은 검사가 피의자와 참고인을 동시에 앉혀놓고 조사를 하는 것을 말한다.

사랑의 모진 운명 4-12

그러면서 피의자가 진술한 내용을 참고인에게 ‘피의자가 진술한 이 부분의 진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실은 어떠한가?’를 질문하는 것이다. 그러면 참고인이 그에 대해 진술을 한다.

‘피의자가 하는 진술은 사실과 다르다. 실제로는 이렇게 된 것이다. 그에 대한 증거는 이런 것이 있다.’라는 식으로 진술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검사는 피의자와 참고인의 진술을 피의자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상에, 각각 진술자를 표시하고 진술내용을 기재하는 것이다.

대질조사의 목적은 서로의 주장이 다를 때 두 사람을 동시에 조사함으로써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밝혀내기 위한 것이다.

특히 고소사건에서 고소인과 피고소인을 동시에 조사함으로써 피의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목적에서 하는 것이다. 많은 사건에서 고소인과 피고소인은 대질조사를 하면 100% 상반되는 내용의 진술을 한다.

그러면서 서로 상대방을 거짓말한다고 주장하고 비난한다. 먼저 피고소인이 말한다. “고소인 저 여자는 입만 떼면 거짓말하는 사람이예요. 악질이예요. 검사님 믿지 마세요. 저는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아요.”

이에 대해 고소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뭐라고! 검사님. 저 여자는 숨만 쉬면 거짓말이 저절로 나와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요. 얼마나 거짓말만 하고 사기를 치고 다니는지, 정말 무서운 여자예요. 내가 사기를 당한 피해자인데 왜 거짓말을 해요?”

이런 식이다. 뇌물사건에서 대질조사하는 것은 공무원은 돈을 절대로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뇌물을 준 업자는 돈을 주었다고 하니까 두 사람을 동시에 조사해서 진실을 밝히려고 하는 것이다.

사랑의 모진 운명 4-13

서로의 주장이 너무 다르면 검사는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의뢰하기도 한다. 두 사람을 동시에 심리테스트를 하면 진실반응과 허위반응이 나오기 때문에 수사에 참고자료로 사용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거짓말탐지기 측정은 반드시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야 가능하다. 당사자가 거짓말탐지기 측정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하면 더 이상 강요하지 못한다.

“동해주식회사 사장은 정상석 사장이 하청을 주고, 하청대금 중 2억 원을 리베이트로 돌려받았고, 그에 대한 증거로 은행송금자료를 제출하고 있는데 정사장은 왜 이러한 사실을 부인하는가요?”

“제가 부인하는 게 아닙니다. 돈을 받은 사실은 있지만, 그것은 거래업체로서 일시 빌려 쓴 것이고, 나중에 2억 원을 모두 돌려주었습니다. 돈은 일부 자기앞수료로 주고, 나머지는 5만 원 현금을 주었습니다. 지금 증거자료를 찾고 있는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닙니다. 저는 정 사장이 하청을 주면서 처음부터 2억 원의 리베이트를 하청대금에서 떼어서 돌려달라고 해서 통장으로 보내 준 것입니다. 그후 정사장이 저에게 반환한 사실은 전혀 없습니다. 정 사장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 사장은 동해 사장이 리베이트 준 사실을 검찰에 신고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 왜 저런 진술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앞으로도 동해주식회사와 거래를 하려고 하고 있었고, 리베이트야 업계의 당연한 관행이 아닌가?

사랑의 모진 운명 4-14

리베이트라 함은 이 사건에서처럼 어떤 회사에 공사를 맡기고 공사대금을 20억 원으로 과다책정한다. 그리고 세금계산서를 발급한다.

공사를 맡은 업자는 부풀려진 공사대금 20억 원 가운데 실제 자기가 받아야 할 금액인 18억 원은 진정한 공사대금으로 받아 쓰고, 처음부터 돌려주기로 약정했던 2억 원은 이른바 리베이트 명목으로 공사를 맡긴 회사에 현금으로 돌려준다. 그리고 이에 대해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지 않는다.

그러면 공사를 맡긴 회사에서는 2억 원을 대표이사 개인 통장으로 받아 개인이 사용한다. 이것은 회사 비자금을 만들기 위한 전형적인 수법이며, 법인에 대한 업무상횡령죄가 되고, 탈세가 된다.

정사장은 동해주식회사로부터 2억 원을 개인통장으로 받았던 것인데, 리베이트를 받은 객관적인 증거가 드러났기 때문에 다시 돌려주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검사는 5시간에 걸쳐 대질조사를 하면서 집요하게 파고 들었지만, 정사장은 끝내 범죄사실을 부인했다. 시청 공무원과의 대질조사도 이루어졌다. 그리고 법인 자금으로 애인 오피스텔을 얻어 준 부분도 심하게 추궁받았다. 다시 10시간 넘게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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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4-6

명훈 아빠는 변호사와 함께 검찰청으로 들어갔다. 사전에 검사로부터 출석요구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변호사와 며칠 동안 수사에 대비해서 준비를 했다.

검사가 물을 것으로 예상되는 질문사항을 변호사가 미리 만들어 명훈 아빠에게 묻고 이에 대해 답변 연습을 했다.

변호사는 법률을 전문적으로 공부했고, 더군다나 검사생활까지 했기 때문에 익숙한 일이지만, 명훈 아빠는 사업만 하고, 술이나 먹고, 여자들과 연애만 했기 때문에 막상 수사에 대비해서 변호사와 예행연습을 하니까 잘 되지 않았다.

무엇을 물을지도 몰랐고, 핵심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아무리 들어도 잊어버리고 횡설수설하게 되었다. ‘누가 투서를 한 걸까?’ 압수수색을 당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모든 것은 업계의 관행이었다. 주변에 비슷한 경쟁업체도 다 그런 식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지금부터 조사를 하겠습니다. 편의상 정상석 사장님을 피의자로 호칭하겠습니다. 피의자는 형사소송법에 따라 진술을 거부할 수 있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진술을 거부하겠습니까? 그리고 변호사가 조사에 참여할 것입니까?”

“예. 진술을 거부하지 않고 진술하겠습니다. 그리고 같이 온 변호사님이 참여할 것입니다.”

“피의자는 동해주식회사 대표이사에게 하청을 주고, 나중에 리베이트로 2억 원을 돌려받은 사실이 있지요?”

사랑의 모진 운명 4-7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리베이트를 받을 사실이 없습니다.”

“동해주식회사로부터 피의자에게 2억 원이 들어온 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요?”

“그건 제가 일시 자금이 필요해서 빌렸다가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돌려 준 증거는 있는가요?”

“현금으로 돌려주었기 때문에 증거는 없습니다.”

“동해 대표이사는 리베이트로 2억 원을 주었다고 진술하고 있고, 돌려받은 사실은 없다고 하는데 어떤가요?”“저는 돌려준 것이 확실합니다. 그 사람이 왜 거짓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검사는 그 이외에도 정상석 사장에게 시청 공무원에게 3천만 원의 뇌물을 준 사실을 추궁했다.

그리고 법인 자금 5억 원을 개인적으로 착복한 사실도 혐의를 두고 있었다. 법인 자금 5억 원 1억 원은 애인 오피스텔을 얻어준 것도 검사는 다 확인해놓고 있었다.

검사는 일단 조사를 마치고 피의자신문조서를 읽어보라고 했다. 정 사장은 10시간에 걸친 장시간의 조사에 지쳤다. 너무 힘이 들었다. 같은 질문을 되풀이해서 묻고 따지고 추궁하는 검사가 무서웠다.

사랑의 모진 운명 4-8

옆에서 참여하고 있는 변호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기만 했다. 개별적인 신문에 코치는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검사는 조사를 마치고 일단 돌아가 있으라고 했다. 필요하면 또 부를 것이라면서 조사받은 사항을 관련자들에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다. 일종의 공갈이었다. 증거인멸을 하지 말고, 말을 맞추어서 수사를 방해하지 말라는 취지였다.

갑자기 세상이 무서워졌다. 어떻게 회사 비밀을 검사에게 소상하게 이야기해준 것일까? 누구일까? 회사 내부에 있는 사람의 소행같았다. 조사받느라고 지쳐 집에 도착하니 명훈과 명훈 엄마가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여보. 어떻게 되었어요? 조사 잘 받았어요?”

“글세. 모르겠어. 어떤 X이 투서를 한 것 같아. 회사 내부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명훈이는 가서 자라.”

사랑의 모진 운명 4-9

명훈 엄마는 이런 저런 궁리 끝에 우선 은영의 문제는 시간도 끌고, 명훈으로 하여금 은영을 만나도록 해서 낙태를 시킬 작전을 짰다. 그래서 명훈에게 이야기해서 일단 은영을 만나서 잘 지낼 것처럼 하고 시간을 봐서 설득시켜 수술을 하도록 유도하라고 했다.

명훈은 지금 강간사건도 있는 상태라 엄마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며칠 후에 명훈은 은영에게 연락을 했다.

“그동안 미안했어. 생각해보니까 내 애기를 가졌는데, 내가 신경을 쓰지 못했어. 미안해. 내가 옷 한 벌 해줄게. 옷 사러 가자.”

“정말. 고마워. 내가 심하게 해서 미안해. 앞으로는 안 그럴게.”

명훈은 은영을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옷을 사주고 함께 식사를 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텔로 데리고 갔다. 은영은 명훈의 속도 모르는 것처럼 마냥 행복해했다.

명훈은 은영에게 예전과 달리 난폭하게 성관계를 시도했다. 은영은 본능적으로 이를 거부했다.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명훈은 눈치를 채고 무리한 시도를 거두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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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이야기  (0) 2017.11.21


사랑의 모진 운명 4-3

 

은영은 명자와 이런 저런 상의를 했다. 명훈 엄마 태도를 봐서 절대로 결혼은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 명훈 역시 은영을 싫어하고, 애만 뗄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좋을까? 두 사람 머리로서는 도저히 좋은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래도 돈 많은 정자가 아는 사람도 있을 것 같고 해서 두 사람은 정자의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정자는 은영의 설명을 다 듣더니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아주 좋은 기회야. 무조건 아이를 낳는다고 통보하고 더 이상 연락을 하지 마. 나는 전에 이런 비슷한 케이스를 봤어. 어떤 돈 있는 집안에서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을 했어.

 

그 아들이 술집에 나가는 여자와 연애를 했는데 임신을 한 거야. 남자는 전혀 몰랐어. 그런 사실을. 여자는 임신한 사실을 숨기고 계속 만났어. 병원에서 임신한 사실을 확인하고, 그 남자의 아이라는 확신이 들자, 남자에게 말했어.

 

아이를 낳아서 혼자 키우고, DNA검사를 해서 가정법원에 친부확인소송을 걸어서 판결을 받은 다음, 남자의 가족관계증명부에 자식으로 올려놓고, 양육비를 19세 될 때까지 법으로 받아내고, 그 남자가 나중에 죽으면 자식으로서 재산상속을 받는 거야.

 

그리고 그 남자가 결혼한다고 하면 결혼식장에 가서 신부측에 이야기를 하는 거야. 왜 우리 애아빠하고 결혼하느냐고 젊잖게 물어본다는 거지. 법에 저촉되지 않게. 그랬더니 남자 부모가 큰일 났거든.

 

좋은 집에 장가가기도 어려울 수 있고, 양육비를 매달 70만원만 잡아도 19년 동안 물어줘야지, 죽으면 상속권도 있다고 하지, 총각이 호적에 자식이 올라가지. 인생 조지는 거잖아?

 

그래서 남자 집에서 3억 원을 주고 합의를 했대. 그러자 여자는 아이를 낙태하고 그 돈 가지고 치킨집을 차려서 열심히 살고 있대.

 

그러니까 은영이 너도 좋은 기회니까 한 3억 원 받고 합의해줘. 즉시 합의할 거야. 말로 하지 고 내용증명으로 보내. 놀래서 즉시 합의할 거야. 돈 많이 받으면 우리 셋이서 술 같이 먹자. 옷도 한 벌씩 사줘. 알았지!”

 

사랑의 모진 운명 4-4

 

“글세 그게 통할까? 너무 많은 돈을 요구한다고 공갈죄로 고소하지 않을까? 아니면 집 앞에 가서 일인시위를 할까? 아빠 사무실에 찾아가서 피켓 들고 서 있을가? 엄마 약국에 가서 드러누울까?”

 

“아냐 일단 기다려 봐. 곧 무슨 연락이 올 거야. 그 남자 집안이 막 사는 사람들이아니니까.”

 

명훈 엄마는 명훈으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한심했다. 그리고 그 여자들이 너무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40살이나 처먹은 주부가 어린 애들 노는 이태원 클럽에 가서 22살 된 어린 아이와 같이 모텔에 갈 수 있냐? 처음부터 계획적인 꽃뱀이 틀림 없어. 그리고 하지도 않았다는데 그냥 가면 되지 친구를 불러서 때리고 강압적으로 각서를 받는 건 정말 악질이야. 근데 경찰에 신고하면 어떻게 될까?’

 

명훈 엄마는 지금 상황이 아빠 사무실에 압수수색이 들어왔고, 곧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할 위기 상황이기 때문에 아빠에게 이 이야기까지 할 처지가 못 되었다. 아빠가 불쌍했다. 그래서 명훈 엄마는 혼자 해결하려고 개인적으로 아는 여자 변호사를 만났다.

 

“우리 아이가 꽃뱀에게 걸렸어요. 어떻게 하지요?”

“큰일 났네요. 빨리 합의해야 해요. 고소를 하면 구속될 수도 있고, 집행유예라도 받으면 성폭력범죄 전과자가 되어 골치 아파요.”

 

“아이는 술에 취해 어떻게 모텔에 갔는지도 모른다고 해요. 그리고 폭력을 행사한 것도 없고요. 실제 성교도 하지 못했대요. 그런데 이 여자가 밖으로 끌고 나와서 친구와 함께 억압으로 강요해서 사실확인서를 써주고 왔대요. 그 사실학인서는 부르는대로 썼는데 지금 그 여자가 가지고 가서 아이는 어떤 내용을 썼는지 잘 기억도 못해요.”

 

사랑의 모진 운명 4-5

 

“물론 억울하지만, 일단 시인하는 각서를 써주었고, 모텔에서 성교를 시도했다면 성폭력범으로 처벌될 가능성이 높아요. 그리고 술 취했다는 변명도 별로 참작이 안 돼요. 대개 강간이 술마시고 하는 거니까요.

 

침대에 눕히고 치마 올리고 팬티 내리고 삽입을 시도했다면 강간죄의 기수(旣遂)가 되는 거예요. 강간죄에 있어서는 삽입이 되면 기수가 되는 것인데, 여자가 이미 들어왔다고 우기면 무조건 인정하고 있어요.

 

그걸 안 들어갔다고 CCTV를 찍어놓지 않았을 거 아니예요? 그리고 설사 삽입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인정되어도, 그때는 기수가 아니고 미수범(未遂犯)으로 인정되지만, 우리 형법상 강간죄는 기수범이나 미수범이나 똑 같은 처벌을 하고 있어요.”

 

“정말 이상하네요. 여자 성기에 남자 성기가 들어가지도 않고 닿기만 해도 강간으로 본다는 게. 그리고 그런 경우 여자에게 무슨 피해가 있다고 처벌해요. 여자가 40살이나 먹었고, 더군다나 애까지 낳았는데, 어린 남자 것이 거기 좀 닿았다고 해서 무슨 피해가 있고, 그걸 처벌할 가치가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요.”

 

“아무튼 빨리 합의하세요. 합의하지 않고 고소를 당하면 징역을 가든, 집행유예를 받든 성폭력범죄 전과자가 되고, 보호관찰도 받고, 성폭력범죄인으로 신상이 공개될 수 있어요. 인생 망치게 되요. 취직도 못하게 되요.”

 

“정말 억울해요. 왜 세상이 이렇게 악하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요. 40살 주부가 미쳤다고 클럽에 가서 술이나 마시고 남자와 모텔을 가요. 옛날 같으면 남편이 알까봐 지가 먼저 쉬쉬할 텐데. 세상이 말세예요.”

 

“그래도 법은 법이잖아요? 일단 그 여자를 만나보세요.”

“얼마면 합의가 될까요?”

 

“글쎄요. 민사와 달라서 형사사건에 대한 합의금은 사실 일정한 기준이 없어요. 그 여자가 어디 다쳤다고 진단서까지 끊으면 강간상해죄, 강간치상죄가 되어 더 큰일 나요. 진단서가 없으면 일단 천만 원 정도 선에서 이야기해보세요.”

 

“예? 천만 원이나 되요.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뭘 피해 봤다고 그렇게 어마어마한 돈을 줘야 해요. 성매매를 하면 한번에 15만 원 내지 20만 원이라고 하던데, 10% 고급 술집의 아가씨도 50만 원 정도 한다던데, 40살 먹어 늙어빠진 가정주부를 하지도 못하고 천만 원을 물어줘야 해요. 법이 너무한 거 아네요?”

“글쎄요. 아무튼 현실에서 강간사건의 합의금은 그런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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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글을 쓰는 이유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사랑의 모진 운명’을 읽고 어떤 분은 ‘너무 나쁜 사람들 이야기만 쓰는 것같다’라고 한다. 또는 ‘실제로 그렇게 나쁜 일들이 정말 벌어지고 있는 거냐?’ ‘무서운 세상이다. 조심해야겠다’는 의견도 있다.

 

지금까지 내가 살면서 겪은 많은 사건이나 일을 보면 우리 사회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량하다. ‘법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내 주변에 있는 이른바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이 있고, 위험한 일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착하고 남을 속이거나 도둑질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검사로서, 변호사로서, 직접 다룬 사건 또는 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사건을 보면, 일부 사람들은 정말 나쁘고 악하다. 일반 사람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사악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지능적인 사기꾼, 악질적인 성폭력범, 교할한 꽃뱀과 제비족, 잔인한 강력범죄인, 사회에서 낙오자가 된 도박꾼과 마약꾼 등등...

 

이런 사람들을 잘못 만나면 인생이 망가진다. 법에 가서 호소해봤자 별 도움을 받지 못한다. 법은 현대사회에서 여전히 불완전하고 무능하다. 법을 믿고 있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방법이다. 법은 자신이 잘못했을 때에는 가차없이 신속하게 작동하지만, 거꾸로 자신이 타인으로부터 피해를 보았을 때에는 ‘미네르바의 부엉이(O지 of Minerva)’로 전락한다.

 

때문에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을 구별하고, 판단하고, 나쁜 사람을 피하는 것이다. 잘못해서 엮었으면 빨리 빠져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을 통해 간접경험을 함으로써 타산지석으로 자기 자신의 행동을 이성적으로 통제하고, 자녀들에게 어드바이스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앞으로도 ‘사랑의 모진 운명’은 꼭 남녀간의 문제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사건과 사고를 통해 범죄인의 심리를 분석하고, 이해관계인들의 대응자세 등을 연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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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이야기

처음에는 가볍게 몇 가지 사건에 관해 쓰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시작을 해놓고 보니 너무 할 이야기가 많아졌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사랑의 모진 운명>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일반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들이 매일 일어나고 있다 그런 사건들을 소재로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당사자들은 어떤 심리상태에 있으며, 어떻게 반응하고 상대와 싸우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나 자신 글을 쓰면서 많은 공부를 하고 있다 ‘아! 정말 사람이란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행동하는구나!’ ‘법이란 이렇게 불완전하며 위험한 제도며 도구구나!’ ‘사람이 나쁘게 마음 먹으면 이렇게까지 악할 수 있구나.’ ‘정신 차리지 않으면 이렇게 당하게 된다.’ 등등...

검사생활을 16년이나 하고 변호사생활을 오래 하고 있는 나도 이렇게 느낄 정도니 일반 사람들은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현실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가상의 사건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를 있는 그대로 비추고 있는 거울과 같다.

글 중에 나오는 많은 나쁜 사람들에 대해 무조건 욕을 하고 비난할 것이 아니다. 나 스스로 그렇게 될 수 있고, 특히 자녀들은 그런 악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위험성이 언제나 있다.

그러므로 타산지석으로 삼아 자신과 가족, 주변 사람들에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약간의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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