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모진 운명 ④

 

“오늘 너무 속이 상해요. 그래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거예요.”

“왜 그렇게 속이 상해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괜찮아요?”

“제 남자 친구가 이제는 노골적으로 헤어지자고 해요.”

“왜요?”

“남자 친구의 새로 생긴 애인이 저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으라고 했대요. 그래서 남자 친구가 저와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거예요.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예요?”

 

경희는 그 여자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상한 건 그 여자의 말을 들어도 별로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문제가 뭐 그렇게 심각한 것이냐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얼마나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수시로 발생하는지 아는가? 그 정도 일은 아무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어리석게 괴로워하는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자와 여자는 만났다가 헤어지고, 또 다시 만나고, 파트너가 바뀌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싶었다. 아직 결혼한 것도 아닌데,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사회적 구속을 받는 것도 아닌데, 미혼의 남녀가 헤어지는 문제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하고, 고민하는 것이 우습게 생각되었다.

 

잠시 술기운에 잊고 있었던 경희의 처지가 다시 그 여자의 말 때문에 클로즈업되었다. ‘아! 남녀간의 문제는 바로 이런 것이구나!’ ‘나도 처음부터 남편하고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결혼했어도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일단 결혼했으면, 참고 살 것을...’

 

사랑이 괴로운 것은 본질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무조건 행복만 보장되는 사랑은 없다. 진정한 사랑이란 처음에 얻는 과정도 고통스럽고, 일단 얻어진 다음에도 수시로 크고 작은 마찰과 갈등이 반복된다. 더군다나 그 사랑이 시간이 가면서 흔들거리고, 제3자가 개입되면 폭풍에 휩쓸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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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③

 

경희는 식당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오늘 따라 술이 취했다. 취기가 돌자 술을 더 시켰다. 어떤 의미에서는 술에 취하고 싶었다. 술에 취해서 현재의 답답한 상황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새벽 2시가 다 되었다. 사람들은 조금씩 자리를 떠났다. 몇 테이블 밖에 손님이 없었다. 어쨌든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굳이 서둘러 일어날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그곳에서 밤을 새울 수는 없었다. 피곤해서 모텔에 가서 잠을 잘까도 생각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러고도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모텔이라니! 아까 낮에 자신의 운명을 뒤바꾸게 만든 그 악몽은 바로 모텔방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러니 모텔은 생각만 해도 정이 떨어졌다.

 

술을 마시고 멍하니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던 젊은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잠깐 같이 앉아도 되느냐는 것이었다. 경희는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인상이 착해보였다.

 

여자는 경희와 같이 앉아 자신의 남자 친구가 배신을 해서 슬프다는 말을 꺼냈다. 경희는 무슨 말인지 듣고 싶었다. 여자는 28살이었다. 직장에 다니고 있는데 같은 직장에서 만난 남자와 1년 넘게 연인으로 지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다른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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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⑱

 

철수는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경희와 이혼을 해야 할까? 별거를 할까? 아니면 아이 때문에 참고 살아야 할까? 이제는 도저히 예전처럼 한집에서 부부라고 하면서 같이 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일단 너무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텔방에서 경희와 애인인 영식이 함께 섹스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떠올리면 절대로 용납을 할 수 없었다. 물론 철수가 경희에 대해 ‘더럽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매우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평가일 수밖에 없다.

 

경희가 남편 이외의 다른 남자와 연애를 하고, 섹스를 했다고 해서 경희 자신이 '더러워진 것‘은 아니다. 경희는 영식과 바람을 피기 전이나 바람을 핀 후나 아무런 변화가 없다. 육체적인 면에서도 없고, 정신적인 면에서도 없다. 경희가 더러워졌다거나, 더럽게 느껴진다는 것은 오직 배우자인 철수에 국한된 문제가 아닐까?

 

이것이 사랑에 있어 중대한 모순이고 아이로니다. 일반인의 입장에서도 비슷하다. 유명한 배우가 결혼하고서도 수많은 염문을 뿌려도 그 연예인을 더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직 그 배우의 배우자만 그 연예인을 인간같지 않고, 더러운 인간이며, 위선자라고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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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⑲

 

뿐만 아니라 철수는 경희와의 관계에서 더 이상 사랑은 없는 것으로 확신했다. 오직 증오만이 남아 있었다. 사랑이 식으면 무관심이 된다. 하지만 때로는 그 사랑이 무서운 증오로 변하는 경우가 있다.

 

증오의 단계에까지 이르면 이미 종전의 사랑은 식은 것이 아니라, 완전히 소멸한 것이 된다. 사랑의 사체는 새로운 증오의 기폭제가 되고, 핵폭탄과 같은 무서운 파괴력을 가진다.

 

그래서 사랑이 식는 경우에도 그것이 더 나아가 증오로까지 발전되지는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의 생존을 위해서, 서로의 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그런데 다른 동업관계와 달리 결혼관계는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회적 체면이 있고, 주변에 가족이 있고, 더군다나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원래 두 사람이 함께 활동하는 것을 모임 또는 단체라 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동업이라고 한다. 또는 공동사업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이런 동업관계가 역사가 짧기 때문에 성공하는 확률이 적다. 지금까지 동업해서 재벌 된 사람이 거의 없고, 중소규모의 동업은 대부분 깨지고 서로 소송하기 바쁘다.

 

아무리 작은 사업이라고 해도 혼자 해야지, 두 사람이 함께 하면 잘 되어도 깨지고, 못되어도 깨진다. 적은 규모의 호프집을 동업으로 해보라.

 

처음에는 가족 이상으로 가깝고, 평생 힘을 합쳐 성공하자고 혈서까지 써가면서 다짐을 한다. 하지만 불과 몇 달만 지나보라! 무슨 일이 생기는가?

 

장사가 되지 않고, 적자를 보게 되면 서로를 원망한다. 각자의 기여도가 적다고 불평한다. 먼저 시작하자고 제안한 사람을 탓한다. 반대로 장사가 잘 되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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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⑳

 

서로가 역할을 많이 하고 있고, 상대방은 하는 일 없이 돈만 가져가려고 한다고 불평한다. 뿐만 아니라 일정한 궤도에 올라서면 같이 나누어 먹는 것이 아깝다. 그래서 따로 분리하자고 한다.

 

동업에는 언제나 계산이 맞지 않는다. 물건을 사오는 사람을 의심한다. 싸게 사서 중간에 돈을 떼어먹는다고 생각한다. 현금매출을 가로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동업은 깨지지 않을 수 없다.

 

결혼생활도 경제적으로는 경제적 공동체에 해당한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점차 젊은 세대는 결혼을 경제적으로는 동업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종전에는 결혼하면 부부는 돈문제에 있어서 그야말로 ‘네 돈이 내돈이고, 내돈이 네 돈이다’라는 공동체 관념이 강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이런 의식에서 공동사업체 의식으로 바뀌고 있다.

 

그전에는 남자가 월급을 받으면 봉투채 여자에게 주었다. 아내가 회계책임자였다. 요새는 남자가 월급을 받으면 그중 일부만 여자에게 생활비로 준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에는 각자 관리한다. 심지어는 두 사람이 50만원씩 내고 여자가 생활비를 관리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이혼하게 되면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재산분할문제가 된다. 위자료와 양육비를 계산하는 것이 급선무다. 재산분할의 방식은 그야말로 동업관계를 청산하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돈계산하는 데 급급한다. 너무 살벌하고 무섭다. ‘이게 과연 부부였던가?’할 정도다. 변호사들이 달라붙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혼소송을 시작하면서 먼저 상대방의 모든 재산을 처분금지가처분해놓고 진행한다. 결혼할 때 가지고 온 고유재산은 재산분할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리고 채무도 분할되기 때문에 허위채무를 부담하기도 한다.

 

이혼할 때 상대방이 이혼한 다음 다른 사람과 재혼할 것을 생각해서 절대로 돈을 주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아이에 대한 양육권 가지고도 치열한 싸움을 한다. 그렇게 아이를 생각하면 애당초 참고 살지 왜 이혼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애정이 남다르다.

 

문제는 양육비를 가급적 많이 받아내는 것까지는 좋은데 과연 그 후에 제대로 잘 키울까 하는 것이다. 재혼하면 더욱이 여러 계통의 자녀가 뒤섞여 애정은 분산되고, 자녀들 간의 갈등문제가 보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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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⑮

사랑은 정말 어려운 인간의 행위이며, 행동이다. 그리고 사랑에는 이성보다 감성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감성이 이성을 제압한 상태에서 사랑은 시작되고, 그 때문에 무수한 갈등을 초래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런 이유로 사랑은 파탄이 난다.

 

또한 사랑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두 사람이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환경에서, 자신의 논리로 사랑을 인식하고 대응한다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결코 완전한 이해, 완전한 감정의 일치, 사고의 완전한 융합은 이루어질 수 없다.

 

설사 일시적으로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오래 가지 못한다. 곧 세월을 따라 변질되고, 퇴색된다. 적어도 순수성은 약해지고, 농도는 희석된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쉽지 않은 사랑의 완성을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의 본질을 알지 못하고, 사랑의 기술을 터득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늙고 병이 든다.

 

그때는 뒤늦게 사랑의 중요성을 깨닫고 진정한 사랑을 해보기 위해 발버둥쳐도 이미 버스는 떠났다. 그냥 걸어갈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아니면 다른 생애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사랑의 모진 운명 ⑯

 

사랑의 이러한 문제는 많은 경우에 나타난다. 가령 어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데, 여자는 별로다. 그래서 남자는 미치게 된다. 이성을 잃는다. 하지만 여자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남자의 일방적인 사랑을 그 남자를 위해 받아들여야 할까? 그 남자가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이 노력하고 자신의 감성을 눌러야 할까? 그건 아니다. 절대고 사랑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이 진행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남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만큼 여자도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똑 같은 강도로 표현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억지고 사랑의 본질을 망각한 사고다. 어떻게 사랑이 그렇데 동등한 수준이며, 동일한 내용물을 담고 있을 있을까?

 

특히 섹스에 대한 남녀의 차이는 너무 현저하다. 예를 들어 20살이 갓된 여자를 남자가 강간했다고 하는 경우, 남자는 그 문제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남자의 부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자는 전혀 다른다. 그리고 여자 부모는 더욱 펼펄 뛴다.

 

사랑에 대한 집착도 마찬가지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 여자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을 무조건 의심하고 못하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여자는 한 남자를 사랑한다고 해서, 자신의 모든 자유를 포기할 수는 없다.

 

사랑의 모진 운명 ⑰

 

그럴 때 여자는 남자를 의처증, 정신질환이 있다고 단정하게 된다. 그러면 그 단계에서터는 이미 사랑은 소멸하고 새로운 정신분열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혼전 과거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이야기와 자신의 구체적인 문제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인식되어진다. 과거문제를 알고 사랑을 시작하는 경우는 또 다른다. 재혼의 경우가 그렇다.

 

이미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는데, 이혼을 했다는 사실을 알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하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사랑에 진입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혼의 경우 여전히 불씨로 작용해서 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혼전 과거의 문제는 재혼의 경우와도 많이 다르다. 그리고 혼전 과거사실을 알고 결혼하는 경우와 전혀 모르고 결혼하는 경우도 또 상황이 달라진다. 혼전 과거를 문제 삼지 않고 일단 결혼했으면, 과거는 모두 잊고 서로 사랑하고 잘 살면 된다는 명제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막상 자신이 그런 상황이 되어 다른 사람처럼 쉽게 살지 못하고 고민하고, 그것이 새로운 사랑에 영향을 미칠 위험성이 있게 되면 문제는 심각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우리 사회는 어떠한 어드바이스를 해주어야 하는가 고민해야 한다.

 

만일 내 아들이 그런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어드바이스를 할까? 내 딸이 그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라고 해야 하나? 매우 어려운 삶에 있어서 누구나 부딪힐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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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⑬

 

한편 경희의 남편, 철수는 어떤 상황에 있을까? 관계가 악화된 부부는 언제나 동일한 대칭점에 있다. 누가 잘못을 했던, 한 사람이 괴로우면 다른 한 사람도 똑 같이 괴롭게 된다. 그것이 부부다. 완전히 헤어지지 전까지는 부부는 똑 같은 상처를 받고, 똑 같은 고통을 받는다.

 

물론 철수는 경희와 결혼하면서, 경희가 분명히 과거 전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존심이 상해할까봐 직접적으로 물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철수는 더욱이 의사였기 때문에 경희와 데이트 하면서 경희의 언행으로부터 느낌으로 확신했다.

 

그러나 철수는 그런 문제에 대해 보편적인 남성 이상으로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결혼하기 이전에 있었던 사생활에 대해서는 별로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경희가 결혼할 때의 나이가 벌써 31살이었다. 그때까지 여자가 남자와 연애도 안 하고, 성관계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도 예외인 듯 싶었다.

 

성에 관해서는 오늘 날 많이 개방되었을 뿐 아니라, 아주 정도가 심하지만 않으면 그것을 문제 삼는 사람이 오히려 시대착오적이고, 이상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만일 어떤 남자가 결혼한 다음 여자의 처녀성을 문제 삼으면, 그는 아무에게도 동정을 받지 못한다. 오히려 도덕적으로 비난 받는다. 법원에 가도 혼전 성관계는 이혼사유도 되지 않는다.

 

더욱이 철수 자신도 견혼하기 전 여러 여자와 연애도 했고, 성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유독 아내인 경희의 혼전 관계만을 문제 삼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어디까지나 사회의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것이지, 막상 당사자의 문제가 되면 그때는 반응하는 태도가 전혀 달라진다.

 

이러한 현실과 이상의 괴리, 성개방 분위기와 구체적인 결혼의 관계에 있어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깊은 골이 있고, 괴리가 있다. 이것이 바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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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12)

 

경희는 카페에 앉아 있었다. 머리는 아프고,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불행하고 비참한 여자 같았다. 경희는 남편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보았다.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는다. 열 번이나 되풀이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연결이 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전화를 상대가 고의적으로 받지 않을 때 심정은 어떠할까? 조급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답답해 미치게 된다. 속이 상하고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는다.

 

지금까지 살면서 경희는 드물게 남편과 싸우게 되면 남편의 전화를 집에서 받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반대의 입장이 되어서 그런지 상대방의 심정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을 때 얼마나 약이 오르고, 화가 나고, 절망에 빠지는지를 미처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경희가 막상 당하고 보니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완전히 상대를 무시하고, 인격을 짓밟는 것이었다.

 

약간 다른 문제지만, 사기꾼들이 사기를 치고 입장이 곤란하면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일주일 후에 틀림없이 꾼 돈 3천만 원을 갚겠다.’고 약속을 해놓고, 막상 일주일이 지난 다음 전화를 하면 연락이 되지 않는다. 전원이 꺼져 있다.

 

이럴 때 피해자는 미친다. 수십번, 수백번 전화를 한다. 밤늦게 아침 일찍 전화를 한다. 그래도 사기꾼의 전화는 전원이 꺼져있다. 이때 피해자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그러다가 나중에 사기꾼의 전원이 켜있어 음성메시지를 수없이 남기면 그때서야 전화를 걸어와 또 거짓말을 한다. 돈을 구하러 다니느라고 전화를 못받았다고 미안하다고 한다.

 

그것은 또 다른 거짓말이다. 그러면서 며칠 후에 틀림없이 돈을 준다고 거짓말을 하고 똑 같은 악행을 되풀이한다.

 

경희는 남편에게 전화하는 것을 포기했다. 어차피 받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 지금 남편은 어떤 심정일까?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어린 아이는 지금 어떻게 있을까? 너무 많은 것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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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⑪

 

경희는 가까운 친구들이 여러 명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런 경우 누구에게 연락을 할까? 하지만 친구들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가깝게 지내는 친구라 해도, 경희의 입장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친구의 불행을 겉으로는 안됐다고 걱정해 주면서도 속으로는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다. 남이 잘 되면 공연히 기분이 좋지 않다. 친구가 남편이 돈을 잘 벌고 가정에 충실하고, 자식들이 공부를 잘 한다고 자랑하면 속으로는 은근히 기분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성인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구가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사업도 잘 안 되고, 자녀들도 공부도 안 하고, 못된 짓이나 하고 다닌다고 하면 속으로는 고소하게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런 말을 하는 친구를 속으로 무시하고 우습게 본다.

 

물론 안 그런 사람도 많다. 하지만 누가 그런지 알 수 없으니 함부로 자신의약점이나 단점, 비밀을 털어놓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경희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친구들 세계에서는 집안도 괜찮고, 미모도 갖추었고, 남편도 의사를 만나 아이 낳고 아무 걱정 없는 것처럼 보였다. 돈도 쓸만큼 쓰고 골프도 치러 다녔으니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경희가 갑자기 불륜으로 남편에게 적발되고 앞으로 이혼을 당할지 어떨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하면 속으로는 ‘그렇게 잘난 체 하더니 잘 됐다’라고 생각할 사람도 많을 것처럼 생각이 들었다.

 

사회 전반이 극도의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자본주의 하에서 물질만능주의가 사람들의 의식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물질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피상적인 것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고, 대접하거나 무시한다. 또한 남이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세태다. 그래서 잘 살던 사람이 망하고, 공무원이 감방에 가고, 남들이 병에 걸려 죽어도 자기 일이 아니면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잘난 척 하던 사람이 패가망신하면 신바람이 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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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⑩

 

<지금까지의 줄거리>

 

*** 경희(39세)는 철수(41세)와 결혼한 지 8년이 된다. 경희는 결혼 전 연애를 했던 병호와의 관계가 남편에게 알려지고, 그래서 철수와 사이가 나빠진다. 그러던 중 경희는 우연히 만난 영식과 연애를 한다. 그러다가 모텔 현장에서 남편에게 발각된다.***

 

사람의 운명은 알 수 없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순식간에 벌어지고, 그 대가는 가혹하다. 갑자기 이 세상에서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떨어진 것처럼 주변 사람이 모두 사라져버린다.

 

아무와도 전화하기도 싫고, 상의할 사람도 없어진다. 그렇다고 혼자 술을 마시거나 차를 마실 마음도 사라진다. 오직 고통스러워 죽고 싶은 마음뿐이다.

 

경희는 오늘 아침 집을 나설 때만 해도 그랬다. 특별한 걱정이 없었다. 어제 밤에 잠도 잘 잤다. 몸 컨디션도 좋았다. 남편은 보통 기분으로 출근을 했다.

 

아이도 어린이집에 보냈다. 경희는 혼자 있다가 화장을 하고 외출해서 영식을 만나 점심 식사를 하고 모텔에 들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영식과 모텔에서 뜨거운 정사를 벌였다. 오래 반복된 행위였지만, 아직 나이가 젊어서 그런지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남편인 철수가 흥신소를 통해 미행을 했고, 모텔 방에 들이닥쳐 불륜의 현장을 들킨 것이다.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가려고 시도했지만, 남편은 비밀키 이외에 안에서 단단히 걸어잠그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영희는 식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24시간 하는 카페로 갔다. 혼자 앉아 커피를 시켰다. 누구를 만나 상의를 해야 하나? 친정집에는 연락할 수 없었다. 얼마나 실망할까? 결혼해서 별 문제 없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더군다나 부모는 의사 사위를 얻기 위해 돈도 많이 들였다. 사위가 의사라고 늘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철수도 처갓집에 잘 했다. 경희와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 처갓집 식구들에게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경희는 바람 피다가 모텔에서 남편에게 들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친정에 알릴 수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알린다고 한들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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