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남이 싱글 여자를 사랑할 때의 고민!!!>

 

철수는 유부남으로서 미혼의 영희를 만났다. 같은 직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영희는 단순히 연인으로서 육체관계를 계속하고 있지만, 결혼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지금 당장 결혼할 여건도 아니고, 좋은 사람이 만나기 전까지는 결혼을 서두를 생각도 없다. 단지 철수와 좋은 감정을 간지고 만나며 가끔 성관계를 하는 입장이다.

 

철수 역시 영희와 연애를 하고 있지만, 영희와 결혼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부인과 이혼하거나 별거할 생각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두 사람은 목사님에게 찾아갔다. 목사님은 자세한 상황을 듣고 나서 말씀하셨다. “빨리 참회하고 헤어지십시오.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 이외의 여성과 연애를 하거나 성관계를 하면 커다란 죄를 짓는 것입니다. 부인에게 죄를 짓는 것이며, 거짓말로 부인을 속이는 것 자체가 큰 죄입니다. 빨리 회개하십시오.”

 

그러나 두 사람은 항변했다. “사랑을 어떻게 강제로 끊고, 통제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단지 사랑하는 거예요. 순수해요. 그렇다고 철수 씨에게 이혼을 하라고 요구하지 않아요. 철수 씨와 결혼할 입장도 아니고요. 우리가 연애하면서 철수씨는 가정에서도 더 잘해서 가정도 잘 지키고, 아무도 모르게 사랑하는 것도 죄가 될까요?”

 

목사님은 음성이 커지셨다.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두 사람은 다 지성인이예요. 결혼했으면 혼인의 순결을 지켜야지요. 하나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좋으면 철수 씨가 이혼하거나 졸혼하고 영희 씨를 만나야 하는 것예요. 부인과 애정이 없으면 솔직히 말하고 헤어지세요. 그런 다음 영희씨와 만나 연애를 하든 결혼을 하든 하는 게 하나님의 법이고 뜻이며 정의입니다. 사회 윤리이고 법이예요.”

 

두 사람은 또 항변했다. “우리는 절대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요. 선의의 거짓말로 부인을 속일 뿐이예요. 우리는 아이를 가질 것도 아니고, 상대방에게 돈을 요구하지도 않아요. 그냥 사랑을 하고, 아껴줄 뿐이예요. 그럼으로써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서로 위로하면서 격려하고 더욱 열심히 살아가는 거예요. 만일 우리 사이의 애정이 식으면 그때는 쿨하게 헤어질 거예요. 그래도 죄가 되나요? 부인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만나야 한다는 건가요?”

 

목사님은 끝내 화를 냈다. “두 사람은 불륜이고, 윤리에 위반됩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고요. 부인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큰 죄악이예요. 그리고 부인이 알면 얼마나 큰 상처와 배신감을 느끼겠어요? 그런 성적 욕망을 채우는 건 동물이나 똑같아요. 성관계를 하려면 반드시 결혼관계를 통해서 해야 하는 거예요. 두 사람의 불륜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는 중대한 죄악입니다. 나중에 하나님께 징계를 당하는 것은 목사인 내가 책임질 수 없어요.”

 

두 사람은 아는 대학 교수에게 찾아갔다. 교수는 한 동안 말이 없다가 조용히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말문을 열었다. “참 어려운 상황이네요. 그런데 결혼한 철수 씨가 부인을 두고, 영희 씨를 만나 사랑한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예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원인이야 어떻든, 이유야 어떻든 현재의 상황이 중요해요. 지금 두 사람이 관계를 정리하기 어려운가요? 그렇다면 이렇게 해야 해요.”

 

두 사람은 무척 궁금했다. 어떤 좋은 해결책이 나올까 기대했다. 그러나 교수는 담담하게 말했다. “일단 부인에게는 알리지 말아야 해요. 그것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예요. 도둑이 도둑질을 하고 주인에게 찾아가 내가 당신 귀중품을 훔쳐갔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더군다나 이 사건에서 주인은 무엇을 도둑맞았는지 조차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평온한 상태잖아아요? 그런데 당신들이 그 무엇을 상실했고,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도 전혀 모르는 부인에게 먼저 말을 한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아요? 그리고 앞으로 연애를 계속 할 것인지 여부는 당신들이 판단하세요. 헤어질 수 있으면 헤어지고, 헤어질 수 없다면 헤어질 때까지 비밀리에 연애를 하고 가정을 파탄시키지 않도록 노력하세요. 그리고 만일 서로에게 다른 사람이 생기면 서로 쿨하게 놓아주고요.”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다. 결혼한 사람은 절대로 다른 이성을 사랑해서는 안 되느냐 하는 문제다. 그 자체가 죄악이고 법에 의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아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결혼한 사람은 반드시 기존의 결혼관계를 정리하기 전에는 다른 사랑을 해서는 안 되느냐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하려면 그 전 단계로 배우자에게 미리 말하거나, 기존의 결혼관계를 정리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결혼한 사람이 가정을 유지하면서 연애를 하기 위해 배우자에게 숨기는 것이 정당하냐, 아니면 반드시 밝혀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혼할 생각 없이 다른 이성과 연애를 하는 것이 그 상대방에 대한 죄악이냐 하는 문제다.

 

매우 중요한 현실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다. 많은 사람들의 논의를 기대해 본다.

 

사랑을 부정하는 사람의 불행!!!

 

사랑을 부정하는 사람에게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오직 그를 찾는 사람에게만 나타나고 다가간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사랑은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키에르케고르는 말한다. “자기에 대하여 절망하는 것, 즉 절망하여 자기 자신으로부터 빠져 나오려고 하는 것이 모든 절망의 공식이다.” 절망은 곧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사랑에 대해 절망하는 것, 절망하여 사랑에서 빠져나오려는 하는 것이 사랑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공식이다.

 

실제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은 매우 추상적이고 공허한 개념이다. 먹고 살기 바쁘고, 무한경쟁의 삭막한 현실에서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생존이 중요하고, 가족을 먹여살리는 것이 필요하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하고, 권태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취미활동도 하고, 영화관에도 가야 한다. 때때로 술도 마시고 노래방에도 가야 한다. 그러다보면 마음의 여유도 없고, 경제적인 여유도 없어 사랑은 그림의 떡이 되고 만다.

 

사랑은 실존에 있어 중요한 영양분 역할을 한다. 사랑이 없으면 실존은 고독하고, 삭막한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처럼 된다. 낙타의 길은 오직 생존을 유지하는 의미밖에 없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한 사랑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비록 자신에게 맞는 짝을 찾는 것이 어려워도, 끊임없는 시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일단 얻은 사랑은 서로 노력해서 아름답게 가꾸어야 한다.

 

사랑에서 실존의 의미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사랑을 얻은 실존은 마치 아름답고 붉은 꽃을 피운 장미와 같다. 꽃이 없는 장미, 시들은 장미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사랑을 찾아라. 사랑의 가치를 깨닫자. 사랑을 절대 부정하지 않도록 하자.

 

<홀로 서는 것이 사랑하는 것보다 쉬운 이유>

 

세상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길을 간다. 서로 다른 길을 걷는 모습도 다양하다. 이와 같은 인간의 개별성, 독자성, 고유성은 인간 내면의 본질에 속한다.

 

바로 이런 인간의 속성 때문에, 사람들은 혼자서는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있지만, 두 사람이 함께 완전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두 사람이 하는 동업(同業)이다. 동업(run business together)이란, 사업이나 영업을 함께 하는 것을 말한다.

 

작은 규모의 치킨집을 두 사람이 동업으로 하면, 100% 깨진다. 장사가 잘 되어도 동업관계는 깨지고, 장사가 잘 안 되면 더욱 쉽게 깨진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두 사람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어렵고, 서로에 대한 신뢰가 유지되는 것이 어렵고, 서로의 생각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사업에 대한 각자의 기여도가 똑 같을 수 없고, 각자 자신의 기여도를 과대평가하고, 상대의 기여도를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업의 출발 시점에서는 서로 형제처럼 생각하면서 네것 내것 없이 열심히 해서 재벌이 되자고 도원의 결의를 맺지만, 얼마 못 가서 서로 원수가 되어 형사고소를 하고, 민사소송을 시작한다. 그리고 두 번 다시는 동업을 하지 않겠다는 굳은 맹세를 한다.

 

사랑도 똑 같다. 사랑은 동업과 달리, 마음과 몸을 하나로 하는 정신적 육체적 공동체를 결성하여 기간을 무기한으로,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로 하는 특성이 있다.

 

결혼은 이러한 사랑을 법적으로 묶어두는 역할을 하는 전통적인 제도다. 동업과 달리 사랑이나 결혼에 있어서는 오직 한 사람하고만 관계를 가져야 하고, 동업을 해야 한다. 이것이 사랑의 독점성, 배타성, 유일성이다.

 

이러한 사랑의 속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일부일처제를 최고의 진리로 신봉하게 만들었고, 사랑을 관계가 아닌 소유로 규정하는 불합리를 가져왔다.

 

그래서 인류사회는 오랫동안 간통죄를 사형에서부터 징역형까지 형벌로 존치하고 있었고, 지금도 결혼한 사람이 다른 사랑을 하거나 기웃거리면 민법상 불법행위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사랑은 단기소멸시효를 가지고 있다. 3년이면 사랑의 열정은 식고, 그 사랑은 <인간관계의 애정>, <정신적 유대관계>로 생산적인 전환을 하지 않으면 질식하고 만다.

 

3년의 <첫사랑> 내지 <달콤한 신혼>의 밀월기간이 끝나면, 사랑은 태생적인 모순을 드러내고, <불편한 인간관계>, <귀찮은 존재> <더불어 동행할 수 없는 훼방꾼>으로 비극적인 변모를 한다.

 

사랑은 미움으로 변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애당초 만나지 않았어야 할, 잘못된 인연으로 전락한다. 그래서 헤어지고 이혼하고,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이것은 두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다. 어리석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인간은 원래 혼자 살게 되어 있다. 그런데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사랑을 한다.

 

두 사람이 결합해서 정신적 유대관계를 맺음으로써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육체적 사랑을 통해 정욕을 해소하고, 더 나아가 믿을 수 있는 경제적 동업을 통해 잘 먹고 잘 살고, 자녀를 낳아 노후를 보장받으려 하고, 대외적으로 멋있고 능력 있는 배우자를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과시를 하려는 매우 인간적인 소망을 강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인간의 사랑에는 많은 단점과 제약 요소가 존재한다. 그래서 홀로 서는 것보다, 둘이 삼각발로 뛰는 것이 훨씬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인간의 본질과 사랑의 속성을 이해하면서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사랑에서 실패하지 않는다.

 

<여자가 바람을 피웠을 때, 남자는?>

 

남자들이 정말 조심해야 할 일이 있다.

여자와 연애하거나, 사랑하거나, 결혼생활 하거나,

여자가 바람을 핀다고 해서 흥분하는 것이다.

 

물론 충격적이다.

하지만 일단 바람이 난 여자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냥 참고 살든가,

아니면 헤어지면 된다.

 

이때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여자에게 폭행을 가하면,

그 남자는 인생 조지게 된다.

가정폭력, 데이트폭력이 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신체적으로 강한 남자가

신체적으로 약한 여자를 상대로

폭행, 상해, 살인을 하면 크게 처벌을 받는다.

 

어떠한 폭행이나 범죄행위, 불법행위도

여자가 바람을 피웠다는 이유로

정당화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사랑하던 여자가 바람을 피웠다고

한번 분노를 폭발시키고

그것으로 그 여자와의 관계가 끝나면

그 이후의 고통은 더욱 심각하다.

그 여자와의 관계의 회복이

아예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여자가 바람을 피웠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 다 같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슬픈 카페의 노래

 

미국 조지아 주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미스 어밀리어 에번스는 매우 고독한 삶을 살고 있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사료가게를 이어받아 운영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직 돈을 버는데만 신경을 쓴다.

 

어밀리어는 180센티미터의 큰 키에 사팔뜨기다. 그녀는 마빈 메이시와 결혼하지만, 일주일만에 그들은 파경에 이른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우연히 나타난 라이먼과 그녀는 사랑에 빠진다. 라이먼은 꼽추로서 외향적이며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다. 어밀리어는 라이먼을 위해 카페를 차린다.

 

어밀리어와 라이먼은 카페를 운영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카페도 번창하게 된다.

 

하지만 메이시는 어밀리어를 다시 사랑하고, 어밀리어는 라이먼을 사랑하고, 라이먼은 메이시를 좋아한다.

 

카슨 매컬러스가 쓴 소설, 슬픈 카페의 노래는 미국 남부 조지아주의 어느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애정의 삼각관계를 그리고 있다.

 

메이시는 성격이 난폭했는데, 어밀리어를 사랑하면서 선량한 사람으로 되었다가 어밀리어로부터 버림을 받자 다시 포악한 사람으로 변한다. 다른 곳에서 강도짓을 하고 감방에 갔다가 출소해서 다시 어밀리어 곁으로 돌아온다. 라이먼은 이러한 메이시에게 반해 사랑에 빠진다.

 

어밀리어와 메이시는 큰 싸움을 하게 되고, 메이시는 꼽추 라이먼의 도움을 받아 어밀리어를 폭행한 후 두 사람은 어밀리어가 가진 모든 것을 파괴하고 도망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밀리어는 3년 동안 라이먼을 기다리다가 카페 가게를 널빤지로 막은 다음 혼자 외로운 은둔생활을 시작한다.

 

 

사랑하면 고독하지 않은가?

 

실존의 고독과 사랑은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 고독하기 때문에 사랑에 이끌린다. 하지만 사랑이 고독을 완전하게 물리쳐주지는 못한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고독은 또 다시 기회를 틈타서 존재의 한 가운데로 파고든다.

 

뜨거웠던 사랑이 식으면 고독은 다시 고개를 쳐든다. 사랑과 고독은 어떤 의미에서는 서로 반비례하는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랑이란 참 묘하다. 우선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오직 가슴 속에서만 머물다가 사라진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지만, 그 사랑의 강도는 언제나 동일하지 않다. 한 사람은 사랑을 주고, 한 사람은 사랑을 받는 경우도 있다. 주는 사랑과 받는 사랑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주는 사랑은 진한 감정을 자신의 가슴 속에 쌓아놓는다. 사랑을 상대에게 많이 주고, 자신에게서 많은 에너지가 분출되어 상대에게 전달되었음에도 사랑의 결정체는 자신의 내부에 저장하게 된다.

 

받는 사랑은 상대로부터 많은 에너지가 들어왔고, 사랑의 감정이 전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자신의 가슴 속에 남는 것은 별로 없다.

 

때문에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이 진하다. 더 아프고 고통스럽다. 그에 비해 받는 사랑은 새털처럼 가볍고 언제 변할지 모른다.

 

사랑을 주는 사람은 자신의 사랑이 무척 고독하다는 사실을 내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받는 사람은 사랑 때문에 고독을 느끼지는 않는다.

 

장미의 꿈

 

안나 카레니나의 비극적 사랑

 

사회적 명예와 부를 거머진 괜찮은 남편을 두고, 8살 짜리 아들까지 있는 안나 카레니나는 고루한 남편과의 따분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가, 우연히 무도회장에서 매력적인 청년 브론스키의 저돌적이고 맹목적인 프로포즈를 받는다.

 

종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강렬한 사랑 앞에서 갈등을 겪다가 마침내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두 사람의 뜨거운 사랑도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식어지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만다.

 

자신이 가정을 버리고, 아들까지 버린 안나에게 남은 것은 사회적 비난과 왕따, 그렇다고 브론스키가 계속해서 안나를 지켜주지도 못하는 것이다.

 

안나는 결국 가정을 버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이다. 새로운 사랑의 덫에 걸리고 빠져서 자신의 운명을 불행하게 바꿔버린 것이다.

 

이런 불행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화시켜서는 안 된다. 결혼한 이상 사랑도 좋지만, 가정을 지켜야 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일 뿐 아니라, 본인 스스로 불행해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담보장치다.

 

소설과 영화, 뮤지컬은 이런 안나의 불행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든다. 순수한 사랑, 열정적인 사랑만을 부각시키고, 현실적인 불행과 고통, 가정의 파괴는 뒷전이다.

 

하기야 그래야 문학이고 소설이다. 평범하고 진부한 스토리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폭풍의 언덕처럼... 슬픈 카페의 노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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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이 다른 남자를 만날 때>

 

철수(47, 가명)는 영희(45, 가명)를 사랑했다. 두 사람 모두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면서, 힘을 합해 살기로 했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자녀가 있었기 때문에, 같은 집에서 동거는 하지 않고, 밖에서 만나 연애를 했다. 남자는 여자를 위해 돈을 많이 썼다. 자동차도 사주고, 생활비도 대주었다.

 

커피숍을 차려주고, 해외 여행도 데리고 다녔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두 사람은 그야말로 순수한 연인 사이였다. 결혼을 전제로 한 것도 아니고, 사실상 부부로서 생활한 것도 아니었다.

 

3년이 지나면서 여자는 다른 남자를 만나기 시작했다. 철수는 의처증(?)이 생겼다. 부인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사랑했고, 많은 돈을 들인 여자가 바람을 피니 가만 있을 수 없었다.

 

남자는 여자의 뒤를 쫓아서 마침내 상간남을 잡았다. 격투를 벌였다. 서로 많이 다쳤다. 하지만, 그 남자는 다행이 철수를 만나서 영희를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알고, 영희와 헤어졌다.

 

그후 6개월이 지나서 영희는 또 다른 남자와 바람을 폈다. 이상한 낌새를 챈 철수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영희의 뒤를 캤다. 영희의 핸드폰을 수시로 몰래 보고, 영희의 자동차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했다.

 

철수는 늘 영희가 바람을 피고 있다는 생각에 노이로제가 걸렸다. 그러면서 흥신소를 시키지 않고, 돈을 크게 들이지 않고, 과학적인 장비를 동원해서 영희의 두 번째 새로운 상간남을 찾아냈다.

 

이번에는 그 남자뿐 아니라 영희까지 폭행했다. 영희는 진단서를 끊고, 그동안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 사실까지 모두 모아서 철수를 고소했다.

 

철수는 재판을 받게 되었다. 전과자가 되고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

 

한 여자를 사랑했던 것이 이렇게 커다란 고통을 주는 것이었다. 철수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 때문에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세상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이렇게 다른 법과 도덕에 의해 예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규율되는 것이다.

 

<함부로 사랑하지 마라>

<함부로 여자를 믿지 마라>

 

<함부로 욕을 하지 마라!>

 

1.

장미꽃 앞에서는

오직 장미만을 생각하라.

 

2.

사랑은 고통스러우면 안 된다.

출발부터 문제가 있는 사랑은

애당초 하지 않는 게 좋다.

 

3.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좋은 감정을 가졌다고 해서

더 나아가 사랑까지 얻으려 하지 마라.

사랑은 상대가 똑같이 움직여야 가능한 것이다 .

 

4.

자신의 정신상태, 심리상태를 건강하게 유지하라.

우울증에서 벗어나라.

 

5.

좋은 사람을 적극적으로 찾고

나쁜 사람을 소극적으로 버려라.

 

6.

경우가 나쁜 인간을 멀리 하라.

불합리하고 비도덕적인 인간을 상대하지 마라.

 

7.

돈을 헛되이 쓰지 마라.

상대의 영업행위를 도와주기 위해

아무 가치 없는 신문이나 잡지는 구독하지 마라.

 

8.

다른 사람과 불필요한 논쟁을 하지 마라.

특히 정치나 종교, 사상이나 이념 논쟁을 하지 마라.

 

9.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아껴라.

세월은 쏘아놓은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10.

나이 들면

젊은 사람들에게 모든 걸 마껴라.

몇십년 전 이야기를 하지 마라.

세상은 너무나 빨리 지나간다.

50년 전 이야기는

신라시대 이야기와 거의 비슷해졌다.

 

11.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을

무조건 비판하고 욕하지 마라.

그 사람은 나보다 훨씬 나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하라.

 

12.

실제로 욕을 하면 그 상대방은 듣지 못한다.

욕을 하는 사람 입만 더러워진다.

 

<유부녀를 만나서는 안 되는 이유!>

 

최근 우리 사회는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처음 집단으로 감염되어 급속도로 확산될 때, 우리는 24시간 불안에 떨었다. 이런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느끼지 못한다.

 

유부녀를 만나지 말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쓸데없이 유부녀를 만났다가, 그녀의 남편이 부정사실을 알고 나타나서, 책임을 추궁하는 경우에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금전거래와 달라서, 자신의 부인이 다른 남자와 정을 통했다고 하는 문제는 매우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이다. 남편은 상상도 하지 못할 충격을 받고, 극심한 고통에 빠진다. 그래서 화산이 폭발하듯이 순식간에 분노가 폭발한다.

 

남편은 자신의 부인이 더럽혀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한 불합리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부인도 증오하고, 자신의 부인을 더럽힌 남자를 동물로 간주한다.

 

이런 상황이 되면, 법이고 도덕이고 아무 소용이 없다. 남편은 상간자를 가만 두지 않으려고 한다. 체면이고 명예고 없다.

 

상간자는 이런 남편의 공격을 막아낼 방법이 없다. 그가 아무 것도 없는 남자라면 남편도 상간자에게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그것은 파산자에게 돈을 받는 것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상간자가 돈이 많거나, 사회적으로 체면이 있거나, 가정이 있는 경우에는 다르다. 남편은 이러한 상간자를 증오하고, 자신의 부인까지 데리고 농락해놓고, 상간자의 개인적인 체면, 명예, 가정은 온전히 지키려고 하는데 더 분노한다.

 

결론적으로 남자들은 절대 유부녀를 사적으로 만나지 마라. 연애도 하지 말고, 특히 성관계를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남편이 오해할 정도로 전화, 문자메시지, 카톡, 페이스북 소통도 해서는 안 된다. 특히 남편이 의처증이 있는 경우라면 유부녀와 연애를 가벼운 마음으로 하던 남자는 어느 날 갑자기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생명까지 위태로울 수 있고, 그렇지 않아도 엄청난 망신을 당한다. 법적으로는 천만원 내지 2천만원을 위자료로 물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가정은 깨지고 만다.

 

유부녀도 이런 위험성, 비도덕성, 불륜의 해악성을 감안해서 절대로 남편 이외의 남자에게 접근하지 마라. 자신은 장난으로 다른 남자를 가볍게 만날지 몰라도, 남편이 알면 잔잔한 파도가 쓰나미가 되고, 상대 남자를 파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유부녀가 재벌 회장 부인 정도 되면 다르다. 남편도 유부녀의 불륜을 크게 문제 삼지 않을 수 있고, 문제가 되어도 재벌 회장인 유부녀가 상간자를 보호해주고,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혹시, <그러면 남자는 유부녀 아닌 처녀나 돌싱은 만나도 되나요?>라는 매우 현명한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그건 알아서 하세요! 자신의 인생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으로 이끌고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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