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대부 허균(1569-1618)은 전라북도 부안에서 매창(1573-1610)이라는 기생을 좋아하고 사랑했다.
허균이 전운판관으로 발령을 받아 부안으로 갔다. 33살의 나이에 그곳에서 기생 매창을 만났다. 매창의 나이는 29살이었다. 허균과 매창은 10년 동안 서로 사랑을 했다.
매창은 계생(桂生)이라고도 하며 부안(扶安) 기생이었다. 매창은 시에 능하고 노래와 거문고도 잘했다. 천성이 고고하고 깨끗하였다.
매창이 37살에 먼저 세상을 떠났다. 허균의 나이 41살이었다. 사랑하는 여인을 먼저 보낸 허균은 슬픔을 견디지 못했다.
허균은 매창을 위해 시조를 썼다.
偸桃來下界 복숭아를 훔친 죄로 하계에 귀양 와서
竊藥去人群 선약을 훔쳐 인간세상을 떠나셨네
燈暗芙蓉帳 부용꽃 휘장에 등불은 어두워졌는데
香殘翡翠裙 비취색 치마에 향내는 아직도 남아있구려
<류주환 역>
‘이미 너와 나의 거리/ 멀어진 그리고 벌어진 남보다 못한 우리 사이/ 사랑에 슬퍼하고 사랑에 눈물짓는 외톨이/ 가슴이 아파/ 수 많은 밤을 세우며 나를 달래고 있어/ 사랑이 가네 사랑이 떠나네/ 이 밤이 가면 널 지워야겠지/ 사랑에 아파하고 사랑을 기다리는 외톨이’(C.N. Blue, 외톨이야, 가사 중에서)
사랑이 떠나갈 때 느끼는 애통한 심정은 예나 지금이나 똑 같다. 허균이 매창을 잃고 느꼈던 비통한 심정은 오늘 날 젊은 가수들에 의해 똑 같이 노래되고 있다.
간통죄가 폐지된 후 우리 사회의 성문화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돈이 있거나 체면이 있는 사람은 여전히 조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돈도 없고 체면도 없는 사람은 남편이나 아내와 살고 싶지 않으면, 그냥 짐을 싸가지고 가출하면 끝이다. 아무런 대책이 없게 된다.
기껏해야 이혼청구를 하고, 위자료청구를 할 수 있는데, 이혼이야 원하는 바이고, 위자료는 재산이 없으면 아무리 판결을 받아도 강제집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유부남과 유부녀가 만나는 중요한 계기는 인터넷을 통하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어 오프라인 만남을 갖게 되면 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동네에서 이용되는 스포츠 동호회, 등산모임 등을 통해 남녀가 만날 기회가 많아지면 연애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그중에서도 산악회는 특히 건강한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자연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더 많은 연애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등산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건강한 사람들이다.
성적 에너지가 많은 사람들이 몇시간씩 함께 등산을 하면서 상대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연애를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성개방풍조의 현실에서 또 스스럼없이 성관계를 맺게 되는 위험성이 있다.
많은 경우에는 그냥 그것으로 끝나고 쿨하게 지내거나 헤어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때로 치정사건도 벌리고, 가정이 파탄나기도 한다.
물론 결혼한 사람이 바람을 피면 민법상 부정한 행위에 해당되어 이혼사유도 되고, 위자료를 물어주어야 한다. 같이 바람을 핀 상대방도 마찬가지이다.
앞으로는 결혼했다고 해서, 오직 자신만을 위해 정조를 지키라고 강요하기 어렵게 되었다. 스스로 잘 해서, 성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애정을 가지고 가정을 유지하고, 자녀를 양육하고 건강하고 보람 있는 삶을 영위한다는 가치관,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