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편단심 민들레야!

 

이도령을 간절히 기다리던 춘향은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이도령을 만난다. 하지만 이도령은 암행어사가 되어 내려온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떨어지고 집안은 몰락하여 거지가 되어 내려온 것이 아닌가?

 

춘향은 얼마나 기가 막힐까? 오매불망 애타게 기다린 이도령이 이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나타나다니...

 

그러나 그 다음 날, 이도령은 암행어사 출두를 외치며 변학도를 잡아넣는다. 통쾌한 복수의 장면이다.

 

<금준미주천인혈 金樽美酒千人血

옥반가효만성고 玉盤佳肴萬姓膏

촉루락시민루락 燭淚落時民淚落

가성고처원성고 歌聲高處怨聲高>

 

* 금 동이에 넘치는 술 중생의 찌든 피요/ 옥 소반의 맛있는 안주 만 백성의 기름이고/ 촛농이 녹아 떨어질 때 민초들이 피눈물을 뿌릴지니/ 가무가 드높은 곳엔 원성 또한 높으리라(춘향가에서)

 

기다릴께 나 여기 있을게/ 마지막 사랑 난 너란 걸 아니까/ 사랑 하나밖에 몰라 다른 사랑할 줄 몰라/ 오직 너 하나만 바라는 바보/ 누가 내게 말을 해도 너만 들리고 보이는 난 어떡해’(Gavy NJ, 해바라기. 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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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사랑>

 

우리는 사랑에 대해 무지하다. 사랑을 너무 모른다. 아는 것 같으면서도 정확하게 모른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서 어리석다. 아주 어리석은 사랑을 하게 된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사랑에 빠졌다가 빠져 나온 다음 후회하는 사람이 된다.

 

자신이 바라던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허상만 쫓아다니다가 꿈에서 깨어났기 때문이다. 시간만 낭비하고, 정말 할 일은 하지 못하고 만 것이다. 그것을 어리석은 사랑이라고 한다. 사랑의 시행착오라고 한다.

 

사랑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상대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랑을 통해서 무엇을 얻으려고 했던 것인지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 그 자체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한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무소유의 상태에서 사랑의 존재에 매달려야 한다. 사랑은 우리의 영혼이 안식할 수 있는 둥지이기 때문이다.

 

<울고 불고 했던 지난 날은 잊고

지지고 볶고 했던 그 남자는 잊고

다른 사람 만나요

어떤 옷을 입고 갈까 고민고민

큰 거울 앞에 이런 저런 포즈포즈

지금 만나러 가요

굽이굽이 이 높은 구두 신고 사뿐히

걸어가면 저기 당신 보여요>

- 윙크, 얼쑤, 가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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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의 짧은 스토리

 

달과 6펜스는 영국의 서머싯 몸(Somerset Maugham)이 쓴 소설이다. 한 인간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개인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현실 세계에서의 모든 책임과 의무를 버린다. 오직 자신의 세계에 들어가 그곳에 충실한다.

 

그리고 절대로 후회를 하지 않는다. 철저한 개인주의, 이기적인 인생관이지만, 그래도 그는 주변의 시선이나 비난을 의식하지 않는다.

 

작가 서머싯 몸은 화가 폴 고갱의 일생을 보면서 하나의 모티프를 얻었다. 그는 진정한 예술가의 삶을 그리고자 했다. 달이라고 하는 이상적인 동경의 세계, 6펜스라고 하는 복잡하고 더러운 현실의 세계, 인간은 하늘과 땅을 번갈아 보면서 고뇌한다. 6펜스를 얻기 위해 자신의 이상을 버리고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달에 가까이 가기 위해 현실을 초월해야 하는가?

 

인간은 6펜스를 버려서도 안 되고, 달을 떠나서도 안 된다. 여기에 인간의 모순이 있고, 고통이 따른다.

 

<소설의 요지>

주인공 찰스 스트릭런드는 오직 그림을 그리기 위해 17년 동안 함께 생활한 부인과 두 자녀를 하루 아침에 버리고 가출하여 영국에서 파리로 건너간다. 안정된 직장도 버리고, 남들이 다 성공하기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화가가 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스트릭런드는 파리에서 어렵게 생활하다가, 스트루브의 도움으로 그의 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러면서 스트루브의 부인 블랑슈와 정을 통한다. 그러나 블랑슈는 스트릭런드의 이기적이고 냉정한 태도에 절망하면서 자살하고, 스트루브는 고국인 네덜란드로 돌아간다. 완전히 은인을 배반하고 그 가정을 박살낸 것이다.

 

그 후 스트릭런드는 남태평양에 있는 타히티 섬으로 가서 원주민 여자인 아타를 만나 생활하며 그림에 몰두한다. 그리고 위대한 벽화를 남기고 문둥병에 걸려 그곳에서 죽는다.

 

<우리는 답답한 현실에서 때로 소설에 나오는 이상적인 스토리에 매료된다. 하지만 그걸 따라해서는 위험하다. 우리들의 삶은 매우 제한되어 있고, 삶의 추상성은 현실 앞에서 무기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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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카페의 노래

 

사랑에는 받는 사랑과 주는 사랑이 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사랑이 한곳에서 만나 하나의 사랑을 만든다. 그리고 하나의 사랑을 두 사람이 공유한다. 함께 나누어 가슴 속에 품는 것이다.

 

두 개의 사랑은 눈사람처럼 하나로 뭉쳐진다. 얼음물처럼 녹아 두 사람의 핏속을 흐른다. 동맥과 정맥을 거쳐 다시 심장으로 돌아온다. 화학적 반응을 경험한 사랑은 두 영혼을 하나로 묶는다. 그렇게 해서 사랑은 다시 사랑을 초월한다.

 

슬픈 카페의 노래에서 미국의 여류 소설가, 카슨 매컬러스는 두 개의 사랑의 공유현상에 관해 리얼하게 표현하고 있다. 주는 사랑과 받는 사랑이 서로 결합하는 모습에서 전율이 느껴진다.

 

사랑의 파장이 상대의 가슴에 닿아 다시 되돌아올 때, 사랑은 최고조에 달한다. 진정한 사랑을 확인하고 싶으면, ‘슬픈 카페의 노래를 읽으며, 화이트 와인에 취해 보라.

 

<사랑이 숨쉬는 공간에는 언제나 따뜻한 향이 풍긴다. 비가 내리는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신다. 카페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슬픔이 깔려있다. 사랑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사랑이 신음하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받는 사랑과 주는 사랑이 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사랑이 한곳에서 만나 하나의 사랑을 만든다. 그리고 하나의 사랑을 두 사람이 공유한다. 함께 나누어 가슴 속에 품는 것이다.

 

두 개의 사랑은 눈사람처럼 하나로 뭉쳐진다. 얼음물처럼 녹아 두 사람의 핏속을 흐른다. 동맥과 정맥을 거쳐 다시 심장으로 돌아온다. 화학적 반응을 경험한 사랑은 두 영혼을 하나로 묶는다. 그렇게 해서 사랑은 다시 사랑을 초월한다.

 

슬픈 카페의 노래에서 미국의 여류 소설가, 카슨 매컬러스는 두 개의 사랑의 공유현상에 관해 리얼하게 표현하고 있다. 주는 사랑과 받는 사랑이 서로 결합하는 모습에서 전율이 느껴진다.

 

사랑의 파장이 상대의 가슴에 닿아 다시 되돌아올 때, 사랑은 최고조에 달한다. 진정한 사랑을 확인하고 싶으면, ‘슬픈 카페의 노래를 읽으며, 화이트 와인에 취해 보라.

 

<사랑이 숨쉬는 공간에는 언제나 따뜻한 향이 풍긴다. 비가 내리는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신다. 카페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슬픔이 깔려있다. 사랑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사랑이 신음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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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보다 더 귀한 사랑!

 

 

<목숨보다 더 귀한 사랑이건만

창살 없는 감옥인가 만날 길 없네>

 

사랑이 목숨보다 더 귀하게 느껴지는 것은 순간이다. 한 순간의 극한상황에서의 감정이다.

 

하지만, 그럴 때가 있다. 정말 좋아서, 어쩌지 못하고, 그 사랑의 감정은 목숨보다 더 귀하게 느껴지고, 온 몸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게 사랑이다.

 

그러나 그 사랑에는 장벽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장애물이 있다. 그래서 서로 만나지 못한다. 아니 만나서는 아니 된다. 그게 사랑의 운명이다.

 

<왜 이리 그리운지 보고 싶은지

못 맺을 운명 속에 몸부림치는

병들은 내 가슴에 비가 내리네>

 

가슴에 비가 내린다. 차가운 눈도 내린다. 아니 지독한 쓰나미가 몰려온다. 사랑 때문에, 못 맺을 운명 때문에, 가슴은 멍이 들고, 병이 든다.

 

그런 가슴 위로 비가 내린다. 차가운 겨울비가 내린다. 하지만 보고 싶다. 견딜 수 없다. 너무 보고 싶어 이제는 한 여름에도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다.

 

<서로 만나 헤어진 이별이건만

맺지 못할 운명인가 어이 하려나>

 

이 세상에는 맺지 못할 인연이 있다. 그런 인연은 어차피 헤어져야 한다. 우리가 운명을 거역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정한다. 맺지 못할 운명을 어이 하려고 하는가?

 

<쓰라린 내 가슴은 눈물에 젖어

애달피 울어봐도 맺지 못할 것

차라리 잊어야지 잊어야 하나>

 

결론은 두 사람이 헤어지기로 합의한다. 그리고 눈물을 흘린다. 애달프게 울어봐도, 아무리 눈물을 흘려도 맺지 못할 사랑인 것을, 차라리 잊어야 한다. 어차피 잊어야 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헤어진다. 이별의 플랫트홈에서 두 사람은 기적소리를 들으면서 각각 남과 북으로, 서로 다른 방향으로 기차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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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사랑의 본질을 이해하고, 사랑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게 가능하다. 사랑을 쉽게 생각하고 도전하거나,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사랑이 진정한 것이 아니고, 그 사랑이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 너무 막연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냥 좋아하고, 성적 결합에 이르고, 결혼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랑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사랑을 하려고 하며,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가? 그리고 진정한 사랑을 오래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이 필요한 것일까?

 

 

<사랑은 스스로 도달한 성숙도와는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탐닉할 수 있는 감상이 아니다. 가장 능동적으로 자신의 퍼스낼리티 전체를 발달시켜 생산적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아무리 사랑하려고 노력해도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없는 한, 또한 참된 겸손, 용기, 신념, 훈련이 없는 한, 개인적인 사랑도 성공할 수 없다.>

- Erich Fromm,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 황문수 옮김, 문예출판사, 5쪽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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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공감, 공존>

 

<사랑할 때 상대를 소유하려 하지 마라. 소유는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어디까지나 관계다. 서로가 노력해야 유지되는 가변적인 관계에 불과하다. 때문에 일방적인 사랑은 불가능하다. 상대의 움직임을 보아가면서 따라서 움직여야 관계가 유지된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은 사회적으로 많이 소외된다. 가족관계도 소원해진다. 예전의 부모 자식관계는 기대하기 어렵다. 형제간의 관계도 달라졌다.

 

모든 것은 자신이라는 핵이 중심이고 주체성이 매우 강해졌다. 그러다 보니 사랑에 있어서도 상대방에 대한 의존심은 많이 감소되고 있다.

 

사랑도 소유 개념도 희미해지고 있다. 소유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의 관계로서 만족해야 한다. 두 사람이 서로 가진 것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공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무조건 상대방에게 의지하고, 상대방만 믿고 있으면 안 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관계가 끝나면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남녀 간의 사랑은 일반적인 우정과는 다르다. 본질적으로는 성적인 결합, 상호보충적인 기능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랑에는 성적 욕망과 욕구가 반드시 뒤따르게 된다. 하지만 그 성적 욕망도 적절히 제어되지 않으면 결국 성적 욕망으로 끝나고 진실한 사랑을 상실하게 된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지나치게 성적으로 탐닉해서는 안 된다. 사랑을 변질시킬 위험이 있다.

 

중요한 것은 관계의 다정함이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다정해야 한다. 서로가 정으로 연결되어 그 정이 끈끈하게 이어나갈 때 사랑은 자리를 내리고 뿌리를 내리게 된다.

 

 

성적으로 소유하려 하지 마라. 성적인 소유관계는 매춘이다. 성적인 관계에서 해방되라. 그래야 진정한 사랑을 영원히 소유할 수 있다.

 

사랑은 상대방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존재를 정신적으로 소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롤랑 바르트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지 않고, 다만 가볍게 욕망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우리는 다만 그 사람의 다정함만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에게도 다정해질 필요가 있다. 서로의 친절함 속에 갇혀 어머니처럼 서로를 보살핀다. 우리는 모든 관계의 근원으로, 욕구와 욕망이 결합되는 그곳으로 되돌아간다. 다정한 몸짓은 이렇게 말한다. 네 몸을 잠들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청하렴. 그러나 또한 내가 너의 그 무엇도 즉시 소유하려 함이 없이, 너를 조금, 가볍게 욕망하고 있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 다오라고.> -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지음, 김희영 옮김, 319쪽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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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쾌락은 축제가 아니다>

 

사랑은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일시적인 성적 동작은 어디까지나 육체의 본능적인 표현에 불과하다. 육체는 몸으로 느끼는 쾌감을 오래 기억하지 못한다. 때문에 영속성이 없다.

 

인간의 정신과 마음만이 기억한다. 사랑의 감정을 오래 오래 저장해둔다. 그래서 정신적인 교감이 중요한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사랑은 두 사람의 영혼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말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서로 소통하고 있는 관계를 말한다. 그것이 사랑이다.

 

육체적인 결합은 그 사랑을 표현하는 동작에 불과하다. 그러한 사랑의 동작이 사랑 자체일 수는 없다. 롤랑 바르트가 지적하고 있듯이, 성적 쾌락은 계속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잠시 쾌락을 얻을 수 있어도, 곧 끝이 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성적 쾌락은 닫힌 축제다. 열린 축제가 아니다.

 

 

롤랑 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성적 쾌락에 대해 설명한다.

 

<성적인 쾌락은 환유적인 것이 아니다. 일단 얻고 나면 끝이 나는 그런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닫힌 축제, 잠시 열린다 해도 금지에 의해 통제를 받는 그런 축제이다.

 

반대로 다정함은 무한한, 충족될 줄 모르는 환유이다. 다정한 몸짓이나 에피소드(어느 날 저녁의 그 감미로운 조화)가 중단될 때 내 마음은 찢어지는 듯하다. 모든 것은 의문시되며, 리듬의 회귀 - 윤회, 열반의 사라짐.>

-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지음, 김희영 옮김, 319~320쪽에서 -

 

성적인 쾌락은 시간이 가면서 한계효용의 법칙에 의해 급격히 감소한다. 단지 육체적인 필요성에 의해 요구되는 제한된 것에 불과하다. 성적인 쾌락을 느꼈다 해도 그것을 오랫동안 기억 속에 간직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성적인 문제는 어디까지나 제한적인 축제의 의식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적인 쾌락에서 벗어나 근원적인 존재의 보완성, 영혼의 교감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육체보다 정신에 있다. 사랑을 하려면 동물에서 벗어나야 한다. 동물적 욕구, 성적 충동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사랑을 맛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란 무엇일까?

 

먼 곳에 있어도 눈이 보인다. 사랑은 눈에서 시작한다. 선한 눈빛으로 사랑은 시작되고, 눈과 눈이 마주치면서 정이 든다. 눈에 깊이 자리 잡은 사랑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첫눈에 반한 사람과 사랑이 맺어진다. 먼 곳에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의 눈은 볼 수 있다. 그것이 사랑이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의 눈을 볼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이 사랑이다.

 

눈을 감아도 미소가 보인다. 눈을 감고 있어도 보이는 세상이 있다. 눈을 떠야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눈을 감으면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다. 은은한 미소, 그가 내게 주었던 다정한 선물이다.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그냥 웃음으로 보여준 마음, 그 마음 때문에 우리는 행복을 느끼게 된다.

 

 

멀리 있어도 음성이 들린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리가 있다. 멀리 떨어지면 소리는 사라지고,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멀리 있어도 또렷이 들을 수 있는 음성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소리, 따뜻한 음성이다. 그 음성은 귓전에서 사라지지 않고, 가슴 속으로 울려오는 메아리다. 꿈속에서도 그의 음성은 자장가처럼 노래한다. 사랑의 아리아가 주는 감동이다.

 

떨어져 있어도 촉감이 느껴진다. 딱딱하고 삭막한 세상에서 마음 놓고 기댈 수 있는 곳. 그의 가슴이다. 그곳에서 삶의 율동을 느끼며 생명의 빛을 발견한다. 우리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되는 오아시스의 생수 같은 촉감이다.

 

보지 않아도 영혼이 포개진다. 영혼은 서로를 간절히 원한다. 외로움을 견디게 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넣어준다. 사랑은 서로의 영혼을 바꿀 수 있게도 만든다. 그 사랑의 장력은 해와 달처럼 우리를 영원히 이끌고 있다. 그로 인하여 영혼은 쉴 수 있고 평안과 활력을 얻을 수 있다.

 

<사랑은 보이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이란 무엇일까? 사랑은 아름다운 슬픔이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동행은 아름다운 꿈일 뿐이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긴다. 여백이 없으면 사랑이 아니다.>

 

사랑의 정체성(正體性)

 

진정한 사랑은 스스로 명확한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사랑은 애매모호하면 안 된다. 두 사람이 현재 하고 있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 모두 확실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개념이 정립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만 가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사랑이다.

 

물론 잘못된 사랑도 사랑이다. 사랑의 영역에는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주관적으로 사랑이라고 느끼고 있다면,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된 사랑은 나중에 심한 후유증을 가져온다. 사랑의 잘못은 용서되지 않는다. 이는 역사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격언이다.

 

현재의 사랑이 올바른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스스로 냉철하게 생각해야 한다. 차분하게 분석해서 사랑이 시작된 출발점부터 지금까지 흘러온 과정을 되돌아 보아야 한다. 특히 현재의 상황이 어떠한지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지금 두 사람의 관계가 아무 것도 아닌지,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어정쩡한 상태로 사랑의 실종을 선언하지 못할 뿐 그냥 식물사랑의 상태에 있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미안하다는 말은 다 그 때뿐 변하겠다는 말도 다 그 때뿐

내 가슴 아파 아파 아픈 걸 알면서도 자꾸만 반복되는 걸

내가 잘 잘 잘못했어 니 말이 달 달 달콤해서

맨날 말 말 말로만 날 날 날로 날 갖고 노는 걸 몰랐어>

- 2AM, 잘못했어, 가사 중에서 -

 

<사랑은 언제나 명확한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아무런 주관 없이 사랑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런 사랑은 허망함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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