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사랑

 

똑똑한데 사랑에 있어서는 어리석은 바보가 있다. 이기적이고 타산이 빠른데 사랑에서만큼은 계산을 할 줄 모른다. 그런 사람을 사랑바보, 멍청이라고 한다.

 

여자가 유혹을 하면 그냥 넘어간다. 자신보다 훨씬 못한 여자가 사랑한다고 하면 아무 생각 없이 받아준다.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계속 책임을 지려고 한다. 그러면서 그것을 순정이라고 하고, 사랑이라고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배신이라고 단정한다.

 

객관적으로는 남자가 너무 손해다. 여자가 적극적으로 프로포즈를 했기 때문에 남자가 말려들어간 것이다.

 

결혼에 이르는 과정도 그렇다. 주변에서 도시락을 싸들고 말려도 절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알아서 한다는 것이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아무 것도 아닌 남자가 적극적으로 애정의 공세를 하면 넘어간다. 그냥 받아들인다.

 

시간이 지나면 그 남자의 본색이 드러난다. 순수한 것도 아니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다.

 

이런 사랑은 오래 가지 않고, 갈 수도 없다. 시간이 지나면 상대의 본모습이 드러나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된다.

 

사랑은 일회성 게임이 아니다. 상대를 고를 때 신중해야 한다. 이것 저것을 따져봐야 한다. 성급한 선택은 실패할 확률이 90%.

 

자신의 모든 것을 솔직하게 펼쳐놓고, 그 무대 위로 상대가 올라오도록 하라. 그리고 시간을 가지고 서로를 파악하라. 그런 다음 정을 주라. 그래야만 진정한 사랑을 얻을 수 있다.

 

*** 바보 같은 사랑의 결과는 불행이다. 맞지 않는 인연은 백해무익하다. 때문에 선택이 중요하다. 고를 수 있을 때 잘 골라라. 아름다운 사랑은 <서로 맞음>에서 출발한다. 어긋난 사랑, 맞지 않는 사랑은 <倍加되는 불행>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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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지 않으면 빨리 헤어져라

 

맞지 않는 사람들이 부부라는 이름으로 참고 사는 것은 도덕적인 것 같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더 큰 잘못을 서로가 저지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참고 살아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맞지 않는 사람들은 애당초 결혼하지 말았어야 한다. 결혼했어도 아이를 낳기 전에 빨리 헤어지는 것이 낫다. 아이가 생겼어도 더 시간이 가기 전에 이혼하는 것이 좋다. 참고 살아봤자 남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불신, 배신감, 허망함뿐이다.

 

<그림자 사랑, 즉 내연관계라고 하면 통상 오래 지속되어 온 불행한 애정관계를 의미한다. 유부남과 불행한 정부라는 상투적 표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통용되는 말이다. 내연관계를 표현한 그림은 다수의 관계 모델에 적용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내연관계라는 말은 삼각관계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요구에 따라 뒤로 물러나 있을 때, 그러니까 말 그대로 그늘, 즉 음지에 머무름으로써 다른 사람이 양지바른 곳에서 살 수 있게 해줄 때에만 쓸 수 있다.> - 게르티 젱어, 불륜의 심리학, 41~42쪽에서 -

 

오늘도 수없이 많은 이룰 수 없는 불행한 사랑이 싹트고 꽃을 피웠다가 지고 만다.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혼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법과 제도가 있고, 도덕과 윤리가 있다. 사회 관습이 있고 타인의 시선이 있다. 일정한 기준이 있고, 그 기준을 넘어서면 가혹한 사회적 제재가 따른다.

 

내연관계는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불륜관계를 의미한다. 정식의 결혼을 하지 않고, 사랑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내연관계에는 숱한 사연이 스며들어 있다. 서로가 어쩌지 못하고, 그래서 사랑을 시작하고, 그 관계를 습관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남자와 여자는 거대한 사회 관습과 맞서 싸워야 한다.

 

그 싸움은 매우 위험하며,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격리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사랑하는 마음을 감추는 것은 힘이 드는 일이다. 속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연정! 그 사랑을 어디에 감출 수 있을까? 여기에서 사랑의 모순이 생겨나고, 당사자들은 불행에 빠진다.

 

<떳떳하지 못한 사랑은 피하라. 애당초 만들지 마라. 아예 가까이 가지 말고, 발도 들여놓지 마라. 사랑은 떳떳해도 이루기 어렵다. 당당하게 사랑을 할 수 있는 여건이라도 상대가 똑 같이 움직이고, 동행하고, 물들어가야 맺어진다. 하물며 떳떳하지 못한 환경에서 바퀴벌레와 같이 음습한 지하실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운다는 것은 뱀이 제비와 무도회에 나가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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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된 사랑의 회복

 

과거의 사랑과 현재의 사랑이 겹쳐지는 경계선에는 항상 슬픈 추억이 자리잡는다.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추억 다음에 오는 사랑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간은 살아있는 한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에, 과거의 사랑에만 매달려 있을 수 없다. 그것이 사랑의 모순이고 불행이다.

 

떠나간 사랑을 회복하는 것은 어렵다. 싸늘하게 식은 감정을 다시 뜨겁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떠난 사랑은 차라리 그대로 내버려 두라. 그것이 떠난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잊을 수 없는 여자가 있다고 해서 지금이 불행하다는 것은 아니다. 이 거리의 푸르고 투명한 하늘처럼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아오이와의 사랑을 회복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면 이건 분명 기억의 심술이다. 여기가 마침 시간이 정지해 버린 거리여서 그런지, 나는 어딘지 모르게 과거에 흔들리는 나 자신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 냉정과 열정 사이, 츠지 히토나리 지음, 양억관 옮김, 12쪽에서 -

 

우리는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사랑의 의미를 모른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왜 많은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고통을 겪고, 사랑 때문에 인생을 망치기는 것일까?

 

가장 바람직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과연 오래 가는 것일까?

 

일시적인 욕망과 사랑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을 성적 관계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일차원적인 단계에서는 사랑의 의미가 왜곡된다. 사랑은 성욕을 해소하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가? 서로에 대한 이해, 관심과 배려, 위로를 하면서 용기를 나누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런 사랑을 위해 우리는 무엇부터 배워야 하는가? 추상적인 사랑의 기술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사랑의 예술을 학습해야 한다.

 

사랑은 상대방에게 물들어가는 과정이다. 상대방과의 일치를 위해, 완전한 합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똑같은 색깔로 물들어가는 것이다.

 

<전경과 배경의 원리>가 있다.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나오는 용어다. 주된 관심의 대상이 전면에 부각되고, 다른 것은 뒤로 물러난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랑 때문에 과거의 사랑이 잊혀진다. 과연 그럴까? 떠난다고 잊혀지는 건 불가능하다. 떠났기 때문에 그 사랑은 더욱 진한 흔적을 남기고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그림자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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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사랑과 차가운 이별

 

사랑은 따뜻하고, 이별은 차갑다. 사랑은 두 실존의 화학적 결합이며, 이별은 양자의 물리적 분해를 의미한다. 그래서 사랑은 붉고, 이별은 파랗다.

 

이별을 경험하는 사람은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간다. 그는 더 이상 사랑에 저항하지 못한다. 갑자기 닥쳐온 이별에 대해서 어떠한 거부의 몸짓도 할 수 없다.

 

이별은 언제나 운명처럼 다가온다. 거대한 운명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그냥 꼼짝달싹 하지 못한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의 추억을 짓밟고, 떠나간 사랑을 저주하는 것뿐이다. 사랑이 떠나가는 이별은 항상 아프다. 잊을 수 없는 사랑을 의식적으로 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별은 운명이다. 우리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다. 조용히 보냄으로써 아름다운 이별을 하자. 내 님이 가는 곳에 눈이 시리게 선명한 진달래꽃잎을 뿌려놓자.

 

어려도 아픈 건 똑같아/ 세상을 잘 모른다고 아픈 걸 모르진 않아/ 괜찮아질 거라고 왜 거짓말을 해/ 이렇게 아픈 가슴이 어떻게 쉽게 낫겠어/ 너 없이 어떻게 살겠어 그래서 난/ 죽어도 못 보내’(2AM, 죽어도 못 보내, 가사 중에서)

 

<사랑도 그렇고, 이별도 예정된 것은 아닐까? 바닷가 모래알처럼 수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는 것은 기적이고, 신비이며, 운명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이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랑할 때, 과연 이별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너와 네가 헤어진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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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사랑의 의미

 

떠난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다. 떠났다는 의미는 사랑의 상실이 아니라, 사랑의 변질이다. 사랑은 빛의 속성을 갖는다. 빛을 상실하면 어두움일 뿐이다. 사랑은 변질된 상태에서 암흑의 길을 걷는다. 암흑 속에 파묻힌다.

 

사랑의 상실은 망각의 강을 건넌다. 너와 맺었던 인연은 모든 아름다움과 함께 강물에 던져진다. 세찬 강물을 겨우 빠져나온 사랑은 알몸으로 다리를 건넌다. 더 이상 사랑은 없다.

 

너 때문에 사랑은 부존재한다. 사랑의 망각과 상실은 빛과 어두움 속에서 서서히 교차한다. 그리고 그림자만 남긴다. 이미 상실된 사랑, 변질된 사랑 때문에 가슴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상대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만들었던 사랑의 사랑,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는 사랑의 허상, 사랑의 이미지, 사랑의 환상 때문이다. 그러므로 떠난 사랑 때문에 고통스럽다면, 그 사랑은 애당초 사랑이라고 할 수 없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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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없는 시간

 

'네가 없다면이 말은 너라는 존재를 전제로 한다. 대상이 되는 네가 있기 때문에, ‘만일 네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조건문이 성립될 수 있다.

 

여기에서 (You)'는 매우 소중한 가치다. 소중하기 때문에 네가 없는 것이 문제 된다. 소중하지 않다면 네가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더 이상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너는 무엇인가?’ 어느 날, 문득 내게 나타나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사람, 그 사람 때문에 내 마음이 동했고, 가슴 한 구석에 오랜 시간 남아 있었던 사람. 그래서 그 사람은 바로 나에게 가 되었다.

 

너 때문에무척 좋았었다. 함께 대화를 나누고, 함께 차를 마시던 시간, 나는 작은 행복을 느꼈다. 그 행복이 비록 크지 않았어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 아니었어도, 나는 즐거웠다. 서로 맞는 부분이 너무 많았으므로, 아무 조건이나 이해관계 없이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았으므로, 나는 너를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런 사랑이 떠났다. 아니 실종되었다. 마치 허공으로 사라진 연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믿는다. 그것이 사랑이 아니었음을, 혼자 사랑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허상이었음을, 다시는 내게 나타나지 않을 부재라는 사실을 안다.

 

그렇지만, 비록 짧은 시간이었어도 내게는 소중했던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아름다운 미소였고, 작은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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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사랑, 사랑의 고독

 

 

사람은 고독한 존재다. 외로움을 느끼면서 살아가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고독을 벗어나기 위해 사랑을 선택한다. 그럼에도 사랑 역시 한계가 있다. 고독을 피하기 위해 시작한 사랑은 더 지독한 고독으로 끝나기도 한다.

 

고독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을 하면서도 고독을 느끼는 사랑을 말한다. 그것은 바람직한 사랑이 아니다. 사랑을 하면 고독하지 말아야 한다. 고독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솔직해야 한다. 자신의 현재의 위치, 감정에 대해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선택한 사랑에 대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랑은 자신보다 상대방을 더 생각하고 배려하는데 본질이 있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려는 마음과 자세를 가질 때 진정한 사랑을 만들 수 있다. 얻을 수 있다. 그러한 사랑으로 인해 고독을 떨쳐 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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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없는 사랑

 

 

사랑의 본질은 실존의 자리매김에 있다. 고독한 실존이 자신의 존재이유를 확인하기 위한 대상을 찾는 것이다. 그 대상을 통해 실존의 빛이 반사되어 나온다.

 

사랑의 빛은 언제나 피사체에 있다. 사랑의 파장은 매우 가변적이다. 주파수가 일정하지 않다. 예상할 수 없는 곡선을 그리는 것이 사랑의 파장이다.

 

상대방의 변덕에 이끌려 헤매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무척 피곤한 일이다. 상대방의 감정 변화에 끌려 다니다가 지쳐 버린다. 그렇다고 감정이 없는 사람과는 사랑을 만들 수도 없다.

 

사랑은 기본적으로 감정의 작용, 상호 교호작용이다. 아무리 세속적인 조건을 갖추었다고 해도 감성이 부족한 사람은 사랑의 적격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 사랑할 때에는 세속적인 조건은 너무 따지지 말자. 그것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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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새와 새끼새>

 

어느 숲속을 거닐고 있었다.

새 둥지가 눈에 띄었다.

가까이 다가가 숨을 죽이고 보고 있었다.

 

둥지에는 새끼 새 세 마리가 있었다.

잠시 후 어미새가 먹이를 입에 물고 왔다.

 

어미새는 지쳐 있었다.

그 작은 새가 죽기살기로 먹이를 물고 온 것이다.

(어미새는 일주일 전에 허리디스크수술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한 마리 새끼가 먹이를 먹지 않고

어미새를 노려보고 있었다.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면서 어미새에게 다가가 부리로 어미를 쪼으는 것이었다.

 

나는 손에 장난감물총이 있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새끼새를 둥지에서 꺼내 집으로 강제연행한다.

앞으로 어미새에게 잘 하라고 타이른다.

새끼새를 새보호감호소(소년원 같은 곳)로 데려다준다.

새끼새를 다른 무서운 새(, 독수리, eagle)에게 입양시킨다.

 

정답을 맞추시는 분께는 커피 한잔 보낸다.

 

<우리 사회에는 부모의 은혜를 모르고 배은망덕하게, 공부는 하지 않고 매일 게임만 하는 아이들이 있다. 나쁜 짓만 골라서 하고, 부모에게 대든다. 심지어 부모를 폭행하기도 한다. 애써 키워놓으면 저 잘났다고 결혼도 제멋대로 하고, 나이 들어 병든 부모를 부양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매일 골프 치러 다닌다. 바람까지 핀다. 첩의 처갓집에는 돈도 잘 보내준다. 본처와 친부모, 처가에는 절대로 잘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을 무엇이라고 부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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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관계의 Yes or No!

 

성범죄를 인정하는 기준과 방법에 관하여 'No means No, Yes means Yes'원칙이 논란이 되고 있다.

 

‘No means No’라 함은, 상대방이 부동의 의사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관계로 나아간 경우를 말하다.

 

‘Yes means Yes’는 상대방의 명시적이고 적극적인 동의의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관계로 나아간 경우를 말한다.

 

강간죄나 위력간음죄 등을 인정하는 기준으로서 위 두 원칙은 상당한 차이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오래 동안 성범죄를 규율함에 있어서, 폭행 또는 협박을 통해서 상대방의 반항을 제압하거나, 상하관계 또는 감독관계에서 위력을 행사하여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성관계를 한 경우만을 처벌하여 왔다.

 

이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성범죄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현저한 차이를 보여오기도 했다.

 

형사정책적으로 성범죄에 관한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이냐 하는 것은 그야말로 입법정책의 문제에 해당한다.

 

앞으로 이 문제는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되어야 할 사항이다.

 

다만, 현재의 상태에서 우리는 사회의 성에 관한 인식과 성범죄에 관한 일반인의 법감정이 예전과 크게 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에 성범죄는 주로 정조를 보호하는 면이 강했는데, 이제는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는 것이 주된 것이며, 핵심적인 보호법익이다.

 

그렇다면, 본인이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강요하거나 시도하는 행위는 범죄로서 처벌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고,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

 

그러나 특정한 형태의 성관계를 형법상 범죄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형벌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상, 범죄구성요건이 매우 명확해야 한다. ‘상대방의 동의를 받지 않은 성관계행위를 처벌하는 경우에는 동의의 개념이 명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당하게 처벌의 범위가 넓어지고 대상이 확대될 위험성이 있게 된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수사가 시작되었을 때, 성관계에 있어서의 동의 또는 부동의를 어떻게 판단하고 입증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물론 동의를 받지 않고성관계를 하였다는 범죄사실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검사가 입증책임을 진다. 검사는 피해자의 진술과 객관적인 정황관계에 의해 동의가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형사소송법은 만일 피고인이 성범죄사실을 부인하고, 단순히 피해자의 진술밖에 없는 경우, 피고인이 무죄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없는 경우에는 유죄판결을 선고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때문에 성관계에 있어서의 상대방의 동의는 명시적 동의뿐 아니라, 묵시적 동의, 추정적 동의도 포함되기 때문에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그 판단이 매우 어렵게 될 것이 예상된다.

 

현행법 하에서도 드물게 이상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서로 친한 사이에 같이 모텔에 가서 성관계를 하다가 남자가 구강성교를 시도하는 경우, 성범죄로 경찰에 신고하는 사례가 있다. 이런 경우 현행법상 강간미수죄나 강제추행죄가 되는지도 어려운 문제다.

 

앞으로 성관계를 하려는 사람들은 정말 상대방의 자유의사에 기한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나중에 분쟁이 생겼을 때 어떻게 동의를 받았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한편 상대방의 동의를 받지 않고 성관계과정을 비밀 녹음하거나 비밀 촬영을 하면 그 자체로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일반인의 성에 관한 인식을 크게 바꾸는 것이다. 강간이나 위력간음죄, 강제추행죄 등의 성범죄는 기본적으로 여성에 대한 인격적 배려가 전혀 없고,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쉽게 생각하고 남성의 성욕을 억제하지 못하고 벌이는 중요한 범죄다. 몰카도 마찬가지다.

 

me too 운동이나 여성집회 등을 통해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남성들의 성의식의 후진성은 하루 빨리 고쳐져야 한다. 그리고 어떠한 형태의 성범죄든 가급적 신속하게 수사하고 무겁게 처벌하는 것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법에 공백이 있으면 시대적 요청을 수용해서 입법적 보완을 해야 한다. 끝으로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교육도 병행함으로써 세태의 변화를 깨닫지 못하고 범죄자가 되는 사례를 막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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