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철학적 의미

 

사랑(Liebe, Love, )의 실체는 무엇일까? 사랑이라는 존재는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 것일까? 갑자기 사랑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마치 사랑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누구나 사랑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랑인지는 잘 모른다. 모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감정이고, 애정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지, 객관적으로 그 느낌이 정말 사랑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면서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사랑이 없으면 그 사람은 매우 삭막한 삶을 살게 된다. 누가 뭐래도 그는 딱딱한 사막과 같은 삶의 현장에서 묵묵히 낙타와 같이 똑 같은 걸음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낙타는 매일 똑 같은 길을 걷는다. 아무런 목표도 없다. 다만 걸을 뿐이다. 그렇게 걷다가 생을 마친다.

 

남는 것은 똑 같은 사막을 걸었다는 사실뿐이며, 기억 속에는 매우 고통스러웠다는 것과 때로 오아시스를 만나서 시원한 물을 마시고, 잠시 편안한 휴식을 맛볼 수 있었다는 것뿐이다.

 

낙타가 했던 일들은 그 주인을 위해서 봉사했다는 것이다. 자신을 희생해서 주인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일만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때로 낙타처럼 보인다. 무엇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인지, 그 일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렇게 자신을 희생해 가면서 하는 일들은 결국 무엇으로 남는 것인지 회의를 느끼게 할 때가 있다.

 

낙타는 회의를 느끼지 않지만 사람은 낙타와 달라서 언젠가 회의를 느낄 수가 있다. 그것도 아주 진한 회의를 느끼고 그 회의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인생을 마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한 사람들이 사랑을 모두 버리고, 사랑에 대해 무관심한 상태에서 살았다면 그들은 과연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했을 것인가 궁금하다.

 

사랑은 필요한 것이며 삶의 충분조건임에는 틀림 없으나, 그 속성상 매우 가변적이고 영원히 잡을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실망시킨다.

 

사랑의 가치를 느끼고 사랑을 추구하려는 많은 사람들은 사랑이 보이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랑을 얻었는지 제대로 확인을 못하게 된다. 사랑은 상대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 때문에 고통을 당하게도 된다.

 

진정한 사랑을 이루기 위한 과정은 얼마나 힘들고 지루한지 모른다. 어렵게 얻은 사랑일수록 그 가치가 더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너무 힘이 들고 오랜 시간이 걸려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랑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어디까지 이루어져야 사랑은 완성되는 것일까? 결혼하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죽을 때까지 사랑이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어야 되는 것일까?

 

사랑에 대한 평가기준은 객관적인 잣대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두 사람 사이의 특수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움직여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사랑의 형태는 그 실체와 상당한 괴리가 있을 수 있다. 남들에게는 행복해 보여도 기실 사랑이 아닐 수 있다. 남들에게는 불행해 보여도 주관적인 행복감을 느끼는 커플은 많이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랑의 판단기준은 진실성, 합일성, 영원성에 있다.

 

사랑은 두 사람의 진실한 마음이 전제되어야 하고, 두 사람의 정신과 육체가 합쳐져서 하나가 되어야 하며, 오랜 시간 동안 변치 않고 계속되어야 한다. 이 세 가지 판단기준에 의해 사랑의 가치는 평가되고 인정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성이다. 많은 사랑이 이 진실성에서 결핍증세를 보이고 있다. 서로를 위하고 서로를 아끼는 이 진실성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내면에서부터 우러나와야 가능하다.

 

상대방에 대해 속이거나 가식적인 언행이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을 털어놓고, 상대방을 위해 진실한 마음을 보일 때 사랑의 진실성이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합일성은 사랑의 본질 가운에 절대적이다. 사랑은 의도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자연스럽게 서로가 서로에게 맞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혼자 있는 것보다 둘이 있는 것이 더 좋고, 상호보완작용을 일으켜 유익해야 한다.

 

물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인격적으로 사랑은 이처럼 서로를 필요하게 만들고, 서로가 없으면 허전한 상태로 만드는 그런 특수한 심리적 작용을 의미한다.

 

억지로 맞추어서 살려고 하는 부부가 끝내 깨지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자연적인 합일성은 지속적인 노력으로 더욱 견고하게 굳어지게 된다. 만일 합일성이 초반부터 약했거나 중간에 약해졌다면 그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한다.

 

물리적인 결합형태란 언젠가 분리될 수 있다. 그러나 두 개체가 화학적인 결합상태가 되면 절대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끝으로 사랑의 영원성이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 시한부로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하룻밤 풋사랑이 일장춘몽에 불과한 것은 이 때문이다.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결코 변하지 않는 사랑의 합일체가 되겠다는 비장한 각오만이 사랑을 고상한 가치로 승화시킨다.

 

사랑은 변해서는 안 된다. 서로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던지 간에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아껴주고 배려하는 마음의 지속성이야말로 사랑을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가을에는 코스모스와 국화꽃이 핀다. 가을꽃은 사랑을 연상시켜 준다. 아름다운 사랑은 꽃과 함께 숨을 쉬어야 하는 법이다. 꽃길을 걸으며 나는 사랑의 철학적 의미를 생각해 본다.

 

우리들의 사랑이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가? 사랑의 완성은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저 멀리서 꽃들이 가쁘게 숨을 쉬고 있다. 오늘 밤에는 저 꽃들과 함께 깊은 숨을 쉬고 있어야겠다.

 

                                                <이 작품은 나의 절친한 친구, 정장직 화백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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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지 감수성

 

2019년 9월 9일 대법원은 A 전 지사에게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확정했다. 현직 도지사가 성범죄로 언론에 보도가 되어 사표를 내고, 수사 및 재판을 받고 실형까지 살게 된 사건은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고, 피고인의 위력 사용사실을 인정했다. 이 과정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했다.

 

피고인에 대한 범죄사실은 2017년 7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수행비서를 4차례 성폭행하고 6차례 추행하였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지위나 권세는 피해자의 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무형적 세력에 해당한다" "성문제 사건을 다루는 법원이 양성평등의 시각을 잃어선 안 되고, 성범죄 피해자가 처한 사정을 고려해 진술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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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 추억

 

가을이다. 첫사랑의 추억이 가을 하늘을 수놓는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이 가을비를 따라 내린다. 비에 젖은 사랑이 강물을 따라 멀리 흘러간다.

 

<어린 시절은 나름대로의 비밀과 기적을 간직한다. 그땐 세상 전체가 우리 것이었고, 우리는 세상 전체에 속했다. 그땐 영원한 인생만이 존재했다.

 

시작도 끝도 없으며 안식도 고통도 없는 인생, 마음은 봄날 하늘처럼 화창했고 제비꽃 향기처럼 신선했으며, 일요일 아침처럼 잔잔하고 거룩했다.>

- 독일인의 사랑(Deutsche Liebe),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지음, 11쪽에서 -

 

세상을 제대로 알기 전에 시작된 사랑, 그것은 첫사랑이며 순수한 사랑이다. 사랑의 순수성은 현실 앞에서 무너질 위험이 있다. 모든 사랑은 나름대로의 비밀과 특성을 가진다. 절대적인 주관성이 사랑에 개재된다. 두 사람만이 만들어내는 사랑의 은밀성은 오직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다.

 

‘생각납니다 너무 생각납니다/ 문밖에 손 흔들던 그대 모습/ 어떻게 잊죠 그대 이름 하나로/ 내내 참아왔던 눈물에 숨쉴 수 없는데/ 그댈 사랑해 사랑해 사랑합니다/ 그래도 내겐 전부입니다’

(Gavy NJ, 사랑이 그렇습니다, 가사 중에서)

 

한 사람의 가슴에 들어와 자리잡고 있는 또 한 사람! 새로운 한 사람 때문에 이미 있었던 한 사람의 가슴은 항상 설레이며, 또 불안하다. 그것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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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의 상념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다. 다른 사람에게 운명을 맡기지 않는다. 자신이 걸어갈 길을 선택한다.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전날 밤의 어떤 인상으로 행복한 상념 속에 온몸이 나른한 채 잠에서 깨어난다. “어젯밤 X.....는 근사했었어.” 그것은 무엇에의 추억일까? 그리스인들이 카리스(charis)라고 불렀던 것? 그런데 카리스란 ‘눈의 광채, 육체의 빛나는 아름다움, 욕망하는 대상의 광휘’를 뜻한다. 나는 고대의 카리스란 말의 의미에서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내 욕망에 몸을 내맡길지도 모른다는 상념을, 희망을 덧붙여 본다.>

-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지음, 김희영 옮김, 39쪽에서 -

 

사랑하는 사람과 나 사이의 거리는 항상 가변적이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그는 멀리 떨어진다. 내가 정지해 있으면 그 역시 정지한 상태로 있다. 내가 뒷걸음질치면 그는 나를 향해 질주해 온다.

 

‘난 너 때문에 숨 쉬고 난 너 때문에 웃는 사람/ 난 너의 사랑에 메말라/ 널 향해 내 심장은 밤새도록 계속 뛰고 있어/ 그대는 아직 내 가슴에 살아요’(인터쳐블, 가슴에 살아, 가사 중에서)

 

우리는 때로 중대한 착각을 일으킨다. 사랑 아닌 현상을 사랑이라고 믿고, 진정한 사랑을 사랑이 아니라고 방치하기도 한다. 이런 착시현상은 사랑의 본질에 비추어 당연히 수반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착각을 일으키지 않고 정확한 판단만을 할 수 있다면 그 많은 사랑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언제나 온유한 따뜻함이다. 사랑처럼 포근한 느낌을 주는 것은 없다. 아무리 강한 성격의 사람이라도 사랑 앞에서는 연약한 봄날의 새싹처럼 부드러워진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딱딱한 껍질에서 벗어나야 한다. 폐쇄된 공간에서 마음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뛰쳐나와 신선한 공기를 마셔야 한다. 앞에 펼쳐져 있는 초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아야 한다.

 

그곳에는 멀리 두 사람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일 것이다. 가슴이 넓은 왕자와 연한 미소를 띄고 있는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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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향연>

 

플라톤이 쓴 ‘향연’에는 사랑을 주관하는 신 에로스에 대한 찬양이 기술되어 있다. 파이드로스는 에로스를 천상의 에로스와 범속의 에로스로 나누어 설명한다. 범속의 에로스는 남녀가 성적 욕망에만 탐닉하는 사랑이다. 천상의 에로스는 정신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아리스토파네스에 의하면, 인간은 원래 남성과 여성, 그리고 양성을 함께 갖춘 남녀추니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람의 모습은 구형으로서 원통형 목에 완전히 닮은 두 개의 얼굴이 반대로 놓여 있었다. 인간은 신에 대항한 결과 신에 의해 반으로 갈라졌다.

 

그래서 그후 인간은 잃어버린 자신의 반쪽을 평생 그리워하면서 살아간다. 이런 관점에서 아리스토파네스는 에로스란 인간의 내면을 돌보아주는 하나의 힘이라고 한다.

 

<플라톤이 향연에서 정의한 두 가지 사랑 말이야. 아무튼 두 사랑은 사람들에게 시금석 같은 역할을 하지. 어떤 사람들은 한쪽 사랑만 알고, 어떤 사람들은 다른 쪽 사랑만 알아. 그리고 육체적 사랑만 아는 사람들이 꼭 쓸데 없이 드라마를 운운해, 그런 사랑에 드라마란 있을 수 없어. 그리고 플라토닉한 사랑에도 드라마는 있을 수 없어. 그런 사랑에는 모든 것이 분명하고 순수하기 때문이지.>

- 안나 카레니나 1. 레프 톨스토이, 연진희 옮김. 민음사, 98쪽에서 -

 

문득 너라는 존재를 떠올려본다. 그리움 때문일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너라는 존재 앞에서 나는 무한한 무기력감을 느낀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이었다. 정 때문에 나는 나를 잃었다. 너 때문에 나는 상실되었다. 밤하늘에 별이 반짝인다. 어두운 밤을 수놓고 있는 별들은 우리에게 작은 소망을 안겨주고 있다.

 

숲속에서도 별을 보고 길을 찾아나섰던 너와 나는 사랑 때문에 눈을 감았다. 꿈길에서도 다정했던 미소가 불꽃을 지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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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의 모순

 

<사랑의 포옹은 한순간,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이와의 완전한 결합에의 꿈을 실현시켜 주는 것처럼 보인다. 우린 마술에 걸린 채 황홀해하며, 잠자지 않고 꿈속에 있으며, 잠들기의 어린이 같은 쾌감 속에 있다. 사랑의 이야기의 그 모든 우여곡절을 통해 나는 두 개의 포옹의 모순을, 그 압축을 되찾으려고, 되풀이하려고 계속 고집할 것이다.> -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김희영 옮김, 153~154쪽에서 -

 

안는다는 말의 의미는 두 팔을 벌려 가슴 쪽으로 끌어당기거나 그렇게 하여 품 안에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명사로서의 포옹이라는 단어는 사람을 또는 사람끼리 품에 껴안음, 남을 아량으로 너그럽게 품어 줌을 뜻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포옹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와 눈길을 마주치고 가슴을 맞대는 것이다. 손을 잡고, 함께 걷는 것이다.

 

포옹은 단순히 육체적인 접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가슴과 가슴이 서로 껴안는 것을 의미한다. 가슴과 가슴이 서로를 포옹할 때 우리는 모든 오해와 의심을 떨쳐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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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아름다운 슬픔

 

해가 서산에 걸쳐 있다. 하루 종일 생명 있는 존재들을 비춰주고 이제 쉬려는 시간이다. 바람이 분다. 홀로 강변에 서서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본다. 붉은 노을에 강은 물들고, 사랑에 젖은 꽃잎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이 고요한 시간에 조용히 사랑이라는 말을 떠올려 본다. 사랑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왜 사랑하고, 사랑 때문에 눈물을 흘려야 하는가?

 

사랑이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가슴 속에 들어와 자리잡은 채 온통 그것에만 매달리게 하고, 삶을 지배한다. 사랑은 마음을 사로잡고, 한없는 기쁨과 충만감, 안정감을 준다. 그럼으로써 삶의 진수를 채운다.

 

하지만, 사랑은 우리를 속상하게 하고, 긴장시키며 때론 분노케 한다. 가슴 아프게 만든다. 헤어나지 못할 상처를 안겨 준다. 삶을 포기케 하며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찍기도 한다. 그래서 사랑은 아름답지만 슬픈 형상으로 영원히 기억될 수밖에 없다.

 

살아가면서 만났던 다양한 형태의 사랑들은 삶의 중요한 요소다. 본질을 구성하고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런 사랑의 이중성을 눈여겨 보고 싶었다.

 

사랑의 빛 때문에 환희에 몸서리치고, 사랑의 그림자 때문에 처참한 눈물을 흘리는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반추해 보고 싶었다. 그럼으로써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화석에 새겨 보려고 했다.

 

모든 사랑, 모든 인생의 아름다움은 외적인 형식이나 존재에서 비롯되는 건 아니다. 그 사람의 영혼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 진정한 행복은 자신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면서, 그 영혼을 다른 사람의 가슴 속에 담아 두는 일이다.

 

보이지 않는 정을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간직하는 일이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목숨을 걸 정도로 집착하게 되는 것은 사랑의 아름다움과 그로 인한 영혼의 떨림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내가 정말 해보고 싶었던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과 사랑 때문에 겪었던 너와 내가 겪었던 고통들을 하얀 화폭에 그려보았다. 서툰 언어 때문에 표현하려고 애썼으나 끝내 다 하지 못했던 행간 사이의 의미는 여백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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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남는다는 건

 

사랑 때문에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전에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풀까지도 그 안에 들어있는 생명을 바라볼 수 있다. 벚꽃 아래에서 너에게 보낼 시를 쓰게 되고, 낙엽이 떨어지는 벤치에 앉아 까닭 없이 고여오는 슬픔 때문에 눈물을 닦아야 한다.

 

사랑할 땐 가슴 깊은 곳까지 너의 미소로 가득 찬다. 너의 사랑을 받아들일 땐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며 구름 위를 난다. 그리고 너의 음성을 듣는다.

 

너를 보낼 땐 혼자 남은 내가 감정을 처리하기 어렵게 된다. 둘이서 하던 일을 혼자서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슬픔을 강물에 묻어두는 일이다.

 

슬픔은 땅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낙엽으로 덮을 수 없다. 이별의 슬픔은 강물을 따라 아주 멀리 떠내려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너의 마음이 떠났든, 내가 싫증이 났든 어떤 경우든지 사랑이 무너지는 경우 우리의 마음은 아프다. 씁쓸한 기분이 된다. 사람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되고, 세상은 짙은 회색빛으로 칠해진다.

 

사랑을 만만하게 봤다가 사랑에서 실패하는 경우에는 대체로 무기력증을 느끼게 되고, 삶이 얼마나 힘이 들고 고달픈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사랑을 하기 전에 신중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세상에는 그 누구도 만만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시작해야 한다.

 

사랑을 하게 되면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사랑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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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피기까지는>

 

사랑이란 너와 나의 관계다. 두 사람 사이가 열려야 사랑은 가능하다. 네가 닫히거나, 내가 닫히면 사랑은 폐쇄된다.

 

사랑은 항상 열린 사랑이어야 한다. 사랑은 나를 솔직하게 너에게 알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비밀이 많은 사람은 사랑을 할 자격이 없다. 모든 것을 털어놓아야 사랑은 가능하다.

 

'내 가슴에 깊이 박힌 사랑은 너뿐이었어/ 하지만 여기까지야 내 사랑은 여기까지야 어쩔 수 없잖아 세월엔 약이 없잖아/ 마음을 다해 정말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우리잖아 그거 잊었니‘(Noblesse, 마음을 다한 사랑, 가사 중에서)

 

진정한 사랑이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을 하면 뇌속에서 알파(α)파가 나오고 엔돌핀이 분비되어 마음이 흐뭇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진정한 사랑은 나 다 너를 소중하게 여기고, 나를 희생해서 너를 위하는 것이다. 낮은 자세로 너를 섬기는 것이다. 노예가 되는 것이 너의 사랑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기적인 사랑은 너 보다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너를 희생해서 나의 이익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높은 자세로 나를 섬기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너의 주인이 되는 것은 사랑을 잃어버리는 지름길이다.

 

이기적인 사랑은 항상 계산을 한다. 내가 너에게 이만큼 해주었으니, 너도 나에게 이만큼 해야 한다는 주판을 튕기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봉사, 기여, 배려를 하지 않는다. 이런 이기적인, 계산적인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한다. 상대방이 그러한 사실을 곧 알게 되고, 그 때문에 사랑은 질식하고 만다.

 

한숨 따윈 제발 그만 쉬고 어서 나를 따라와/ 이제 생각은 다 버리고 그저 네 맘대로 자 움직여 봐/ 거칠게 달려보자 feels good tonight/ 더 빨리 갈 테니 절대 눈 감지 마’(2NE1, 날 따라 해봐요, 가사 중에서)

 

<천리에 사람 기다리기 어렵고 사람 기다리기 이토록 어려우니 군자의 박정 은 어찌 이다지도 심하십니까

삼시에 문을 나가 멀리 바라보니 문을 나가 바라보기 애처로운 천첩의 심 정은 과연 어떠하겠읍니까

오직 바라옵건데 관인하신 대장부께서는 강을 건너 오셔서 구연의 촛불 아 래 흔연히 대해 주시고

연약한 아녀자가 슬픔을 머금고 황천객이 되어 외로운 혼이 달 가운데서 길이 울지 않게 해 주옵소서>

- 부용, 부용상사곡에서 -

 

사랑을 기다리는 여인의 애달픈 심정을 노래한 시다. 간절한 소원은 기도로 이루어진다. 사랑을 배신하지 말고 슬픔을 주지 말아야 한다.

 

<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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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고백의 가벼움

 

사랑이란 감성이다. 이성을 뛰어넘는 영역이다. 때문에 사랑이란 단어 자체로 가슴이 설레이고 떨린다.

 

지금은 인터넷시대다.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고 친구가 된다. 그 과정에서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고, 생각과 감정을 공유한다.

 

인터넷을 통해, 사랑이라는 언어가 교류되기도 한다. 아직 서로 보지도 않고, 육체의 확인도 없는 상태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주고 받는다.

 

이런 사랑의 고백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실제 오프라인에서 사랑한다고 말을 꺼내는 것은 쉽지 않다.

 

첫눈에 끌렸다해도, 여러 차례 만나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몸과 마음으로 정이 들어야 사랑한다는 고백을 할 수 있다. 송창식 씨가 1974년 발표한 맨 처음 고백이라는 노래에도 이런 표현이 나온다.

 

<말을 해도 좋을까 사랑하고 있다고

마음 한번 먹는데 하루 이틀 사흘

맨 처음 고백은 몹시도 힘이 들어라!>

 

그러므로 사이버상의 사랑한다는 언어적 표현은 매우 가벼운 것이다. 너무 가벼워서 작은 바람에도 솜털처럼 날아가버린다.

 

진정한 사랑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숱한 눈빛을 나누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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