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어떤 색일까?

 

사랑은 마음을 아름다운 색깔로 채색하는 것이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가슴 속을 사랑의 과일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가상의 공간에서 입고 아름다운 옷을 무도회에 참석하는 일이다.

 

사랑은 항상 우리 곁에 머물러야 한다. 사랑이 떠나면 삭막해진다. 빛을 잃고 회색빛 벽으로 둘러싸여 나갈 출구를 잃어버린다.

 

사랑의 언어가 작은 공간을 가득 채운다. 멀리서 안개 속으로 자동차 물결이 출렁거린다. 안개는 겨사랑을 해면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사랑은 신음소리조차 낼 수 없다. 안개가 자욱하기 때문이다.

 

안개는 항상 너와 나의 사이를 더 이상 다가갈 수 없게 만든다. 안개 때문에 우리의 시야는 흐려진다. 선명하게 보지 않으려고 했던 사랑의 아픔도 안개 속에서는 뚜렷한 고통이 아니다.

 

‘사는 동안 처음이었죠/ 마지막이겠죠/ 나의 심장까지 파고든 사람/ 그대 향해 가는 길 험난 할 걸 알기에/ 외면하려고 몸부림쳤지만’(민경훈, 아프니까 사랑이죠, 가사 중에서)

 

사랑은 참을 수 없는 몸부림이다. 지독한 열병을 앓는 환자처럼 스스로 얼마나 뜨거운지 알지 못한다. 뜨거운 손으로 자신의 열을 잴 수 없듯이, 격렬한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의 파도의 높이를 측정할 수 없다. 그 상태로 물속에 잠겨 허우적거리게 된다.

 

‘이미 너와 나의 거리/ 멀어진 그리고 벌어진 남보다 못한 우리 사이/ 사랑에 슬퍼하고 사랑에 눈물짓는 외톨이/ 가슴이 수많은 밤을 새우며 나를 달래고 있어’(CNBLUE, 외톨이야, 가사 중에서)

 

때로 사랑은 정지한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오직 파도소리만 듣게 되는 것처럼 사랑은 우리 곁에서 질식한 상태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 시간에 사랑은 혼자만의 환상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

 

사랑은 결국 실존의 당위성을 증명하지 못하고 사라진다. 사랑이라는 허상 앞에서 울고 웃었던 두 실존은 하나가 되기 위한 몸짓마저 봄날의 나비가 보여주는 날갯짓처럼 허망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들이 남긴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사랑의 추억이었다. 천년이 지난 다음에도 그들의 사랑은 진달래꽃(Azaleas)처럼 오솔길에 뿌려져 있을 것이다.

 

<삼각관계와 불륜은 멀리 고대의 신들 사이에도 존재했다.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 또한 자신의, 똑똑하지만 ‘장애를 지녔던’ 남편 헤파이스토스를 속였다.

 

신화의 상징성을 고려해보면 헤파이스토스는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먼 남자이거나 내향적인 사람이었거나 성불구였을 수도 있다.

 

어쨌든 아프로디테는 애인에게서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마음의 상처를 받은 남편 헤파이스토스는 다른 신들을 불러 모아 그 여인에게 복수를 했다. 이렇듯 신들조차도 삼각관계를 뛰어넘을 수 없는데, 지상의 인간들이야 어떻겠는가?>

- 불륜의 심리학, 게르티 젱어 지음, 함미라 옮김, 17쪽에서 -

 

아프로디테(그리스어 : 라틴어로는 Venus)는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이었다. 제우스는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번개로 전쟁에서 이긴 대가로 아프로디테를 헤파이스토스의 아내로 맺어 주었다.

 

그러나 아프로디테는 아레스와 사랑을 하였다. 그 후 아프로디테가 아도니스에게 반하자 아레스는 멧돼지로 변하여 그를 받아 죽이고, 아프로디테는 에오스가 아레스를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가 사랑하게 되는 인간은 모두 죽는 저주를 내린다.

 

‘어려도 아픈 건 똑같아/ 세상을 잘 모른다고 아픈 걸 모르진 않아/ 괜찮아 질 거라고 왜 거짓말을 해/ 이렇게 아픈 가슴이 어떻게 쉽게 낫겠어/ 너 없이 어떻게 살겠어’(2AM, 죽어도 못 보내, 가사 중에서)

 

알렉산드로스 왕은 아펠레스라는 화가를 시켜 자신의 애첩인 판카스페의 아름다운 나체를 그림으로 그리라고 명령했다. 화가와 애첩은 이를 계기로 사랑하게 된다. 두 사람이 껴안고 있는 장면을 알렉산드로스 왕이 보게 되었다.

 

그러나 왕은 자신의 분노와 질투를 억제하고 애첩을 화가에게 선물로 주었다. 화가 아펠레스는 그 후 판카스페를 모델로 해서 ‘바다 거품에서 태어나는 비너스’라는 위대한 작품을 남겼다.

 

<사랑은 언제나 열정과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그냥 찾아오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사랑에 대한 가치를 깨닫고, 사랑의 필요성을 확인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축복이고, 신의 선물이다.>

사랑의 진정성에 관하여

 

사랑은 단일성과 진정성을 필요로 한다. 사랑이 분산되거나 진정성을 결여하면 영속성을 가지지 못한다.

 

사랑은 오직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야 하고, 진실해야 한다. 어떤 거짓이 있거나 위선 또는 가식이 있으면 그건 더 이상 사랑이 아니다.

 

사랑의 진정성은 하루 아침에 정립되지 않는다. 오래 참고, 온유한 가운데 상호 간의 이해와 배려가 쌓여야 비로소 형성된다.

 

너무 서둘러서는 안 된다. 서로를 충분히 알기 전에 함부로 사랑한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 성급한 육체관계를 맺고 사랑을 찾으러 나서는 것은 어리석다.

 

사람은 육체도 중요하지만, 영혼이 더 중요하다. 사랑에 있어서도 정신적인 면이 더 중요하다. 육체적 쾌락을 목적으로 하는 사랑은 곧 소멸하고, 더 이상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하룻밤을 보낸 남녀가 그 다음 날 아침 모텔방에서 나올 때의 기분을 상상하면 이해가 갈 것이다. 허망한 것이 육체적 관계다.

 

서로 아끼고, 서로 배려하고, 서로 소통하는 것에서 사랑의 단서를 찾아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함부로 사랑하지 마라. 함부로 정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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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미지와 역이미지

 

사랑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달라보일 때가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이 내적이나 외적으로 달라져서 그런 것이라기 보다는 관찰자, 즉 나 자신이 그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가 이런 저런 이유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랑은 기본적으로 감성적인 영역이다.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출발한다. 그러나 그 호감은 시간이 가면서 항상 달라질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

 

어떤 사소한 이유로 이미지가 역이미지로 바뀌는 것, 그로 인해서 상대방은 역이미지가 노출된 것에 대해 당황하고 이를 수정하려고 한다. 아니 감추려고 한다. 롤랑 바르트는 이와 같은 역이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랑의 영역에서 사랑의 대상의 역이미지를 잠시나마 만들어 내는 것. 하찮은 사건이나 어떤 미세한 것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은 그 선한 이미지가 갑자기 변질되고 전복되는 것을 본다. 이미지의 변질은 내가 그 사람을 부끄럽게 생각할 때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수치심은 예속에서 온다. 나의 통찰력 또는 정신 착란만이 간파할 수 있는 어떤 하찮은 일로 해서 그 사람이 갑자기 그 자체가 노예 근성인 어떤 심급에 예속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자신의 베일을 벗고, 노출되고, 현상된다. 나는 갑자기 그가 분주해지고 당황해하고, 또는 그렇게 함으로써 인정이라도 받으려는 듯 사교계의 의식에 복종하고 존중하고 영합하는 것을 본다. 왜냐하면 나쁜 이미지란 사악한 이미지가 아닌 비열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게 세속적인 진부함 속에 붙잡혀 있는 그 사람을 보여 준다.>

-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지음, 김희영 옮김, 47~49쪽에서 -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매우 선하고 아름답다. 그가 지혜롭게 부지런하다. 몹시 인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고, 밝은 성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상대방에게서 사랑을 느끼고, 그에게 빠진다.

 

처음 단계에서 상대방은 아무런 약점이나 허점을 드러내지 않는다(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오히려 상대방이 약하고 허점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편하게 느껴서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그 사람의 이미지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지금까지는 좋은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나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나쁜 이미지라 함은 도덕적으로 선악의 개념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비열할 뿐이다.

 

그는 지나치게 세속적인 사람이라는 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상에 영합하면서 잘 살아가려는 모습도 때로는 비열하게 보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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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녀의 낯선 사랑>

 

누가 불륜에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아무도 없다. 그 누구도 돌을 던지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불륜이 이미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돌을 던지기 전에 불륜의 본질을 직시하라. 왜 불륜이 마른 들풀 위를 번지는 불꽃처럼 활활 타고 있는지 알아보라. 그리고 불륜에 돌을 던지는 의미를 알고 던져라!’

 

유부녀가 불륜을 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매우 복잡하고 설명하기 어렵다. 불륜은 일차적으로 기존의 결혼관계가 고도의 결속력, 구속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결혼해서 행복한 생활을 하는 여자가 불륜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바람기가 있어 하나의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사랑을 추구하는 경우도 있다. 새로 나타난 남자가 집요하게 구애를 해서 견디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결혼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랑을 한다. 어떤 상황에서 시작되었든 불륜 유부녀의 심리상태는 불안하고 긴장상태에 있게 된다.

 

결혼한 사람이 불륜으로 나아갈 때 어떤 심리상태가 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불륜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아예 처음부터 어떤 불이익이든 감수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시작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현재의 결혼생활에 아무런 가치나 비중을 두지 않고, 새로운 사랑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불륜은 기존의 사랑과 현재의 사랑이 공존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이미 결혼을 통해 하나의 사랑이 형성되었는데, 그 후 그 사랑을 완전히 소멸시키지 않은 채 새로운 사랑을 또 하나 만드는 것이다.

 

불륜은 원래 하나만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랑의 영역에서 두 개의 사랑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복잡한 인간적 사회적 법적 심리적 문제를 야기시킨다.

 

기존의 사랑을 무시하고, 오로지 새로운 사랑에만 집중하겠다는 태도를 가지는 사람은 결국 기존의 사랑에 대해 적대적인 관계에 서기 때문에 적()으로부터 강한 공격을 받을 위험성이 있다.

 

기존의 사랑의 당사자인 배우자가 가만 있지 않게 된다. 배우자는 자신의 사랑을 완전히 무시하고, 새로운 사랑으로 나아간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고, 똑 같은 방법으로 공격하고 복수를 하려고도 한다. 여기에서 무서운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불륜은 처음부터 사랑의 비정상성, 기형성, 비이성성을 내포하고 있다. 태생적으로 불완전한 사랑이다. 불륜에는 많은 고난과 갈등, 고통이 예고되어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불륜으로 나아간다. 분명, 성경에 간음하지 말라고 계율로 못을 박고 있는데도 불륜을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불륜이라는 금단의 사과를 보고 참지 못하는 것일까?

 

불륜은 결국 현재 사랑에 관한 법과 제도가 시대에 맞지 않게 일부일처제를 고집하고 있는데서 비롯된다. 한번 결혼했으면 죽을 때까지 그 사람과 사랑하고 성관계를 맺어라. 그리고 자녀를 양육하라. 이런 사회적 규범과 명제는 모두 상대방과 비슷한 사고와 감정, 능력이 전제되어야 강제가 가능하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너무 생각과 행동이 맞지 않는다. 오직 자기 생각만 하고, 상대방을 배려치 않는다. 그러면서 섹스리스의 상태다. 그런데도 결혼했으니 무조건 살아야 하고, 동거를 해야 하고, 부양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질식하고 만다.

 

어떤 탈출구가 필요하다. 이때 이혼 또는 별거 아니면 불륜이 대안으로 등장한다. 그러므로 불륜은 이제 더 이상 범죄행위가 아니라, 기존의 사랑을 보충하는 수단이 되고, 더 나아가 기존 사랑을 완전히 깨뜨리지 않는 수정안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배우자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그 결과 도저히 결혼생활을 계속할 수 없다고 판단한 사람들은 법이든 도덕이든 상관없이 또 다른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혼을 당해도 좋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애당초 결혼을 하지 않았던 것이 좋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한 사실을 매우 후회한다. 결혼생활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고 결혼했다가, 그로 인해 겪는 정신적 고통 때문에 감당하지 못하고 결혼에 대해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생활이 지옥이라고까지 표현한다. 결혼하는 순간 지옥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사실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못하면 그것은 지옥과 같다. 같이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즐거움이나 행복은 전혀 찾지 못한다. 오직 괴로움과 불행뿐이다.

 

이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과정을 경험하고 그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이혼한다. 자신의 결혼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 이혼해도 좋다는 사람은 새로운 사랑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된다.

 

예전에는 결혼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배우자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그런대로 참고 사는 것이 보통이었다. 자녀들 때문에 참고 살고, 이혼하고 싶어도 사회적인 체면 때문에 그냥 살았다.

 

지금은 달라졌다. 개인의 행복추구를 우선으로 한다. 자녀 때문에 개인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다. 꼴보기 싫은 사람과 사는 것을 절대로 참지 못한다. 이들은 개인의 행복추구권의 의미를 절대적으로 받아들인다.

 

부부 사이가 나쁘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 때보다 훨씬 더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삶에 회의를 느끼고, 생활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럴 때 탈출구는 무엇일까? 일이나 더 열심히 하고, 술이나 마시고, 운동이나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애정이 파탄나서 느껴지는 외로움이나 허무한 감정은 결코 다른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또 다른 애정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비교적 높다. 뿐만 아니라 젊은 나이에는 그동안 해오던 성생활 역시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다른 이성을 찾아 성관계를 하려고 하는 욕구도 강하다.

 

자신의 배우자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성에 대해서도 혐오감을 가지게 되지만, 그래도 젊은 에너지가 있어 또 다른 이성과의 성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결혼생활의 경험 때문에 성에 대해서 비교적 관대한 사고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쉽게 불륜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불륜과 성적 자기결정권, 그리고 행복추구권과의 상관관계는 무엇인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행복추구권은 개인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하고 있다. 현대인은 자신의 행복을 열심히 추구한다. 예전과 달리 배우자 때문에 개인의 행복을 희생할 마음이 없다.

 

자식 때문에 개인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할 마음도 적어졌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기본적인 행복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마음을 상대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행복하지 못한 결혼생활은 과감하게 청산하려고 한다.

 

그것은 자신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다. 결혼생활이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막상 살아보니 그것이 행복은 주지 않고 오히려 불행만 가져다 준다고 생각되면 그곳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것이다.

 

성격이 맞지 않고, 가치관이 다르면 함께 살지 못한다고 단정을 내린다. 종교만 달라도 질식할 것처럼 느낀다. 생활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주 무시해버린다.

 

취미가 다르면 함께 할 시간도 거의 내주지 않는다. 그래서 결혼생활은 점차 삭막해지고 그 의미를 찾기 어렵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과 인생관, 가치관, 취미가 맞는 사람을 찾아 나선다. 기존의 결혼관계를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그에 대한 현실적인 대가는 자신이 치루겠다는 의지를 가지는 것이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불행한 결혼생활은 서로가 합의해서 빨리 끝내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부부간에 싸움을 하다가 살인사건도 나고, 성격이 맞지 않아 바람을 피우고,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고, 배우자가 잘못해서 거지가 되어서 고생을 죽도록 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재혼한 경우 의붓아버지가 의붓딸을 성폭행하기도 하는 사례도 있다. 이 모든 것이 불행한 결혼을 제때에 과감하게 청산하지 못한 후유증이다. 불행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성에 관하여 모든 것을 개인의 자유의사에 맡긴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혼했다고 해서 반드시 배우자와만 성행위를 해야 한다는 법과 윤리규범에 대해서도 회의를 느끼게 된다.

 

더군다나 각자 결혼전에 이미 다른 이성과의 성관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오직 잘 맞지 않는 성관계를 계속하고, 일체 다른 이성과는 성관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규범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결혼한 다음 성관계를 의도적으로 기피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이러한 언밸런스로 인한 불륜의 시도 역시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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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사랑 / 금지된 사랑

 

<유부녀가 사랑을 하는 경우는 많다. 유부녀도 인간이기 때문에 반드시 남편만 사랑하고 살 수는 없다. 유부녀가 금지된 사랑을 하는 경우에 어떤 문제가 생기고 어떤 위험이 뒤따르는 것일까?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너무 막연하게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아예 깊이 생각하지 않고 위험한 사랑을 한다. 어떤 사람은 위험성을 알면서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불륜이 들통나고 망신을 당한다. 어떤 사람은 위험성의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는다. 배짱으로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실제 있었던 유부녀의 사랑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러한 사랑의 문제를 분석해 보기로 한다.>

 

영희(가명)는 우연히 알게 된 경원(가명)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유부녀로서 유부남을 사귀게 된 것이다. 물론 불륜관계였다.

 

불륜(不倫)이라는 사회적인 제약을 안고 시작한 이들의 관계는 시간이 가면서 매우 복잡하게 되었다. 남편 눈치 보랴, 아내 눈치 보랴, 아이들 뒷바라지 하랴. 사회생활하랴. 마침내 이들의 관계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단순한 로맨스로 시작되지만, 유부남과 유부녀의 애정관계는 실제 상황이 되면 생각보다는 힘들고 고통스럽다. 게다가 위험하기까지 하니 나중에는 두 사람 다 무너지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복잡하고 위험한 불륜의 애정관계를 쉽게 생각하고 시작하다가 도중에 너무 많은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영희와 경원 두 사람 중 더 견디기 어려운 쪽은 여자였다. 남자는 바깥 생활에 대해 부인에게 거짓말하기가 쉬워도, 집에 많이 있어야 하는 유부녀는 남편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거짓말을 계속해야 하고, 가정생활이 엉망이 되는 것이 부담스러워진 영희는 경원에게 그만 만나자고 했다.

 

나이 든 남자와 여자 사이란 젊었을 때의 처녀 총각 시절과는 달리 처음에는 아무리 좋아 불이 붙어도 시간이 가면 냉정한 현실 속에서 점차 애정이 식게 되고, 나중에는 불륜에 매여 구속받는 사실이 귀찮아지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많은 불륜을 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공통된 심리다.

 

사랑이 변질되는 것일까? 아니면 사랑의 변화일까? 그러나 속정이 들을 대로 들은 이들은 이별과 재회를 수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사랑이란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이다.

 

말로는 절대로 만나지 말아야 한다고 맹세하면서, 돌아서면 또 보고 싶고, 미워하면서도 만나게 되고, 싸우면서도 정이 드는 법이다. 남녀 간에 육체를 섞으면서 정이 들면 생각과 행동이 불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모순이고 사랑 때문에 겪게 되는 고통이다.

 

남녀관계는 참 묘하다. 서로 싸우고 성격이 안 맞는다고 하면서도 계속 이어진다. 운우지정(雲雨之情)이라고 할까? 육체관계가 계속되다 보면 보이지 않는 정이 쌓인다. 징그러우면서도 헤어지지 못하는 사이가 된다. 그게 애정이고 사랑이다. 어리석음이 눈에 보여도 쉽게 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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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사랑>

 

한 여자가 플랫폼에 서 있다. 작은 가방을 하나 들고 멀리 떠난다. 남쪽 끝으로 가려고 한다.

그녀가 떠나는 곳은 출발역이 아니다. 한 남자가 있는 곳을 떠나려고 한다. 그 남자의 기억을 지우려는 것이다. 다시 돌아올지는 미지수다. 지금 이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서다.

 

남자가 잘못한 것은 무엇일까? 유부남으로서의 한계 때문이다. 가정을 버릴 수 없어서, 오직 한 여자만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랑한다면 모든 것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여자의 심정이고 지론이다.

 

남자는 그럴 수 없다. 그것은 다른 부분에 대한 무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가정을 지키려고 한다. 양립을 주장한다. 사실 시간이 가면 그가 지키려고 했던 가정은 어차피 깨지게 되어 있다. 설사 완전히 깨어지지 않더라도 상처 투성이인 형해화된 형태만 남아있게 된다.

 

남자는 여자를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왜 사랑 때문에 남자의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하는가?’

 

여자는 KTX에 오른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세차게 내리는 비는 차창을 두드린다. 사랑은 아직 뜨거운 상태다. 사랑이 비를 맞고 있다. 비가 사랑의 온도를 낮추지도 못한다. 비는 거꾸로 사랑의 감촉을 만끽하고 있다. 비가 사랑이다. 사랑이 비가 되고 있다. 밖에는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여자는 사랑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랑을 꿈꾼다. 그 사랑은 추상적이다. 현실적이지 않다. 아마도 사랑이 아닌 꿈속의 사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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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아픔

 

안개비의 촉감이 대지를 적시고 있다. 겨울인데도 포근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겨울사랑의 감흥이 아스팔트 위에 떨어지고 있다. 겨울의 외로움이 눈이 내리지 않는 오후에도 서울에 머물고 있다. 서울이 안개비로 가득 채워져 있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아름답다. 생명체가 내뿜는 열기는 대지를 뜨겁게 달군다. 꽃보다 아름다운 생명을 담은 존재! 그것이 바로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하모니가 지상의 빛이다. 가장 아름다운 소망이다.

 

‘정말 갈 거라면 거짓말을 해/ 내일 다시 만나자고 웃으면서 보자고/ 헤어지잔 말은 농담이라고 아니면 난/ 그 많은 시간을 함께 겪었는데/ 이제 와 어떻게 혼자 살란 거야 그렇겐 못해 난 못해’(2AM, 죽어도 못 보내, 가사 중에서)

 

그들의 시간은 항상 행복을 의미했다. 한 잔의 커피만으로도 행복은 넘치고 넘친다. 어두움은 서서히 내리고 있었다. 빗방울이 창가에 부딪히고 있다. 겨울의 하얀 무대에 어리석은 욕망들이 눈사람처럼 멍청하게 서 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은 겨울 나뭇가지 사이로 절망하고 있다.

 

<누가 곤륜산옥을 잘라

직녀의 빗을 만들어 주었던고

직녀는 견우님 떠나신 뒤에

시름하며 허공에 던져 두었네>

- 황진이, 영반월(詠半月) -

 

밤하늘에 반달이 외롭게 떠있다. 황진이는 그 반달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사랑하는 님을 그리워하고 있다.

 

은은하게 떠있는 반달을 마치 하나의 빗이라고 상징한다. 그것은 견우가 떠나자 직녀가 자신의 머리를 단장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빗을 버렸다고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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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반어법>

 

사랑의 감정은 결코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랑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특수한 상황에서 갑자기 찾아온다. 운명 같은 사랑은 우연히 찾아와 깊은 운명이 된다. 그 사랑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우연히 찾아온 사랑의 감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현대 사회에서는 애정표현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그냥 술을 마시고 노는 것은 좋은데, 진지한 애정관계를 추진하는 것은 어렵다. 매우 조심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성범죄자로 몰릴 수 있다. 상대방이 애정표현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경우도 많다.

 

이청준은 그의 소설, 매잡이에서 애정이 싹트는 장면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약을 건네주고 나서 그녀는 정색을 한 눈으로 나를 말끔히 쳐다보았다. 그래도 내가 말이 없으니까 그녀는,

“눈빛이 형편없이 탁해졌군요. 내일 거울을 가져다 드릴 테니 좀 보세요.”

나는 문득 이 여자의 유방을 만져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팽팽한 탄력과 부드러운 촉감을 적당히 섞어놓은 유방을 여인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갖고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그러나 미스 윤은 벌써 복도 저쪽 끝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 이청준 소설, 매잡이, 민음사, 244쪽에서 -

 

사랑에 관한 시나 소설을 보면 유난히 반어법이 많이 나온다. 반어법(反語法, verbal irony)라 함은 참뜻과는 반대되는 말을 하여 문장의 의미를 강화하는 수사법을 말한다. 반어법에는 풍자나 위트, 역설 등이 섞여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김종국이 부르는 ‘잘해 주지 마요’라는 노래가 대표적이다. 상대방을 사랑하면서, 상대방이 자신에게 잘해 주기를 바라면서, 그에게 잘해 주지 말라고 간청한다. 너무 잘해 주면 자신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잘해 주지 마요/ 차가운 게 오히려 나을 텐데/ 더는 잘해 주지 마요/ 또 다시 사랑 앞에 무릎 꿇고 아파할 자신 없네요/ 사랑 그 하나만으로 세상 모든 걸 가졌던 그때로/ 그리워도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어서’(김종국, 잘해 지 마요 가사 중에서)

 

<사랑은 솔직하게 고백하는 게 좋다. 사랑은 위선과 가식을 용납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순수성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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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is asking to be loved

 

사랑이란 주는 것이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마음처럼 뜨거운 것은 없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 거기에 모든 것을 바칠 때 사랑은 불타오른다. 불속에서 타오르는 사랑은 아주 선명해진다. 그 사랑 앞에서 모든 것은 녹아버린다.

 

사랑은 상대적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받아야 한다. 사랑의 확인은 절대적이다. 확인되지 않는 사랑은 일방적인 비극으로 끝난다. 사랑은 끊임없는 확인이 필요하다.

 

아침 저녁으로 확인되어야 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 다짐되어야 한다. 사랑은 확인받음으로써 자신의 존재가 확인된다.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확인해 주어라. 영원히 그 확인을 계속하라. 그렇지 않으면 사랑은 생명력을 상실한다. 낙엽처럼 떨어져 비참하게 뒹굴게 된다. 사랑은 사랑받기를 요구하는 것이다(Love is asking to be loved).

 

<사랑은 생명을 가진다. 일단 사랑이 형성되었다고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끊임 없이 물을 주고 가꿔야 유지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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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으로 사랑하라

 

사랑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선한 눈빛이다. 너를 바라보는 눈빛,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똑 같다. 서로를 보는 두 눈빛은 선한 빛을 발한다.

 

돌아서는 너의 모습은 안쓰럽다. 나를 남겨두고 걸어가는 너의 뒷모습은 언제나 작은 슬픔이다. 눈빛만을 남겨놓고 떠난다. 너의 눈빛은 빛을 잃는다.

 

그래서 만남은 소중하다. 만나야 눈빛을 볼 수 있다. 우리의 삶을 밝게 만드는 빛은 가슴에서 나온다. 그 빛에는 뜨거운 기운이 담겨있다. 내게 닿아 가슴을 태우는 그 아련한 빛을 나는 소망한다. 이 밤이 깊도록 내게 남아 빛을 발하기를...

 

사랑할 때는 모든 것을 버려라. 그래야 순수한 사랑이 찾아온다. 봄날의 가슴을 적시는 바람처럼 살랑거리면서 찾아온다. 사랑은 선한 존재다. 그 안에는 어떤 악의 요소도 없다. 오직 착한 마음으로 하는 사랑은 우리를 아름다운 정원으로 안내한다.

 

사랑은 후회하지 않는 것! 사랑 앞에서는 후회도 하지 마라. 후회하는 사랑은 이미 사랑에 대한 모독이다.

 

사랑 때문에 후회할 일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한 안타까움이다. 자신에게 꼭 맞는 대상을 찾지 못함으로써 사랑의 화살을 맞지 못한 운명이다.

 

두 번재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 사랑하지 못한 점이다. 미적지근한 사랑은 사랑도 아니다. 세 번째는 꼭 맞는 사랑을 꼭 붙잡지 못했을 때 가장 크게 후회한다.

 

네 번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사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빛이다. 그러므로 눈빛으로 사랑하라. 섹스로 사랑하는 것은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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